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07)화 (20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07화

고요한 목소리였다.

그대여

오늘과 어제가 만나는 길

그곳에서

그대 나를 보았네

감았던 눈을 반쯤 뜬 뉴블랙의 메인 보컬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 큰 동작은 아니었다.

한 손으론 마이크를 잡고, 다른 손으로 노래를 표현하고.

짧은 소절.

허나 청량한 목소리가 던진 파문은 객석을 뒤흔들었다.

돌멩이가 떨어진 연못에 물결이 치듯이 그 충격이 관객들을 휘감은 것이다.

‘와…….’

호소하듯 숨소리 섞인 첫 소절에 관객들은 눈을 한껏 치뜨거나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연예인 패널들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쟤 뭐야?’

무대 정중앙에 있는 메인 보컬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새하얀 피부.

표정부터 생김새까지 온통 예각으로 날카롭게 구성된 멤버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방금 첫 소절이 얼마나 좋았는지 무의식적으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당사자는 나는 당신들에게 할 이야기를 마쳤다는 듯 다시 눈을 감을 뿐이었다.

이제는 피아노의 멜로디나 네 멤버가 만들어 가던 화음도.

메인 보컬의 맑은 목소리도 사라진 무대.

갑작스러운 빈 공간이 생기면 공기가 밀려들어가듯이 관객들의 시선이 저절로 무대에 고정됐다.

그리고.

빈 공간을 다시 우주의 목소리가 채우기 시작했다.

꽃향기는 여전한데

그대 왜 흔들리나요

지나온 길

그대 마음 속 있나요

섬세한 악기를 연주하듯이 리드 보컬이 나긋하게 부르며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옆에 선 막내가 부드럽게 화음을 넣어주었다.

뉴블랙의 멤버들은 저마다 자신의 파트를 부르면서 앞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때로는 의미 없어도

의미 있어도

왼편에선 비주와 중현이 노래를 부르고.

새들은 떠나가고

그대 이미 여기 왔는걸

오른편에선 우주와 지호가 노래를 주고받았다.

중간에서 만난 이들이 서로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으면서 화음을 맞춰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리혁의 양옆으로 늘어섰을 때.

다시 한 번, 메인 보컬이 마이크를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그러니 그대

내 끝으로 다가와

소리 내어 그대 마음

또 별처럼 빛나던-

사랑, 그리고

모든 것을 이야기합시다

늦봄에 핀 꽃이 계절의 마지막을 장식하듯이 맑은 목소리가 그 화음의 끝을 장식했다.

하나 된 다섯의 목소리가 긴 여운을 내며 흩어지는 순간.

방청석에는 침묵이 자리 잡았다.

“…….”

고작 30초 남짓한 시간.

본 노래에 들어가기 전 인트로였지만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는 걸 느꼈다.

‘……뭐야?’

그간 너희들이 우리에게 품었던 선입견을 고쳐주겠다는 듯 작정하고 준비한 무대였다.

곳곳에서 객석을 비추던 카메라들이 놀라거나 당황하는 관객들의 얼굴을 담았다.

어느 커플은 놀란 얼굴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진짜 뭐지…?’

다른 가수들의 공연이었다면 이 정도로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차우현이 똑같은 노래를 했다면 ‘역시…’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을 터였다.

하지만 저기 있는 것은 신인 아이돌 뉴블랙이었다.

비주얼은 훌륭하지만 딱히 그 실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던 그룹.

특별한 이야깃거리라고 해 봐야 얼굴 정도.

그런 까닭에 녹화 오프닝 때도 연예인 패널들과 MC도 실력보다는 비주얼에 포커스를 두었던 터였다.

전반적인 분위기부터가 뉴블랙의 이미지는 ‘선배들에 비하면 조금 부족하더라도 노력하는 막내’로 포지셔닝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있었다.

‘와…….’

명목상으로 보컬 포지션을 나누긴 했지만, 그게 무색할 만큼 누구 하나 떨어지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귀엽게만 보이던 막내마저도 변화무쌍한 음정에 여유로이 화음을 넣을 줄 아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도 지호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몇몇 사람들이 위화감을 느낄 정도였다.

‘오프닝 토크 때 본인 입으로 자기가 제일 부족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메인이나 리드 보컬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단지 리혁과 우주가 다른 선배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노래를 잘할 뿐이었다.

탄탄한 느낌을 주는, 풍부한 성량의 리드 보컬 우주.

기술적인 면을 떠나 그냥 듣다 보면 쟤는 타고 났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메인 보컬 리혁.

두 보컬을 튼튼하게 받쳐 주는 나머지 셋의 목소리까지.

그야말로 버릴 것 하나 없는 조합이었다.

‘잘한다.’

그것이 첫 30초를 감상한 관객들에게 남은 인상이었다.

놀라고 당황했던 것도 잠시.

눈앞의 신인 아이돌 그룹이 실력자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관객들의 마음이 편해졌다.

이윽고 모두 미소를 짓거나 기대와 호기심을 가득 품은 채 무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무대.

경연이 끝난다는 아쉬움을 달랠 만큼 멋진 무대가 완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편.

그 시각 무대를 바라보는 눈동자들은 관객들뿐만이 아니었다.

*   *   *

뉴블랙이 준비한 ‘인생’의 인트로가 한창 이어질 때.

심사 위원석에 앉아 있는 작곡가 표형원이 미소를 지었다.

‘이것 참.’

예상치 못한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고개를 슬쩍 돌아보니 어느덧 방청객들은 몰입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뒤바뀐 공기였다.

뉴블랙이 초반 30초 동안 던진 승부수가 성공하면서 관객들을 완전히 자기 편으로 만든 것이다.

‘이게 신인다운 맛이지.’

패기 있게 도전장을 내미는 듯한 다섯 아이돌의 태도에 작곡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가 호평을 내리는 것은 단순히 보컬 실력이 아니었다.

‘인트로를 잘 짜왔네.’

구성적인 측면에서 인트로 자체에 호평이 나왔다.

겉보기에는 뚝 끊기는 것처럼 보이는 피아노와 화음은 사실 그 소리에 있어서 연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자연스러운 하나의 흐름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할까.

‘저 친구가 편곡을 맡았다고 했지?’

작곡가의 시선이 무대에 서 있는 뉴블랙의 리더에게 고정됐다.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메인 보컬 애도 그렇고. 얘가 작곡하는 것도 저 나이에 나올 수 있는 그게 아닌데.’

이 자리에 있는 관객들은 그저 보컬 실력에 놀랄 뿐이었지만, 전문 작곡가에겐 그 부분이 더 신기했다.

‘정말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도록 만들었어.’

30초 동안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인트로는 관객들에게 노재현의 ‘인생’이 어떤 노래인지 소개하고 있었다.

영리한 계획이었다.

‘도전, 명곡 발굴단!’은 일반적인 경연 프로그램과는 궤를 달리했다.

다른 서바이벌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기본적으로 커버 곡을 선정할 때 모두가 아는 노래를 선정한다.

들으면 ‘아!’ 하는 노래.

하지만 명곡 발굴단은 그 취지부터가 사람들이 모르는 노래를 발굴하자는 거였다.

그런 까닭에 기존 곡들과 비교하면 감성적인 측면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TV 채널을 돌릴 때 모르는 드라마 장면을 보며 감정 이입을 하기 어려운 것처럼 무언가에 몰입을 하려면 적어도 그게 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뉴블랙이 준비한 인트로는 바로 그 부분을 파고들었다.

관객들이 노래에 익숙해지도록 노래의 하이라이트와 중요 지점을 요약해서 들려준 다음, 본 무대를 진행해서 사람들에게 더 몰입감을 주도록 한 것이다.

물론 이런 맹점은 다른 가수들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저마다 VCR이나 인트로 등 여러 방법을 활용해서 최대한 미리 소개를 한 터였다.

하지만 뉴블랙이 준비한 것은 다른 이들에 비해서 더 돋보이는 면이 있었다.

더 쉽고 확 와닿았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아마…….

‘노래에 대한 애정이 있네.’

다른 가수들이 부른 인트로는 대부분 제3자인 작곡가들이 편곡을 해 준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라고 해도 그 곡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리학에 통달한 학자가 있어도 동네 지리는 그곳에서 30년 산 사람보다 못하듯이, 다른 곡의 인트로와 달리 ‘인생’의 인트로는 그 노래를 누구보다 더 많이 듣고 애정을 가진 이가 만든 거였다.

편곡만 들어도 이 노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절로 느껴졌다.

거기다 퍼포먼스까지.

편곡도 직관적인데, 퍼포먼스도 인생이 어떤 노래인지 한눈에 알아보도록 만들었다.

여러 갈래의 길에서 빠져 나온 이들이 서로에게 따스한 목소리를 속삭이며 마지막에는 한곳에 만나는 듯한 모습.

편곡을 준비한 멤버, 퍼포먼스를 준비한 멤버, 그것을 부르는 멤버들의 삼박자가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해당 곡에 대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

‘선생님 좋으시겠네.’

원곡자들이 모인 자리 정가운데, 페도라를 쓴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어딘가 뭉클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모습.

작곡가 표형원은 그 기분을 이해했다.

뛰어난 후배 가수가 자신의 노래를 어마어마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준비했는데 싫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공감하듯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다른 심사위원들이 속삭였다.

“……어우, 얘네 잘하는데요?”

“그죠. 신인 같지가 않아요.”

“확실히 잘하네. 예상 밖이야.”

세 심사위원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그 동안 무대에서는 인트로가 끝나고 본무대가 시작됐다.

파란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어가는 조명.

따스하게 물들어가는 다섯 아이돌이 감정을 잡는 동안 무대 뒤 라이브 밴드가 연주를 시작했다.

*   *   *

건반 연주자가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이며 내는 잔잔한 음의 조합이 공개홀을 울렸다.

노랗고 파란 광선이 엇갈리며 내리쬐는 무대.

기억 속 유채꽃

작은 설렘과 기쁨 내 몫이었네

풍랑과 세월에 밀려

어머님의 길을 떠나오기 전까지

마이크를 든 메인 보컬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차분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열 때마다 그 목소리가 공개홀에 있는 사람들의 피부를 스쳤다.

연예인 패널들이 동시에 ‘와…’ 하는 입 모양을 내거나 고개를 흔드는 장면이 카메라에 담겼다.

피아노의 느릿한 멜로디가 노래의 진행에 박자를 맞춰 속도를 서서히 올려갔다.

바톤을 이어받은 건 뉴블랙의 막내였다.

정신없이 걸었네

봄은 다정했고

여름은 화사했고

가을은 어여쁘고

겨울은 슬펐네

눈을 떠보니 이곳이었지

정확한 발음과 발성이 가사를 또렷하게 전달해온다.

평소의 개구쟁이 같은 표정은 사라지고, 노래의 감성을 전달하듯 진지한 얼굴.

정말로 오랜 삶을 살았던 이가 지나온 길을 반추하듯이 마이크를 든 이는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 실력 하나로 경탄을 자아내는 메인 보컬에 이어서 막내의 호소력 짙은 표정이 관객을 더 몰입시켰다.

카메라 쪽에 담담한 시선을 두던 서브 보컬이 마이크를 느릿하게 내려놓음과 동시에 우주가 마이크를 들었다.

앞선 목소리의 잔향이 사라지기 전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때로는

남이 떠민 길이었고

때로는

내가 고른 길이었네

듣기 좋은 목소리가 여러 음역을 오가며 방청객들의 귓가를 적셨다.

큰 소리를 내거나 고음을 지르는 것도 아닌데 공연장의 깊은 구석까지도 그 목소리가 또렷하게 전달되어 왔다.

동시에 현악기가 부드러운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가수 노재현의 지난 노래의 멜로디들이 ‘인생’에 어우러져 그 색을 보완해주었다.

어딘가 느껴지는 옛 향수에 나이 든 중년 관객들의 입가가 부드럽게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안정적인 목소리가 ‘긴장 풀고 편안하게 우리 이야기를 들어요’ 하듯이 귓가에 부드러운 문장을 속삭였다.

그리고, 이어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결국엔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바위에 앉아

내 고른 길 고르지 않은 길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네

내가 놓친 다정한 향기

지나간 여름의 밤

후회하며 또 아쉬워했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살다 보면 잊혀지는 것을

그래야 함을

지금까지 노래에 여러 가지 색을 더했다면, 이번에는 무게감을 주겠다는 듯한 시도였다.

리듬감 있는 목소리와 노래와 랩의 중간을 오갔다.

시집을 암송할 때 ‘노래하듯이’ 라는 문구에 어울리는 종류였다.

동시에 그 사이로 다른 소리들이 끼어들었다.

나머지 넷이 마이크를 들어 소리가 빈 곳을 채워 주었다.

부드러운 화음 속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리듬감 있게 노래를 더 심화시키는 중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인트로에서 한 차례 불렀던 가사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지호가 마이크를 잡고 감정을 잡았다.

그대여

오늘과 어제가 만나는 길

그곳에서

그대 나를 보았네

그동안 어쿠스틱 기타까지 추가된 현악기와 피아노의 연주가 노래를 깊게 이끌어갔다.

노래의 긴장감이 서서히 끌어올려질 때.

리혁이 노래를 이어갔다.

꽃향기는 여전한데

그대 왜 흔들리나요

지나온 길

그대 마음 속 있나요

클라이막스에 다가가면서 팽팽하게 조여졌던 긴장감을 풀어주듯이 편안한 보컬이었다.

방금 전보다 잦아든 라이브 밴드의 멜로디와 함께 꽉 조인 나사를 풀듯이 분위기가 완화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구절 ‘그대 마음 속 있나요’를 소화할 때, 다시 한 번 노래에 긴장을 주었다.

클라이막스로 가는 길의 시작.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멤버가 마이크를 잡았다.

노란 조명 속에 반짝이고 있는 금발의 멤버였다.

때로는 의미 없어도

의미 있어도

새들은 떠나가고

그대 이미 여기 왔는걸

곱디 고운 미성이 흘러나왔다.

음색도 예쁘지만 노래와 함께하는 손짓 하나하나가 눈에 자꾸만 들어와 시선이 가는 멤버였다.

다시금 심화되는 멜로디와 함께 비주가 노래를 고조시키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받은 것은 우주였다.

그러니 그대

내 끝으로 다가와

소리 내어 그대 마음

또 별처럼 빛나던-

사랑, 그리고

모든 것을 이야기합시다

음을 서서히 올리면서 리드 보컬이 눈을 감고 마이크를 고개를 살짝 젖혔다.

하지만 올라갈 듯 말 듯한 음은 여전했다.

고음으로 가고 있지만 완전한 고음은 아니었다.

얇게 시작한 고음이 서서히 두꺼워지며 무대를 꽉 채웠지만 관객들이 약간의 긴장감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확 터뜨리면 좋을 텐데.’

그런 기대를 배반하듯이 우주의 목소리가 음을 서서히 내리면서 다시 그 긴장을 완화할 때였다.

어느 관객은 손을 모으고.

누군가는 집중한 얼굴로 바라보고.

연예인 패널들이 고개를 까딱이면서 무대를 바라볼 때.

츠츠츠.

드럼 하이햇 소리와 함께 베이스 드럼이 서서히 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라이브 밴드의 모든 악기가 연주를 시작했다.

화려하게 움직이는 조명.

드럼,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기타 등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합주하는 연주가 공개홀을 크게 울렸다.

쩌렁쩌렁한 소리.

그간 쌓아올린 것이 폭발하듯 소리가 주는 쾌감에 누군가 소름 돋은 팔을 쓸어 넘길 때.

다섯 명이 동시에 마이크를 들었다.

그대의 햇살은

나의 기억이 되어

고즈넉한 밤에

위로가 될 테니

 

그대 이야기 들려주시오

밤은 길고 기니

함께 이야기 하고

잊어갑시다

정적으로 움직였던 앞선 벌스와 달리 후렴구에는 뉴블랙 멤버들의 동작이 더 커졌다.

짧은 손짓이 커다란 손짓이 되고.

차분하게 소리를 내었던 이들은 고음을 내면서 턱끝을 움직이거나 가슴에 손바닥을 올린 채 음을 터뜨렸다.

공개홀 천장을 뚫고 가듯 시원한 후렴구였다.

한 명이 여기서 고음을 내면, 나머지 멤버들은 추임새와 화음을 넣으며 그 소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단순히 기교를 위한 고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떠나온 길과 가지 못했던 길을 바라보는 이가 미련을 훌훌 털어내듯이 후련함이 느껴지는 노래였다.

지나온 길은 지나온 길이고.

그저 여기까지 걸어 온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위로와 함께 이 노래를 할 동안은 미련을 잠시 버려 두자는 듯한 이야기였다.

젊은 관객들이 미소를 짓거나 두 손을 모은 채 집중하고 노래를 듣는 동안.

노래의 주 대상이 되는 중년 관객들은 차분한 얼굴로 무대를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볍게 웃으며 무르팍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는 이도 카메라에 잡혔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품은 눈빛이 무대를 집중하며 바라보았다.

그동안 후렴구가 끝났다.

1절이 끝나고 2절은 비슷한 구도로 갔다.

보다 더 심화된 멜로디가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고 이제는 완전히 무대에 빠져든 관객들에게 뉴블랙이 가사를 읊었다.

멤버들도 즐기는 마음으로 임하는 듯 보다 더 편한 태도로 노래를 불렀다.

자연스러웠다.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몰입하면.

나머지 하나는 저도 모르게 분위기를 타서 거기에 음과 추임새를 추가해 주는 식이었다.

날실과 씨실이 얽혀 예쁜 옷감을 만들어 내듯이 뉴블랙 멤버들의 목소리가 얽히고 또 얽혔다.

다섯 목소리가 엮어내는 따스한 감정이 관객을 포근하게 감싸왔다.

마지막 후렴구.

1절과 2절에서 모두 쌓아온 것을 터뜨리는 구간에 이르러서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와…….’

감탄을 하는 정도가 높아지면 오히려 반응이 적어지듯이 가만히 눈을 크게 뜨고 보거나, 질렸다는 듯 입을 살짝 벌리는 표정이 카메라에 생생하게 잡혀 왔다.

관계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리허설 때보다 몇 배는 더 잘하는 모습에 제작진들은 감탄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고.

연예인 패널 석에 있는 몇몇이 오버하는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등받이에 몸을 잔뜩 기울이며 ‘이야…’ 하는 얼굴로 주변 사람들에게 ‘너도 그렇지? 너도?’ 하는 표정을 지었다.

심사위원 석에 앉은 이들은 그 음의 조합에 미소를 지었고.

오늘 참가한 가수들이 저마다 대기실에서 TV 속 뉴블랙을 보며 ‘하……’ 하는 헛웃음이나 쓴웃음을 머금는 장면이 관찰 카메라에 실시간으로 잡히고 있었다.

‘성공이다!’

그런 모든 반응을 모니터링 중이던 작가진과 메인 피디는 성공을 자축하며 미소를 지었다.

뉴블랙의 목소리가 온 공연장을 가득 채울 때, 누군가 피디의 귀에다 대고 외쳤다.

“피디님, 저기 봐봐요!”

“어디!”

“노재현 선생님이요!”

메인 피디는 원곡자들의 얼굴이 잡히고 있는 좌석 쪽 카메라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함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만 이곳에서도 상대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표정이 생생하게 전달되어 왔다.

뉴블랙의 노래가 마지막으로 다가가는 클라이막스.

그 노래의 시작과 끝을 지켜보는 원로 가수의 얼굴에는 누구보다 흐뭇하고 행복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저건 꼭 담아야겠어.’

그런 결심을 하고 있는 동안 메인피디는 홀가분한 미소를 지었다.

성공적인 파이널 공연.

서서히 잦아드는 뉴블랙의 목소리와 라이브 밴드의 연주를 들으며 그는 무대 쪽을 향해 서서히 걸어갔다.

이제 축제는 끝났고.

그 결과를 확인해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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