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33화
“너도 들었지?”
“예.”
의경들은 언덕을 내려가 갈대밭에 도달했다.
“흑… 흐윽…….”
배수 터널 안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허 의경이 플래시를 들어 안을 비췄다.
파란 옷을 입은 어린아이가 멀찍이 있었다. 빛에 화들짝 놀란 소녀가 눈을 가리고 얼굴을 찡그렸다.
‘맙소사.’
옷이 진흙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얼굴에도 묻어 머리카락에서 진흙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손발은 덜덜 떨고, 눈은 겁에 질려 있다.
맨발에는 유리 조각이 박혀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아파 보여서 그들은 저도 모르게 ‘으’ 했다.
허 의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괜찮니?”
여전히 겁에 질린 눈빛.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후임이 배수구로 걸어 들어갔다. 물에 젖은 단화가 철벅거리는 소리를 냈다.
“으으… 아……!”
거침없는 접근에 놀란 소녀가 더 안으로 도망치자, 허 의경이 후임을 붙잡았다.
“내가 갈게.”
그가 플래시를 건넸다.
“대신 좀 비춰 주고 있을래? 역광 없이 내 얼굴이 보이도록 대각선으로.”
“예.”
천천히 걸어가던 허 의경이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곤 부드럽게 말했다.
“안녕.”
자기보다 커다란 사람에게 겁을 먹은 소녀였다. 거기다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
그는 최대한 몸을 작게 만들었다.
“내 말 들리니?”
“…….”
“들리면 고개 살짝 끄덕해 주기.”
끄덕.
“고마워.”
어둠 속에서 물소리가 음산하게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 그를 지켜보는 느낌. 뒷목이 뻣뻣했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웃었다.
“서윤이, 맞지?”
흠칫.
“서윤이네 엄마가 서윤이 찾아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우리가 왔어. 여기 명찰 보이지. 경찰 아저씨야.”
9살짜리에게 적합한 말투는 아니었지만, 퇴행 현상을 보이는 상대에게는 유치원 선생님 말투가 적합했다.
“여기 있으니까 되게 무섭다. 서윤이도 그렇지?”
끄덕.
“그런데 아저씨가 가까이 가는 건 또 무섭구?”
끄덕.
“이렇게 하자. 아저씨가 한 발짝 뒤로 걸을 테니까 서윤이도 한 걸음씩 오는 거야. 하나둘, 하나둘. 그렇게 다 같이 나오고 짜잔. 어때? 할 수 있겠어?”
끄덕끄덕.
긍정적인 신호였다. 그의 눈짓에 후임이 뒤로 걸어갔다. 허 의경은 어린아이의 속도에 보폭을 맞췄다.
‘저런…….’
발에 유리 조각이 박힌 탓에 거의 엉금엉금 기듯이 걸었다.
아프면 울어야 하는 게 정상이거늘, 쇼크에 빠진 아이는 울 정신조차 없어보였다.
“할 수 있어.”
마침내 그들은 배수구 밖으로 빠져나왔다.
시원한 공기에 숨을 돌리던 그들은 소녀가 나올 수 있도록 거리를 유지해 주었다.
머뭇거리던 소녀가 이내 발자국을 옮겼다.
주변을 둘러싼 갈대밭과 밤하늘을 보더니 안심한 듯 울음을 터뜨리며 허 의경에게 달려왔다.
“괜찮아. 괜찮아.”
진흙투성이인 아이를 포근히 안아주며 그가 안심하라는 듯 웃어 주었다.
“어으… 어……!”
한참을 울던 소녀가 손가락질을 했다.
말이 아직도 안 나왔지만 얼른 여기서 벗어나자는 것 같았다. 그들도 동의했다.
“본부에 무전 좀 치자.”
“예.”
쏙 달라붙은 아이의 머리칼에서 진흙을 떼어주며 허 의경이 무전기 버튼을 누를 때였다.
툭.
배수구에서 흐르는 물을 타고 뭔가가 떨어졌다.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소형 짐승의 뼈.
“어… 어! 어!”
어린아이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에 허 의경은 그 뼈를 치우기로 결정했다.
“으.”
피 묻은 살점이 너덜너덜 붙어 있는 다리뼈였다.
배수구 깊숙한 곳으로 집어던졌다. 그럼에도 상대는 발광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가 후임에게 부탁했다.
“나 무전 좀 치게, 얘 데리고 얼른 좀 올라가.”
아이는 별다른 반응 없이 오히려 더 먼저 올라가려고 했다. 그러면서 그를 계속 돌아보았다.
허 의경은 차분하게 무전을 쳤다.
상황실에서 ‘고생했다’는 치하와 하며 현 위치에 대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상황종료 소식이 무전으로 나오자, 여기저기서 안도했다는 듯 기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서에 들어가면 꽤나 칭찬을 받을 듯해 허 의경이 살포시 웃었다.
다 끝났다.
“으어… 어어!”
도로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소녀를 제외하면.
“걱정하지 마. 올라갈게.”
허 의경이 웃으며 손을 흔들 때였다.
툭.
배수구 안쪽에서 무언가 날아와 떨어졌다.
아까 그 뼈였다.
“……?”
물살이 좀 셌나?
하지만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는 저 물이 그 정도 힘은 못 낼 텐데. 허 의경은 다시 한 번 뼈를 집어 안으로 던졌다.
그렇게 등을 돌릴 때였다.
마치 답장이라도 하듯 뼈가 날아와 그의 발치에 떨어졌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
저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안쪽에 플래시를 비춘 허 의경은 온몸이 굳는 것 같았다. 멀찍이 깊숙한 곳에서 누군가 그를 보며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마치 웃는 것처럼…….
아니면 사냥하기 전에 숨을 고르는 것처럼.
그 순간 허 의경의 뇌리에 모든 것이 스쳐갔다.
소녀가 이곳에 있는 이유.
조금 더 큰 사냥감을 잡기 위한 미끼.
“…….”
뻣뻣하게 굳어서 뒷걸음질 치는 그의 모습에 후임이 묻는다.
“왜 그러십니까?”
“해성아, 얼른 쟤 데리고 이 자리 떠.”
“예? 하지만 상황실에서…….”
“닥치고 얼른 뛰라고!”
“예, 예!”
급하게 달음박질치는 이의 모습.
고함에 놀란 소녀에게 괜찮다는 듯 애써 웃던 허 의경도 이내 도로 쪽으로 올라가기 위해 언덕을 달렸다.
터널 안에서 괴성이 울려 퍼졌다.
숨이 넘어갈 만큼 다급하게 도망쳤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그보다 몇 배는 더 빨랐다.
“윽……!”
무언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 강하게 끌어내린다.
갈대밭에 던져진 허 의경의 눈에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것이 보였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1시간 후.
갈대밭과 인접한 도로에 순찰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불길하게 퍼지는 파랗고 빨간 경광등.
주인공 박철진도 내린다.
그는 갈대밭에 설치된 폴리스라인을 넘어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형사들에게 다가갔다.
“엿 같네.”
“왜… 하필이면…….”
박철진이 고참 형사에게 물었다.
“피해자가 우리 대원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만.”
“윤수야.”
“……?”
“허윤수. 매일 사무실에 올 때마다 밝게 인사하는 애 있잖냐.”
누구지. 인사성 밝은 애라고 하면 아까 만난 세준인가 하는 녀석 정도밖에 안 떠오른다.
한숨만 푹푹 쉬는 형사들과 달리 박철진은 덤덤한 반응이다.
매일 얼굴을 보던 사람이 죽었다는데도 무표정한 그의 모습에 다른 형사들이 경멸을 드러낸다.
한 형사가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철진은 표정 없는 얼굴로 걸어간다.
하얀 천에 뒤덮인 시체.
그가 천을 걷으려고 하자 고참 형사가 팔을 붙잡는다.
“얼굴만 봐. 거기가 그나마 온전하니까.”
“…….”
철진은 천을 휙 걷는다.
하지만 가벼운 동작과 다르게 그의 눈앞에 시체의 얼굴이 슬로우모션으로 드러났다.
다른 의미로 표정이 없는 평온한 얼굴. 머리카락과 얼굴에 핏자국이 어렴풋하게 묻어 있다.
“…….”
지금까지 무표정했던 그의 얼굴에 균열이 일어났다. 머릿속이 일시정지 하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기를 몇 초.
대답 없는 시체와 대답을 갈구하는 남자의 모습.
투 샷이 잡히면서 시간이 얼어붙듯 화면이 멈춘다.
잔잔한 BGM.
슬립의 1화가 끝을 알렸다.
처음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암전된 화면의 오른쪽 ‘P’부터 ‘S L I P’ 이란 글자가 하나씩 떠오른다.
* * *
“흐흑! 흑……. 훌쩍.”
“허 의경 살려내라, 이 악독한 사람들아…!”
“그러니까 왜 가지 말라는 데를 가서 저러냐구. 일단 불길한 OST가 나오면 피해야 할 거 아냐.”
“리혁이 형, 등장인물한테 OST가 어떻게 들려여.”
“……모, 몰라! 난!”
“형 울어여?”
“안 울어.”
하지만 이미 서리혁의 눈시울은 벌게져 있었다.
김비주는 훌쩍이면서 휴지로 눈가를 콕콕 찍고 있었고, 평소였다면 ‘오, 드라마 꾸르잼’ 했을 김중현도 꽤나 몰입했는지 맥주가 당긴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우주가 한숨을 쉬었다.
“너무한 거 아니냐. 진짜 좀 살려 주지.”
“맞아요. 형. 저 슬퍼서 자꾸 눈물 나오려고 해요.”
“이미 나왔어.”
“나왔어요? 흐흑…….”
굳이 꼭 저기서 죽어야 했냐는 형들의 말에 왕지호는 해맑게 답했다.
“아, 그거여? 사실 저 때문에 죽은 거예여.”
“……?”
“감독님이랑 작가님이 원래 더 나오게 해 준다고 했거든여. 수사팀에 합류하는 식으로.”
“그런데?”
“제가 앨범 준비해야 되고, 그룹 활동에 전념하고 싶다구 주장해서 1화 퇴장으로 바뀌었어여. 잘했져?”
“…….”
이윽고 형들이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막내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짤짤 흔들었다.
“으악!”
“허 의경 살려내라, 이 악마야!”
“살려내!”
“혀, 형들! 왜 이래여, 제가 저기 나오는 허 의경이라구여!”
* * *
같은 시각.
GTV ‘슬립’의 1화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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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하이를 찍었다는 평을 받을 만큼 빼어난 영상미를 보여준 감독.
이 드라마 하나를 쓰기 위해 10년간 갈고 닦았다는 신인 작가.
엑스트라까지도 연기 구멍이 없는 배우들.
-1화만에 인생드 됐어요.. 와 1화 여운이..
-하얀 천 걷을 때 너무 슬펐음
-마지막에 주인공 동공지진난거 대박이었는데. 이강진 연기력이 물이 오를대로 올랐네요.
-그런데 slip이 거꾸로 나온 건 뭘가요? 시간여행 떡밥인가? 이거 타임슬립해서 피해자들 되살리는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 거면 좋겠다..
-전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주인공의 속마음을 대신 보여주는 장치라고 해석했어요. 장면마다 자꾸 시계 소품으로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철진이 되게 건조한 캐잖아요.
-허 의경 사망은 굳이? 싶네요. 결국 주인공 각성시킬 도구캐인 거잖아요.
-아 뻑하면 도구캐래.
-벌써부터 싸우는 거 보니 화제성은 확실하네
-슬립이 그렇게 재미있어요? 슬립 얘기만 3페이지 ㄷㄷㄷ
-꼭 보세요. 이렇게 작감배 완벽한 드라마는 3년 만인듯
-다들 싸우지 말고 담주에 하는 2화나 봐요 ㅋㅋㅋ
웰메이드라는 평을 받은 금요 드라마 ‘슬립’의 1화는 평균시청률 5.7%를 기록했다.
대박이었다.
기존의 케이블 대박 드라마의 첫방 최고가 3.3%인데다가, GTV 드라마 중에서 1화 시청률이 5%를 넘긴 건 슬립이 최초였다.
GTV 드라마국과 파이어플라이 프로덕션은 잔치 분위기였다.
“우와아아……!”
특히 호프집을 빌려 1화를 시청하던 제작진과 배우들은 대박 예감에 얼싸안고 비명을 질렀다.
“허 의경! 우리 허 의경이랑 잡범들도 불러내!”
“잠시만요!”
이강진의 폰에 영상통화로 떠오른 왕지호와 잡범들의 모습에 호프집 사람들이 ‘우와아’ 했다.
-정말 축하 드려여!
“우리가 고맙지!”
흥분한 사람들이 외쳤다.
“건배사! 건배사 해 줘!”
-우리 뭐로 할까여. 형들?
“우리 뭐로 할까여, 형들!”
자기들끼리 맥주잔을 부딪치며 흥겨워하는 모습에 화면 속 잡범들도 같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강진이 벌건 얼굴로 말했다.
“지호야, 넌 꼭 배우 해야 돼.”
-헛, 제가여?
“오늘 1화 다시 보니까 너무 잘하더라. 대박이야. 잡범들은 잡범 같고, 의경은 의경 같고.”
“뉴블랙이들 아주 잘했어!”
술이 들어간 어느 중견 배우의 칭찬에 뉴블랙 멤버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제작진의 표정이 훈훈했다.
뉴블랙이 그만큼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주었기 때문이었다.
자칫 퍽퍽해 보일 수 있는 극의 분위기를 씬스틸러로 이완시켜 주고, 왕지호도 뛰어난 연기력으로 극중 주인공을 비롯해 시청자들에게 몰입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제작진뿐 아니라 모두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슬립’에 출연한 허 의경은 누구? ‘뉴블랙’의 막내 멤버 지호
-GTV 슬립 출연 ‘뉴블랙’ … ‘잡범 4인방’, ‘허 의경’으로 “미친 존재감”
-[드라마톡] “진정해 제임스”, 바람직한 카메오 연기에 대하여
그 반응은 인터넷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였다.
-야.. 슬립은 진짜 카메오까지 연기파티네
-허의경 ㅠㅠㅠㅠㅠㅠ
-허의경니뮤ㅠㅠㅠ
-나 찐으로 놀랐다. 4인조도 넘나 잘해서 처음에 배우인가 싶다가 얼굴합이 잘 맞아서 아 아이돌이네 했는데 허의경??? 같은 그룹?? 막내??
-오빠ㅠㅠㅠ 내가 다 찌통이다
-18살임 미자야
-이미 알고 있으니까 흥 깨지 말고 눈치 챙겨.
-응..
-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잘하더라. 연기한다는 느낌이 없고 걍 20대 초반 훈남 의경 데려온 듯했음
-연기력 대박
-진정해 제임스에서 웃음 터졌다가 마지막에 숙연..
-드라마 보고 슬픈 사람들은 미튜브에 뉴블랙 검색해. 허 의경이 ‘안냐세여’ 하는거 볼 수 있슴
-안 볼래.. 이 이미지 깨기 싫어
-222 나두
한편, ‘뉴블랙’과 ‘지호’가 실검에 오르는 가운데 잡범즈의 동영상도 퍼지고 있었다.
가장 신이 나서 퍼뜨리는 건 바로 수플레들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었다.
-컴백하면 플래카드 ‘제임스’ 새긴다 나
-비주야!!!! 너도 부캐가 생겼구나..!
-진정해, 수플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거 진짜 오늘부터 내 웃음지뢰
-우리 애들은 증말 웃음지뢰가 몇개야 지뢰밭이야 밭
‘진정해 제임스’로 후끈후끈 달아오른 것도 잠시.
수플레들은 지호의 연기력에 흥분한 반응을 보였다.
-애긔가 연긔도 해..?
-지호 연기멤이었어???
-타팬들: 야 숯불들아 너네 막내연기 잘하더라. 수플레 : 응. 잘하… 뭐야. (화들짝)
-잘하지 ㅎㅎ (속마음) 뭔 소리야.. 나도 몰라..
-ㅋㅋㅋㅋㅋㅋ오늘 찐 당황. 타팬들이 연기 잘하냐고 묻는데 대답못함
-랜덤박스 명언짤 나와주세요
-거기다 다들 우와 하다가 지호 실제 모습에 기절초풍하는 거 너무 웃김ㅋㅋㅋㅋ
-인정ㅋㅋㅋㅋㅋ
-tv 속 허 의경이 과자 뇸뇸하면서 형들 품에서 뒹굴뒹굴
-근데 실제 저 상황이었으면 지호 ‘형들, 형들이 들어가면 안 돼여?’ ‘왜?’ ‘저 신발 젖어여.’ 이랬을듯ㅋㅋ
-우주가 한숨 쉬고 들어간다에 한 표
-중현이었으면 괴물이 붙잡혔을 텐데. 기자들이 괴물 괴권유린 이래도 괜찮나 썻을듯
-완벽한 캐해ㅋㅋㅋㅋ
-근데 이거 1회성으로 끝나는 거 맞나요..? 고정 출연으로 드라마 유입 막 늘어나면 곤란한데..
-걱정 마, 수플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야말로 수플레들이 모인 모든 곳은 축제 분위기였다.
* * *
어제 드라마 반응이 굉장했다.
회사에 찾아오자마자 홍 대리님이 ‘너희 정말…!’ 이러면서 ‘홍보의 달인이구나!’ 하며 좋아하셨다.
보도 자료를 돌릴 때도 받는 둥 마는 둥 하던 기자들 반응이 확 달라졌다나.
아침부터 지호에 대해 문의하는 글이 많았다는 소식에 우리 모두 막내를 축하해 주었다.
“자 다 같이.”
지호야 지호야
어쩜 이리 연기를 잘하니
“……그만해여!”
우리 지호 어화둥둥
하고 싶은 거 다해
대신 약속하기
야채 남기지 않기
“흐어어, 제가 잘못했으니까 그만 좀 해여!”
실험 성공.
적당한 자극이 있다면 지호도 리혁이만큼 얼굴을 붉힐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배우님! 사인해 주세요!”
“깔깔깔!”
“왕 배우님, 언제부터 연기를 꿈꾸셨어요?”
“배우님. 제 손편지를 받아 주세요!”
“야, 왕지호 그러게 평소에… 잠깐만. 편지 드립 누구야? 가만 안 둬요!”
하루 종일 막내를 놀리니 피곤함이 싹 가시는 느낌이다.
기분 좋은 쾌적함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가 쉴 새 없이 놀려 대는 탓에 학을 뗀 막내가 ‘저리로 가여!’ 하면서 지가 먼저 도망쳤다.
“뭐야. 갔네. 중현아, 심심한데 다른 애 놀리자.”
“몇 살이에요. 둘 다. 철 좀 들어요.”
“리혁이 어때?”
“……비주 형으로 해요. 비주 형.”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제임스를 놀리는 건 녹록치 않았다. 우리가 시선을 던지자 상냥한 미소가 돌아왔다.
“놀려도 돼요. 대신 김치볶음밥에 계란 후라이 안 올려줄 거예요.”
“……!”
“비엔나 소시지 줄 때도 혼자 칼집 안 내 줄 거고요.”
“……그, 그런.”
결국 제임스에 대한 공격은 포기하고 막내를 찾아다녔지만 회사 어딘가에 꽁꽁 숨어서 나타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카메오로 주목 받아서 기분도 좋고.
할머니의 ‘늘 새로운 옘병이다’라는 반응과 함께 지인들도 재미있었다는 톡을 보냈다.
거기다 매니지먼트 팀에 우리 막내를 섭외하고 싶다며 다른 제작사 측에서도 연락이 왔다나.
컴백을 앞두고 여러모로 좋은 일이 생겨서 기뻤다.
덕분에 그간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조금 풀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지호 얘는 어딜 간 거야?”
점심식사를 끝내고 우리 막내를 찾는데 안 보였다.
중현이가 말했다.
“아까 배우팀 조 실장님이 잠시 부르시던데요. 대화 길어질 거 같다고 먼저 우리끼리 먹으라고 했어요.”
“그래?”
웬일이래.
우리 막내가 먹는 것도 사양하고.
그만큼 조 실장님과 길게 할 이야기가 뭐가 있나 싶었지만, 돌아오고 나서 묻자고 결정했다.
일단은 동생들 멘탈 관리가 먼저였다.
“자, 그럼 가 볼까.”
“후후후.”
내가 품속에서 초콜릿을 꺼내 보이자 다들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가자. 어디로?”
“비.”
“난 이런 거 안 할래요. ……알았어요. 상.”
“구우.”
컴백을 앞둔 지금, 나는 동생들의 멘탈 케어를 하는 중이다.
가끔 스트레스가 너무 쌓이면 적당히 풀어줄 필요가 있는데, 대개 이렇게 점심을 먹고 나서 비상구에서 몰래 초콜릿을 한 조각씩 녹여 먹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하나씩 다 먹었는데 금세 체중에 변화가 와서 양을 조절했다.
동생들을 뒤따라가며 매니저에게 톡을 보냈다.
나 [형. 지금 애들 데리고 초콜릿 먹이러 가요]
원석이 형 [알았어.]
원석이 형 [그런데 꼭 몰래 먹어야 해? 그 정도는 괜찮은데]
나 [원래 몰래 먹어야 제맛인 거예요]
어렸을 때 우리 아빠가 가끔 유치원 땡땡이 하자며 나를 데리고 유원지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아들.’
‘응!’
그때는 엄마가 정말 모르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할머니가 알려 주기를 다들 알고 있었다나.
원래 모르는 척 해 줘야 더 재미있는 거라고 당시의 엄마가 말했다고 했다.
원석이 형 [나 필요하면 말해 줘]
원석이 형 [비상구에서 헛기침 같은 걸로 위기감 조성해 줄게]
나 [조만간 부탁할게요. 형]
신이 난 동생들이 ‘초콜릿’ 하면서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다들 우르르 비상구로 숨어들 때였다.
“……음?”
중현이가 눈매를 좁히더니 우리를 붙잡았다.
“왜 그래?”
“안에서 지호 말소리가 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