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19화
“이모, 이거 받으세요.”
“어머머!”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주방을 맡아 주는 숙자 이모에게 선물 꾸러미를 내밀었다.
할머니가 째려보았다.
“야, 넌 오자마자 쟤한테부터 선물 주고 그르냐?”
“오, 덕순~”
할머니의 어깨를 붙잡고 흐뭇하게 웃었다.
“지금 질투하는 거… 아아악!”
“옘병하고 있네. 미친놈.”
“뜨아아!”
옆구리를 꽈악 꼬집혀서 비명을 질렀다.
손님들이 고개를 돌려 흘깃거리기에 ‘안녕하세여…’ 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거기서도 머쓱하게 ‘아, 네…’ 하는 인사를 했다.
선물 꾸러미를 들고 웃는 숙자 이모에게 내가 말했다.
“저 없는 동안 할머니 성격 받아주시느라 엄청 고생하셨어요. 많이 힘드셨죠?”
“언니 성격이 보통이 아니잖아.”
“내가 뭐 어때서, 이것들아!”
짓궂게 웃으며 상대와 하이파이브를 짝- 했다. 그 동안 준비를 마친 할머니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얘, 숙자야! 그럼 가게 좀 부탁하고 간다!”
“그려. 둘이 재밌게 놀고 와요!”
2월 말의 차가운 겨울바람이 쌩하고 지나간다. 흩날리는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면서 목도리를 매 주었다.
“아이구, 우리 할머니 최고 미녀다.”
“맘속에도 없는 빈말이나 하고 있냐.”
“빈말이라니. 사랑으로 꽉 찬 말인걸. 우리 김덕순이 지상 최고의 존예시다.”
그러면서 등을 톡톡 치면서 ‘천사 날개 어디 갔어?’하는 개드립을 했더니 미친놈이라며 웃기 시작했다.
내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가실까요~?”
“네에. 같이 가시어요.”
우리 김덕순 여사가 내 손을 맞잡아 주었다.
주름진 손 사이로 온기가 흘러들어오면서 지금 맞는 겨울바람도 훈풍처럼 느껴졌다.
택시를 잡기 위해 대로로 나가는 동안 잡담을 나누었다.
“가게는? 이모 혼자 있어도 돼?”
“황금연휴니 뭐니 다 놀러나가서 손님도 없지. 그냥 오던 단골들만 몇 오는겨.”
“고렇구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할머니가 화제를 바꾸었다.
“애들은?”
“애들?”
“니 동생들은 어떻게 됐어?”
“다들 가족 만나러 갔지. 나처럼.”
기억을 떠올렸다.
지호네는 주말에 가족 별장에 놀러가서 조개 구워 먹고 논다고 했고. 비주와 중현이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낼 거라고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할머니가 물었다.
“리혁이는?”
“아.”
아무래도 가족이랑 떨어져 사는 리혁이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캐리어에 책 가득 담고 호텔 갔어.”
“혼자 보내는 겨?”
“아무래도 그런 거 같은데. 아무데도 가기 싫으니까 찾지 말래.”
“고것도 참.”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혼자 지내는 것도 할 짓이 아닌데. 다음 추석 때 내려오고 그럴 때는 좀 데리고 오든지 혀.”
“그려그려.”
뭐, 이번에도 얘기는 해볼까 했는데 본인이 먼저 선언했다
‘명절은 사회적인 관습일 뿐이에요. 난 그런 거에 구애 받지 않아요.’
어리석은 관습에 얽매여 전 부치고 그럴 바에야 마음의 양식을 쌓을 거라는 말을 전해 주자 할머니가 옘병한다며 웃었다.
“아무튼 할머니. 오늘은 덕순스 데이야. 다른 동생들이고 나고 다 신경 쓰지 말고 본인만 생각해.”
“그려, 그래서 우린 지금 어디 가는겨?”
“잠시만.”
코트 안에서 두루마리처럼 리본으로 묶은 A4 용지를 꺼내들었다. 그걸 펼치며 자랑스럽게 웃어 보였다.
“짜잔!”
‘효도 마스터 플랜 — 덕순이는 행복해요☆’하는 제목과 함께 오늘 방문할 데이트 코스가 적혀져 있었다.
어제 비주랑 같이 밤새워 준비한 계획.
내가 야심찬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어때?”
이윽고 시큰둥한 얼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완벽한 하루였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내용도 알찼다.
“…이, 이걸 다 사도 되는 겨?”
“손자 이제 영앤리치야. 할머니. 정말로 저기부터 여기까지 다 사도 돼.”
우리 할머니가 맨날 돈 아낀다면서 못 샀던 구두들도 사고. 화장품 샵에서도 엄청 지르고.
그간 썸씽, 불꽃놀이, 마스커레이드 등으로 번 저작권료를 원 없이 썼다.
처음에 할머니는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지난 추석에 무리한 거 아니냐. 진짜로 괜찮은 겨?”
“나 돈 많이 벌었잖아. 할머니가 여기 백화점 사 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은 기별도 안 와.”
그건 진짜였다.
멤버나 회사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줄 때를 빼면 딱히 쓸 곳이 없어서 모아놓던 돈이었다.
애초에 이러려고 모으는 돈인걸.
“그러니까 사고 싶은 거 다 사. 할머니.”
백화점에서 평소 사고 싶어했던 것들을 하나씩 찾아가서 수집했고. 샵에 들려서 머리도 비싸게 했다.
처음에는 ‘어이구, 손자 뺏겨먹는 거 같은데…’ 하면서 눈치를 보던 할머니도 이내 행복한 표정을 숨기며 툴툴거렸다.
그 뒤에 영화 보면서 문화생활도 즐기고, 밥도 최고로 비싼 스테이크랑 파스타를 먹였다.
“어우, 느끼해. 속이 느글거려서 죽겠네. 가서 김치에 밥이나 먹어야겠디야.”
“…….”
“넌 안 느끼하냐?”
지난번부터 먹고 싶다고 하는 걸 먹였는데 ‘역시 한국인은 김치여’ 하는 우리 청개구리 여사님이었다.
“…….”
입술을 살짝 비죽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백반집에 맡겼던 짐과 새로 산 짐들을 합치니 산더미 같았지만 할머니와 조금 나누니 들 만했다.
택시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한산한 거리.
이윽고 집이 나타났다.
담벼락이 늘어서 있고 살짝 녹슨 철문이 보인다.
끼익.
팔의 솜털이 오소소 돋을 만한 추억의 소리. 그걸 지나서 소박하고 아담한 2층 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문앞으로 다가가면서 이 풍경을 기억에 담았다.
……많이 낡긴 했네.
15년 전만 해도 군산에서 가장 새 것 같은 집이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나니 영락없이 오래된 집이었다.
내가 7살 때 아빠가 장모님 사시라고 선물한 집이다.
할머니가 문을 여는 동안 심호흡을 하면서 겨울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시간이란 게 참 묘하다 싶다.
7살 때 맡던 그 바람은 그 냄새 그대로였는데 나는 달라져 있었다.
“뭐하고 있냐. 안 들어오고.”
“……응? 아, 가야지.”
양손에 짐을 가득 든 채 집안으로 들어갈 때였다.
문득 이상한 소리가 났다.
우다다!
커다란 벌레가 빠르게 뛰는 듯한 소리라서 ‘음?’ 하기도 전에 날씬한 형체가 네 발로 뛰어와 현관 앞에 섰다.
“……고양이?”
아. 맞다.
할머니랑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깜빡하고 있던 존재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와 등은 치즈색.
하얀 솜방망이 같은 네 다리가 꼿꼿이 서 있다.
꼬리가 위로 쭈뼛 솟아 있었는데 그 움직임은 마치 ‘뭐, 뭐냐’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
현관 앞에서 김덕순 여사에게 뿅! 하고 나타나려던 고양이는 나를 보고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동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당황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온몸으로 할머니한테 ‘쟤 뭐야? 뭐야?’ 하는 눈빛을 어필하는 녀석을 보며 눈을 찌릿했다.
“네가 나비구나?”
왕의 눈에 들었다는 무수리를 바라보는 중전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예쁘게 생기긴 했네.”
고양이계에서 미모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 눈으로 봤을 때 확실히 실물도 귀여웠다.
하지만 내 시선은 싸늘할 뿐이었다.
김덕순 여사 프로필에 맨날 보이던 꽃밭 사이의 모습.
영상 통화할 때마다 할머니 품에 쏙 안겨서 배를 드러내던 모습.
통화할 때마다 고양이 밥 줘야 한다며 금세 사라지는 김덕순.
“김덕순은 내 거야.”
당당하게 선포하며 김덕순 여사의 팔짱을 낄 때였다.
들고 있던 봉투 중 하나가 바닥에 ‘탁!’ 떨어지면서 그 소리에 놀란 나비가 줄행랑을 치며 도망갔다.
‘이겼다’ 하며 의기양양하게 웃는 내 모습.
옆에서 지켜보던 김덕순 여사가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고양이 이겨 먹어서 퍽도 좋겄다.”
* * *
오늘 백화점에서 산 물건들과 함께 서울에서 가져온 선물 꾸러미를 푸는 시간을 가졌다.
“어이구… 이게 다 뭐여?”
“애들이 할머니한테 주겠다고 산 선물들이야. 이건 중현이랑 지호가 둘이 나가서 사온 옷이고.”
하나씩 풀며 말했다.
“요건 비주가 할머니 먹으라고 만든 반찬이야. 며칠 전부터 땀 뻘뻘 흘려가면서 장조림 만들더라고.”
“어이구, 고마워서 이를 어떡한다냐. 안 그래도 너희 멤바들 가족들이 선물도 보내고 그랬는데.”
“그래?”
“니 회사에서도 선물이 왔어.”
우리가 모르는 교류가 많긴 많았나 보다.
중현이네 아버님이 보낸 농산물 박스도 잔뜩 쌓여 있고, 냉장고에는 비주네 어머님이 택배로 보낸 음식이 가득했다.
그리고 ‘왕현탁 회장입니다’하는 고풍스러운 글씨체의 시계 선물도 있고.
우리 대표님과 조 이사님이 친필로 편지를 쓴 명절 선물박스도 있었다. ‘너희 애 고맙다. 잘 키우겠다.’하는 내용이었다.
“우리 할머니 인기도 많고 좋다아…….”
“내가 인기 많아서 준 거냐. 니가 돈 벌어다 주니까 다 여기저기서 할매 땡큐입니다 하고 준 거지.”
할머니의 시큰둥한 발언에 웃었다.
그렇게 짐을 하나씩 풀 때마다 선물 꾸러미에 할머니의 광대가 폭발하고 있던 중이었다.
“요거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가수들 사인이야. 한밤의 음악회 나갈 때마다 트로트 가수 선생님들 사인 받았거든. 요거는 노재현 선생님 사인이구…….”
‘덕순 님께, 애정을 담아’ 같은 메시지 가득한 사인지 모음을 건넬 때. 꾸러미 사이에서 무언가 툭 떨어졌다.
깔끔한 파란색 봉투 2개.
정갈함의 끝을 보여주는 글씨체가 쓰여 있었다.
‘김덕순 할머니께’와 ‘뉴블랙 리더 우주 귀하’ 라고 적혀 있는 봉투 아래 발신인의 이름이 보인다.
“리혁이……?”
“그건 또 뭐냐.”
“모르겠네. 얘가 뭐 편지라도 썼나 본데.”
내가 짐을 쌀 때 몰래 그 사이에 끼워둔 모양이었다. 편지 봉투를 열어서 짤짤 터니 곱게 접힌 종이가 빠져 나왔다.
할머니와 함께 각자의 편지를 펼쳤다.
『 우주 형에게 』
[ 형(?)이라고 불러달라고 평소에 하도 노래를 불러서 이번 편지에서만 형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명심하기 바람)
설날.
음력 새해 첫날을 기념하는 행사이자 동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명절이죠. 솔직히 양력이 하나 있는데 뭐 하러 음력까지 하는지 낭비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잘 보내고요. 고마워요. 형.
내가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우리 멤버들 다 고마워하고 있다는 거 알아줬음 좋겠네요. ]
그 뒤로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명절이니까 특별히 너희한테 말해주는 거야’ 하는 편지가 쭉쭉 이어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ps. 멤버들한테 편지 하나씩 썼어요. 그니까 다 같이 모른 척 해요. 단톡방에서 이거 얘기하면 가만 안 둬 선우주]
급발진하는 마지막 추신에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글자 읽는 속도가 느린 우리 할머니는 여전히 글을 차분히 읽고 있는 중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그 내용이 좋다는 건 알겠다. 우리 할머니가 슬그머니 퉁명스런 웃음을 흘리고 있으니까.
“별일이 다 있네.”
우리 서리혁이 고맙다면서 편지도 써서 주고.
어젯밤에 화장실 갈 때였나.
소파에 쭈그려서 라이트펜으로 뭘 열심히 쓰고 있길래 데스노트 쓰나 생각했는데 멤버들한테 줄 편지였던 모양이다.
기특하기도 하고 마음이 푸근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
집요한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비좁은 가구 틈 사이에서 한 쌍의 올망졸망한 눈동자가 날 바라보고 있다.
‘너 뭐야. 뭐야?’ 하면서 경계하는 눈빛.
눈이 마주치자 몸을 바싹 굳힌다. 당장이라도 어디로 튀겠다고 마음을 먹은 듯한 모습.
“어디 보자.”
내가 봉투를 뒤적거렸다.
안 그래도 가져오려고 준비하긴 했는데 어디 있더라.
“아, 찾았다.”
사료 회사 광고를 찍고 나서 받은 에센셜 라이트 고양이 사료 봉지 아래 통조림이 있었다.
뽁-
그걸 까고서 적당히 나와 떨어진 곳에 두고 나왔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듯 뚫어져라 바라보던 고양이와 눈을 마주친 후 물러났다.
“할머니, 편지는 다 읽었어?”
“다 읽었지.”
무슨 내용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뭉클한 표정을 짓는 김덕순 여사였다.
뭐라고 쓴 걸까. 대체.
궁금해 하면서 나머지 짐을 풀고 있을 때였다.
인기척인기척.
아니다. 냥기척인가.
냥기척이 느껴져서 시선을 돌리니 조심스럽게 다가오던 고양이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똑같이 바라보면 싫어하길래 가만히 내 일을 하고 있었더니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1시간이 지날 때쯤.
“…….”
내 허벅지에 머리를 슥 비비는 나비의 모습에 몸이 굳어서 눈만 깜빡거렸다.
이거 뭐지?
* * *
【 오합지졸 모임 (5) 】
[공지] 리혁이 형 편지 썼대요!!!!
[공지] 왕지호 뒤진다
리혁 [이 형편없는 사람들]
리혁 [내가 큰맘먹고 편지 썼는데 그걸 놀려????]
리혁 [어디 두고 봐]
지호 [으드 드그 브~~~~~]
지호 [(따라하면서 놀리는 움짤.gif)]
비주 [형은 그래도 좋았어! ^_^]
비주 [답장 열심히 쓰고 있으니까 나도 숙소 돌아가면 편지 줄게]
중현 [리혁이 편지 썻어?]
중현 [오 있네]
중현 [중현이 형이 중현이 형이라서 고마워요 이렇게 끝나는 이거 맞지?]
-리혁 님이 채팅방을 나갔습니다.
-지호 님이 리혁 님을 초대하였습니다
지호 [형 바깥 세상은 쉽지 않아요]
지호 [나가서 형 혼자 잘 살수 있을거 같아요?]
리혁 [닥쳐]
리혁 [이 온실속 화초의 대표주자같은 놈이]
지호 [ㅋㅋㅋㅋㅋㅋㅋㅋ]
비주 [근데 우주 형은 왜 답이 없지?]
비주 [형 뭐해요? 저 궁금해요]
우주 [하..]
우주 [얘들아..]
우주 [고양이는 정말 희한한 존재 같아..]
-우주 님이 사진 37장을 보냈습니다.
우주 [고양이..]
우주 [고양이는 어쩜 고양이일까]
우주 [거꾸로 봐도 귀여워]
비주 [형?;;;]
지호 [이건 뭔 컨셉이지]
지호 [주기상으로 우주 형이 한번쯤 이상해질 때가 오긴 했져..]
리혁 [냅둬 알아서 지치게]
중현 [우주 형 이상한 소리하네]
중현 [나 밥 먹고 올게]
우주 [나난난나ㅏ나나]
우주 [난 나비를 용서하고 수플레로 받아들였어]
우주 [나비야 오빠가 사료 열심히 벌어올게~~~!]
우주 [고!]
우주 [양!]
-리혁 님이 채팅방을 나갔습니다.
우주 [이..]
지호 [ㅋㅋㅋㅋㅋㅋㅋㅋ]
3분 후.
지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호 [리혀기 형이 왜 초대 안해주냐고 갠톡으로 욕해여]
지호 [스크린샷.jpg]
비주 [ㅋ.ㅋ]
비주 [내가 초대할게]
* * *
“나비야. 내가 좋아?”
냐아앙.
“이거 우리 애들 사진인데. 어때, 마음에 들어?”
냐아.
“그래, 확실히 나보다는 별로긴 한데 다들 좋지? 역시 너도 수플레였구나.”
“……아주 옘병첨병하고 있네.”
츄르를 먹이면서 고양이를 어화둥둥하는 내 모습에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양이 장난감도 사올 걸…….”
내 무르팍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는 고양이의 모습에 헤벌쭉한 미소를 지었다.
고양이 좋아.
이 귀엽디 귀여운 털뭉치가 냥 하면서 내 몸을 톡톡 칠 때마다 흐뭇한 기분이 느껴졌다.
엄청 귀여운 애기 같다고 해야 하나.
“핫핫…….”
나도 모르게 지호네 아버님 같은 웃음을 흘리고 있어서 자중했다.
할머니가 꼴 보기 싫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내가 금세 가서 안마를 토닥토닥 해주었다.
“어이구, 시원타.”
“그치? 내가 이거 해주려고 얼마나 연습을 했는데.”
미튜브로 배웠던 안마 기술을 총동원해서 김덕순 여사의 굳은 몸을 풀어 주었다.
“어이우…….”
눈을 감은 채 드러누운 김덕순 여사의 몸을 팡팡팡 두드리거나 주물러 주는 동안.
TV에서는 방송이 이어지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 5시.
PBS 도전 명곡 발굴단의 본방송 2회.
지난 주에 이어서 원곡자들과 가수들의 만남 후반부가 짧게 편집되어 나오는 중이었다.
곧이어 드러나는 공개홀의 전경에 할머니가 혀를 내둘렀다.
“어유, 사람이 뭐 저리 많다냐. 저게 몇 명이여?”
“육백 명 좀 넘었을 거야.”
“니 얼굴 보겠다고 육백이나 오냐?”
“아니, 그건 당연히 아니지. 저기서 대부분은 그냥 실제 방송 보러 오신 분들이야.”
방송에 대해서 이것저것 궁금한 질문을 하는 할머니에게 비하인드라든가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려주었다.
경연이 시작되면서 할머니가 똑바로 앉아 TV에 시선을 집중했다.
마치 손자의 경쟁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듯한 진지한 표정이어서 슬그머니 웃었다.
“어때, 할머니?”
“엄청 잘하는구만. 너 정말 저기 나가서 잘한 거 맞냐?”
“보면 알아.”
이제 곧 저기서 우리가 제일 잘하게 될 거야.
그 말을 삼키면서 할머니와 함께 TV를 바라보았다.
리사, 조유리 밴드, 차우현, 송보형 등이 무대를 펼치는 가운데 마침내 VCR과 함께 대망의 피날레를 장식할 가수가 나왔다.
잔잔한 피아노 BGM.
‘대한민국 No.1 음원사이트 Mango’의 문구와 함께 노래를 알리는 자막이 떠올랐다.
〔 인생|뉴블랙 〕이라는 자막과 함께 ‘작사작곡: 노재현’과 ‘편곡: 우주’라는 문구가 이어졌다.
“…….”
기분이 묘하다.
우리 할머니와 같이 이렇게 내가 TV에 나오는 걸 바라보는 모습은 처음이라고 할까.
아까까지 잔뜩 들떠서 톡을 쏟아내던 동생들도 잠잠하다.
다들 가족과 이걸 보고 있겠지?
서서히 움직이는 카메라 워크를 따라갔다.
공개홀의 풀샷.
전주가 나오는 동안 멀찍이서 꾸역꾸역 전진하는 카메라를 따라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가려진 라이브 밴드가 연주를 하고, 빗금처럼 새어나온 광선들이 어지럽게 얽혀든다.
그 아래 다섯이 서 있다.
곧이어 인트로를 부르는 우리 모습.
나와 동생들이 눈을 감거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드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호흡이 섞인 잔잔한 목소리에 리사가 ‘어후…’ 하며 입가에 손을 모으는 리액션 컷이 잡혔다.
연예인 석에 앉은 이들도 ‘……!’ 하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파란색, 노록색 조명이 바뀔 때마다 우리의 머리색이 물들어갔다.
마치 현실이 아닌 분위기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들처럼 노을빛이 배경에 자리를 잡는다.
화음이 하나씩 더해지고 더해진다.
나 역시 TV 속에서 웃음기 빠진 진지한 얼굴로 마이크를 들고 감정을 잡고 있었다.
내가 흐릿하게 사라지면서 중현이가 스며들듯이 화면이 교차된다.
카메라를 바라보고 차분하게 노래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우리 래퍼의 정적인 얼굴.
중현이가 마이크를 내려놓으면서 포커스가 지호에게 넘어갔다.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노래를 부르는 막내의 모습이 스며들고.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노래를 부르는 메인 보컬의 모습이 겹쳐 나왔다.
원곡자인 노재현 선생님이 눈을 느긋하게 감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리액션 컷으로 더해졌다.
물 흐르듯 이어지던 발라드 곡.
조명에 잔뜩 물들어 있는 비주가 나긋한 손짓과 함께 입술을 열면서 분위기가 고조됐다.
이윽고.
후렴구에 이르러 모두 다 같이 마이크를 들자, 객석에서 터져 나온 탄성이 TV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정신없이 화면이 움직이는 무언가에 시선이 갔다.
“……?”
지금까지 켜두고 있던 스마트폰 라이브톡의 댓글창이 폭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