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89)화 (18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89화

저걸 골랐어야 했는데!

저걸!

후회막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내 모습에 동생들이 입가를 씰룩거리거나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잘 고른다면서여?”

“…….”

막내의 놀림도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덕순아’라니.

저거 골랐으면 대박인데. 방송 분량은 물론이고 우리 김덕순까지.

두 마리 덕순, 아니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중현이와 비주가 내 어깨를 말없이 토닥여 주었다.

“…으응? 갑자기 왜 그렇게 얼굴이 슬퍼졌어?”

리사의 물음에 내가 웃으며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선배님.”

살짝 늘어져 있던 어깨를 들고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팬들과 함께하는 개인방송이라면 모를까.

부족한 촬영 시간도 있고, 할머니에 대한 개인적인 썰을 풀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출연진들과 토크를 나누었다.

노래가 다시 재생되는 동안 다들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말 숨겨진 명곡이네요. 노재현 선생님 노래는 꽤 알고 있는데 이 노래는 되게 생소해요.”

“안에 담긴 소울이라든가, R&B적인 부분은 지금 다시 들어도 대박입니다. 어후. 시대를 앞서가신 분이에요, 정말로.”

“우주 씨도 이 노래 알아?”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본 적은 있어요.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내 대답을 시작으로 동생들도 저마다 느꼈던 감상을 이야기했다.

따스하다. 슬프다 등등.

다른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노래의 멜로디나 감성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다만.

“어려운데?”

차우현이 콧수염을 매만지며 덤덤하게 말했다.

“꽤 고생하겠다. 노래가 보통이 아니네.”

“엄청 어렵죠.”

송보형도 동감하는 얼굴로 말했다.

“노래 주제부터가 지난 인생에 대한 회고라서 어린 친구들이 표현하기 어려운 감성이기도 하고. 거기다 노재현 선생님 노래 특유의 엇박도 있고. 소화하기가 어려워요.”

“으음, 어렵겠다. 저랑 바꿀래요?”

동요 ‘또롱또롱’이 걸린 리사가 우리에게 애절한 눈빛으로 말하는 모습에 잠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들이 말씀해 주신대로 쉽지 않을 것 같긴 해요. 이걸 편곡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다들 하는 말마따나 엄청 어려운 노래였다.

엇박자나 감성 같은 내적인 난이도도 있지만 무엇보다 외적인 측면에서도 부담이 컸다.

<도전, 명곡 발굴단!>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옛 노래를 다시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컨셉의 프로그램이다.

그런 까닭에 ‘노재현’이라는 이름은 양날의 칼이었다.

오늘 나온 곡들의 원곡자 중에서는 가장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좋았다.

즉 화제성 면에서는 좋다.

다만 유명한 가수인 만큼 관객들도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게 뻔했다.

비교할 원곡자가 전설적인 가수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기대치에 못 미친다면 혹평이 쏟아질 터.

그런 이유로 긴장할 때였다.

“어우, 어렵겠네.”

조유리가 농담을 했다.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포기하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가 싱긋 웃으며 덕담을 건넸다.

“다들 잘했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지만, 순간 속이 확 끓어올랐다.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는 내용이지만 우리를 우회적으로 도발하는 발언이었다.

중간에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발언은 우리를 동급으로 보지 않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니까.

방금 우리에게 했던 말을 차우현이나 리사한테는 절대 못했을걸.

내가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웃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려고요.”

고마웠다. 정말로.

덕분에 노래에 대한 긴장감은 훨훨 날아갔으니까.

긴장감과 즐거움의 자리를 대신해서 미칠듯한 승부욕이 생겨났다.

데뷔 전 스트릿 보이즈와 경쟁했던 이후로 누군가를 이렇게 눌러주고 싶은 건 오랜만이다.

멤버들도 방송용 미소를 짓고 있지만 눈에서는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반드시 누른다.’

‘내가 개처럼 연습한다, 진짜.’

우리가 승부욕을 불태우는 동안 리사가 턱을 괴며 화제를 돌렸다.

“기대된다. 이 노래들 비하인드 들을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기대돼요.”

“저도요. 설레네요, 이거.”

남은 것은 2주간의 개인 연습 촬영.

하지만 이 프로에는 기존 경연 프로그램과 다른 점이 있었으니 바로 원곡자와의 만남이었다.

해당 곡의 가수나 작곡가, 작사가 등을 만나서 노래에 대한 비하인드를 듣는 것이다.

다른 경연처럼 경연곡이 단순히 가수의 기량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게 아니라, 그 곡 자체에 어떤 서사가 담겨 있는지 조명한다는 컨셉이었다.

저마다 옛 선배 가수나 작곡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에 기대감을 품을 때.

반짝이 옷에 묻은 먼지를 떼어내던 송보형이 물었다.

“MC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예, 말씀하시죠.

“여섯 곡인데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건 그냥 안 부르는 거예요?”

모두가 하고 있는 생각이었다.

똑같이 소중한 노래일 텐데.

추첨에서 탈락했다는 이유만으로 방송에 못 나오는 건 안타깝지 않나 하고.

-아, 그 부분이요.

MC인 백상중이 예상했다는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마침 맞게 질문을 잘해주셨습니다.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안타까우셨죠? 여섯 곡 중 노래 하나는 묻히게 된다는 게 말입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작진이 준비했습니다. 유명덕 님의 ‘덕순아’를 비롯해서 앞으로 추첨에서 제외된 곡은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한 분이 스페셜 무대로 하게 될 예정입니다.

그 순간 내 눈이 누구보다 더 번쩍 뜨였다.

뭐?

스페셜 무대?

고개를 홱 돌렸…… 아아. 목에 담이 왔다. 목에 손을 올린 채 또랑또랑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MC님!”

내가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1위 무대 보상이요?”

-네, 이번 명곡 발굴단의 모든 회차가 끝나고 나면, 시즌 마지막에 콘서트 형식으로 스페셜 무대를 준비할 텐데요. 남은 곡들은 각 경연에서 1위를 거둔 참가자에게 주어집니다.

간단히 말해 1라운드, 2라운드 하는 식으로 구성된 모든 경연을 마치고 파이널 회차가 되었을 때.

남은 곡들을 이용해서 무대를 펼친다는 이야기였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마지막 무대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가수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약에 한 가수가 5번의 라운드에서 1위를 거둔다면 마지막 회차에서 개인 콘서트를 열다시피 할 수도 있겠죠. 한편으로 누군가는 그 어떤 무대도 하지 못할 테고요.

모두가 침을 꿀꺽였다.

마지막 회차에 무대가 없다는 건 그 동안 한 번도 1위를 못한다는 뜻이고 그건 가수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터였다.

한편으로는 그 보상이 탐이 나기도 하고.

하지만 내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었으니…….

‘첫 번째 경연은 반드시 우승한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노래 ‘덕순아’를 스페셜 무대로 할 수 있다니.

꽃이 휘날리는 미래 속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을 내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반드시!

김덕순, 아니 저 노래는 내 거다.

*   *   *

첫 녹화가 끝나고 바로 방송 일정이 잡혔다.

2월 4일.

지금으로부터 열흘 뒤인 수요일이 첫 경연 날짜였다.

“빠듯하네.”

사무실에서 스케줄을 조율하던 석환 형이 혀를 내둘렀다. 그러곤 내게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시간 내에 괜찮겠어?”

“할 수 있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돼. 안 될 것도 없잖아. 조금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거야 뭐 동생들을 좀 갈아…….”

“갈아?”

“잘못 들은 거야. 같이 자는 시간 좀 줄이고 연습하면 되니까.”

“그러다 탈 나는 거 아닐까 모르겠다.”

상대가 다이어리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경연 코앞에 예정되어 있는 녹화 일정 때문이었다.

“이걸 어떻게 안 나갈 수도 없고. 중간에 너희 몸이라도 상해서 경연에 지장이 가면 어떡하냐.”

우리 실장님이 말하는 스케줄은 TBC 방송국에서 설 특집 방송으로 준비하고 있는 ‘아이돌 운동회’였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팀을 불러 모아 진행하는 일종의 체육대회.

정식 명칭은 아이돌 운동회지만 아무도 그렇게 안 부르는 방송이다.

팬들 사이에서 별칭은 일명 ‘돌림픽.’

시청률이나 화제성과는 별개로 팬들 사이에선 악명이 높은 프로그램이다.

정신없이 바쁜 스케줄을 쪼개가며 출연해야 하는데다가, 팀끼리 경쟁이 붙다가 부상당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회사에서도 우려하는 바도 같았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냐. 이래서 우리가 너희 몸 쓰는 예능을 안 내보내는 건데…….”

“기회라고 생각할래.”

내가 웃으며 답했다.

“우리가 원한다고 안 나갈 수 있는 프로도 아니고. 잘하면 시청자들한테 눈도장 찍을 수 있는 기회잖아.”

“원론적으론 그렇지.”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형. 우리도 이제 프로야. 컨디션 관리는 무리 없이 잘할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셔.”

“……그래.”

석환 형이 한숨을 짧게 쉬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 가수들과 실력을 겨루는 경연을 준비하는 와중에 몸을 축내는 프로그램 녹화가 겹쳤다는 게 우리 매니저의 큰 걱정인 듯했다.

혹시 부상이라도 입었다간 경연 한 라운드를 쌩으로 날리게 될 수도 있으니까.

상대가 안경을 고쳐 썼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준비는 잘 되가?”

“A&R팀 분들이랑 기본적인 컨셉에 관한 이야기는 주고받고 있어. 대략 방향은 잡았지.”

“……어휴, 그분들 힘들겠네.”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응?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시치미를 뚝 떼는 매니저를 보며 슬그머니 웃다가 말했다.

“준비야 거의 다 마쳐가는데 아직 확정은 아냐. 일단 노재현 선생님과 만나서 촬영을 해야 하니까. 그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아’ 하면서 내게 전달사항을 알려줬다.

“참, 너희 명곡 발굴단 촬영 일정이 잡혔는데. 다음 주 중에 찍기로 했는데… 미안하지만 너 비행기 또 타야겠다.”

“……뭬, 뭐?”

내 얼굴이 다급해졌다.

“왜? 어째서?”

“노재현 선생님 거주지가 비행기 타야 갈 수 있는 곳이거든.”

내가 눈을 멀뚱멀뚱 떴다.

“선생님이 어디 사시는데? 해외?”

“아니.”

석환 형이 대답했다.

“제주도.”

“……그.”

한참을 있다가 내가 입술을 뗐다.

“배 타고 가면 안 돼?”

*   *   *

톡톡. 톡톡.

-제주도 배 타고 가는 법

톡.

-제주도 배 시간

-배 왜이리 오래걸ㄹ려

-비행기 시러

톡톡.

내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스마트폰 위로 포털 사이트 지난 검색어에 ‘제주도’ ‘배’ 같은 단어가 한 가득 떠올랐다.

텁.

고개를 돌리니 내 어깨 위에 얹은 올망졸망한 머리가 보였다.

“뭐 봐여?”

“제주도에 배 타고 가는 거 보고 있어.”

“아, 진짜여? 제주도에 배 타고도 갈 수 있어여?”

“막내야. 너는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육지와 섬을 어떻게 오갔다고 생각하는 거니…?”

그 말에 ‘아, 그러넹.’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막내를 보다가 웃었다.

비주가 물었다.

“배 타고 가면 엄청 오래 걸리지 않아요?”

“부산에서부터 열두 시간 걸린대. 저녁 7시에 출발하면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한다고.”

“…그럼 어렵겠네요.”

비주가 나를 보며 웃었다.

“형, 여기 이거 먹어요.”

중현이가 ‘불쌍…’ 하면서 내 입에 영양젤리를 넣어줬다.

리혁이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이제 와서 그걸 검색하면 뭐해요. 여기 공항인데.”

“…….”

“그냥 눈 딱 감고 타요.”

그랬다.

우리는 지금 김포공항에 있었다.

그것도 출국장 게이트를 넘어와서 비행기 탑승 줄에 서 있었다.

줄이 줄어들 때마다 초조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비행기 엔진을 볼 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댄스가 부족한 상황에서 맞이한 첫 월말평가 때보다 더 초조하고 불안하다.

연신 뒤돌아보며 나가는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이제 와서 나갈 수도 없고…….

“그러니까 좀 떨어져 있어, 얘들아. 도망 안 가.”

“혹시 모르는 거잖아요.”

비주가 말했다.

“예방 차원에서 서 있는 거예요.”

“맞아여. 내 노비는 내가 지킨다.”

“…….”

내가 비행기를 앞에 두고 도망치기라도 할까 봐, 무슨 펭귄들이 사람을 둘러싸듯 칭칭 감고 있었다.

“안 가. 도망 안 간다고.”

“그러면 왜 뒷걸음질 쳐요.”

리혁이의 말에 내가 헛기침을 했다.

“마사이 워킹 중 하나야.”

“뻥 치지 말고 얼른 타요.”

“…….”

결국 슬픈 얼굴로 붙들려서 비행기에 탔다.

구불구불한 탑승 통로를 지옥길처럼 걸어가는 내 어깨에 중현이가 손을 얹고는 자상하게 웃었다.

“이번에 비행기 잘 타면 제가 제주도에서 흑돼지 돈까스 사줄게요. 형.”

“중현아.”

내가 진지하게 물었다.

“큰 걸로?”

“큰 걸로요.”

“그래, 가자.”

리혁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몇 살이야. 대체.”

내가 중현이에게 소곤거렸다.

“리혁이는 사주지 마. 중현아.”

“네, 형.”

“쟤는 오징어볶음이나 먹으라고 해.”

주변에서 걸어가던 다른 탑승객이 ‘큽’ 하며 웃음을 터뜨렸는데 나 보고 그런 건 아니겠지.

하긴 돈까스라니.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사람이 무서운 걸 앞두고 있다 보니 조금 유치해지는 느낌이었다.

떨린다.

차원문이 있다면 거기에 내 손을 넣어서 김덕순 여사의 손을 맞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마음이 조금은 평안해졌다.

이번 경연 프로그램 1라운드의 최종 목표는 1위. 그걸 달성하고 ‘덕순아’를 따내는 거다.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으어어.”

……전혀 안 편해졌다.

이륙을 앞두고 시동을 거는 비행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짜 싫다. 비행기.

지난 번 대만 일정 때문에 한 차례 겪어보기는 했지만 다시 타도 새롭게 괴로웠다.

그나마 이번 비행은 짧아서 다행이었다.

“안녕하세요!”

제주국제공항에서 만난 제작진과 인사를 나누었다. 조연출과 작가, 촬영팀으로 구성된 적은 인원이었다.

어느 읍에 있는 노재현 선생님의 자택까지 이동하는 동안 작가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원래 선생님이 서울에서 살고 계셨는데, 최근에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되셔서 제주도로 요양을 오셨대요.”

우리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촬영은 괜찮으신 건가요?”

“네, 선생님께서 직접 허락하셨어요. 대신에 오래 찍지는 못하신다고.”

“아, 네…….”

“오늘 촬영은 짧고 타이트하게 갈 거예요.”

제작진으로부터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듣는 동안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

차량이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지나 어느 마을로 진입할 때쯤에 하늘이 맑게 갰다.

“우와.”

아침 햇살 아래 알록달록한 지붕이 가득했다.

무슨 외국 마을 같다.

오랫동안 현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보다는 외부인들이 와서 별장을 짓고 사는 마을처럼 보였다.

“집들 엄청 좋다.”

“다 별장인가 봐요. 사람 안 사는 곳도 좀 보이고.”

그때 장난기가 동한 우리가 막내에게 속삭였다.

“지호야, 너도 이런 별장 있어?”

“음…….”

고민하던 막내가 말했다.

“강릉에 있는 건 여기랑 비슷한데, 부산에 있는 데는 좀 더 커여. 아니다. 해남 쪽에 있는 거랑 비슷한가?”

“…….”

“엇, 그렇게 바라보지 마여. 많아 보이지만 몇 개 없거든여.”

“자랑은.”

리혁이가 심술궂은 표정을 지을 때, 지호가 말했다.

“아, 맞다. 제가 아빠한테 그런 얘기한 적 있는데. 나중에 시간 나면 형들이랑 별장에서 같이 놀고 싶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우리가 리혁이를 타박했다.

“야, 애가 자랑할 수도 있지. 그걸 못 참아서.”

“그럼 못써. 리혁아.”

“리혁이는 별장 밖에서 자. 모기장은 쳐줄게.”

“……와, 이 인간들 태세 전환 봐.”

누군가 한심해하는 표정을 짓는 동안 차량은 얼마 안 가 마을 구석 커다란 2층 주택에 도착했다.

노재현 선생님 댁이었다.

제작진이 장비를 챙기는 동안 우리는 심호흡을 하면서 몸을 풀었다.

“으, 떨린다.”

“저두여.”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리는 기분이었다.

“촬영 시작할게요.”

ENG 카메라를 짊어진 제작진이 앵글을 잡았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을 걸어갔다.

예쁘게 정돈된 잔디 마당.

그 가운데 자갈길을 지나가 현관 앞에 섰다.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게 눈짓을 보냈다.

딩동.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누구쇼!

엄청 괴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곧바로 가래 끓는 거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튀어나왔다.

-아, 누구냐니까!

그런데 순간적으로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친근감이라고 할까.

괴팍한 목소리인데 긴장된다기보다는 어딘가 정감 있고 익숙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마치 누군가의 목소리를 50년 넘게 숙성시키면 이런 느낌이 될 것 같다고 할까.

“…….”

생각이 그쯤에 미치자 우리가 동시에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회색빛 하늘 아래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얼굴이 우리를 바라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뭐야. 왜 나를 쳐다봐요?”

-뭐야. 왜 대답이 없어!

기묘한 공명을 이루는 목소리에 우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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