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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47)화 (24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47화

잠시 머릿속이 일시정지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니 모두가 사라져 있었다.

“…….”

방금 전까지 틴스피릿과 와일드의 리더가 앉아 있던 자리가 휑하다.

마치 바람 소리가 휘이잉- 하고 들리는 듯한 느낌.

“우주 씨는 나 알지?”

“네. 팬미팅이랑 쇼케이스 때 보내 주신 화환 정말 잘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화환 문구로 ‘너를 잡으러 갈 것이다’ 예고를 하셨지.

‘사나이가 간다’의 도준기 PD가 머쓱하게 웃었다.

“미안해요. 화환에 쓴 문구는 내가 쓴 게 아니라서……. 작가들이 멋대로 쓴 거거든.”

“아아.”

“사실 나는 ‘우주 씨 한 번만 나와. 내 소원이야. 응?’ 이거였는데, 작가들이 부담스럽다고 바꿨어.”

당연히 부담스럽죠,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그 동안 사근사근한 미소를 띠면서 옆에 서 있는 한조에게 시선을 던졌다.

한조 씨…?

한조 씨. 이봐요. 이현조 씨.

눈에 초점이 없네. 이 사람.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데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지 두뇌를 풀가동하는 듯했다.

도 피디의 눈길이 한조에 닿았다.

“괜찮아요? 안색이 창백한데.”

“괘, 괜찮습니다.”

도 피디가 웃었다.

“너무 그렇게 떨지 마요. 아이돌들은 다 그러더라. 내가 뭐 잡아먹으러 왔나? 그냥 이야기 좀 해 보려고 온 건데.”

…라는 말을 촬영장까지 찾아온 피디님이 하고 있었다.

사나이가 간다.

TBC에서 시청률이 꽤나 잘 나오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주세한이 TBC 시청률계의 영의정이라면 신토끼와 사나이가 간다는 좌의정과 우의정쯤 될까.

사간은 많은 연예인들이 출연을 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한 방에 뜬 케이스가 꽤 있는 까닭에, 아마 ‘사간 나갈 사람 모여라!’ 하고 외치면 쉬는 시간 매점처럼 붐빌걸.

하지만 선배 아이돌들이 피하는 이유가 있었는데, 메인 피디가 악독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바로 내 앞에 있는 도준기 피디.

본인부터가 특전 부사관으로 일했던 경력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고, 부상만 아니었다면 군에 뼈를 묻었을 거라고 할 만큼 군대 덕후.

본인부터가 실컷 구르다 왔기에 누구보다 출연자를 잘 굴리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촬영하면 견적이 나온다나. 출연진이 엄살을 부리는지 아닌지.

…라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다.

내가 미쳤지. 사진 정도는 검색해 뒀어야 하는데. 사진을 몰라서 미처 피하지를 못했다.

지금도 방긋방긋 웃고 있지만 속이 타들어 갔다.

어떻게 탈주각을 재야 되지.

한조와 두뇌를 연결이라도 해서 두뇌 1+1 가동이라도 하고 싶었다.

“주변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오해예요. 우주 씨는 태현이랑 친하지? 방송분 편집하다가 둘이 영상 통화하는 거 봤는데.”

“네. 맞아요.”

“태현이가 뭐라고 해요. 괜찮다고 그러죠?”

기억을 떠올렸다.

[♪제발 나와라. 나와라요. 나와라 이제~♬]

어떠냐고 물으니 대답 대신 외국 노래를 하나 보내줬다. ‘나와라~!’ 하는 게 무한 반복되는.

내가 웃으며 답했다.

“네, 굉장히 좋은 기억이었다고 했어요.”

해석 : 절대 안 나갈 거라고 하던데.

“그죠? 사실, 주세한 삽질 때부터 우주 씨가 마음에 들긴 했는데. 본격적으로 추진한 건 태현이 때문이거든요. 꼭 추천하고 싶은 신인 아이돌이 있다고.”

해석 : 내 픽이지만, 남의 픽이기도 하다.

도 피디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회사 실장님 편으로 긍정적인 답을 미리 듣긴 했는데. 출연하는 거 어때요? SNS 보니까 팬들도 우주 씨 출연을 기정사실로 알고 있더라고.”

해석 : 카메라도 돌고 있고. 약속 좀 받아 가자.

“음, 저도 나가고는 싶은데. 회사 분들이랑 상의 없이 섣불리 결정할 부분은 아니라서요.”

해석 : 노노.

“그죠. 아무래도 회사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것도 있고. 여기서 확정은 힘들지. 혹시 우리 프로 관련해서 뭐 걱정되는 부분은 없어요?

해석 : 걸리는 부분 있으면 말해 봐.

“아뇨. 그럴 리가요.”

해석 : 그걸 어떻게 말해요.

그러곤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

“혹시 저를 원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으신가요. 저 같은 신인한테 이렇게 큰 관심을…….”

해석 : Why me? PD?

“연차가 중요한가. 보는 순간 느낌이 딱 왔어요.”

해석 : I want you.

그때 나와 피디님의 훈훈한 핑퐁을 지켜보고 있던 한조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럼 두 분이서 얘기를 나누시게…….”

내가 팔을 붙잡았다.

“혼자 있으면 뻘쭘하잖아요. 같이 있어요. 하하.”

해석 : 어딜 가요. 우리 죽어도 같이 죽어요.

“…그러고 보니 이쪽도 눈길이 가는데. 스트릿 보이즈의 한조 씨라고? 몸도 좋네.”

해석 : I want you too.

‘이러려고 키운 근육이 아닌데’ 하며 슬퍼하는 한조였다.

이윽고 카메라가 비추는 가운데, 나와 한조, 그리고 피디님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했다.

“자! 출연이 성사된 기념으로 미리 다 같이 웃어요. 웃어.”

“하하하.”

그리고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아이돌 선배들이 도 피디의 웃음소리에 단체로 백스텝을 했다.

*   *   *

“푸하하!”

“방금 진짜 재미있었다면서? 진귀한 광경을 놓쳐 버렸네.”

“도 피디 어때? 집요하지? 그 사람 모토가 ‘안 되면 되게 하라’야.”

MC들의 농에 나와 한조가 손사래를 쳤다.

“어유, 아니에요. 너무 친절하세요.”

“저 같은 신인은 불러만 주셔도 너무 감사하죠. 나가기 쉬운 예능도 아닌데…….”

한조의 눈망울이 촉촉했다.

울지 마요. 울면 나도 울어.

말로는 ‘피디님 친절하시다!’하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서글픈 우리 둘의 모습에 다들 박장대소했다.

특히 구선웅은 의자가 넘어가도록 웃고 있다.

“자, 이번 전화는 TNT의 멤버들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데요.”

“올 것이 왔네요.”

구선웅이 침을 삼키는 가운데, MC가 내게 시선을 돌리더니 뭔가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참, 아까 자기소개 때 선웅 씨가 그랬죠? 우주 씨가 TJ 엔터 연습생이어서 원래부터 알던 사이라고.”

“네, 맞아요.”

구선웅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알기로 저 친구가 초등학생 때부터 연습생으로 들어왔어요. 연차만 따지면 오히려 저보다 선배죠. 전 늦게 들어온 축이라…….”

“터줏대감이었네.”

“그때는 우주가 빠따를 잡고 있었구만?”

운동선수 출신 MC의 발언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그럼 우주 씨도 TNT 멤버들이랑 오래 봤겠네요?”

“아, 그게…….”

“예. 다들 오랫동안 알고 지냈죠.”

살짝 난처해하는 나 대신 구선웅이 나서줬다.

내가 대답하기 애매한 부분이라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TNT랑 엮이면 모든 문제가 예민해진다. 사적으로 친한 것과 별개로 방송은 공적인 자리니까.

팬덤이 어마어마한 탑급 아이돌과 잘못 엮이면 정말 힘들어진다.

대형 팬덤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가 매장된 신인 그룹이 이 바닥에는 수두룩하니까. 당장 우리 뉴블랙에게 달렸던 악플 중 8할이 TNT랑 1위 경쟁할 때 나온 거다.

TNT 멤버들도 방송할 때는 일부러 내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자기들 딴에는 호의라고 베푼 게 폭탄이 되어 돌아올 수 있으니까.

다행히 지금은 이렇게 ‘굉장히 친했다’고 언급을 해도 무난히 지나갈 만큼 우리가 성장했다는 거지만.

“그럼 여기서도 구별하는 걸 기대해 봐도 되나요?”

“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내가 밝게 웃는 동안, 이윽고 통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들려요?

-안녕하세요.

-이거 연결됐나?

차례대로 한태현, 석지훈, 지한빈이다. 음성변조된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아차렸다.

구선웅은 누가 누군지 알아들으면서도 살짝 긴가민가 하는 눈치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그리고 한 명이 더 있다. 넷 중에서 가장 완벽한 한국어 발음.

한별이네.

장한별.

TNT에서 유일한 중국인 멤버다.

장씨인데 중국 이름이 다섯 글자여서 자기도 세 글자 하겠다고 만든 예명이 한별이었다.

한국에 뼈를 묻겠다고 만든 이름인데 늘 중국에 있다.

입국했나 보네.

한편 TNT의 동생라인 4인방이 한데 뭉쳐 있다는 건 다들 눈칫밥으로 파악한 모양이다.

TNT에서 네 명이 사적으로 뭉칠 조합이라고 해 봐야 저기밖에 없으니까.

“아이고, 귀한 손님들이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네 명이서 지금 같이 있는 거예요?”

파스타 먹으러 나왔다는 이야기와 함께 간단한 신변잡기 토크가 이어진 후 구선웅의 ‘사슴 흑역사’가 이어졌다.

괴로워하는 리더의 모습에 멤버들이 신나게 놀려댔다.

-그러게. 평소에 잘해 주셨어야죠.

-맞아. 인과응보!

-그간 쌓았던 업보가 다 반사 데미지로 돌아오는 거예요! 꺅꺄꺄!

음성 변조된 목소리들이 신명나게 놀리자 구선웅이 두고 보자면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누군지 다 아니까 가만 안 있어.”

-가만 안 있으면 어떡할 건데요오~?

구선웅이 시선을 돌리자 내가 소곤거리듯 ‘석지훈’ 하고 말해주었다.

“야, 석지ㅎ…….”

-잠만, 잠만. 가만있어 봐. 형. 방금 굉장히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우주 씨? 우주 씨 맞죠?

-우주 형이야? 뭐야. 거기 우주 형이 왜 있어?

-아이돌 리더 특집이잖아! 멍청아!

‘멍청아’라는 격한 발언에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마구 웃을 때, 내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뉴블랙 우주입니다.”

-…….

3초간 흐른 정적.

이윽고 스튜디오의 스피커가 터질 듯한 아우성이 흘러나왔다.

-어우우우…!

-너무 싫어!

-적응 안 된다. 이제부터 선배님은 금지예요. 금지.

MC 중 하나가 물었다.

“선배님 호칭에 거부감이 드나 봐요?”

-네. 아니…….

한태현이네.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TJ에서 오오오오래~ 봤던 사이인데. 공적인 자리에서는 막 저리 격식을 따져요.

-맞다. 서운해!

-저희 많이 친했어요-!

-현재형으로 말해야지. 과거형이잖아.

-아, 지금도 좀 친해요오…….

그간 한국에 별로 없었던 장한별이 자신 없다는 듯 말하자, 꺅꺄꺄 하면서 반대편에서 또 웃기 시작했다.

‘얘 소심한 거 봐!’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놀리더니 나를 불렀다.

-우주 씨.

그 동안 내가 미리 제안했던, 네 명의 이름이 붙어 있는 카드가 나왔다.

-우주 씨, 안냐세요. 제가 누군지 아실까요?

내가 그중에서 ‘한태현 선배님’ 하고 적힌 것을 들어 보이자,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입을 가리고 ‘큽’하고 웃었다.

-안뇽하세요.

-인사 왜 그렇게 하냐? 되게 없어 보여.

-이래야 몰라.

-대박. 이럼 완전 익명인데?

‘석지훈’, ‘지한빈’, ‘석지훈’, ‘장한별’을 번갈아 들어 보이자 다들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특히 구선웅은 웃겨 죽으려고 했다.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카드 저거 누가 준비한 거야?’ 하는 MC의 속삭임에 유창현이 나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MC가 내게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때, 유창현이 물었다.

“말 나온 김에 우주 씨한테 할 말이 있나요? 아님 흑역사라든가.”

-음… 엄청 많긴 한데요.

-그걸 공개하기에는 지금 저기 계시는 분이 쥐고 있는 패가 많아요.

-거의 광산이지!

TNT 멤버들이 너스레를 떠는 동안 나는 조용히 웃었다.

사실 저쪽 입장에서 말할 거리야 많을 거다. 몸치 관련해서는 정말 하루 종일 얘기해도 에피소드가 모자라지.

하지만 방송 재미 좀 뽑겠다고 당시 내 컴플렉스였던 부분을 굳이 건드릴 애들은 아니었다.

그런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

-아! 근데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어요! 흑역사는 아니고 신기한 에피소드?

아니었구만.

그럼 그렇지.

“오. 뭔가요. 뭔가요.”

-연고지가 서울이 아닌 사람들은 연습생 숙소에서 지내고 그랬거든요. 저도 당시에 숙소에서 같이 살았는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어요.

“오오.”

-다들 피곤해서 자는데, 새벽만 되면 저 사람이 이상한 방망이를 들고 거실로 슥 나가는 거예요.

아. 저거는 괜찮다.

내가 웃으면서 듣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방망이?”

-그때 당시 먼저 데뷔한 선배님들이 선물로 주신 응원봉이거든요. 되게 밝아요.

-눈 멀어요. 멀어.

-근데 그거를 밤이면 밤마다, 다들 자고 나면 거실에 나가서 반짝이 기능 켜 놓고 바라보는 거예요.

한조가 궁금하다는 듯 내게 ‘뭐예요?’ 하고 속삭였다.

-진짜 너무 무서웠어요. 막 밤만 되면 미친 사람처럼 응원봉 반짝반짝 보면서 중얼거리니까.

“왜 그랬던 거예요?”

-알고 보니 눈이 약해서 그랬대요. 카메라 플래시만 터지면 눈이 반사적으로 찡그려지는데, 그럼 연예인 활동을 할 수가 없다고. 눈을 빛에 적응시키려고 그런 거였대요.

“오오…….”

감탄했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모습에 왠지 모를 쑥스러움과 함께 추억에 잠겼다.

그때 참 열심히 살긴 했지.

하지만 그 정도까지 노력한 건 아니었는데. 뭔가 잔뜩 포장되어서 나오니 부끄럽게 느껴졌다.

-엄청 노력파였어요. 되게 막 보다 보면 나도 같이 열심히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하나.

-저희 다 같이 이것저것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볼 때마다 ‘아, 저 형은 성공하겠다’ 하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노래 잘 됐을 때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고요.

훈훈한 미담에 내가 미소를 짓는 동안, 한태현이 마무리를 지었다.

-참, 그때 별명이 팅커벨이었어요. 밤마다 막 반짝반짝거려서.

다들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훈훈해서 재미없게 끝날 뻔한 상황이 센스 있게 마무리 된 후, MC가 정리 멘트를 했다.

“정말로 오래 알았던 사이네요.”

-네! 잘돼서 좋아요!

-엄청!

-더 잘돼서 저희 밥 좀 사줬으면 좋겠어요-!

-맞아! 밥 언제 사 주는 건데~!

-밥밥밥!

-뚜비두밥!

정신없이 이어지는 토크에 내가 자상하게 웃었다.

“네, 그러면 제가 더 열심히 해서 선배님들 밥을…….”

-으아아아!

-선배님이래. 나 파스타 코로 나왔어.

-푸흡!

-저기요! 손수건 좀 주세요!!

반대편에서 벌어진 난장판에 게스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동안 나는 조용히 웃었다.

낮은 수위의 흑역사 정도가 나올거나 언급 없이 지나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런 훈훈한 멘트가 돌아올 줄은 몰랐다.

앞으로 방송에서 자기네 얘기를 좀 더 편하게 하라고 먼저 판을 깔아 준 느낌이라고 할까.

그 의도가 읽히는 터라 기꺼웠다.

그때 올망졸망했던 꼬맹이들을 떠올리며 웃을 때였다.

소란이 수습된 반대편에서 신난 목소리들이 자기들의 리더를 호명했다.

-그럼 훈훈한 얘기는 이쯤에서 하고.

-구선웅 씌-!

-구선웅 씌 다시 나와 주세요!

구선웅이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야. 너네 우주한테는 완전 화기애애하게 그러고. 나한테는…….”

-님은 경우가 다르지요. 꺅꺄꺄!

-오늘 한 번 끝장을 봅시다! 구씨!

그 후로 누군가의 괴로워하는 비명이 멈추지 않았다.

*   *   *

녹화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어 갔다.

‘너의 쪽팔림은 우리의 즐거움’이란 방송 모토답게 모두가 즐기는 분위기였다.

녹화가 길어지면서 피곤하긴 하지만, 분위기는 좋다.

흔히 예능은 편집이 전부라는 말이 있다.

같은 내용을 찍어도 피디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재미가 갈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오는 내용은 아무리 편집을 못해도 재미가 없을 수가 없었다.

2부까지 가자는 이야기가 농담이 아닌 듯 PD님을 비롯해서 제작진의 표정이 피곤하면서도 밝았다.

“오늘 분위기가 좋아.”

MC 중 맏형이 구수하게 말했다.

“원래 녹화가 길어지면 하품도 쩍쩍 나오고 그러거든. 재미가 없어야 하는데 오늘은 볼만하네.”

“우리 게스트들 고생이 많아. 방송을 위해 이렇게 몸을 불사르고.”

아이돌 게스트들이 하하 웃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방송 분량에 실시간으로 회춘하는 제작진과 MC들과 달리 게스트들은 눈 밑까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특히 스케줄 바쁘기로 유명한 TNT, 틴스피릿과 요즘 음방을 뛰는 나는 더더욱.

다들 하하 웃고 있지만 수면시간이 2~3시간 남짓이라 죽을 맛일 거다.

아마 이 속도로 녹화가 진행된다면 나도 잠을 못 잔 채 바로 방송국에 출근해야 할 수도 있었다.

뭐. 그래도 분량이 먼저지.

잠이야 이따가 대기실 소파에서 엎어져 쪽잠 자면 된다.

“우주 씨, 조금 피곤해 보이는데?”

“아까 초등학교 동창생 증언 때문에 진이 다 빠지긴 했지.”

“아니에요. 저 엄청 쌩쌩합니다.”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정하자 작가님들이 손뼉을 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내 표정이 웃기게 나왔나.

MC 중 하나가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잠도 오고 그럴 거 같아서, 이제 우주 씨 코너로 넘어가려고 해요.”

“안 그러셔도 돼요. 저 엄청 씽… 쌩쌩해요.”

피곤하긴 한가 보다.

무의식적으로 영어 공부할 때 배웠던 ‘노래하다’의 sing-sang-sung 3단 변화가 나올 뻔한 거 보면.

고개를 휘휘 저으며 ‘쌩쌩합니다!’를 어필하는 내 모습에 MC들이 전화를 연결했다.

-여보세요.

남자 목소리.

누구지. 정훈이와 다르게 이건 귀에 굉장히 익은 목소리다. MC용 대본을 흘깃거리던 유창현이 물었다.

“일단, 늦은 시간에 전화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작가님이 그러시는데 통화 늦을수록 상품권 액수가 쏠쏠… 끅끅!

자본주의에 비롯된 행복한 웃음에 다들 키득거렸다.

하지만 나는 웃지 못하고 있었다.

웃음소리를 들은 순간, 누군지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러자마자 잠이 싹 달아났다.

“……!”

식겁한 얼굴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인물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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