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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25)화 (22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25화

‘뭐지?’

남자는 시작하고 2분쯤 지나 있는 재생 바를 맨 앞으로 당겼다.

버섯 마을처럼 생긴 스튜디오.

다섯 명의 미남이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린이 여러분!

남자는 잠시 웃을 뻔했다.

너희에게 이름을 각인시키겠다는 듯 검은 티셔츠에 하얀 궁서체로 각자의 이름이 쓰여 있기 때문이었다.

‘우주’가 진행카드를 들고 생글생글 웃었다.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역사 속 재미있는 사건들을 탐험하게 될 뉴블랙의 우주.

-비주예요.

-중현쓰.

-서리혁입니다.

-안녕하세여. 개성왕씨의 후손 왕지호입니다.

티셔츠를 돌리자 등짝에 성씨로 ‘왕’ 하고 써 있었다. 남자는 입꼬리를 꿈틀거리며 지켜보았다.

‘지호’가 으쓱으쓱한 얼굴로 말했다.

-그거 아세여? 제 조상님이 왕건이래여.

곧바로 질타가 이어졌다.

-지호 씨, 미리 상의하지 않은 드립은 삼가 주세요.

-돌발행동 자제해. 왕지호.

-칫.

‘중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맞아. 지호야. 네가 왕건 후손이면 난 김수로 후손이게.

-음?

‘리혁’이 미묘한 얼굴로 올려다본다.

-형. 김해김씨 시조가 김수로예요.

-…진짜?

‘헛’ 하고 놀라는 중현의 모습에 주변 멤버들이 손뼉을 치며 깔깔거렸다.

중현이 다시 묻는다.

-언제부터?

-그야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부터…?

-오. 그 선배님이 우리 집안의 시조였구나.

‘선배님’이란 호칭에 뉴블랙 멤버들이 ‘이천 년 전 선배님’이냐며 놀렸고 당사자는 하하 웃었다.

처음에는 무섭게 생긴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말투라든가 행동이 유순한 곰 같았다.

현장 스탭들의 웃음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들리는 동안 남자도 웃음을 그렸다.

‘뭐야. 얘네.’

아이돌이라고 하길래 나와서 쀼잉쀼잉하며 애교 부리는 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근데 이래도 괜찮은 건지 궁금했다. 어린이 프로그램인데 뭔가 어른이 보기에 적합했으니까.

애기들 정서에 안 맞는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생각했지만 의문은 얼마 안 가 해결됐다.

방송 흐름이나 편집에 있어서 방향성이 보였다.

어린이들 눈높이에만 맞는 부분은 빠지고 어른들을 겨냥한 부분을 남긴 듯했다.

호칭은 계속 어린이었지만 그런 부분은 크게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재밌다는 거니까.

개그맨 지망하던 애들인가 싶을 만큼 얼마나 합이 좋은지 드립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아침잠을 확 깰 만큼 텐션도 높고.

제작진도 어린이 프로를 하며 참았던 한을 풀겠다는 듯 예능감 넘치는 자막을 넣고 있었다.

‘괜찮네, 이거.’

재미도 재미지만 유익했다.

쉴 새 없이 오디오를 채우는 드립 속에도 쓸모 있는 정보가 가득했다.

-여기서 질문 하나 할게요.

서늘한 인상의 멤버가 입술을 열자, 다른 멤버들이 두 손을 모으고 경청했다.

비주가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네, 박사님. 말씀해 주세요.

-이야.

곧바로 맏형이 박수를 치며 끼어들었다.

-우리 척척박사님 질문 타이밍 너무 기가 막히시다아!

-저 소름 돋았어여!

-훗훗.

-…….

먹잇감을 물어뜯는 하이에나처럼 놀리는 모습에 화면으로 보고 있는 그도 피식거렸다.

그러다 한 곳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수효과인가?

리혁의 귀와 얼굴 부분이 색이 빨갛게 변한 거 같아서 눈여겨봤는데, 신기하게도 특수효과가 아니었다.

리혁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비파형 동검이 세형 동검으로 변했다. 여기에 담긴 의미가 뭘까요?

-지호! 지호!

-저기, 퀴즈 아니니까 그냥 말해즈스요…….

-세형 동검이 비파형에 비해서 시기도 훨씬 뒤고 얄쌍하잖아여. 이거는 재료 단가가 올랐다는 의미인 거져.

-…참신한데?

우주가 감탄하고, 리혁도 잠시 설득당할 뻔했다가 입술을 열었다.

-그, 그건 아니고요. 비파형 동검은 랴오닝성 일대와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형태거든요. 반면에 세형 동검은 주로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형태고요. 그 말인즉 독자적인 형태의 청동검이 등장했다는 거예요.

-국산화를 한 거군요.

-오. K-청동검.

리혁이 설명을 해 주면 우주가 알기 쉽게 간단하게 정리를 해 주고, 나머지 멤버들이 리액션을 담당했다.

재미와 유익한 정보.

두 가지를 모두 담고 있는 컨텐츠를 저도 모르게 집중해서 보고 있는 동안 남자는 고민했다.

‘괜찮네. 채널 구독할까…?’

전문 강사가 진행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정보의 밀도가 낮고, 재미에 초점을 두긴 했다.

하지만 웃긴데 유익한 강의라는 건 희소했다.

더군다나 방금도…….

“푸흡!”

벌칙에 당한 리혁이 뗀석기를 들고 추격하는 장면에 그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이윽고 17분짜리 영상이 끝나고 [비하인드 컷]이 흘러나왔다.

일종의 NG장면.

미니 통나무가 바닥에 놓여 있고 중현이 진지한 얼굴로 막대기를 들고 앉아 있었다.

옆에선 안경을 쓴 리혁이 설명했다.

-초기 인류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꾼 건 불의 발견이었어요. 하지만 불을 피우는 건 몹시 어려웠답니다. 보다시피 이렇게 막대기를 비벼서 불을 지피는 것도…….

-비벼 주세요. 중현 씨.

-네. 우주 님.

슥삭슥삭.

곧이어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불을 피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파하려던 리혁이 당황했다.

-뭐야. 왜 연기가?

화르륵!

-서, 성공했어?

-뭐야. 왜, 불이 저기서 왜 나와…….

-대박! 불이에여!

-오. 이게 되네…?

뉴블랙 멤버들이 벙 찌고 스탭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지하철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크흡…!”

다행히 주변에서 별로 신경을 안 썼지만,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오니 자꾸만 새어나와서 입을 가렸다.

화면 속에서 우주가 나섰다.

-줘 봐. 그냥 내가 하는 시늉할게.

-어째 불안한데여. 그냥 비주 형이나 리혁이 형이 하는 게 낫지 않을까여?

-얘네 가냘퍼서 안 돼. 건장한 사람들이 하는데도 안 된다는 걸 보여 줘야지.

-저 안 가냘퍼요. 형. 이거 마른 근육인데…….

-비주는 들어가 있어.

-네…….

다시 리혁이 설명을 이어가고 우주가 막대기를 비볐다.

살살 하는 시늉을 하는 우주.

-보다시피 초기 인류가 불을 피우… 뭐야.

화르륵!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지켜보고 있던 남자도 다시 한 번 웃음의 고비를 참아냈다.

중현이 물개박수를 쳤다.

-대박. 나보다 더 빨라.

-저 형은 선사시대 가도 잘 살았을 거 같아…….

-부족장 한 자리는 했을걸요. 그때 태어났으면 우리가 배우는 게 위만조선이 아니라 젠민조선이 됐을 거예요.

스탭들이 통나무에 살짝 붙은 불을 끄고 가져가는 모습과 함께 드디어 영상이 끝났다.

마지막에 나온 건 복도에서 멀끔한 옷차림으로 서 있는 뉴블랙 멤버들이었다.

우주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쏙쏙! 역사 탐험대! 좋아요와 구독! 부탁 드릴게-

-Yo.

-야. 김중현. 너 일로 와!

-잡히지 않을 거예Yo.

곰 사냥꾼처럼 추격하는 우주의 모습과 그 뒤를 ‘와아아!’ 하며 따르는 오합지졸로 동영상은 끝났다.

정신없이 웃는 카메라맨과 작가의 웃음소리가 잡히면서 남자도 뺨을 파르르 떨었다.

세 번째 고비였다.

겨우 웃음을 참은 그는 바로 구독 버튼을 눌렀다.

‘모아 놨다가 보면 꿀잼이었을 텐데. 아쉽다.’

미소 짓던 회사원이 고개를 들었다.

곧 있으면 내려야 할 역이었다. 외투를 여미는 동안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뉴블랙은 어디서 들어본 거 같았다.

원래부터 TV에 관심이 별로 없는 성격이라 어지간한 톱스타 아니면 모르는 그였다.

최근에 이름을 들어본 거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 아이돌이 한둘도 아니고 어차피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얘네 이름은 기억이 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15분 넘게 티셔츠에 써진 이름을 보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검색이나 한 번 해 봐야지 하고 생각할 때였다.

-안녕하세여.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이어폰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는 ‘리혁이 척척박사가 된 이유 (feat. 형조롱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야. 이 미친 알고리즘은…….’

뉴블랙의 팬이 편집한 영상인지 라이브 방송에 자막이 입혀져 있었다.

-저희가 왜 리혁이 형을 박사라고 부르냐구여? 흐하핫…! 모르는 분들도 계시구나. 이거 말해도 되나? 오, 깜짝이야. 리혁이 형이 톡 보내고 있어여. ‘말하면 죽는다’고 하는데.

막내가 씩 웃으며 말한다.

-괜찮아여! 전 오늘만 살거든여!

방문을 콕 잠그고, 이내 쾅쾅쾅! ‘야! 문 열어!’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즈음에 남자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내릴 때였다.

‘척척박사…….’

그러고 보니 아까 박사님이라고 불렀는데. 무엇 때문이지?

또 다른 호기심이 머릿속에 잠시 머물렀다.

‘이따 한 번 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남자는 열린 스크린도어로 발걸음을 내밀었다.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계단을 올라가던 그는 평소보다 발걸음이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웃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   *   *

같은 날.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하여 인도된 사람들은 동영상을 시청한 후, 구독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분명 역사 보고 있었는데…….’

역사 관련 공부나 할 겸 유익한 미튜브 컨텐츠를 뒤적이고 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불이 피워져 있고. 또 정신을 차리고 보면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고 있었다.

-뭐야 왜 나 여기 있어요 [좋아요 37]

-어른이들? 여기 혹시 어른이들 없어요? [좋아요 17]

-왜 봤지 이거

-시간 순삭이네

-명곡단 영상 보고 있었는데 왜 나 여기야..? 0_0

-근데 왜 재밌는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불 피우는거보고 ㅅㅂ 개터졌네 [좋아요 10]

-불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잡히지않을거예요yoㅋㅋ

-대체 왜 아이돌하는건데ㅋㅋㅋㅋ

-얘네 엄청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별곳에 다 나오네.

-방금 전까지 얘네 인생을 열창하는 영상 보고 왓는데 와장창

-드라마 클립 보러 오다가 이거 보고 있슴 ㅋㅋㅋㅋㅋ

기존에 HBS의 계정을 구독하던 사람들도 보면서 동영상의 조회수와 댓글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지……?”

HBS의 미튜브 계정을 담당하는 뉴미디어국 직원은 평소보다 구독자 상승폭이 높은 것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고.

“오호.”

중학교에서 역사를 맡고 있는 교사는 동영상을 보면서 ‘애들 심심할 때 쓰면 괜찮겠는데?’ 라는 생각을 품었다.

한편 가장 큰 반응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

-얘들아?? ㅋㅋㅋㅋㅋ 너네 또 왜 이상한데 가 있어

-불ㅋㅋㅋㅋㅋㅋㅋ

-리혁이 뗀석기 추격짤.gif

-미친다 내갘ㅋㅋㅋㅋ 저 불 피우는 짤로 커뮤 영업 좀 돌고 올게요

-재밌다ㅋㅋㅋ 저거 왜 나갔나 했더니 큰그림이 있었구나

-참새가 어찌 풍뎅의 뜻을 알리오

방송 내용을 접한 수플레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리 애들은 아동용 프로그램도 예능으로 만든다고요! (뿌듯)

-내 최애가 미튜버?! 푸슝파슝 놀랍고 신비한 수플레tv

-ㅋㅋㅋㅋ아침에 출근하다가 갑자기 모르는 컨텐츠 떠서 당황했어요

-이건 덕질인가 공부인가

-어느 수플레분이 남긴 랜덤박스 명언짤 부탁해요.

-저 사이트에 리혁이가 정리한 자료 있다고 하던데요. pdf로 되어 있어요.

-굿즈인가?

-나름굿즈인건 맞는데 굿즈아닌느낌

-ㅋㅋㅋㅋ아니 내가 덕질을 하면서 살다살다 공부 자료 다운 받을 줄은 몰랐다

-엄마! 최애가 굿즈를 만들었는데 역사 요약집이래요!

신선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제안도 나오고 있었다.

-ㅋㅋㅋㅋ 재밌당 멤버별로 특기 살려서 미튭 강좌 이런 거 만들면 재미있을 거 같아염

-김풍뎅 쌤의 헬스 PT.metube

-오 좋다 ㅋㅋㅋㅋㅋ

-근데 여러분이 간과하는 게 하나 있어요.

-???

-?

-우주가 작곡 레슨 할 거 아니에요.

-!

-그..거까진 생각을 못했네.

-절레절레

-우주 미튜브 들어가면 화면 잠금돼서 못 빠져나오고 그런 거 아닐까요..?

-우주 미모에 감금되는 거 아닐까요

-방금 멘트 누구야 나와요

-우주니?

그렇게 수플레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동안, 팬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이가 있었다.

“호오.”

홍보팀 홍서영 대리가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에취!”

재채기를 하고 코를 슥 문지르려고 할 때, 티슈가 내밀어졌다.

“형, 여기요.”

“고마워. 역시 우리 둘째가 최고다.”

코를 닦으면서 차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형을 바이러스 덩어리로 바라보는 불손한 누군가와는 다르게 말이지.”

“…….”

마스크를 쓴 채 병균 덩어리는 물렀거라 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리혁이였다.

딩동.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리혁 [감기라도 옮을까봐 그러죠]

리혁 [난 당신들이랑 달라]

리혁 [몸살 걸리면 3주야]

나 [감기가 아니라 재채기야,, 고얀 것,,]

나 [서리혁 원시인 짤.jpg]

리혁이가 눈을 세모꼴로 바꾸고 있을 때, 중현이가 이모티콘을 보냈다.

중현 [이모티콘]

화면 속에서 중현이가 박수 치고 있는 이모티콘이었다. 그에 질세라 동생들도 이모티콘을 보냈다.

비주 [이모티콘]

지호 [이모티콘]

나 [이모티콘]

차례대로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꺄르르!’, ‘Love Yourself’ 하고 있는 이모티콘이었다.

“와, 진짜 이 못돼먹은 사람들…!”

뒷좌석에서 분통을 터뜨리는 리혁이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이모티콘 꿀잼이당.”

“그러니까, 이거 2탄도 얼른 나왔으면 좋겠어.”

지금 우리가 소통하고 있는 이모티콘은 ‘뉴블랙콘 Ver.1’이라는 제목으로 된 신상품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찍었던 모습이 움직여서 나오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나온지는 얼마 안 됐지만 쏠쏠하게 써먹는 중이었다.

못된 할망 [희한타]

못된 할망 [우째 매번 새로운 옘병이 나오냐]

할머니를 비롯해 지인들에게 하나씩 보냈다.

태현 [오? 님 이모티콘 자랑?]

태현 [이모티콘]

태현 [앞으로 버전 6개 정도는 나온 뒤에 얘기해 ^^]

‘한 번 해 봐’라는 자막이 붙은 자기 이모티콘을 보내면서 자랑을 하는 한태현에게 상대의 흑역사 짤방을 보내주었다.

답장은 더 이상 없었다.

내 자랑에 ‘음? 겨우 그거야?’ 하는 본인 이모티콘으로 답장하는 데이지에게는 답을 하지 않았다. 씨름 때 상대를 업어메치고 껄껄 웃던 기억이 머릿속에 아직도 생생했다.

그나마 스트릿 보이즈만 ‘우와아…!’ 하고 반응해줄 뿐.

왜 내 주변에는 이상한 사람들밖에 없는 건지 모르겠다.

“어, 다 왔다. 다 왔다!”

막내의 흥분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경기도 파주시.

우리는 노곤한 몸을 이끌고 GTV 드라마 ‘슬립’의 촬영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오. 여기구나.”

특색 없는 3층짜리 건물 앞에 차를 댔다.

주차장에는 ‘파이어플라이 프로덕션’이란 문구가 붙은 장비 차량과 연예인들의 밴이 모여 있었다.

도착했다고 연락을 하니 안에서 FD가 나왔다.

“음악감독님 만나러 오셨죠? 따라오세요.”

“감사합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매니저 형들도 신기하단 눈으로 둘러보았다.

실제 경찰서와 완벽하게 닮은 커다란 세트장.

아이돌쇼 촬영 때의 형사 사무실이 재연 드라마 등에 나올 퀄리티라면 여긴 진짜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와…….”

우리가 감탄하자 인터컴을 낀 FD가 웃으며 말했다.

“신기하죠?”

“넹, 이번이 두 번째 경찰서라서 그런가. 지난번에 간 데는 유치장밖에 없었거든여.”

“…….”

순간 흠칫했던 FD에게 우리가 손사래를 치며 설명해주었더니 웃으면서 알아들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복도 지나갈 때마다 보이는 스탭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오’ 하는 사람도 있고,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도 있다.

지상파 방송이 좋긴 좋구나.

촬영에 찌든 바쁜 스탭이 웃다니, 아니 인사를 받아주다니.

우리를 안내하던 이도 말했다.

“저도 명곡단 클립 봤어요. 인생.”

“정말요? 어떠셨어요?”

“좋던데요. 컬러링으로 했어요.”

우리가 훌륭하다며 다 같이 엄지를 들어 보이니 상대가 웃는다. 그러곤 은근하게 말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따가 가실 때, 사인이나 사진 좀.”

그러면서 ‘부모님이 최근에 뉴블랙 보고 좋아하신다’는 이야기를 해주기에 흔쾌히 승낙을 했다.

“여기예요.”

전선 조심하라는 말을 들으며 촬영 장비가 세팅된 곳을 지나 한적한 곳에 위치한 사무실 앞으로 다가섰다.

들어가기 전에 방문에 노크를 하려고 할 때였다.

“여, 뉴블랙!”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오는 형사 차림새의 배우를 보며 우리는 눈을 크게 떴다.

“어……?”

전에 한 차례 만난 적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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