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02화
선수 대기실에서 다른 팀원들과 담소를 나눈 후, 저마다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들 했어요.”
하나둘 방을 떠나는 가운데 한조가 내게 웃으며 말했다.
“전 먼저 가볼게요.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대요.”
“아, 네.”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경기나 운세 등 늙은이들만의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같이 나갈 수 없었다.
“우주야, 나랑 셀카 좀 한 장 찍자.”
“너희 폰 써? 잘 됐다. 그러면 이번에 나랑 폰 번호 교환 좀 하자.”
다른 팀원들이 붙잡고 셀카를 찍자거나 번호를 교환하자는 요청을 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씩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 방송국에서 볼 때마다 친해지고 싶었는데, 다섯이서 너무 끈끈해 보여서 끼어들 틈이 없더라고요.”
“그냥 말씀하셨어도 되는데…. 사실 저희가 그 정도로 끈끈하지 않거든요. 포스트잇 수준이예요.”
너스레를 떨면서 선배 가수들과 친분을 다지고는, 적당한 타이밍에 끊고 빠져나왔다.
“정말 선배님들 고생 많으셨어요! 같이 경기하느라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 너도 고생했어.”
“네, 먼저 올라가 볼게요.”
활기차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문을 닫고 나왔다.
고작 1시간밖에 안 됐지만, 우리 동생들을 얼른 보고 싶다.
중현이가 밥 먹으러 갈 때처럼 성큼성큼 걸으니 복도가 빠르게 지나갔다.
1층으로 가는 계단이 나왔을 때.
멀찍이 어두운 계단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넷의 형체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그림자도 잘생긴 느낌.
누가 봐도 우리 애들이었다.
저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괜히 호기심이 들어서 복도를 걸어가다가 계단에서 보이지 않는 각도로 벽에 착 달라붙었다.
귀를 슬쩍 가져다 대니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렸다.
“또 어두워졌네.”
“중현이 형, 이거 센서로 감지하는 거잖아여. 요렇게 손을 흔들흔들~”
막내의 살랑이는 목소리와 함께 넷이서 다 같이 손을 흔드는 그림자가 내 쪽으로 일렁였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반짝.
넷이서 키득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리혁이 형은 뭐 해여?”
“불이 꺼지는 주기 기록해. 기록한 게 맞다면 이제 30초 후에 다시 꺼질 거야.”
“와. 이 형은 진짜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에디슨 됐을 것 같아여.”
“조선 시대에 에디슨이면 사형 아님?”
“리혁이 죽어?”
“……왜 갑자기 날 죽이는 거예요?”
근본 없는 대화를 듣는 동안 어느덧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
지호가 해볼 게 있다면서 어둠 속에서 몸을 움직이더니, 불이 딱 켜지자 콘서트 오프닝 흉내를 냈다.
다른 애들이 손뼉을 치며 계단에서 자지러지는 동안.
나는 짜잔 하는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왔다.
“얘들아!”
이윽고 자기들끼리 잡담을 떨던 네 쌍의 수려한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동공이 확장되고 눈꼬리와 입이 동시에 올라가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멤버들이 벌떡 일어났다.
“우주 혀어어엉!”
“얘들아아아!”
서로 신이 난 개코원숭이처럼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갔다.
그리고 층계참에서 만나 기쁨의 재회를 나눴다.
“와아아-!”
힐링하는 기분이었다.
* * *
실내체육관 시설관리팀.
“…….”
매서운 눈으로 CCTV를 바라보던 관리팀 직원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행사 참석 인원이 많은 만큼 돌발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몰래 다른 곳으로 숨어들려는 팬이나 관계자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엉뚱하게 지하 2층 계단 CCTV에 이상한 장면이 잡혀 있었다.
‘……뭐지.’
그가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자, 근처에 있던 선임 직원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왜, 뭐가 문제야?”
“저기 24번 카메라요.”
“24번? 지하 2층? 그게 왜…….”
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돌린 이도 눈을 깜빡거렸다.
‘뭐냐.’
해당 CCTV에서는 가운데서 뭔가 상패 비슷한 물건을 든 이를 중심으로 넷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원숭이들의 춤 같다.
두목으로 보이는 이가 상패를 들어 보이자, 나머지 넷이 눈부시다는 시늉을 했다.
그러곤 흥겹게 춤을 췄다.
“…….”
“…….”
멍하니 보던 선임자가 입술을 뗐다.
“근데… 또 춤은 잘 추네.”
“잘 추네요.”
“…….”
“…….”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돌 멤버들이 지하 계단에서 근사한 춤을 추고 있었다.
뭔가 느낌이 청동기 부족 같아서 그렇지.
“쟤네 팬들은 저런 거 모르겠죠?”
“모르는 게 낫지 않을까…….”
“그건 그러네요…….”
“…….”
두 남자가 CCTV를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 *
1층 주경기장.
다시 올라와서 자리를 잡고 여자 씨름부 결승전을 관람했다.
-네, 드디어 여자 씨름부 결승전입니다!
-올해도 스칼렛이 압도적이네요!
걸스온탑을 모두 한 판승으로 끝내버린 스칼렛은 지금도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멤버 봄이 제갈량처럼 부채를 살랑살랑거리며 응원을 보내는 동안.
나머지 유비, 관우, 장비 삼자매가 상대방의 목을, 아니 상대방을 메치러 출격하는 식이었다.
-데이지 선수! 미스티의 수아를 메치고 다시 한 번 한판승을 얻어 냅니다!
-웃음 한 번 정말 호탕하네요! 승리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예요.
-작년에 찹쌀장군이란 별명이 붙었죠?
찹쌀장군이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
내가 기억하는 데이지는 올망졸망한 찹쌀떡 느낌이었는데.
지금도 그 비주얼은 여전했지만 뭔가 웃는 모습이 껄껄 웃는 영웅호걸처럼 보였다.
은근 무섭다.
잠시 객석을 훑던 데이지의 시선이 우리에게 스윽 향하면서 우리 다섯 쫄보들이 공손한 태도로 응원을 했다.
첫 주자로 나선 데이지를 시작으로 스칼렛은 3연승을 기록했다.
결승전까지 올라온 만큼 상대팀인 미스티도 온힘을 다했지만, 우리 소속사 선배들이 너무 힘이 좋았다.
“와아아아!”
팬들의 함성 속.
씨름 금메달을 목에 거는 이들에게 우리가 박수를 치는 동안 인터뷰를 위해 해설진이 나왔다.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4인방의 모습이 전광판에 담긴 후.
-씨름 우승 정말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넷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시간 관계상 한 마디 짧게 해야 할 것 같은데… 누가 할까요? 네. 리나 씨.
차분한 외모를 지닌 비주얼 멤버가 머리를 쓸어넘기는 모습에 팬덤인 커튼이 ‘언니이이!’ 하다가 시큐리티에게 제지 당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그런 팬들에게 사랑의 말을 전하던 리나가 이윽고 누군가를 호명했다.
-대표님.
카메라가 관중석에 있는 우리 대표님을 담았다.
옆에서는 DNS 미디어의 대표님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고, 우리 대표님은 눈시울을 붉히며 손수건으로 코를 풀고 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호명에 고개를 끄덕끄덕.
리나가 그런 대표님을 향해 짧게 굵게 말했다.
-올해는 눈꽃등심 먹을 거예요.
데이지가 옆에서 특유의 랩으로 ‘1++’ 하고 덧붙이면서 장내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동안 다른 가수들도 손뼉을 치면서 축하해주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대화에 귀를 쫑긋 기울였다.
“올해 종합 우승은 레몬이지?”
“그렇지. 씨름 금메달이랑, 양궁 금메달이랑… 달리기도 은메달이랑 동메달 하나씩 있고.”
“작년에는 스칼렛만 그러더니 올해는 남녀로 메달을 쓸어가네.”
내가 들뜬 얼굴로 동생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종합 우승이야?”
“이변이 없는 이상은요.”
리혁이가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MVP야 개인 실적이니 별도로 친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우리 팀이 종합 우승이죠. 이 점수차를 극복하고 우리를 이기려면 공중 부양이라도 해야 할걸요.”
“크으…….”
“우주 형 벌써부터 눈 몽롱해진 거 봐여. 조 이사님 댁 작업실에서 짓던 바로 그 표정이예여.”
행복하다.
종합 우승이나 그런 건 어디까지나 허울 좋은 명예고.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대표님과의 약속이었다.
조 이사님 댁에 있던 작곡 장비 사주신다고 했지.
대표님의 존안을 뵙기 위해 얼른 관중석을 훑었다.
옆자리에 앉은 DNS 미디어의 임 사장님한테 약 올리는 대표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초롱.
내가 눈빛을 보냈다.
초롱초롱.
중현이가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이 안 보시는 것 같은데요. 형.”
“잠시만.”
시선을 조금 더 집중하기로 했다.
초롱! 초롱!
초! 롱!
내 집요한 시선에 결국 우리 대표님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눈을 크게 뜨고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신다.
라이벌 회사를 압도하고 1등을 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우리 대표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다.
서로 입모양으로 말했다.
‘우주야아!’
‘대표니임!’
서로를 향해 따스한 시선을 던졌다.
멤버들이 내 곁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우주 형이 대표님을 보물고블린처럼 바라보고 있어여.”
“저 탐욕…….”
“대표님은 이 아저씨를 황금알 낳는 거위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쌤쌤 아닐까요.”
꿋꿋하게 무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대표님에게 손하트를 보내자, 대표님도 허허 웃으며 내게 대왕 하트를 보내주었다.
막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대표님 아직 행복하신 거 보니까, 작곡 장비가 얼마인지 모르시나 봐여.”
“즐기시게 놔둬.”
우리 동생들도 대표님을 향해 별과 하트를 보내주었다.
한참 동안 흐뭇한 미소를 짓던 대표님은 낡은 외투를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듯한 느낌.
투덜거리는 얼굴로 같이 일어나는 임 대표님 얼굴을 보니 식사 내기라도 하셨나 보다.
중현이가 말했다.
“어? 가시네.”
“이젠 가셔야지. 많이 피곤하실 텐데. 마지막까지 남아계신 거잖아.”
비주의 말대로 개막식 때만 해도 대표님들로 꽉 찼던 좌석이 텅 비어 있었다.
대부분은 오전에만 잠깐 참관하다가 스케줄을 위해 떠났고, 이 시간까지 남아 있던 게 우리와 DNS 미디어의 두 대표님이었다.
어느덧 저녁.
바쁘실 텐데 이 시간까지 남아서 우리를 응원해준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내 무르팍에 누워 있는 막내가 말했다.
“부럽당. 저도 집에 가고 싶은데.”
“넌 10시면 가잖아.”
“아, 맞다! 그러네여.”
오늘 녹화 스케줄상 촬영은 새벽 1시쯤 끝날 거다.
하지만 우리 막내와 메인 보컬은 나라에서 정한 법 때문에 미성년자로서 10시에 퇴근할 예정이다.
만 15세인가, 그 아래면 10시 넘어선 방송 녹화가 안 된다나.
미성년자에게 가혹한 방송 환경을 감안해서 만들어진 법인데 실제로 현장에서 보면 만 15세가 아니라 그냥 미성년자면 대부분 적용하는 듯했다.
물론 퇴근이라고 해 봐야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거지만.
지호가 짐짓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얄미운 표정을 지었다.
“에궁.. 전 여기서 형들이랑 있고 싶은데, 나라에서 들어가라고 하니까 넘나 슬프네여.”
“…….”
“어쩔 수 없이 대기실 소파에 누워서 있어야겠다.”
“…….”
리혁이를 제외한 세 명의 표정이 푸근해졌다.
따스한 미소를 짓던 내가 손짓으로 우리 셋째를 소환했다.
“중현아.”
“네. 형.”
“처리해라.”
“네.”
간지럼에 약한 우리 막내가 비명을 지르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으으…….”
“이건 에바야…….”
근처에 쪼그려 앉은 다른 그룹 멤버들이 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열두 시간 넘게 쪼그려 앉았다가 잠깐 운동했다가, 또 찬 바닥에 쪼그려 앉다 보니 다들 몸살 걸리기 직전이었다.
춥고. 배 고프고.
거기다 녹화는 여섯 시간 넘게 남아 있으니 환장할 수밖에.
가끔 눈이 마주친 이들끼리 고생한다는 동료애 섞인 시선을 교환했다.
경기장 한가운데 앉아 있는 터라 모든 곳에 눈동자와 카메라가 있고, 멀찍이선 팬들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다들 겉으로는 방긋방긋 웃었다.
“얍얍!”
방금 전까지 ‘이건 에바야’ 하면서 흐느끼던 이가 팬들을 향해 윙크를 하는 모습에 웃었다.
이런 언행에 대한 제약 때문인지 근처에 있는 틴스피릿은 유독 갑갑해 하는 눈치였다.
자기들끼리 서로의 귀에다 적나라한 비속어를 속삭이다가 이내 팬들에게 미소년다운 애교를 보내곤 했다.
“…….”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저건.
다른 아이돌에게서 시선을 옮겨 주변을 더 넓게 바라보았다.
다음 종목이 준비되는 동안 스탭들이 여기저기 오가는 모습들.
근처에 앉아 있던 한조와 내 시선이 부딪혔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우리도 수플레들한테 뭐… 어디 가여?”
“응. 가자.”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는 동생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수플레들 보러 가자.”
* * *
농구가 끝나고 태현이가 알려준 것은 고급 정보였다.
-응원석에 가서 팬들 보고 싶지?
당연했다.
멀찍이서 서로 손짓, 발짓을 하는 것보다는 가까이서 몇 마디 하는 게 훨씬 더 좋았으니까.
그런데…….
-스탭들 눈치 보이니까 힘들 거야.
이게 문제였다.
돌림픽이란 프로 자체가 제작진 갑질이 워낙 심하다 보니 항상 눈치가 보인다고 해야 하나.
카메라가 있는 곳에선 그나마 양반인데.
안 보이는 곳에서는 그냥 지나가다 ‘야, 너’ 소리 지르고, 장비 옮기니까 비키라고 손으로 밀고.
거기다 통제도 심한 편이어서 자유행동 한 번 잘못했다가 우리 매니저 형들까지 불려가서 욕 먹기가 십상이었다.
괜히 우리 팬들이 이 프로그램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고 할까.
그런 까닭에 팬석에 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다른 선배 아이돌은 경험이 있는 탓에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서 슥 갔다가 오고 했는데, 신인으로선 그런 타이밍을 모르니까.
애타게 팬석만 보고 ‘어쩌지?’ 이러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 대선배님이 꿀팁을 알려주었다.
언제 가야 적절한 타이밍인지.
그리고 그건 바로 지금이었다.
“저희 왔어요!”
“우와악!”
우리 수플레들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엄청 피곤하지만 행복해 하는 얼굴들을 보며 웃었다.
데칼코마니처럼 아마 우리도 똑같은 표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열두 시간 넘게 갇혀 있었던 탓에 전우애가 싹튼 눈빛을 교환하며 대화를 나눴다.
쉰 목소리도 여기저기 끼어 있었지만 화기애애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오빠!”
누군가의 외침에 시선을 돌렸다.
“저 동사무소 가서 김덕순으로 개명할 거예요!”
“푸흡!”
근처에 서 있던 매니저 형들도 웃음이 터졌고 동생들과 팬들도 배를 잡고 뒤집어졌다.
멤버들이 얼른 대답해주라고 채근하기에 내가 팬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이것부터 기억해요.”
“……?”
“덕순은 원 앤 온리.”
내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옆에서 중현이가 ‘오, 이젠 수치심도 없어’ 하면서 감탄했다.
나는 꿋꿋하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따라해 보세요. 다 같이. 덕순은 원 앤 온리.”
“덕순은 원 앤 온리.”
성가대가 합창하듯 ‘덕순은 원 앤 온리’ 하는 모습에 주변 팬석에서 눈을 깜빡거렸다.
내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개명은 안 돼요. 꼭 바꾸실 거면 덕순 말고 끼억 해서 덖순으로 해주세요.”
“쌍기역이요. 쌍기역. 이 사람아.”
“아 참. 쌍기역이요.”
리혁이가 타박하며 혀를 끌끌 차는 동안 다들 한참을 웃었다.
내가 그 수플레에게 웃으며 물었다.
“원래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예… 예지요.”
“그 이름으로 기억할 테니까 바꾸지 말아주세요. 김덕순은 제 거예요.”
그러자마자 여기저기서 자기도 김덕순으로 개명할 거라고 욕심을 드러냈지만 난 속지 않았다.
이윽고 로드 매니저 형들이 봉지를 들고 오는 모습에 내가 말했다.
“오늘 너무 고생이 많아서, 저희가 여러분을 위해서 특별한 저녁 식사를 준비해 왔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부잣집 막내아들이 나서준 덕분이었다.
동생들과 함께 우리의 선물을 객석에 있는 팬들 하나하나에게 건네주었다.
고급스러운 종이 상자.
그 위에는 우리가 며칠 전부터 써온 편지들이 있었다. 그걸 빤히 바라보는 수플레들에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그 위에 저희가 열심히 써온…….”
“스테이크다!”
“뭐라구요? 스테이크?”
누군가의 외침에 다들 놀란 얼굴로 종이박스를 열기 시작했다.
“대박, 스테이크야.”
“와…….”
“진짜 스테이크예요.”
이, 이게 아닌데.
내가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저희가 열심히 문구를…….”
“우와, 스테이크.”
“여러분이 그 동안…….”
“스테이크다!”
“……맛있게 드세요.”
배가 너무 고팠는지 살기 위해 포크와 나이프를 드는 팬들의 모습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고기.
역시 고기가 최고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