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96화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해명해여. 형.”
우리가 눈을 게슴츠레 뜨자, 중현이가 별일 아니라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어제 풋살 같은 팀이었어요. 경기 끝나고 형이라고 불러도 되냐고 물어보던데요.”
“갑자기?”
“네. 갑자기요.”
동생들과 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쯤 되면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본인 말로는 그냥 골키퍼를 하다 왔다는데 어째 범상치가 않았다.
우리보다 선배 그룹인 와일드의 정군이 다가와 중현이의 어깨를 툭 쳤다.
“어제 잘 들어갔어?”
“네. 안녕하세요.”
“어제 덕분에 진짜 재미 있었다, 야.”
그걸 시작으로 어제 같은 팀이었다는 이들이 우리 애한테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허어…….”
중현이를 보고 기겁하는 이들도 있었다.
TNT의 리더 구선웅은 무슨 괴물이라도 마주친 사람처럼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멀어졌다.
왜 저러지. 저 형.
대체 골키퍼를 어떻게 해야 이런 격한 반응들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할 때였다.
“오빠들, 하이.”
발랄한 목소리에 두리번거리다가 고개를 내려보았다.
까만 체육복을 입은 올망졸망한 찹쌀떡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데이지였다.
“어, 안녕.”
내가 웃으며 인사했다. 그러곤 뒤에 서 있는 다른 스칼렛 멤버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라가 웃으며 농담하듯이 말했다.
“뭐야, 왜 나윤이한테만 반말 써요.”
“써 드릴까요?”
“아뇨. 그건 어색하잖아요…….”
나에게 낯을 가리는 이들을 보며 웃었다.
스칼렛.
먼저 데뷔한 소속사의 선배 걸그룹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흑색에 하얀 줄 세 개가 그려져 있는 저지를 입고 있었다.
이른바 L팀 유니폼.
총 이백여 명이 넘게 참가하는 이번 돌림픽의 팀은 소속사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예컨대 TJ 엔터라면 T팀. DNS 미디어라면 D팀 하는 식이었다.
같은 소속사 그룹들을 모아 놓다 보니 여기저기서 살가운 대화가 오갔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리더인 아라가 입에 손을 올렸다.
“대박. 대표님이 너희한테도 왔다 갔어? 뭐라고 하셨는데?”
“별 말 안 하셨어요. 몸 조심하라고 그러고. 이기면 작곡 장비 사 주신다고 그러던데.”
“와. 차별하는 거 봐.”
다른 멤버, 봄이 아라를 불렀다.
“언니. 대표님이 우리한테는 고기만 사 준다고 그랬잖아.”
“그니까. 너무한다.”
다른 멤버들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때, 지호가 물었다.
“근데 누나들 작년에 꽃등심 25인분 먹지 않았어여?”
“…….”
“고기집 사장님이 그러는데 넷이서 무슨 씨름부처럼 먹었다고 했어여.”
중현이가 내적 친근감 가득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나는 슬그머니 웃음을 참았다.
스칼렛 멤버들이 헛기침을 했다.
“아니, 그거는…….”
“솔직히 그날 배 엄청 고팠단 말야. 비싼 데라고 1인분은 막 코딱지처럼 나오고.”
“생각하니까 화 난다.”
“야. 걸그룹은 고기 먹으면 안 돼?”
“왜 저한테 그래여.”
심술궂게 구박하는 누나들을 피해서 울상이 된 지호가 내 뒤로 숨었다.
그 모습에 우리 모두 웃었다.
한군데 모여서서 대기하는 동안 이런저런 가벼운 수다를 떨었다.
“자자, 그럼 다 같이 화이팅 갑시다.”
최연장자인 아라가 길쭉한 팔을 쭉 내밀었다. 손을 가볍게 모으고는 짧게 ‘화이팅’하며 외쳤다.
“L팀 입장할게요!”
인터컴을 낀 스탭의 부름에 우리 모두 몸을 풀었다.
아라가 대표로 깃발을 들고 스칼렛 멤버들과 앞서 가는 동안 우리는 뒤에서 걸었다.
어둑어둑한 복도를 지나.
“와아아-!”
환한 빛과 함께 함성이 들렸다.
빛에 눈을 적응시키는 한편 널찍한 고양 실내 체육관을 둘러보았다.
수플레.
우리 수플레 어디 있냐.
눈을 빠르게 스캔하다가 비주가 내 손등을 톡톡 치며 한 방향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멀리 떨어진 좌석 3층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우아아!”
우리가 손을 막 흔들면서 인사하자, 수플레들도 파도타기를 하듯이 인사를 해 줬다.
아 좋다.
새벽 3시부터 일어나서 비몽사몽인 상태였는데 우리 수플레를 보니 힐링하는 기분이었다.
0.8 김덕순 정도라고 할까.
그렇게 행복하게 손을 흔들 때였다.
“……?”
“뭐야. 저거.”
환하게 웃으며 입장하던 우리는 수플레들이 모인 곳에 위치한 현수막을 보고 눈을 멀뚱멀뚱 떴다.
-너희가 우리의 금메달이야!
…라는 감동적인 문구.
검은 바탕에 금메달이 다섯 개 그려져 있었는데, 문제는 메달마다 그 안에 우리 얼굴이 합성되어 있었다.
금색에 얼굴만 합성해서 그런 걸까.
머리카락이 없어서 무슨 스님들 같다.
마치 다섯 명의 황금 궁예 같다고 할까.
우리가 벙찐 얼굴을 하자 수플레들이 너무 행복한 얼굴로 자기들끼리 꺄르륵 웃었다.
“…….”
대체 언제부터 이런 분위기가 된 걸까.
친근해서 좋기는 한데…….
따뜻하고 선량했던 수플레들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리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 * *
쉬익! 탁!
날렵하게 날아간 화살이 과녁의 8점짜리에 찍혔다.
“우와아! 저 8점 쐈어여!”
“지호야.”
“넹?”
“몸쪽에 오는 화살 깃 색깔이 틀렸잖아. 색깔 다른 부분이 오게 해야지.”
“……넹.”
우리 막내가 서러운 표정을 짓더니 항변했다.
“그렇게 야박하게 지적부터 할 건 없잖아여. 얼마든지 칭찬 먼저 해 주고 나서 할 수 있는 건데.”
“오구구, 우리 막내 잘했다.”
“으히히, 그져?”
“그러니까 자세 틀린 부분 교정하자.”
“…….”
시무룩한 막내의 팔을 뒤에서 붙잡아 주며 코칭을 해 주었다.
옆자리에서는 비주가 활 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쉬이익! 탁.
9점짜리 노란 과녁에 꽂힌 화살. 비주가 환한 미소를 짓더니 내게 고개를 홱 돌렸다.
“형, 봤어요? 저 지금 9점 맞혔어요.”
“장하다, 우리 둘째.”
막내의 자세를 교정해 주는 동시에, 뛸 듯이 기뻐하는 둘째와 하이파이브를 해 주었다.
어째 코칭해 주는 것보다 애기들 칭찬해 주는데 손이 더 갔다.
이곳은 체육관 내부 연습실.
미리 몸을 풀 수 있도록 과녁을 준비해 둔 복도였다.
리혁이와 중현이가 현장에서 같은 L조인 스칼렛을 응원하는 동안, 나는 동생들의 자세를 봐주고 있었다.
-와아아!
어렴풋한 고함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밖에선 걸그룹 양궁 예선이 진행 중이었다.
우리는 예선 1조이기 때문에 여자 부문이 끝나자마자 바로 경기에 나가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첫 예선 상대는 바로…….
“하, 여기 숨어 있었구만.”
어디선가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한태현과 무리들이 보였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야, 그런 삼류 악역 같은 대사 하면서 나타나지 말라고.”
“삼류 악역이라니.”
상대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 말 섭섭하게 하시네. 누가 봐도 꽃미남 최종 보스 같은 느낌 아님?”
“잡몹 같은데.”
“……진짜 내가 언젠가 인터넷에다 형 인성 후기 올릴 거야. 백만 안티 각오해.”
인터넷할 시간도 없을 것 같은데.
투덜거리던 녀석이 이내 웃으며 다가왔다.
화살통을 다리춤에 매고 있는 TNT 3인조에게 우리 애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태현이가 손을 저었다.
“인사하지 마요. 우주 형 친구들인데 뭐하러.”
“저희 친구 아니고 똘마니라서 그래여.”
우리 막내의 서글픈 어조에 상대방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지호를 코칭해 주는 내 모습을 보더니 은근하게 물었다.
“우주 형이 엄청 못되게 굴죠?”
“장난 아니에여. 잔소리 엄청 하고, 뭐 하나 마음에 안 들면 될 때까지 눈 부릅뜨고 쳐다보고.”
“그 맘 알죠. 잘 알지.”
TNT의 동생 라인인 석지훈과 지한빈도 한 마디씩 했다.
“겁나 피곤한 형이지.”
“월말 평가할 때마다 나 과로사하는 줄 알았잖아. 내가 그때부터 보험 드는 걸 진지하게 생각했어.”
“훠이훠이.”
내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비주야, 지호야. 저런 악한 것들의 말은 듣지…….”
“진짜여? 어땠는데여?”
“저 우주 형 과거사에 되게 관심 많아요.”
너네 왜 눈에서 빛이 나오냐.
“궁금해요? 이리 와요. 다 알려 줄게.”
“진짜 우리 서러운 거 많았어요.”
“…….”
의기투합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빈정이 상한다.
자식 키워 봐야 소용 없다더니.
구 자식과 신 자식들이 합세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뺨이 파르르 떨렸다.
태현이한테 말했다.
“야, 영업 방해하지 말고 얼른 니네 애들 데려가.”
“우리도 연습하러 왔는걸.”
“저기 따로 있잖아. 넓고 큰 데.”
“채광이 별로야.”
“그럼 우리가 저기 쓸게.”
“아. 그냥 심심해서 놀러 온 거야. 거 눈치도 빠른 사람이 적당히 장단 좀 맞춰 주고 그러지.”
“그래, 그래.”
투덜거리는 녀석에게 대강 대꾸를 해 주다가 이내 나도 활을 잡고 자세를 잡는 연습을 했다.
상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레? 자세 좀 나오네.”
“연습 좀 했어.”
“크. 달라지셨네.”
감개무량하다는 듯 손뼉을 치던 상대가 말했다.
“달라지셨어. 우리 선우주 씨가 농구에도 나오고 양궁도 하고. 격세지감이야.”
“고맙다. 아주.”
내가 웃으면서 화살을 걸고 활 시위를 잡아당겼다. 상대가 내 자세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자세가 좋네?”
“연습했으니까.”
“아니, 형이 연습으로 되는 몸이 아니잖아?”
“…….”
“사실 아님?”
“진짜. 내가 인복이 없어도 이렇게 없구나.”
주변에 이런 사람들 밖에 없다니.
서글픈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야, 한태.”
우리 애들과 대화를 나누던 지한빈이 말했다.
“우주 형이 활을 잘 쏜다는데?”
“뭐?”
“잘 쏜대.”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우 씨에 이름이 주형인 사람이 아니고?”
“멍청아. 진짜 우주 형.”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당사자의 얼굴에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마치 해명하라는 듯 바라보는 이들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곤 붙잡고 있던 활시위를 놓았다.
쉬익! 탁.
“…….”
10점에 정확히 안착하는 화살을 보여 주며 내가 은근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봤냐. 달라진 나의…….
세 명이 동시에 내게 다가왔다.
“그 활 봐봐. 메이커 어디야?”
“괜히 21세기가 아니네. 과학의 시대야.”
“어디 연구소에서 출시한 그런 거 아냐?”
이것들이 진짜.
내가 어이없어 하는 모습에 비주와 지호가 손뼉을 치면서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 * *
-네, 남자 양궁 예선 1조. TNT 대 뉴블랙입니다.
아나운서 정효진의 목소리와 함께 해설 위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TNT는 작년에 결승까지 올라왔던 강팀이죠. 한태현, 지한빈, 석지훈. 개인적으로 한태현 선수가 작년에 보여주었던 모습이 인상 깊어서 올해도 기대가 돼요.
해설자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중계 카메라는 현장에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양쪽 세 좌석에 앉아 있는 이들.
왼편에는 느긋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한 표정을 짓는 TNT 3인조, 오른편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신인 뉴블랙이 있다.
-네, 그럼 TNT의 한태현 선수부터 나가겠습니다.
초록 머리를 한 TNT의 인기 멤버가 일어나자마자 격한 환호성이 쏟아졌다.
익숙하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던 이가 활을 들었다.
뺨에 활시위를 가져다 대며 한쪽 눈을 서서히 감는 모습에 혼자 ‘꺄약!’ 하던 팬이 본인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잠시 현장에 웃음이 감돌 때.
차분한 침묵.
쉬이익! 탁.
활시위를 놓을 때마다 과녁에 8점, 8점, 9점이 차례대로 찍혀 나왔다.
실제 대회보다 훨씬 짧은 20미터에 바람 걱정 없는 실내라는 이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아마추어로선 준수한 성적이었다.
‘내가 봐도 잘했어.’
한태현이 뿌듯한 얼굴로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러곤 옆자리에서 차분하게 앉아 있는 선우주를 바라보았다.
‘어디 한 번 해 보셔.’
아까부터 자기 활 잘 쏜다며 자랑하던 이를 바라보면서 그가 비죽 웃음을 머금었다.
‘못한다니까. 저 형.’
TJ에서 몇 년 넘게 보아왔다.
전설의 여의도 공원 사건부터 시작해서, 몸으로 하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선우주는 그야말로 악몽 수준이었다.
‘춤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갑자기 그와 맞먹을 만큼 춤신이 되어 나타난 상대의 모습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춤이었다.
다른 부분이 크게 달라졌을 리가 없었다.
어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갑자기 초능력이라도 생긴 게 아닌 이상은 말이야.
-네, 우주 선수. 자리… 와. 장내가 술렁이네요.
선우주가 활을 들고 선 모습이 전광판에 잡히자마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자기 아이돌이 아니면 관심조차 안 가는 게 아이돌 팬이라지만, 그 비주얼이 몹시 빼어나다면 경우가 달랐다.
어느 신인 아이돌 멤버의 비주얼에 장내가 술렁였다.
-아까 여자 예선 때 걸스온탑 주하나 선수나 스칼렛의 리나 선수가 나올 때 그러더니. 지금은 우주 선수네요.
현장 카메라에 ‘우주야 니가 이 나라의 보배요 젠민이다’하는 플래카드를 든 수플레가 잡혔다.
“…….”
우주가 헛기침을 하며 활을 잡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사르르 내려오면서 한 쪽 눈이 살포시 감기는 모습에 정적이 감돌았다.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춘 관객들.
우주가 그림 같은 자세로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
중계석에 앉아 있는 양궁 금메달리스트 출신 해설 위원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세가 엄청 안정적인데?’
어디 양궁부라도 하고 온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주가 활시위를 가볍게 놓았다.
쉬이익! 탁!
“와아아-!”
화살이 꽂히자마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그와 동시에 TNT 3인조가 입을 떡 벌린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뉴블랙의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10점! 10점입니다!
-카메라 렌즈를 박살 냈네요!
정확히 10점 과녁 정중앙을 맞춘 화살이었다.
수플레들이 비명을 터뜨렸고, 응원을 하는 뉴블랙의 중현이 ‘풍악을 울려라~’ 하는 플래카드를 휘둘렀고, 리혁은 그 옆에서 벌건 귀를 자랑하며 얼굴을 감쌌다.
하지만 그런 소란에도 뉴블랙의 우주는 평정심을 유지한 얼굴로 다시 화살을 재장전할 뿐이었다.
이제 남은 건 두 발.
현장의 열기가 사그라들 무렵 우주가 다시 한 번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쉬이익, 탁!
잠시 장내에 정적이 감돌았다가 환호가 터져 나왔다.
-10점!
-또? 또 10점이네요!
그리고 나머지 한 발.
-……10점이 또 나왔네요.
-아이돌 운동회 첫 출연부터 텐텐텐이라니, 지금 대표님 얼굴에 웃음꽃이 피셨어요!
행복한 얼굴로 ‘스칼렛, 뉴블랙 애정한다♥’ 하는 문구가 적힌 핸드폰을 들고 있는 중년인이 화면에 잡혔다.
그동안 우주는 세 번째 10점을 맞춘 후 양손을 들어올려 본인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마치 ‘이거 실화냐’ 하는 듯한 얼굴.
손을 가리지 않았다면 관중들이 ‘어머나, 세상에’ 하는 우주의 입 모양을 보았을 것이다.
“우와아. 이게 되네.”
혼자 감탄하던 우주가 팬들에게 손 하트를 보내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내 자리로 돌아오면서 멤버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러곤 지금까지 벙찐 얼굴을 하고 있는 TNT의 3인방에게 코를 찡긋하는 미소를 보냈다.
‘어때?’ 하는 듯한 표정.
“…….”
한태현을 비롯한 세 명의 TNT 멤버들은 뒤죽박죽인 머릿속에서 한참 동안 헤매는 중이었다.
‘뭐야, 누구야. 저건?’
마치 선우주의 껍질을 뒤집어쓴 외계인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리가 하나도 안 되는 상황.
특히 한태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저 형한테 몸 쓰는 걸로 질 리가 없는데?’
불의의 일격을 당한 듯한 느낌이었다.
“…….”
그 때문이었을까.
선우주의 텐텐텐 이후로 TNT의 멤버들이 활시위를 잡아당길 때마다 손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6점. 손이 미끄러졌네요.
-확실히 방금의 충격이 컸어요.
-이대로면 뉴블랙이 무난하게 승리를 가져가나요?
아직 초반이었지만 벌써부터 경기장 내 승리의 흐름은 확연하게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 * *
같은 시각.
중계석에 앉아 있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해설위원 양희선은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
아나운서 정효진이 마이크를 내려놓고 물었다.
“왜 그러세요, 해설 위원님?”
“뭔가 이상한데. 저 우주 씨 말이에요.”
“어느 부분이요?”
“으음, 그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활을 잡는 자세라든가 이런저런 모습이 도저히 아마추어로서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프로 같다고 할까.
지금처럼 실내에서 단거리에 쏘는 연습이 아니라 마치 바람의 방향까지 고려하는, 그런 실전을 거치고 온 프로 같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인데…….’
처음에는 뜨기 시작한 신인 아이돌이라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자세도 익숙하고, 어디서 많이 본…… 아?’
이내 생각을 떠올리던 양희선이 탄성을 질렀다.
방금 활을 쏘고 나서 선우주가 어딘가 살짝 느끼한 미소를 0.1초 정도 짓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선배님?”
모르는 아이돌의 자세와 표정에서 어딘가 모르게 전설적인 선배 양궁 선수의 향취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