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18화
한산한 고깃집.
지호네 아버님이 아이들 좀 편하게 먹으라고 통째로 빌려 버린 고깃집에 정적이 흘렀다.
“…….”
들리는 건 불판 위 고기 찌끄러기가 타는 소리, 탄산음료 기포가 올라오는 소리, 숯불이 타닥거리는 소리뿐이었다.
“…….”
내가 연달아 10점을 3번 쏘아 버리자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10점이었다면 다들 ‘오’ 하고 웃었을 텐데 자세가 지나치게 완벽한 탓이었다.
비주네 아버님이 물었다.
“원래 저런 걸 잘하니?”
“운이 좋았어요.”
바로 그때 TV 속 양궁 금메달리스트가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저 친구는 여기 있을 친구가 아닌데요? 저기 보세요. 스탠스도 체형에 알맞게 서 있고요. 그립도 정확합니다. 완벽해요!
그녀가 하는 칭찬에 고깃집에 있는 가족들이 ‘오오…’ 하는 눈으로 새삼스레 나를 바라보았다.
비주네 어머님이 키득거리며 물었다.
“우주는 술 마시는 거 빼고 다 잘하는구나?”
“핫핫핫!”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금메달리스트의 대사에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우주 선수의 표정이 제가 아는 선배랑 닮아 보여요.
-선배요?
-남자 금메달리스트 중에서 오영준 선배님이라고 계시거든요. 그 분이 릴리스할 때 딱 저런 표정을 트레이드마크처럼 지으시는데 너무 닮았어요.
중계진이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돌림픽 화면이 2분할되더니.
왼편에는 릴리스를 마친 내 표정이, 오른편에는 금메달리스트 오영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먹는 꽃등심보다 더 느끼한 얼굴이었다.
“푸흡-!”
지호네 누나들이 음료를 뱉다시피 웃었고 멤버들과 가족들 다 같이 웃고 말았다.
나 역시 같이 웃으면서도 뜨끔했다.
예리하시네.
미튜브에서 양궁 영상을 볼 때 가장 많이 참고한 게 오영준 선수였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중에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을 딴 사람이라서.
기억을 회상하는 중에도 경기는 계속됐다.
“어머어머, 우리 아들 좀 봐.”
비주네 어머님이 행복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들어 TV 속 아들을 찍었다.
이에 질세라 지호 아버님도 핸드폰을 들었다.
“잘생겼다! 잘생겼어, 누구를 닮은 건지 몰라도 참 잘생겼어. 울 아들.”
“전 엄마 닮아서 잘생긴 거예여. 아빠.”
“…….”
“그치. 우리 지호는 엄마 닮아서 이렇게 예쁜 거야.”
“엄마 우리 하이파이브~”
“짠~”
어머님과 지호가 손을 맞대고 아버님에게 보란 듯이 꺄르륵 웃었다.
서운한 표정을 짓던 아버님은 ‘우리 아빠 대존잘’ 하는 막내의 애교에 금세 풀어졌다.
학교 운동회 관중석 같다.
비주와 지호가 활시위를 놓고 점수가 나올 때마다 부모님들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지호네 누나들도 좋아하면서 막내의 입에 고기를 쏙쏙 넣어주고, 비주 누나와 민준이도 눈을 반짝이면서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고 있다.
물론 나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비주 어머님이 깻잎을 살랑살랑 흔들며 외쳤다.
“우주야! 힘내!”
“여보. 우주는 여기 있는데 왜 TV에다 응원을 해요?”
“저기 과거의 우주한테 하는 거잖아. 에잇, 흥 깨져. 여보, 눈치 좀 챙겨요.”
“……우, 우주 화이팅.”
쌈을 싸 먹으려 꺼내든 상추를 흔드는 비주 아버님의 모습에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치 자기 자식이 해낸 것처럼 기뻐해 주는 모습이 고마웠다.
“이야, 진짜 재미있네. 저거.”
‘나도 회사 단합회 때 저런 거 해 볼까?’ 하는 무서운 이야기를 중얼거리던 지호 아버님이 물었다.
“저게 1년에 두 번 하는 거라고 했나?”
“네. 설이랑 추석에요.”
“자주 했으면 좋겠네. 너무 재미있어.”
부모님들 눈에는 우리가 나온 돌림픽이 야유회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TV 속 편집된 모습만 보면 ‘팬과 아이돌의 축제! 우아앙!’ 하는 느낌이라 그럴 만했다.
실제로는 스탭들은 욕하고 소리 지르고, 아이돌과 팬들은 뚜껑 열린 물티슈처럼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말라붙는 녹화였지만 말이야.
끝나고 나서 멤버들과 힘든 건 우리끼리만 알자고 합의를 봐서 가족들에겐 재미있게 녹화했다고 얘기를 했는데 다행이었다.
가족들이 물개박수를 치는 모습에 미소를 짓던 지호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떠있는 모습들을 보니 마음이 따스하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고기 추가를 안 했네. 사장님! 여기 꽃등심 10인분 좀 더 갖다줘요! 좋은 걸로!”
“예!”
사장님 부부가 인심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기를 가져다주었다. 그들도 TV를 보고 있었는지 한 마디 했다.
“활 엄청 잘 쏘시던데. 다 아드님들이에요?”
“네, 여기 둘이 저희 아들이고. 여긴 우리 아들 같은 친구들이요.”
“미남들이시네!”
사장님의 칭찬에 우리가 웃으며 고개를 꾸벅했다. 그때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내가 재방송으로 하는 명곡 발굴단 봤는데, 거기 나온 거 맞죠?”
“어… 네. 맞아요.”
“어쩐지. 아까부터 얘기를 해 볼까 말까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나갈 때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
“그럼요. 당연하죠.”
이따가 종이 가져오겠다며 희희낙락한 미소로 사라지는 사장님이었다.
우리끼리만 남게 되자, 부모님들이 득달같이 입을 열었다.
“우리 애들이 사인도 받아……!”
“이제 우리 아들 피곤해서 어떡하니…? 으히히. 아들이 유명해져서 엄마는 걱정이야.”
“방금 사인 요청 받은 거 동영상으로 찍어뒀어야 했는데. 이걸 어디다 자랑을 하나.”
지호네 아버님도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유명인이네. 유명인! 핫핫핫! 우리 아들 이러다가 아빠보다 더 유명해지는 거 아니냐?”
“음?”
지호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아빠보다 더 유명해여. 아빠는 실검 올라 봤어여? 난 여러 번 올라가 봤는데.”
“인마, 아빠도 올라가려면 올라갈 수 있어!”
“어떻게여?”
“그…….”
아버님이 말문이 막혔을 때, 지호네 첫째 누나가 차분하게 말했다.
“지호야. 아빠는 실검 오르면 안 돼.”
“왜?”
“실검에 오를 만한 일이라고 하면…….”
“아앗….”
모두의 머릿속에 불미스러운 일이라든가, 아니면 치킨 한 마리에 목뼈 네 개가 나왔다든가 하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떠올랐다.
잠시 정적.
이내 큰 웃음을 한참이나 나눈 후 화제는 돌림픽으로 돌아갔다.
“무슨무슨 종목 나갔니?”
“중현이는 풋살 나갔어…? 골키퍼? 아유, 못된 것들. 신입이라고 골키퍼 시킨 거 아냐.”
“지들 주목 받을라고 중현이만 재미없는 거 시켰네.”
중현이 풋살 얘기도 나오고.
“우주는 농구 나갔구나.”
“별 거 다 하는구만. 농구도 하고.”
“핫핫! 거기서도 뭐 터뜨렸니? 3점 슛이라도 쐈어?”
지호가 ‘울 아빠는 예언자인가…?’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리혁이가 달리기…?”
“어유, 이렇게 피골이 상접한 애를 뛰게 시키다니. 회사도 너무하는 거 아니니?”
“그러니까요. 젓가락 드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애한테.”
리혁이가 ‘아니에요. 저 젓가락 잘 들어요!’ 하면서 젓가락 뭉탱이를 들어보였다가 바닥에 떨어뜨려 난장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즐겁게 웃는 가족들과 달리 우리는 머쓱한 얼굴로 뺨을 긁적일 뿐이었다.
주목 못 받는 골키퍼라니.
‘중현이가 골킥으로 골 넣었지…….’
농구 3점 슛이라.
‘3점 슛 쐈는데…….’
리혁이 달리기는.
‘얘 은메달 땄는데…….’
뭐라고 스포하기도 애매해서 가만히 있었다.
부모님들이 보시기엔 양궁 10점이 대사건인 모양이었다.
영화 하이라이트가 끝나면 또 다른 하이라이트가 없듯이, 클라이맥스인 양궁 금메달 이후로 있어봐야 더 뭐가 있겠냐고 생각하시는 듯하다고 할까.
“하하하…….”
우리는 다가올 사건을 기다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 * *
같은 시각.
포털 연예 면에는 돌림픽에 관한 뉴스가 실시간으로 업로드 되는 중이었다.
-TBC 설특집 ‘아이돌 운동회’… 아이돌 스타 총출동
-‘돌림픽’ 차세대 양궁돌의 탄생, 양궁경기서 카메라 명중시킨 뉴블랙
-‘돌림픽’ 신흥강자 vs 차세대 다크호스
초창기 15%에서 19%를 자랑했던 돌림픽은 이번 설을 기점으로 8~10% 사이를 기록하고 있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던 2세대 아이돌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대중적인 관심은 이전보다 확실히 시들해진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 팬들에겐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었다.
-제발 좀 망해라.. 망해
-내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음. tbc 임원진이랑 피디들 모두 집합시켜서 직림픽 진행하는 거임. 그러면 지들도 아닌 거 알겠지
-임원들은 좋아할 거 같은데..?
-돌들 고생 그만 좀 시키고 폐지해
-대체 왜함??? 왜???
당장 이번에 부상을 입은 아이돌만 해도 대여섯 명이 넘었다.
이어달리기를 하다 엎어진 걸그룹 멤버도 있고, 풋살 하다가 태클을 잘못 걸어 염좌 진단을 받은 보이그룹 멤버도 있었다.
2010년에 시작할 때부터 매년 있던 일.
그만큼 방송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이 시작되면서 아이돌 커뮤니티에는 돌림픽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마다 자기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간간히 타 아이돌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곤 했다.
그중에서 뉴블랙은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쟤 젠민이는 전광판 잡힐 때마다 장내가 술렁거리네 ㅋㅋㅋㅋ
-존잘
-친척들 tv에 쟤 나올 때마다 감탄하는 중
-[속보] 작은엄마 “울 아들이 쟤만큼 잘생겼다” … 집안 민심 술렁술렁
-[종합] 사촌오빠 “엄마는 그만하시라”, 큰아빠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 학설 제기
-ㅋㅋㅋㅋㅋㅋ왜 저럴 때마다 옆에 멤버들이 더 뿌듯해하는 거야
-저 콧대 높아지는 기분 왠지 이해감ㅋㅋㅋ
-나두나두ㅋㅋㅋㅋ
-쟤 실물 ㄹㅇ 잘생겼어.. 내 본진 남팬들도 실물 보고 신기해함
-엌ㅋㅋㅋㅋㅋㅋ 금메달에 얼굴합성 뭔데
-저기 팬들 흔드는 슬로건 나올때마다 개터진다 진짜
-황금 크리링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ㅌㅋㅋㅋㅋ
-근데 얘네 뭔데 분량 자꾸 잡아줌..? 신인 아냐??
뉴블랙이 화면에 잡힐 때마다 글이 쭉쭉 올라왔다.
이 틈을 타서 ‘우주 실물 체감짤’ 등을 올리며 영업하는 수플레들과 함께 ‘왜 분량이 많냐’며 항의하는 이들이 얽혀들었다.
한편, 분량에 대한 것은 억지 논란은 아니었다.
대형 기획사 신인이 아니면 분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명절 특집에 뉴블랙이 떡하니 얼굴을 계속 비추고 있었으니까.
스칼렛의 팬덤인 커튼도 황당해 하는 중이었다.
-규호쟝한테 이런 영업력이 있을 리가..??
-규호야 스칼렛한텐 왜그랫냐
-1군 걸그룹 팬덤명이 커튼인게 말이 되냐.. 아오 이젠 얼굴만 봐도 치가 떨려
-엄마: 딸이 좋아하는 걸그룹 팬클럽 이름이 모였지? 나:(머쓱)
-규호 잇몸 보이지마
-반짝거리는 건 머리 하나로 충분해
-꽃등심 사주는거 빼고 잘하는 거 뭐냐
같은 소속사 걸그룹의 팬들도 회사의 영업력에 ‘뭐지’ 하며 술렁거리고 있을 때.
이내 그 의문이 해소됐다.
주몽이 강림했는지 양궁에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10점만 쏘는 뉴블랙의 리더.
공 대신 포탄을 쏘아대는 금강불괴.
달리기 예선의 미쳐버린 종이인형.
거기다 추가로 농구에서 3점 슛을 날리는 젠민이.
곧바로 댓글반응이 올라왔다.
-분량 줄만하네.. 내가 피디여도 ㅇㅈ
-이걸 어떻게 안 주냐
-얘네 왜 아이돌해..?
-다치지 말라고 빌던 나.. 울 오빠 뉴블랙 대길이한테 공 맞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 비는 중
-골킥으로 골을 넣었어..?
-해설위원들 벙찐 거 개웃김ㅋㅋㅋㅋㅋ
-농구 3점슛이 뭔 자판기처럼 나와..
-tnt 태현이랑 젠민이랑 친한 사이야?? 되게 친해 보이네
-ㅇㅇ 쟤도 tj출신이래
-오.. 글쿠나
-뉴블랙 하얀애는 왜 달리기할 때 저렇게 필사적으로 달려?? 강도한테 쫓기는 사람 같다
-ㅋㅋㅋㅋㅋ그 애니에 나오는 종이인형인줄
-팔락팔락!! 팔락팔락!!
-와 쟨 찐으로 말랐다.. 저 트레이닝복이 널널하네
이어서 여자 씨름이 시작되면서 스칼렛의 압도적인 피지컬이 나오자 사람들의 반응이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이쯤 되면 레몬 터에 뭐가 있는 거 아닐까..?
-배산임수
-누가 쟤넨 월말평가때 서전트 점프 보는 거 아니냐는 드립친거 자꾸 떠올라ㅋㅋㅋㅋ
-규호쟝.. 아이돌 키우랬더니 인간병기를 키웠구나
-레몬엔터 지하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연습생 품종개량이라도 하나
-나약한자는 레몬엔터에서 데뷔할 수 없다
-데뷔(물리)
-ㅁㅊ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기서 리더라니.. 아라랑 우주 주먹이 어지간히 매운가 봄
-레몬엔터 간판 찌익하고 떨어져 나가면 그 뒤에 숨겨져 있던 ‘태릉’의 ‘ㅌ’자 보일 거 같음
-ㅋㅋㅋㅋㅌㅋㅋㅋ도른거냐고 다들
종합 결과가 나오는 건 다음 날 2부 방송이었지만 이미 ‘어차피 우승은 레몬이겠네’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더불어 기존에 ‘체육돌’로 유명했던 스칼렛과 함께 뉴블랙도 신흥 강자로서 큰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게 어떻게 된거죠..?
-잘했다 잘했다 얘기는 들었는데 텍스트로 본 거랑 괴리가 너무 크다
-타팬들: 와 뉴블랙 잘하네! 수플레: 당연하.. (화들짝) 뭐야 이거
-입 벌리고 보다가 영업 타이밍 놓쳤어ㅋㅋㅋ
-흑역사 만들고 오랬더니 역사를 만들고 오는구나.. 이 할미 넘모 행복한 거시에요ㅠㅠ
-일단 기뻐할까요..?
-꺄르륵 (얼떨떨)
다른 그룹 팬들이 ‘와……!’ 할 때마다 같이 얼떨떨해 하고 있는 뉴블랙의 팬들이었다.
* * *
돌림픽 2부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연예 뉴스에 몇 번이고 이름을 올렸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나 팬들도 놀라고 있는 상황이니 다른 팬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이돌 관련 사이트를 볼 때마다 온갖 드립과 함께 신기한 생명체를 보는 듯한 반응이 보였다.
“아들.”
1부 방영이 끝나고 지호네 아버님이 그런 당부를 할 정도였다.
“넌 형들한테 절대 덤비지 말고 살아. 알았지?”
그만큼 우리의 활약이 인상 깊긴 한 모양이었다.
요즘 목표로 하던 대중보다는 주로 아이돌 팬덤에게서 나온 반응이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비주네 어머님이 잔뜩 가져다주신 반찬 보따리를 안아들고 돌아온 우리는 남은 스케줄도 잘 마무리했다.
금요일의 3차 경연곡 추첨 녹화까지 마치고 마침내 대망의 주말.
새벽부터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잡아탄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군산에 도착했다.
“후후후…….”
가만히 있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후후후흐흐…….”
계속해서 웃음을 흘리고 있자니 택시 기사의 눈이 백미러로 향했다.
“뭐 좋은 일이 있나 봐요?”
“네, 할머니 만나러 왔거든요.”
그 말을 하며 스마트폰을 손거울 삼아 살폈다.
꽃단장을 해서 피부색도 고와 보이고. 동생들이 절대 그 옷으로 보낼 수 없다며 옷까지 입혀준 터였다.
‘생각해 봐여. 안 그래도 눈에 띄는 형 얼굴인데 옷까지 못 입는다? 그럼 몇 배로 눈에 띄겠어여?’
‘이 옷이 뭐가 어때서?’
‘형. 제발 그 빨간 잠바 좀 버려여…….’
라는 이유로 가장 비싸게 산 옷은 장롱에 갇히고, 패션감각 좋은 막내가 입혀준 깔끔한 회색 니트와 네이비 코트를 입었다.
‘너무 심심하지 않나? 목도리 매면 어떨까.’
‘그리핀도르 목도리는 또 어디서 난 거예여…? 으아아!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여. 아무것도!’
‘…….’
그 이후 다른 동생들까지 참전해서 신발부터 목도리까지 전부 세팅해 준 상태였다.
당시에는 툴툴거리긴 했는데 막상 결과물을 보고 나니…….
나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자 택시 기사가 웃었다.
“옷도 그렇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런지 연예인 같아요.”
“아, 저 가수 맞아요.”
“……?”
마스크를 쏙 내리고 홍보를 했다.
내일 있을 PBS 명곡 발굴단도 좀 봐달라고 말씀도 드리고, 중학생인 따님한테도 홍보 부탁드린다며 장난스럽게 말을 했다.
내리기 전에 택시 기사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늦은 명절 잘 보내요.”
“네, 살펴 가세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
가슴이 콩닥콩닥거린다.
수플레들이 우리를 보러 올 때 어떤 심경인지 알 것 같다.
조금만. 여기서 조금만 있으면 드디어 김덕순을 실물로 마주할 수 있다……!
실물!
“푸흐흐…….”
잠시 멈춰 서서 양손으로 입을 감쌌다. 2월 중순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뺨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아. 너무 좋아. 어떡하지.
설레서 그런지 자꾸 새어나오는 침도 꿀꺽 삼키고. 양손에 가득 든 짐을 든 채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저벅저벅하는 걸음 소리가 덕순덕순으로 들리는 것만 같다.
겨울바람도 덕순덕순.
주변 가게들에서 손님들의 대화 소리도 덕순덕순으로 들린다.
음식점이 모인 거리를 지나갈 때, 군산에서 백반 맛집으로 소문난 집의 간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순이네 소문난 식당]이란 낡은 간판을 보며 심장이 거세게 뛴다.
발걸음의 속도를 높일 때였다.
“……!”
마치 클로즈업을 하듯 멀찍이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확대됐다.
할머니였다.
잠시 바깥으로 나와 근처 가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인기척을 느낀 김덕순 여사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곧바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 나야!”
우아아 하면서 빠르게 뛰어갔다. 양손에 봉지를 든 채로 눈을 휘둥그레 뜬 김덕순 여사에게 달려가 껴안았다.
“할머니이이이!”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은 우리 할머니를 품에 꼬옥 안으며 덩실덩실 몸을 흔들었다.
“아이고, 숨 막혀.”
“잠시만. 나 잠시만 이러고 있을래.”
“덩치는 산더미처럼 변해 가지고… 하여튼…….”
투덜거리면서도 내 등을 토닥거려주는 할머니였다.
그리운 내음을 맡으며 행복한 기분을 느낄 때.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근처 가게 아주머니들이었다.
마스크를 벗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 우주구나. 어이구, 너는 어째 볼 때마다 더 이뻐지냐.”
“다 컸네. 다 컸어. 애기 때가 엊그제 같은데.”
반갑게 맞아주는 이웃 가게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잠시 가게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별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내 등짝을 팡 치며 말했다.
“들어가자. 이것아. 여기 있음 추워.”
“응응, 그러자.”
할머니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백반집 안으로 입성했다.
행복했다.
작년 초 이후로 1년 만에 돌아온 고향이 이리도 좋을 줄이야.
* * *
손자가 할머니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간 후.
주변 음식점 사장 중 하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누구래요? 저저… 연예인 아닌가?”
“저 집 손자야. 옛날부터 이 동네에서 유명했어.”
“그래요?”
아직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가 놀란 눈으로 바라볼 때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어이구, 우리 회장님 저리 기분 좋은 건 간만에 보네.”
“그니까 말여. 아침부터 우주 올 거라고 밖에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계속 그랬잖어.”
그런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는 이들의 모습에 그녀가 또 한 번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회장님이 기분이 좋아 보인다니요?”
“아. 새댁은 아직 모르겠구만. 저게 우리 회장님이 최고로 행복할 때 나오는 표정이여.”
“방금 그 표정이요?”
모두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그녀는 눈을 깜빡거리며 방금 전의 시큰둥한 표정을 떠올렸다.
‘……그게 기쁜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