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43)화 (24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43화

그나저나 이거 나가도 괜찮나?

아니. 뭐, 내 과거에서 나올 만한 일이라고 해 봐야…….

유치원, 초등학교가 있고.

중학교 때부터는 TJ 엔터가 세상의 전부였으니 연습생 시절이랑 군대 정도.

거기서 나올 만한 껀덕지를 하나씩 손가락으로 세어 보다가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노다지네. 이거.

TJ 엔터 때만 따져도 화수분이었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인물도 수십 개는 알고 있을걸.

“……형.”

옆에서 여전히 ‘우리 우주 흑역사의 날 축하해~’ 하는 동생들을 무시하며 매니저를 불렀다.

시선이 돌아온다.

“왜?”

“이미 출연한다고 얘기한 거지?”

“당연하지. 신토끼 시청률이 얼마인데. 이만큼 화제성이나 파급력 높은 프로그램도 없잖아.”

그건 맞다.

‘신개념 토크쇼 : 기억을 찾아줘’의 포맷은 간단하다.

출연자의 흑역사를 아는 사람이 음성 변조된 목소리로 폭로를 하고, 그에 대한 당사자들의 반응과 토크로 재미를 뽑는 식이다.

늘 고고하게 보이던 영화배우들이 벌건 얼굴로 일어나고 차가운 컨셉의 연예인들이 귀엽게 망가지는 방송.

인기가 없을 수가 없는 포맷이다.

누가 나왔다 하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

시청률도 양호하고, 화제성은 그보다 훨씬 좋고. 출연자들에게도 득이 되는 방송이었다.

대중에게 비호감으로 유명했던 중견 배우가 친근함과 인간미가 돋보이는 편집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던가.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제일 나가고 싶어 하는 프로가 신토끼였다.

그리고 지상파 예능이라는 게 중요했다. 3집 홍보할 기회.

“가야지.”

체념한 내 표정에 동생들이 ‘와아!’ 하면서 새로운 노래를 시작했다.

내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 말을 한 마디라도 하는 사람은 나와 함께 4집 타이틀을 작업하게 될 거야.”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기획안을 훑어보며 질문했다.

“그래서 여기에 누가 나오는 건데?”

“아, 그거.”

곧바로 석환 형이 톡으로 출연진 리스트를 보여주었다.

이른바 ‘보이그룹 리더’ 특집.

“다 아는 사람들이네.”

스트릿 보이즈, 와일드, TNT, 틴스피릿. 머릿속으로 리더들의 면면이 하나씩 그려졌다.

대충 방송 흐름이 어떨지 짐작이 갔다.

아직 어색한 사이도 있지만, 그래도 친한 사람이 하나 끼어 있어서 외롭진 않겠다 싶었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컴백 주 주말에는 여의도 쇼핑몰에서 공개 팬사인회를 진행했다.

“와아아아-!”

생각보다 인파가 많아서 당황했다.

우리 팬들도 많았지만,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지를 않았다.

우뚝 멈춰서 입을 가리며 소곤거리는 커플도 있고, 스마트폰을 머리 위로 들고 찍는 대학생들도 있고, 아들딸을 목에 건 채 구경하는 가족들도 눈에 들어왔다.

위층 난간에 빼곡히 늘어선 사람들이 팬사인회가 진행되는 내내 우리 얼굴을 구경했다.

“뉴블랙…….”

“…뉴블랙…….”

“……노블랙이구먼. 헛헛.”

마치 볼드모트의 목소리처럼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뚫고도 우리 얘기가 귓가에 들려왔다.

확실히 바람꽃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팬사인회가 끝나고 지나가던 뷰티샵 매장에서 우리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연예IN의 오 기자님과 만나 인터뷰하는 카페에서도 바람꽃이 나왔고.

편의점에서도 바람꽃이 나왔다.

미튜브에서 바람꽃 무대를 검색하다 보면 벌써부터 솔로곡으로 커버 노래를 부른 영상도 수십 개였다.

“바람꽃~ 오 머니 플라워~ 돈돈돈~”

심지어 우리 대표님도 바람꽃을 개사해서 흥얼거리는 모습을 우연히 보기도 했다.

3집이 발매된 이후로 우리를 보물 고블린처럼 바라보는 대표님이었다.

회사 직원들도 비슷했다.

커피 박스를 들고 방문할 때마다 전화기에서 불이 났다.

“아, 뉴블랙이요? 잠시만요, 저희 스케줄 확인해야 돼서… 지금 행사가 6월까지 꽉 찼거든요.”

“예예, 알겠습니다. 뉴블랙 담당 실장님한테 전달 드릴게요.”

“협찬은…….”

“어, 너희 왔구나?”

부서 가릴 것 없이 우리를 반겼다.

아마 3집 앨범이 나오고 회사 직원들에게 밥을 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우리 때문에 일 많아진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홍 대리님이 손사래를 치면서 좋아했다.

“이렇게 일이 많아지는 건 괜찮아. 논란이나 사고 수습해야 되는 일이 힘든 거지, 이런 건 할 맛이 나거든.”

“그거 인정이지. 어우, 똥… 아니, 사고 수습하는 건 진짜…….”

얼마 전에 회사 아역 출신 배우가 ‘이제 성인 됐으니 토렌트로 19금 영화 다운도 받을 수 있다! 히힛’ 하는 SNS를 올렸던 때는 정말 아찔했다며, 그에 비하면 천국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A&R팀도 덕분에 성과급 두둑이 나오겠다며 좋아하기도 했고.

3집 앨범의 성공으로 회사 사옥에 훈풍이 돌고 있었다.

모두를 기쁘게 하고 있는 ‘바람꽃’은 차트 1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간혹 인기 가수들의 음원 출시로 실시간 2~3위로 내려가기도 했지만 꿋꿋이 일간 1위를 고수하고 있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일반 대중이 유입되면서 탄력을 받아 상승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음반 시장에서도 반응이 오고 있었다.

“참, 너희 해외 음반 차트에도 이름 올라간 거 알아?”

“저희가요?”

“대만이랑 싱가포르부터 해서 차트 순위권에 있더라.”

우리가 해외 프로모션을 한 곳들을 포함해 해외 메인 음반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홍콩,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음반차트에서 1위부터 10위 사이에 머물고 있었다.

해외 반응이 꽤나 좋은 모양이다.

하긴 뮤비 조회수만 해도 삼백만, 사백만 하는 식으로 쭉쭉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평소 아이돌과는 거리가 먼, 우리 가족들도 이런 음반의 인기에 대해 말할 정도였다.

갓덕순 [야]

갓덕순 [그 앨범 언제 오냐 구할수가 없어]

갓덕순 [비주네 엄마가 다섯 곳을 돌았다더라]

갓덕순 [이건 오늘거 나비사진]

새로 나온 앨범 언제 보내 줄 거냐는 할머니의 재촉에 내가 물었다.

나 [곧 보내줄 거야]

나 [우리 나비 존예시다 >ㅂ<]

나 [근데 무슨 얘기야 할머니??]

나 [우리 앨범을 구할 수가 없다니?]

*   *   *

서점에 있는 음반판매점.

기대감을 잔뜩 품고 있는 김비주의 가족에게 점장이 말했다.

“뉴블랙 앨범이요? 최근 건 지금 재고가 없어서… 아마 내일 또 들어올 거예요.”

“……그래요?”

재고가 없다는 말에 설레는 가족들. 김비주의 엄마가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그게 그렇게 금방 팔리나요?”

“예, 요새 뭐. 희한하게 물량이 빠르게 빠지더라고요. 물량 풀리는 건 적은데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야 하나……. 얘네 회사에서 이 정도로 팔릴 줄 몰랐나 봐요.”

팬들이 들었다면 ‘규호야!’가 절로 나왔을 만한 이야기였지만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이야기에 그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미니 2집이 있었다. 발매되자마자 아들이 먼저 보내 주었으니까.

처음에는 판매량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음반을 사보려고 한 일인데, 이제는 재미가 붙었다.

그들은 개운한 얼굴로 서점을 빠져나왔다.

“우리 아들 거 엄청 잘되나 보네.”

“여보, 우리 자식 농사 성공했나 봐요.”

“성공이 아니에요.”

“그럼?”

“이건 대성공……!”

“대성공…!”

흐핫 하면서 꼭 껴안는 부모님을 보며 장녀와 차남이 고개를 저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던 민준이 누나에게 말했다.

“근데 요새 학교에서 뉴블랙 엄청 얘기하긴 해.”

“그래?”

“응응, 막 다른 아이돌 얘기하던 애들이 뉴블랙 얘기하면서 막 어떻다고 그러는데 음…….”

“뭐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

누나의 물음에 동생이 시무룩한 얼굴로 답했다.

“조금 기분 나쁜 얘기들이 많아서. 그런 얘기 안 했으면 좋겠는데…….”

“뭐야. 누가 비주 욕했어?”

어디 내 동생을, 하면서 성을 내려던 김비연은 이어지는 말에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우리 형이랑 결혼할 거라고.”

“푸흡-!”

“자꾸 뉴블랙이랑 결혼해서 월화수목금 별로 데이트 할 거라고 하는 애가 있어. 특히 형은 금토일 남편이라고.”

“내가 미치겠다. 진짜.”

이번 앨범의 주인공을 맡아서 그런지, 비주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미주알고주알 학교에서 있었던 뉴블랙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동생을 바라보며 비연이 미소를 지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다.’

저렇게 해맑게 소년소녀처럼 웃는 부모님도 좋고, 이렇게 건강한 얼굴로 학교 얘기를 조잘조잘대는 동생도.

주말 나들이를 나오는 이런 모습까지, 모든 게 좋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뉴블랙 멤버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마운 사람이야.’

그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지금쯤 어떤 모습이었을까. 머릿속으로 상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비연이 입술을 뗐다.

“엄마, 아빠.”

“음?”

“우리 선물 좀 살까? 우주부터 시작해서 멤버 애들 다 고생했는데.”

“그래! 사자! 사!”

이윽고 그들이 멤버들에게 살 선물을 정성스럽게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중요한 인물.

“우주 선물은 뭘로 하지……?”

“뭐 좋아한다고 했지? 할머님?”

“삼겹살? 돼지 꿈 자주 꾼다며.”

“……어, 그. 그 있는데, 비주가 전에 보내 준 거.”

비연이 스마트폰 톡으로 동생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매일 장문으로 안부 편지를 보내는 통에 올라가느라 한참 걸렸다. 이윽고 김비연의 눈이 반짝였다.

“찾았다…!”

“뭔데?”

가족들이 핸드폰 앞에 한데 모였다. 까치발을 든 동생을 위해 핸드폰을 낮춰 주었다.

이윽고 가족들이 ‘아, 맞다!’ 하고 외쳤다.

“……!”

동시에 그들의 눈이 근처에 있는 중년 남성복 매장으로 향했다.

*   *   *

“하하하! 하하하!”

새벽부터 울려 퍼지는 내 웃음소리에 동생들이 꼴 보기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뭘로 입을까? 뭘로?”

거실에 모여 앉은 동생들에게 옷걸이 여러 개를 몸에 대어 가며 물었다.

비주네 가족이 보내 준 하와이안 셔츠들이었다.

“이게 바로 우리 비주네 가족이 보내 준 사랑스러운 하와이안 셔츠다, 이거야. 봐봐. 블루 계열에 꽃무늬가 알록달록 수놓아져 있죠? 하핫!”

너무 좋다.

꽃무늬란 꽃무늬는 다 압수당했는데 이제 더 이상 안 뺏길 옷들이 생겼다니.

“…….”

모두의 시선이 비주에게 향하자, 비주가 ‘내 죄가 크구나…’하며 반성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동생들이 가장 낫다고 평한 파란색 꽃무늬 셔츠를 입었다.

“어때?”

샵으로 향하는 동안 지호에게 의견을 구했다.

“음, 약간 어린 나이에 조직을 물려받은 도련님 같아여. 왜 영화에 보면, 얼굴에 흉터 가득한 오른팔 아저씨한테 통수 맞아서 일찍 퇴장하는 역할 있잖아여.”

“…….”

“그거 아니면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미남 횟집 사장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래도 여태까지 입은 꽃무늬 중에서는 가장 반응이 좋은 거 같다.

샵 선생님들도 드디어 괜찮은 꽃무늬가 등장했다며 놀란 눈길을 보내기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혹시 무대까지 가는 건 아니지? 하면서 계속 확인을 하기에 걱정 말라고 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후우…….”

방송국으로 향하는 차량에서 손을 비비며 침을 꿀꺽꿀꺽 삼키는 멤버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떨려?”

“쇼케이스 때 울 거 다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봐요.”

비주가 말했다.

“오늘 우리가 1위 할까요?”

컴백 첫 방송 후 일주일.

바로 우리가 바람꽃으로 첫 1위 후보에 오른 기념비적인 날이다.

“아마 1위 할 거 같아.”

썸씽 때처럼 역대급 성적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1위가 확실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만 이렇게 너무나 당연하게 트로피를 챙기러 가는 스스로에게 적응이 안 될 뿐.

“이거 진짜 꿈 아닐까요.”

중현이가 창밖을 지나는 차를 보며 말했다.

“요즘 느끼는 건데 정말 현실감이 없는 거 같아요.”

“나도 그래요. 자다가 중간에 깨서 차트 확인하고 다시 자고 그런다니까요. 차라리 꿈이라면 안 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두 그래여.”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몇 년은 지나고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2년 차에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더 이상 우리를 신인이라 부르는 사람이나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뜨고 있는 대세 그룹을 꼽으라면 누구나 우리 이름을 말하는 상황이다.

TV를 틀면 우리 노래가 나오고, 방금도 라디오에서 바람꽃이 흘러나왔다.

막내가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이러다가 우리 이제 1위 해도 느낌 없어지는 거 아니에여? 그럼 진짜 큰일인데.”

*   *   *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도착하자마자 음방 내에서 진행하는 별도 코너의 VCR도 찍었다. 1위 후보가 소개해 주는 금일의 출연자들 같은 식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1위 후보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기에 고맙다고 답례를 했다.

수플레들도 사전녹화를 하는 내내 기묘한 열기에 젖어 있었다.

매니저 형들도 ‘케이크를 뭘로 준비해야 하지?’ 하며 고민하는 눈치였고, 평소 음방 스케줄에는 따라오지 않는 우리 실장님도 특별히 행차하셨다.

모두가 들떠 보였다. 우리만 빼고.

“왜 이렇게 덤덤하지.”

“저두여. 저두. 막 떨려야 하는데 되게 차분해여.”

리허설을 할 때도, 생방송 무대에 설 때도 심박이 일정 이상으로 뛰지 않았다.

차분하다.

오히려 우리와 함께 1위 후보가 된 보이그룹 판타니스가 더 떨려 하는 거 같다.

예전에 우리가 가을소녀가 음방에서 하차하면서 어부지리로 1위 후보에 이름을 올렸듯이, 저쪽도 지난 주 1위 가수들이 하차하면서 후보로 올라왔다.

그 모습에 작년의 우리가 겹쳐 보였다.

“올라갈게요!”

마지막 무대의 사전녹화 분량이 흘러가는 동안 가수들이 우르르 무대 위로 올라갔다.

MC들 양옆으로 우리와 판타니스가 섰다.

맨 앞줄에 서 있자니 객석 곳곳에서 1회용 야광봉을 흔들고 있는 우리 수플레들이 보였다.

손을 흔들어 주며 웃었다.

-네, 이제 1위 발표의 시간만을 남겨두고 있는데요.

-자, 그러면 점수 확인할까요?

MC들의 멘트와 함께 전광판 화면 위로 점수가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했다.

-네, K넷 차트 1위는 바로!

-축하드립니다, 뉴블랙입니다!

파앙- 하는 소리와 함께 금박이 하늘에서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1위가 확정된 그 순간.

“우와!”

“우아아!”

됐다! 됐어!

소리를 지른 건 우리 수플레들도 아니고 우리였다. 저마다 주먹을 꽉 쥐고 외치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고 흠흠 했다.

MC들이 꽃다발과 트로피를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축하해요. 1위.”

동생들에게 트로피를 건네자, 하나씩 차례차례 만져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중현이에게 잠시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네, 박규호대표님조규환이사님윤석환실장님…….”

빠른 랩처럼 지나가는 인사를 마치고 나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어우, 왜 갑자기 떨리지. 또.

분명 1위 발표 나기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갑자기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어, 저희…….”

목소리는 또 왜 떨려나오는 거야.

“저희가 1위를 했네요. 네, 1위. 진짜 1위.”

나 뭐라는 거야.

분명 소감을 수백 개는 생각해 뒀는데 하나도 생각이 안 났다. 동생들에게 마이크를 건네서 위기를 모면할까 생각했는데.

……우네.

우는구나. 이놈들.

소리 없이 트로피를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우리 애들 때문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특히 지호는 이미 콧물까지 쏟아 내고 있었다.

난처하다.

뭐라고 말하지. 다 까먹었는데.

결국 생각나는 대로 소감을 다시 말했다.

“가끔 꿈이어도 깨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지금 같아요.”

객석과 카메라를 보며 웃었다.

“이런 꿈같은 시간을 선물해 준 수플레들 고마워요. 앞으로 저희도 우리 뉴블랙의 시간을 꿈처럼 만들어 드리기 위해 노력할게요. 사랑합니다!”

-와아아!

동생들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눈물바다가 된 녀석들이 흐흑, 흐으윽… 하면서 소감을 떠듬떠듬 말하기 시작했다.

“고, 고맙… 흐흑!”

마이크를 들고 ‘고맙…흐흐흑… 스읍니다’ 하는 비주의 목에 팔을 두르며 웃었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중현이도 촉촉한 눈으로 소감을 말하고, 지호는 아예 말하다가 ‘흐흑… 하핫’ 하면서 울다가 웃는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금 전까지 차분하다고 주장한 녀석들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대를 내려가는 다른 사람들한테 감사하다고 말하는 동안 리혁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정말, 3집 앨범을 준비하면서도 이런 순간이 올 줄은 몰랐는데…….

리혁이가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울먹이는 새하얀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수플레. 그리고 우리 멤버들…….

우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볼 때, 리혁이의 말이 이어졌다.

-늘 고맙고 좋아해요. 내가.

중현이가 트로피를 떨어뜨렸다.

내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제기 차기처럼 구부린 다리에 안착한 트로피를 다시 붙잡았다.

하지만 차분히 반응하는 몸과 달리 입은 떡하니 벌려져 있었다.

“…….”

이내 서로를 쳐다본 우리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쟤 지금…….’

‘방금 뭐라고 한 거죠?’

1초 동안 방금 일어난 일을 머릿속으로 받아들인 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리혁이에게 달려갔다.

“리혁아아아!”

“그래! 네 속마음은 그럴 줄 알았어!”

“저도 좋아해여, 형!”

앵콜로 바람꽃의 전주가 흘러나오는 동안, 우리는 품에서 버둥거리는 누군가를 한동안 껴안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뉴블랙의 1위를 보면서 누군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핫핫핫!”

골프채로 퍼팅 연습을 하다가 광소를 터뜨리고 있는 중년인.

“핫핫핫!”

작곡용 장비를 구매할 때 달달 떨렸던 몸이 지금은 다른 의미로 떨리고 있었다.

남자의 머리와 눈이 흥분으로 반짝였다.

‘돈 넣었더니 돈 나왔다……!’

바로 다가올 돈벼락을 예감하며 행복함을 느끼고 있는 레몬 엔터의 박규호 대표였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