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41)화 (24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41화

부드러운 전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뉴블랙의 대형이 바뀌었다.

메인댄서를 둥글게 에워싼 멤버들.

그 사이에서 비주의 몸이 스르륵 가라앉는다.

바람에 흩날리던 씨앗이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동시에 흙이 씨앗을 보듬어주듯 멤버들이 몸을 굽혀 우산처럼 메인댄서를 감쌌다.

전주가 끝나자 제 역할이 끝났다는 듯 멤버들이 사이드로 빠져나가고.

홀로 앉아있던 메인댄서가 사뿐히 일어났다.

단순히 일어나는 동작이었지만, 수려한 몸짓에 팬들의 시선이 고정됐다.

손을 가지처럼 뻗으며 올라오는 모습이 진짜 씨앗이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

잠시 동안 미리 준비한 응원법을 까먹을 정도였다.

정신을 차린 수플레들이 응원을 시작하면서 비주가 눈을 감은 채 마이크를 잡았다.

바람이 끝나고

그 겨울도 멈췄어

첫 소절이 끝나자 멤버들이 합류했다.

멤버별로 번갈아가면서 바람꽃의 가사를 부드럽게 속삭였다.

시작은 차가운 겨울 같은 느낌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따스한 봄의 색을 닮아 갔다.

팬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예쁘다.’

멜로디부터 안무까지 예쁘다는 느낌을 주는 노래였다.

그렇다고 마냥 서정적이거나 지루한 노래도 아니었다.

노래가 귀에 익어 갈 때마다 밑에 깔린 사운드가 변화무쌍하게 바뀌며 귀를 자극했다.

카페에서 우연히 듣는다면, 노트북에 올린 손을 멈추고 ‘음?’ 하면서 귀를 기울일 만한 노래였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마치 노래 안에서 생명력이 맥동하는 듯한 리듬이 느껴졌다.

‘……진짜 좋다.’

노래의 서사도 쉽게 와 닿았다.

중현이 부른 ‘Wind’가 씨앗을 품에 안은 바람의 이야기라면 바람꽃은 그 씨앗이 피워 낸 들꽃의 이야기였다.

우주가 마이크를 잡았다.

내가 있는 곳은

너의 시작과 끝

퍼포먼스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래의 서사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파트 화단에 핀 들꽃.

아침에는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고, 밤에는 힘 빠진 모습으로 돌아오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들꽃.

당신이 보내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내가 함께한다고 말하는 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바라보아도 사람은 화단에 핀 꽃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랩 파트가 이어졌다.

시선이 닿는 건

기약 없는 cell

차디 찬 밤하늘은

무겁게 널 짓눌러

귀갓길에서 아무 연락이 없는 핸드폰을 바라보거나 혹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외로워하는 누군가.

어디에도 돌아오는 답은 없다.

그런 이에게 지금 별이 빛나는 저 밤하늘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며 들꽃이 말하고 있었다.

밤하늘은 차갑고 어두울 뿐.

드넓기만 해서 당신을 더욱 더 작게 만들어서 외롭게 할 뿐이라고.

메인 보컬이 마이크를 잡고, 서브 보컬이 화음을 더했다.

올려다볼 필요도

돌아설 필요도 없이

그저 바라보면 돼

차가운 밤하늘 대신, 아래로 시선을 돌리면 화단에서 살랑이는 들꽃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후렴구가 되자 흩어진 멤버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우주와 등을 맞댄 비주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멤버 하나하나가 꽃잎처럼 움직이는 군무가 이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수플레들의 입가에 따스한 미소가 맺혔다.

이윽고 무대가 끝났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

무대 위에서 상기된 얼굴로 서 있는 멤버들을 보면서 팬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   *   *

“어때요, 바람꽃 좋으셨어요?”

동시에 터져 나오는 대답에 일순간 고막이 따가웠다. 분명 ‘네’ 같은데 ‘누아악!’처럼 들렸다.

동생들과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교환했다.

‘노래가 좋았나 봐여.’

‘다들 마음에 들었나 본데…?’

은근히 조마조마했거든.

우리 노래의 1차적인 리스너는 대중이 아니라 팬이다. 그런 만큼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긴장하고 있었다.

야광봉을 흔드는 사람들의 얼굴에 기분 좋은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명곡단 1차 경연 때 관객들이 이랬는데.

그제야 긴장이 풀린, 한편으론 행복한 미소를 보일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바람꽃이 여러분 마음에 들지 안 들지 몰라서, 엄청 떨고 있었거든요.”

내가 설명을 덧붙였다.

“앨범 준비를 하다 보면 정말 노래가 좋은지, 안 좋은지 저희도 구별을 못하거든요.”

-맞아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으니까.

작곡 초안부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때까지 수백 번 넘게 듣고.

본격적으로 퍼포먼스 준비 들어가서 타이틀곡을 매일 수백 번씩, 한 달간 듣다 보면 감각이 사라진다.

나야 익숙해서 좋기만 한데, 다른 사람들 귀에는 어떻게 들릴지 감이 안 온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내심 초조했는데, 진심 어린 리액션이 돌아와서 다행이었다.

동생들도 한숨 돌린 표정이다.

특히 앨범 걱정을 하며 눈물을 쏟아낸 비주는 아예 눈이 반짝반짝하고 있었다.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무가 되게 예뻤죠?”

두말할 필요도 없이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밝히는 비하인드인데 이 안무를 만든 사람이 바로 비주예요.”

-엇, 아니에요. 아니.

비주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제가 다 만든 게 아니고, 클레이 안무가님이…….

“네. 클레이 안무가님이 전반적으로 안무를 다듬었지만, 그 시작은 비주가 만든 안무거든요.”

1월 초에 조 이사님 댁 거실에서 선보였던 춤이 이번 ‘바람꽃’의 기초가 되는 안무였다.

그러면서 이번 타이틀을 만드는데 있어서 비주가 얼마나 공을 세웠는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아니, 글쎄. 얘가 저랑 작곡 얘기하겠다고 쉬는 시간마다 작곡 이론을 공부해서…….”

5분 동안 신나서 동생 자랑을 하니 비주가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형, 그만해요. 저 너무 부끄러워요.

“역시. 우리 애 참 겸손하고 기특하죠? 비주야, 볼매라는 말 아니?”

-볼매…?

‘볼매… 볼메… 볼메이크업… 볼터치?’로 이어지는 소심한 논리구조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볼수록 매력적이라는 뜻이야.”

-아. 그렇구나. 기억할게요.

“비주는 참 볼매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 같아요. 제가요, 제가요. 지난번에는…….”

잔뜩 흥분해서 우리 애가 얼마나 성실한 애고, 얼마나 잘하는지 자랑하는데 어째 다들 웃는다.

왜들 그러지.

리혁이가 마이크를 잡고 한 마디 했다.

-팔불출 같아요.

“…아니, 팔불출이라니. 전 그저 동생을 아끼는 마음에서…….”

-저희두 칭찬해 줘여. 저희두. 맨날 비주 형만 젤 예뻐해. 우린 최애가 아니다 그거예여?

“무슨 소리. 내 최애는 김덕순 하나야.”

지호랑 투닥거리자, 리혁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 나이차는 다섯 살인데, 이럴 때 보면 둘이 수준이 비슷해요.

-저기, 다들. 저 때문에 싸우지 말아요.

한편, 비주를 칭찬하는 것에 대해 시샘과 질투가 폭발한 목소리들이 아우성을 쳤다.

날 지그시 바라보던 중현이가 마이크를 잡고 중저음의 ‘흥’ 한 마디를 내뱉으면서 장내가 폭소로 뒤덮였다.

백스테이지에 있던 우리 스탭들까지도 웃다가 벽을 짚으며 무너졌다.

리혁이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아까부터 아름답게 포장이 되어가고 있는데, 전 이번 앨범의 피해자 중 하나예요.

“피해자라니. 리혁아. 넌 피해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잖아.”

-맞아! 맞아!

-아니, 이 사람들이…….

리혁이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밝힐게요. 전 분명히 바람꽃의 컨셉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리혁아, 이번 곡은 보컬 중심이다’ 라고 형들이 그랬거든요. 내심 기대하고 있었어요. 아, 이번엔 노래구나.

메인 보컬이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비주 형이 ‘짜잔’ 하고 안무를 들고 오더라고요. 그 선한 미소 아시죠? ‘리혁아. 이번 우리 안무야.’ 하는데…….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척 보기에도 바람꽃의 안무는 난이도가 쉬운 편이 아니었으니까.

-제가 당황해서 ‘형, 이게 보컬곡의 안무라고요? 이 난이도가…?’ 하니까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음? 이게 어려워?’ 라고 하더라고요.

-저기.

비주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혁아.

-네.

-내가 미안해…….

비주의 사과에 우리 모두 손뼉을 치며 웃었다. 리혁이도 피식 웃으면서 그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 동안 나는 이번 타이틀곡에 얽혔던 비하인드를 밝혔다.

마음 같아서는 ‘여러분! 우리 애들이 세상에서 젤 잘났답니다아아!’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자제했다.

팬들에게 생색내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게다가 비하인드 전부를 밝힐 순 없었다.

리혁이의 인권과 수플레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암흑물질’ 스토리도 뺐고.

비주가 자꾸 내가 안무를 보고 나서 작곡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했는데 눈짓으로 말렸다.

쟤는 ‘왜요, 이건 알아야 해요’ 눈치지만, 안무 보고 작곡했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좀 과해서.

내 설명에 수플레들이 ‘오오’ 하는 동안, 이번 앨범 제작에 참여한 우리 동생들은 뿌듯하게 웃고 있다.

그 모습에 내 기분이 좋았다.

바로 이걸 보여주고 싶었다.

팬들이 우리가 직접 만든 노래를 좋아할 때, 내가 그 동안 느끼고 있던 이 좋은 기분을.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번 앨범을 여러분에게 드디어 보여드릴 수 있게 되어서 정말 좋아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엔 조금 더 일찍 찾아올게요, 하는 뒷말을 삼켰지만 의미는 잘 전달된 것 같다.

분위기가 후끈후끈해진 공연장에서 수플레들과 눈을 마주쳤다.

“자, 그럼 이제 마지막 곡이네요.”

아쉬움 가득한 환호를 받으며 우리는 마지막 무대를 했다.

후속곡으로 예정된 ‘Flower Dance’의 공연.

무대 효과로 터졌던 꽃잎들이 잔뜩 흩뿌려진 무대 위에 앉아 팬들과 찍은 인증샷을 끝으로 팬 쇼케이스는 막을 내렸다.

그리고 같은 시각.

우리의 타이틀곡 ‘바람꽃’은 여전히 1위에 머물러 있었다.

*   *   *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는 아이돌 팬들은 대개 두 가지 기분을 느끼곤 한다. 오래 기다렸지만 정작 짧게 끝나버리는 본 행사에 묘한 허탈함을 느낄 때도 있고.

때로는 무언가 충만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돌아갈 때도 있다.

야심한 밤.

공연장 바깥을 나오는 이들의 기분은 대부분 후자였다.

“아까 비주 속눈썹 파르르 떨 때 봤어요? 그때 진짜 대박이었는데!”

“이거 봐요. 애들 너무 예쁘다.”

“노래 진짜 좋다. 이거 이대로 1위 계속 머무를 거 같죠? 온라인에서 머글픽, 머글픽 하던데.”

호들갑을 떨면서 SNS에서 친분을 맺은 사람과 수다를 떠는 이도 있고, 조용히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며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이도 있고.

저마다 각양각색의 모습이었지만 기쁨은 같았다.

-뉴블랙 ‘바람꽃’ 일 냈다, 7개 음원차트 ‘올킬’

-대세 넘어 이제는 톱? ‘뉴블랙’ 데뷔 10개월차 아이돌의 저력

-뉴블랙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4월’ 음원차트의 주인공 되나

음원차트 1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바람꽃에 벌써부터 연예부 언론이 시끌시끌하다.

아이돌 커뮤니티도 들썩이고 있었다.

-요새 웬만한 남돌도 진입 1위는 어려운데.. 미쳤다

-노래 들어보는데 개좋다ㅋㅋ

-퇴근길에 듣는데 뭔가 좋음

-진입도 진입인데 체감으로 느껴지는 게 큰 거 같음. 주변에 머글들이 뉴블랙 음원 나왔냐고 하는 거 개신기해

-얘네 신인 아니었나? 언제 이렇게 된 거지???

-명곡단+역사탐험대 콤보로 얼굴 확 알려지긴 했음

-ㅋㅋㅋㅋ아까 얘네 대중이 이름만 알지 팬덤 한줌단이라고 한 사람들 다 어디감?

당사자와 팬들조차 상상 못했던 성적을 거둔 뉴블랙에 대한 관심으로 곳곳이 뜨거웠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성공.

벌써부터 이번 앨범의 성공 원인을 분석한 글들도 올라올 만큼 평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수플레들은 본능적으로 지금 뉴블랙이 거둔 성공이 그들의 아이돌을 지금과는 다른 위치에 머물게 할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부터 많은 것이 달라질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데뷔 초부터 뉴블랙을 보아 왔던 팬들 일부는 미묘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품 안에 있던 작은 별이 환하게 빛나며 삽시간에 멀어지는 느낌.

그런 생각을 할 때, 각지에 흩어져 있던 수플레들의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 thenewblack.official 님이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바로 시청해보세요! 】

SNS 앱의 알림이었다.

시청을 누르자 화면에 뉴블랙 멤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희 심심해서 또 왔어요!

자기들끼리 와! 와! 하며 떠들어대는 모습에 웃음부터 나온다.

말로는 심심해서 왔다지만 누가 봐도 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기자 쇼케이스, 팬 쇼케이스 준비에, 이제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야 할 텐데.

잔뜩 피곤한 상태에서 그저 심심하다고 올 리가 없었다.

-어디 보자~ 잘 나오나~

콧노래를 부르며 앵글에 다섯 멤버 모두가 잡히는지 확인하던 우주가 환하게 웃었다.

-어떻게, 전국에 계신 수플레 여러분 지금 뭐하고 계시나요?

-이걸 보시는 분들한테 물으면 어떡해요. 당연히 지금 이걸 보고 있겠죠.

-오. 리혁이~ 확실히 설득력이…….

‘있어!’ 하면서 다 같이 외치며 꺄르륵 하는 모습에 화면 속 리혁이 뺨을 파르르 떨었다.

우주가 댓글을 슥슥 읽어보며 말했다.

-얼른 자라는 댓글들이 많네. 하지만 그럴 수야 없죠.

-맞아여. 다들 집에서 푹 쉴 때까지 있을 거예여.

주르륵 이어지는 댓글을 중현이 읽는다.

-오늘 회사에서 밤새 프로그래밍 하신다는 분도 있네요. 숙직실에서 주무실 거래요. 오, 쇼케이스 오셨는데 집이 광주…….

-캘리포니아 LA에서… 아, 살고 싶으시다고요?

-하와이 사시는 분도 있다구요?

이내 ‘부곡 하와이’라는 드립에 우주가 손뼉을 치면서 박장대소한다. 멤버들의 이해할 수 없는 눈빛.

-부곡 하와이가 뭐예요. 형?

-어? 몰라?

끄덕.

-…그, 그런 게 있어.

-댓글에 자기랑 동년배래요. 어떤 분이.

-동년배? 동년배라니요. 불어펜 불어 봤을 거 같다 어느 분이세요? …그거 어떻게 아셨지?

아는 키워드가 등장하자 형라인이 행복해한다.

-불어펜은 저도 해봤어요! 그걸로 토끼 그렸는데.

-난 그거 거꾸로 마셔봤는데.

-그거 거꾸로 하면 안 나와. 중현아.

-나오던데요.

-……?

-……?

정적이 흐르고 이내 자기들끼리 웃음을 터뜨린다.

한동안 잡담을 이어가던 우주가 손뼉을 치며 핸드폰에다 미소를 지었다.

-사실, 고맙다는 말을 또 하고 싶어서 이렇게 라이브로 찾아왔어요. 정말 감사해요.

-고마워요!

-저희가 늘 감사하다, 고맙다 이렇게 말하지만 얼마나 와 닿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이렇게 꼭 말을 하려고 해요.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좋아해요.

볼펜을 꾹꾹 눌러서 글씨를 쓰듯,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조심스럽게 말하는 우주의 모습이 눈에 박혀 온다.

다른 멤버들도 조심조심 감사 인사를 건넸다.

수많은 곳에 흩어진 수플레들이 조용히 바라보았다.

한동안 이야기를 하던 뉴블랙 멤버들이 작별의 시간을 앞두고 목을 가다듬었다.

-마무리로 노래 한 번 하고 갈까요? 저희 노래가 밤에 들으면 또 기가 막히거든요.

-일품이져.

곧이어 잔잔한 목소리들이 바람꽃을 듣기 좋게 불렀다.

집이나 다른 곳에서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는.

또는 쇼케이스를 마치고 귀가하는 사람들의 이어폰에 잔잔한 ‘바람꽃’의 멜로디가 일렁였다.

그리고, 화면을 바라보던 이들의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그려졌다.

*   *   *

분명 잘 때까지만 해도 1위 가수니까 핫하다며 이제 ‘핫핫핫!’ 웃자는 드립까지 날리며 신나게 잠이 들었는데.

“끄어어…….”

다음 날 새벽 3시에 일어나니 좀비가 되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음원사이트부터 들어가는 좀비들.

아침부터 눈이 퉁퉁 부은 사람들이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히죽히죽 웃으며 차량에 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샵에서 헤어 쌤들도 만나자마자 축하인사를 건넸다.

“1위 축하해.”

“깜사합니다… 끄, 끄, 끄.”

잔뜩 잠긴 목으로 대답했더니 막 웃으며 그냥 자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졸다가 고데기에 델 뻔하고, 물컵을 든 채로 졸고, 꾸벅 꾸벅할 때마다 음원 사이트에 들어갔다.

“끌끌끌…!”

“끄그그…!”

원석이 형이 ‘얘들 정말 괜찮은 건가?’ 싶은 표정으로 우리를 주시했다.

새벽부터 단장을 마친 우리는 꾸벅 졸다가, 깨서 끄끄끄 하다가 다시 졸기를 반복했다.

“다 왔어, 얘들아.”

상암동 K-Net 사옥의 거대한 모습이 눈에 다가왔다.

서늘한 새벽.

사녹 일정이 일찍 잡힌 편이라 오늘은 스탠바이가 빨랐다. 어둑어둑한 방송사 전경을 보니 비로소 컴백했다는 것이 실감 났다.

K-Net.

목요일에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이 방송국은 보통 아이돌이 데뷔나 컴백을 하면 가장 먼저 출연하는 곳이다.

최초 공개 타이틀에 집착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까.

자기네 방송에서 첫 무대를 하지 않으면 출연을 막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보복하는 탓에 사이가 나쁜 기획사도 꽤 많았다. 당장 TJ랑 얼마 전까지 엄청 싸우기도 했고.

레몬 엔터와도 사이가 안 좋다고 들었는데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리얼리티나 아이돌 관련 방송도 대부분 경쟁사인 HBS MTV와 진행하곤 했다.

“여기서 컴백 무대를 두 개나 한다니까 신기한 거 같아요.”

비주의 속삭임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가 이름을 알리기는 알렸던지, 마스커레이드 때만 해도 십 몇 초 짤리던 것이 무색하게 오늘은 무려 컴백 무대를 두 개나 한다.

바람꽃과 Flower Dance.

기대도 안 하고 있던 방송이었는데 어느 정도 특별대우를 받으니 신기하다고 할까.

아, 이래서 잘 되고 봐야…….

“혀, 형!”

방송국 안에 들어간 우리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어! 어!”

“야. 방이야!”

“방이에요?”

“방이다!”

맙소사.

우리 모두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대기실 문에 적힌 이름을 봤다.

『 뉴블랙 』

모두의 입에서 헛바람이 튀어나왔다.

“방……!”

“방……!”

우리 대기실이 방이라니.

방이라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