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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37)화 (23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37화

먼저 웃음을 터뜨린 건 상대 측이었다.

“푸흐흡-”

석지훈을 시작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지한빈과 한태현. 두 녀석은 아예 배까지 잡고 웃었다.

“푸하하!”

자기들끼리 어깨를 붙잡고 깔깔거리고 난리가 났다. 보고 있던 나도 그만 웃음을 터뜨릴 만큼. 금세 웃음이 전염되서 동생들도 웃었다.

할머니. 보고 있어?

손자가 이렇게 모두에게 기쁨을 주고 있어.

난 기쁘지 않지만…….

*   *   *

웃음이 진정되기까지는 5분이나 걸렸다. 한참을 키득대던 녀석들이 우리 스탭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출장을 나온 메이크업 쌤들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반겼다. 넉살 좋게 인사하던 녀석들이 물었다.

“잠깐 놀러 왔는데, 여기 있어도 되죠?”

당연히 허락이 떨어졌다.

곧바로 대기실 소파에 한 자리씩 차지하려던 녀석들이 허둥지둥 일어난 우리 멤버들에게 손사래를 쳤다.

“으아, 왜 또 진지하게 인사하려고 그래요. 그냥 앉아요. 앉아.”

“맞아. 우린 이런 거 불편해요.”

“우주 형이나 인사 받는 거 엄청 좋아하지, 우리는 그런 거 없어요.”

“…….”

동생들이 막 웃으며 앉았다.

“오, 여기 대기실 넓네. 우리가 쓰던 덴가?”

“다른 방일걸. 거기가 더 넓어.”

소파 쿠션감까지 체크하는 녀석들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이 방 주인은 우리인데 너무나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마치 고길동의 집에 들어온 둘리 패거리 같다고 할까.

“야, 이 방은 우리 대길, 대기실이야.”

말실수를 할 뻔했지만 잘 넘겼군.

“응? 대길이라고?”

한태현을 시작으로 다시 또 배를 잡고 웃어댄다.

“대길이래!”

“아이고오! 깔깔깔!”

……내가 말을 말아야지. 이것들.

한참 놀리던 녀석들이 동생들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두 무리가 대화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때였다.

내 옆에서 테이블에 놓인 목캔디를 까먹고 있는 한태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희는 여기에 어쩐 일이야?”

“아, 오늘 우리 패널 출연.”

“패널?”

“명곡단 2기에 우리 회사 걸그룹이 아이돌 출연자로 나오거든. 엔와이엑스라고.”

“아아.”

오늘 명곡단 스페셜 무대에서는 1기 멤버들의 공연과 함께 새롭게 출연할 2기 멤버들을 소개한다.

우리 자리에 걸그룹이 들어올 거라고 들었는데, 그게 TJ 엔터 소속일 줄은 몰랐다.

NYX.

13년도 말에 데뷔한 선배 가수로 TJ에서 야심차게 런칭한 퍼포먼스형 걸그룹이다.

멤버 하나하나 실력이 뛰어나서 스칼렛과 함께 걸그룹 중에서 실력파로 꼽히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뜨지 못하고 있었다.

프로듀서인 박태준 회장이 성공시키지 못한 유일한 그룹으로 알려져 있지.

“NYX 분들이 이번에 들어오시는구나.”

“엄청 힘들게 들어왔지. 오디션까지 보고 들어온 거래.”

“오디션?”

내 물음에 태현이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형네 자리로 들어오려고 경쟁 엄청 빡셌다던데. 제2의 뉴블랙 돼 보겠다고 어지간한 걸그룹은 다 끼어들었다고 하더라.”

그만큼 가치가 높은 자리긴 하다.

시청률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이 고정 출연으로 인지도를 쌓을 기회는 정말 드무니까.

지상파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도 하늘에 별 따기인데 이건…….

우리도 3집 활동만 아니었다면 몇 달 정도 더 출연하고 싶을 정도였다. 경연 준비와 음악방송을 병행하기 어려워서 둘 중 하나를 포기했을 뿐.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는 비하인드를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의문의 인기 아이돌이 된 느낌이네.”

“인기 아이돌 맞지, 뭐. 요새 우리 형님네 그룹 엄청 잘나가드만.”

내게 팔을 두른 상대가 씩 웃었다.

“나 깜놀했다니까. 내 직캠 보고 있는데 갑자기 대길이 친구님이 불 피우고 있더라.”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얘기가 들렸는지 중현이가 곰이 인사하듯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부처님 인사에 태현이가 꾸벅했다.

“어째 중현이한테는 조심스럽냐.”

“선웅이 형이 대친님이랑 풋살하다가 트라우마 걸렸잖아. 보기만 해도 움찔하던데. 그날 회식하는데 막 술 취해서…….”

상대가 누군가의 억울한 표정을 따라했다.

-너네 가랑이 사이로 대포알이 스쳐 지나가는 기분 아냐. 죽다 사는 줄 알았다. 간담이 서늘서늘해.

“와. 진짜 똑같아.”

내가 물개박수를 치면서 감탄하자 상대가 훗 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그날 술 취하더니 나 무서워서 다음엔 풋살 절대 안 나간다 징징… 어휴.”

“왜, 난 이해되는데. 난 중현이랑 몸으로 대결할 일이 생기면 일단 항복부터 해.”

“오. 행복해요?”

“항복. 중현아. 항복.”

중현이의 뜬금없는 대사에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돌림픽이 끝나고 두 달 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그런지 서로를 보며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TNT의 막내 석지훈이 지호의 핸드폰에 자기 번호를 찍어주었다.

“다음에 볼 때는 형이라고 편하게 불러.”

“응.”

“아니, 그… 상호 존댓말은 쓰고요.”

“네, 형.”

우리 막내가 방긋 웃으며 답했다.

화기애애한 풍경이었지만 나와 TNT 조무래기들의 얼굴은 떨떠름하기만 할 뿐이었다.

한태현이 내게 물었다.

“방금 들었어? 쟤가 형이래.”

“좀 당황스럽네.”

지한빈도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물었다.

“네가 형? 혀어엉?”

“…….”

“얘들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쟤가 이제 어디 가서 형이라고 불리고 그래?”

“와, 이 꼰대들…!”

나이로는 비주, 중현이와 동갑인데 막내 취급 당하는 것에 상대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손뼉을 치며 깔깔거리는 동안, 지한빈이 내게 일러바쳤다.

“쟤 아까 올 때부터, 자기 오늘 허 의경이랑 친구 될 거라고. 전화번호 교환할 거라고 예고했다니까.”

“아니….”

상대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슬립 보는데, 연기를 너무 잘하시니까…….”

“그래여? 제가 그렇게 잘했어여?”

“엇, 그.”

후진 없이 들이대는 우리 막내에게 석지훈이 쩔쩔 맸다.

리혁이가 지호의 목덜미를 잡고 떼어내자 상대가 살짝 안도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학원 어디 다녔냐부터 시작해서 주로 연기가 화제였다.

“허 의경할 때는 어떻게 감정 잡았어요?”

“아, 그거여.”

막내가 ‘엄청 쉬워여!’ 하면서 설명했다.

“하나씩 바꿔 나가면 돼여.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거져. 내가 연기할 배역에 맞추는 식으로. 허 의경을 예로 들면 머릿속의 내 자화상에서 신발부터 낡은 단화로 바꿔 신고…….”

“……?”

“…그런 식으로 캐릭터에 맞게 상상 속 내 모습을 다 바꾸고 나면, 짜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거예여.”

“그, 그래요?”

당황해 하는 석지훈을 보며 왠지 모르게 흡족했다.

그래. 이게 바로 우리 애야.

벙찐 표정을 보며 웃음을 참았다.

수능 만점 비법을 들으러 왔는데 만점자가 귓속말로 ‘다 맞추면 됨’ 하는 걸 들은 사람 같다.

“톡으로 연기 얘기 같은 거 앞으로 좀 해도 돼요?”

“네, 저 좋아여.”

연기 프렌드가 생겼다며 들뜬 지호를 보며 웃는 한편 분위기를 차분하게 살폈다.

손님이 오래 머물러 있으니 동생들이 조금씩 불편해 하는 것 같다.

특히 리혁이.

다른 동생들도 편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얘네랑 동기처럼 노는 나와는 경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스트릿 보이즈처럼 비슷한 연차라면 모를까.

나 같아도 중현이 친구라는 40대 남자 분들이 놀러 와서 ‘편하게 있어, 핫핫!’ 라고 아무리 말해도 불편함이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

나라는 연결고리가 없으면 그냥 선후배 사이니까.

오랜만에 만나서 즐겁긴 했지만, 공연을 위해 우리 애들 컨디션을 관리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우리 이제 슬슬 가야겠다.”

태현이가 눈치 빠르게 나서 주자, 다른 녀석들도 테이블의 캔디를 주머니에 주섬주섬 챙겼다.

나갈 채비를 마친 녀석들을 대기실 밖까지 배웅했다.

“님. 근데 저희 밥은 언제 먹는 건가요.”

“맞아. 밥 사 주기로 했잖아.”

“밥 사 주기로 했어? 나도 먹을래.”

밥을 사 주기로 한 건 분명 한 명이었는데 갑자기 셋이 되어 있었다.

“시간 나면 사 줄게. 시간 나면.”

“오오.”

자기들끼리 벌써부터 얻어먹을 생각에 신이 난 이들을 보며 내가 미소를 지었다.

실없는 소리를 두런두런 주고받은 후, 태현이가 웃으며 말했다.

“뉴블랙도 좀 뜨니까 좋다. 전에는 놀러오면 우리가 괜히 눈치 보이고 그랬는데.”

“그러게, 나도 좋다.”

3집도 대박 나서 나중에 화성에서 합동우주콘 가자는 드립을 주고받을 때였다.

불현듯 궁금했던 게 하나 떠올랐다.

앨범에 대한 부담감.

조 이사님에게 묻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얘네는 같은 길을 우리보다 4년 더 먼저 가 보기도 했고.

“나 궁금한 거 하나 물어봐도 되나.”

“뭔데?”

호기심 가득한 얼굴들에게 질문했다.

“요즘 앨범 준비하면서 드는 생각인데, 너희는 부담이 될 때… 왜 그래?”

말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셋이 돌처럼 굳어 있다.

뭐지. 이 반응.

셋이 해괴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다.

“으아아!”

셋이 동시에 팔을 막 비비기 시작했다.

“으아아, 적응 안 돼.”

“와. 나 닭살 돋은 거 봐.”

“형이 왜 우리한테 조언 같은 거 구하는 건데. 적응 안 되게.”

“아! 이런 거 하지 말라고!”

계속 ‘으아아’ 하던 녀석들이 내가 다시 물어보려고 하자, 듣기 싫다며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

아무리 생각해 봐도, 쟤네는 자기들이 내 선배 그룹이라는 자각이 없는 거 같다.

*   *   *

TNT의 조무래기들이 도망치고 나서 얼마 후 정중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자기를 NYX 매니저라고 소개한 인물이 들어와 혹시 인사도 하고, 괜찮으면 인증샷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왔다.

굉장히 정중한 태도였다.

“…그렇게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네. 좋아요.”

곧이어 세련된 무대 의상을 입은 6인조 걸그룹이 매니저를 대동하고 들어왔다.

뭔가 우르르 들어오기에 우리도 일어나서 맞이하려고 할 때였다.

대형을 갖춘 이들이 빠르게 인사했다.

“The Night Comes! 안녕하세요, NYX입니다!”

“어, 왜 먼저 인사…….”

선배 걸그룹의 쩌렁쩌렁한 인사에 당황한 우리도 허리를 90도로 숙여 가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오! 뉴블랙입니다아아!”

“엇, 안녕하세요.”

“네. 처음 뵙는….”

“그러네요. 네.”

서로 시소처럼 직각 인사 배틀을 하는 모습에 우리 스탭들이 웃기 시작했다.

딱다구리처럼 누가 허리를 잘 숙이나 시작된 인사 배틀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비주의 유연성 넘치는 130도 인사는 아무도 이길 수 없었다.

“으앗!”

허리춤에 찬 마이크 팩이 스르르 미끄러져서 뒤통수로 떨어지지만 않았다면 멋있었을 텐데.

“비주야, 괜찮아?”

“으이, 저 괜찮아요오…….”

“후우.”

“상처에 바람 불지 마, 김중현.”

“빵꾸 안 났어여? 빵꾸? 우리 형 머리 이뻐서 빵꾸 나면 안 되는데.”

우리가 그러는 동안 상대는 웃어야 할지 안 웃어야 할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6개월 먼저 데뷔를 했던가.

그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멤버 전원이 굉장히 위축되어 보였다.

엄청난 스타도 아닌 우리한테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사진을 요청하는 것도 그렇고. 그 동안 주변에서 어떤 대우를 받아 왔는지 대강의 곡절이 그려졌다.

중간 중간 아는 얼굴들이 눈에 박혀 왔다.

나보다 2년 정도 더 먼저 들어왔던 리더 뮤리도 있고, 오다가다 마주친 얼굴들이 대부분이다.

TJ 엔터의 남녀칠세부동석 지침 때문에 말을 섞은 적은 없지만 다 아는 사람들이다. 그쪽에서도 내 얼굴을 알기에 더 어색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NYX의 멤버들이 뻣뻣하게 서 있는 동안 리더인 뮤리가 싹싹한 어조로 말했다.

“저희가 이번 뉴블랙 분들 다음으로 들어가는 아이돌 참가자예요.”

“네, 아까 TNT 선배님들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나도 웃으며 답했다.

“어느 분이 오실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진짜 노래 잘하시는 선배님들이 오셨네요.”

예의상 건넨 칭찬이라고 생각했는지 그쪽에서 하하 웃을 때였다.

“제가 NYX 노래 중에서 ‘Harsh Mistress’ 좋아하거든요.”

“예?”

“거기 브릿지 파트 되게 좋아해요. 우우우- 하는 부분.”

리더인 뮤리가 당황했을 때, 입을 떡하니 벌린 다른 멤버가 물었다.

“그걸 알아요? 그거 완전 수록곡 중에서도 뒷 순서인데…….”

“네. 발매하고 나서 바로 들었어요.”

“저희 팬이셨… 아, 그럴 리가 없지.”

그때 열린 문 사이로 얄미운 목소리가 들렸다.

“저 형이 작곡 오타쿠라서 웬만한 아이돌 노래는 다 들어요.”

한태현이 고개를 쏙 내민 채 대사를 내뱉었다.

저거 왜 안 갔어.

내가 째려보자 ‘히익’ 하면서 다시 도망쳤다. 하지만 작곡 오타쿠라는 말에 모두가 ‘아아’ 했다.

……작곡 오타쿠라니. 어감이 확 다르잖아.

심지어 우리 스탭들도 ‘맞네, 맞아’ 하고 있다. 다들 고생한다고 음료수 돌리려고 했는데 생수로 바꿔야겠다.

“우와, 저희 노래 아시는구나. 저희도 뉴블랙 분들 노래 되게 좋아해요.”

“마스커레이드!”

“허어, 저희도 마스커레이드 좋아해여.”

어쨌거나 노래 얘기와 우리 동생들의 사근사근한 태도가 합쳐져서 분위기가 확 살아났다.

저쪽이 우리를 보는 시선도 조심조심에서 좋은 쪽으로 바뀐 느낌.

어떤 말이 날아올지 몰라서 긴장하던 태도에서 벗어난 NYX가 긴장을 풀고 편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그럼 사진 좀 찍을까요?”

찍사는 심심하다며 주변을 서성이고 있던 탑스타 한 모 씨가 맡아 주었다.

인증샷을 찍고 돌아가는 동안 상대팀은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리더인 뮤리가 사인 CD를 건네주고 떠났다.

“…….”

동생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그 CD를 한참 동안 바라본 거 같다.

조금 떴다고 대접 받고 그러면 기분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씁쓰름하기만 하다.

우리가 요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의 호의가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   *   *

마침내 ‘명곡단’ 1기의 최종화.

스페셜 무대를 보여 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후우…….”

내가 동생들을 불러 모았다.

“이거 잘해야 돼. 우리.”

끄덕끄덕.

“나와 김덕순의 명예가 걸린 노래야.”

끄덕….

“오늘 무대 잘하고 내려오면 형이 이따가 야식 사 줄게.”

끄덕! 끄덕! 끄덕덕덕!

이성을 잃은 호두까기 인형들이 딱딱거릴 때 민기 형이 차분하게 되새겨 주었다.

“얘들아, 너희 다이어트.”

“아. 맞다.”

나라 잃은 표정들을 마주하고는 웃었다.

마지막 녹화이기도 하고, 순위에 구애 받지 않는 무대이기에 다들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출연진 모두가 그랬다.

애초에 제작진이 오늘만큼은 진지한 경연에서 벗어나 콘서트 앵콜 무대처럼 신나는 공연을 주문한 터였다.

예를 들어서 지금 공개홀에서 락 음악을 트로트 댄스로 바꿔버린 송보형 씨의 노래처럼.

경쾌하게 각색된 편곡에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무대가 끝나고 연예인 패널석과 심사위원 코멘트가 이어진 후, 송보형과 댄서들이 내려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잘해요!”

송보형 씨가 계단을 다닥다닥 리듬감 있게 내려오면서 우리의 손에 주르륵 하이파이브를 치고 갔다.

“뉴블랙도 스탠바이 할게요.”

내가 손을 쭉 뻗자, 여러 손들이 그 위에 얹어졌다.

“자, 그럼 컴백하고 나서 먹고 싶은 음식들 하나씩 말해보자. 난 숯불 삼겹살.”

“저 물만두랑 오이소박이 먹고 싶어요.”

“족발보쌈 대자 다섯 개.”

“고구마 말랭이.”

“떡볶이.”

무대에 올라가기 전 ‘꼭 먹자!’ 하면서 화이팅을 외쳤다.

*   *   *

PBS 공개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MC 백상중이 흥을 돋운다.

-다음은 여러분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로 그 팀입니다.

‘와아!’ 하는 함성이 잦아들 때까지 MC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물개 박수를 미리 치고 있는 TNT의 세 멤버가 화면에 잡히고.

‘나 너무 기대 돼’ 하며 대화하는 목소리가 패널석에서 흘러나왔다.

‘덕순아’의 원곡자인 유명덕이 허허 웃으며 바라볼 때.

-명곡단이 발굴한 보석 같은 신인 아이돌입니다. 뉴블랙의 ‘덕순아!’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박수와 환호 속에서 뉴블랙 멤버들이 여유롭게 올라왔다.

조명이 밝아지면서 다섯 멤버가 나타나자, 다시 한 번 환호성이 터졌다.

인사말이 끝나고 리더인 우주가 대표로 마이크를 잡았다.

-네, 오늘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네요. 마지막 무대여서 정말 아쉬움이 컸는데, 그래도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되어서 아쉽고 안타까운 기분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주가 웃으며 노래를 설명했다.

-저희가 지금 부를 ‘덕순아’는 가수 유명덕 선생님의 명곡인데요. 이 노래에 대해 잠시 말씀을 드리자면…

다정한 목소리가 관객들에게 미리 주목해야 할 노래의 디테일을 설명해 주었다.

-자, 저희가 여기서 이렇게 부르면….

듣기 좋게 녹아드는 목소리들이 관객들에게 미리 어떤 식으로 호응을 부탁한다며 넉살 좋게 말을 걸었다.

원곡자 유명덕은 흐뭇하게 웃었다.

‘귀엽구먼.’

과연 어떤 무대를 보일지 원곡자를 포함한 모두가 기대를 품을 때, 공개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우주의 진지한 내레이션.

-세상 모든 덕순이를 위한 노래입니다.

눈썰미 좋은 사람이 있다면 암전될 때, 뉴블랙 멤버들이 순간적으로 뺨을 씰룩일 뻔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조명이 밝아지며 전주가 시작되었다.

직설적인 가사가 다소 각색되어 흘러나오고, 뉴블랙의 가창력에 관객들이 ‘오’ 하며 눈썹을 치켜 뜰 때. 인트로가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노래가 시작됐다.

라이브 밴드가 격하게 연주를 하고.

덕순아아아아-

…하는 멤버들의 합창과 함께.

멤버들은 진지하고, 관객들은 감탄하고, 무대 아래선 매니저들이 온힘을 다해 입술을 오므리고 있었다.

관객들은 신나는 멜로디에 맞춰 손뼉을 짝짝 쳤다.

그중에서 뉴블랙의 무대를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은 절로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얘넨 진짜 무대를 즐기는구나.’

그중에서도 유독 한 멤버가 반짝거린다.

덕순아의 한 소절, 한 소절 부를 때마다 시간이 줄어드는 게 아깝다는 듯 온힘을 다하는 우주.

가사를 내뱉을 때마다 행복하게 웃는 게, 정말 무대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누구보다 감명 깊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아, 아니…….’

원곡자인 유명덕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편곡, 각색, 목소리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현대적으로 재탄생되어 있는 ‘덕순아’였다.

그가 공을 들여 만들었지만 그간 빛을 보지 못했던 노래가 완벽하게 변해 있었다.

이 노래에 대해 어지간히 정성을 쏟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퀄리티.

가슴이 먹먹해진다.

일면식도 없는 가수의 노래를 위해 이 정도로 정성을 쏟아 주다니…….

“이, 이런…….”

날이 올 줄이야.

하이라이트의 ‘덕순아’ 하는 후렴구가 들리자마자 유명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건 쳐야 했다.

“아아……!”

감동에 젖어든 중년 가수의 얼굴이 카메라에 담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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