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24화
인형이 뽑히듯 건져 올려진 대본은 바로 ‘슬립’이었다.
“슬립?”
“넹.”
막내가 답했다.
“제가 배우로 나간다면 이거 고를 거 같아여. 취향도 취향인데 더 잘 쓴 느낌?”
그러더니 대본을 향해 아쉬운 시선을 던졌다.
“아, 진짜. 이거 엑스트라로 나가도 재미있을 텐데. 중간중간에 캐릭터 감정선도 잘 잡아 주고.”
황금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입맛을 다신다.
탐나는 물건인데 가질 수는 없어서 손가락은 꼼지락거리고. 자기가 출연할 드라마도 아닌데 들떠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귀여웠다.
“으이, 이거…….”
대본을 뒤적거리면서 울상을 짓는 막내의 모습에 모두 웃음을 참았다.
내가 물었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어?”
“짧아서 좋았어여.”
“짧아서?”
지호가 손가락 끝으로 ‘10부작’이라는 문구를 가리켰다.
“이렇게 떡밥 던지는 류는 후반부 가면 잘 무너지거든여. 할 말을 다 했는데 써야 할 분량은 남아 있으니까. 드라마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런 장르물도 더 급격하게 늘어질 때가 있어여.”
막내가 진지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10부작이면 이야기의 밀도도 훨씬 높을 수밖에 없고, 대본이 무너질 가능성도 낮아여. 그리고… 여기 시놉을 보면 작가님이 미리 결말까지 설계해 놓은 게 보이져?”
시놉에 적힌 문장을 짚어 가며 행간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 그렇구나.”
“와. 우리 막내 똑똑하구나아.”
“이런 게 보여?”
신기해하는 내 반응에 지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옛날 연기 가르쳐준 쌤이 영화나 드라마 보면서 분석 같은 거 하라고 시키셨거든여. 많이 보다 보니까 쪼금 보이는 거 같아여.”
그러면서 설명을 이어간다.
알아듣는 척했지만 솔직히 얘가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차분하게 설명하는 막내의 모습이 낯설다고 해야 하나. 맨날 형들 에베베 하던 우리 애가 맞나 싶다.
“그러면 이 드라마 OST로 가는 게 좋겠어?”
“근데 그건 또 모르겠어여.”
“왜?”
“아직 이 대본에서 OST가 제대로 들어갈 구석이 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어여.”
그건 또 그렇지.
정체불명의 구석기인이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데 저기다가 ‘커즈 유아 마이 럽~’ 할 수는 없으니까.
지호가 말했다.
“저는 대본만 보고 판단한 거라서여. 드라마 OST만 생각하면 여우구슬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해여. 제가 슬립을 더 선호해서 그렇지 이것도 재미있게 봤거든여.”
“일리 있는 말이에요.”
리혁이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OST만 생각하면 여우구슬 쪽이 더 낫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노래 비중이 더 크니까.”
“근데 우리 비중은 슬립이 더 높다고 하지 않았어?”
중현이가 슬립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는 노래 들어가는 OST가 그리 많은 게 아니라서 우리 비중이 좀 될 거라고 했잖아.”
“뭐… 그건 그렇죠. 아무래도 여우구슬에서 비중 있는 노래는 다른 선배들이 가져갔으니까.”
딜레마였다.
둘 다 재미있게 보았는데 일장일단이 있었다.
스토리나 연출에 대한 것은 정작 드라마가 나와야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선택지 자체가 미묘했다.
성공 가능성이 둘 다 높다고 가정할 때, 로맨스 드라마의 끄트머리 OST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장르물의 비중 있는 OST로 들어가느냐.
“우리가 출연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이리 복잡하냐.”
내 말에 다들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기작을 정하는 배우도 아니고 단순히 OST 제작인데도 뭘 골라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예전에는 선택권 하나 없이 그냥 주어지는 대로 하면 됐는데, 이런 류의 갈림길이라니.
물론 OST 하나로 빵 뜨고 그럴 일이야 없겠지마는…….
우리 덕순 여사 말대로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고, 첫 선택인 만큼 잘 골라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토론을 이어가는데도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다.
골치가 아파서 무의식적으로 ‘누가 좀 대신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커리어에 관해선 적어도 우리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한테 물어…….
감 좋기로 유명한 조 이사님의 얼굴이 바로 떠올랐지만, 그보다 더 좋은 적임자가 떠올렸다.
아니, 보였다.
“……!”
고개를 돌려 지렁이 젤리를 뒤적이고 있는 중현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거다!’ 하는 눈으로 쳐다보니 녀석이 흠칫했다.
“안 돼요.”
“뭐가 안 돼?”
“저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작업 같이 못할 거 같아요.”
“야. 누가 보면 맨날…….”
‘하는 줄 알겠다’고 하려고 하는데, 다른 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맨날 했잖아요.’
‘저기요? 양심은 어디?’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으면 중현이가 고르도록 하자. 중현이의 예감으로 고르는 거야.”
“아……!”
당사자만 눈을 끔뻑거리는 가운데 다들 묘안이라는 듯 동의했다. 곧바로 대본 두 개를 뒤집고 섞기 시작했다.
지호가 감탄했다.
“우와, 겁나 잘 섞어. 형 그 유럽 길거리에서 공 넣은 컵 섞는 사람 같아여.”
“미튜브 보고 연습했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비주에게 말했다.
“비주야, 중현이 눈 좀 가리고 있어.”
“네.”
“아니, 섞는데 굳이 눈까지 또 가려요?”
리혁이의 물음에 내가 대본을 쉭쉭 섞으며 답했다.
“내가 쟤 동체시력을 이길 자신이 없어서 그래.”
“……내 생각이 짧았던 걸 인정할게요.”
수긍하는 리혁이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본을 섞은 후 중현이 앞에다가 대령했다.
“자, 중현아.”
“네.”
“이중에서 뭐가 뭔지 알겠니?”
두께 차이가 약간 있어서 알아볼까 싶었는데, 예상대로 관심을 안 뒀는지 모른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손바닥을 비비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여기서 하나를 골라보는 거야. 어떤 드라마 OST를 해야 우리한테 더-”
“좋을지요?”
“아니, 나쁠지. 약간 네가 봤을 때, 아, 이거 좀 예감이 쎄하다 싶은 대본을 하나 골라 봐.”
“……저 그 정도로 꽝손 아니에요. 형. 나름 행운의 상징인데.”
자칭 ‘행운의 상징’의 말에 아무도 동의해 주지 않았다.
중현이가 흥 하는 표정을 짓더니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두 대본의 뒷면을 한 번씩 만지기 시작했다.
그러곤 하나를 쑥 뽑았다.
“그렇게 빨리?”
“이거요.”
“예감이 별로였어?”
“아뇨. 종이 느낌이 거칠거칠해서 별로였어요.”
고작 그런 걸로 골라도 되는 거냐는 말에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대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호가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 결국 이게 됐네여.”
우리 풍뎅이가 고른 대본은 다름 아닌 ‘슬립’이었다.
* * *
석환 형에게 OST 관련해서 우리의 결정을 알려주었다.
-슬립? 알았어. 제작사 통해서 연락해 볼게.
여우구슬을 고를 거라고 생각했는지 의외라고 생각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특별하게 고른 이유가 있어? 음… 그래, 지호가 대본이 마음에 들었고. 뭐……? 중현이가 예감이 안 좋다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오케이. 알았어. 바로 추진할게.
흥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웃었다.
그리하여 슬립의 OST 작업을 결정한 후, 제작사 측 답변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 동안 3집 작업을 이어갔다.
“오구구, 우리 아가들. 아빠 기다리고 있었어요?”
‘헤헷’ 하면서 기기를 어루만지는 내 귓가로 동생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진짜 극혐이다. 그렇지 않아요. 형?”
“그런 얘기는 속으로 해야 돼. 리혁아.”
“조심해여. 지금 귀 쫑긋한 거 보니까 집중한 척 하면서 저희 염탐하고 있어여. 조금이라도 눈에 띄면 바로 도비 되는 거예여.”
내가 고개를 휙 둘리니 아니나 다를까.
당황한 녀석들이 ‘니하오’를 중얼거리면서 일본어 교재에 샤프를 거꾸로 쓰고 있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듯 어색한 자세가 눈에 들어온다.
눈은 필사적으로 내리깐 이들을 보며 혀를 찼다.
“고얀 것들…….”
말투에서 쉼표 여러 개가 느껴진다는 막내의 속삭임을 마지막으로 다시 기기에 시선을 돌렸다.
“핫핫핫!”
나도 모르게 대표님 같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쩔 수 없었다. 작업실에 새로 구비된 기기를 볼 때마다 행복해서 방방 뛰고 싶은 걸.
녹음 부스 유리에 비치는 내 얼굴 표정이 그거 같다.
인터넷에 도는 소파 점프 짤방.
하지만, 이 장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안 그럴 수가 없다.
미세한 음 차이까지 구별이 가는 음향.
부드러운 소리.
조금만 조정해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도까지.
최고야. 짜릿해.
벽에 걸린 둥그런 전구 장식을 보며 대표님을 떠올렸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돌림픽 때 대표님이 우승 공약으로 내건 장비들이었다.
조 이사님 작업실에서 다뤘던 최신 기기들.
솔직히 안 사 주셔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휴 끝나고 돌아오니 설 선물로 장비가 쌔삥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감동. 또 감동이었다.
“이제 형이랑 즐겁게 작업을 해 볼까? 핫핫핫!”
“…….”
“아, 너희한테 한 얘기 아니니까 긴장 풀어.”
손을 내저어 보이자 바짝 굳어 있는 애들이 긴장을 풀었다.
“휴우…….”
“유후…….”
“유후 누구야? 나와.”
“죄송해여. 방해 안 되겠습니다.”
다시 노트북에 시선을 던졌다.
[3집 수록곡] 폴더에 작업할 5곡이 담겨 있었다.
이번 3집에 들어갈 트랙은 총 11개.
앨범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Intro와 Outro는 중현이의 자작곡으로 갈 계획이다.
인트로는 자작랩, 아웃트로는 비주의 솔로.
여기서 남는 9곡 중 5곡은 타이틀 ‘암흑물질(가칭)’을 비롯해 내 자작곡이었다.
나머지 4곡은 A&R팀이 외주를 준 작곡가들이 채울 예정이었다.
“형, 저 이거 좀 들어 주세요.”
옆자리에서 노트북으로 작업하던 중현이가 헤드폰을 건네주었다.
“드럼이 좀 애매하게 들리는데 의견이 필요해요. 중간에 미묘하게 꼬인 거 같아서.”
헤드폰을 끼자 중현이가 인트로를 들려주었다. 눈을 감으면서 가만히 들었다.
톡. 톡.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어느 부분이 거슬리듯이 퉁, 퉁, 어긋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내 생각에는 킥이나 스네어 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멜로디를 조금 바꾸는 게 나을 거 같아.”
“네네.”
“이거보다 부드러운 느낌이면 타이틀이랑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집중해서 듣는 중현이에게 대충 어떤 식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었다.
내가 한두 번 슥 만지면 될 거 같은데, 본인이 직접 하는 편이 실력 상승에 좋을 거 같았다.
그런 식으로 둘이 앉아 밤을 새워가며 곡 작업을 했다.
물론 온전히 둘이서만 한 건 아니었다.
전반적인 컨셉을 잡을 때는 멤버들 다 함께 의견을 나누는 식이었다.
“이번 컨셉을 이미지로 잡는다면 뭐가 좋을까?”
“풀밭? 아니면 바다? 부드러우면서 서정적인 이미지로 가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 컨셉 전환을 너무 확 하는 건 아니에요? 빡세게 가면무도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새소리 나오는 건 좀……..”
“맞아여. 연기도 그래여. 이미지 변신하겠다고 기존 이미지를 너무 탈피하려고 하면 역효과 날 수도 있어여.”
“그럼 여기다 곡을 하나 추가해서…….”
저마다 의견을 이야기하면서 3집 앨범의 밑그림을 그려 갔다.
더불어 이런 구상을 A&R팀과 공유하면서 본격적으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3집 컴백은 4월 초 즈음.
명곡발굴단의 마지막 경연이 끝난 후였다.
지난 해 11월에 2집이 나왔으니 텀이 긴 편이었다. 작년에 같이 데뷔했던 동기들 중에서 가장 늦은 2015년 컴백이 아닐까.
앨범을 기다리고 있을 수플레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명곡 발굴단이라는 장기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면서 여기저기 얼굴 비출 기회가 늘었다는 점이었다.
-PBS 명곡단, 시청률 고공행진 이어가나? ‘일요 예능의 신흥강자’
-뉴블랙, PBS FM ‘꽃보다 라디오’ 출연
-우주 “과거 예능 출연 후 인사하는 행인을 지인으로 착각해 반갑게 인사” 밝혀
PBS 라디오에 출연한다거나 심야 토크 예능에 명곡단 출연진과 함께 나가기도 했다.
“퍼포먼스 구상하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죠. 이 친구들 더 신인일 때 이천시 행사에서 만났는데… 아니다. 이건 뉴블랙 친구들이 이야기를 해야겠네. 그때 비하인드 좀 풀어 봐요.”
송보형 씨의 토스를 받아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풀기도 했다.
틴스피릿의 지각에 대한 언급 대신 당시 현장 상황에 따른 지연으로 두루뭉술하게 퉁 치며 설명했는데 다들 흥미를 보였다.
그 덕에 자료화면으로 나간 당시 행사 직캠의 조회수가 훌쩍 뛰기도 했다.
물론 얼마 안 가 해당 영상을 찍은 틴스피릿의 팬이 갑자기 비공개로 돌리면서 묻히긴 했다.
“너희 광고도 새로 들어왔다.”
확실히 상승세를 타기는 했는지 석환 형으로부터 광고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은이온이나 옥장판이 들어왔던 초기와는 달리 좋은 회사들이 많았다.
중장년층에게 호감을 얻고 있는 까닭에 나이대가 많은 이들을 겨냥한 효도 상품도 꽤 들어오고.
기존에 광고 모델로 있던 회사들한테서 현장 이벤트 같은 것을 진행하면 어떠냐는 제안이 오기도 했다.
그리고…….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행사에 출연할 때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확 늘어났다.
아이돌 팬을 제외하면 ‘쟤넨 누구…?’ 하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우리를 알아보고 ‘노블랙!’ 하시는 분들이 늘어났다.
행사에서 사람들이 우리 이름에 제대로 호응을 해준 첫날, 동생들이랑 무대 내려가고 나서 한참 동안 눈을 글썽거린 거 같다.
모르겠다.
그다지 큰일도 아닌데 괜히 우리끼리 찡했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 많이 알아보네요. 하하.”
어느 행사 주최측 직원이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보통 트로트 아니면 신인 가수들은 호응 잘 안 해 주시거든요. 특히 아이돌은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고 다 비슷해 보이니까.”
중장년층에게 호감 어린 이미지로 잡혀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기획 의도와 다르게 명곡 발굴단이 중장년층의 큰 사랑을 받으면서 그쪽에 이름을 더 알린 것 같긴 했다.
누가 인터넷 댓글에서 자긴 뉴블랙이 누군지 몰랐는데 부모님이 먼저 말해 줘서 알았다나.
살짝 편중될 순 있어도 이름을 알린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기뻤다.
그 어느 때보다 더 바쁘고 행복한 기분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마침내 기다리던 소식도 도착했다.
“OST 제작사 통해서 연락을 들었는데, 음악감독님이 미팅을 하자고 하셨대.”
GTV 금요드라마 ‘슬립’의 음악 PD가 미팅도 할 겸 촬영 현장으로 찾아와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건 쏙쏙 역사 탐험대 제작진이 전해달라고 한 이야기인데. 아마 오늘 오후 중으로 HBS 미튜브 계정으로 역사 탐험대 별도 편집본이 올라간다고 하더라.”
“오오…….”
“재미있게 편집했으니 기대해 달래.”
우리가 행복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나오네요.”
“설렌다. 막 이상하게 나오진 않았겠죠?”
“정상적으로 방송했는데 이상한 게 나올 거리가 어디 있어?”
“맞아, 맞아.”
그리 말하면서도 어딘가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역사 탐험대의 방송을 기다렸다.
* * *
다음 날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
‘정신이 하나도 없네.’
복작복작한 사람들 틈바귀에서 사투를 벌이던 어느 3년차 직장인은 마침내 붐비는 역을 지나 한산해진 좌석에 몸을 뉘였다.
“어으…….”
온몸이 피곤하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어젯밤 자기 전에 괜히 맥주를 마셨나.
남자는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 한국사 쪽집게 강의 - 삼국 시대 총정리 』
미튜브로 제공되는 무료 한국사 강의를 집중해서 들었다.
회사에 입사한 후 너무 자기계발을 손 놓고 있던 건 아닌가 싶어서 최근에 시작한 한국사 공부였다.
“하아암…….”
어제 야근으로 인한 피로 때문일까.
강사가 설명해주는 것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쏙쏙 전달해주고 있기는 한데, 뭐라고 할까. 공부라고 생각하니 피곤하기만 하다.
“…….”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스읍.”
이어폰을 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던 그는 어떤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웃음소리?
어디서 막 웃은 거 같은데 뭐지?
이내 그 소리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이돌?’
미튜브 자동재생 기능을 켜놓기는 했지만, 리스트에 있던 건 죄다 역사 강의였는데.
뜬금포로 보이그룹이 등장하고 있었다.
-오늘은 선사시대에 대해 알아볼 거예-
-Yo.
-랩하지 마세Yo. 중현 씨. 진행에 방해 돼요.
-알겠다요.
눈을 깜빡이던 남자는 미튜브 동영상의 제목을 살폈다.
‘쏙쏙, 역사 탐험대?’
지루한 아침 출근길.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