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23화
왜 대본이 두 개나 있지?
차우현 선배가 우리를 추천한 곳은 PBS에서 런칭하는 수목드라마라고 했는데.
두 대본을 양손으로 나눠서 살폈다.
하나는 PBS 로고와 ‘여우구슬’이란 제목이 쓰여 있고, 다른 하나는 ‘슬립’이라고 쓰여 있었다.
“대본 너무 좋아…….”
지호가 대본을 펼치고 황홀해 하는 동안 내가 물었다.
“OST 들어가는 건 하나인데 왜 두 개나 있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석환 형이 설명했다.
“둘 다 너희에게 들어온 작업이야. 하나는 PBS에서 차우현 씨 소개로 들어온 OST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작곡가 통해서 들어온 작업.”
“작곡가?”
“2집 때 우주, 너랑 수록곡 작업한 사람 중에 P-snoop이라는 프로듀서 기억해?”
“기억하지.”
빨간 스냅백에 동그란 컬러 안경이 시그니처처럼 떠오른다.
2집 수록곡 작업을 할 때 꽤 합이 잘 맞았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프로듀싱 회의나 녹음 때 빼고는 접점이 없었던 탓에 왜 그 이름이 나왔는지 의문이었다.
“그 사람이 드라마 OST를 만드는데, 프로덕션 측에다 너를 추천했나 봐. 드라마 색에 어울릴 거라고. 마침 거기 음악감독님도 차우현 씨와 친분이 있어서 너희 이야기를 들었기도 하고.”
“잠깐만요. 실장님.”
중현이가 눈을 끔뻑이더니 손가락을 이쪽저쪽 움직였다.
“그러니까 이쪽, 저쪽 다 차우현 선배님이 추천했다는 건가요? 이해가 잘 안 되어서요.”
“쉽게 말해서 ‘여우구슬’은 차우현 씨가 드라마 음악감독한테 직접 추천을 해 준 거고.”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PBS 수목드라마 ‘여우구슬’이라고 적힌 대본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케이블인 GTV에서 런칭하는 ‘슬립’이란 드라마의 대본.
“여기는 음악감독이 차우현 씨한테 너희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들었던 와중에, OST 제작사를 통해서 작곡가 추천이 들어간 거고.”
“아하.”
“따지고 보면 둘 다 차우현 씨 통해서 들어온 거나 다름없긴 하지.”
“아…….”
우리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좋은 이야기 많이 해 주고 다니셨구나. 평소 무심한 얼굴로 인사를 받아 주어서 전혀 생각 못했는데.
지호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리혁이 형, 우리 감사함의 의미로 편지라도 써서 보낼까여?”
“……닥쳐.”
벌게진 리혁이를 토닥이며 비주가 말했다.
“근데 일 끝나고 나면 뭐라도 선물 드려야겠어요.”
“그러게, 너무 감사한데?”
일거리가 없어서 허덕이는 사람도 많은 판에 우리를 좋게 본 선배 하나 덕분에 일감이 막 들어와 있었다.
당사자는 ‘실력이 있으니 추천한 거다’며 일축했지만 우리로선 감사할 따름이었다.
방송국에서 만나면 뭐라도 드리자고 이야기를 나눈 후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둘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거지?”
“그렇지.”
아직 내용을 제대로 살핀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고민이 될 때였다.
“참, 하나 더 있다.”
석환 형이 시놉시스 하나를 더 얹어 주었다.
“……?”
이번에는 ‘바람개비’라고 적혀 있는 HBS 월화드라마였다.
내가 눈을 깜빡거리자 석환 형이 리혁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리혁이한테 들어온 OST 요청이야. 가이드 녹음까지 끝났고, 부를 가수만 찾고 있대. OST 제작사 측에서 ‘명곡 발굴단 감명 깊게 봤다. 보이스 컬러가 어울릴 거다.’고 전해 달라더라.”
“오오…….”
우리가 ‘이열’ 하면서 돌아보자 한 명의 얼굴이 삽시간에 후끈해지기 시작했다.
막내가 채근했다.
“형, 얼른 리혁이 형 품에 대본을 안겨 줘여.”
“그러자.”
다들 신이 나서 리혁이를 둘러쌌다.
중현이가 리혁이의 팔을 붙잡고, 비주가 티라노의 앞발처럼 오므린 상대의 손을 펼쳤다.
그 손에 대본을 착 얹어주고는 손뼉을 쳐 주었다.
“우리 리혁이한테 OST 요청이 들어왔다니 감동이야.”
“정말 그 동안 다들 키우느라 고생 많았어여.”
“아니…… 다들.”
상대가 뭐라고 항변하기도 전에 우리 넷이 모여 들었다.
“대본도 든 김에 기념사진도 찍자.”
“아, 진짜 하지 마요.”
상대가 경고한다는 듯 손가락질을 할 때였다.
꺄르륵 웃으며 셀카를 찍으려는 우리에게 석환 형이 말했다.
“얘들아.”
역시 실장님이 뭐라고 한 마디 해주시겠지 하며 화색이 돈 리혁이에게 석환 형이 말했다.
“나도 같이 찍자.”
“아, 실장님!”
‘요즘 저한테 왜 이러세요’ 하면서 입에서 불꽃을 뿜는 이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 * *
석환 형에게 받은 대본을 가지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테이블에 시놉시스 세 개를 펼쳐두고 고민에 잠겼다.
‘스읍’하며 턱을 매만졌다.
“이 중에 뭘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나려나~”
‘와, 겁나 할아버지 말투…’하며 놀리는 막내를 흘겨보고는 다시 고민을 이어 갔다.
“어.”
프로틴 셰이크를 호로록 하던 곰이 발바닥을 부딪혔다. 그러곤 크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형. 저한테 아이디어가 하나 있어요.”
“뭔데?”
“셋 다 하는 건 어떨까요?”
“오우…….”
내가 박수치며 감탄했다.
“중현이, 아까 형이 설명할 때 귓등으로 들었구나?”
“네.”
“그럴 줄 알았어. 어디 보자. 우리 척척박사님이 설명 좀 해 주시겠어요?”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해 주었다.
“드라마 첫 방송일자를 살펴봐요. 3월 9일, 18일 등등. 이러면 방송 시기가 겹친단 말이에요.”
“응.”
“같이 3~4월에 방영하는 드라마니까 치열하게 경쟁할 거 아니에요. 누가 시청률을 두고 1등 하느냐. 그러니까 상도상 이 중에서 하나만 해야 되는 거예요. 제작진 측에선 기분 나쁘잖아요.”
OST계의 국룰이었다.
드라마 하나를 맡으면 그 드라마가 방영하는 동안은 경쟁 드라마 OST를 맡으면 안 된다.
중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기분이 많이 나쁜가?”
“서로 경쟁하는 치킨 3사 광고를 우리가 다 찍는다고 생각해 봐요.”
“아, 바로 이해했어.”
손가락으로 OK를 그리는 중현이의 모습에 다들 웃고는 시놉을 살피기 시작했다.
첫 번째 OST라는 점도 있지만 우리 경력에 들어가게 될 작업이라 신중한 분위기였다.
보통 미니 시리즈는 8주 정도 방영한다.
쉼 없이 OST를 부른다고 쳐도 1년에 최대 6번 정도.
그런 까닭에 차우현이나 윤찬혁 같은 A급 가수는 밀려들어 오는 요청을 신중하게 검토한다.
하나를 하면 다른 하나를 못하게 되니까.
괜히 잘못 골랐다가 경쟁 드라마가 빵 뜨면서 OST가 차트를 점령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유명 가수들이 부를 노래는 회사 임원진들도 함께 노래를 듣고 선정한다.
그러니 잘 고르는 것이 중요했다.
“그냥 차우현 선배가 골라 준 드라마로 하는 건 어때여? 저희 추천해 주셨는데.”
“그것도 좋은데, 우리 커리어잖아.”
내가 말했다.
“들어온 건 다 검토해 봐야지. 설령 다른 드라마를 고른다고 해서 차우현 선배님이 화를 낸다거나 그러진 않을 거야.”
기왕이면 추천해 준 드라마를 고르는 게 좋겠지만,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놓칠 수 없었다.
게다가 선배님한테는 확답 대신 회사 측이랑 상의해 봐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일단 지금 중요한 건…….
“뭘 고르지?”
시놉시스를 보며 한참 동안 끙끙 앓다가 결국 지인 찬스를 썼다.
우리와 친하면서 동시에 OST에 관해 경험이 풍부한 싱어송라이터에게 연락했다.
-드라마?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상통화 속 장소원 선배가 우리를 보더니 웃었다.
-우리 뽀시래기들이 지상파 드라마에 OST로 들어간다고? 감동이다. 정말…….
-소원아, 누구야?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파에 앉아 있던 장소원 선배가 고개를 슥 돌리더니 말했다.
-우리 깜장 뽀시래기들. 언니도 인사할래?
-야! 나 민낯이야!
핸드폰을 휙 돌리자 츄리닝 차림으로 도망가는 리사의 뒷모습이 흘러나왔다.
-스케줄도 없고, 심심해서 우리 집순이 괴롭히는 중이야.
-뉴블랙 아이들아, 안녕-!
리사의 인사가 멀리서 또렷하게 들려왔다.
뮤지컬 배우답게 빵빵한 성량이었다.
안방에 숨어서 외치는 소심한 인사에 우리가 웃으면서 인사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드라마 OST에 관해 더 이야기를 하자 장소원 선배가 ‘흐음’하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OST라… 보통은 노래 듣고 고르는데. 일단 우주가 곡 만들기로 한 거야?
“네.”
-그럼 노래 듣는 건 일단 패스. 감독님이나 작가님은? 드라마는 작감놀음이라서 그게 제일 중요해.
우리가 대답했다.
“두 분 다 드라마는 처음이시래요. PBS 쪽은 공모전 대상 수상하신 분이고, GTV는 영화 시나리오 쓰시던 분이고요. 감독님은 둘 다 좋은 분이라고 들었어요.”
석환 형을 통해 들은 것은 ‘무난하다’ 정도.
신인 유망주 작가들과 무난한 감독들의 조합이라고 배우 매니지 팀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나.
-그러면 답은 하나네.
장소원 선배가 말했다.
-제작사 측에서 시놉이나 대본 보내 준 거 있으면 그거 위주로 한 번 살펴봐봐. 그게 오히려 가장 잘 맞을 때도 있거든. 아마… 언니! 뭐해! 밥 왜 해? 오늘 나가서 먹자니까.
-아니, 왜 자꾸 나가려는 거야? 휴일이잖아.
-잠깐만, 얘들아. 그럼 요 앞에 고깃집이라도…….
아웅다웅하는 목소리들을 끝으로 통화가 종료됐다. 급하게 끝나긴 했지만 다행히 들을 이야기는 다 들은 터였다.
비주가 암전된 화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두 분이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그러게.”
“우리도 저러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30년 더 숙소…….”
비주가 무서운 소리를 중얼중얼하자 다들 다급하게 대본을 펼쳐 들었다.
“대본. 대본.”
“와, 대본 꿀잼이네.”
“어디 보자~ 뭐부터 볼까~”
선배 가수가 해준 조언에 따라 대본을 하나씩 읽어 내렸다.
일단 차우현 선배가 직접 추천해 준 드라마 ‘여우구슬.’
그 동안 스타 작가의 보조 작가로 일하다가 이번에 공모전으로 독립했다는 작가님의 작품이었다.
제목 그대로 구미호 설화를 차용한 내용이었다.
『 여우 부족에서 평생을 살아온 주인공이 달아나서 도피 생활을 하던 중, 고등학교 친구와 재회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녀를 짝사랑하는 부족의 사냥꾼이 두 남녀를 쫓는다. 』
배경은 현대.
토속 설화의 존재들이 정체를 숨기고 현대 대한민국에 섞여들어 사는 세계관이 배경이다.
주인공은 여우 부족의 일원.
고등학생인 그녀는 어느 날 부족으로부터 성인식을 치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표적의 목숨을 취해 와라.’
목표는 절친한 학교 단짝.
그녀는 부족과 친구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성인식 당일까지도 번민을 거듭하고 또 거듭한다.
성인식 당일.
친구에게 할 말이 있다며 으슥한 곳으로 불러낸 그녀는 본모습을 드러내고 친구를 위협한다. 그러나 상대의 눈에 비친 자신의 괴물 같은 모습에 결국 우정을 택하고 성인식을 포기한다.
바로 그때.
‘골치 아프게 됐군.’
성인식이 잘 이뤄지는지 지켜보던 부족의 장로가 나타나 단짝의 목숨을 취해 간다.
그는 율법에 따라 실패한 주인공을 죽이려 들지만, 기지를 발휘한 주인공은 가까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한편.
‘……!’
늦은 밤 귀가하던 남주는 구미호, 즉 변신한 상태의 여주가 같은 반 여자아이 앞에 서 있는 것을 목격한다.
겁에 질린 그는 허겁지겁 도망치다가 용기를 발휘해 돌아가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싸늘한 주검.
그것이 트라우마의 시작이 된다.
‘…….’
충격과 죄책감에 시달리던 남주는 시간이 흐르고 토속신화의 존재들을 사냥하는 단체에 가입하고.
여주는 도망자가 되어 이름을 바꿔 가며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단짝을 죽인 장로의 아들, 서브 남주는 배신자를 처단하라는 명령을 받아 어릴 때부터 소꿉친구이자 짝사랑 상대였던 여주를 찾아다니면서, 셋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들어간다.
“재미있어…….”
“뭐야, 뒷내용이 없네.”
확실히 재미있었다. 시놉시스를 대충 훑어 봤는데도 관계가 얽히고설키는 게 신기했다.
“역시 차우현 선배가 고른 드라마네요. 이걸로 할까요?”
“다른 것도 보자.”
다 같이 모여서 두 번째 대본을 읽었다.
이번 건 GTV의 슬립.
최근에 웰메이드 드라마로 케이블 최초 10프로 이상 시청률을 돌파한 GTV에서 준비하는 신작이었다.
제목인 슬립은 시간여행을 뜻하는 ‘타임슬립’에서 따온 듯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도전하는 장르물로 형사가 미스터리한 괴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이었다.
『 서울의 한 야산. 의문의 시체가 발견된다. 살인 흉기로 발견된 것은 구석기 시대의 석기. 』
“구석기?”
“리혁아, 진정해.”
『 주인공 박철진은 수사를 해 나갈수록 점점 더 미궁에 빠져든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까? 』
시놉이 흥미를 확 끌기에 대본을 바로 펼쳤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일하다가 비리 혐의로 좌천된 주인공 박철진.
정말 비리를 저지른 건지 아닌지 의문스럽게 그려지는 회색빛 정체성의 주인공이었다.
가상의 구역인 ‘오성경찰서’ 형사로 전출된 그는 문제아로 낙인찍히며, 동료들로부터도 소외 받는 삶을 살아간다.
모든 게 무미건조한 삶.
그러다 우연히 시체를 발견했다는 연락에 현장에 가게 된다.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는 야산.
그 속에서 유혈이 낭자한 끔찍한 현장.
‘살인 흉기가 발견되었는데요. 그것이…….’
‘뭔데.’
‘돌이에요.’
‘돌……?’
모양이 특이한 돌이라고 생각하던 중에 경찰서 의경으로부터 ‘이거 구석기 아닙니까?’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정말로 구석기와 비슷했다.
하지만 전문가로부터 이 석기는 만든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돌을 깎아낸 부분이 최근에 마모되었다고.
‘뭐야, 이거.’
처음 보는 이상한 현장이었다.
이상한 동물털 가죽으로 만든 옷자락이 떨어져 있지를 않나. 현장에 지문을 보란 듯이 남기질 않나.
사체를 물어뜯지를 않나.
마치 괴물이 저지른 일 같았다.
그 시각.
‘신고 들어왔습니다! 괴한이 피를 흘리며 다닌다고…….’
오성구의 주택가에선 ‘털옷을 입은 괴한’이 피를 뚝뚝 흘리며 다닌다는 제보가 속출한다.
괴성이 녹음된 동영상까지 확인했지만 CCTV에는 제대로 찍힌 게 없다.
사건을 추적하는 주인공이 점점 더 ‘진짜 구석기인이 살인이라도 저지른 건가?’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관내에서 사건 하나 또 터졌답니다!’
이번에는 조선 시대의 화살에 살해당한 시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이 급물살을 탄다.
그리고…….
“뭐야. 끝이야?”
“에버드림 볼 때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이건 본방 봐야겠는데요.”
여우구슬에 이어서 슬립까지. 재미있는 대본을 보고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
“마지막 것도 보자.”
마지막으로 들어온 HBS 월화드라마인 ‘바람개비’를 살폈지만 이내 ‘으흠…’하는 소리를 냈다.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 내용이네.”
대한민국 검사들의 일과 사랑을 주제로 하는 로맨스 드라마.
여기서 변호사로 직업을 바꾼 비슷한 드라마가 지금 TBC에서 하고 있을 걸. TNT 멤버들로부터 막내인 석지훈이 로펌 법률사무원 역할로 나온다고 해서 들은 적 있었다.
시청률이 낮은 편이라고 들었는데.
바람개비도 그와 비슷한 반응이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우리가 드라마 대본에 대해 알아야 뭘 알겠나 싶지만, 미묘한 느낌이라 보류하기로 했다.
“그럼 둘 중에 더 잘될 것 같은 드라마를 골라야 하는 건데…….”
막내에게 물었다.
“지호는 어때, 의견 없어?”
“저여?”
“응.”
“으음… 부담스러운데 형이 결정하면 안 돼여? 전 뒤에서 박수 치는 막내 포지션이 좋아여.”
‘와아아!’ 하면서 미리 손뼉 치는 시늉을 해 보이는 막내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비주가 자상하게 말했다.
“지호야. 네가 우리 중에서 연기도 제일 잘하잖아. 에버드림 때도 네가 잘 될 거라고 확신했고.”
“으흥…….”
“한 번 네가 보고 말해 줄래?”
‘칭찬은 좋은데 책임은 부담스러운데…’ 하는 표정으로 콧소리를 내던 막내가 말했다.
“잠시만여.”
그러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다.
다시 보라고 대본을 건네 줬더니 지호가 손을 내저었다.
“대충 어지간한 건 다 기억했어여.”
“그걸?”
“제가 좋아하는 거 하나는 잘 기억하잖아여.”
“역시. 그래서 형들 생일을 잘 까먹었구나.”
“아앗…….”
깔깔거리며 놀리는 못된 형들을 흘겨보던 막내가 생각에 빠져들었다.
대본을 두고 고개를 이리 두었다가 저리 두었다가. 평소처럼 개구진 표정이 아니라 진지한 얼굴이었다.
꼭 다른 사람 같다.
가만 보면 우리 애도 ‘에헤헤~’ 하는 요상한 소리만 안 내면 진짜 잘생겼단 말이지.
입을 다물고 열 때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예전에 지호 컨셉샷으로 입덕했다던 수플레가 충격 받았다고 쓴 글을 본 것 같은데.
‘리얼리티 1화를 틀었는데 지호가 통나무 코스프레라면서 이불 감고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죠. 하핫……. 왜 눈물이 나지?’
비슷한 증언이 많긴 했다.
멋있어서 자료 찾아보더니 흑염소 레슬링이 나온다든가. 남의 나라 뉴스에 나오는 애라든지.
문득 우리 이미지 이대로 괜찮은 거 맞나 생각했는데, 동생들이 고민을 덜어주었다.
“저희는 포기했어요.”
“그래? 나두.”
다들 사이좋게 하하 웃었다.
그 동안 생각에 잠겼던 뽀얀 얼굴이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형들, 저 결정 내렸어여.”
“그래? 어떤 게 더 나았어?”
“이거여.”
지호의 손가락이 스윽 움직이더니 대본 하나를 골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