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09화
28장. 일과 일상
오랜만에 잠을 푹 잤다.
띄엄띄엄 새우잠을 자면서 연습하던 시간이 끝나고, 간만에 8시간을 넘게 자니 몸이 개운…….
“흐어어.”
“끄응.”
해야 하는데.
어째 잔뜩 몸살에 걸려 버린 사람들만 가득했다.
“으아, 저 죽겠어여.”
“왜 이렇게 몸이 으슬으슬하지. 히터 온도 제대로 된 거 맞아요? 좀 더 올려 봐요.”
“잠시만.”
작업실 소파에 앉아 있던 비주가 담요에 몸을 감싼 채 나를 불렀다.
“혀엉.”
완전 코맹맹이 목소리였다.
“응?”
“리혁이가 춥다는데, 작업실 온도 좀 더 올려도 돼요……? 형 일하는 데 방해될까 봐.”
“그래. 조금 더 올려.”
곧바로 비주가 손을 뻗어 온도를 건드렸다.
천장에서 흘러나오는 온풍.
담요에 둘러싸인 동생들이 눈을 감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온도.”
“따뜻.”
“습도.”
“완벽.”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쓴 녀석들이 벌게진 코를 훌쩍이며 음료를 홀짝였다.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막내가 편의점 오뎅국을 호로록 마시며 물었다.
“왜여? 이렇게 담요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평소보다 귀여움이 더 폭발하는 거 같아여?”
“그래서 본 거 아닌데.”
“…….”
“가오나시 같아. 너네.”
“……!”
어떻게 그리 심한 말을 하냐면서 아우성이 돌아왔다.
근데 은근히 덥네. 이거.
애들이 자꾸 춥다면서 온도를 올려놓다 보니 작업실이 초여름 날씨 같아졌다.
처음에는 바람을 줄일까 했는데 멤버들 모습이 눈에 밟혀서 그냥 내가 후드티를 벗기로 했다.
옆에서 티셔츠 차림으로 머신을 조작하던 중현이가 ‘형도 덥죠?’하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혼자 건강한 얼굴이었다.
“넌 괜찮아?”
“네.”
“중현아, 형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 태어나서 감기 걸려 본 적 있어? 아니면 어떤 병이라도.”
“음…….”
중현이가 고민하더니 ‘아’하면서 답했다.
“저 있어요. 아팠던 적.”
“……그걸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는 거 자체가 대단한데.”
“초등학교 때 회 잘못 먹어서 장염 걸린 적 있어요.”
난 왜 그 회가 더 대단한 거 같지.
새삼 튼튼한 우리 셋째를 보며 절로 감탄이 나왔다.
부러운 체력이다. 당장 나도 이렇게 골골대고 있는 걸.
“에으흐흣…… 취!”
작업실 기기에 병균이라도 묻을까 봐 휴지를 뽑을 때까지 재채기를 겨우 참아냈다.
“어으, 죽겠다아.”
“어깨라도 주물러 줄까요. 형?”
“응응.”
우리 장수풍뎅이에게 어깨를 맡긴 채 생각에 잠겼다.
어젯밤 일이 새록새록 지나간다.
경연에서 영예로운 1위를 차지한 후 대기실에 돌아와 멤버들, 스탭들과 함께 한참을 부여잡고 으쌰으쌰했지.
최악의 컨디션인 상황에서도 해낸 우리 모두에게 뿌듯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역시 내 노래로는 1등을 해야 하는 법이지. 수고들 했네. 내 마음에 쏙 드는 무대였어.
원곡자인 노재현 선생님이 행복해하는 표정이 좋았다.
평소 창백하던 뺨이 발그레해질 만큼 혈색이 돌아온 얼굴이었는데, 우리 덕분에 더 빨리 병마에서 회복할 것 같다는 농을 던지실 정도였다.
아주머니도 휠체어 뒤에서 연신 미소를 지으셨다.
-선생님 이렇게 크게 웃으시는 거 오랜만에 봐요.
-간만에 노래를 제대로 들으니까 신이 나는구먼. 나도 보면서 노래가 하고 싶어지더라고.
얼른 마이크를 잡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운동과 재활을 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귤 좀 보내게 주소 좀 찍어 달라고 하셨는데, 아마 그게 오면 당분간 비주의 사과 마수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싶다.
“으으…….”
하지만 그런 기쁨과 별개로.
어제 경연이 끝나자마자 중현이를 뺀 나머지 넷은 단체로 몸살에 걸려 버렸다.
돌림픽이 끝나고 겨우겨우 긴장을 붙들고 있었는데, 경연이 끝나고 긴장이 풀리자 감기 기운이 고삐 풀린 왕지호처럼 날뛰었다.
열이 심하게 나는 건 아니지만 다들 목이 잠겨 있거나 갈라졌고, 추위를 호소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니저 형들과 병원을 가서 감기약도 처방 받고, 비타민 주사도 한 대씩 맞고 왔지만 몸살은 전혀 풀릴 기미가 안 보였다.
“우주 형.”
뒤를 돌아보니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비주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도 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여요. 이러다가 삐끗하면 진짜 크게 아플 수도 있어요.”
“나 지금 멀쩡해.”
비주가 고개를 젓더니 중현이를 불렀다.
“중현아.”
“응.”
굳은살 가득한 손이 내 이마에 턱 얹는다. 그러곤 중현이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37.3도 같은 느낌.”
“37.3… 알았어. 이따가 한 시간 뒤에 또 재고. 아니다, 너 어차피 기억 안 할 거니까 내가 말해 줄게.”
“오키.”
차트를 보는 의사와 간호사처럼 대화하는 녀석들의 모습에 그저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뭐 하니. 너희.
자리로 돌아가면서도 비주는 연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말했다.
“형, 진짜 어디 안 좋으면 바로 말해요. 알았죠?”
“녜녜.”
“제대로 대답해야죠. 형.”
“……네.”
내가 을이다. 내가 을이야.
서글픈 얼굴로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헤드폰을 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귀를 울렸다.
발라드곡.
잔잔한 멜로디에서 시작해서 후렴구에서 화음으로 터지는, 우리가 어제 부른 ‘인생’이었다.
1차 경연이 끝나고 경연곡이 음원으로 공개될 예정이어서 녹음을 앞두고 미리 후반부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어제 현장에서 미묘했거나 아쉬웠던 부분 위주로 고치는 식으로.
하지만 감기약 때문인지 머리가 멍해서 집중이 잘 안 된다.
멍하다.
보고 있다 보면 드럼은 드럼이요, 첼로는 첼로요 하는 수준이다.
결국 헤드폰을 벗고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이고.”
집중이 안 되니 갑갑하다. 그렇다고 완전히 쉴 수도 없고.
보통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
지금 악화된 컨디션은 돌림픽 녹화와 평소 두세 시간의 수면이 합쳐지면서 누적된 결과물이었다.
단기간에 쉬이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오늘 하루 긴장을 놓고 푹 쉬면 내일은 정말 침대에서 못 나올 것 같다고 할까.
그래서 지금 뭐라도 하려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이번 주 스케줄이 다 안 끝났기 때문이었다.
“내일 녹화만 아니면 진짜 저 숙소에서 하루 종일 뒹굴었을 거예여.”
“나도.”
“저기요. 우리 내일만 날이 아니에요. 주말에 행사는 어쩌고요.”
“……미쳤다. 진짜 그거 왜 한다고 했을까여. 실장님이 말렸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나도 후회가 된다.
석환 형이 ‘너희 컨디션 안 될텐데…? 안 될 텐데…?’ 하는 의문을 품었는데 우리가 ‘무슨 소리? 우린 어리고 튼튼’하는 태도로 승낙한 행사 두어 개가 주말에 포진해 있었다.
거기다 당장 내일 2차 경연 준비 관련해서 PBS로 녹화하러 가야 하고.
“…….”
왜 눈에 습기가 차는 거 같지.
보리차를 홀짝이던 리혁이가 내 표정을 보더니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네요.”
“아니야.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고개를 젓자 다른 녀석들이 키득거렸다.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과자를 부스럭거리던 지호가 말했다.
“매운 거 먹고 싶어여. 매운 거. 이렇게 감기를 떨치고 싶을 때는 매운 걸 먹어 줘야 해여.”
“떡볶이?”
“아녀. 오늘은 약간 달콤 맵보다는 얼큰 맵이 어울리는 날이에여. 부대찌개나 곱창전골?”
“아. 국물 좋지.”
중현이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동안 저녁 먹을 거리로 30분 넘게 수다를 떠는데, 지호가 내게 물었다.
“형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여?”
“나는 오늘은 뭐, 딱히. 입맛이 별로 없어서.”
입맛이 없다는 말에 중현이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너희 먹고 싶은 거 따라갈게.”
“그러면…….”
동생들이 저녁 메뉴를 결정하려고 다시 30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눌 때, 작업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울렸다.
우리 매니저가 들어왔다.
“아, 원석이 형.”
“올라오다가 잠시 들렀어.”
도원석이 우리의 상태를 보고는 짠한 미소를 지었다.
영양제나 비타민 음료가 가득 담긴 봉지를 건네는 상대였다.
몸 상태는 어떠냐면서 한참 동안 걱정 어린 얼굴로 확인하던 상대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 참. 이거 얘기하러 나왔는데. 조금 이따가 실장님이 너희 다 데리고 내려오라고 하셨거든.”
“왜요?”
“돌림픽 때 대표님이 고기 사 준다고 하셨잖아.”
“아……!”
까먹고 있었다.
“어떻게 고기를 잊어버릴 수가 있져. 우리?”
“반성하자.”
“그래서 고기 먹으러가는 거예요. 지금?”
원석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덧붙였다.
“소고기.”
“오오.”
“꽃등심.”
“오오오!”
우리의 얼굴에 홍조가 돌기 시작했다. 단지 고기라는 키워드를 들었을 뿐인데도 그랬다.
매니저가 웃으며 덧붙였다.
“스칼렛도 이번에 고기 35인분 먹었다고, 너희도 오늘 하루 돈 걱정 말고 먹으라고 대표님이 그러셨대.”
“대표님……!”
“모쪼록 너희가 먹고 몸살이 좀 나으면…… 얘들아?”
벌써부터 옷을 챙기는 우리 모습에 상대가 눈을 깜빡였다.
담요에 둘러싸여 ‘으이잉’하던 모습은 싹 사라지고 활기가 넘치고 있는 우리 애들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형, 입맛 없다면서여…?”
“생겼어.”
내가 ‘소고기잖아’ 하며 어깨를 으쓱이니 다들 이해한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그래서 형, 저희 언제 가면 되나요?”
“얘들아. 아직 멀었어. 좀 느긋하게…….”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아, 그러면 이번 경연곡 작업한 거 한 번 들어…….”
“가자. 얘들아.”
매니저가 다급하게 문을 박차고 나섰다.
흥겨운 웃음과 함께 우리는 고기를 향해 달려나갔다.
* * *
다음 날. PBS 본관.
“음? 어제 뭐 좋은 일 있었어요? 다들 피부도 좀 뽀얘진 거 같고.”
“네.”
방송국 복도에서 만난 송보형 씨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 주었다.
“저희 어제 회식으로 소고기 먹었어요.”
“…….”
“다섯이서 40인분 먹었어요.”
처음에 눈을 멀뚱멀뚱 뜨던 상대가 이내 우리의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떤 포인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웃겨 하는 얼굴이었다.
본관 복도에서 마주친 트로트 가수와 함께 녹화장으로 향했다.
상대가 너스레를 떨었다.
“진짜 어제 너무 잘하더라고. 내가 보면서 ‘이야!’ 이러면서 매니저랑 같이 박수도 친 거 아냐.”
“기립박수였나여?”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앉아서 쳤지~”
능글맞은 어조에 우리가 웃었다.
“그런데 어제 반응이 정말 장난 아니긴 했어.”
“네, 확실히 관객분들이…….”
“아니, 관객 말고. 우리가.”
그가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잘하는 거야 다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 처음 모였을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거 듣고 ‘와, 잘한다’ 다들 그랬거든. 그런데 어제 무대는… 어후. 소름이 돋았다니까.”
“에이, 아니에요. 어제는 운이 좋았어요.”
겸손하게 손사래를 쳤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런 우리에게 송보형이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운으로 되고 안 되는 게 있지. 어제 마지막 무대 끝나고 모일 때였나? 차우현 선배 빼고 다들 표정이 똑같았어요. 이러고.”
그가 사람들의 표정을 따라했다.
어안이 벙벙하고, 허탈한 웃음이 섞여 있는 ‘졌네’ 하는 얼굴.
직접 본 건 아니었지만 어떤 분위기였는지 짐작이 갔다.
“그래서…….”
송보형 씨가 뭐라고 말을 더 이으려고 할 때였다.
맞은편에서 본관 공개홀로 걸어오고 있는 인디밴드와 마주쳤다.
멈칫.
맨 앞에서 걷고 있던 조유리가 우리의 얼굴을 보더니 어딘가 머쓱한 표정으로 눈을 회피했다.
그러곤 인사를 섞을 상황을 피하겠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공개홀로 들어갔다.
“……?”
송보형이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편곡 때문에 그럴 거예요.”
“편곡이요?”
“어제 무대에서 작곡가들 말고 본인들이 편곡을 한 팀이 둘이었잖아. 뉴블랙이랑 조유리 밴드.”
“아아…….”
“아무래도 비교가 좀 됐나 봐요. 어제 혼자 멘탈 나간 표정을 짓고 있더라고.”
원곡의 색을 확 죽여서 기교만 가득하게 불렀다며 혹평을 들은 조유리 밴드의 편곡.
그리고 원곡과 본인들의 색깔을 모두 잘 살렸다며 작곡가들로부터 대호평을 들은 우리 편곡.
방금 상대의 반응을 보건대 굉장히 자존심을 상해하는 듯했다. 그에 대해 민망함도 느끼고.
“솔직히 그만큼 뉴블랙이 편곡을 잘했으니까.”
우리 멤버들이 내 칭찬에 뿌듯해하고 있을 때.
송보형이 마침 할 말이 떠올랐다며 공개홀에 들어가기 전에 말했다.
“그래서 내가 이번 프로에 나오면서 결심을 다시한 거 아냐.”
“……?”
“작곡가한테 편곡 맡기기 전에 우주 씨한테 이것저것 좀 물어보려고. 기대해요. 내가 거머리처럼 찰싹 붙어서 물어볼 거니까.”
자긴 잘될 사람한테 붙는다면서 과장된 미소를 보이는 상대에게 우리도 웃어 보였다.
공개홀에 들어가면서도 ‘내가 찜한 거예요. 찜.’ 하는 트로트 가수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찜하실 것도 없을 거예요.”
“음…….”
상대가 뭘 모른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내 곁에 서 있던 동생들에게 시선을 던져 주었다.
“원래 좀 이래요? 모르는 척하고?”
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진짜 얄미워요. 맨날 기만해.”
“원래 이래여. 다 잘하는데 혼자 모르는 척하면서 ‘흠……’ 하는 게 우주 형 컨셉이거든여.”
“혼자 그런 세계관 속에 살고 있어요.”
“……얘들아.”
멤버들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송보형은 크게 웃음을 터뜨린 후였다.
* * *
“저는 이 곡에서 슬픔이 느껴진 것 같아요. 즐거운 분위기인데 회한의 정서 같은 게…….”
“슬픔.”
“네?”
“아니에요. 계속해요.”
리사가 미소와 함께 계속하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면서 혼자 기억하겠다는 듯 ‘슬픔’ 그러면서 중얼거리는 게 보였다. 마치 나중에 작곡가한테 말해 줘야겠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웃었다.
그런데 곡이 선정될 때마다 다들 반응이 비슷하다.
“모호연 선생님의 곡에서는 저 멜로디가 자주 쓰이는 거 같아요. 추억을 회상하듯 아코디언 소리가…….”
“아코디언 소리.”
“네, 그 부분이 핵심인 것 같아요.”
내 말에 차우현이 ‘흠…’ 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뭐지. 이 분위기.
지난 주와는 분위기가 또 달랐다.
오늘 선정된 1984년의 노래들이 구슬픈 것이 많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꽤 진지한 분위기였다.
지난번에 내가 말할 때는 웃으면서 가볍게 들었는데 이번에는 다들 굉장히 경청하는 느낌이었다.
부담스러울 만큼.
근처 의자에 앉은 송보형이 ‘거봐요’ 하는 얼굴로 내게 웃어 보였다.
“…….”
전반적으로 달라진 분위기라서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어제 경연 때문인지, 다들 귀여운 막내보다는 동등한 경쟁자로서 인식하는 듯하다고 할까.
그중에서도 내 편곡 능력이 주목을 받고 있었다.
어제 선입견을 깬 반전 무대로 시선을 끌었지만 우리의 노래 실력은 이 사람들에게 엄청 특별한 것까지는 아니었다. 노래 실력치는 기본적으로 여기 다섯 경쟁자 모두가 비슷했으니까.
다만 편곡에 있어서 차이는 있었다.
MC인 백상중도 그 부분을 언급했다.
-이야, 우주 씨가 오늘 인기가 많네요.
처음에는 이런 상황이 좋으면서도 은근히 민망했는데, 금세 또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했다.
즐겁게 웃으면서 다른 선배 가수들과 노래에 관한 토크를 주고 받았다.
물론 한 그룹은 빼고.
조유리 밴드는 내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떻게든 한마디를 하려고 했는데 잘 어울려지진 못했다.
자연스럽게 방송 분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할까.
그렇게 달라진 분위기 속에서 녹화를 이어간 후.
“고생하셨습니다!”
“수고들 했어.”
여기저기서 부드러운 인사가 돌아왔다.
가수들뿐만 아니라 스탭들도 전반적으로 달라진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대부분 호의 어린 시선.
처음에 우리가 섭외되었을 때 ‘아이돌…?’ 하면서 의구심 품은 시선들은 쏙 들어가 있었다.
대신 분량을 뽑아낼 유망주로서 우리를 좋게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특히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섭외했던 메인 피디님은 흐뭇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만류한 투자를 성공시킨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상대가 웃으며 말했다.
“그제 녹화분은 지금 편집 중인데, 결과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그 말에 우리 매니저들이 환한 미소를 지을 때, 상대가 시선을 돌려 우리에게 물었다.
“참, 그러고 보니 내일 타 방송사에 나온다고 했지?”
“네.”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2월 7일 토요일.
내일은 지난 1월에 대만에 갔던 파티시에 코리아 녹화분이 드디어 방송에 타는 날이었다.
백성현 피디가 말했다.
“개인적으로 좀 화제가 됐으면 좋겠네. 거기가 요즘 한창 핫한 프로그램 중 하나라서…….”
이내 피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게스트로 나간 거면 뭐, 특별히 언급될 만한 내용이 나오긴 힘들 테니까.”
“…….”
“음?”
묘하게 웃는 우리 모습에 상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어?”
있었죠.
많은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