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94화
26장. 아이돌 운동회
메시지를 보면서 생각했다.
하긴.
재작년 수능 이후로 달라진 내 모습을 특별하게 보여준 적이 없었지.
솔직히 얘 입장에서는 내가 춤을 잘 춘다는 게, 그것도 메인댄서 급으로 춘다는 것도 충격 그 자체일 텐데 운동까지 잘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을 거다.
우리 덕순쓰도 주세한 이후로는 ‘뭐가 어떻게 된 거시여…’ 하면서 날 희한하게 보는 걸.
한태현 [뭐지 진짜]
한태현 [내가 형을 아는데]
한태현 [전설의 여의도공원 사건이 아직도 새록새록..]
잽싸게 답장을 보냈다.
나 [조용히 해]
나 [네티즌인 척하고 네 데뷔전 흑역사 살포할 거야]
한태현 [엇 죄송]
한태현 [(이모티콘)]
토끼가 입에 지퍼를 채우는 이모티콘이 돌아왔다.
연습생 시절 노래가 안 된다며 맨날 소보로빵 먹으면서 울던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춤을 잘 추는 주제에 사람 염장이나 질러댔지.
하지만 상대에게 아무리 흑역사가 있어도 나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전설의 여의도 공원 사건.
TJ 시절 다른 연습생들이랑 봄맞이 사진을 찍으러 여의도공원에 나들이를 간 적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농구를 하게 됐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안 다치셨어요? 이 형이 공이랑 익숙하지가 않아요.
-형, 괜찮아? 바보야? 골대 아래 서 있으면 당연히 얼굴 맞지.
-우주야. …넌 정말 그 얼굴로 태어난 게 축복이다.
……참 별소리 다 들었지.
그럴 만했다.
드리블을 할 때마다 공에 얼굴을 맞고, 공 달라고 손 뻗는데 명치에 맞아서 쓰러졌으니까.
공 잘못 튀겨서 행인들한테 피해를 입혔다가 다른 연습생들이 얼굴로 수습해야 했다.
자꾸 거절하는데도 전화번호를 묻던 이들도 내가 농구하는 모습을 한 번 보더니 정이 식은 얼굴로 사라졌다.
“……형? 왜 그래요? 괜찮아요?”
“괜찮아.”
걱정스럽게 묻는 비주에게 웃어 보였다.
옆에서 발까지 써가며 온힘을 다해 활시위를 잡아당기던 리혁이가 말했다.
“되게 그 표정인데요.”
“무슨 표정?”
“과거의 수치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면서 슬퍼하는 얼굴이요.”
“아…니거든? 난 그런 기억 없어.”
“없을 리가요. 지금도 숨 쉬듯이 흑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뜨아아! 내 손!”
마찰열 때문에 벌게진 손을 든 리혁이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딱 저랬는데.
훈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날선 대꾸가 돌아왔다.
“뭘 그렇게 공감한다는 듯이 쳐다봐요?”
“나도 그랬던 시절이 있어서.”
“뭔 소리예요. 주세한 때도 날아다녔으면서.”
“맞아여. 기만자.”
그러고 보니 주세한이 있었구나.
왜 1은 사라지는데 대답이 없냐는 메시지로 가득한 채팅창에 손가락을 놀렸다.
나 [나 주세한 나온 거 안 봤냐]
생각해 보니 그런 거 볼 시간이 없었을 것 같아서 메시지를 더 보내려고 할 때였다.
한태현 [그거 짜고 친 거 아니었어?]
나 [....]
나 [아예 안 믿고 있었구나 ㅎㅎ]
고개를 들어 내 양궁장 표적지를 바라보았다.
10점 화살이 다섯 개.
탁!
이젠 여섯 개였다.
“으하하!”
방금 옆라인의 중현이가 날린 화살에 우리가 손뼉을 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지호가 나를 불렀다.
“형, 형이 시범 좀 보여 주세여. 보고 배우게.”
“그래.”
중현이에게 활을 건네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상대에게 짧은 답문을 보냈다.
나 [고얀것,,,]
나 [보,,여줄게,,, 달라진 나,,]
바로 답이 날아왔다.
한태현 [님 취하심?]
한태현 [아니]
한태현 [앜ㅋㅋㅋ 맞다 못 취하지 쓰러지니까]
한태현 [선우주 the 알콜고쟈]
뺨을 파르르 떨었다.
어디 미튜브에 ‘꼴 보기 싫은 농구팀원 팀킬하는 법’ 그런 거 없나.
있으면 배워서 확 써먹어버리게.
* * *
2월 1일 새벽.
드디어 아이돌 운동회의 날이 밝았다.
이번 돌림픽 녹화는 이틀에 걸쳐서 진행하는데 오늘은 1일차였다.
“어으으…….”
어두컴컴한 거실 소파에 앉아 쭈꾸미처럼 흐느적거렸다.
3시간 정도 잤을까.
어젯밤 늦게까지 명곡 발굴단 경연을 준비하고 오니 몸이 피곤했다.
내 양옆에서 흐느적거리던 낙지와 문어도 마찬가지였다.
“끄응…….”
“아이고여. 죽겠어여.”
주방에서 비주가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동안, 세 명이 열심히 곡소리를 냈다.
부스럭부스럭.
스포츠용 더플백에 짐을 채워넣던 중현이에게 우리가 따뜻한 응원을 보냈다.
“중현이 형. 좀 조용히 챙길 수 없어요? 자꾸 부스럭거리니까 머리가 울려요.”
“맞아여. 좀 소곤소곤 챙겨 봐여.”
“중현아. 짐은 조용히 싸야지.”
“…….”
시무룩한 곰이 물었다.
“그냥 다들 들어가서 자면 안 돼요?”
“안 돼.”
내가 말했다.
“너 배웅 나가야 돼.”
“괜찮아요. 형. 그냥 들어가서 더 자주세요.”
“안 돼. 안 돼.”
내 어깨에 기댄 막내가 ‘그러면 안 돼 안 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내가 말했다.
“우리 중현이가 풋살 출전을 하러 나가는데 멤버들로서 응원을…….”
주먹을 쥐어 보이다가 어깨가 뻐근했다.
“아이고, 삭신이야. ……그,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응원이요.”
“그래. 응원해야지. 우리 풍뎅이를.”
농구를 비롯해서 우리가 출전하는 다른 종목들은 이틀차인 내일 개막식과 함께 열릴 예정이었다.
풋살만 오늘이었다.
“…….”
그런 우리의 응원에 힘입어 중현이가 짐을 조심스럽게 싸기 시작했다.
부.
스러어어억…….
부스.
러어어어…….
“…….”
내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중현아.”
“네, 형.”
“그냥 원래대로 힘차게 챙기렴.”
“네.”
얼굴이 환해진 중현이가 짐을 힘차게 챙겼다.
그 동안 우리는 따스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중현이 형.”
“응?”
“아령 들고 가서 뭐하게요. 다른 팀이랑 배틀 뜨게요?”
“근력 보충용으로…….”
“빼요.”
나도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중현아.”
“네.”
“그 과자 염분이 좀 높다. 카메라에 얼굴 붓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 빼자. 그 음료도 설탕 너무 만땅이야.”
“……네에.”
막내도 끼어들었다.
“형.”
“응?”
“그 호호치킨 수건 제 거예여.”
“음? 언제부터?”
“처음부터여. 잠깐만, 형 그럼 지금까지 그거 운동용으로 썼어여?”
“어어…….”
그런 식으로 조언을 해주니 중현이가 우리와 등진 채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진짜 밉다…’ 하는 중얼거림이 들린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중현아, 밥 먹어.”
앞치마를 맨 비주의 부름에 우리가 벌떡 일어났다.
“넹! 갈게여!”
“아, 배는 안 고픈데.”
“밥 먹으러 가자, 얘들아!”
다시 한 번 ‘진짜 밉다…’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발랄하게 뛰어갔지만 식탁에는 숟가락이 한 개였다.
“응? 우리 밥은?”
“오늘은 중현이가 주인공이잖아요. 다들 이따 챙겨줄게요.”
우리 모두 처량하게 앉은 가운데 생일상의 주인공처럼 중현이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어째 반찬이 다…….”
장어구이부터 굴전까지.
뭔가 거시기한 라인업에 리혁이가 눈을 깜빡거렸고, 내가 질문을 던졌다.
“비주야, 이거 뭐 보고 차린 거야?”
“아. 유명한 주부님이 운영하는 블로그 있거든요. 거기서 원기 보충하는 음식이라고 봤어요.”
“그, 그렇구나.”
그 원기가 그 원기가 아닌 것 같다만.
중현이가 행복한 얼굴로 ‘맛있어, 맛있어’ 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우리 막내가 눈을 반짝거리며 머리를 기울였다.
“형, 무슨 맛이에여? 이 귀여운 동생도 한 입~”
“으음…….”
중현이가 밥그릇을 감싸며 우리에게 구조요청을 보낼 때, 리혁이가 나섰다.
“야. 왕지호. 벼룩의 간을 내어 먹어라. 중현이 형 먹어야 될 걸 왜 네가 탐을 내냐.”
“저렇게 큰 벼룩이 어디 있어여?”
동생라인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중현이는 거의 청소기 수준으로 음식을 흡입했다.
그렇게 훈훈한 아침을 보낸 후.
다 같이 싸늘한 복도에 나가 배웅을 나갔다.
“그럼, 저 가볼게요.”
엘리베이터에 탄 중현이가 손을 흔들면서 우리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잘 하고 와!”
“다치지 말고!”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비주가 하얀 입김을 뿜으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물가에 애기 내놓는 거 같죠. 저 되게 걱정 돼요.”
“걱정 마. 중현이가 바보도 아니고.”
“괜찮겠죠?”
“잘하고 올 거야. 나 믿……. 근데 저거 왜 올라가냐.”
엘리베이터가 한 층 더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러다가 다시 내려와서 우리 층에서 열렸다.
띵.
위층 사람과 함께 타고 있는 중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
“…….”
양손에 간식거리를 들고 중현이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입안에 음식을 가득 머금은 채 인사했다.
“안녕하새오….”
“…….”
“위아래 버튼 둘 다 누른 거 깜빡했어오….”
“…….”
위층 여자분이 고개를 푹 숙이며 몸을 들썩이는 가운데, 문이 천천히 닫혔다.
“…….”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숫자를 보면서 우리는 진심으로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 * *
고양 실내체육관.
제작진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현장 상황을 체크하고, 카메라를 비롯한 장비가 설치되고.
바깥에서는 자신의 가수를 응원하기 위해 팬들이 추위 속에서 몸을 떨며 기다리고 있을 때.
대기실에서는 한데 모인 아이돌 가수들이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그들 앞에 서 있는 체격 좋은 30대 남자가 말했다.
“반가워요들.”
오늘 풋살에 출전하는 네 팀 중 하나인 ‘꾸러기 축구교실’의 감독을 맡은 강범수였다.
평범한 외모에 단조로운 목소리.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은 존경으로 똘망똘망했다.
2002 월드컵의 주역이었던 인물인 만큼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레전드였으니까.
강 감독이 종이를 들고 말했다.
“내가 제작진 분들한테 들었는데요. 팀 구성이 막판에 어그러졌다. 그래서 엔트리도 아직 제대로 못 짰다. 그렇게 들었는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럼 지금 얼른 포지션을 써내야 하는데…….”
그 말과 함께 팀원들이 저마다 축구 경력이나 잘하는 포지션을 말하기 시작했다.
상대의 체격이나 조건 등을 유심히 관찰할 때였다.
“뉴블랙 중현이에요.”
듣기 좋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미남.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에서도 체격이나 근육 같은 부분이 눈에 띄었다.
강범수가 속으로 감탄했다.
‘이야, 얘는 운동해야 하는 애인데…….’
얼굴만 아니었으면 운동계로 나가야 했을 몸이다.
다이어트를 해서 얄쌍한데도 널찍한 어깨 같은 골격이나 근육이 붙은 모양새가 범상치 않다.
곧바로 자기소개가 끝나고 질문을 했다.
“운동을 좀 했다고?”
“네, 초등학교 때 잠깐 야구부에서 활동했는데… 축구도 중학교 때 많이 하긴 했어요.”
“원하는 포지션 있어?”
“음…….”
그 순간 말이 사라졌다.
강범수는 상대의 표정 위로 일시적이지만 희로애락이 스쳐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뭐지?’
한편, 맞은편에 서 있는 김중현의 머릿속에선 누군가의 자상한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중현아……. 형 눈을 봐.
-잘하는 것도 좋지만 다치고 오지 마. 우리 경연이 더 중요해. 뛰다가 막 넘어지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그래. 아프겠지. 하지만 그걸로 끝날까? 너 다치면 연습도 못하니까 형이랑 앉아서 하루 종일 작업만 해야 될 텐데. 형은 좋지만 너…… 감당할 자신 있니?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김중현은 자신이 판단하기에 가장 안전한 포지션을 입에 올렸다.
“저 골키퍼요.”
“오오……!”
모두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골을 넣으며 임팩트를 알릴 수 있는 스트라이커나 막 뛰면서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는 다른 포지션과 달리 골키퍼는 모두가 기피하고 있던 포지션이었다.
잘하면 좋기는 한데.
문제는 못하면 팀의 구멍으로 낙인찍히고 욕을 먹으니까.
거기다 재미도 없다.
그랬기에 다들 회피하고 있었던 포지션을 누군가 한다고 하자 다들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강범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지원자도 없고 본인이 하겠다고 나섰다.
몸놀림 같은 부분을 잠깐만 봐도 괜찮게 느껴졌기에 그는 곧바로 엔트리에 골키퍼의 이름으로 ‘뉴블랙 중현’이라고 적었다.
‘뭐, 적당히 잘해주겠지.’
무슨 프로 축구도 아니고.
아이돌들이 특집용으로 하는 축구에서 대단한 실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모쪼록 부상이나 실점 없이 적당히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뿐.
그런 생각을 하며 강 감독은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 * *
풋살 경기장이 뜨거운 환호성으로 달아올랐다.
“와아아-!”
자신의 가수가 드리블을 하면서 달릴 때마다, 골을 넣을 때마다 아니면 그냥 머리를 쓸어 넘길 때마다 격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뜨거운 분위기.
총 네 팀으로 진행하는 4강 첫 경기의 승패가 갈린 후, 다음 팀들이 경기를 위해 올라왔다.
“네, 준결승 두 번째 경기입니다!”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 백상중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관전 포인트가 참 많죠?”
“네, 작년 TNT의 선웅 씨가 그 하드캐리에도 불과하고 결승에 진출하지 못하는 일을 겪었죠. 올해는 과연 어떨 것이냐.”
“표정 보세요. 오늘 아주 이를 갈고 나왔네요.”
양옆에 앉은 스포츠 캐스터와 주세한의 멤버 여희연이 호응을 하며 경기에 대한 멘트를 던졌다.
필드에 도열한 선수들.
걸스온탑의 채경이 애교를 부리며 각 감독과 주장들에게 인터뷰를 따는 동안 중계석에선 대화가 오갔다.
백상중이 물었다.
“희연 씨는 축구 선수 출신이죠? 오늘 눈길이 가는 멤버가 있나요?”
“제가 주장이라면 뽑을 만한 친구들이 여럿 있죠. TNT 선웅 씨도 스트라이커로서 결정적인 한 방에 재능이 있고. 와일드 정군 씨도 수비수로서 재능이 뛰어나고요.”
한때 축구 선수로 활동했던 이가 각 팀의 전력을 냉철하게 분석하면서 말했다.
그때 옆에 있던 스포츠 캐스터 물었다.
“아까부터 희연 씨 눈이 어디로 쭉 향하던데.”
“저기는 제가 따로 눈여겨보고 있는 친구여서요.”
“잘생겼네. 어디 보자. …이번에 처음 참가하는 친구라고 했죠? 뉴블랙의 중현.”
스포츠 캐스터가 사진이 첨부된 리스트를 뒤적일 때 백상중이 물었다.
“따로 주목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저 친구를 방송에서 한 차례 본 적이 있는데, 흑염소랑 레슬링을 했거든요.”
“……예?”
“엄청 큰 흑염소랑, 레슬링을 했어요.”
“…….”
“근데 이기더라고요.”
“…….”
“아이돌 중에 제가 본 최고의 피지컬이었어요. 오늘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 되네요.”
두 명이 ‘흑염소?’ ‘레슬링?’ 하면서 벙 찌는 동안, 여희연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필드를 바라보았다.
인터뷰 촬영이 끝나고 포메이션이 갖춰진 필드 위로 주심의 휘슬 소리가 울렸다.
“네, 말씀 드린 순간 경기 시작됐습니다! FC 레알 다디저쓰 대 꾸러기 축구교실!”
“오! 치고 나갑니다! 처음부터 치고 나가요! TNT 선웅!”
“틴스피릿 연후가 막으려고 나서지만 실패했네요. 빠릅니다, 빨라.”
“소울식스 멤버도 수비에 실패하네요! 저건 뭐 폭주기관차가 따로 없어요.”
TNT의 리더 선웅이 무시무시한 드리블을 선보였다.
수비를 나선 꾸러기 축구교실 팀을 가벼운 기교로 농락하면서도 끊임없이 빠르게 달렸다.
마치 용수철을 밟고 튀어오른 것처럼 탄력이 느껴졌다.
“와아아아-!”
중계석의 캐스터들이 호들갑을 떠는 동안, 팬들이 모여 있는 객석에서도 난리가 벌어졌다.
‘오빠!’하는 괴성도 한 차례 울렸다.
하지만 그 모든 열기 속에서도 TNT의 구선웅은 냉철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풋살이니 오프사이드는 없고.’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수비수들이 움직이는 동선과 같은 팀이 어디 있는지 빠르게 훑었다.
‘그냥 간다.’
팀원에게 패스하기에는 각이 안 나왔다.
결국 홀로 드리블을 해서 골대 근처까지 다다랐다. 곧이어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태평한 표정에 어딘가 곰 같은 외모.
‘우주네 팀이었나.’
몸에 걸고 있는 이름표에 ‘뉴블랙 중현’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타앗!
공을 살짝 퉁겨 그를 막아서려던 수비수를 가볍게 제친 선웅이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러곤 붕 떠오른 공을 그 상태로 걷어찼다.
발에 착 감기는 감각과 함께 뻥 차인 공이 탄력 있게 날아간다.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는 그 1초.
선웅은 주먹을 꾹 쥐었다.
‘……된다!’
축구를 하다 보면 그런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모든 게 완벽해서 이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예감.
주변의 팀원들도 벌써 세레머니를 준비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객석에서도 환호성과 걱정 섞인 탄식이 터져 나올 무렵이었다.
‘됐다.’
고개를 돌리며 다른 팀원에게 선웅이 미소를 지으려고 할 때였다.
스스슥.
마치 풍뎅이가 움직이듯이 김중현이 옆으로 스윽 움직였다.
그러곤 불상의 부처님 같은 태평한 얼굴로 손을 슥 들었다.
퍼엉!
장갑을 낀 손바닥에 공이 튕겨나왔다.
엄청 강하게 때린 슈팅이었는데 어째 튕겨나온 축구공이 ‘나 아파’ 하며 호소하는 듯한 느낌.
“……!”
선웅은 폭발적으로 뛰어 들어가 공을 또 한 번 찼다.
‘된다!’
그런데…….
퍼엉!
이번에는 다른 손을 든 이가 태평한 표정으로 손을 슥 올렸다.
‘또?’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수비수와 힘겨운 몸싸움을 한 끝에 겨우 얻어낸 볼로 세 번째 슈팅을 날릴 때.
하지만 이번에도 똑같았다.
퍼엉!
태평한 얼굴과 가볍게 들어 올린 곰발바닥.
아니. 손바닥.
선웅은 상대의 뒤에서 잠시 여래신장을 펼친 부처님을 환각처럼 보는 기분이었다.
“…….”
얼이 빠진 표정을 할 때.
TNT 팬석에서 ‘야, 공 제대로 안 하냐? 왜 안 들어가?’ 하는 탄식을 내뱉고 같은 팀원들이 그를 토닥이는 동안.
“와아아아-!”
상대 팀원들이 골키퍼를 향해 엄지척을 들어 보이는 동안, 키퍼가 몸을 돌려 객석을 향해 눈가에 브이를 해보였다.
“쟤 뭐해?”
적팀에게.
“우우우!”
“……?”
“중현아, 거기 우리 팀 아니야!”
“반대야! 반대!”
“아.”
고개를 갸우뚱하던 이가 그제야 ‘아’ 하면서 드디어 맞는 방향을 찾아 인사했다.
땀을 흘리던 선웅이 눈을 깜빡이고 있을 때.
몸을 돌리던 김중현이 그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네?”
“방금 슈팅이요. 오늘 예감이 좀 불안해서, 엄청 떨고 있었거든요.”
“…….”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는 봐준 게 아니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