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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03)화 (20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03화

우리가 고기한테 패배하다니.

이쯤 되니 뉴블랙 대신에 뉴미트가 나오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스쳐갔다.

메인 보컬 채끝.

애교 부리는 막내 삼겹.

쫄깃한 랩을 자랑하는 곱창.

메인댄서 안창.

리더 꽃등심.

내가 동생들에게 이 아이디어를 말해 주었다.

“어때, 대박이지?”

“꽃등심을 왜 형이 해여. 그건 막내인 제 포지션이에여.”

“왜.”

“제일 비싸고. 그리고 꽃이잖아여.”

“꽃이 왜?”

지호가 당연하다는 듯 자기 가슴팍을 톡톡 두드렸다.

“플라워 이즈 미.”

“스탑 헛소리, 베이비.”

나와 지호가 나누는 대화에 맨 앞줄에 앉은 팬들이 단체로 스테이크를 먹다가 목이 막혔다.

꺼이꺼이 우는 팬들에게 우리가 음료수를 공급해 주었다.

내가 시선을 돌렸다.

관중석에 앉은 우리 팬들이 포크를 들고 스테이크를 거의 흡입…… 하고 있었다.

비주가 웃으며 물었다.

“다들 많이 시장하셨어요?”

끄덕… 우적… 끄덕.

우적우적. 끄덕.

지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점심에 저희가 맛난 거 드리지 않았어여?”

“그게…….”

맨 앞줄에 앉은 팬 하나가 스테이크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게?

그런데 거기서 말이 끊겼다. 목에 뭐가 걸리셨는지 한참을 우물거리는 분에게 내가 말했다.

“중현아, 이분한테 포도 음료수 좀 드려라.”

“넵.”

중현이가 근처 상자에 놓인 포도맛 탄산 음료 캔을 가져와서 포도주 대신에 따라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몸을 굽힌 채 귀를 기울였다.

목이 막힌 수플레가 음료수를 마시고는 음식을 꿀꺽 삼켰다.

“그게…….”

“네에.”

“응원을 하다 보니까 소화가 다 되어 버렸어요.”

“……1인당 1.5인분을 드렸는데요?”

끄덕끄덕.

역시 우리 팬들이다.

남다른 소화력에 우리가 감탄한 듯 박수를 보내자 여기저기서 민망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난 또 뭐 배달 같은 게 잘못돼서 수플레들이 굶은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그냥 소화를 잘 시킨 거였다.

응원에 힘을 엄청나게 쏟았는지 저마다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스테이크를 막 먹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일장연설을 하듯 말했다.

“정말 새벽부터 고생들 하셨어요. 줄을 오전 여섯 시? 그때부터 서셨다고 들었는데, 오늘 날씨도…….”

우적우적.

“……날씨도 춥고. 자리도 3층에 있어서 쌍안경으로 봐야 하셨을 정도로 거리가 멀었는…….”

우적우적.

내가 슬픈 표정을 짓자, 수플레들이 눈치를 보며 스테이크를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우저어억…….

우적….

우저어어억…….

마치 녹슨 그네에서 끼이익 소리가 나듯이 음식을 씹는 모습에 리혁이가 날 타박했다.

“아니, 하루 종일 고생한 우리 팬들한테 무슨 짓이에요. 밥이라도 편하게 먹게 해 줘야지.”

“리혁이 말이 맞아요.”

중현이가 세상 진지한 얼굴로 동의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어요.”

“저저, 봐여. 팬들 못 살게 굴고. 군대에서 하던 나쁜 습관이 여기서도 나온다니까여.”

“형. 팬분들 식사하잖아요.”

동생들의 융단 폭격에 결국 내가 항복 선언을 했다. 그러곤 팬들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편하게 드세요.”

우리 수플레들이 신이 나서 포크로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말없이 잠시 지켜보았다.

자꾸 말을 할 때마다 팬들이 고민하는 게 보였다.

마치 제일 좋아하는 음식과 재미있는 TV만화를 사이에 둔 어린아이처럼 갈팡질팡하는.

그 모습이 새삼 귀여워서 내가 장난으로 물었다.

“근데요. 여러분.”

“저저.”

“또 말한다.”

구박하는 동생들에게 눈을 흘긴 뒤 벌써 스테이크를 반절 넘게 해치운 팬들에게 물었다.

“질문! 저희가 좋아요. 고기가 좋아요?”

“고기.”

굵직한 목소리가 내 옆에서 들려서 화들짝 놀랐다.

“아, 깜짝아.”

“저예요. 형.”

“중현아. 형은 너에게 물어보지 않았어.”

“흥.”

시무룩해지는 중현이를 놔두고 다시 고기 vs 뉴블랙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저희예요, 고기예요?”

“……뉴블랙.”

‘그, 그야 당연히 너희지’라는 눈빛이 돌아왔지만 나는 그 순간 0.5초 동안 흔들리는 동공을 보았다.

그것도 수십 쌍이 넘게.

“헐…….”

동생들도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와. 저 방금 흔들린 거 봤어여. 둘 중에 뭐가 좋냐고 하니까 순간 갈등하는 거 봤어.”

“정말… 고기예요? 저희가 아니고?”

“아이돌쇼에서 썼던 그 전기 충격기가 필요해 보이네요.”

“거짓말 탐지기요. 형. 전기 충격기 쓰면 우리 구속돼요.”

수플레들이 필사적으로 여기저기서 아니라며 너희가 최고라고 해 줬지만 상처 받은 우리의 마음은 회복될 줄 몰랐다.

처음에는 뭔가 질투심이 들었지만, 사람도 아닌 고기한테 질투심을 느끼는 게 추하다는 생각에 관뒀다.

내가 제안했다.

“그냥 우리가 고기로 개명을 하자.”

“그게 낫겠네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지호가 눈가에 브이를 그리며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막내 멤버 꽃등심이에여. 특기는 사르르 녹기.”

“전 메인 댄서 안창.”

비주가 부드럽게 덧붙였다.

“희귀해요.”

“……푸흡! 끄윽! 끄윽!”

그러자 이제는 팬들이 웃다가 그만 사레가 들려서 거의 울기 시작했다.

나머지 우리도 소개를 했다.

“메인 보컬 채끝. 영어로 서로인이에요.”

“래퍼 김곱창이에요.”

“까도 까도 여러 겹이 나오는 매력의 남자. 리더 삼겹이에요.”

우리끼리 드립을 주고받으며 소개를 마쳤을 때, 우리 팬석에 있는 모두가 벌건 얼굴로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셔 대고 있었다.

“끄흡!”

수플레들만 그런 게 아니라 근처에서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던 스트릿 보이즈와 시멘트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체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렇게까지 웃겼나?”

동생들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우리의 반응에 근처에 있던 로드 매니저 형들이 ‘너희 진심이니?’ 하는 표정을 지었다.

*   *   *

밤 10시.

다 같이 모여 앉은 가운데 중현이가 말했다.

“열 시가 되었습니다. 동생라인은 고개를 들어 주세요.”

“전 동생라인이 아닙니다.”

진지하게 항변하는 지호에게 내가 말했다.

“지호야. 마피아 게임은 그만하고 얼른 들어가.”

“아, 가기 싫다.”

지호가 칭얼대듯이 말했다.

“형들이랑 좀 더 놀고 싶은데. 어차피 대기실 가면 할 거 없단 말이에여. 리혁이 형이 지루한 과학이나 역사 얘기 할 텐데.”

“폰겜 해.”

“충전기 챙기는 거 깜빡했어여.”

입을 비죽 내미는 녀석을 바라보며 웃다가 리혁이에게 말했다.

“얼른 데려가.”

“야. 왕지호. 따라 와.”

“가기 싫은데에…….”

하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미성년자 아이돌 멤버들이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고 있었다.

미성년 멤버들은 저마다 ‘드디어 쉰다’ 하는 기쁨과 ‘나 애기 아닌데’ 하는 아쉬움이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마다 팬석에 손을 흔들며 대기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저 갈게여…….”

지호가 담요를 챙기고 터덜터덜 일어나기에 내가 붙잡았다. 은근 기분 좋은 표정이 돌아왔다.

“붙잡는 거예여?”

“담요는 두고 가야지. 너만 몸이니. 우리도 몸이야.”

중현이와 비주가 웃음을 터뜨리자 막내가 서운함 가득한 표정을 담아 나를 노려보았다.

“……두고 봐여. 제가 대기실에서 기도해서 형한테 상태이상 디버프 걸 거예여.”

“괜찮아. 형은 그런 저주를 한 차례 겪었던 몸이야.”

“제가 아빠한테 부탁해서 포털에 형 이름 검색하면 대만가수 우젠민으로 나오게 할 거예여.”

그 말에는 나도 모르게 그만 웃었다.

한편 계속해서 자리에 남아 있고 싶은 막내가 발걸음을 못 떼고 밍기적거리고 있을 때.

내가 막내를 불렀다.

“지호야.”

“네.”

“지호야 지호야.”

“어…….”

비주가 고운 미성으로 내게 가담해 주었다.

아이돌쇼에서 불렀던 성장기송이었다.

“형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학교 갈 때 가방 꼭 닫기.”

중현이까지 거들자 얼굴이 살짝 벌게진 우리 막내가 도망을 쳤다.

그 모습에 우리 셋은 키득거리며 하이 파이브를 했다.

“좋은 호흡이었다.”

“간만에 타피오카 좀 했네요.”

티키타카겠지.

우리 언어 천재를 보면서 아련하게 웃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보니 이제는 팬들도 지치고, 중계진도 지치고, 제작진도 지치고.

선수로 나온 아이돌들은 환장하고 있었다.

“집…….”

“아, 엄마 보고 싶다.”

나는 우리 김덕순 여사 보고 싶다.

새벽 3시부터 메이크업 하고 와서 이 시간까지 차가운 경기장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으니 멍하다.

경연이 얼마 안 남아서 몸을 최대한 긴장시키고 있어서 그렇지.

여기서 조금만 방심해서 풀어졌다간 곧바로 몸살이 걸려서 며칠 동안 끙끙 앓을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졸리고. 표정 좀 편하게 풀고 싶고.

그러다 보니 우리 김덕순 여사 품에 10초 동안이라도 안겨서 쉬고 싶은 기분이었다.

뭔가 현장 음향 문제가 있는지 제작진들이 또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또 뭐가 딜레이야.”

“존나 딜레이네.”

“이거 경기 결과 스포하면 출전금지라고 하지 않았나? 이따 끝나고 회사 몰래 확 스포해 버릴까?”

여기저기서 한탄 어린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셋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에게 기댔다.

“만두, 만두 만두 만~두.”

“형 당첨이에요.”

벌 대신에 동생들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기다렸다.

얼마 안 가 녹화가 속개됐다.

남은 것은 이제 여자 400미터 계주와 남자 400미터 계주.

중현이가 트랙에 서는 걸그룹 멤버들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쉬워요. 계주 꼭 해보고 싶었는데.”

“피곤한데 잘됐지, 뭐. 우린 그냥 눈으로만 즐기자.”

400미터 계주는 원래 우리도 나갈 계획이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룹이 다섯인데 미성년자가 둘.

릴레이 경주를 하려면 넷이 필요한데 셋으로는 라인업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생각에는 중현이 하나만 데려다 놔도 충분할 것 같긴 하지만, 규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었다.

내년에 리혁이가 성인이 될 때를 기약해야지 뭐.

-여자 400미터 계주 결승입니다!

-준비! 네, 라비앙로즈가 빠르게 치고 나가네요.

해설진의 목소리가 울리는 동안 모두 하품을 겨우겨우 참아 가며 야밤의 레이스를 구경했다.

이거 설에 보는 분들은 낮에 찍어 놓은 건 줄 알겠지?

사실은 밤 12시에 가까운데 말야.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부릅뜨는 동안 계주는 MOP 엔터의 신인 걸그룹 세레니티가 우승을 거뒀다.

씨름 우승으로 힘을 다 뺀 스칼렛은 초반 스퍼트를 내다가 막판에 힘이 빠져서 동메달.

은메달은 DNS 미디어의 걸그룹 라비앙로즈였다.

회사끼리 라이벌 구도기는 하지만 두 그룹이 서로 환하게 웃으며 포옹하는 걸 보면 우리 민초단처럼 사이가 좋은 모양이다.

이어진 남자 400미터 계주의 우승자는 스트릿 보이즈.

“축하해요!”

“아, 감사합니다. 진짜 살았네요.”

마지막 주자로 죽을힘을 다해 뛰어온 한조와 가볍게 포옹을 나누었다. 상대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뉴블랙 분들이 양궁 금메달 딴 이후로 실장님 표정이 되게 어두우셨거든요. 대표님도 그렇고.”

“고생했어요.”

“이제 눈치 좀 덜 볼 것 같아요.”

그나마 살았다는 듯 안심한 표정을 짓는 이에게 내가 토닥여 주며 친목을 나누었다.

옆에서 얼굴이 쏙 내밀어졌다.

“나는? 나 2등인데.”

“님은 저리 가세요.”

“……와. 농구 끝났다고 이러는 거 봐. 주장님 주장님 하면서 졸레졸레 따라다닐 때는 언제고!”

“없는 말을 자유분방하게 지어내네.”

‘와, 와’ 하면서 배신당했다는 얼굴로 쫓아오는 초록머리 요괴를 한참 동안 따돌렸다.

자기가 키웠는데 배신한다고 날 비난했다.

그래서 대체 네가 언제 어디서 날 키운 거냐고 물으니 우리 사이에 육하원칙을 따지냐면서 치사하다고 했다.

한편 녹화가 거의 끝나 가면서 오늘 같이 촬영하면서 인사를 나누었던 아이돌 선배, 같은 신인 보이그룹들을 찾아 인사를 했다.

헤어지기 전에 좋은 인상을 남기는 건 사회생활의 필수였다.

다만 걸그룹과는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회사에서 주의를 주기도 하지만, 태현이가 조언해 주기를.

-나 지난번에 주하나랑 어쩌다 눈 마주쳤는데 미튜브에 영상 엄청 올라왔거든.

외국 쪽에서 무슨 영상을 만든다고 했다.

지나가다 눈만 살짝 마주쳤을 뿐인데 로맨스 BGM이 깔린 영상이 나온다고 하나.

그 때문에 물과 기름처럼 서로가 서로를 피해 다녔다.

대신에 같은 성별끼리는 친하게 지내고.

“행님.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네, 선배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 뒤끝 없는 사람이에요.”

“저희 형이 그런 건 안 된대요.”

“……어쩔 수 없네요. 그러면.’

중현이 옆에 공손하게 서 있는 틴스피릿의 연후.

사춘기가 치료된 듯한 얼굴로 연후가 중현이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제가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요. 행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몸을 만들 수 있나요?”

“음… 비결이요.”

마치 복싱 선수를 선망하는 초등학생 같은 눈빛을 보내는 미소년이 보였다.

본인의 곱상함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중현이가 고민하다가 말했다.

“운동도 운동이지만 영양소 섭취가 중요해요. 평소에 음식 골고루 드세요?”

“아뇨…….”

“밥도 골고루 먹고. 단백질뿐만 아니라 섬유소가 중요한데 야채나 과일 드셔야 해요.”

전문 헬스 트레이너처럼 운동에 관해서 진지하게 말하는 중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근처에서 중현이에게 엄지척을 하고 있는 틴스피릿의 리더 휘연이 눈에 들어왔다.

비주가 귀띔을 해주었다.

“아까 저 선배님이 중현이한테 와서 추파춥스 하나 주고 저렇게 대답 좀 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추파춥스면 인정이지.”

납득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피날레.

대망의 종합 우승팀 트로피 수여식이었다.

-L팀 앞으로 나와 주세요!

우리 셋과 스칼렛 멤버들이 한데 모여 번갈아 가면서 트로피를 들자, 수플레와 커튼이 동시에 환호해 주었다.

널찍한 실내 체육관.

그 속에 모여 있는 모든 풍경을 눈에 담으며 웃었다.

몹시 피곤하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 하루라는 생각이 들었다.

팬분들에게 하트를 보내며 경기장을 떠나는 내 모습에 옆에서 같이 곰 하트를 그리던 중현이가 말했다.

“형, 되게 기분 좋아 보여요.”

“맞아.”

왜냐하면 정말로 기분 좋은 일이 있거든.

*   *   *

레몬 엔터테인먼트 CEO룸.

“핫핫핫!”

매니저들이 찍어 보낸 현장 사진을 보면서 박규호 대표가 연신 의자 팔걸이를 치며 웃었다.

“흐핫핫핫!”

천장을 보며 그가 웃었다.

그러곤 주변에서 ‘왜 저래’ 하는 얼굴로 야식을 먹고 있던 본부장과 조 이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곧바로 두 직장인이 ‘핫핫’ 웃으며 표정 관리를 했다.

“내가!”

박 대표가 술이 거나한 얼굴로 외쳤다.

“이 규호가!”

그 말에 두 남자가 시선을 교환했다.

‘3인칭 쓰시네.’

‘취하셨네요. 대표님.’

DNS 임 대표한테 술을 얻어먹고 온 게 연신 기쁜 듯 박 대표가 웃음을 터뜨렸다.

“중학교 때부터 태진 레코드까지 현식이 그놈이랑 아웅다웅하면서 맨날 지고 그랬는데! 내가 애들은 잘 키웠지 암! 핫핫핫! 아까 현식이 그놈 얼굴이 개불 같았어!”

“……그만큼 좋으세요?”

“그러어엄!”

박 대표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이기는 게 최고야.”

한참 동안 그렇게 웃던 박규호 대표는 얼마 안 가 물을 몇 잔이나 마시며 평소의 온화한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흥분한 기운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참, 본부장아.”

“네.”

“스칼렛 애들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사 줘. 눈꽃등심이고 뭐고 내가 사비로 다 사 준다고 말해.”

“예, 대표님.”

“그리고.”

그의 시선이 조 이사에게 향했다.

“내가 우주한테 종합 우승하면 장비 좀 사준다고 했는데. 우리 조 이사 집에 있는 장비랑 같은 거 사고 싶다던데. 그거 뭔지 좀 알려 줄 수 있나?”

“……예?”

“왜 그래?”

“대표님.”

조 이사가 눈을 깜빡거렸다.

“그거 가격 검색해 보셨어요?”

“아니.”

“……일 났네. 약속하셨어요, 그거?”

“그렇긴 한데…….”

뭔가 불길함을 깨달은 박규호 대표가 조 이사가 불러주는 모델명에 맞춰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했다.

“……?”

박 대표가 눈을 깜빡였다.

“이,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안경닦이가 어디 있지.”

“여기요.”

곧바로 안경을 닦은 박 대표가 비명을 질렀다.

“0이 하나 더 있었어?”

“…….”

그런 때가 있다.

온 우주의 기운이 쓸려나가듯이 술기운이 대번에 씻겨나가면서 정신이 퍼뜩 드는 순간.

얼굴의 벌건 기운이 삽시간에 빠져나가고, 박 대표의 자세가 청학동 소년처럼 꼿꼿해졌다.

“왜 그러세…… 허억!”

호기심에 고개를 들이밀었던 본부장도 비명을 질렀고, 조 이사만 짠한 미소를 보낼 뿐이었다.

‘망했다.’

온갖 거드름은 다 피워 놓고 사 준다고 장담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되지?

‘끝나고 전화하라고까지 했는데.’

박 대표의 손이 달달 떨렸다.

그리고 그때…….

“뜨아!”

영화관에서 놀라 팝콘을 터뜨리는 사람처럼 박규호 대표가 핸드폰을 허공으로 던졌다.

지이잉-.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이 거칠게 진동했다.

액정에는 ‘우리 신통방통 복덩이 우주☆’라는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

박규호 대표는 일단 저 이름부터 바꿔 놔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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