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49화
“형? 얼굴이 왜 그래요? 오는 동안 잠을 하나도 못 잤어요?”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샵에 도착하자마자 비주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남극 다큐멘터리에 나온 카메라맨이 된 것 같다. 소파에서 비척비척 일어난 펭귄들이 졸졸 따라붙었다.
“형, 잘하고 왔어여?”
“멘탈 털린 얼굴인데, 거기서 누가 짜증나게 했어요? 내가 뒤에서 같이 욕해줄게요.”
“이거 먹어요. 형.”
중현이에게 받은 곰젤리를 우물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새벽까지 녹화를 하고 온 걸 고려했는지, 평소보다 더 밝게 웃으며 반겨 주는 분위기였다.
잔뜩 힘이 들어갔던 어깨가 서서히 풀렸다.
TJ 엔터에서 데뷔한 선배가 결국에는 같이 데뷔한 멤버들이 최고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가족 품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얘들아…….”
내가 울적한 눈으로 말하자 걱정 어린 시선들이 따라왔다.
한숨을 푹 쉬다가 ‘사나이가 간다’의 도준기 PD와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나, 군대 또 간다.”
“으하하!”
가족 맞네.
누구는 슬퍼서 눈물이 나오려는데, 누구는 눈물을 흘릴 만큼 폭소하고 있었다.
비주만 색다른 반응이었다.
“어머, 진짜요? 어떡해…….”
“비주야. 입에 올리고 있는 손 내려 봐.”
“…엇, 야. 김중현. 하지 마.”
중현이가 비주의 손을 붙잡아서 내리니 잔뜩 올라가서 웃기 일보 직전의 입꼬리가 보였다.
“그럴 줄 알았지.”
하지만 나는 째려보는 대신 푸근하게 웃기만 했다.
‘군대 간대요~’ 하며 흥이 폭발한 멤버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이럴 줄 알고, 내가 피디님한테 한 명 정도 데려가겠다고 말했어.”
다들 표정이 다급해졌다.
“이상한 분이네요!”
“왜! 왜! 우리 우주 형을 꼭 데려가려고! 응? 진짜 이건 납득이 불가능한 일이에여!”
“진짜, 이런 좋은 사람을 왜 데려간다고. 납득이 안 가네. 가지 마요, 그냥.”
“군대는 좀…….”
호불호 없는 중현이마저 불호를 표할 만큼 악명을 지닌 프로그램에 잠시 감탄이 나왔다.
내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으, 뻐근해라.”
“넵.”
“다리가 쑤시네.”
“뭐해여. 얼른 안 두드리고?”
실시간으로 뭉친 근육이 풀어지는 걸 느끼며 동생들을 부려먹었다.
그 동안 신토끼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한조가 근육몬이 됐어.”
“……?”
“쉬는 시간이라서 쉬고 있는데, 사나이가 간다 PD님이 찾아와서 나랑 인증샷 찍으러 왔어.”
“……?”
“군대 후임이 흑역사 폭로한다고 전화했는데, 아이돌로 데뷔하려고 하는 중이라더라.”
“……?!”
이야기를 할 때마다 동생들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해 갔다.
* * *
여의도. PBS 방송국.
새벽부터 출근길에, 음방 드라이 리허설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피곤할 때 느껴지는 특유의 몽롱함 때문에 모든 게 휙휙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표정관리에 신경 쓸 기력도 없어서 마스크를 썼다.
출근길 사진을 검색하다가 ‘마스크로 꽁꽁! 민낯 사수’ 하며 은근히 비꼬는 헤드라인을 봤는데, 아마도 아까 마스크 좀 내려달라고 외친 기자가 아닐까 싶다.
뭐 그러려니 했다.
다행히 대기하는 동안 틈틈이 잠을 자 둔 덕에 금세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포니테일을 한 걸그룹 멤버가 우리를 반겼다.
전유빈.
‘라비앙 로즈’의 멤버로 우리가 썸씽 활동을 할 때부터 뮤직온의 MC였던 인물이다.
내가 꾸벅하며 인사했다.
“저희 막둥이들 잘 부탁드릴게요.”
“믁등으르그 흐즈 므요.”
옆에 있던 리혁이가 복화술을 하듯이 내 옆구리를 툭 쳤다. 지호가 나를 째려보았다.
오늘 진행은 기존 MC인 전유빈에 리혁이와 지호가 스페셜 MC로 추가되는 3인 체제였다.
원래는 배우 강현민이 맡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음주운전이 걸려서 하차했다.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바람개비’의 저조한 시청률에 비관한 게 음주 사유라던데.
그 때문에 출연하는 모든 프로에서 하차하고, 주연이었던 ‘바람개비’도 비상이 걸렸다고 들었다.
“식사를 하셨는지 안 하셨는지 얘기를 못 들었는데, 저희가 먹을거리를 좀 사 왔어요.”
“오오! 감사합니다. 피자 좋아하는데 잘 먹을게요.”
전유빈이 동글동글한 눈을 빛내며 고마움을 표했다.
수제 피자가 담긴 박스를 건네자 저쪽 매니저가 대신 받아들었다.
‘콜라는 제로로 준비했어요.’ 하면서 페트병을 건네주었는데, 그게 뭐가 웃겼던지 둘이 막 웃었다.
“저희 지호랑 리혁이 정말 잘 부탁드려요. 얘네가 MC 같은 건 아직 안 해 봐서.”
“우주 형……. 그믄흐여.”
지호가 입으론 생글생글 웃으며 눈으로 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 비주, 중현이가 간곡하게 부탁했다.
“리혁이가 긴장을 많이 해서…….”
“지호도 은근 부끄러움이 많거든요. 자꾸만 걱정이 돼서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지호와 리혁이가 ‘아, 제발!’ 하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담임 선생님에게 ‘우리 애가 연약해요’ 하며 인사하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학생의 눈빛이었다.
“아! 형들! 저 애기 아니라고요!”
“얼른 가서 쉬어요! 얼른!”
결국 보다 못한 지호와 리혁이가 우리 셋을 MC 대기실 밖으로 쫓아냈다.
밀려나면서도 우리는 전유빈과 그 매니저에게 꾸벅 인사했다.
“저희 애 잘 부탁드려요오……!”
“좋은 아이들이에요…!”
“아이, 진짜!”
홍당무가 된 리혁이가 우리의 등을 밀어댔다. 우리가 빠져나가자마자 지호가 문손잡이를 잡았다.
문이 닫힐 때까지 우리가 주먹을 쥐며 화이팅! 해 보였다.
“지호야, 리혁아아! 부담 갖지 마! 형들은 우리 동생들 믿어!”
“피자 꼭꼭 씹어먹어야 해.”
“먹고 후기 좀.”
리혁이가 부들부들하며 속삭였다.
“……앞으로 아는 척하지 마요. 셋 다.”
문이 쾅! 하고 닫혔다.
안에서 두 남녀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팝콘이 필요하다.
대기실 TV 화면에서 광고가 흘러나오는 동안 매니저와 스탭들, 우리 셋까지 한데 옹기종기 모였다.
다들 설레는 얼굴이다.
광고가 끝나고 바로 나온 신인 보이그룹의 무대가 끝난 후.
-판타니스의 ‘Lord’, 뉴블랙의 ‘바람꽃.’
-이번 주 뮤직ON 1위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요?
귀에 익은 목소리들이 내뱉는 멘트에 다들 벌써부터 웃기 시작했다.
“미치겠다.”
“쟤네 근엄한 척하는 거 봐.”
“지호 목소리가 다른데? 저거 연기톤이지?”
이윽고 두 막내가 화면에 등장했다. 가운데 전유빈을 중심으로 둘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전 세계 팬들이 하나 되는 K팝의 중심!
-생방송 음악방송, 뮤직~
-ON!
이윽고 손발이 절로 오그라드는 음방 특유의 토크가 시작됐다.
-아, 꽃구경 가고 싶다.
-아니. 유빈 씨.
지호가 말했다.
-꽃을 보러 어딜 가세요. 저희가 있는데.
-보세요. 꽃밭이죠?
리혁이의 ‘꽃밭이죠?’ 멘트에 모두 대기실 바닥에서 흐느끼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 같으면 진짜 웃음이 완전 터졌을 텐데 전유빈은 과연 프로다웠다.
입꼬리가 살짝 꿈틀했지만 내색 하나 없이 멘트를 받았다.
-그러네요. 꽃을 보러 어딜 갈 필요가 없겠는데요? 그럼 다 같이 꽃받침을 해 볼까요?
-하나 둘 셋~ 우우~
비주가 거의 울기 시작했다.
모두 스마트폰을 들어서 TV 화면 속에서 양손으로 꽃받침을 하고 있는 세 남녀를 찍었다.
오늘 순서를 소개하는 코너가 이어지는 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잘하네.
MC를 1년 넘게 했던 걸그룹 멤버 옆에서도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우리 막내는 평소와 다른 연기톤이라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중현이가 슥 웃었다.
“왜 그래?”
“지호가 형 흉내 내고 있어요.”
“그래?”
비주도 보다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지호가 생각한 어른스러움의 표본이 형이었나 봐요.”
“내가 저런다고?”
저렇게 느끼하게 웃을 리가 없는데.
그런데 스탭들도 보더니 ‘어, 우주다. 미니 우주.’ 이래서 당황했다.
매니저들도 똑같다고 인증을 해 줘서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네, 이번 주 생방송 뮤직 ON에서는…….
화면 속에서 우리 막내가 부드럽게 멘트를 소화하고 있었다.
잘한다.
발음이랑 발성이 좋아서 목소리가 쏙쏙 박히듯 들어온다. 마치 오디오 북처럼.
“리혁이도 잘하네요.”
“그러게. 쟤도 잘한다.”
“어제 엄청 연습했거든요. 형 녹화 가 있는 동안 둘이서 한참 동안 대본 붙잡고 씨름했어요.”
첫 연습 때 보였던 뻣뻣함은 어디로 갔는지, 리혁이도 능숙해 보였다.
그럼에도 한 가지 해결이 안 된 게 있다면 붉어 보이는 귀라고 할까. 거기다 눈에 띄는 부위가 하나 더 있었다.
메이크업 쌤에게 물었다.
“쌤, 오늘 리혁이 화장 두텁게 하지 않았어요?”
“어. 그렇지…?”
멘트할 때마다 얼굴이 붉어진다고 고민하기에, 내가 메이크업 쌤들에게 오늘 리혁이 파운데이션을 평소보다 두껍게 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확실히 그 덕에 낯빛은 똑같았다.
평소처럼 서늘한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
귀가 살짝 붉긴 했지만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눈치를 못 챌 것 같다. 귀에도 비비 크림을 좀 발라서.
그런데…….
“형, 리혁이 목 좀 봐요.”
비주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말대로 새하얀 리혁이의 얼굴과 달리 목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인터넷 게시판이 난리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뮤온 보는 사람 있음?
-ㅋㅋㅋㅋㅋㅋㅋ나 폰에 번인왔는줄 알고 계속 문지름
-목색깔 봐
-술 마신 줄 알았다ㅋㅋㅋㅋㅋㅋ
-쟤 뉴블랙이지? 숯불 있음 설명 좀
-지나가던 숯불) 부끄러움 많기로 유명해서 저런 멘트 누구보다 못 견뎌하는 성격임.
-ㅋㅋㅋㅋ지금 본인만 모르고 있는 거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여유로운 듯 ‘훗’ 하며 미소를 짓고 있는 리혁이의 모습에 다들 웃기 시작했다.
“아이고, 어떡하지……. 알면 엄청 창피할 텐데.”
“형, 웃고 있죠?”
비주가 내 손을 내렸을 때 잔뜩 씰룩거리고 있는 입꼬리가 드러났다.
진짜 신난다.
팬 커뮤니티에서 실시간으로 캡처와 움짤을 만드는 우리 수플레들이랑 같이 놀고 싶은 느낌.
멘트를 할 때마다 목이 발갛게 빛났다가, 다시 하얘졌다가 벌게지는 장면이 돌아다녔다.
노재현 선생님한테도 톡으로 보내드려야지.
뮤온 마지막 무대가 될 때까지 진짜 즐겁게 시간을 보낸 거 같다.
엔딩 무대를 하기 위해서 백스테이지에 섰을 때, MC석에서 내려온 우리 애들이 달려왔다.
“어때여. 저 잘했어여?”
“내 흉내 잘 내더라.”
“…아닌데. 그거 제가 아는 딴 사람 흉내 낸 거예여.”
모르쇠로 일관하는 막내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리고 지호를 칭찬할 때마다 흘깃거리며 헛기침하는 두루미에게 시선을 옮겼다.
“어때요. 나도 좀 잘했죠?”
은근히 들떠서 칭찬을 갈구하는 이의 모습에 우리는 따스한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 * *
금요일 PBS 뮤직온의 1위는 우리 차지였다.
토요일, 일요일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주에도 우리가 출연하는 모든 음악방송에 1위 후보로 픽스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로 성공했다는 게 확연히 피부로 와 닿았다.
기사 타이틀에 남아있던 ‘신인’이란 키워드는 모두 사라졌고.
어딜 가든 잘나가는 가수 취급이었다.
방송국 근처에서 미니 팬미팅을 할 때나 아니면 행사를 할 때도 모여드는 인파의 단위수가 달랐다.
-뉴블랙 ‘바람꽃’, 음원차트 정상
-‘바람꽃’, 발표 2주에도 여전히 주간차트 1위 차지해…
-‘바람꽃’, ‘Something’의 기세가 무섭다. 뉴블랙, 新음원강자 등극?
발표 2주 후에도 여전히 일간차트 1위와 주간차트 1위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하고 있는 바람꽃.
거기에 봄노래로 각설이처럼 되살아난 Something까지.
정말 세상이 달라진 기분이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뉴블랙 매니저님 맞죠?”
부르는 곳이 많아진 덕분일까.
우리 매니저들도 면이 살았다.
예전에는 눈칫밥만 먹고 다니던 매니저 형들을 볼 때마다 속상했는데, 이제는 행사 대행사나 광고 관계자들이 ‘매니저님’ 하는 호칭을 따박따박 붙여 가며 대우해 주었다.
산더미처럼 들어온 행사 목록을 분류하는 매니저들이 콧노래를 부를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어이구, 내가 바쁜 사람을 찾아온 건 아닌지 모르겠네.”
“아뇨. 전혀 아니에요. 감독님.”
그리고 난 드라마 ‘슬립’의 음악감독님과 함께하는 중이었다.
작업실을 둘러보던 상대가 감탄하듯 말했다.
“대표님이 엄청 좋으신 분이네. 나도 비싸서 손을 못 대던 물건들인데…….”
“그죠? 한 번 만져 보실래요?”
“오오오……!”
감독님과 내가 장비를 어루만지며 ‘핫핫핫!’ 할 때마다 근처에 있던 A&R팀 직원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 그럼 마무리 작업을 해 볼까?”
회사 엔지니어들이 마무리 작업을 해 주는 동안 나와 강 감독님이 코멘트를 했다.
곡은 이미 완성되었지만 미세한 조정이 필요했다.
우리가 만든 OST에 뉴블랙 멤버 5인의 목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다섯 명의 목소리가 모두 다르기에 미세한 부분을 조정해야 안정적인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이야.”
완성본을 듣던 강 감독님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좋은데? 내가 지금껏 들어본 OST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거 같아.”
“정말요?”
“노래 자체에 힘이 있어.”
감독님이 진지하게 말했다.
“대개 OST는 드라마와 결합되어 더욱 재미를 배가시켜주는 편이지만, 이건 이 자체로만 내어놔도 훌륭해. 안에 담긴 힘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반응이 좋을까요?”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아.”
작사나 작곡에 한 자리 걸치고 싶을 만큼 탐나는 곡이라는 칭찬이 돌아왔다.
이러다가 OST도 차트에 오르는 거 아니냐는 농을 들었다.
“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온에어 되는 건가요?”
“그렇지. 아마 7화에서 꽤 중요한 부분에 삽입이 될 거야. 총감독이랑 얘기를 해 봐야겠지만….”
이번 주로 6회가 방영된 슬립은 어느덧 후반부에 접어들고 있었다.
회차가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오르고 있어서, 조만간 GTV 최고 시청률을 갱신할 거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우리가 만든 OST는 그 중에서 7화에 처음 들어갈 예정.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라 들뜬다.
진짜 차트인 한 번 기대해 봐도 되려나.
장르물에서 OST가 뜬 케이스를 별로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들뜬 건 어쩔 수 없었다.
음악감독님이 직접 좋은 노래라고 인증해 주기도 했고.
“그럼 다음 주 중에 한 번 또 연락하자고.”
“네, 고생 많으셨어요. 감독님.”
A&R팀 직원들과 함께, 외투를 챙겨 나서는 감독님을 배웅할 때였다.
핸드폰을 바라보던 감독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뉴블랙이 부른 노래 중에 하나가 또 차트에 들어갔다는데?”
“네?”
무슨 소리지?
내가 눈을 멀뚱멀뚱 뜨자, 상대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포털 연예면에 기사가 떠올라 있었다.
“……?”
그 기사에 내 옆에 있던 A&R팀 직원이 핸드폰을 들더니 망고 실시간 차트에 들어갔다.
“…….”
그리고 난 벙찐 표정을 지었다.
맞다. 이게 있었네.
지난 몇 시간 동안 핸드폰을 끄고 작업에만 열중했던 터라 전혀 생각 못하고 있었다.
지금 바람꽃을 누르고 차트 1위에 등극한 새 노래.
‘슬립’의 OST가 어떤 성과를 낼지 기대하고 있을 때, 엉뚱한 것이 뿅 하고 나타나 있었다.
1위. 뉴블랙 - 덕순아 (PBS 도전, 명곡 발굴단)
차트를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 * *
군산.
화창한 봄 하늘 아래, 하루 종일 짜증이 잔뜩 난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덕순아아……!
“옘병.”
핸드폰 가게에서 인형이 덩실덩실 춤추는 동안, 스피커에서 트로트 풍의 신나는 ‘덕순아’가 흘러나왔다.
-덕순아아아……! 덕순아~
“옘병첨병하고 있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더니 직원이 할인 세일을 외치는 동안 ‘덕순아’가 흥겹게 흘러나오고.
길거리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파는 차에서 ‘덕순아아아!’ 하며 외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들을 때마다 왠지 신이 나고 중독성 좋은 노래.
인터넷에서 ‘노동요’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덕순아’였지만 당사자에겐 알 바 아니었다.
“이이이익!”
김덕순 여사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눌렀다.
“아니, 왜 어딜 가든 다 덕순이 옘병이냐아!”
세상천지 사방에서 ‘덕순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손자가 윙크하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가 분통을 터뜨릴 때.
때마침 카페 앞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덕순~
김덕순 여사는 진심으로 장을 봤던 봉지를 집어던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