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16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다.
안 그랬다면 벙쪄 있는 얼굴이 인터넷 뉴스 기사 사진으로 박혔을 걸.
‘뭐지?’
‘뭐예요, 형?’
우리 애들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한테 찰싹 붙기에 ‘명곡 발굴단’이라고 속삭여 주었다.
이내 ‘아……!’ 하는 표정들이 돌아왔다.
내 예상대로 모여 있는 기자들은 명곡 발굴단 때문인 듯했다.
“방송 봤어요?”
“너희 오늘 방송 보고 어땠니?”
“친구야. 사람이 말을 걸면 대답을 해 줘야지.”
모르는 기자들이 말을 붙였다.
주로 소규모 언론사 소속이었는데 그들의 질문에 우리는 ‘감사합니다’ 하면서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갈 뿐이었다.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아직 안 봐서.
제작발표회에서 틈 날 때마다 ‘본방사수!’ 외쳤는데 ‘스케줄 때문에 아직 못 봤어요’ 라고 할 수는 없지.
자주 만나는 오소희 기자님의 연예IN처럼 대형 매체라면 모를까.
소규모 언론사는 업계에서 제일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규모 있는 곳들은 특종이나 어지간한 스캔들이 아니면 기획사 홍보팀과 틀어지지 않기 위해 기사를 조율하는데. 소규모 매체들은 가리는 게 없었다.
루머고 뭐고 일단 쓰고 보는.
작년 추석 때 나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기사를 썼던 기자도 소규모 매체 소속이었다.
“감사합니다!”
모여 있는 이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나서 재빨리 1층 밖으로 나와 주차된 그랜드 카니발에 올라탔다.
“후우…….”
근엄하게 차에 올라탄 것도 잠시.
문이 닫히자마자 모두 마스크를 벗고 호들갑을 떨었다.
“뭐야. 뭐야. 이거 뭐야. ”
“형, 기자들이…….”
“그러니까. 왜들 이렇게 모여 있지?”
관심종자들답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에 매니저 형들에게 물어볼까 했지만 저쪽도 무슨 일인지 홍보팀과 전화를 하는 중이라서 눈치껏 검색했다.
영종대교를 달리는 차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동안 어둠 속에서 다섯 스마트폰이 반짝거렸다.
그리고.
지이잉-
5인조 락밴드가 헤드뱅잉을 하듯이 핸드폰들이 미친 듯이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비행기 모드를 풀고 나니 지금까지 밀렸던 메시지와 알림이 떴다.
“……오오.”
확실히 뭐가 있긴 했나 보다.
파티코에 나왔을 때와 비슷하게,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쌓인 메시지 등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메시지를 잠시 훑어보던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야, 이거 반응이 엄청 좋은데…?”
“난 오늘 1회 방송은 별 기대 안 하고 있었거든요. 어차피 경연은 다음 주에 나오는 거라…….”
리혁이가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런데 이거 봐요. 엄청 많아.”
우리 중에서 가장 인간관계 좁기로 유명한 녀석의 핸드폰에서 계속 메시지가 떠오를 정도면 말 다했지. 뭐.
근데 우리 애한테 지인들이 이렇게 있…….
“뭐야. 왜 자꾸 안 친한데 말 거는 거야.”
“…….”
“안 되겠어요. 차단 리스트에 추가해야겠어.”
그럼 그렇지.
반쯤 포기한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다가 인터넷을 켰다.
그 동안 귀로는 조수석에 앉은 민기 형의 목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예? 정말요? ……아, 진짜요? 네네.”
다른 차로 가는 중인 석환 형과 통화를 하는데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의문은 금세 해결됐다.
포털 연예면에 들어가자마자 타이틀이 눈에 딱 들어왔으니까.
-오늘 첫방 ‘PBS 명곡 발굴단’ … 동시간대 시청률 1위
기사를 누르자 ‘시청률 11.6%로 HBS의 경쟁 프로그램을 누르고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한…’ 이라는 문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와…….”
……미쳤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전국 시청률 11.6퍼센트. 진짜 많이 나왔다.
주세한이 평균 시청률 20%대라는 미친 수치를 유지해서 그렇지, 2위 예능인 PBS의 ‘미스터 프로듀서’만 해도 15%를 왔다갔다하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아직 덜 알려진 신규 예능이 11프로라.
그간 PBS에서 홍보 물량을 쏟아부은 게 아깝지 않을 만큼 1회 시청률이 엄청 잘 뽑힌 편이었다.
“와…….”
“형도 지금 같은 기사 보고 있죠? 1회부터 11프로나 나왔대요.”
“대박인데여, 이거?”
잠시 현실감을 못 느낄 만큼 얼떨떨했다. 달달 떨리는 손가락을 억누르며 스크롤을 내렸다.
‘한편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뉴블랙과 원로 가수 노재현의 만남이었다.’ 부분부터 시작해서 온 신경을 집중했다.
[ …처음에 어색하기 그지없었던 신인 가수와 원로 가수의 만남은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탈바꿈했다. 조손을 연상시킬 만큼 의기투합한 이들이 함께 집안일을 하는 모습, 나이를 초월해 음악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
그 뒤로 칭찬이 쭉쭉 이어져 있었다.
묘하게 민망하다.
우리 딴에는 그저 일을 한 것뿐인데, 온갖 미사여구가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중간에는 다른 가수들 이야기도 있었지만 방송 내용과 기사 포커스는 우리에게 와 있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고동쳤다.
“…….”
마른침을 삼키며 방송 캡처가 섞인 기사를 쭉 내려 댓글창으로 갔다.
댓글 683개라는 숫자에 다시 한 번 목울대를 꿀렁거렸다.
볼까 말까.
괜히 욕하는 글이 나오는 건 아닌가 고민이 됐다.
기사 내용과 댓글 사이의 흑염소탕 AI광고를 위아래로 꼼지락꼼지락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보자.
기자가 ‘ㅎㅎ 얘네 오늘 잘했당!’ 하고 쓴 기사인데 설마 그 아래에 욕이 있을까.
BEST 순으로 정렬된 댓글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이돌 출신이라고 처음에 선입견 가진 게 억울할 정도로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았네요.
……칭찬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 아래를 훑었다.
-실력은 어떨지 모르지만 아이들 참 선해 보이더라
-첫방인데 괜춘했던듯
-우리 어머니 노재현 팬이신데 오늘 방송 보고 되게 좋아하셨음. 이대로면 엄마 힐링 예능될 듯
-편집 스타일이 어른들이 좋아할 느낌? 아버지가 간만에 TV 보신 거 같네요 ㅋㅋㅋ
-다음 주 경연 기대된다ㅎ
-경연 전에 서사 부여하는 방식이라서 취향이었다,, 시청자 입장에서 이 노래가 어떤 의도고 원곡자랑 가수도 만나고 하는 부분을 매력포인트로 잘 잡은 듯
기사 내용 중에 경쟁 프로 시청률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 됐다.
2030의 취향이나 인터넷 밈이 가득한 HBS의 경쟁 프로와 달리 이번 프로는 같은 시간대에 TV를 잘 보지 않았던 부모님 세대가 시청을 시작한 듯한 느낌이었다.
가족끼리 볼 만한, 어른들에게 생긴 볼거리라고 할까.
댓글 분위기는 내 기대를 뛰어넘을 만큼 좋아도 너무 좋았다.
전반적으로 프로그램에 대한 호평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출연자인 우리에 대해 좋은 평이 가득하다.
“형, 표정이 왜 그래여?”
“…….”
하지만 이런 호평에도 웃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베스트의 절반을 차지하는 댓글 때문이었다.
-엌ㅋㅋㅋㅋ 무알콜ㄹㅋㅋㅋㅋㅋ
-오늘 가족들이랑 보다가 무알콜에 빵,,! ㅎ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무알콜군과 졸개들
-브금 때문에 눈물 나와서 휴지 뽑았는데 웃다가 나온 침 닦았어요
-진지하게 보다가 빵 터짐ㅋㅋㅋㅋㅋ
-오늘은 저 젠민이가 하드캐리했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
왜 이러는 거지.
분명 기뻐야 하는 건데 이 목이 타는 느낌은.
전 국민 앞에서 ‘무알콜 먹고 자기가 취한 줄 알았던 아이돌.jpg’이 된 이 기분…….
신선해. 짜릿해. 별로야.
바깥으로 들어오는 야경이나 네온사인 간판이 뿌옇게 보였다.
“형, 힘내요.”
비주가 옆에서 나를 토닥토닥 해주었다.
“그래도 형이 흑역사를 만들어준 덕분에 저희 실검에 올랐어요.”
“우리 실검 올랐어?”
중현이가 핸드폰을 스윽 내밀었다.
방송이 끝나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순위권 바깥으로 밀려난 검색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뉴블랙 우주’
‘파티코 젠민’
‘무알콜’
‘뉴블랙’
내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는지 ‘파티코 젠민’으로 검색한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포털 프로필에 연관검색어에 뜬 ‘우젠민’을 보면서 눈물을 삼켰다.
“그런데 무알콜은 왜……?”
“방송 나가고 나서 지식 글에 질문 많이 올라왔나 보더라고요.”
“……?”
이번에는 리혁이가 보여주었다.
[Q. 무알콜도 먹고 취할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오늘 어떤 방송에서 무알콜 먹고 취하는장면 나오는데 가능한 건가요?
(이거 학교 과학 프로젝트 주제로 가능할까요?)
호오. 이제는 초등학생한테도 관심을….
아니, 이게 아니지.
그러다 답변 중에서 눈에 띄는 것 하나를 발견했다.
[A. 안 취합니다.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요.]
내가 물었다.
“근데 왜 이것만 답변 배경 색깔이 달라?”
“그거예여. 형. 로그인 했을 때 본인이 쓴 글은 색깔 다르고 그러잖아여.”
“아, 그래? 이거…….”
답변시간 5분 전을 보고 나서 곧바로 눈을 부라렸다.
“야, 서리혁.”
“나, 난 궁금해 하는 어느 초등학생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준 것뿐이라구요. 틀린 말 아니잖아요.”
“이게 인터넷에서 형에 대한 음해를 하고 있었구만? 너 이리로 와.”
내가 손을 쭉 뻗자 리혁이가 중현이 뒤에 숨었다.
그러곤 중현이에게 빠르게 속삭였다.
“중현이 형. 저 아저씨 끌고 가요.”
“…….”
“안 가요?”
“미안. 난 우주 형 말만 들어.”
“…….”
내가 흐뭇하게 웃었다.
“중현아.”
“네.”
“저 불손한 두루미를 내게 대령하려무나.”
“네, 형.”
곧바로 곰에게 붙잡혀 온 두루미가 날개를 퍼덕거리는 모습에 내가 흡족한 모습을 지었다.
그리고 딱밤을 먹였다.
“느아아아!”
* * *
같은 시각.
택시 뒷좌석에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던 한 수플레가 미소를 지었다.
‘너무 좋아.’
아이돌 커뮤니티의 반응 때문이었다.
PBS 명곡 발굴단이 방영하고 나서 수플레들은 더욱 더 당당하게 영업글을 올리고 있었다.
여론이 어느 정도 반전되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경연은 안 나왔지만 가수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뉴블랙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바로 그때, 차우현을 비롯해서 다른 가수들이 ‘재능이 있다, 정말 잘한다’며 띄워주는 장면이 나왔다.
다른 가수들의 진지한 인증과 함께 실제 방송에 나온 노래도 몹시 훌륭했다.
왜 섭외된 건지 의문이 없을 만큼 괜찮은 실력.
-중간중간 숨소리 섞여들어간 거 보니까 찐라이브네;;;
-화음 대박이다
-뭐지.. 어제는 얘네 라이브 퇴보했다 뭐 그런 글 올라오지 않았어?
-지운듯ㅋ
-이 악물고 까던 애들 어디감??
-까랑 실더랑 지긋지긋하게 싸워대서 글 안 봤는데 잘하네
-잘함 ㅇㅇ
-애초에 얘네 실력으로 까플 펼쳐지는게 노어이.. 여기서도 실력으로 유명해진 거 아니었어?
-근데 깔라고 해도 병크가 없자나
-이거마따 얘넨 흑역사만 있다
-난 어제 플로우 좀 이상해서 가마니 하고 있었는데.. 얘네도 정병 개많이 붙은 거였구나
-비웃음이 빅웃음이 됐네
-부모님이 얘네 이름 뭐냐고 물어보더라,, 보면서 내 본진 나왔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도 들음 피디가 편집 잘해주던데
뉴블랙에 대해 논란을 제기했던 이들이 쏙 들어가 있었다.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양 글을 지우기도 하고.
하지만 그 글을 신나게 썼을 때와 달리 지울 때 부들부들했을 표정을 생각하니 수플레로서는 절로 뺨이 씰룩거릴 뿐이었다.
혈관 속에 탄산이 도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댓글창에서 손가락을 파르르 떨면서 욕을 하는 댓글들이 보였지만 타격감이 제로였다.
‘쌤통이다.’
여전히 가수 소개니까 제작진이 힘 써준 거다, 경연 들어가서 관객 앞에 서면 뽀록 날 거다 하는 주장을 보며 픽 웃을 뿐이었다.
왠지 모르게 경연에서도 못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거기다 안티들이 활약하지 못할 만큼 대중적인 반응이 좋았다.
곡 추첨할 때부터 눈이 반짝반짝거리며 노래에 대해 척척박사처럼 설명을 하는 우주의 모습.
무알콜 군을 비롯해 리혁과 노재현 선생의 케미.
서재 정리를 비롯해 집안일로 재미도 뽑고 편곡을 하는 프로 같은 면모도 조명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엄빠랑 같이 봤는데 반응 괜찮았음
-가수들 경연 프로인데 노래마다 서사 부여돼서 좋은 듯, 본방 경연 보면 이입 더 쉬울 거 같아
-1회만에 아빠 최애 예능
-가족들끼리 보기 무난한 거 같아 톤도 차분하고.. 일단 재밌더라. 출연진 케미도 좋고
-다음 주 기대중ㅋㅋ
-부모님 방청표 구해드릴까 하는데 이거 방송 나가서 경쟁률 개빡세지겠지..???
수플레들은 위풍당당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게스트로 나왔던 방송과 달리 뉴블랙이 본격적으로 주인공이 되어 나온 첫 지상파 예능이었다.
그것도 첫 방송부터 시청률 11퍼센트.
그리고.
‘뭔가 있어.’
뉴블랙과 노재현의 케미가 좋긴 했지만 다른 가수들의 분량도 재미있긴 했다.
그런데 편집 방향을 보고 있자니 뭔가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듯했다.
우주가 편곡을 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스킵해서 ‘뭐야 뭐야?’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예고편에서도 뉴블랙의 모습은 아주 짧게 나왔을 뿐이었다.
마치 하이라이트를 숨겨두듯이.
‘기대 돼…….’
뭔가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이 물씬 느껴졌다.
지금까지 뉴블랙에게 부족했던 대중적 인지도가 쌓여간다는 것에 기대감과 행복을 느낄 때.
“콜록-!”
운전석에서 택시 기사가 낸 소리에 그녀가 깜짝 놀랐다.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렸는지 콜록거리는 기사에게 수플레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아, 네. 뭐…… 콜록!”
그러면서 헛웃음을 흘리는 택시 기사였다.
“왜 그러세요?”
“방금 전에 옆자리에 멈춰 있던 차요. 고개 돌리다가 창문이 열려져 있었는데 웬 퍼런 얼굴들이…….”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는지 시퍼런 얼굴들이 히죽히죽 웃으며 웃긴 춤을 추고 있었다나.
망나니들의 탈춤 같았다고 했다.
“근데 잘 추더라고. 젊은이들이 잘생겼는데…….”
“그래요?”
멀찍이 멀어져가는 그랜드 카니발의 꽁무니를 보며 수플레는 어깨를 으쓱였다.
“별 이상한 애들이 다 있네요.”
말을 끝낸 그녀는 핸드폰에 담긴 뉴블랙의 움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 * *
2월 18일 수요일.
설 연휴가 시작하는 첫날이자 ‘도전, 명곡 발굴단!’의 2차 경연이 있는 날.
“와아아-!”
1차 경연보다 더 뜨거운 열기였다.
확실히 방송 나간 것의 영향이 컸다.
저번에 공개홀에 왔을 때와는 확 다른 분위기를 체험하는 중이었다.
-환영해 주십시오. 뉴블랙입니다!
입장할 때부터 더 큰 환호성이 우리를 반겼다.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우리에게 호기심 어린 시선이 머물렀다.
아니나 다를까.
첫 순서로 공연할 때도 호응이 몹시 좋은 편이었다.
나비넥타이에 턱시도를 입은 채 춤추고 노래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박수와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각 잡고 진지한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가볍고 즐거운 퍼포먼스로 객석 분위기를 띄워주었는데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무대 퀄도 퀄이지만 인지도가 올라간 게 느껴졌다.
그 분위기를 반영하듯 연예인 패널들도 우리에게 한 마디라도 더 시켜주려는 눈치였다.
제작진도 우리를 띄워주려는 듯했고.
석환 형에게 듣기로 피디님이 시청률표를 받아들었는데 우리와 노재현 선생님이 나올 때 순간적으로 시청률이 소폭 상승했다는 모양이었다.
유일하게 기뻐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바로 조유리 밴드였는데 그럴 만하긴 했다.
“…….”
나도 살짝 민망했으니까.
조유리 밴드를 담당하던 카메라 중 한 대가 이번에 우리 쪽으로 붙은 걸 발견했다.
리허설 때부터 조유리는 분한 얼굴로 입술을 살짝 깨물었는데, 서로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연예계가 냉정하다고 하는 말을 다시 한 번 체험한 계기였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끝내고 오늘의 우승자가 새롭게 탄생했다.
-총 득표수의 37.7 퍼센트를 차지한 가수입니다. …리사 씨! 축하드립니다!
작은 키의 뮤지컬 배우가 붉은 로마인 망토를 두르면서 기쁜 표정을 지었다.
동요 ‘또롱또롱’이 걸린 지난번에 못 다한 한을 풀겠다는 듯 작정하고 준비한 무대였다.
수십 명의 댄서들까지 동원된 무대에 대기실에서 보던 우리도 ‘오늘 1등 하시겠다’ 하며 감탄할 정도였다.
“축하 드려요. 선배님.”
“고마워. …어머, 리사조아님 감사해요.”
민기 형이 리본이 붙은 과자를 건네주자 리사가 미소를 지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고생했다.”
“수고했어, 얘들아!”
방송이 끝나고 여기저기 인사를 나누었다.
시청률에 대한 초조와 불안으로 가득했던 이전과 달리 밝은 표정의 스탭들이었다.
넉넉한 곳간에서 인심이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제작진의 인심은 낭낭한 시청률에서 나오고 있었다.
우리가 기쁜 얼굴로 마무리 인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얘들아.”
복도를 활기차게 걷는 우리를 듣기 좋은 목소리가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구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엇, 선배님.”
차우현이었다.
오늘 2위를 한 선배 가수가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대뜸 말했다.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