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48)화 (24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48화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은성이니? 은성이야?”

-…아닌데에? 은성이 아닌데요?

“음성변조 아직 안 됐어.”

-진짜요, 형? 어. 작가님이 반드시 음성 변조 된다고 하셨는데.

내 낚시에 바로 속아 넘어간 상대의 모습에 사람들이 웃었다. 내 다급한 표정에 MC가 물었다.

“무슨 사이기에 그래요?”

“제 군대 후임이에요.”

행정병 시절 후임이었다고 간략히 설명했다.

-뭐야. 음성변조 된 거였어요? 에이. 또 속았어. 또 속았어!

음성변조 때문인지 더 수다스럽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유쾌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안 돼요. 친한 척해서 제 마음을 흔들지 마십쇼.

“아니. 무슨 마음을 흔들어.”

-마음 약해지게 해서 말 못하게 하려는 수작,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 병장님. 한두 번 당해 본 게 아니에요.

음성변조 목소리가 말했다.

-근데 자꾸 이렇게 당사자가 말을 걸어도 되나요? 제가 이러면 말을 편하게 할 수가 없는데!

듣기만 해도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는 말투가 음성변조까지 되니, 틴스피릿 휘연과 와일드의 우산이 입을 가리며 웃기 시작했다.

MC가 물었다.

“진정하시고요. 우주 씨는 저희가 막을 테니까, 말씀을 편하게 해 주시면 됩니다. 철저한 익명 보장.”

-익명 보장 안 됐잖아요.

“어, 그…….”

-아, 몰라. 흥이 깨져 버렸어요.

MC들도 통제 안 되는 캐릭터의 등장에 스탭들도 웃기 시작했다. 상대가 제멋대로 말했다.

-어쨌든 시작해 볼게요. 저는 선우주 병장님의 행정병 후임이었던 하은성이라고 합니다. 박수!

“와아아!”

“우리 박수 왜 치는 거야, 근데?”

얘 때문에 미치겠다. 진짜.

“이 자리에 왜 나오시게 된 건가요?”

-네. 저는 오늘 선 병장님의 만행을 고발하고자! 나왔습니다!

“만행이요?”

-네. 제가 정말 당한 게 많거든요. 가슴에 막 쌓아 두고 쌓아 둬서 응어리가 졌던 그 가혹행위들…….

내가 먼 산을 바라보는 동안 MC들이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건가요?”

-진짜. 말하려면 끝이 없어요. 끝이!

내가 선수를 쳤다.

“은성아.”

-네??

“그 잠깐 수화기를 떼 본 다음에, 거기 빨간색 버튼 있지?”

-네. 있어요.

“그거 좀 눌러볼래?”

-잠시만요.

‘띠록’ 하면서 통화가 종료됐다.

1초간 정적이 흐르고, 이윽고 자리에 있는 모두가 테이블에 엎어져서 자지러지듯 웃었다.

다시 통화가 연결될 때까지 거의 5분 가까이 웃은 거 같다.

-이거 봐요! 또 사기 당했어! 또! 또!!

화가 났지만 어쩐지 하찮은 목소리에 2차로 웃음이 나왔다.

‘왜 평소에 놀려 먹었는지 알겠다’는 누군가의 코멘트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제가 저 사람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어요! 제가 군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름 행복했는데, 저 사람 때문에 정말 꼬여서……! 어후!

종알종알 한탄을 하던 목소리에게 MC가 물었다.

“어떤 부분이 힘들었나요?”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사람인데, 그 이상한 걸 저만 알고 있었어요. 제가 신병으로 전입 왔을 때, 저분이 행정병이라 사진 찍고 그랬거든요. 전역증에 나오는 사진이요.

“그런데요?”

-그때부터 범상치가 않았어요. 사진 찍을 때 ‘얼짱각도’ 알려 준다면서 계속 시키고.

내가 그때 끼어들었다.

“그래서 전역증 사진이 굉장히 잘 나오지 않았나요?”

-그, 그렇기는 한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구요! 아, 저 사람 좀 조용히 좀 시켜 주세요. 저 무서워요.

옆에 앉아 있던 한조가 그만 현실웃음이 터져버렸다.

-아무튼, 저도 얼마 안 가서 행정병으로 차출됐거든요. 다른 선임들이 야 너 군 생활 풀렸다고 했어요. 선임인 선우주 씨가 당시에 평판이 엄청 좋았거든요. 잘생기고 성격 좋다고.

“아니었나요?”

-미친 사람이었어요…!

적나라한 표현에 MC들이 물개 박수를 치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나는 머쓱하게 구레나룻만 긁적였고.

-짐 챙겨서 생활관 딱 들어가자마자 보는데, 그 마루 알죠? 거기 위에서 혼자 콩! 콩! 하면서 팔을 쭉 뻗으면서 뛰고 있는 거예요. 강시처럼 콩콩 뛰다가 고개가 획 돌아가더니 저를 보는데… 진짜 무서웠어요!

내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촬영장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넌 누구냐?’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우물쭈물 대답하는데 ‘난 홍콩할매다’ 이러면서 계속 뛰고 있는 거예요.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강시 아닙니까?’ 했는데… 제 생각엔 그 말대꾸를 했던 순간부터 꼬인 거 같아요.

“왜요?”

-제 말투가 재미있어서 마음에 들었대요.

내가 해명했다.

“저때 당시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던 시기여서, 뭐 마땅히 풀 만한 게 없었거든요.”

-그때도 같은 핑계였어요. 수능 공부랑 작곡 공부 같이 한다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그러면서 절 괴롭혔어요!

괜히 나섰다 싶을 만큼 증언이 파바박 이어졌다.

-맛있는 거 사 주면서 호구조사를 하더니, 저를 슥 훑어보는 거예요. 그러더니 ‘너 목소리가 좋구나?’하면서 칭찬을 하더라고요.

“그게 안 좋은 징조였나요?”

-네. 그때부터 갑자기 프로듀서가 되는 게 자기 꿈이라고, 제 의사도 안 묻고 ‘널 가수로 키워 줄게’ 이러시는 거예요.

“푸하하!”

다들 하도 웃어서 더 이상 웃음을 짜낼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군대 후임이 그걸 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그날부터 지옥 같았어요. 일은 또 일대로 하고, 끝나고 나면 따로 보컬 트레이닝 받았어요. 전! 가수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실력은 좀 늘었나요?”

-네…….

시무룩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가르치는 건 또 엄청 잘 가르쳐서요. 눈치는 귀신같아서, 좀만 농땡이 부린다 싶으면 눈이 막 동글동글해져요. 덕분에 제가 한 달 만에 득음을 했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두고 볼 수 없을 만큼, 목소리도 좋고 재능도 뛰어난 친구였거든요.”

-그래요?

금세 밝아진 목소리에 다들 키득거렸다. 상대가 다시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너무 힘든 군 생활이었어요. 보컬 트레이닝만으로도 벅찬데, 밥 먹을 때도 굳이! 굳이! 절 데리고 다니면서 작곡 얘기를 하루 종일! 했어요! 이 노래는 어떻고, 저 노래는 어떻고. 진짜 선임이라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내가 끼어들었다.

“그 덕분에 미디를 만질 수 있게 됐죠?”

-네. 그 덕에 작곡을 어느 정도…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구요.

불평을 내뱉던 이가 한탄을 했다.

-진짜 내가 서러워서 정말… 제가 이런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할 수 없었어요.

“왜요?”

-저분이 진짜 정치의 신이거든요. 처세를 엄청 잘해요! 연습생 하다가 왔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정치를 하다 온 게 분명해요.

졸지에 이상한 별명까지 얻어 버린 내 모습에 작가진이 흐뭇하게 웃었다.

벌써부터 자막 CG로 뭘 넣을지 두근거려하는 얼굴이다.

-이미지가 너무 좋아서! 행보관님도 ‘마, 저런 아들 있음 내 소원이 없다’ 하면서 너무 예뻐하고. 잘생기고 성격 좋은 선임이라고! 막 다들 그러고! 저는 미치고…!

“거기서 괜히 혼자 이상한 사람이 됐겠어요.”

-네, 한 번은 슬쩍 ‘선우주 병장은 특이한 거 같슴다’ 했는데 정말 아무도! 아무도! 동의해 주지 않았어요. 그럴수록 미치는 거예요. 남들한테는 성실하고 훈훈한데, 저한테만 그러니까. 언젠가는 일주일 내내 할머님 생신 선물 뭐 사드릴지 고민상담 했어요. 밥 먹을 때마다 김치가 코로 넘어가고!

그러곤 급격히 시무룩해졌다.

-근데 노래하는 것도 재미있고, 실력도 엄청 느니까. 막 자괴감이 드는 거예요. 제가 노래의 노자도 몰랐는데 군대에서 노래로 포상휴가를 받았다니까요!

“푸하하!”

-어? 근데 생각해 보니까 나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죠?”

내가 끼어들자 빽 하고 대답이 돌아왔다.

-절대 아니에요!

“…….”

-제가 애초에 이 프로에 연락한 것도 저분 이미지가 너무! 좋아서 한 거예요! 세상 사람들에게 이 사람의 실체를 알려야 한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은성아.”

-네.

뚱한 목소리에게 내가 사과했다.

“미안해.”

-아니. 뭐 됐어요. 사실 뭐 도움도 제일 많이 받아서…….

갑자기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에요!

초등학교 동창생과 마찬가지로 실컷 욕한 뒤에 뜬금포로 ‘좋은 애야!’ 하는 말에 다들 웃기 시작했다.

슬슬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MC가 물었다.

“그런데 두 분은 전역하고 나서 처음 만나는 건가요?”

-아뇨. 연락은 자주 했어요! 그래도 제일 친해서 전역하고 나면 자주 만나자고 했거든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게도 만나진 못했어요. 시간이 안 돼서.”

-맞아요. 저분 수능 끝날 때가 제 휴가였는데 만나려고 하니까 갑자기 막 의인이 됐다는 거예요. 그러고는 연습생이 됐다고 하더니, 두 달 뒤에 ‘형 노래 대박났다’ 이러면서 썸씽 차트 사진 보내주는 거예요.

“잠깐, 잠깐만요. 이거 얘기가 어떻게 된 거예요?”

누군가 황망하다는 듯 물었다.

뉴블랙 데뷔 전에 있었던 일을 간략히 요약해서 말해 주자 MC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니, 데뷔 전에도 무슨 에피소드가 이렇게 많아?”

“어? 나 그때 우리 딸내미 수능날 이어서 기억하는데! 그 의인이 우주 씨였구나? 세상에…….”

그 말에 전화연결된 상대도 동의했다.

-다들 엄청 당황했어요. 전역할 때쯤 되니까 TV에서 ‘감사합니다, 수플레’ 이러고 있고. 저보다 늦게 들어온 애들은 더 놀랐을 거예요. 전역자가 주세한에 나오고 그러니까.

신기할 만했다.

나 같아도 민기 형이 퇴사하고는 ‘리사조아’라는 예명으로 가수 데뷔하면 놀랄걸.

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MC가 근황을 물었다.

“요즘은 뭐 하고 지내시나요?”

-저요?

상대가 말했다.

-저 가수 데뷔 앞두고 있어요.

“네……?”

상상하지도 못한 전개에 모두가 눈을 깜빡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얘가 뭐?

나도 모르게 질문이 나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가수라니.”

-형이 자꾸 가수 하라고 해서, 어디 한 번 심심풀이로 봐 보자 했는데 오디션에서 1차로 붙어 버렸어요!

상대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2년 동안 노래만 불렀냐고. 트레이너분이 완성된 보컬이라면서 칭찬 엄청 했어요. 팀에서도 제가 메인 보컬이에요.

미리 알고 있던 제작진을 제외하면, 모두가 황당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 역시도 무슨 이런 전개가 있나 싶었다. 군 후임이 갑자기 가수로 데뷔한다니…….

신이 난 어느 MC가 물었다.

“어디 회사에 어느 팀이에요?”

-그건 말씀 드릴 수 없어요. 비밀.

MC 중 하나가 내게 말했다.

“우주 씨가 많이 놀란 거 같은데. 기분이 어때요? 군대 후임이 아이돌 후배로 들어오게 생겼네.”

“근데 이런 소식을 모르고 있었어?”

“네, 연락은 자주 하고 있는데 저 친구가 자기 근황은 잘 안 알려 줘서.”

내 말에 MC가 물었다.

“왜 안 알려주셨어요?”

-어후. 안 봐도 뻔하죠! 가수 준비한다고 하면 잔소리 문자 폭탄에다가, 마음가짐은 이래야 한다. 초심이 중요하다. 유익한 보컬 강좌 링크글 보내고. 달달 볶을 게 뻔한데!

그러더니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전 TV에서 뉴블랙분들 볼 때마다 너무 막 공감이 되고! 그래요!

“아니야. 우리 애들은 좋다고 했어.”

-그래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진짜 역대급 캐릭터라며 메인 MC가 잇몸웃음을 보였다.

“데뷔하고 나면 우리 신토끼에도 꼭 나와요. 그때는 우주 씨가 나오면 되겠네.”

“네, 제가 진짜 뼈를 깎는 각오로 임할게요.”

-진짜 불러주시는 거예요? 저 이거 녹음했어요!

화기애애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뜬금포로 데뷔 선언을 한 후임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후 통화가 종료됐다.

잠시 흐르는 적막.

상대가 어찌나 수다스러웠던지 그다지 조용하지 않은데도 고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확 조용해졌는데?”

누군가의 너털웃음과 함께 곧바로 내게 관심이 쏟아졌다.

“우주 씨, 대체 무슨 삶을 살아온 거야?”

“이건 거의 지뢰밭 수준인데.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뭐가 막 우수수 나오는 거 같아.”

“진짜 신기하다. 흑역사와 미담이 공존하는 케이스도 있구나.”

마지막 말에 다들 공감하는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다.

나는 그저 해탈한 얼굴로 웃고 있을 뿐.

방송이 후반부에 갈수록 게스트들이 ‘될 대로 되라, 에헤라’ 하는 모습을 봤는데 왜 그러는지 알 것 같다.

정신이 혼미하다.

“여기는 신개념 토크쇼 : 기억을 찾아줘!”

“시청자 여러분은 지금 흑역사와 미담이 공존하는 인간문화재를 보고 계십니다.”

그래도 좋은 거라면 제작진들이 세상에서 가장 신난 사람처럼 좋아한다는 것 정도.

특히 피디님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킨 듯한 표정이다.

신나게 놀리는 MC들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 우리 대표님만큼이나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처음이다.

마치 하늘이 내린 인재…! 이런 느낌이다.

“우리 피디님 표정을 보세요.”

“이견우 씨 산낙지 에피소드 때보다 더 행복한 얼굴이야. 저거.”

“김피디? 행복해?”

피디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향해 쌍엄지를 들어 보이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그리고…….

“네, 그리고 방금 우리 김피디로부터 들어온 소식인데! 이번 특집이 넉 달 만에 처음으로 2부 편성이 될 거라고 합니다!”

“와아아아!”

다 같이 물개박수를 치는 가운데, 나도 서글픈 얼굴로 손뼉을 짝짝 쳤다.

“우주 씨한테도 박수!”

“왜 그러세요! 저한테 하지 마세요…!”

“와아아아!”

모두가 축제 분위기였다. 나 빼고.

*   *   *

자정을 향해 다가가는 시각.

뉴블랙 숙소에는 멤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다들 핸드폰을 앞에 두고 있었다.

막내가 거실에 뒹굴 거리며 물었다.

“형들, 이거 언제 연락 올 거 같아여?”

“음. 일반인분들부터 해야 한다고 순서 밀린 거 같아. 우리는 아마 끝에쯤…?”

비주가 사과를 깎으며 대답했다. 옆에서 사과를 우물거리던 중현이 물었다.

“우주 형 잘하고 있겠지?”

“…….”

잠시간 흐른 침묵.

‘그럴 리가 없지.’

‘거의 날뛰고 있을 텐데.’

모두가 천장을 바라보다가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리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못할 수가 없어요. 그 사람 특기가 그건데.”

“제 생각에 지금쯤 피디님이 함박웃음 지을 타이밍이에여. 보통 녹화 시작하고 이때쯤 되면 피디님들이 우주 형을 보물 고블린처럼 바라보더라구요.”

지금까지 있었던 방송 녹화를 떠올린 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현장에서 뭐 하고 있을까? 뭐 새로운 거 나왔으려나?”

“글쎄여. 뭐 나올 만한 게…….”

곰곰이 생각하던 왕지호가 말했다.

“그래도 연예계 데뷔하기 전인데 뭐가 막 많았겠어여? 데뷔하고 나서 에피소드가 훨씬 많겠지.”

“그건 그러네.”

비주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이러다가 우주 형, 상암동에서 바로 샵으로 와야 할 텐데…….”

거실에 핸드폰을 두고 빙 둘러앉은 이들이 하품을 삼키며 기다렸다.

그 동안 지호와 리혁은 음방 MC용 대본을 뒤적였고, 중현은 젤리 봉지를 뒤적였다.

비주가 핸드폰을 가만히 보면서 ‘전화가 와라. 와라…’ 하면서 열심히 주문을 중얼거릴 때.

지이잉-

“어! 왔다!”

모두가 잠이 달아나서 들뜬 얼굴로 핸드폰 앞에 모였다.

“여보세요!”

아마 녹화장에선 음성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겠지?

어차피 그들의 리더는 누가 누군지 알아볼 테지만 상관없었다.

-괜찮으시겠어요? 저희 방송은 뒷감당을 해주지 않아요.

“괜찮아여! 저희는 그냥 뒷담 실명인증제로 갈게여!”

이윽고 뉴블랙 멤버들이 신이 나서 평소 선우주가 부끄러워했던 일을 가감 없이 말해 주었다.

“하하핫!”

생각만 해도 웃겨서 키득거리는데 어째 수화기 건너편 반응이 심심했다.

-아아, 그래요?

-그런 일이 있었네!

열심히 반응은 해주는데 저쪽에서 반응이 덤덤했다. ‘그래, 그랬구나’ 하면서 미소를 지어 주는 느낌.

네 멤버는 금세 침울해졌다.

비주가 물었다.

“혹시 저희 얘기가 재미가…….”

-아니, 그게 아니고. 얘들아.

그들의 리더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해명했다.

-임팩트가 큰 게 줄줄이 터져서 그래.

아! 분량을 많이 땄구나.

그럼 OK라는 생각에 그들이 흐뭇하게 웃었다. 상대편에서 MC들도 수군거리며 말했다.

-맞네. 이게 평소였다면 배 잡고 웃었을 텐데, 앞의 것들이 자극이 너무 셌어.

-힘내요! 뉴블랙! 그대들은 최선을 다했어…!

-힘든 건 없어요? 힘든 거?

그러면서 ‘너희 힘들지?’ 하는데 뉴블랙 멤버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음? 왜 우리를 불쌍하게 보는 거지?’

그리고 그런 반응이 이어질수록 진심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촬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   *   *

“고생하셨습니다!”

다 같이 고생했다며 작별인사를 했다.

TNT, 틴스피릿, 와일드의 리더와는 번호를 교환한 후 게스트들끼리 모여 인증샷을 찍고.

외투를 챙기는 MC들에게도 일일이 인사했다.

“아. 맞다. 핸드폰 좀 줘봐. 번호 찍어 주게.”

금세 신토끼의 MC 네 명의 연락처가 번호부에 저장됐다.

이미 안면이 있는 유창현은 오늘도 너무 잘했다면서 어깨를 툭툭 쳐 주고 갔다.

“고생하셨습니다!”

“우주 씨, 오늘 진짜 고생했어!”

스탭들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돌아다녔다.

미리 종이를 준비해온 작가님들의 요청에 ‘To 누구에게’ 하는 사인도 쓰고. 기념용 인증샷도 찍고.

피디님으로부터도 다음에 또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오늘 풀었던 건 사실 제보 들어왔던 것 중에 절반도 안 되거든. 다음에도 우리 프로에 꼭 나와 줘. 꼭.”

“……네, 그럴게요.”

“참. 이것도 받아가고.”

5인용 기프티콘 같은 것을 건네주었다. 카페 케이크나 커피 음료수 같은 걸로 교환되는.

“엇, 감사합…….”

“아까 도준기 피디가 출연 성사 기념으로 전달해 달라고 주고 갔어.”

“니다…….”

마음속에서 눈물이 빗줄기처럼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진짜 이제는 무를 수가 없는 일이 됐구나.

그래도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아니에요. 한조 씨.”

물귀신처럼 바라보는 시선에 한조가 몸을 흠칫 떨었다.

“내일도 1위 되길 바랄게요.”

“네, 스트릿 보이즈도 다음 앨범 대박 나요!”

컴백하면 같이 놀자는 이야기를 나누며 한조와도 헤어졌다.

그 동안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차량에 올라탔다.

민기 형이 간식거리가 가득 담긴 편의점 봉지를 건네주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수고했다. 인마.”

“형도 기다리느라 고생했어요.”

어느덧 새벽 2시를 넘긴 시각.

가로등이 비추는 텅 빈 도로를 차량이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야경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샵으로 바로 가야겠죠?”

“그치. 시간이 좀 애매해서… 녹화가 예정보다 엄청 길어졌잖아.”

“그래도 예전에 2부 하자고 11시간 찍었을 때에 비하면 훨씬 빠르게 끝난 거래요.”

적은 시간으로 2주치 분량을 뽑아냈다며 제작진이 몹시 기뻐했다.

“어으…….”

초코 캔음료를 마시니 그래도 좀 살 것 같다.

녹화 내내 리액션을 열심히 했더니 목이 따끔따끔한 느낌.

피곤하지만 그래도 방송에 나올 만한 뭔가를 하고 나왔다는 생각에 기분은 좋았다.

꺼 두었던 스마트폰을 켜 두니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형 올 때까지 저 안 잠!’한 다음에 5분 뒤에 자러 들어간 막내의 메시지를 보며 피식 웃기도 하고.

밥밥밥 하는 TNT 애들도 있고.

아까 나왔던 초등학교 동창 이정훈과 군 후임 하은성이 보낸 메시지도 눈에 띄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내가 지나온 길에 있었던 사람들이 다들 좋게 기억해 주고 있는 듯했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몸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형, 저 조금만 졸게요.”

“어. 그래. 이따 깨워 줄게.”

너무 늦은 시간이라 답장은 내일 보내기로 했다. 동생들에게 곧 보자는 문자를 남긴 후 핸드폰을 넣을 때였다.

지이잉.

새로 들어온 문자 메시지가 보였다.

[사나이가 간다 피디입니다. 선물은 잘 받았어요?]

“흐아악!”

잠이 확 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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