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12)화 (21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12화

“동영상?”

“넹.”

행사 준비를 하기 위해 들른 숍에서 막내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친구들이 톡으로 링크 보내줬어여. 너희 리더 오빠 미튜브 인기 목록에 있다구.”

“내가?”

“봐봐여.”

“……진짜네.”

진짜로 내 얼굴이 들어있는 썸네일이 보였다.

다만 내용이 예상 외였다.

어제 화제가 되었던 젠민이나 제빵, 그것도 아니면 알바가 나올 줄 알았는데 생뚱맞은 게 보였다.

【 한 아이돌의 외국어 실력을 대만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feat. 뉴블랙 우주 】

…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 미튜버와 친구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장면 위쪽으로 내 얼굴이 흐릿하게 합성되어 있었다.

뭐야.

이렇게 해놓으니까 ‘깨어나세요, 용사님’하는 요정 같잖아.

“푸흡-!”

옆에서 고개를 쏘옥 내밀고 있던 비주가 썸네일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가 메이크업 쌤한테 붙들려 갔다.

“뭐지. 이거.”

내가 막내에게 말했다.

“너 이거 무슨 내용인지 알아?”

“아녀. 형이랑 보려고 아직 안 봐서.”

“그럼 같이 보자.”

리혁이가 조용히 보라며 이어폰을 내밀기에 한 쪽씩 나눠 끼고 막내와 동영상을 시청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대충 인삿말이 이어진 후 본론으로 넘어갔다.

[어제 ‘파티코’에 나온 뉴블랙의 우주 씨가 현지인으로 오해를 받는 장면 보셨죠? 중국어를 너무 잘해서 ‘우젠민’이라는 이름으로 현지 뉴스에 진출까지 했는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오늘의 호기심 해결이라면서 과연 내 외국어 실력이 어떤지, 직접 검증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추천 동영상 리스트를 보니 평소 ‘외국 친구들의 한국에 대한 반응’ 같은 류로 컨텐츠를 만드는 미튜버 같았다.

그러면서 아직 방송을 안 본 친구들을 부르겠다는 말이 이어졌다.

곧바로 테이블에 앉은 대만 유학생들이 이어폰을 끼고 우젠민이 나온 뉴스 클립을 본다.

[와. 방금 누구야? 엄청 잘생겼는데…?]

[연예인이야? 배우나 가수 같아.]

[이거 나 링크 좀. 캡처해서 친구들한테 보여줘야지.]

분량상으로 몇 초 가까이, 내 얼굴에 대한 언급이 스쳐갔는데 그 반응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민망했다.

영상을 보는 모습이 빠르게 지나간 후 리액션 타임.

미튜버가 친구에게 말을 꺼냈다.

[네가 지금 본 인터뷰 영상에서 한국인이 한 명 들어있어.]

[……?]

유학생들이 의문을 품으며 말한다.

[혹시 그 우젠민?]

[오. 어떻게 알았어?]

[잘생겨서……?]

[…….]

그 말이 어이가 없었는지 미튜버와 친구가 서로 마주보다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미튜버가 ‘너 그러면 대만 사람들 못생긴 거냐고’ 몰아가는 통에 친구가 ‘아니야!’ 하면서 손사래를 치면서 해명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혼자 부자연스럽게 튀게 생겼길래 당연히 저 사람이 주인공 아니냐고 생각했단 이야기였다.

[우리나라 아이돌 ‘뉴블랙’의 우주라는 사람이야.]

잠시 미튜버가 우리에 대한 소개를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친구들에게 ‘마스커레이드’를 들려주자 ‘아! 이거 카페에서 나오던 거.’ 하는 반응들이 이어졌다.

이어서 파티코에서 내가 중국어를 했던 파트가 재생 됐다.

[네가 보기에 어땠어? 이 사람의 회화 실력?]

모두 ‘어……’ 하더니 묘한 얼굴로 대답했다.

[솔직히 눈 감고 들으면 전혀 구분 못 할 것 같은데. 이 사람은 그냥 대만인 같아.]

[어거지로 트집을 잡자면 집을 수는 있는데. 그건 이 사람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니까 가능한 거고. 모르고 보면 ‘어? 대만 출신 아이돌이네’ 이랬을걸.]

[디테일이 살아있어. 이 부분. 이 사람은 백퍼 부모님이 대만 사람이거나 아니면 대만에서 좀 살다 온 게 분명해.]

비슷한 결론이 여기저기서 도출됐다.

이건 한국에서만 배워서 될 게 아니라고.

그걸 보며 슥 웃고 있던 미튜버가 내 이력에 대해서 말한다.

[이번에 대만 갈 때 처음 비행기를 타 봤대.]

[……?]

[그리고 이건 평소 중국어 동영상.]

자체 리얼리티에서 내가 중국어를 썼던 장면이 흘러나오자 다들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그냥 중국 사람 같은데…….]

[젠민이 돌려내.]

[이렇게 들으니까 또 중국에서 살다온 사람 같기도 하고. 뭐야. 이 사람?]

모두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언어에 타고났다’고 하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최종 등판한 푸근한 인상의 교수님도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머, 얘 누구니? 우리 원어민 강사로 데려와도 되겠다.]

너스레를 떨던 교수님이 마이크에다 대고 말했다.

[어우, 너무 잘해요. 몇 년 동안 배운 건지 모르겠는데… 정말 언어에 타고난 재능이 있네요. 얼화음이랑 권설음 차이 디테일도 그렇고… 일부러 현지 팬들 위해서 연습한 거 같은데 대단하네요.]

[그런가요?]

[내가 저기 팬들이었으면 감동했지.]

그러면서 너무 잘한다는 교수님의 과찬과 함께 ‘오늘 잘 알아보았습니다’ 하는 미튜버의 요약으로 끝이 났다.

“우와……. 형 제 생각보다 잘하는 거였네여.”

“어우, 야. 민망하다. 이거.”

“창피해하면 안 돼여. 형이 그랬잖아여. 칭찬은 뽑아먹을 수 있을 때 뽑아먹어야 한다.”

영상에서의 반응에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자극적인 미튜브 컨텐츠다 보니 과장이 좀 섞인 게 분명했다.

간질간질하면서 좋긴 한데, 누군가 얼굴에 대놓고 금칠을 해준 느낌이라 약간의 머쓱함을 느낄 때였다.

“푸하하!”

막내랑 댓글창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던 비주도 다시 고개를 쏙 내밀었다가 웃음에 동참했다.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아이돌 컨텐츠인 줄 알고 눌렀는데 의문의 국뽕 느끼는 중 [추천 298

-펄-럭

-외국어는 쟤가 했는데 왜 내가 뿌듯하냐

-보았느냐 대만. 이것이 바로 K중국어다

-K중국어 ㅁㅊ ㅋㅋㅋㅋㅋ

-난 저렇게 특이한 존재가 있다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거 같음..

-대만 유학생들 놀랄 때마다 내 어깨 양쪽으로 한라산 백두산처럼 솟고 있다 [추천 126]

-와.. 어제 보면서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찐으로 잘하는 거였네..

-언어 천재인가?? 비결 있으면 동영상으로 올려줬음 좋겠다

소위 말하는 국뽕 컨텐츠에 나온 것은 또 처음이라 사람들의 반응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비주와 지호가 신이 나서 좋아요를 눌러댔다.

“진짜 별 거 다 나오네요. 형.”

그림자가 드리워져서 돌아보니 중현이가 들여다보면서 신기해하고 있다.

“근데 이건 뭐예요? 지호 아니에요?”

“저여?”

“아니. 지호 주니어.”

“……?”

비주의 손가락 끝을 따라 가는데 추천 동영상 끝자락에 ‘지호댄스’라는 계정의 영상이 있었다.

우리와 어제 행사를 같이 뛰었던 김지호 군이 올린 동영상이었다.

[오늘 행사장에서 뉴블랙 형들 만난 썰]하는 제목을 보면서 웃다가 클릭을 눌렀다.

호빵맨처럼 발그레한 뺨을 지닌 소년이 연습실에서 콜라를 호로록 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어제 너무너무 좋았어요. 막 다들 ‘애기애기’ 이러는데 사실 저 애기 아니잖아요. 10살이고 연습도 많이 하는데. 근데 우주 형이 저 소개하는데 다른 분들처럼 꼬마 미튜버 막 안 그러구 댄서라고 인정해 줘서 너무 좋았…….]

그러면서 형들 너무 친절했다고 어느 형은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하는 동영상을 보며 웃었다.

“야, 진짜 신기하다. 우리가 미튜브 이런데도 다 나오고.”

“그러니까요.”

여태까지 나왔던 동영상은 대부분 직캠 아니면 우리 회사에서 올린 컨텐츠였는데.

검색을 해보니 우리에 대한 동영상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뭔가 변화의 바람이 느껴지는 듯했다.

*   *   *

뉴블랙 멤버들이 미튜브를 보며 행복해하고 있을 때.

수플레들은 다른 이유로 기뻐하고 있었다.

-온다~ 온다~ 유입이 온다아~~

-덩실덩실 춤을 춥시다

-지금까지 보던 흑역사는 모두 넣어 두고 정상인처럼 행동해요 우리

-뉴비들 얼른 들어오시긔!!

팬카페와 SNS,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소분류 카테고리에서 유입 인원이 늘어나고 있었다.

파티코가 주세한의 추석 특집만큼 엄청난 시청률을 자랑하는 건 아니었지만 체감상으론 그때보다 더 큰 반응이었다.

예전에는 쌩신인이라 ‘얘네 누구?’ 하면서 ‘아이돌인가?’ 하는 식으로 흘깃 관심을 보일 뿐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데뷔 초와 달리 대중적 인지도가 살짝이라도 이미 갖춰져 있었으니까.

‘뉴블랙? 그때 주세한 걔네인가?’ 하던 이들도 대부분 마스커레이드를 듣고는 ‘아! 이 노래’ 하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이제는 어디서 이름을 들어 본 듯하다고 느낄 정도.

한편 대중에게 뉴블랙이란 이름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과 별개로 아이돌 팬덤에선 반응이 컸다.

-잡덕인데.. 나 잠시 놀러와도 될까..??

-어제 파티코 보고 너무 호감이어서 이 말하려고 왔어

-수플레들아 나도 오늘부터 예비 숯불~

-여기 분위기 너무 좋다..! 화기애애해보여

-본업 잘하는 신인 애들로만 알고 있었는데 넘 귀여운 것이었다..

평소 뉴블랙을 연말무대 영상이라든가, 웃긴 리얼리티라든가, 신기한 영업글 등으로만 접했던 이들.

그중에서 여러 아이돌을 잡스럽게 좋아한다고 해서 ‘잡덕’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은연중에 호감 비슷한 느낌만 가지고 있던 이들이 수플레들이 모인 곳에 놀러오는 상황.

당연히 풍악을 울릴 만한 일이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람들이.. 붐벼..!

-복작복작한 이 분위기 너무 좋아ㅠ

-신입 숯불이들 이리 오려무나,, 이 할미가 움짤 쪄놓았어요,,

-안 해칠테니까 이 짤방 보고 가요

-진짜 이러다 우리 애들 3집 나오고 그러면 완전 라이징으로 올라가고 그러는 거 아냐???

-신규 덕들 얼른 드루와 드루와

-할짝할짝ㅠㅠ

-훌쩍이라고 하라곸ㅋㅋㅋ 할짝할짝이면 우리 변태같잖아요

-저희 이상한 애들 아니에요. 취향이 이상할 뿐

일시적인 상황일지, 아니면 앞으로도 이럴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간 뉴블랙이 쌓아온 것들이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유의미한 유입이 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고무된 기존 수플레들은 신규 팬들을 성심성의껏 맞이하는 중이었다.

-근데 나 뉴블랙 떡밥 하나도 모르는데.. 혹시 추천해줄 만한 동영상이나 그런 거 있을까??

수플레들은 물 들어온 김에 노를 젓기 시작했다.

『 수플레를 위한 뉴블랙 떡밥 가이드 — (1) 군산에서 온 평범한 청년 선우주는 어째서 ‘흑역사 제조기’가 되었는가 』

『 (2) 비주요? 왜 우리 애 기를 죽여요. 길 못 찾는 거 빼고 다 잘한단 말이에요 』

『 (3) ‘전 농부가 꿈이에요.’ 인류가 이해하기엔 아직 이른 우리 애에 관한 보고서 』

『 (4) ※ 삐빅! 리혁이가 보면 화를 낼 게시글입니다 』

『 (5) 지호야 지호야 형들이 할 말이 있어, 성장기인 우리 막내 귀엽긔 』

……대부분 당사자들이 보면 뒷목을 잡을 만한 영업글들이었다.

*   *   *

확실히 지상파 방송은 지상파 방송이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와아-!”

백화점 행사에서 우리를 알아보고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어제 쇼핑몰 때와는 또 다른 반응.

이게 한 일주일 정도밖에 못 갈 거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몹시 좋았다.

여전히 목이 안 좋아서 평소보다 기량을 못 내서 아쉬웠지만, 그걸 만회할 만큼 반응이 좋았다.

간만에 일시적으로 인기 연예인이 된 체험이다.

“어제 그 젠민이다. 젠민이.”

“오, 진짜네.”

……나를 왜 대뜸 젠민이라고 부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모든 관심이 감사했다.

이대로 명곡 발굴단까지 기세를 쭉 이어 갔으면 좋겠는데.

안 그래도 기사가 막 나오고 있었다.

-‘파티코’ 알바 레전드 찍은 뉴블랙, PBS 신규 경연 프로 출연

-‘도전, 명곡 발굴단!’ 백성현 피디, “원래부터 예능감 넘치는 친구들, 우리 방송도 기대하시라”

-예능 나올 때마다 ‘홈런’, 대세 신인 ‘뉴블랙’ 예능 블루칩 떠오르나…?

기사 곳곳에서 PBS 로고나 백성현 피디님의 얼굴이 들어가 있었다.

어제 파티코 반응을 확인한 백 피디님은 우리 실장님과 통화를 하면서 만족을 표했다고 들었다.

덕분에 홍보 쏠쏠하게 할 것 같다고.

“이제야 뭔가 궤도에 오르는 느낌이예요.”

비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히 흐름을 탄다고 할까.

명곡 발굴단 고정 출연으로 대중들에게 얼굴 도장도 좀 찍어 주고 3집까지 성공적으로 활동하면…….

앞으로 다가올 이벤트들을 떠올리며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고.

지호가 말했다.

“지금까지는 모래성이라 파도 칠 때마다 막 휩쓸려 가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약간 흔들흔들해도 안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에여.”

“맞아. 조금 탄탄한 모래성 같음.”

“진짜 남은 거 잘해야 돼요. 우리.”

모래성 드립은 우리가 가끔 하는 이야기였다.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건 파도가 쉴 새 없이 치는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는 발상에서 나온 말.

모래는 인지도였다.

모래성을 열심히 차곡차곡 쌓아도 파도가 쓸어가듯이.

방송 출연 한 번으로 쌓은 인지도는 금세 시간에 풍화되어 스러지곤 했다. 주세한처럼 화제성이 큰 프로도 일정 시간이 지나가면 결국엔 잔해만 남는 식이었다.

이번 파티코도 비슷하게 전개되긴 할 거다.

초반 일주일 핫하면서 예능 섭외가 잠시 들어왔다가 일주일 정도 지나면 힘이 서서히 빠지는.

하지만 거기서 남는 게 중요했다.

천릿길도 한 걸음이란 말처럼 이런 걸 차곡차곡 쌓아가는 거니까.

주세한의 남은 모래에 파티코의 남은 모래를 더하고. 다른 활동에서 얻은 부수적인 인지도를 더하고 또 더하고.

가장 중요한, 우리의 본업으로 얻은 인지도까지 차곡차곡 쌓아 가다 보면 파도에도 끄떡없는 뭔가가 남지 않을까.

이번 파티코 방영 이후로 서서히 그 윤곽이 그려지는 듯했다.

반짝 얻은 인기가 아니라 그간 쌓아올린 것으로 튼튼해지는 무언가가.

“……그런 이유로 남은 방송도 잘해야 돼. 우리.”

회사로 돌아온 후.

나와 리혁이가 동생들에게 말했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우습게 보면 안 돼. 솔직히 파티코에서 알바로 화제된 건 우리가 처음이잖아.”

“웬일로 맞는 말이예요.”

리혁이가 동감을 표하며 말했다.

“다른 일일 알바도 외모로만 화제 됐지, 이런 식으로 알려질 줄은 몰랐을 거잖아요.”

석환 형이 말하기로는 ‘너희 이후로 파티코 일일 알바 분위기가 좀 바뀔 거다’라고 말을 하긴 했다.

기존에는 꽃병풍처럼 ‘샤랴랑~’ 하면서 외모로 어필하는 거였다면 이젠 다들 정말 빡세게 일할 거라고. 제2의 뉴블랙을 노리는 연예인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올 거란 뜻이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 아저씨가 한 말대로 뭐든지 다 열심히 해야 돼요.”

“고럼. 고럼.”

하지만 우리의 말에도 회사 회의실에 앉아 있는 동생들은 뚱하거나, 슬프거나, 괴로운 얼굴이었다.

중현이가 말했다.

“형.”

“중현아. 손도 들어야지. 지금 수업인데.”

“여기 손이요.”

중현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이거 꼭 해야 돼요…?”

“응.”

“저 몸으로 하는 거 하면 안 될까요.”

“안 돼.”

“알았어요…….”

이번엔 지호가 손을 들었다.

“두 분에게 질문이 있슴미당.”

“안 들을래.”

“우주 형이 평소에 했던 이야기가 있잖아여. 아무리 우리가 예능이고 뭐고 잘해도 결국엔 중요한 건 본업이다. 우리 팬들은 우리가 예능 나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본업 잘하는 걸 제일~~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랬지.”

내 말에 지호가 문제집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근데 왜 저희가 이런 걸 배워야 하는 건가여? 이럴 시간에 노래 연습 한 번 더 하는 게 낫지 않을까여?”

“흠… 일리 있지.”

내가 턱을 쓰다듬으며 지호에게 물었다.

“지호야.”

“넹.”

“그럼 형이랑 작업실 가서 3집 수록곡 좀 같이 만질까?”

“저 공부가 좋아졌어여. 형.”

‘난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좋아’ 하는 얼굴로 열심히 피력하는 지호를 지나 비주에게 시선을 던졌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비주가 냉큼 펜을 들고 외쳤다.

“저, 저 공부할게요!”

“…….”

외칠 것까지는 없는데…….

아니. 누가 보면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

‘나쁜 사람.’

‘악독한 작곡 요괴.’

‘형은 작곡 안 할 때가 좋아요…….’

눈빛으로 어필하는 모습에 콧김을 내뿜었다. 내가 눈짓을 하자 리혁이가 책을 펼치고 말했다.

“자, 그럼 다들 이견 없는 거죠? 책 펼쳐요.”

곧바로 다 같이 들고 있는 책에서 첫 페이지가 펼쳐졌다.

‘선사 시대의 생활상, 고조선의 성립’이라고 되어 있는 페이지를 보며 다들 한숨을 푹푹 쉬었다.

반면에 우리 리혁이는 생기가 넘쳐서 그걸 사방으로 발산하고 있었고.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가 역사 탐험대 방송을 앞두고 있잖아요.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알려주려면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뺨이 살짝 붉어질 만큼 들뜬 얼굴로 리혁이가 말을 하는 동안 나머지 동생들이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지금 하고 있는 건 다음 주에 녹화를 앞둔 HBS의 어린이 프로그램 ‘쏙쏙! 역사 탐험대’의 준비였다.

발단은 중현이가 ‘저 다 까먹었어요, 국사.’ 라고 하는 말에 ‘그러면 제가 조금 가르쳐 줄까요?’라는 리혁이의 대답에 모두가 찬성하게 된 거였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인터넷에서 문제집을 살 때부터 동생들이 불안해하긴 했지만, 이미 한국사를 잘 알고 있는 나는 선생 역할로 들어가게 될 터라 별 상관 없었다.

나만 아니면 돼. 깔깔.

“…….”

찌릿.

동생들의 째려봄에 헛기침을 하고 표정 관리를 했다.

그 동안 리혁이가 설렌 얼굴로 손뼉을 짝! 쳤다.

“나만 믿어요.”

“…….”

“이번 방송 끝날 때쯤 되면 내가 다들 한국사 1급 따게 해줄게요.”

“…….”

멤버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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