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93)화 (19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93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선생님!”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피아노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이의 코에다가 내가 손을 가져다 대었다.

숨은 잘 쉬고 있다.

눈을 감은 채 몸을 떨고 있지만, 기절했다기보다는 아파서 몸을 떠는 것에 가까웠다.

“리혁아. 선생님 머리 좀 받쳐드려.”

“네. 알았어요.”

리혁이가 노재현 선생의 뒷머리를 받쳐주었다. 그제야 휘청이던 머리가 안정적으로 고정됐다.

중현이와 비주가 다가와서 물었다.

“형, 저희는 뭐할까요?”

“일단 아주머니부터 부르자. 우리가 의사도 아니고.”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들어서 이마를 훑으니 식은땀이 축축하게 배어나왔다.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린다.

무섭다기보다는 놀라서.

차에 치일 뻔한 할아버지를 구한 후로 이 정도로 긴박한 상황은 오랜만이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어떡하지? 병원 가야 하나?

우리가 괜히 방송 한다고 찾아와서 이렇게 된 건가?

선생님 큰일 나시면 어떡하지.

동생들 놀랐을 텐데 어떡하지?

그럼 방송은?

이런 와중에도 방송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낄 때.

스탭과 함께 아주머니가 1층에서 올라왔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아주머니가 눈썹이 휘날릴 만큼 빠르게 달려오더니 곧바로 선생님에게 다가가 동공이나 호흡을 살폈다.

우리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괜찮으신 건가요?”

“다행히 큰일은 아니에요.”

아주머니가 중현이와 나를 가리켰다.

“선생님이 지금 이 상태로는 안정을 취할 수 없으니까 침대로 옮기는 것 좀 도와줘요.”

“네, 그럴게요.”

“거기 침실 문 좀 열어줘요! 네! 거기!”

스탭과 우리가 힘을 합쳐 노재현 선생을 휠체어에서 들어올려 침대에 눕혔다.

축 늘어져서 액체가 담긴 봉지를 옮기는 듯한 느낌.

남의 손이 닿자 선생님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아이고오…….”

장정 대여섯이 달려들어 겨우 노인 하나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뉘였다.

모두 땀이 성글성글 맺힌 이마나 구레나룻을 문지를 때.

노재현 선생의 얼굴이 아까보다는 훨씬 편해지면서 떨림이 줄어들었다.

바들바들.

하지만 또 다른 떨림이 느껴졌다.

“……?”

옆을 돌아보니 우리 막내의 핏기 없는 얼굴이 보였다.

어찌나 놀랐는지 자기도 모르게 몸을 파르르 떨고 있다.

살짝 벌어진 입술은 하얗게 질렸고 양손을 청바지를 꽈악 붙잡고 있다.

하기사.

나도 이렇게 놀라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세상 철없이 살아온 우리 막내는 어떨까.

“괜찮아지실 거야.”

나지막하게 속삭이면서 지호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창백한 얼굴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두가 침대 앞에 서 있을 때.

10분이 지났을 무렵 노재현 선생이 질끈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떴다.

“무, 물…….”

아주머니가 선생님의 몸을 받쳐서 일으켜주었고, 리혁이가 종이컵에 물을 담아 건넸다.

“아이고오. 죽겠구먼.”

한참 동안 구부정하게 앉은 채 눈을 끔뻑거리던 노재현 선생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뭣들 이렇게 보고 있어? 창피하게.”

“하하.”

다들 어색하게 웃었지만 얼굴에는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행이었다. 정말로.

리혁이가 물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아, 괜찮아. 괜찮아.”

상대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죽을 병 걸린 거 아니니까 그렇게들 바라보지 말게. 누가 보면 불치병에 걸린 줄 알겠어.”

그러곤 목을 축이며 말했다.

“작년에 큰 수술을 서너 개 가까이 했거든. 몸이 아직도 회복이 덜 됐어.”

“아아…….”

“걱정 말게. 당장 큰일이 나고 그런 건 아니니까.”

아주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안정이 최선이에요. 지금도 봐요.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했어요? 회복이 끝날 때까지 복부에 힘이 들어가는 일은 절대 금물이라고 하셨잖아요.”

“아, 강 여사. 그 흥을 못 이긴 걸 어떡해.”

“흥 즐기다 가실 거예요?”

“가면 또 어떤가.”

“선생님!”

“아이고, 귀청이야. 이 사람이 늙은이 잡네.”

만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니 아까보단 훨씬 나아지신 듯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방금은 노래를 해서 무리한 바람에 일시적으로 벌어진 일인 듯했다.

리혁이가 심호흡을 하며 머리를 쓸어넘길 때, 노재현 선생이 비죽 웃었다.

“아이고, 우리 무알콜 군과 졸개들이 많이 놀랐겠구먼. 미안하네.”

“아니에요, 선생님.”

“내가 흥에 취해서 실수를 했어. 앞으로 조심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

“죄송해요, 저희가…….”

“아. 됐어.”

상대가 손을 휙 젓고는 시선을 피했다.

“흠흠, 그리고 자꾸 그렇게 정든 얼굴로 보지 마. 사람 민망스럽게스리.”

노재현 선생이 말했다.

“늙은이 신경 쓸 시간에 노래 준비나 해. 내가 아까 뭐라고 했나. 내 노래로 나가면?”

“1등이요.”

“그래. 1등을 하고 와야지. 이 노재현이의 노래인데. 못하고 오면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노래만 신경 써.”

분위기를 가볍게 풀어주던 선생님에게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꼭 1등 하고 올게요.”

“안 그래도 개처럼 연습하기로 했는데, 썰매견처럼 달릴게요.”

중현이의 썰매견 드립에 선생님이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그러곤 어쩔 줄 몰라하는 제작진에게 시선을 옮겼다. 특히 안절부절 못하는 조연출에게.

“이보게. 방금 녹화 말일세.”

“네네, 선생님.”

“아까 그 장면을 다시 찍고 싶은데 말이야. 가능하겠나? 내가 쓰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서.”

“당연히 가능합니다. 선생님.”

오히려 그쪽에서 부탁하고 싶었던 이야기인듯 얼굴이 환해졌다.

“자,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가볼까.”

약간 창백해지기는 했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나은 얼굴로 노재현 선생이 다시 휠체어에 올라탔다.

다시 거실로 나온 후.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나는 다시 피아노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다들 프로였다.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진지한 얼굴로 촬영하는 제작진.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환하게 웃으면서 손뼉을 치는 우리 애들.

노재현 선생도 부드러운 미소를 띠면서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노래를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없는 노가수의 처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상대는 곧 회복할 것처럼 말했지만 내가 보았을 때는 그리 빠른 기간 내에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평생을 노래와 함께 살아왔는데 그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처지가 되면 어떤 기분일까.

은근히 생각이 복잡해졌다.

동시에 경연 1위에 대한 갈망이 이전보다 더 강하게 다가왔다.

*   *   *

우리는 제주도에서 촬영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자유시간은 없었다.

원래는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중현이가 노래를 부르다시피 이야기했던 오메기떡도 먹어보고, 회라도 하나 사서 사이다와 함께 먹을 예정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촬영 지연으로 모든 게 지체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알차게 방송 분량도 뽑고 전설적인 가수와도 교분을 나누었으니까.

거기다 나는 따로 건진 게 있었다.

“짠.”

제주공항에서 김덕순이랑 커플티로 입을 목적으로 돌하르방이 엄지척하는 티셔츠를 샀다.

동생들의 반응은 열정적이었다.

“아오 진짜… 꽃무늬를 보내버렸더니 이젠 돌하르방이 왔네. 다른 거 없어요? 그건 안 돼요.”

“형. 저희한테 왜 그러는 거예요.”

“절대 못 입게 할 거예여. 그거.”

꿋꿋하게 입고 김포공항에 내렸는데, 지퍼를 살짝 내려서 돌하르방을 자랑하니 기자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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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천하는 오래 가지 못했다.

서울로 돌아와서 슬픈 얼굴을 한 스타일리스트 쌤과 30분 가까이 개인 면담을 가진 후.

돌하르방 티셔츠는 장롱 속으로 들어갔다.

“자, 다들 다시 한 번 가봅시다!”

회사로 돌아온 우리는 앨범을 준비할 때처럼 <도전, 명곡 발굴단!>의 경연을 위해 맹연습을 시작했다.

진지한 분위기.

‘덕순아’를 얻어내기 위한 개인적인 욕심도 있지만, 이번 노재현 선생님을 뵙고 돌아온 이후로 동기부여가 팍팍 됐다.

-공연날 서울로 올라가겠네.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와서 직접 보러 오신다는데, 그것도 아픈 몸을 이끌고 오신다는데.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할 수 없었다.

중간중간 제작진이 찾아와서 우리가 연습하는 모습을 찍고 갔는데,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여유롭게 웃거나 그러기가 힘들었다.

명곡 발굴단 경연 음원 및 퍼포먼스 준비.

3집 타이틀 관련하여 A&R팀과의 협동 작업.

3집 관련 프로듀싱 회의.

어린이 프로그램 쏙쏙 역사 탐험대 대본 숙지

기타 행사 및 스케줄

앨범 발매를 코앞에 앞두고 있을 때보다 더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힘들거나 그러진 않았다.

분위기가 느껴진다.

파도타기를 하며 부드럽게 상승하듯, 우리가 하고 있는 활동들이 계단을 밟듯 차근차근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한편.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스케줄을 준비하고 있었다.

*   *   *

  

1월 28일.

마지막으로 열린 가요 시상식에서 우리는 또 다시 신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5관왕.

집계기간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던 KMA를 제외하면 참가한 모든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은 셈이었다.

그 때문에 특별히 허락을 받아 수플레들과 라이브 방송을 했다.

1시간 반 정도.

솔직히 소통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전달하기에는 말이야.

내 심장을 꺼낸 다음에 ‘저기… 잠깐 보실래요?’ 이럴 수도 없고.

그래도 나름대로 충분히 보여줬…….

“걱정 마요. 충분히 잘 알았을 테니까.”

리혁이가 비웃었다.

“그렇게 눈물 글썽글썽하면서 ‘여, 여러분…’ 하는데 누가 몰라요. 바보도 고마운 거 알겠다.”

“너도 울었거든?”

“나, 난! 눈물이 없는 사람이에요. 냉혈한이라구요.”

눈이 붕어처럼 부은 녀석을 보며 비웃자, 상대가 변명을 덧붙였다.

“이게 다 겨울철 미세먼지 때문에 그런 거예요.”

“흥.”

“어차피 둘 다 장난 아니었어여.”

빨간 코를 훌쩍이던 막내가 끼어들었다.

“리혁이 형은 10초에 한 번씩 코 풀고. 우주 형은 막 술 취한 사람처럼 횡설수설하면서 ‘수, 숫플레 여러분… 제가 덕순해요…’ 하고.”

“…….”

“…….”

“둘이 너무 부끄러워했지. 우린 아니었는데.”

눈이 촉촉한 중현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나와 리혁이가 해명했다.

“그건 말실수였다고.”

“미세먼지 때문이라니까.”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비주가 손수건으로 촉촉한 눈가를 콕콕 찍으며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팬분들이 이제 팬카페에서 사랑해요 대신에 덕순해요 쓰기로 결정했대요. 형.”

“……그래, 고맙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나를 놀리는 녀석들에게 별달리 개의치 않았다.

남말할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라이브 방송을 하는 동안 다들 눈이 벌게서 대성통곡을 했는데 처음에는 같이 ‘ㅠㅠㅠ’하던 팬들이 뒤에 가서는 ‘ㅋㅋㅋㅋ 그만 울어 얘들아’ 하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진짜 누가 보면 술 취한 사람들인 줄 알았을걸.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행복하다면서 웃다가, 갑자기 고마워요 그러면서 울고.

마치 ‘못난 그룹을 둔 팬에게 미안하다…!’ 하는 분위기가 되어서 중간에는 우리도 그만 웃고 말았다.

그때 코를 킁 풀던 리혁이가 휴지를 고이 접으며 비웃었다.

“하여간, 흑역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병이라도 걸렸나 봐요?”

“중현아.”

“네, 형.”

“끌고 가라. 집중이 안 된다.”

리혁이가 중현이의 손에 질질 끌려가는 동안, 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눈앞의 목표물에 집중했다.

노란 원을 중심으로 빨간색, 파란색 원이 둘러진 과녁.

그것을 바라보며 한쪽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활시위를 퉁겼다.

탁!

곧바로 10점 만점 표적지에 정확히 꽂히는 화살에 비주가 물개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나와 하이파이브를 하던 비주가 말했다.

“형, 너무 너무 잘해요.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 

“비결이 궁금해?”

“네.”

“나중에 리어카 끄는 할아버지 보이면 가서 도와드려.”

“……?”

고개를 갸우뚱하는 비주를 보며 웃어주는 한편, 표적지에 꽂힌 화살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실내 양궁장.

얼마 뒤에 있을 아이돌 운동회, 즉 돌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대표님이 따로 마련해 준 장소였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우리와 원석이 형밖에 없었다.

“그럼 양궁 1선발은 내가 나가는 걸로 하고.”

내가 종이에 ‘남자 양궁 단체 (3인) — 선우주’ 라고 적으며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나머지 둘은 여기서 뽑아보자.”

리혁이가 손을 들었다.

“난 기권이요.”

“이미 엑스자 쳤어.”

“…….”

“자, 중현이부터 해보자.”

돌림픽 남자 양궁 단체전에 나갈 나머지 둘을 선발할 시간.

중현이가 내가 건네주는 활을 받고 섰다. 그러곤 진지한 얼굴로 화살을 걸었다.

“중현아.”

“네, 형.”

“그, 화살촉은 반대편이야.”

“아, 네.”

그제야 화살이 제대로 걸렸다.

동생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가운데 핸디캠으로 찍고 있던 원석이 형이 웃었다.

이윽고 중현이가 자세를 잡았다.

“오오, 그럴싸해. 그럴싸해.”

우리가 손을 모으며 감탄했다.

확실히 운동부 출신이어서 그런지 활을 들고 있는 태가 훌륭했다. 지호가 ‘우아아’ 하면서 말했다.

“사극 주인공 같아여. 형.”

“정말?”

“네, 대사도 해 봐여.”

“흐음.”

이윽고 중현이가 활시위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과녁을 응시하면서.

“나는 조선의 주모다.”

“푸흡.”

화살이고 뭐고 우리 모두 뒤집어져서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꺄하하!”

원석이 형도 촬영을 포기하고 잠시 웃었다.

내가 진짜 미치겠다.

드라마 종류도 틀렸고, 대사도 틀려서 대체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

“미치겠다. 진짜.”

“형, 끄흑, 그 주모가 아니고 국모겠죠.”

“아, 그런가?”

태연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에 우리는 웃을 뿐이었다.

“어디 보자, 중현이는 10점을 쐈네.”

“대단하죠?”

“그래.”

내가 훈훈하게 웃으며 옆 라인의 과녁을 가리켰다.

“옆 과녁에 말이야.”

“……네.”

“중현이는 들어가 있어. 넌 군대 가기 전에도 형이랑 총 쏘는 연습하고 나서 들어가야겠다.”

힘은 좋지만 정확도가 떨어지는 우리 애를 들여보내고 나니 자연스럽게 비주와 지호로 결정됐다.

그 외에 나머지도 라인업이 결정됐다.

“60미터 단거리 달리기 이건 누가 나갈래?”

“그건 리혁이 내보내야 돼요. 형.”

비주가 말했다.

“리혁이가 단거리는 빠르거든요.”

“아, 그건 인정해여.”

“……얘가 잘하는 운동도 있어?”

“사람 바로 앞에 두고 인신모독하지 마요. 불쾌하니까.”

벌게진 얼굴을 무시하고 답을 요구할 때 중현이가 설명해 주었다.

“리혁이가 다른 건 몰라도 도망치는 거 하나는 제일 잘하거든요.”

“오오. 어울려.”

내가 감탄했다.

“진짜 어울리네. 얍삽하고.”

“그져?”

“내가 이 인간들을 정말… 가만 안 둘 거예요. 다들.”

입에서 불을 뿜는 두루미를 비주가 진정시키는 동안 60미터 달리기 명단에 이름을 적었다.

“그럼 단체 400미터 계주도 나가고…….”

“중현이 형이랑 우주 형은 뭐뭐 나간다고 했져?”

“난 농구.”

“난 풋살.”

단체 구기종목이 있었는데 나는 농구에 나가기로 했고, 중현이는 풋살에 나가기로 했다.

다른 아이돌과 한 팀이 되어서 섞이는 종목.

그 종목 부분은 예전에 제작진에게 전달한 터였다.

막내가 종이를 보면서 아쉽다는 듯 말했다.

“승마 그런 거는 없네여.”

“너 말 탈 줄 알아?”

“네, 아빠랑 대관령 놀러 가면 거기 아저씨들이 말 태워주고 그랬거든여.”

안타깝게도 막내의 염원과 달리 그런 종목은 없었다.

빠르게 결정을 내린 후, 양궁장에서 동생들과 화살을 쏘면서 연습을 할 때였다.

지이잉.

핸드폰을 열어 보니 한모 씨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하고 있었다.

어떻게 엔트리를 접하게 된 모양인지, 물음표 가득한 문자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태현 [농구???]

한태현 [님이 농구요???]

한태현 [님이??]

한태현 [공을??]

한태현 [튀겨??]

한태현 [지금 농구가 뭔지 모르는 것 같은데 이거 보셈]

그 뒤에 ‘농구’에 관한 위키백과 링크가 달려 있었다.

“……?”

내가 답문을 보냈다.

나 [뭔 소리야]

나 [헛소리 할 거면 네 베개에다 조용히 속삭여]

곧바로 답이 또 날아왔다.

한태현 [이번에 우리 같은 팀이야]

한태현 [아 망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메시지를 보다가 이내 깨달았다.

아.

그러고 보니 얘는 TJ에서 있었던 때만 기억해서, 지금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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