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13화
레몬 엔터테인먼트.
점심 식사를 마친 A&R팀 직원들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씩 들고 돌아오던 때였다.
회의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모두 걸음을 멈췄다.
“……음?”
누군가 손가락으로 그 빛을 가리켰다.
“회의실에 누가 있나 본데요?”
“규환이 형이 스칼렛 애들이랑 회의하러 온 거 아냐? 일요일 이 시간에 회의실에 사람이 있을 리가…….”
라는 말과 함께 회의실 문 유리창을 보던 누군가 흠칫했다.
“우주…?”
“……!”
모두 질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약초 캐러 왔다가 잠자는 호랑이를 발견한 약초꾼들 같은 표정이었다.
“……어우. 큰일날 뻔했네.”
“쟤 우리 못 봤지?”
“그럴걸요. 중현이면 몰라도 우주는 이 각도에서 못 봐요.”
숨을 고르던 것도 잠시.
호들갑을 떨었던 사람들끼리 눈이 마주치면서 민망한 침묵이 감돌았다.
“…….”
하나둘 헛기침을 하며 근엄함을 되찾기 시작했다.
“하도 시달리다 보니까 이제는 몸이 먼저 반응하는구만.”
“그러니까요.”
다들 슬픈 미소를 지었다.
복도 지나가다 눈만 마주쳐도 ‘나랑 노래 얘기하고 싶구나!’ 하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 우주.
붙들려서 눈을 감았다 떠보면 작업실 천장이 보이고.
맛난 간식과 함께 우주의 칭찬 세례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노예처럼 일하고 있었다.
그런 기억이 모두의 머릿속에 스멀스멀 떠올랐다.
“아.”
그때 누군가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지금은 괜찮잖아요. 얼마 전에 3집 타이틀 후반 작업 끝내기도 했고.”
“아! 그러네.”
“이제 우주한테 시달릴 일은 없다는 거죠.”
산에서 마주친 호랑이가 알고 보니 방금 전 배불리 먹었다는 걸 알게 되어 안심한 얼굴들.
두려움이 해소되자 이번엔 호기심이 생겼다.
“쟤네는 여기서 뭐한데? 맨날 작업실에서 아지트마냥 다 같이 모여 있잖아.”
“뭐 공부라도 하나 봐요.”
“외국어 공부하나?”
처음에는 외국어 공부인가 싶었다.
동아시아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으로 뻗어가려는 해외 진출 계획에 따라 뉴블랙은 최근 외국어 교습을 빡세게 받는 중이었다. 원어민 강사가 직접 회사에 와서 가르치기도 하고.
그래서 당연히 중국어 아니면 일본어인가 싶었는데.
-자 다 같이.
리혁의 부름에 따라 나머지 말한다.
-빗살무늬 토기.
-신석기 시대.
-민무늬 토기.
-청동기 시대.
날카로운 인상의 멤버가 손뼉을 치며 다시 한 번 말한다.
-자, 다 같이 빗신민청.
-빗신민청.
-민무늬 토기의 친구는?
-미송리식 토기.
-그래서 4번 문제의 정답은? 그래요, 5번. 옳지.
고개를 돌린 리혁이 리더에게 ‘주세요’ 라고 하자, 우주가 정답을 맞힌 이들에게 은색 초콜릿을 돌렸다.
그걸 열심히 까서 옴뇸뇸 먹고 있는 멤버들을 보면서 A&R팀 직원들은 눈을 깜빡였다.
“…….”
이유는 모르겠지만 뉴블랙 멤버들이 한국사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리혁이 뭐라고 가르쳐 주면 나머지 셋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또 배운다.
그 옆에선 노트북을 두드리던 우주가 원장 선생님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고.
뭔가 엉뚱한 모습에 A&R팀 직원들이 웃음을 흘렸다.
“진짜 얘네는 종잡을 수가 없다니까.”
“하여간 특이해.”
그러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회의실 안의 풍경을 눈에 담는 직원들이었다.
“와, 근데 리혁이 잘 가르치네요. 아버님이 교수…? 그런 분이라고 예전에 들었던 것 같은데.”
“맞을걸.”
누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하네. 강사 했어도 잘할 거 같아. 선생님 성격 때문에 수강생들이 금방 관뒀을 테지만…….”
“얘네는 아이돌 안 했어도 잘 살았을 거 같아요.”
그런 농담을 주고받을 때였다.
바깥의 소리를 감지했는지 귀를 쫑긋거리던 중현이 뭐라고 우주에게 말을 한다.
스윽.
우주의 고개가 돌아가자 모두 몸을 숨겼다.
“……안 숨어도 된다면서요.”
저도 모르게 은신술을 펼친 A&R팀 직원들을 보며 누군가 한숨을 쉴 때였다.
안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엇, 나온다. 나온다!”
“사무실로 가요!”
우왕좌왕하며 누군가는 잽싸게 사무실로 들어가고, 누군가는 화장실로 갔다.
누군가는 복도가 꺾어지는 벽으로 붙었다.
편안한 하루를 위해서라면 절대 눈에 띄어선 안 된다고 생각할 때, 문이 드륵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없네.”
우주의 혼잣말이 들렸다.
“중현이가 잘못 들었나?”
그리고 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
숨어 있는 이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지이잉-
눈치 없는 핸드폰이 울리면서 ‘뜨앗!’하던 서필근이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려고 할 때.
화면에 뜬 ‘받지마’와 함께 시선이 느껴졌다.
“아. 거기 계셨네요.”
환히 웃는 우주의 모습에 서필근의 마음속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저 안 그래도 물어볼 거 있었거든요. 혼자 계세요?”
“아니. 오 대리님 화장실 갔어.”
화장실에서 누군가의 볼멘소리가 나왔다.
곧바로 밀고에 밀고가 이어지면서 슬픈 얼굴의 직원들이 하나둘 끌려나왔다.
우주가 웃었다.
“이번 앨범 관련해서 의견을 구하려고 하거든요. 아, 3집 타이틀 말고 다른 얘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 그래?”
곡이 아니라 앨범 컨셉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거라면 그리 고통 받을 일이 아니었다.
“네.”
우주가 방긋 웃으며 노트북을 펼쳐 보았다.
“이번에는 수록곡이에요!”
“…….”
“추리고 추려서 한 23개 정도?”
노트북 폴더에 가득한 작업 파일들을 보며 직원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 * *
리혁이가 회의실에서 한국사를 가르쳐주는 동안, 나는 직원 분들과 2층으로 내려와 작업을 했다.
3집 타이틀곡은 거의 완성되어서 고칠 부분이 없었고.
남은 것은 수록곡이었다.
“어떠세요?”
“톤이 좀 하이하지 않은가 싶은데. 타이틀이랑 어울려야지, 얘 혼자 발랄하게 튀는 거 같아.”
“이런 식으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확 괜찮아졌는데?”
좋아졌다며 엄지를 드는 이들이었지만 나는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음… 그래도 좀 미묘하게 안 맞는 거 같아요. 이건 어떠세요?”
“……그, 방금도 괜찮았는데.”
“이건요?”
“…….”
“이거는 어떠세요? 아니면 처음에 드럼을 추가해볼까요?”
“…….”
곡마다 수십 번 가까이의 수정을 거친 후 대강 대여섯 개를 후보군으로 압축을 했다.
물론 이게 다 3집 앨범에 실리는 건 아니다.
A&R팀과 조규환 제작이사, 내가 참석하는 프로듀싱 회의에서 3집 앨범 컨셉 방향을 정한 뒤.
다른 작곡가들에게 공모 받은 곡과 내 자작곡 중에서 적당한 것을 고르기 시작할 것이다.
한편 직원들은 대부분 내가 만들어낸 곡에 호평을 했다.
“이야, 어떻게 날이 갈수록 실력이 더 느냐. 오늘 들은 것 중에 이번에 안 실리는 건 다음 앨범에 넣어도 될 것 같은데?”
“늘었네. 공부 많이 했구나?”
직원들의 칭찬에 흐뭇하게 웃을 뿐이었다.
사실 그 동안 다른 일 때문에 작곡 이론은 조금 소홀히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비주가 공부한 걸 보고 자극을 받은 터였다.
책도 좀 새로 사면서 깊게 파고 들었는데 다행히 그 결과물이 좋은 평을 받았다.
“농담이 아니라 이대로면 우리가 후반부 작업만 담당해도 될 것 같아. 건드릴 게 뭐 없네.”
“아니에요. 도움은 계속 필요할 거예요. 저 혼자만으로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
왜들 그리 슬픈 표정을 짓는 거지.
도망치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여서 달콤한 과자를 내어드리니 금세 행복한 표정이 떠올랐다.
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다들 너무 피곤해 보여서 풀어주기로 했다.
일이 어찌나 힘든지 과자 하나 먹고도 행복해 하는 직원들의 모습에 절로 짠한 웃음이 그려졌다.
“참.”
직원 중 하나가 말했다.
“너희 3집 수록곡 예비 공모를 시작했는데 거기 누구 이름이 있는지 알고 있어?”
“누구요?”
“JCM.”
“아… 그분이요?”
내 말에 다들 ‘그니까, 염치도 없지’ 하면서 대답했다.
JCM.
작년에 내가 불꽃놀이를 만들지 않았다면 본래 우리 1집 타이틀곡의 작곡가가 될 뻔한 사람.
거절당하고 DNS 쪽에 홀랑 붙어서 그쪽과 함께 우리를 굉장히 골탕 먹였지.
“이 바닥이 이렇다니까.”
A&R팀 직원이 말했다.
“잘나간다 싶으니까 다시 또 스리슬쩍 붙으려는 거지. 앨범 판매량 상승세 타는 것도 그렇고. 누가 봐도 이번 3집도 잘 될 거 같잖아.”
“어떻게 할까, 우주야? 바로 빠꾸 먹일까?”
“아냐아냐. 이런 건 퇴짜 놓으면 안 돼. 그냥 가만히 있어서 애타게 만드는 게 제일 좋지.”
기대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일단 들어보고 싶어요. 거절하고는 싶은데, 그게 정말 좋은 곡이면 남 좋은 일 하는 걸 수도 있잖아요.”
“뭐. 우리도 같은 생각이라 들어보긴 했거든. 너도 한 번 들어볼래?”
곧바로 가이드 녹음이 들어간 노래를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나서 다급하게 말했다.
“거절할게요.”
A&R팀 직원들이 손뼉을 치며 깔깔 웃어댔다.
비즈니스에 감정을 개입하면 안 된다는 주의라서 다 듣긴 했는데 객관적으로 봐도 노래가 별로였다.
스트릿 보이즈 데뷔곡 ‘Hunger’의 퀄리티가 좋았던 터라 내심 기대를 했는데 그게 운빨이었나 생각될 만한 곡이었다. 혹시 우리 망하려고 보낸 트로이의 목마가 아닌가 싶을 만큼.
앨범 프로듀서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노래였다.
직원 하나가 기지개를 키며 일어났다.
“우리도 슬슬 일하러 가야겠다.”
“고생 많으셨어요.”
배웅을 나갈 때 누군가 물었다.
“참. 우리 프로듀서님 스케줄은 어떻게 되니. 내부 회의는 언제로 잡을까?”
“이번 주에 녹화가 좀 많아서요. 목요일쯤 되어야 가능할 것 같아요. 제가 따로 연락드릴게요.”
“그래. 그러면…….”
“참, 이번에 회의할 때 멤버들 데리고 가도 될까요? 타이틀이 비주랑 공동 작곡이기도 하고, 리혁이는 작사. 중현이도 이번에 믹스테이프 한두 개 넣기로 했거든요.”
“지호는?”
“혼자 빠지면 서운해 하지 않을까요.”
“그러네.”
여기저기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보통 정식 회의를 하기 전에 내부 회의는 나와 A&R팀만 진행하는데, 이번부터는 동생들도 데리고 가려는 생각이었다.
내 말에 A&R팀 직원이 말했다.
“네가 프로듀서인데 왜 허락을 구해. 그냥 편하게 데려와.”
“네, 감사합니다.”
신뢰감 가득한 그 눈빛에 고마움을 느끼며 배웅을 했다.
때마침 복도 저편에서도 동생들이 걸어왔다.
직원들에게 ‘안녕하세요오…’ 하면서 힘겹게 인사하던 우리 애들이 터덜터덜 걸어왔다.
문앞에 서서 반갑게 웃었다.
“잘 배우고 왔어?”
“유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어요.”
리혁이 혼자 얼굴에서 뽀얀 광채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다른 동생들의 안색은 거무죽죽했다.
“……얘들아?”
중현이가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노비.”
지호가 말을 이었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되, 용서를 받으려면 돈 50만 전을 내야 한다.”
“고조선의 8조법.”
중현이가 다시 말을 받았고, 이번에는 비주가 멍하니 말했다.
“고조선이 계급 사회였으며 화폐가 사용됐다는 걸 알 수 있는 사료라고 한다.”
눈을 멀뚱멀뚱 떴다.
초췌한 얼굴로 우르르 방 안으로 들어가는 녀석들의 모습에 내가 시선을 돌렸다.
“너 뭘 하고 온 거야? 수업 시간에 뭘 했길래 애들이 상한 시금치처럼 변했냐.”
“그, 그냥 여러 가지 교습법을 쓴 것뿐이에요.”
내 질문을 책망으로 해석했는지 변명을 하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리혁이에게 팔을 둘렀다.
“리혁아.”
“왜요.”
“비결 좀 듣자.”
“…….”
“그 방법으로 애들 작업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니?”
“꿈도 꾸지 마요. 진짜.”
* * *
서울 양천구의 한 스튜디오.
HBS ‘쏙쏙! 역사 탐험대’의 첫 녹화를 앞두고 분주하게 촬영 준비가 이어졌다.
버섯 마을을 연상시키는 온화한 우드톤과 녹색이 어우러진 세트.
나무 밑동처럼 보이는 테이블이 가운데 세팅되고, 조명을 비롯한 장비가 세워졌다.
예산이 적은 만큼 현장 스탭이나 녹화장의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그렇게 한때 ‘어린이 퀴즈탐방!’ 프로그램 녹화 장소였던 곳이 놀랍도록 빠르게 새 단장을 마치고 있었다.
“야야, 출연진 먹을 다과 어디 있어? 그걸 놔야지.”
“준비해놓겠습니다!”
그 준비 중 하나는 바로 출연자인 뉴블랙이 편하게 지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잘해줘야지.’
현장 책임자인 성 피디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적은 예산과 좋지 않은 시간대.
고정출연이라는 이점이 있지만 뉴블랙은 이런 프로그램에 나올 급의 연예인은 아니었다.
현재 그들이 출연해서 이슈가 되고 있는 다른 예능에 비해 역사탐험대는 영향력이 부족했다.
‘왜 나오지?’
출연을 해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여전히 의아하긴 했다.
멤버 하나가 역사 덕후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엄연히 비즈니스 아니던가. 상대가 이 프로에서 무엇을 얻어가려고 하는 건지 궁금했다.
-처음에 리혁이 형이 막 하자고 하긴 했는데, 작가님들이 보내주신 기획안을 우주 형이 읽고 나서 이거 하자고 했어여.
첫 미팅 때 들은 이야기에 당사자인 우주에게 물어봤다.
무엇이 마음에 들었냐고.
-아동용 프로그램이지만 확장폭이 넓어 보였어요. 부모님들이 같이 봐도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가? 했지만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어린이 프로그램이지. 뭐가 또 있단 말인가.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잘나가는 신인 아이돌이 그들의 프로그램에 출연을 해준다는 거였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다들 반갑게 맞이했다.
“이리 와. 여기서 앉아서들 좀 쉬어요.”
“음료수! 야 음료수 좀 가져 와!”
귀한 손님을 모시듯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탭들의 모습에 당사자들이 꺄르르 웃었다.
제작진과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잠시, 뉴블랙 멤버들이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스타일리스트들이 머리카락 끝을 다듬는 동안에도 그들의 시선은 종이에 못 박혀 있었다.
성 피디가 그 모습을 지켜볼 때 메인작가가 다가왔다.
“대본은 다 숙지해 왔겠죠?”
“쟤네 분위기 봐.”
“시간 없어서 지금 집중해서 보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얘네 스케줄도 바쁘다고 해서…….”
우리 프로는 혹시 대충 준비해온 거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런 말을 할 때였다.
제작진이 현장에서 준비한 유인물을 별도로 건네주자 막내가 말했다.
“음?”
그러더니 곧바로 스탭을 부른다.
“왜 그래요?”
“작가님. 이거여. 비파형 동검이랑 세형 동검이랑 순서 뒤바뀌었어여. 비파가 먼저 아니에여?”
“엇. 잠시만요.”
곧바로 확인하더니 스탭이 맞다며 순서를 고쳐주었다. 자칫하면 잘못된 내용이 나갈 뻔한 터였다.
새하얀 얼굴의 멤버가 흡족한 얼굴로 막내에게 초콜릿을 내밀었다.
성 피디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리혁이가 역사를 잘… 아니, 쟤가 리혁이잖아?”
“네, 방금은 지호였어요.”
첫 만남 때 ‘저 역사는 잘 몰라서여…’ 했던 아이돌 멤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스쳐갔다.
피디와 작가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
“…….”
성 피디가 물었다.
“역사 잘한다는 애가 리혁이 아니었나?”
“그, 그랬던 것 같은데요.”
그런 와중에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고조선 건국할 때는 곰 부족이랑 호랑이 부족이 들어간 걸로 설명을 하면 되겠죠?”
“그게 제일 낫지 않을까?”
“반구대 암각화 여기에 이거 고래라고 그랬져? 표시해놔야겠다.”
자기들끼리 오늘 방송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피디와 작가는 눈을 깜빡거렸다.
‘준비를 너무 열심히 해왔는데……?’
좋은 쪽으로 당황스러웠다.
* * *
“안녕하세요. 어린이 여러분.”
빨간 불이 들어온 카메라 앞에서 다들 환하게 웃었다.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역사 속 재미있는 사건들을 탐험하게 될 뉴블랙의 우주.”
“비주예요.”
각자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쏙쏙! 역사 탐험대는 여러 가지 포맷을 지닌 프로그램이었다.
우리가 화랑처럼 분장하며 신라 시대 생활상을 보여줄 예정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박물관을 탐방하기도 할 거고.
여러 가지 기획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어린이를 위한 예능이라는 점이었다.
-요즘 어린이들은 유치한 거 안 좋아하거든요.
맨 처음 기획은 시간축을 뒤흔드는 악당을 쫓아 역사 속 사건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진짜 탐험대였다고 했는데 여러 회의 끝에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형됐다고 들었다.
피디님이 이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역사 예능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방송 내용에 있어서 대본을 따르되 자유롭게 진행하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은 역사 이전, 선사시대에 대해 한 번 배워볼까요? 여기 있는 이 그림들을 보면서…….”
내가 멘트를 하고 있을 때였다.
선사시대의 생활상이 그려진 판넬 모음을 들고 있던 중현이가 간지러운 코를 긁다가 죄다 떨어뜨렸다.
와르르.
망연자실한 표정의 중현이와 함께 동생들이 판넬을 줍줍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
괜찮은 걸까 이거.
다시 찍자고 할까 하다가 그냥 이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밝게 웃으며 카메라에다 대고 말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이 흩어진 역사를 하나로 이어지도록 다 같이 만들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