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98)화 (19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98화

하루살이라니.

내가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리혁이가 터덜터덜 걸어왔다.

“뭘 또 그렇게 웃어요?”

“아무것도 아냐.”

내가 하이파이브를 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잘했어. 우리 하이파이브 할까?”

“싫어요.”

“그럼 우리끼리 하자. 얘들아.”

“예이!”

나머지 넷이서 손뼉을 마주치고 웃으니 리혁이가 입을 비죽이면서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남자 예선 3조 경기가 진행됐다.

다 같이 구경을 하면서 다른 아이돌들의 달리기에 감탄하고 있자니 헛기침이 들렸다.

“으흐흠.”

우리가 무시하며 와아아 했다.

“으흐흐흠!”

여전히 무시하며 보았다.

“이야, 다들 엄청 잘 달리네.”

“그러니까여. 이 악물고 달리는 게 막 보이는 거 같아여. 어떻게든 내가 1등을 하겠다 이런 느낌?”

“으흐흐으… 콜록! 콜록!”

헛기침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사레가 들린 모양이었다.

한참 동안 콜록거리던 녀석을 보며 웃으니 뚱한 얼굴이 되돌아왔다.

“아니, 다들 너무한 거 아니에요?”

생수 한 모금을 고양이처럼 축이던 녀석이 눈썹을 모았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뭐가?”

“내가 뛰고 왔는데.”

“왔는데?”

“그, 뭐, 인간적으로 코멘트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기 봐요. 스트릿 보이즈에서는 나무를….”

리혁이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스트릿 보이즈 측에서 훈훈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야, 감나무. 불타기 싫으면 뒤졌다 생각하고 달려라.”

“벌써부터 풀어졌네. 이거.”

“1등 못하면 넌 우리 손에 죽음이야.”

우리가 다시 고개를 돌리자, 리혁이가 눈을 깜빡거렸다.

“아니, 저런 건 아니더라도. 그 저기! 저기 봐요. 소울 식스에서 얼마나 훈훈하게 대화를 하냐고요.”

“…….”

“내 말 이해했어요?”

그제야 내가 동생들에게 말을 해주었다.

“얘 칭찬 받고 싶대.”

“아니, 그게 아니고…….”

우리가 곧바로 메인보컬을 에워쌌다.

“오구구, 우리 리혁이 최고시다.”

“청소기 모델명 적어놔여. 형.”

“리혁아. 너 진짜 잘 달리더라. 편지배달 하면 잘할 거 같아.”

멤버들이 건네는 칭찬에 그제야 헛기침을 하며 ‘내가 좀 잘났지’ 하는 표정을 짓는 녀석이었다.

한참 동안 우리 하루살이의 자존감을 채워주고 난 후에 내가 어깨동무를 하면서 말했다.

“뭘 그렇게 서운하게 생각하냐. 네가 부담 가질까 봐 조용히 있었던 건데.”

“내가 뭐요.”

“자꾸 칭찬해주고 그러면 너도 1등 해야 될 것 같고 부담 되잖아.”

“아니, 뭐 그렇긴 하겠지만…….”

우리 나름의 배려였다.

고작 60미터 달리기를 한 번 뛴 것 가지고 벌써부터 방전돼서 액체 상태가 돼 버린 우리 애였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무슨 흐물흐물한 시계가 나뭇가지에 걸린 초현실주의 그림을 본 것 같은데, 지금 리혁이가 딱 그랬다.

땀이 흘러내리는 얼굴은 창백했고, 물을 조금씩 마시고 있지만 수분이 부족해 보였다.

어찌나 허약한지 우리 수플레들이 멀리서 바라보는 게 마치 보약이라도 한 첩 달여다 먹이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결승까지 끝났다면 모를까.

예선만 한 상태에서 칭찬해주다가 얘가 부담감을 느껴서 무리하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이 들어서 내심 별말을 안 했는데 자기 딴에는 또 그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나 몰라요? 내가 새삼 그런 거 가지고 부담을…….”

우리가 눈을 게슴츠레 뜨자 녀석이 말을 고쳤다.

“뭐, 쪼금.”

눈이 더 가늘어졌다.

헛기침을 한 녀석이 말했다.

“……어느 정도 부담을 가질 수는 있지만, 뭘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요. 내가 다 알아서 잘 조절하고 있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우린 이거보다….”

“경연이 더 중요하다고요. 알아요.”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멀찍이 팬석에서 수플레가 던진 가상의 하트를 받는 시늉을 하며 그걸 독차지했다.

마치 자기 거라는 듯 가상의 하트를 쏙 껴안은 채 우리에게 손을 휘휘 저으면서 속삭였다.

“그래도 팬들이 보고 있잖아요.”

“…….”

“적당히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다들 보고 있으니까 조금 더 잘해보고 싶고. 기왕 대표로 나간 거 최선을 다해보고 싶고. 뭐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

“다들 그렇지 않아요?”

진지한 얼굴로 녀석이 우리에게 고개를 돌리는 가운데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지호가 감탄했다.

“우와아.”

리혁이가 멋진 척을 하며 막내 앞에서 ‘훗’하고 있을 때, 우리 막둥이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대박 오글거려여.”

“…….”

우리가 거들었다.

“어이. 서씨, 혼자 올림픽 국대 나가?”

“메모해 놔야지. 리혁이… 난 뉴블랙의 대표… 팬을 위해… 달린다…….”

“푸하하!”

“…형, 어디 가여?”

리혁이가 콧바람을 뿜으며 일어났다.

“LB랑 둘이 친목할 거야.”

“가지 마. 나무 씨는 무슨 죄야?”

“……으으.”

그러고는 스트릿 보이즈의 LB와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둘이서 팀원들에 대한 불평을 토로하고 있었다.

우리와 스트릿 보이즈가 한데 모여 귀를 쫑긋거리는 가운데 LB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너무해. 내가 1등까지 하고 왔는데, 구박만 하고. 칭찬도 한 번을 안 해주고 서러워.”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야.”

“서럽다 정말. 그냥 우리끼리 그룹이라도 차릴래, 리혁아?”

“그건 반대야.”

“알았어.”

“그리고 거리 좀 유지하자. 나무. 넌 내 개인공간을 너무 많이 침해했어.”

친목은 무슨.

못된 고양이에게 밀려나는 대형견처럼 시무룩하게 거리를 띄우는 LB의 모습에 양쪽 그룹이 박장대소를 했다.

*   *   *

60미터 달리기 결승.

각 조 예선에서 1위를 거둔 이들이 차례대로 레인에 서기 시작했다.

“와, 라인업이 범상치가 않네.”

“리혁이 형 진짜 저기 있으니까 최약체처럼 보여여.”

지호의 말에 공감했다.

예선에서 1위를 거둔 강자들이기 때문일까.

중학교 육상부 출신, 축구부나 어린 시절 선수 출신 등등.

아이돌 중에서 나 좀 달린다 하는 사람들이 쭉 늘어서 있는데, 그 건장한 체격 사이에서 우리 애 혼자 무슨 병약한 두루미처럼 서 있었다.

아까보다 더 창백한 게 체력이 많이 방전되어 보였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동안 스트릿 보이즈의 한조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이만.”

“네. 즐거웠어요.”

화기애애한 대화는 끝났다.

저마다 ‘달려라 나무야’, ‘밥값 하자 나무야’ 같은 슬로건이나 ‘리혁이는 거꾸로 해도 리혁이’ 같은 플래카드를 거머 쥔 채 진지한 자세로 응원전에 돌입했다.

“리혁아아!”

“좀만 더 힘내여! 청소기 지금 대서양 건너서 오고 있어여.”

턱끝까지 올라온 지퍼를 만지작거리던 녀석이 움찔했다.

그러곤 격한 입모양으로 지호에게 ‘태평양이라고, 태평양!’ 하는 게 보였다.

우리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멀쩡하네.”

“체력이 생각보다 살 만한가 봐요.”

“그래도 얼굴이 너무 창백하다. 으으, 속상해. 이럴 줄 알았으면 리혁이한테 장어랑 전복 먹여둘 걸…….”

누군가의 후회에 웃음을 삼킬 때 마침내 카메라 앵글 조정이 끝났다.

모든 주자가 쪼그려서 바닥을 손으로 짚은 후.

삐익-!

휘슬 소리와 함께 결승전이 시작됐다.

파바바박.

저마다 죽을힘을 다해 뛰는 가운데, 역시 초반 1, 2초 구간에서 우리 애는 뒷줄이었다.

그러나.

“느아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넷째가 그야말로 온힘을 다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힘이 살짝 빠졌지만, 빠르다.

다른 사람들은 묵직한 근육에서 속도를 뿜어낸다면 우리 리혁이는 저체중빨로 둥실둥실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남들이 묵직한 총알처럼 달려나간다면 우리 리혁이는 내용물 없는 총알이라고 할까.

결론적으로 겁나 빨랐다.

“와아아아-!”

어느새 1위를 하고 있는 보이그룹 에이스의 페일과 선두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선 스트릿 보이즈의 LB와 TNT의 선웅이 바싹 추격하는 중.

넷이서 엎치락뒤치락했다.

“리혁아아아!”

“형, 청소기가 지금 대서양을 건너 문앞까지 왔어여! 문앞!”

“형이 고구마 말랭이 만들어줄게!”

우리가 격하게 응원을 보내는 동안.

마침내 8초쯤 되었을 때.

“와아아악!”

에이스의 페일이 간발의 차로 1위에 들어왔고, 우리 리혁이가 바로 그 뒤에 들어왔다.

3위가 LB.

TNT의 리더 선웅을 시작으로 나머지 주자들도 차례대로 들어왔다.

“……쟤 또 방전됐네.”

우리 리혁이는 다시 한 번 벽에 팡 부딪히더니 엎어졌다.

그러곤 LB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는데, 새까만 머리가 그새 땀에 푹 젖어서 미역처럼 변해 있었다.

자꾸 헛구역질을 하면서 눈이 촉촉한 게, 산소가 부족해서 속이 있는 대로 뒤집어진 모양이었다.

“진짜 고생했네. 리혁이.”

은메달 수상자로서 따로 불려가는 동안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이 짠하다.

-그래도 팬들이 보고 있잖아요.

약하디 약한 우리 개복치가 팬들이 보고 있다는 이유로 온힘을 다해 달리다니.

대견하면서도 짠했다.

고개를 돌려 수플레들을 바라보니 다들 리혁이를 바라보는 눈이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한 얼굴.

우리 역시 자랑스러운 얼굴로 주변 다른 그룹들에게 리혁이를 자랑했다.

“저 하얀 애가 바로 저희집 애예요.”

“감동이다. 정말. 아, 제가 저 형을 거의 업다시피 키웠거든여. 이제 겨우 사람처럼 된 거예여.”

“약골이지만 착해요.”

그 동안 메달을 목에 건 수상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중학교 육상부 출신으로 60미터 7초 58의 기록을 거둔 그룹 ‘에이스’의 페일이 인터뷰를 한 후.

2위 7초 77의 기록을 세운 리혁이가 전광판에 떠올랐다.

땀에 푹 젖은 창백한 얼굴.

눈의 여왕처럼 새하얀 얼굴과 까만 머리카락의 대비가 강렬해서인지 장내가 술렁거렸다.

다시 한 번 주변 사람들에게 ‘저희 애에요’ 하고 자랑할 때.

아나운서 정효진이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리혁 선수는 오늘 가장 큰 반전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너무 잘 달리시더라고요.

-어흠, 감사합니다.

화면에 얼룩이 번진 것처럼 보일 만큼 귀만 벌게졌다.

-리혁 씨의 달리기 비결이 있다면 혹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 저는 최고의 호신술은 달리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예?

아나운서가 눈을 깜빡이고 장내의 사람들이 ‘?’ 하는 동안 우리 애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컨대 강도에게 습격당하거나 아니면 야생동물과 맞닥뜨렸을 때 가장 현명한 호신술은 도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평소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아, 그, 그렇군요.

-매번 뛸 때마다 쫓기는 상상을 하면서 뛰어요. 그게 비결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면 귀가 벌게질 텐데, 우리 애는 지금 파워 당당한 태도로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고 있었다.

아나운서가 웃음을 참고, 장내에 있는 관중들이 폭소하는 동안.

우리는 지금까지 자랑했던 타 그룹들을 향해 손을 빠르게 저으며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안 친해요.”

“원래 키운다고 마음대로 키워지는 게 아니잖아여. 형이라는 게 이게 마음대로 안 되네여.”

“저도 잘 모르는 동생이에요.”

“음, 리혁이가 왜 저럴까아…?”

그리고 그런 우리 모습에 다른 그룹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아오. 창피해.

자기가 사냥한 지렁이를 자랑하는 아기 참새처럼 위풍당당하게 은메달을 걸고 오는 녀석의 모습에 우리는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   *   *

스윽스윽.

휙.

스윽스윽.

휙.

“아, 진짜. 왜 가까이 갈 때마다 조금씩 떨어져요?”

“저리 가. 창피해.”

상대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뭐야. 내가 은메달까지 땄는데.”

“왜냐하면 우린 은메달이랑 겸상 안 하거든여.”

“맞아맞아.”

“다시 한 번 가볼까?”

내가 미소를 지었다.

“모여라, 뉴골드!”

“얍!”

나와 비주, 지호가 동시에 금메달을 들어보였다. 중현이도 우리 사이에 쏙 끼었다.

리혁이가 자기 은메달을 만지작거리더니 물었다.

“중현이 형은요?”

“얘는 어제 풋살로 MVP 땄잖아. 중현이는 골든 핸드라고.”

“맞아여.”

지호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우린 뉴골드인데 형이 끼면 뉴골드가 아니잖아여. 티어가 안 맞아여.”

“……와, 진짜 치사하네. 이 인간들.”

“리혁이는 가서 나무 씨랑 실버 앤 브론즈나 차리도록 해.”

멀리 있던 LB의 귀가 쫑긋했다.

하지만 리혁이가 고개를 젓자 상대는 시무룩해졌다.

두 그룹이 키득거리는 가운데 리혁이가 천장을 바라보며 ‘내가 0.5초만 빨랐어도!’ 하면서 한탄했다.

“우워어어어-!”

그 동안 엄청난 괴성이 경기장을 들었다가 놓았다.

“우어어-!”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이거 군대에서 위문 공연 때 듣던 그런 괴성인데.

마치 축구 경기에서 볼이 왔다갔다 할 때처럼 남자 팬들의 괴성이 실내체육관을 뒤흔들었다.

내가 물었다.

“야. 나만 군대에 온 거 같냐?”

“네.”

중현이가 눈을 깜빡깜빡 하더니 대답했다.

“그야 형만 다녀왔으니까요?”

“오오. 중현이 똑똑한데.”

“저 똑똑해요. 형.”

눈을 최대한 동글동글 뜨며 말하는 중현이에게 웃어 보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괴성은 계속했다.

지금 이 소란의 원인은 눈앞의 매트 위에서 벌어지는 풍경 때문이었다.

여자 씨름.

샅바를 맨 걸그룹 멤버들이 서로를 넘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엎치락뒤치락할 때마다 응원하는 팬들의 고함과 환호가 체육관을 울렸다.

보조 체육관에서 농구 준비가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여자 씨름을 구경했다.

“오, 스칼렛 누나들 올라왔어여.”

스칼렛의 봄을 제외한 아라, 리나, 데이지가 샅바를 멘 채 대기석으로 올라갔다.

상대편은.

“흥.”

겉으로는 환하게 표정 관리를 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우리에게 ‘흥’ ‘흥’ 하며 소곤거리는 막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걸스온탑.

주하나, 오혜나, 길채경이 스칼렛의 맞은편에 섰다.

팬석에 손을 흔드는 걸스온탑이 전광판에 비치자 군인들의 괴성 같은 소리가 울렸다.

“우워어어-!”

그 소리에 다들 웃음을 참을 때.

이번에는 스칼렛이 손을 흔들었다.

“끼야아아-!”

남자 팬들이 대부분인 걸스온탑의 팬덤과 달리 스칼렛의 팬덤은 대부분 여자 팬들인 듯했다.

그 대비에 앉아 있는 아이돌들이 웃고 있을 때.

스칼렛의 데이지와 걸스온탑의 채경이 서로에게 공손히 인사를 꾸벅하고는 샅바를 붙잡았다.

중계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그룹의 막내 대 막내네요.

-위원님이 보시기엔 어떠신가요? 두 멤버의 대결에 관해서.

-아무래도 리치나 그런 부분에 있어서 걸스온탑의 채경 선수가 훨씬 유리한 면은 있죠. 신장부터 시작해서…….

그 말대로 조그마한 데이지에 비해 길채경이 한 뼘은 더 컸다.

둘 중에 누가 이길 것 같냐고 하면 한쪽이 몰표를 받을 만큼 신체적인 조건 차이가 보인다고 할까.

하지만…….

파앙!

경기 시작 1초만에 나는 보았읍니다.

데이지가 상대를 샅바째로 들어 올려 바닥에 메치는 것을.

-…….

해설위원의 머쓱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 사실 리치나 체격적인 조건이 있지만 핵심은 힘이죠.

-가히 천하장사라 할 만합니다. 데이지 선수.

올망졸망한 찹쌀떡이 언니들에게 두 손을 흔들면서 우아아 하는 모습에 장내에 웃음이 흘렀다.

그런데 뭐라고 할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내 눈에는 마치 데이지의 웃음이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가 껄껄 웃으며 ‘적의 목을 가져왔소, 형님!’하는 것처럼 보였다.

되게 호탕하다.

내가 얼빠진 얼굴로 그 승부 결과를 보고 있을 때, 비주가 속삭였다.

“스칼렛이 작년 씨름 우승자예요.”

“아아, 어쩐지.”

“저 누나들이 먹는 고기는 전부 근육으로 간다는 게 우리 회사의 정설이에여.”

과연 꽃등심을 25인분이나 먹을 만했다.

씨름부처럼 고기를 먹는다더니 힘도 좋은 듯했다.

뒤이어 나온 리나.

호리호리한 몸에 스칼렛에서 비주얼로 꼽힐 만큼 빼어난 외모에 장내가 술렁이는 것도 잠시.

파아앙!

무표정한 얼굴로 걸스온탑의 주하나의 다리를 걸어 바로 쓰러뜨렸다.

이번에도 한판승.

“…….”

그러곤 마치 관우를 반기는 장비 같은 표정을 짓는 데이지에게 다가가 머리를 헝클어주었다.

뭔가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미지가 바뀌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선 아라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는 스칼렛의 리더도 걸스온탑의 오혜나가 힘싸움을 벌이는 동안, 느긋하게 받아주더니 이내 허허 하는 웃음과 함께 상대를 꺾어 버렸다.

“끼야아아아!”

스칼렛의 팬덤인 커튼이 플래카드를 흔들며 환호하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감탄했다.

“대박이다. 진짜.”

“봤져? 괜히 리혁이 형이 저 누나들만 보면 두 손 모으고 공손하게 있는 게 아니예여.”

“……내, 내가 언제. 난 그런 적 없어.”

하지만 스칼렛의 시선이 잠시 우리 쪽에 향했을 때 리혁이가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고 웃었다.

한편 전광판에는 우리 대표님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손수건으로 머리를 닦는 모습이 비쳤다.

그 옆에선 DNS 미디어의 임 사장님이 ‘라비앙로즈 대 스칼렛’라는 다음 대진표에 울적한 표정을 짓고 있고.

근처에서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존나 쎄. 진짜…….”

“근데 뉴블랙도 레몬 아냐? 양궁도 그렇고 달리기도 그렇고. 뭔 피지컬들이 다…….”

“저기만 무슨 천하제일 무술대회야.”

“뭘 그런 거에 감탄하냐. 어제 풋살 너 안 왔지? 네가 어제 금강불괴를 봤어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머쓱하게 느껴지는 수군거림을 흘려들을 때였다.

동생들과 함께 스칼렛의 승리에 응원을 보내고 있을 때 그림자들이 내게 드리워졌다.

고개를 올려다보니 예닐곱 남짓한 이들이 서 있었다.

“……?”

스트릿 보이즈의 한조, 틴스피릿 휘연을 비롯해서 농구를 하게 될 같은 팀원들이었다.

태현이가 씩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뭐해? 농구 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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