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35화
30장. 뉴블랙을 이겨라
숨이 턱 막혀 온다.
위에서는 누르고, 옆에서는 팔이 버둥거리고, 내 다리는 남의 다리 사이에 껴 있고.
개판도 이런 개판이…….
“야! 야! 야! 중현아! 움직이지 마!”
“아아, 누구야! 여기 팔 풀어요! 팔!”
“아파요?”
지금 우리의 상태를 말하자면 음…….
고양이가 뱉은 헤어볼 같다. 다 같이 엉켜서 엿듣다가 넘어진 탓에 칭칭 감겼다.
서로의 팔다리가 서로를 구속하는 상황.
“침착해! 침착해!”
“당신이나 침착해요! 귀에다 소리 지르지 말고!”
“일단 진정하자. 얘들아. 하나 둘 셋 하면 조용히 하는 거야. 하나 둘 셋!”
조용.
“그래. 이제 차분하게 얘기를 해 보자. 중현이는 왼팔을 뒤로 빼고, 비주는 몸을 살짝 틀어 봐.”
“이렇게요?”
“옳지. 리혁이는 쓸모없으니까 가만히 있고.”
“뭐요?”
“내가 이렇게 다리를 쏙 빼면…….”
짜잔.
“푸, 풀렸다!”
“우아아…….”
“후우.”
마침내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다들 기쁜 얼굴로 마주보았다. 이게 바로 팀워크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들?”
우리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경황이 없어서 머릿속에 지우고 있던 것 하나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머리 위로 지는 그림자에 불길한 시선을 교환했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예여?”
망했다.
* * *
“결국에는 엿들었다는 거네여.”
“어허, 엿들었다니. 우린…….”
무의식적으로 발끈하던 우리가 궁색한 얼굴로 리혁이를 불렀다.
“리혁아. 이 상황을 근사하게 포장해 줄 만한 단어 없니? 약간 한자 느낌 나는 단어로.”
“어, 잠깐만 기다려 봐요…….”
그 동안 중현이가 끼어들었다.
“도청?”
“중현이는 사태 악화시키지 말고. 젤리나 먹어.”
“형도 하나 줄게요.”
무설탕 곤약젤리가 입에 쏙 들어온다. 그 동안 우리 넷은 계단에 둘씩 짝 지어 앉았다.
“흐음…….”
앞에선 지호가 ‘이놈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하는 사또 같은 얼굴로 서성이고 있었다.
지은 죄가 지은 죄인 터라 우리는 모두 눈을 피하고 있었다.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네. 물어보세요.”
“어디서부터 들었어여?”
“별로 안 들었어. 중간 부분부터 한 20분 정도…?”
“아, 뭐야. 거의 다 들은 거잖아여. 얼마 안 들었다면서, 이 거짓사기꾼들.”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는 우리 모습에 막내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리혁이를 찾았다.
“리혁이 형.”
“으, 음?”
“평소에 사생활 존중 어쩌구 하면서 제가 형 방에 놀러갈 때마다, 잔소리하고 그러더니… 이건 다른 건가 봐여?”
“…….”
막내가 논리로 리혁이를 이기는 건 처음 본다.
‘어, 그……’ 하며 당황하는 리혁이에게서 시선을 뗀 지호가 이번에는 비주를 불렀다.
“비주 형.”
“네에…….”
“저는 정말 형한테 실망했어여. 다른 못난이 형들은-”
어허, 하며 발끈하려던 우리가 스산한 시선에 다시금 눈을 깔았다.
“다른 형들은 그렇다 치는데 형까지 여기에 껴서 엿듣고 그럴 줄은 몰랐어여.”
“미안해. 지호야.”
비주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사과했다.
“걱정이 돼서 그랬어. 처음에는 그냥 가려고 했는데 중현이가 안에서 들리는 얘기가 걱정된다고 했거든. 저 사람이 너랑 실컷 얘기해 놓고 자긴 모른다고 발뺌하는 거 아니냐고.”
“맞아.”
나도 말을 보탰다.
“그럴 경우엔 우리가 증인이 되어 줘야겠다고 생각했어.”
“안 그래도 되는데.”
막내가 약간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툴툴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이 말해 준 대로 녹음도 했단 말이에여.”
“잘했네. 우리 지호.”
“그져? 저 잘했… 아, 이게 아닌데.”
머쓱하게 헛기침을 하는 막내를 보며 웃었다. 처음에는 웃지 말라고 뭐라고 하던 녀석도 이내 피식 웃었다.
입을 비죽거리던 지호가 제자리에 털썩 앉았다.
“에잇, 몰라여.”
짜증은 나는데, 또 칭얼대고 싶긴 하고.
복잡한 표정이다.
우리가 엿들었다고 혼낸 것도 그런 감정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했던 얘기를 다 들었다고 하니까.
민망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그럼 거의 다 들은 거네여?”
“응.”
“제가 혼잣말하는 것까지?”
“……그거까지.”
“아니, 아… 아, 아으, 아!”
혼자 머리를 쥐어뜯는 녀석을 보면서 내가 손짓했다.
“이리 와. 일단 같이 앉자.”
“…….”
“초콜릿 먹어야지.”
“…….”
새초롬한 얼굴이 다가온다.
모두 계단 양옆으로 슬금슬금 물러나 가운데에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품을 더듬어 초콜릿을 꺼냈다.
부서졌을 줄 알았는데 이 와중에 멀쩡했다. 초콜릿을 까서 막내에게 그대로 고스란히 건네주었다.
“먹어.”
“저 혼자서여…?”
“음.”
합의가 안 된 거긴 한데 다른 동생들 표정을 보니 그래도 될 것 같다.
초콜릿을 보며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지호가 고심 끝에 다섯 개로 쪼개서 나눠주었다.
다 컸네. 우리 애.
그렇게 초콜릿을 녹이며 말없이 앉아 있기를 몇 분.
“근데여.”
지호가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저 잘한 거겠져?”
“뭐가?”
등 뒤의 비주에게 몸을 기댄 지호가 말했다.
“방금 실장님 얘기 거절한 거여.”
“음. 글쎄.”
어떻게 말해 줄까 고민이 됐지만 일단 사실대로 말해 주기로 했다.
“팀 입장에서 보면 좋은 일이긴 한데. 너 혼자만 생각하면 아닐 수도 있긴 하지.”
“그래여?”
“저 사람이 한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 우리도 네가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지호는 배우로서 잠재력이 높았다. 괜히 조 실장이 연기자 활동을 권유하러 온 게 아닐 만큼.
“그렇지만 우리 입장에선 고맙고 좋지. 네가 해 준 말도 그렇고.”
“고마운 일은 아니구.”
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일 한 거예여. 형들처럼.”
“근데 입꼬리는 왜 그렇게 씰룩거려?”
“……초콜릿 먹구 당 올라서 그래여.”
헛기침을 하는 녀석을 보며 웃었다.
비주가 지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고.
중현이가 초콜릿을 반으로 톡 더 잘라서 지호에게 건네주었다. 리혁이는 아예 안 먹고 있던 자기 몫을 건네주었다.
지호는 그 사이에서 거만한 뚱냥이처럼 형들의 관심과 손길을 즐겼다.
귀여웠다.
한편으론 기특하기도 하고.
지호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얘가 그룹 활동을 그 정도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늘 열심히 연습하지만 목적성이 약하다고 하나.
모두가 아이돌을 지망해서 시작한 거라면, 얘는 배우 하려다가 이쪽으로 흘러들어온 케이스니까. 만약에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 날이 온다면 아무래도 연기 쪽이 아닐까 내심 생각했다.
그래서 만약 본인이 3집 앨범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연기해 보고 싶다고 하면,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기도 했지.
그런 면에서 오늘 들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있어 나름 반전이었다.
조 실장의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솔깃해 할 줄 알았거든.
그 정도로 단칼에 잘라 낼 줄은 몰랐다.
아까 얘가 그룹 활동이 먼저라고 했을 때, 우리가 밖에서 짓고 있던 표정을 못 봐서 다행이다.
비주는 두 손을 뺨에 올린 채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갔다.
“암튼 제가 이… 전, 전.”
“긍긍?”
“전도유망이겠죠. 중현이 형.”
“암튼 전도유망한 배우 생활을 포기하구, 형들과 함께 구르기로 결정한 거니까 형들이 저 책임져여.”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
“지호야.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형들을 책임져야지.”
저마다 나중에 지호 개인 집사, 요리사, 청소부, 별장지기로 취업할 거라는 얘기에 녀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봉 100억으로 합의 보자는 농담에 지호가 초콜릿을 우물거리며 투덜거렸다.
“와. 이거 녹화해서 수플레들한테 보여 줘야 되는데. 형들의 이런 야비한 모습을 봐야 돼여.”
“그리고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중현이의 웅장한 내레이션에 우리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혼자 삐져서 흥 하기에 우쭈쭈 해 주자 금세 또 풀렸다. 한참 동안 실없는 이야기가 오갔다.
지호가 초콜릿을 뇸뇸 먹으면서 말했다.
“아. 맛있다. 너 왜 이렇게 맛있는 거니.”
“음.”
중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근데 생각해 보면 초콜릿 입장에선 공포 아닐까? 커다란 사람이 너 맛있다고 하는 거잖아.”
“그러네. 불쌍한 초콜릿…….”
“글쎄요. 무생물한테 무슨 감정이 있겠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자연에 있는 건 하나도 허투로 여기지 말라고 하셨는데. 길가의 돌멩이도 소중하게 여기라고.”
“……왜 항상 나만 쓰레기 되는 전개예요?”
우리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대화는 금세 ‘왜 초콜릿은 이리도 맛있는가?’라는 주제로 옮겨 갔다.
몰래 먹어서 맛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에 조용히 웃을 때였다.
“근데 나만 그런가?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이 시간대에 원래 회사 직원 분들이 비상구 엄청 드나들잖아요.”
내가 흠칫하는 동안 리혁이가 말을 이었다.
“희한하게 우리가 몰래 초콜릿 먹을 때는 아무도 안 들어오는 것 같단 말이죠.”
“그게 왜여? 전 좋기만 한데.”
“맞아.”
“어. 리혁이 말 맞는 거 같아. 그러고 보니 사람들 진짜 안 오네. 왜 그런 거지?”
* * *
4층 비상구 앞.
큼지막한 덩치의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비상구를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려던 직원이 멈칫했다.
“원석 씨?”
“안녕하세요.”
공손하게 인사하는 가수 팀 매니저. 그 모습에 회사 직원이 알겠다는 듯 손을 튕겼다.
그러곤 공범 같은 표정을 지었다.
“뉴블랙 애들 또 몰래 뭐 먹는 거죠?”
“예.”
“재미있다니까요. 걔네 빼고 온 회사가 다 안다는 게.”
수고하라며 손짓하는 직원에게 그가 꾸벅 인사했다.
그때 사무실에서 나오던 A&R팀의 직원이 그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안에 우주…?”
“예.”
“히익.”
빠르게 멀어지는 A&R팀 직원을 보며 웃을 때였다.
우주 [형 위기감 조성해주세요]
우주 [지금이 절타에요]
도원석이 키패드를 눌렀다.
나 [절타?]
우주 [절묘한 타이밍이요]
나 [아하 알았어]
그가 비상구 문을 열고 헛기침을 했다. 목소리 톤을 바꿨다.
“어흠흠,”
곧바로 반응이 왔다.
“흐악!”
“야, 야야!”
도마뱀들이 쉭쉭 거리듯 소곤거리는 비명 소리와 함께 땨땨땨 하는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도원석은 조용히 웃었다.
* * *
그날 연습이 끝나고 조 실장에 대한 이야기를 석환 형에게 했다.
막내가 실장님한테 따로 얘기하는 거 무섭다고 하기에 내가 같이 가 줬다.
사무실에서 이 모든 자초지종을 들은 상대의 반응은.
“흐음.”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였다.
“오늘 그랬다고?”
“응.”
“등잔 밑이 어둡다고. 물밑에서 이런 수작질을 하고 계셨구나.”
목소리 톤은 부드러운데 왜 이렇게 무서운지 모르겠다. 한동안 펜을 빙글빙글 돌리던 수학귀신이 결론을 내렸다.
“일단 너희는 가만히 있어. 녹음파일만 보내 주고, 나머지는 내가 따로 처리할 테니까.”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
회사에서 마주친 조 실장이 우리의 인사에 말없이 스윽 눈을 피하고 간 걸 보면 얘기는 잘된 거 같다.
석환 형에게 물어보니 잘 해결됐다는 답만 돌아올 뿐.
굳이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물어보진 않았다.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으니까.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컴백 준비, 방송, 방송, 그리고 방송.
라디오에 나가서 동생들과 함께 라이브를 하기도 하고, 토크 예능에 나가서도 열심히 드립을 던지기도 했다.
주된 목적은 대부분 3집 홍보였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쏙쏙 역사 탐험대와 관련해서도 행사가 있었다.
SNS 상에서 인기가 올라가면서 HBS 측에서 사인회를 해 보자며 추진한 기획이었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공개 사인회였는데 웃긴 상황이 많았다.
“우리 애가 팬이에요.”
어머님의 말에 따라 따님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을 쭙쭙 빨고 있는 애기는 나를 슥 바라보았다.
외면.
어머님이 당황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우리 애가 팬인데…….”
그러면서 사인지를 슥 내미셨다.
“To. 혜선으로 써 주세요.”
“네.”
엄마 뒤에 숨어서 나를 관찰하는 애기에게 손을 흔들었다.
“혜선이 안녕~”
“혜선이는 저예요.”
“앗, 아아….”
어머님의 소곤거림에 옆에서 동생들에게 사인을 받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끅 소리를 냈다.
비슷한 일이 많았다.
자녀를 대동하고 온 어머니들이 ‘우리 애가 팬’ 이러시는데, 애기들은 정작 역사가 뭔지도 모를 나이대였다.
하나 있긴 했다.
“원시인 아저씨!”
리혁이를 보고 손가락질 하던 남자 아이. 리혁이가 두 손을 모으고 벌게진 얼굴을 가렸다.
한편 가장 인기가 많았던 건 다름 아니라 지호였다.
드라마의 버프 덕분인지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행사장 주변을 지나가다가 멈칫하면서 ‘어, 쟤 슬립 걔’ 라고 하는 대사만 열 번 가까이 들었다.
“안녕하세염.”
…대부분은 그 실제 모습을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는데, 나 같아도 그럴 것 같긴 하다.
잡스러웠던 제임스와 잡범들이 알고 보니 차분한 형들이고.
예의 바른 20대 청년 허 의경은 박수를 치며 ‘꺄하하’ 웃고 있으니까.
“안녕하세요.”
중간중간 아는 얼굴도 보이긴 했다. 외근 나왔다가 들렀는지 평범한 회사원 옷차림을 한 수플레도 있었다.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어머, 실물 보니까 너무 잘생기셨다.”
되게 일반인 느낌을 내고 싶어 하고 하는 듯하기에 내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가방 장식이 예쁘시네요.”
“엇.”
뉴블랙 키링이 달린 가방에 상대가 민망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리혁이가 만든 한국사 정리 자료에 사인을 받아 가는데, 연신 행복한 얼굴이었다.
이럴 때면 신기하다.
내가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앞사람이 비는 동안 주변에서 찍고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들을 향해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저희 역사 탐험대 매주 HBS 미튜브 계정에 두 번 올라가니까,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지호를 가운데 세워두고 단체로 팔 하나씩 모아 대왕 하트를 그리는 우리 모습에 곳곳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는데 내가 본 하트 중에 가장 기괴했다.
그렇게 쏙쏙! 역사탐험대가 SNS에서 인기를 끌면서 우리가 여러 행사에 불려 다니는 동안.
컴백 전 활동의 두 축을 담당했던 PBS 도전, 명곡발굴단도 어느덧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네, 축하드립니다! 송보형 씨!
3월 마지막 주 수요일.
육백여 명의 관객들 앞에서 진행한 명곡단의 5차 경연은 트로트 가수 송보형의 우승으로 끝을 맺었다.
이로써 차우현 2회, 뉴블랙 1회, 리사 1회, 송보형 1회 우승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명곡단 1기 마지막 무대에서 조유리 밴드는 아무것도 할 노래가 없었다.
처음에는 탈락자나 하위권 발표 없는 경연이라는 말에 나름 훈훈하다고 생각한 프로그램이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제일 잔인한 포맷 같기도 하다.
다 같이 끝나고 인사하는 자리에서도 말없이 악기를 챙기고 쓸쓸하게 퇴장을 하는 조유리 밴드는 흡사 패배하고 떠나는 로켓단 같았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보너스 무대에서 다시 볼 거긴 하지만 리사, 송보형과도 그 동안 고생 많았다고 덕담을 나눴다.
우리와 리사조아 님이 건넨 선물에 리사가 눈에 띄게 기뻐했다.
송보형도 우리가 준비한 선물에 너무 좋다면서 반짝이 의상 남는 걸 주겠다고 말했다.
“정말 감ㅅ…….”
누군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괘, 괜찮아요!”
“저희 반짝이 괜찮아요! 정말로!”
“많이 입으세여!”
못된 것들.
하여간 예쁜 옷이란 옷은 다 못 입게 한다니까.
어쨌든 선배 가수들과 만남을 끝내고, 선물 준비에 가장 공을 들였던 상대와 대면했다.
이거 주려고 대기실에서 중현이를 대역으로 리허설까지 진행했지.
“흐음.”
선물상자를 받아든 차우현이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지?”
“저희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선물? 왜?”
우리가 답했다.
“선배님이 저희 추천해주셔서 OST도 들어가고, 카메오 출연도 하게 된 거라서요. 너무 감사해서 준비했어요.”
“목에 좋은 차예여.”
“리혁이가 준비했어요.”
연예인 앞에서 쭈뼛거리는 자녀를 보채듯 우리가 리혁이를 앞으로 밀어 주었다.
‘인사하고 싶어 했잖아. 얼른 인사 드려.’
‘떨지 말고.’
상대의 시선이 리혁이에게 물끄러미 향했다. 리혁이가 소심하게 우물쭈물하며 인사했다.
“제, 제가 준비했어요.”
“그렇구나. 고마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상대가 리혁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가 걸어갔다.
그러곤 뭔가 아니었던지 돌아와서 우리 어깨를 한 번씩 톡톡 두드려주고는 갔다.
“……기쁘신 거겠지?”
워낙 말수가 적은 분이라서 선물을 받아서 어떤지 얼굴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SNS에 인증한다고 해 주셨으니 좋은 거겠지.
* * *
차량 안.
큼지막한 손이 선물 상자 속에 담긴 차 티백을 집어보는 동안, 조수석에 앉은 매니저가 말을 건다.
“형님.”
뉴블랙과 차우현이 찍은 사진을 SNS 업로드 화면에 띄워둔 채, 매니저가 그를 불렀다.
“뭐라고 쓸까요?”
“이거 꼭 써야 되나. 생각해 보면 개인 간의 선물인데.”
“써야죠. 뉴블랙 애들 요즘 진짜 잘나가고 있단 말이에요. 형님도 숟가락, 아니 티스푼 정도는 얹어야 돼요.”
“음. 그러면…….”
차우현이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
“뉴블랙에게 선물을 받았는데.”
“네.”
매니저가 톡톡톡톡 SNS 글을 썼다.
“기분이 좋고.”
톡톡톡톡.
“음, 앞으로 잘 먹도록 하겠다. 고맙다.”
톡톡톡톡.
“확인해 보실래요?”
“됐어. 네가 알아서 잘 썼겠지. 그냥 올려.”
* * *
@cha_cow
(김중현과 차우현이 묵직한 두 석상처럼 근엄하게 서 있다. 그들을 중심으로 뉴블랙 멤버들이 잡초처럼 서 있는 사진)
우리 뉴블이들로부터 받은 특급선물!
너무 기분 좋다아 ><
목에도 좋은 차~ 고마워용. 앞으로 잘 먹을게!!
#명곡발굴단 #좋은_후배 #뉴블랙
“…….”
연습실에서 SNS를 보던 뉴블랙 멤버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