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95)화 (19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95화

전반 30초.

시작하자마자 득점할 뻔했던 구선웅의 슈팅이 어느 골키퍼의 미친 듯한 선방에 막힌 이후.

경기가 재개됐다.

“야야야! 거기서 지금 뭐 하는 거야? 들어가! 들어가!”

“막아!”

“패스! 패스!”

관중석에서 팬들이 환호를 보내고, 경기장을 뛰어 다니는 아이돌 멤버들이 고함을 질러댔다.

열띤 분위기.

감독석에 서 있는 강범수도 마찬가지였다.

“막아! 막… 하아…….”

소리를 지르다가 머리를 가만히 쓸어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수비력이 엉망이야.’

이 정도면 거의 빗장을 내린 채 문을 열고 ‘저희 골 좀 넣어 주세요’하는 수준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노력으로 막기에는 상대 팀의 공격이 막강했다.

“야! 야…….”

지금도 수비가 또 뚫렸다.

다행히 유일하게 수비수로서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와일드의 정군이 막아 서면서 위기는 일단락이 났다.

강 감독이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손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이대로면 나가린데.’

초반 30초에 골키퍼가 운 좋게 선방하긴 했지만 키퍼 혼자 활약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골대는 어디까지나 최후의 관문.

그 전에 수비수들이 알아서 패스를 커트하거나 공을 걷어내야 한다.

공격수와 골키퍼의 1대1 싸움이 되면 막는 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이 상식이니까.

상식대로면 그래야 하는데…….

그는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

‘뭐, 뭐야?’

상대팀 스트라이커 구선웅이 다시 한 번 수비진을 농락하고 들어와 슈팅을 날렸다.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슈팅.

뻐엉! 하는 소리.

아군 수비수들도 맞지 않기 위해 피할 만큼 강력한 슛이었다.

그런데 김중현은 태평한 얼굴로 공이 어디에 올 것을 알고 있는 듯 양 손을 슥 들어올릴 뿐이었다.

‘저, 저러다가 손목 나갈 텐데?’

강 감독이 다급하게 외치려고 할 때였다.

촙!

“…….”

그가 눈을 깜빡였다.

‘촙?’

심벌즈를 들고 박수치는 원숭이 인형처럼, 김중현이 양손을 맞닥뜨리자 공이 그 안에 착 안착했다.

“…….”

장내에 있는 관중들, 중계진, 제작진, 그리고 아이돌들이 모두 눈을 깜빡였다.

슛을 쏜 당사자인 구선웅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와아아-!”

곧이어 객석과 같은 팀에서 응원이 쏟아졌지만 상대는 태평한 얼굴로 공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강 감독은 눈을 비볐다.

저 타이밍에 정확하게 어떻게 손을 딱 움직였을까. 봐도 봐도 놀라운 운동 신경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쟤는 운동을 해야 하는 애인데…….’

축구인생 22년차.

강범수는 특집 예능 방송에서 원석을 발견했다.

그 원석이 아이돌이란 게 문제였지만…….

*   *   *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됐다.

초반에 마구 밀렸던 것에 설욕이라도 하듯 꾸러기 축구 교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초점은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다.

퍼엉!

촙!

“…….”

퍼어엉!

촵.

손바닥을 들고 퉁겨 내고 가볍게 잡는다.

가끔은 귀찮다는 듯이 발만 슥 내밀어 공을 퉁겨 낸다.

FC 레알 다디져쓰의 공격수들이 미친 듯이 슈팅을 퍼부었지만 김중현은 단 한 차례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중계석에서 감탄이 나왔다.

“이야, 그야말로 통곡의 벽 그 자체입니다. 뉴블랙의 중현 선수. 정말 실점 하나를 허용 안 합니다.”

“키퍼가 팀을 하드 캐리하고 있어요. 미친 피지컬입니다. 지금 보면 공이 더 아파 보일 지경이에요.”

“상대팀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가네요.”

그 말처럼 레알 다디져쓰의 팀원들은 혼이 나간 얼굴로 무의미한 슈팅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속으로는 욕이 막 튀어나왔다.

‘아니.’

구선웅은 눈물을 삼켰다.

‘왜 안 들어가는 거냐고! 왜! 왜!’

작년 돌림픽 풋살에서 최다득점으로 MVP를 차지했던 그였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태평한 얼굴이 곰발바닥을 들어 올리며 쮸쀼쮸쀼 하고 막을 때마다 그의 눈물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FC 레알 다디져쓰의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콘크리트 벽에 슈팅하는 느낌이야.’

‘아니, 이쯤 되면 예의상 하나 좀 먹어 주라고!’

‘얄리얄리 얄랴셩. 얄라리 있고……. 에헤라.’

시간이 갈수록 미쳐 가는 팀원들이었다.

그렇게 허탈한 표정이 가득해질 무렵, 꾸러기 팀에서 희소식이 터져 나왔다.

“슛! 골! 이야, 드디어 꾸러기 축구 교실이 첫 득점을 합니다!”

“와아아-!”

와일드의 정군이 팀원들과 포옹하며 방방 뛰는 장면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들 모두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우아아-!”

멀뚱멀뚱 ‘?’ 하고 있는 키퍼와 어깨동무를 하며 다 같이 으쌰으쌰를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골키퍼가 엄청난 활약을 해 주고 있기에 수비수를 비롯한 다른 팀원들까지도 마음 놓고 공격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내 태평한 미소를 지으며 같이 우아아 하는 김중현의 모습이 여러 카메라에 담기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진짜 우리 키퍼님이 최고 존엄이시다.”

“끝나고 고기 먹을래요? 내가 고기 사 줄게.”

팀원끼리 으쌰으쌰하는 시간을 가진 후 경기는 꾸러기 축구 교실에게 호의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전광판에 표시된 숫자는 1:0.

그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다급한 공격이 이어졌지만, 골키퍼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으아아아!”

상대팀이 슈팅을 하고 나서 머리를 쥐어짜며 바닥에 괴성을 토해 낼 때마다 꾸러기 축구 교실의 팀원들은 흐뭇했다.

‘역시 게임은 이기는 게 목표가 아니라 상대팀 빡치라고 하는 거지.’

모두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틴스피릿의 연후도 그중 하나였다.

‘개쩐다. 이 형.’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하면 몸을 저렇게 쓸 수 있는 걸까?

탄탄한 체격부터 대수롭지 않은 듯 볼 처리를 하는 모습까지 모든 게 근사해 보였다.

물론 이전에도 뉴블랙이란 팀에 대해 알고 있긴 했다.

신인상을 수상하는 연말 무대에서 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들이 행사에 지각했을 때 땜방을 선 좋은 팀.

하지만 그 뉴블랙이란 팀 안에 저런 캐릭터가 있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신기하다.’

골키퍼 장갑을 벗고 땀을 훔치던 김중현 근처에서 조용히 구경을 했다.

‘뭐 하지?’

골킥을 준비하는 것인지 공을 움켜쥐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연후가 귀를 기울였다.

“……흐음.”

세상 진지한 표정.

“이거 세게 쥐면 터지려나?”

“…….”

“터지면 우주 형한테 혼나겠지?”

“…….”

“안 돼. 안 돼.”

의미를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장갑을 다시 꼈다.

“그래도 이건 해 봐도 되겠지?”

뭘 해 보겠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수비 라인에 서서 상대의 모습을 관찰했다.

이윽고 김중현이 미간을 모았다.

실전을 앞두고 긴장한 프로 선수처럼 진지한 얼굴. 그 밤색 눈동자가 필드에 서 있는 사람들의 위치를 빠르게 스캔했다.

이윽고 호흡을 조절하더니 공을 내려놓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고는, 순식간에 달려와 공을 찼다.

뻐어엉!

연후는 화들짝 놀라 몸을 피했다.

“으아 이씨!”

눈앞을 총알처럼 스쳐간 공이 날아갔다.

‘아니, 무슨 미사일 쏘냐고…….’

혼자만 다른 장르에서 살고 있는 캐릭터처럼 공을 쏘아낸 김중현이 손을 이마에 올려 그늘을 만들었다.

그러곤 공의 궤적을 살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목을 쑥 빼고는 그 각을 바라보았다.

‘저거 설마…….’

모두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갈 때.

촤악.

FC 레알 다디져쓰의 골키퍼인 데이드림의 앤드루가 허둥지둥 뻗은 손 사이로 공이 들어갔다.

“…….”

중계석에서도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이 순간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흐뭇하게 콧잔등을 슥 비비는 인물.

“오, 진짜 되네.”

“…….”

근처에 서 있던 연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만 해도 저절로 사춘기가 치료되는 듯한 골킥이었다.

‘저 형한테는 깝치지 말아야지.’

그런 사이 객석에서는 침묵이 끝났다.

“와아아-!”

“골입니다! 골!”

“강 감독님 얼굴 보세요. 눈물 흘리시는 거 같아요.”

골킥을 넣고 흡족스럽게 콧잔등을 비비는 누군가의 얼굴이 전광판에 클로즈업 되어 나타났다.

2015 설 특집 돌림픽에서 풋살 역대급 명장면으로 꼽히게 된 장면이었다.

*   *   *

하루 종일 불안하다.

진짜 애를 물가에 내어놓은 것처럼 불안해서 연습실에서든, 식당에서든 핸드폰만 꼭 쥐었다.

현장 상황이 어떤지, 따라갔던 민기 형에게 중계 좀 해 달라고 부탁을 한 터였는데 연락이 없었다.

민기 형 [고양 체육관 도착]

민기 형 [이따 문자할게]

내가 한숨을 쉬었다.

“왜 이렇게 불안하냐.”

“그러니까요. 형. 얘 무슨 사고 치고 오는 건 아닐지 걱정이에요.”

“중현이 형이 사고 칠 게 뭐가 있어여?”

막내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우리가 번갈아가면서 답했다.

“상대팀이랑 몸통 박치기 했다가 날려 보내면 어떡하냐. TNT 선웅이 형도 나온다는데 그 형 날려 보내는 순간 우리 중현이 백만 안티 각이야.”

“스치기만 해도 전치 4주 나올걸요.”

“중현이는 온몸이 흉기야. 지호야.”

물론 가서 부상 당하고 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하겠지만, 그건 일반적인 경우고.

우리 애가 밖에 나가서 누굴 때리고 오면 때리고 왔지 맞고 올 애가 아니라서 문제다.

아니.

맞아도 때린 사람이 병원에 실려 갈걸.

“……음, 글킨 하네여.”

지호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방송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다들 걱정스럽게 누군가 뭔 짓을 하는 건 아닐지 안부를 살필 때.

지이잉.

갑자기 문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민기 형 [중현이가 슛 막음]

민기 형 [막았다]

민기 형 [저걸 막네]

민기 형 [또]

민기 형 [와 저걸 막았어 저걸]

텀을 두고 도착하는 문자지만 우리가 모두 눈을 멀뚱멀뚱 떴다.

처음에는 풋살 경기의 가벼운 중계인 줄 알았는데 점점 이상한 내용이 도착하고 있었다.

민기 형 [골킥으로 골 넣었다]

민기 형 [상대팀 멘붕]

민기 형 [2대0으로 첫 경기 이겼다.]

그리고 그게 그날 이상한 문자의 시작이었다.

민기 형 [결승 1대0으로 이겼다]

민기 형 [감독님 중현이 손 붙잡고 우는 중]

민기 형 [축구계에 필요한 인재였는데 너무 늦게 발견했대]

민기 형 [오]

민기 형 [중현이 MVP 상 받았다]

민기 형 [틴스피릿 애가 공에 사인 받아갔어]

우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얘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하루 종일 그런 영문 모를 문자에 우리는 호기심을 불태우는 한편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저녁 무렵.

회사 근처 백반집에서 밥을 먹을 때, 우리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원석이 형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너희가 우리 기분을 알겠구나.”

“네?”

“우리도 똑같거든. 대만에서도 그렇고, 현장에서 무슨 일 있는지 문자가 오는데 늘 뭐가 터져 있어서.”

“…….”

“익숙한 일이지.”

왠지 모르게 우리에게 공감한다는 듯 표정을 짓는 매니저의 모습에 우리가 항변했다.

“그렇지만 이건 중현이잖아요. 저희는 이상한 거 안 하고 다닌다고요.”

“…….”

“형, 왜 대답을 안 해 주세요?”

“우와, 칼국수 칼칼하네.”

그 말에는 왠지 모르게 대답을 회피하며 칼국수를 흡입하는 우리 매니저님이었다.

억울하다.

누가 보면 꼭 우리도 이상한 짓 하고 돌아올 사람처럼 보이잖아.

*   *   *

다음 날.

우리는 오전 6시에 고양 실내 체육관에 도착했다.

샵에 들러 메이크업까지 마쳐야 했던 탓에 실제로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서너 시간 남짓.

비몽사몽한 상태로 대기실에 도착했다.

소파에 앉아 웅크리면서 말했다.

“울 수플레들 춥겠다.”

“날씨 너무 춥던데.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건 너무 아닌 거 같지 않아요?”

“으이, 마음에 안 들어.”

차를 타고 오면서 길게 늘어선 줄들을 보았다.

어둡기도 하고, 빠르게 지나가서 어느 그룹의 팬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초등학생 때였나.

추운 겨울날 우리 김덕순 여사가 새벽부터 장사하러 나갈 때, 전기 장판 속에서 웅크린 채 배웅할 때 느꼈던 그런 미안한 느낌.

내가 뭐라고 새벽부터 이렇게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위에 얼어붙은 코를 훌쩍이면서 미니 손난로를 흔들었다.

이따 엄청 잘해 줘야지.

오늘 온 것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잘해 줘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제작진의 호출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문이 달칵 열렸다.

“누구… 어?”

문이 열리고 들어온 인물의 모습에 우리 모두 허둥지둥 일어났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매니저들도 마찬가지였다.

낡은 코트를 입고 머리에서 풀풀 김을 뿜어내는 인물.

“대표님?”

“잘들 있었어?”

사람 좋은 인상을 한 대머리 남자, 우리 박규호 대표님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석환 형을 비롯한 매니저들이 양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을 때, 우리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은 어떻게 오셨어요?”

“아, 나도 참석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말야. 이따 개막식이랑 경기 몇 개 보고 갈 거야.”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오늘 돌림픽 개막식을 할 때, 각 기획사 대표님들이 참관한다는 모양이었다.

……은근 부담되네.

아무리 친근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해도, 대표님쯤 되는 직위의 사람이 근처에 있다는 건 부담이 됐다.

마치 사단장이 아무리 ‘우주야 우리 칭구칭긔’ 해도 사단장은 사단장인 것과 같다고 할까.

거기다가 오늘따라 대표님 분위기가 조금 특이하다.

“그래서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니, 우주야?”

“아, 네.”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

“아니, 종목 준비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궁금해서…….”

우리 대표님은 굵직한 건에 관심을 가지지, 사소한 디테일에는 별로 관심이 적으신 분이다.

그런데 되게 초조한 사람처럼 우리에게 준비 사항을 묻고 있었다.

내가 대답했다.

“대표님께서 빌려주신 양궁장에서 준비 열심히 했고요. 리혁이도 아침부터 계속 도둑한테 쫓기는 걸로 마인드 트레이닝하는 중이에요. 저는 농구 영상 보고 있고요.”

“그렇구나. 으음…….”

박 대표님이 물었다.

“오늘 잘할 자신… 아니아니, 부상을 안 입는 게 중요하지. 그래. 일단 몸이 더 중요하고 말고.”

“네. 대표님.”

“몸이 최우선이야. 암. 그렇지.”

“아.”

그 순간 머릿속으로 퍼뜩 뭔가 스쳤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댓글 중 하나.

-규호랑 현식이 또 싸우냐

그제야 우리 회사랑 DNS 미디어의 라이벌 싸움이 생각났다.

요즘 스트릿 보이즈랑 워낙 친하게 지내고 있어서 깜빡하고 있었던 관계라고 할까.

우리 대표님이랑 저쪽 대표님이랑 희대의 원수지간이라고 했지.

오늘 참관식에서 두 분이서 맞부닥칠 일을 생각하니 절로 그 분위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우리에게 다치지 말라고 하는 대표님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꼭 잘할게요.”

“그래.”

대표님이 웃으면서 우리 어깨를 한 번씩 토닥인 채 대기실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근데여, 대표님.”

“응?”

“저희가 오늘 엄청 잘하면 뭐 해 주실 거예여? 막 저희가 DNS도 이기구. 트로피도 따오고 막 그러면.”

우리 막내의 재롱 부리듯이 하는 발언에 대표님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는 듯 그가 말했다.

“당연히 뭐든 해 줄 수 있지.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이름 걸고 다 들어준다. 정말.”

“저희 그럼 맛난 밥…….”

“밥이야 당연한 거고. 그런 걸로 되나.”

대표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듣자 하니 우주가 필요한 작곡 장비가 있다면서? A&R팀장한테 뭐 장비 관련해서 말 들은 거 같은데.”

“어, 네. 맞아요.”

“그거 사 주지. 뭐.”

“오오…….”

통 크게 웃는 대표님의 모습에 감격했다.

조규환 이사님의 집에 다녀온 이후로 작곡 장비에 대해 업그레이드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렇게 말씀해 주실 줄이야.

그런데…….

얼마짜리 장비인지 모르시는 것 같은데.

확실하다.

장비 가격을 알면 저렇게 흔쾌히 말씀하실 수가 없지.

뭐든 다 사 준다면서 하핫핫 웃는 대표님의 모습에 석환 형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려고 할 때였다.

“그…….”

“스읍.”

내가 우리 실장님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곤 고객을 모시듯 화사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표님.”

“응?”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는 모습에 대표님이 다시 한 번 핫핫핫 웃었다.

*   *   *

“오늘 꼭 트로피 딴다.”

“언제는 다치지 말자면서요.”

“안 다치고 딴다.”

“저저, 표정 봤어여? 완전 의욕 만땅이에요. 우주 형.”

굳은 결의로 가득한 내 모습에 동생들이 슬금슬금 멀어졌다.

“어딜 가.”

리혁이를 탁 붙잡고 목을 휘감았다.

“놔요. 이거.”

“60미터.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달리는 거야. 리혁아.”

“으아아아. 진짜 극혐이야.”

“이길 수만 있으면 극혐이 돼도 좋아.”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리혁이를 응원해 주는 가운데, 우리는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여기저기 대기실에서 나오는 이들과 마주쳤다.

“어머,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경기장으로 가는 길에 나섰다.

그때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다.

“어? 틴스피릿 선배님들이에여.”

지호의 소곤거림에 우리가 시선을 돌렸다. 근처에 틴스피릿이 위풍당당하게 ‘존나’ 하는 분위기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다들 인사를 하는 가운데 우리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네.”

평소처럼 인사를 받아 줄 때였다.

다른 멤버들이 우리를 스쳐갈 때, 그중에 멤버 연후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중현이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

우리가 눈을 깜빡이는 가운데 상대가 말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행님.”

“…….”

“이따 봬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가는 이의 모습에 우리가 눈을 깜빡거리며 중현이를 돌아보았다.

“……?”

뭐지.

방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