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44화
@The_New_Black_Official
(가운데서 트로피를 들고 부끄러워하는 리혁과 행복하게 웃는 멤버들의 사진)
[ ‘바람꽃’ 첫 1위! 우리 수플레 고맙고 너무 사랑해요!!!!
#많이_좋아합니다 #내가 ]
* * *
돌아가는 차량 안.
1위의 기쁨을 나누며 한참을 떠들던 우리가 막내를 채근했다.
“지호야, 지호야. 그거 해봐. 그거.”
“잠시만여. 으흠흠…….”
“아, 하지 마요! 하지 마! 하면 나 가만 안 있어!”
리혁이가 손을 뻗어 입을 막으려고 하자, 중현이 뒤에 숨은 지호가 얄밉게 누군가를 따라했다.
“여러부우운~ 마니 조아해여~”
“누가?”
“내가~!”
“푸하하!”
우리가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오! 우리 리혁이 너어무~ 귀엽다! 깔깔깔!”
“흐하핫! 이거 너무 재미있어요, 형!”
“오. 리혁이 귀 색깔 핫핑크 됐다.”
과부하가 걸린 증기기관처럼 리혁이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진짜 이 돼먹지 못한 인간들,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 해 줬다고 이제 내가 우스워요? 우스워?”
“야. 리혁아. 방금 말은 좀 서운하다. 네가 우습냐니.”
우리가 잔뜩 서운한 표정을 짓자 리혁이가 멈칫했다.
“그건…….”
“…….”
“정답이야~!”
다시 한번 신이 나서 풍악을 울려댔다.
“깔깔깔!”
“꺄꺄!”
“……에휴.”
아. 너무 재미있어.
이걸로 1년은 울궈 먹어야지.
* * *
『 오늘 음방 1위한 뉴블랙 1위 소감 』
[ 너무 참신한 개판이라 영업하려고 가져옴 ㅋㅋㅋㅋㅋㅋ
(첨부 동영상)
* 타덕들을 위한 상황설명
1) 저기 하얗고 턱 뾰족한 애가 리혁. 멤버들에게 애정표현 안 하기로 유명한데 ‘좋아해요’ 고백
2) 멤버들 충격과 공포
3) 놀란 중현이(대길이 친구 걔 맞아!)가 트로피 떨굼
4) 우주가 그걸 제기차기처럼 촙 받아버림
5) 그 와중에 ‘수플레들에게 꿈 같은 시간’이라고 해야 하는데 ‘뉴블랙에게 꿈 같은 시간’이라고 말실수한 우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뭐야ㅋㅋㅋㅋㅋ
-ㅋㅋㅋㅋ얘네 너무웃겨
-진짜 개판이다ㅋㅋㅋㅋㅋ 울고 껴안고 떨어뜨리고 춤추고ㅋㅋㅋ
-그 와중에 앵콜무대는 잘하네
-촙 하고 트로피 받을 때 옆에 여돌들 표정 개웃김
-동공지진ㅋㅋㅋ
-??? : 저걸 받는다고..? (웅성웅성)
-트로피 : 와. 이걸 살리네
-바닥 : 와 저게 안 떨어지네
-춤도 겁나 잘 추던데.. 몸 전체를 잘 쓰는듯. 쟤가 돌림픽 주몽이지?
-ㅇㅇ 규호가 연성한 비밀병기 드립 한창 나왔었음
-과연 레몬 엔터..
-1위(물리)
-ㅁㅊ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뉴블랙이어서 다행이네. 스칼렛이엇으면 일격에 트로피가 박살낫을것
-데이지 : 대표님 트로피에요. (고운 가루)
-운동신경 진짜 좋네. 원래 저렇게 막 촙찹칩찹 저렇게 잘 받아???
-숯불인데 우리도 몰라..
-근데 더 이상 신기하진 않음
-ㅇㅇ 그저 덕질하는 매순간 순간이 놀라움의 연속일뿐..
-소감 실수도 웃김ㅋㅋㅋㅋ 팬들한테 우리 행복해지겠다고 선포한 거자너ㅋㅋㅋ
-뉴블랙 :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가 행복해질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1위를 하고 축하인사가 정말 많이 들어왔다.
평소 알고 지내던 연예인들이 SNS로 축하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하고, 저마다 지인들로부터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전화가 쏟아졌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음방이 끝나고 돌아오니 우리와 친한 직원들이 케이크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뉴블랙의 1위를 축하해요.”
“누가?”
다 함께 외쳤다.
“우리가!”
“푸하핫!”
“리혁아! 리혁아, 어디 가니! 초는 불어야지!”
중현이 손에 붙들려 돌아온 리혁이가 괴롭다는 듯 얼굴을 감쌌다.
“……다들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리혁아! 얼른 불어!”
그래도 케이크 초를 혼자 불라고 해주니 내심 좋아하는 눈치였다.
불 붙은 초에다 후우우- 열심히 불어 대는데, 마치 할아버지가 후우 부는 빨대처럼 힘이 약했다.
“리혁아. 한 방에 꺼야지. 메인 보컬이 폐활량이 약하면 어떡하니?”
“침 튈까봐 그러죠. 스으읍- 흣! 흣!”
계속 흔들리기만 하는 촛불. 보다 못한 중현이가 나섰다.
“내가 할게.”
박수를 짝 치자 수많은 초가 추풍낙엽처럼 꺼져 버렸다.
다 같이 흐느끼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축하 인사에 우리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행사가 마무리 될 때쯤, 저녁 식사를 사 주기 위해 대표님이 직접 내려오셨다.
“핫핫핫! 아이고, 얘들아! 고생했다!”
행복한 웃음을 터뜨리던 대표님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근처 소고깃집이었다.
곳곳에서 나는 고기 굽는 냄새와 신나는 웃음소리.
내 입으로 쌈이 쉴 새 없이 흘러들어왔다.
“우리 우주. 꼭꼭 씹어 먹어라.”
대표님이 자꾸 쌈을 건네주시면서 흐뭇하게 웃으시는데, 마치 1++급 한우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우리 우주, 필요한 건 없니? 작곡하는데 애로사항 같은 건 없고?”
“어… 네.”
“필요한 거 있으면 편하게 말해. 미리 카드 꺼내 놓고 있을 테니까. 핫핫핫!”
대표님이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 처음이다.
그래도 식사를 하는 내내 ‘핫핫핫!’ 웃음을 터뜨리신 덕분에 회식 분위기가 엄청 좋았다.
“형, 여기 쌈 좀 먹어요.”
“고마워.”
비주가 건네준 쌈을 집어 먹는 한편, 머릿속으로 혹시 뭐 필요한 건 없는지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바. 누가 뭘 해 준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운을 띄워야 효과가 있다.
하지만 딱히 필요한 게 없었다.
작업실 환경도 너무 좋고, 숙소도 좋고. 밥도 맛있고.
신경 쓰인다면 수플레들인데…….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다.
오늘 1위를 했을 때 객석에서 야광봉을 흔들던 수플레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쯤에서 한 번 물어봐도 나쁘지 않겠지.
“대표님.”
“그래, 그래. 우리 우주 다 말해 봐.”
“그, 혹시 저희 응원봉은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여쭤 봐도…….”
이런 프로젝트는 적잖은 돈이 들어가는 까닭에 조심스러웠다.
특히 이번에 미니 2집을 제작할 때 돈을 원 없이 펑펑 썼으니까.
오죽하면 대표님이 회사 기둥 하나는 뽑아서 팔았을 거라는 웃픈 농담이 돌 정도였다.
남들 응원봉 만들 때 쓰는 돈이 우리는 모두 앨범에 들어간 터였다.
“응원봉?”
대표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곤 맥주 한 잔을 걸치던 조 이사님을 불렀다.
“조 이사, 지난번에 만들었던 응원봉이…….”
“그거 스칼렛 애들 봉이었습니다.”
“그렇구만. 뉴블랙은 아직 없었네.”
마침 얘기가 잘 나왔다는 듯 조 이사님이 말을 시작하면서, 동생들의 귀가 쫑긋했다.
“여름에 단독 콘서트도 있고. 그때 맞춰서 출시하려고 계획을 잡고 있었어요.”
“비용은 말만 해. 다 결재할 테니까.”
통 크게 지르는 대표님의 모습에 내가 동생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박수.’
‘네.’
‘환호도 같이.’
동생들이 손뼉을 치며 ‘와아아!’ 분위기를 띄웠다.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멋있으세요!”
“정말 대표님이 최고예여!”
“핫핫! 아니, 뭐 그럴 필요까지야.”
중현이가 ‘대표님’ 하고는 엄지를 슥 들었다.
그러곤 다른 손도 들어 쌍따봉을 만들어 보이자, 대표님이 잇몸이 만개한 웃음을 터뜨렸다.
조 이사님은 옆에서 슬쩍 웃으며 맥주를 들이킬 뿐.
“핫핫! 응원봉에 필요한 거 있으면 다 말해, 다! 기왕 만드는 거 최고 성능으로 해야지.”
“네, 다 말할게요!”
우리가 흐뭇하게 웃으며 대표님에게 쌈을 드릴 때였다. 대표님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쳤다.
“기왕 하는 거 이름도 예쁘게 지어줘야지. 랙봉 어때, 랙봉? 핫핫핫!”
“……!”
조 이사님이 맥주를 주루룩 도로 뱉었고, 홍보팀 직원들의 젓가락이 일순간 정지했다.
로드 매니저들도 고기를 굽던 집게를 놓쳤다.
그 와중에 우리 윤 실장님은 감탄했다는 얼굴로 대표님의 술잔을 채워주고 있었다.
대표님이 농담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농담이야. 세상에 누가 랙봉 같은 이름을 짓나.”
“하하. 하하하!”
다들 안심한 얼굴로 웃을 때였다.
“우리는 신선하게 봉봉 어떤가, 봉봉?”
“…….”
“아님 하나로 줄여서 뿅? 뿅망치? 아님 뉴뵹… 눈뽕? 요즘 친구들 유행어 중에 그런 말이 있지 않나? 그 이름처럼 한 번 밝고 환하게 가볼까?”
“…….”
홍보팀 직원들이 소주를 연거푸 원샷으로 들이키기 시작했다.
조 이사님은 빈 잔에 술을 채워 줄 뿐.
한때 그룹명 후보로 레몬 보이즈와 플라잉 앤젤스가 있었던 걸 본 사람으로서 저 반응이 십분 이해가 됐다.
내가 웃으며 대표님에게 운을 띄웠다.
“대표님.”
“그래, 우주. 하고 싶은 말이 있니?”
“혹시 괜찮다면 저희 멤버들이 아이디어 내고 그래도 될까요? 저희가 도안을 만들어 보는 식으로요.”
흥미롭게 듣고 있는 대표님 뒤에서 직원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마치 골대 앞까지 드리블을 하는 축구선수를 응원하는 듯한 얼굴들.
내가 말을 덧붙였다.
“저희가 주도적으로 하면 팬분들 보기에도 좋고, 같은 디자인이라도 만족도가 더 높을 거 같아서요.”
“흐음. 그렇지. 너희가 만들었다고 하면 확실히 불만이…….”
대표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 넘어온 상태에서 직원들이 ‘힘내! 어서!’ 하는 눈빛을 보내는 통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내가 결정적인 한 마디를 꺼냈다.
“이번에 스트릿 보이즈 측 소문을 들어보니까, DNS 미디어에서는 직접 도안을…….”
직원들이 소주 대신 사이다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바로 그거다’ 하는 표정을 지었다.
“DNS에서 그렇게 한다고……?”
‘현식이 그놈…’ 하며 중얼거리던 대표님이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우주야.”
“네, 대표님.”
“원하는 거 있으면 다 해 봐라. 내가 팍팍 밀어주마. 응원봉에서 불꽃 나오게 해 줄까?”
“응원봉에서요…?”
응원하기 시작하면 앞 사람이 사라지는 마법의 화염방사기.
두 명이 들어가서 한 명만 살아나온다는 뉴블랙 공방, 그런 영업 문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표님의 눈이 불꽃처럼 이글거린다.
경쟁사에 대한 발언이 먹혔던지 대표님이 너희가 한 번 주도적으로 제작에 참여해 보라며 승낙해 주셨다.
꽃등심을 원수의 쓸개처럼 씹으며 대표님이 콧바람을 내뿜었다.
“내가 임 대표 그놈을 알아. 주도적이긴 무슨, 분명 도안 그리라고 한 다음에 지가 원하는 걸 하겠지.”
직원들이 대표님을 흘깃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대표님이 내 눈을 바라보았다.
“아이디어 있으면 우리 직원들한테 다 말해 봐.”
“혹시 예산은……?”
“예산? 그런 걸 왜 너희가 생각해.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해야지. 핫핫핫!”
“대표님…!”
다 같이 감동하며 웃는 가운데, 내가 동생들에게 눈짓했다.
‘박수.’
‘네.’
‘이번엔 포르티시모.’
심벌즈를 치는 원숭이 인형들처럼 동생들이 미친 듯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대표님……!”
“얘들아……!”
“핫핫핫!”
“하하하!”
화기애애한 공기가 감도는 고깃집.
하지만 대표님은 모르고 계셨다.
예산 걱정 없다는 말에 동생들이 ‘광선검’, ‘최대 출력’, ‘풍력발전’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고 있다는 것을.
* * *
다시 돌아온 회사에서 우리는 작업실에 모였다.
저마다 스케줄 준비를 하기 바빴다.
“음~ 스멜~”
막내가 상큼한 대사를 내뱉었다.
“리혁 씨, 리혁 씨는 혹시 이 냄새 느껴지시나요~?”
“냄새? 무슨 냄새요?”
“봄 냄새 말이에요. 어느덧 봄이 한층 더 무르익어가는 이 냄새~ 아 너무 상쾌해!”
“이런, 봄이 더 무르익다니.”
왜 ‘망할, 봄이라니’로 들리는지 모르겠다.
“음? 왜 그래요. 리혁 씨, 봄이 마음에 안 드세요?”
귀가 벌게진 누군가 후웁, 하아, 후훕 하아… 하며 한숨을 푹 내쉬다가 쑥스럽게 대사를 읊었다.
“지호 씨도 참, 저는 얼음왕자라구요. 당연히 봄보다는 겨울을 더 선호하죠.”
“푸흡-!”
“아, 웃지 말아요!”
나와 비주, 중현이가 팝콘을 우물거리며 키득대자, 리혁이가 신경질을 부렸다.
지호가 엄한 목소리로 녀석을 불렀다.
“자꾸 그런 식으로 몰입을 깨면 어떡해여? 제대로 해야지. 하여간 노래만 잘하지, 프로의 정신이 안 되어 있어.”
“아, 예.”
“대답 똑바로 해여. 제가 보컬 선생님이라고 해 봐여. 이런 식으로 말대꾸 했겠어여?”
“예…….”
반박하기에는 다 맞는 말투성이인 연기 코칭이라 리혁이는 부정도 못하고 입술만 꿈틀거렸다.
“자, 그럼 얼음왕자라구요, 그 파트부터 다시 갈게여. 리혁 씨~ 봄이 마음에 안 들어요?”
확실히 우리 막내가 엄청 잘하긴 한다.
리혁이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지호는 저 부끄러운 멘트를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봐여. 형. ‘한층 더 무르익어가는 봄! 오늘 무대는 돌아온 발라드 가수! 손보미의 ‘사랑, 이별, 봄’!’ 이런 식으로 해 보라구여.”
“으음…….”
“부끄러워하지 말구여. 멤버들 좋아한다! 그 말 했을 때를 떠올리면서 그냥 해여. 아무도 형 신경 쓰지 않을 거예여. 비웃을 순 있어도.”
“야.”
“어허, 선생님한테 ‘야’가 뭐예여.”
투닥거리는 코칭을 지켜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중현이는 믹스 테이프 작업을 진행했고, 비주는 내 곁에서 이따 밤에 있을 신토끼의 녹화 준비를 도와주었다.
“컨셉은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게 낫겠지?”
“네, 그리고 TNT나 틴스피릿 분들보다는 한조 씨랑 붙어 있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중에서 가장 친하기도 하고. …다른 쪽은 괜히 말실수 했다가 팬들한테 찍힐 수도 있어서.”
같이 출연할 사람들에 대한 조사는 이미 했고.
출연 경험이 있는 선배 연예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인기 많았던 클립을 보며 공부를 했기에 남은 건 최종 확인이었다.
내가 놓칠 만한 부분들을 같이 확인해 주던 비주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말고 평소처럼 해요. 형.”
‘늘 잘하잖아요’ 하면서 응원해주는 녀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대본에 적힌 멘트를 다시 한번 확인할 때, 지호가 답답하다는 듯 나를 불렀다.
“우주 형!”
“오냐.”
“형이 와서 이거 좀 해 봐여. 리혁이 형이 자꾸 이걸 어떻게 하냐고 막 그러는데.”
“야! 네가 요구하는 게 너무 어렵다니까!”
“어려운 거 아니에여.”
내가 바퀴 의자에 앉은 채로 돌돌 굴러갔다. 유치원생들끼리 ‘얘 순 나쁜 애에요!’ 하며 선생님을 찾는 거 같다.
“싸우지 말고. 뭐가 문제야?”
“봐여. 여기 컨셉이 ‘차갑고 부드러운 컨셉’이잖아여. 제가 화사하고 발랄하면 형은 차분해야 하는데, 꽈배기처럼 몸만 꼬고. 형이 한 번 해 봐여. 정말 어려운지.”
“나도 그닥 자신은…….”
리혁이가 쥔 대본 속 멘트를 훑어보았다.
차가운데 부드러운 느낌이라. 대강 어울릴 만한 표정을 떠올리며 대사를 읊었다.
“지호 씨도 참, 저는 얼음왕자라구요. 당연히 봄보다는 겨울이 마음에 들죠.”
짧게 하고 난 다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두 녀석이 기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야. 왕지호. 너보다 잘하는데?”
“왜, 왜 이런 걸 잘하는 거지? 혹시 부끄러움이 다 닳아 없어져서 그런가?”
“야.”
어이가 없어서 웃다가 리혁이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MC라고 부담감 가지지 말고 편하게 해. 눈 감고 상상해 봐. 너를 평가하는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 말고, 수플레들이 네 앞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해 봐.”
“한 번 해 볼게요.”
그러더니 금세 나아졌다.
리혁이가 ‘오’ 하면서 새삼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볼 때, 지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멀리했다.
“형은 얼른 녹화 준비 해여. 리혁이 형은 제가 가르칠 테니까. 연기 선생님은 제 역할이란 말이에여.”
자기가 가르칠 때보다 실력이 부쩍 늘어서 그런지 경계하는 녀석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그래, 둘이 백년해로 하렴.”
기지개를 키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애들 컨디션도 괜찮은 거 같고.
특별한 일도 없고.
이대로 몇 시간 정도 내버려 두고 나가 있어도 안심인 거 같다.
핑크색 하와이안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잠그는 내 모습에 비주가 물었다.
“벌써 가게요?”
“응, 샵 들렀다가 옷 갈아입고 가야지.”
“허, 다행이다…….”
“뭐?”
“아니에요. 아무것도.”
‘나 간다’고 하고 나가려고 하니 넷이서 문 앞까지 배웅을 나왔다.
뭐지.
이 평소보다 친절하게 웃는 분위기는. 촉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라 내가 확인하듯 물었다.
“뭐야. 왜 배웅을 나와?”
“무슨 소리예여. 저희는 늘 배웅을 나왔어여.”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모습들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러다가 이따 신토끼에서 너희 목소리 나오고 그러는 거 아니지? 제가 고백할 게 있어여~ 이러면서.”
지호가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여.”
“맞아요. 그럴 리 없어요.”
“우리가 그럴 거 같아요? 너.무.하.네.”
“너무해.”
아. 이거 진짜 찝찝한데.
일부러 이거 출연하기 전에 며칠간 잘해 주었는데 효과가 있을런지 모르겠다.
우리 동생들은 배은망덕이 기본 패시브라서.
“얼른 가요! 얼른!”
“형, 얼른 가세요!”
반쯤 등 떠밀리듯 나오면서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괜찮은 거겠지. 오늘 방송?
* * *
상암동 TBC 사옥.
‘신개념 토크쇼 : 기억을 찾아줘’의 세트장은 녹화 준비를 앞두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흐아암…….”
토크쇼의 호스트들이 하품을 삼키며 서로를 맞이했다.
“어, 형 왔어?”
“차가 너무 밀리더라.”
방금 도착한 이가 투덜거렸다.
“금요일이라 그런가. 왜 이렇게 길이 막히냐. 이 시간대에 녹화하는 건 또 얼마만이고.”
“게스트가 아이돌이래잖아.”
누군가 대본을 뒤적이며 말했다.
“이것도 스케줄 겨우 맞춘 거라더라. 톱급 애들이랑 요즘 한창 잘나가기 시작한 애가 껴 있어서.”
“뉴블랙? 안 그래도 라디오로 걔네 노래 들으면서 왔는데.”
원더풀 나잇에서 매일 나오더라, 하던 호스트가 외투를 벗으며 말했다.
“기왕 녹화도 이 시간대에 잡힌 거, 분량이나 낭낭하게 나와 주면 좋을 텐데.”
“평소처럼 적당히 뽑아내야지. 뭐. 우리 프로에 아이돌 나와서 재미있던 적이 있었냐?”
“잘나가는 애들이면… 또 엄청 사리겠네.”
지금까지 아이돌이 나왔던 특집 중에 재미있던 적이 드물었다.
기껏 약점 공개라면서, 호감이 될 만한 에피소드만 줄줄이 언급하는데 재미가 있을 리가 있나.
호스트들도 ‘와, 대박!’ 하면서도 속으로는 ‘어, 음… 그게 전부야?’ 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들.
모두가 방송 분량을 걱정할 때, 최고참 출연자가 피디를 불렀다.
“김 피디!”
고개를 돌린 피디에게 맏형 포지션인 남자가 물었다.
“오늘 물 어때, 좋아? 뭐 재미있는 거 준비됐나?”
“평이해요. 선배님.”
김 피디가 하나하나 떠올리다가 뭔가를 떠올린 듯 피식 웃었다.
“근데 그중에 노다지가 하나 있긴 하네요.”
“노다지?”
“뭐라고 해야 되지. 캐면 캘수록 뭐가 막 미친 듯이 나오더라고요. 걔 때문에 분량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
“오… 그런 애가 있어? 걔가 누군데?”
“뉴블랙 우주요.”
“걔가?”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엄청 착실하게 생긴 애 아냐?”
“출연진 중에 제일 얘깃거리 없게 생겼던데…….”
그런 대화가 오갈 때, 화장실에 다녀온 호스트에게 출연진들의 시선이 옮겨 갔다.
“야, 창현아.”
“네?”
“너 그 파티코에서 뉴블랙이랑 대만 간 적 있지 않았냐? 거기 우주라는 애 어때?”
“……우주요?”
“김 피디가 뭐가 막 있다고 하는데, 관상만 봐서는 다이나믹함이랑은 거리가 멀게 생겼거든.”
유창현이 멈칫했다.
‘빵 반죽’, ‘우젠민’, ‘마사이족 워킹’ 같은 키워드가 머릿속에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했다.
“어…….”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그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 이따 보시면 알 거예요.”
도저히 한 마디로 설명이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