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42)화 (24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42화

“와…….”

매니저들에게 붙잡혀서 반쯤 강제로 들어갈 때까지 대기실 문에 붙은 하얀 A4 용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방이다!”

“방이야!”

그리 넓은 방은 아니었지만 방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우리가 컴백 첫 주에 방을 받다니!

새 집에 이사 온 개들처럼 동생들과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방!”

“방!”

“잇츠 룸!”

민기 형이 어이없다는 듯 웃다가 우리를 불렀다.

“와서 빵이나 먹어.”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빵!”

“빵!”

매니저 형들이 사다 준 토스트를 우물거리며 방을 둘러보았다.

스탭들이 짐을 풀고 있다. 스타일리스트들은 행거에 옷을 걸고, 헤어 쌤들은 콘센트에 기기를 연결하고 있었다.

“방이라니…….”

믿기지가 않아서 계속 두리번거렸다.

비주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형. 우리 이따가 방문에 붙은 종이 가져가요.”

“그래, 꼭 기념품으로 가져가자.”

누가 보면 방에 한이라도 맺힌 사람들인 줄 알겠지만 우리에게는 의미가 각별했다.

대개 음악방송에는 13~17팀 정도가 출연한다.

하지만 이를 모두 수용할 순 없다. 방송국 대기실 수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애초에 출연자가 열 몇 팀이나 되는 프로그램은 음방밖에 없다. 인원이 많다고 해도 보통 명곡단처럼 대여섯 팀 정도.

그러니 아무리 방이 남아돌아도 음방 날이 되면 넘쳐나는 가수를 수용하기가 벅찬 게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차가 낮거나 인지도가 낮은 출연자들은 한 공간에 수용된다.

칸막이 하나 쳐 주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사생활 오픈 수준이라 누가 얘기하는 게 다 들리기도 하고. 대기하는 동안 모두가 한데 낑겨서 자야 했다.

토스트를 먹던 민기 형이 말했다.

“컴백 첫날부터 방이라니. 신기하긴 하구만.”

“형도 적응 안 되죠?”

“어, 그래도 너희가 뜨긴 떴구나 싶다. 구석에서 자는 것도 안녕이라 좋기도 하고.”

상대가 행복한 미소를 흘렸다.

매니저들뿐만 아니라 다른 스탭들도 소파에 앉아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탭과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각별했다.

음방에서 편하게 쉴 자격을 얻는다는 건 연차가 높거나 성공을 거두었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

물론 우리도 이런 방에 처음 머무는 건 아니었다.

여유 대기실이 많은 방송국에선 방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타 선배 그룹과 같이 쓴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방은 처음이었다.

특히나 레몬과 사이가 좋지 않은 K-Net이 첫날부터 방을 준다면 다른 방송국의 반응은 안 봐도 뻔했다.

출근시간대부터 지금까지 쭉 차트 1위에 머물러 있는 ‘바람꽃’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대기실을 눈에 담았다.

“…….”

가만 생각하다가 웃음이 나왔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져 있더라는 어느 시인의 말.

그게 무슨 뜻인지 조금씩 와 닿는 것 같다.

*   *   *

명곡단과 역사 탐험대를 출연하면서 어느덧 우리의 달라진 위치를 느끼고 있었지만.

오늘만큼 격세지감이란 말이 어울리는 날이 없었다.

“……?”

컴백 사전녹화 무대를 앞두고 동생들과 다 같이 눈을 비볐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가?”

“그렇죠? 지금 나만 당황한 거 아니죠?”

“녹화 장소 확인해 봐여. 잘못 본 걸 수도 있어여.”

열린 문틈으로 엿보는데 모여 있는 수플레들의 숫자가 심상치가 않았다.

처음에는 설마 우리 팬들이야, 했는데 ‘젠민, 제임스, 대길…’ 같은 플래카드를 보니 과연 우리 팬이었다.

“와아아-!”

입장하자마자 우리를 격하게 반겨 주는 환호 소리. 무척 설렜지만 무대까지 올라가는 동안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약간의 정적.

무대에 올라가서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때였다.

“……스읍.”

나도 모르게 침이 줄줄 흘러나올 뻔해서 삼켰는데 그 소리가 고요하고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동생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고 수플레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너스레를 떨었다.

“아, 지금 ‘난 이런 거에 놀라지 않아, 대수롭지 않지’하는 컨셉으로 가려고 했는데 실패했네요.”

“올라올 때부터 동공지진 나는 거 다 보였어여. 형. 그져?”

수플레들이 웃으며 동의했다.

촬영 스탭들이 녹화 준비를 하는 동안, 팬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데,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팬들 앞에서 안 떨고 여유롭게 대화하는 나나 동생들도 적응이 안 되고.

이 인원도 적응이 안 되고.

무엇보다 늘 방송국 사람들 눈치 보기 바빴던 사전녹화 공간에서 근처 맛집 추천할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도 그렇고.

“와아아-!”

사전녹화를 몇 번이고 진행하는 동안 팬들의 어마어마한 함성을 들을 때마다 목 뒤가 쭈뼛 솟는 느낌이다.

이게 현실인가 싶기도 하고.

분명 좋아서 방방 뛰어야 하는데,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계속 눈을 멀뚱멀뚱 떴다.

“얘들아. 이거 현실일까.”

“꼬집어보기 할래여?”

“너네끼리 해 보고 결과 알려주라.”

지호와 비주가 서로의 팔을 조심스럽게 꼬집어 보더니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이다.”

“현실이에요.”

리혁이가 옆에서 일본어 교본을 읽다 말고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때 중현이가 꿈이면 꿈대로 좋은 거 아니냐 하고 주장했다.

“왜?”

“꿈에서 먹는 건 0칼로리잖아요.”

“오.”

정말 그거대로 나쁘지 않네.

그래도 나름 사전녹화를 하고 나서 이제 좀 적응이 되나 싶을 때였다.

조심스러운 노크와 함께 열린 대기실의 문.

“Fly, fly, fly to the dream!  안녕하세요! 드림티켓입니다!”

이번 달 초에 데뷔했다는 보이그룹이 인사를 하러 와서 당황했다.

CD를 주면서 뉴블랙 선배님들, 선배님들 하는데 내 손발이 다 오그라드는 줄 알았다.

여유롭게 ‘아, 네 안녕하세요’ 하면서 하긴 했는데 나가자마자 동생들이랑 ‘으아아’ 했다.

“선배 아니야……!”

“아니고 싶어!”

“으아으이이이……. 저 속이 울렁거려여.”

TNT 애들이 환영처럼 ‘저거 봐’ 손가락질 하면서 날 비웃어 대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만 같다.

어우. 아침으로 먹은 토스트가 다 울렁거리네.

왜 이렇게 선배님 하는 호칭이 적응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

지난번에 한조한테 듣기로 아이돌끼리 비공식적으로 뉴블랙 데뷔일은 3월로 치자는 합의를 봤다고 들었다. 족보가 꼬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런 이야기가 돌았다나.

그래서 호칭 자체는 뭐, 문제가 아니긴 한데.

“아으으…….”

내 손발. 내 손발……!

군대에서 일병 됐을 때는 일병님 호칭이 좋아서 밤에 자다가 히죽댔는데, 이건 왜 이리 적응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 아직 받아들이질 못해서 그런 걸까.

드림티켓 외에도 이번 달에 데뷔했다는 걸그룹 한 팀이 더 와서 인사를 하긴 했다.

“네, 안녕하세여… 요오.”

막내가 ‘안녕하세요. 왕지호입니다아.’하는 느낌으로 말을 하는 통에 우리끼리 웃음을 참았다. 상대팀이 나가고 나서 한참 동안 ‘막내에여, Yo?’ 하며 놀려댔다.

한편, 선배 호칭보다 더 적응이 안 되는 게 있었으니 바로 선배 가수들의 반응이었다.

우리 CD를 돌리려고 다른 대기실을 찾을 때였다.

“어머, 뉴블랙. 앨범 새로 나왔구나. 너희 이번 노래 느낌 있더라~”

데뷔 때는 ‘CD? 뭘 그런 걸 들고 왔니. 야. 네가 대신 받아.’ 하고 매니저에게 인상 쓰던 솔로 가수가 상냥한 표정으로 우릴 맞이하고.

“이번에 차트 1위 했던데 축하해요.”

“오, 그 드라마 카메오, 카메오 했던 사람도 있네.”

우리가 예전에는 말을 걸어도 ‘네. 네. 네.’ 하며 얼른 꺼지라는 눈빛을 보냈던 보이그룹이 먼저 친근하게 말을 건다.

“진짜 볼 때마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도 예상 못한 걸 어떻게 알았지.

“이번에도 우주 씨가 작곡했다면서요? 아, 근데 혹시 핸드폰 번호 바뀌었어요? 전에 연락처가 없어진 거 같아서.”

연락처를 교환한 적도 없는데.

“오, 번호 찍는 김에 나도 찍어 줘.”

“나도요.”

“자주 얼굴 보는 사이인데 가끔 연락해도 되죠?”

특히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옛날에 데이지가 말했던 그 말이 아닌가 싶다. 작곡돌로 잘 나갈 거 같으니까 미리미리 친분 쌓아두고 싶을 거라고.

가요계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노래가 곧 힘이니까.

“……대단하네요.”

우리끼리만 남았을 때, 리혁이가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다른 사람들인 줄 알았어요.”

2집이 잘 됐을 때도 이런 반응은 아니었는데.

워낙 이 바닥이 인기에 좌우된다지만 이 정도로 적나라하게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질 줄은 몰랐다.

되레 내가 더 민망할 정도였다.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꾸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주변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음방 스탭들도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얘들아, 너희 사인 좀 부탁해도 될까? 조카가 팬이래.”

“네네, 당연하죠!”

데뷔 초였나, 짐을 든 채 밀치면서 ‘에이 씨, 복도에서 걸리적거리게 서 있네’ 하고 투덜대던 사람이 조카 사인을 해 달라고 부탁할 때는 정말 얼떨떨했다.

대기하면서 쉴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왼쪽에선 인상 쓰고 욕하던 사람들이, 오른쪽에선 오늘 보아 왔던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들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냥 덮었다.

그저 우리 김덕순이랑 수플레들 보고 싶다는 생각만 맴돌 뿐.

-네, K넷 차트 1위는 바로!

-축하드립니다, 세레니티입니다!

금일 음방에서 1위를 차지한 그룹은 작년도에 데뷔한 MOP 엔터의 걸그룹 세레니티였다.

2주 연속 1위라던가. 이번 주가 막방이라고 들었다.

작년에 데뷔한 그룹 중에서 우리 다음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팀이었다.

그렇게 분명 1위는 세레니티가 했는데…….

“형, 사람들이 자꾸 쳐다봐요.”

“그러게…?”

음방이 끝나고 전 출연진이 복도에 일렬로 서서 피디를 알현하기를 기다릴 때, 우리를 흘깃거리는 시선이 많았다.

어째 1위를 한 세레니티나 다른 유명한 선배 아이돌보다 우리를 보는 눈이 많았다.

뭐지. 아직 노래가 공개된 지 24시간도 안 됐는데.

왜 벌써부터 이 정도 반응이 나오는지 우리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   *   *

“그럴 만도 하지.”

매니지먼트팀 사무실에 모여 앉은 우리에게 석환 형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보통 노래가 어떻게 될지 추이라는 게 있거든. 너희 바람꽃 반응이 심상치가 않아.”

“그래?”

“뮤비 조회수 봤어?”

“아니……?”

컴백 준비 기간 동안 인터넷을 안 보기 시작했더니 이제는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다.

차트나 팬카페 정도만 눈팅할 뿐.

“300만이야.”

“응……?”

“48시간 만에 그 조회수가 나왔다고. 300만.”

미튜브 3,034,612라고 되어 있는 걸 보면서 우리끼리 일십백천만… 하다가 기겁했다.

상대가 웃었다.

“홍보팀에서 분석하기로는 무조건 주간차트 1위는 할 거라더라. 속단하긴 이르지만 아마 썸씽 급으로 잘 될 거 같아. 물론 이번에는 온전히 너희 노래로만.”

“오…….”

“그러니까 관계자들도 다 냄새 맡은 거지. 괜히 그러겠어?”

멀뚱멀뚱 눈을 뜨자, 너희가 이런 쪽으론 눈치가 둔한 거 같다며 매니저가 핀잔을 줬다.

지금 팔리고 있는 앨범 판매량까지 들으면 기겁할 거라는 말에 그건 나중에 알려 달라고 했다.

“확실히 잘되긴 잘된 모양이야. 너희 스케줄 잡는 게 이렇게 수월한 적이 처음이거든.”

우리 실장님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

“5월 달 대학가 행사도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이 추세로 가면 당분간 예능도 편하게 골라서 나갈 수 있을 거 같아.”

그러면서 책상에 쌓여 있는 종이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저게 다 우리 관련한 것들이라고.

일복이 터졌다며 좋아하는데,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들뜨고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참, 스케줄표 나눠줄 테니까 이번 달 일정 참고하고. …몇 가지는 별도로 설명해줄 게 있어. 중요 스케줄 같은 경우.”

우리가 자세를 바로 하고 경청하자, 상대가 대본 하나를 슥 꺼내서 리혁이에게 건네주었다.

“PBS 뮤직온…?”

“음방도 대본이 있어여? 어? MC용이네?”

대본을 받아든 새하얀 얼굴에 어리둥절함이 감돌았다.

“실장님, 이걸 왜 저한테.”

“다음 주 뮤온에 리혁이 네가 스페셜 MC로 나갈 거야.”

“제가요?”

“피디가 너를 명곡단에서 좋게 봤다고 그러더라. 잘할 수 있지?”

리혁이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대본을 진지하게 넘기기 시작하는데, 삽시간에 귀가 벌게지기 시작했다.

“리혁아, 왜 그래?”

“이… 이거. 뭐, 뭐야. 뭐야요. 이거.”

말을 더듬는 모습에 우리가 대본을 슥 보다가 웃고 말았다.

‘누구 씨도 참, 전 얼음 왕자라구요!’ 하는 류의 멘트였다.

처음에 스페셜 MC를 한다는 말에 질시 어린 시선을 보내던 막내도 깔깔거렸다.

“와, 대박이다. 이거 방송 타면 꼭 소장해여, 우리!”

“그래그래.”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 원망 어린 시선을 보낼 때, 중현이가 대본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음? 그런데 여기 지호 씨라고 되어 있는데?”

“……?”

깔깔 웃던 지호가 급하게 정색하더니 대본을 바라보았다. 금세 심각한 표정이 됐다.

화색이 돌기 시작하는 리혁이의 얼굴.

막내가 뒷걸음질 쳤다.

“아, 아니져. 이건 아니지. 실장님, 이거 딴 지호 아니에여? 김지호라든가 신지호라든가.”

“너도 열심히 해. 지호야.”

석환 형이 대본 하나를 더 꺼내서 지호에게 건네주었다. 이 사람, 표정을 보니 즐기고 있다.

물론 나도 즐거웠다.

“푸흡.”

시공간을 초월한 멘트가 가득한 음방 대본을 보며 울상을 짓는 두 녀석에게 박수를 쳤다.

“이야, 우리 막둥이들. 이 형은 부러워서 미치겠읍니다. 나도 저런 멘트 너어무~ 해보고 싶었는데.”

“그러니까요. 형. 저도 해보고 싶었어요.”

“나도 하고 싶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에베베 하고 놀리자, 정말 꼴 보기 싫다는 표정들이 돌아왔다.

내가 한참을 웃으며 놀릴 때였다.

“참, 우주 너한테 개인적으로 들어온 지상파 예능이 두 개가 있는데. 둘 다 TBC야.”

“오오. 뭔데?”

봤니? 하고 두 동생들에게 미소를 지을 때.

“일단 사나이가 간다랑…….”

“아니.”

척주기립근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정자세로 앉은 내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실장님. 사나이가 간다라니요.”

“거기 피디님이 되게 집요하기로 유명하거든. 도씨인데 한 번 찍으면 안 놓는다고 도끼 피디래.”

“…….”

“그 사람 레이더에 네가 걸린 거지.”

화환 때부터 느끼긴 했지만 진짜 집요하다. 정체 모를 아저씨한테 노려지고 있는 느낌이야.

간담이 서늘하다. 서늘해.

“뭐, 그래도 네 의사가 가장 중요하긴 해서… 아마 음방 활동 다 끝나고 나서 녹화 들어갈 거야. 부상 우려가 있는 방송이라.”

“저기, 왜 제가 나가는 게 기정사실처럼 된 건데요?”

“팬들이 원해서?”

“무슨 소리야. 우리 팬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다가 머릿속으로 슥슥 뭔가 스쳐갔다.

-깔깔! 너무 좋다아!

-우주야! 우주야아아! 우리 군대 한 번 더 다녀올까나~~?

-꺄르륵!

-부상 우려가 돼서 걱정이긴 하다. 어떡해…….

-입 가리고 있는 손 내려봐요. 저저 웃고 있네.

-들킴ㅋ

같은 댓글이 왜 그려지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석환 형이 태블릿 PC를 톡톡 치고는 어느 수플레의 SNS 글을 보여주었다. 우리 팬 쇼케이스 때 화환들 중 사나이 팀의 질척대는 멘트가 적힌 사진.

-오. 뉴블랙 사나이가간다 나가나?

-사간 출연??

-사간 나가는구나

-헐.. 이거 왜 나가지..

-굳이 나가야 싶긴 한데 흠..

-언제 나가지?

댓글을 보며 외치고 싶었다.

안 나간다고요! 안 나가!

SNS 화면을 옆으로 슥 넘기자, 기사 창들이 떠올랐다.

-뉴블랙 우주, ‘사나이가 간다’ 출연? 제작진 “아직 말씀드릴 수 없다”

동생들이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고 있다.

내가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실장님. 설명을 해 줘요.”

“일단 진정해. 우주야.”

“제가 진정하게 생겼어? 아니, 군대를… 군대를…….”

흥분하는 내 모습에 상대가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이게… 내가 한 게 아니고. 그, 너희 팬 있잖냐. 수플레가 올린 SNS글을 보고 막 일파만파로 퍼져 나간 거야. 나가냐? 하다가 나간다! 가 된 거지.”

“서동요 같은 거네요.”

“그렇지.”

서동요 드립을 친 리혁이를 째려보자 슥 시선을 피했다. 동생들이 박장대소를 하는 동안 석환 형이 말했다.

“피디님이 네가 주세한에서 삽질하는 거 보고 그날부터 출연할 운명이라고 느꼈다고 전해달래.”

“……아으.”

“이건 좀 더 생각을 해 볼래?”

내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군대 예능은 생각해 볼게.”

“형.”

막내가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그냥 나가여. 가서 군필자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는 거져. 이 시청자들아! 내가 바로 대한민국의 군대다 이러구.”

“눈 딱 감고 나가요. 뭐, 재미있을 것만 같구만.”

푸흡 하는 두 녀석을 지그시 바라보던 내가 석환 형에게 시선을 돌렸다.

“뉴블랙 멤버 전원 출연 조건으로 나가도 되나?”

“오,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네.”

“…실장님?”

“실장님. 그게 무슨 소리예여?”

하지만 이미 메모를 하는 석환 형을 말릴 순 없었다. 창백하게 질린 동생들을 보며 내가 푸근하게 웃었다.

“형은 절대 혼자 죽지 않아.”

“…….”

“물에 빠져도 너희 다 붙들고 들어갈 거야. 내가.”

“…….”

동생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부터 ‘실장님, 제발 저희 형 군대 보내지 말아주세요.’ 하는 아우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처절하게 애원하는 동생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곤 본론으로 돌아갔다.

“참, 그 나머지 뭐냐. 다른 TBC 예능 그거는 꼭 나갈게.”

“뭔지는 안 물어봐도 돼?”

“일단 나가야지. 3집 홍보도 하고, 포맷이 뭐든 무슨 상관이야. 나가서 열심히만 하면 되는걸.”

지상파 예능이니 케이블처럼 이상한 것도 없을 테고.

“그렇구나.”

석환 형이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근데 왜 저 미소가 불길하게 느껴지는 걸까.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서랍에서 따로 준비된 기획안이 튀어나왔다.

“…….”

제목에 큼지막하게 적혀진 <신개념 토크쇼 : 기억을 찾아줘>라고 되어 있는 제목이다.

알고 있는 예능이었다.

동생들이 그걸 보자마자 감탄했다.

“아, 이거.”

“이거 그거잖아요. 약점 공개방송.”

“허, 그러네. 왜 여태까지 우주 형 이거 내보낼 생각을 못하고 있었을까여?”

이른바 ‘신토끼’라고 불리는 TBC의 토크쇼는 게스트를 불러놓고, 과거 이야기를 하는 방송이다.

얘가 어땠는지 학창시절이라든가 과거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내가 물었다.

“흑역사 공개하는 방송이잖아. 이거.”

“그렇지.”

내 표정이 착잡하게 물들어가는 가운데 동생들이 신이 난 호두까기 인형처럼 수다를 떨었다.

안 나갈 수도 없는 게 이거 시청률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인기 예능이라 아무나 불러 주는 게 아니기도 하고.

제목에 ‘보이그룹 리더 특집’이라고 되어 있는 기획안을 바라볼 때, 석환 형이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 누굴 내보낼까 직원들끼리 고민을 했는데, 1초도 안 지나서 결론이 나왔어.”

“…….”

“너만한 적임자도 없을 거라고.”

옆에서 동생들이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흑역사를 축하합니다~’ 하며 해맑게 노래를 불러 댔다.

석환 형도 손뼉을 쳐주며 흐뭇하게 웃었다.

“…….”

진짜 이 순간만큼 주변 사람들이 얄미운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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