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0)화 (25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0화

PBS ‘도전, 명곡 발굴단!’의 11회는 16.6%라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기존 출연진이 고별 무대를 하고 새로운 가수가 합류한다는 소식에 연예부 언론은 연일 기사를 쏟아냈고, 주말 안방 TV의 채널은 공영방송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본방송을 앞두고 인터넷도 시끌시끌했다.

-오늘이 1기 마지막 회차죠???

-새로 합류한다는 애들 실루엣이 걸그룹 같던데.. 5인조 걸그룹이면 나올 만한 애들이 누가 있을까요?

-NYX라는 썰 돌던데요

-걔넨 또 누구지

-근데 누가 들어와도 뉴블랙만큼의 임팩트는 힘들듯요ㅋㅋㅋ 첫 경연 임팩트가 너무 쩔어서

-ㅇㅈㅇㅈ

-또 모르죠ㅋㅋㅋ 뉴블랙도 나올 때만 해도 욕 바가지로 먹엇는데 지금은 뭐..

-이번에 걸그룹으로 교체되는 것도 보이그룹은 안하려고 해서 그렇다던데요ㅋㅋ 괜히 나와서 실력 뽀록나고 비교되면 안 나오는것만 못하다고

-뉴블랙이 보컬만 따지면 동세대에서 넘사긴함

-ㅇㅇ 탑급

-뉴블랙한테 자아의탁한 사람이 왤케 많아;; 왜 아저씨들이 뉴블랙부심을 부려요ㅋㅋㅋㅋ

-명곡단에서 확 떠서 그런가. 내가 키워낸 느낌

경연 프로에 왜 아이돌이 나오냐며 욕이 가득했던 게시판이 지금은 뉴블랙에 대한 호의로 가득했다.

하차에 대한 아쉬움, 누가 오든 저 자리는 대신 못할 거라는 이야기, 그에 반발심을 느낀 댓글들이 한데 섞였다.

실시간으로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불판.

-오. 뉴블랙 무대 시작하나 본대요

-기대 중임

-유명덕의 덕순아? 유명덕 노래 중에 저런 노래도 있었나???

-지금 망고에서 잠깐 들어보고 왓는데 그저 그런데요;; 편곡 잘해야 살릴 수 있을듯

-원곡자한텐 미안하지만 명곡이라기엔 애매한 티어. 다이아랑 골드 사이에 낀 플레 느낌

‘세상 모든 덕순이에게 바치는 노래입니다’ 하는 우주의 내레이션이 잔잔하게 지나간 후.

[덕순아아아……!]

라이브 밴드의 흥겨운 연주와 함께 뉴블랙 멤버들이 무대를 휘젓기 시작했다.

평소였다면 관객들의 리액션 컷을 연달아 보여 주며 ‘반응 쩔었던 무대야!’ 하고 강조했겠지만 ‘덕순아’는 그런 게 없었다.

오히려 그런 컷이 낭비라는 듯 무대만 쭉 이어서 흘러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와..

-ㅋㅋㅋㅋㅋㅋㅋㅋ개잘해

-얘네 노래 커버 가능 범위가 어디야

-편곡 개좋은데요?

-?? 방금 노래 듣고 온사람인데 이게 뭔일이래.. 완전 다른 노래인데요?

-편곡하랬더니 만들어왔네

-원곡자 첫 소절부터 글썽글썽하는거 이해가 감

-리스펙 할만 하죠. 이 정도면 거의 철거하고 건물을 다시 세운 수준;; 막귀인 제가 들어도 엄청 공들인 티가 나는데요

-우주갓.. 그는 대체..

원곡의 가사와 멜로디 라인을 거의 재창조한 우주에 대한 호평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뉴블랙의 경연곡들 중에서 편곡 전후 분위기가 가장 다른 곡이었다.

하지만 비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즘 유행할 만한, 굉장히 트렌디한 트로트 곡으로 변모한 ‘덕순아’는 원곡자조차 TV 속에서 눈을 글썽일 만큼 좋았기 때문이었다.

-얘넨 볼수록 호감이네요. 매번 무대를 즐기는 게 참 보기 좋음

-얼마 전에 노재현 다큐에 나왓을때도 호감. 저기 노래 잘하는 애랑 엄청 오순도순하더라구요

-막 TV틀었습니다ㅎㅎ 저기서 지금 반짝거리는 애가 우주인가요?

-ㅇㅇ 오늘 텐션이 대박이네요

뉴블랙 멤버 전원이 노래를 흥겹게 부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우주는 압도적이었다.

‘덕순! 덕순! 덕순!’ 하는 게 시청자들에게도 느껴질 만큼 얼굴에서 아예 빛이 났다.

행복으로 반짝거리는 미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무대라고 제대로 즐기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표정이었다.

무대가 끝났을 때도 어찌나 아쉬워하는지 보는 사람이 다 안타까울 정도였다.

-눈물까지 글썽..

-나같아도 그럴듯요. 쟤네가 확 뜬게 명곡단이잖아요.. 여러모로 만감이 교차하긴 할듯

-보는 내가 다 짠하네

-멤버들은 그래도 후련해 보이는데 우주 혼자 미묘해보이네요. 무대가 끝나고 미련이 남은 느낌..

-리더니까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겟어요

현실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아이고, 어린애가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네.”

“그러게 말이에요. 지도 어린데 다른 어린애들 케어하면 얼마나 힘들겠어. 마지막이고 하니까 눈물이 복받쳤나 보네”

“쯧쯧쯧.”

“쟤네는 볼 때마다 애들이 참 심성이 고와. 다큐에서도 어른들 대하는 태도가 제대로더만.”

TV를 보던 어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벙찐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아니, 그게 아닌데…….’

인터넷에 모인 수플레들은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을 공유했다.

-다들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어ㅋㅋㅋㅋㅋㅋ

-아니ㅋㅋㅋ 우리애가 저런걸로 울먹이는 애가 아닌데..

-ㅋㅋㅋㅋㅋ지금 전국의 시청자들이 단체로 착각물 찍는 중

-이.. 이게 아닌데.. 근데 반응은 또 좋고

-처음에는 이걸 설명해줘야 하나 싶엇는데 알아서 좋게 착각해줘서 입 다물고 있는중

-엄마아빠 눈물 글썽이지 마요.. 우주는 저 노래 끝나서 아쉬워하는 거야

-저 와중에 거짓말하는거 봐 몰입이 어렵기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아일체 수준이던데

-리혁이 잠깐 0.1초 경멸 봤어요???ㅋㅋㅋㅋㅋ 네가?? 네가??? 이런 느낌

-저는 중현이가 고개돌려 한숨 쉬는걸 보았읍니다

그렇게 진실을 함구하며 본 방송을 즐기는 수플레들이었다.

TV 속에서 뉴블랙이 3집 홍보를 하고 나서 내려가고, 새롭게 출연할 가수들의 맛보기 무대가 흘러나올 때.

‘덕순아’의 임팩트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덕순아가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쿵짝쿵짝 덕순아아아아ㅏㅏㅏ

-쿵짜자작짝짝

-덕순아아아아ㅏ

-ㅋㅋㅋㅋㅋㅋㅋㅋ다들 미쳣어요?

마치 뇌에다 ‘덕순!’하고 도장을 쾅 찍어댄 것처럼 잔상이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후크송처럼 귓가에 맴도는 ‘덕순아’의 후렴구.

벌써부터 미튜브와 음원 사이트에는 ‘덕순아’를 검색하는 사람들이 나올 정도였다.

마침내 실시간 음원차트 1위까지 올랐을 때.

노래를 부른 당사자들조차 전혀 예상 못하고, 저마다 개인 연습에 열중해 있는 동안 인터넷은 ‘덕순아’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덕순아 개좋네요ㅋㅋㅋㅋ

-근데 편곡도 저작권료 받나요??? 지금까지 우주가 모은 저작권료 좀 궁금해지네요

-노래 중독성 쩐닼ㅋㅋㅋㅋㅋ

-진짜 마무리도 역대급. 누가 와도 저 미친 포스는 대신 못한다ㄷㄷ

이런 댓글이 넘쳐나면서 ‘대신 못할 건 아니죠’ 하면서 반감을 가진 이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얘넨 뭔데 실드가 이렇게 많아?’

불만 어린 얼굴로 인터넷에 ‘뉴블랙이 그 정돈 아니죠. 노래도 그냥 그런 듯’ 하고 댓글을 단 한 남자.

다른 네티즌이 반박을 할 때마다 혼자 숨을 씨근덕거리며 한참을 싸워대는 그였다.

‘그냥 트로트인데. 이게 뭐 그 정도로 좋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자꾸만 ‘덕순아……!’ 하는 목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잠을 잘 때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러 차에 탈 때도.

평소처럼 운전할 때 라디오를 틀어놓을 때도.

-덕순아……!

아침 라디오에서도 ‘신나는 월요일이 되시길 바라며’ 하며 덕순아가 엔딩곡으로 나왔다.

“흠흠…….”

왠지 모르게 어깨가 살짝 들썩여지는 노래.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반복재생을 누르게 될 법한 노래였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니지만 소심하게 어깨만 움찔움찔하며 리듬을 타던 남자였지만 노래가 이어질수록 버틸 수 없었다.

이윽고 남자는 자신의 신념을 버렸다.

“덕순아~”

출근길 여기저기서 ‘덕순아’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   *   *

결과적으로, ‘덕순아’는 차트 1위를 유지하지 못했다.

얼마 안 가 일간 13위 정도로 하락한 순위.

하지만 거기서 더 떨어지지 않고 계속 순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야금야금 올라오는 중이었다.

일간 차트 1위에 뉴블랙의 ‘바람꽃’이 있고, 7위에 덕순아, 17위에 Something이 있는 역대급 상황에 연예부 기자들이 발 빠르게 소식을 전했다.

-뉴블랙, 이제는 음원 ‘강자’ 아니라 ‘깡패’

-“이 구역의 음원돌은 나야”, 뉴블랙의 차트 점령

-유명덕 “뉴블랙이 편곡한 ‘덕순아’ 1위. 감동해서 눈물 나왔다. 1500자 감사 문자 보내…”

레몬 엔터 홍보팀의 전화기도 불이 났다.

“‘덕순아’ 관련해서 멤버 반응이요? 저희가 보도 자료 준비 중이니까…….”

“트로트 가수 누구요? 그분이랑 뉴블랙이 콜라보한다고요? 출처가 어딘데요?”

“아직 확정된 사실 아니구요.”

바람꽃이 첫 1위를 거두었을 때만큼 핫한 분위기.

시청률 17%에 근접한 예능에 편승하려는 듯 여기저기서 근거 없는 소설을 기사로 쓰는 통에 혼란스러웠다.

한편, 매니지먼트 팀 사무실도 바쁜 건 마찬가지였다.

“…….”

윤석환 실장은 질린 얼굴로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지이잉.

하나 받으면 하나가 오고, 끊으면 또 하나가 새로 왔다.

대부분 행사 대행사였다.

“…예예, 행사 레퍼토리에 ‘덕순아’를 꼭 추가했으면 좋겠다구요?”

“예예. 네. 덕순이요?”

“…혹시 덕순아 추가하시려고 전화 거신 건가요? 네, 안 그래도 지금…….”

이미 확정된 행사든 새로 들어오는 행사든 간에 ‘바람꽃’과 함께 꼭 ‘덕순아’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냐.”

우주가 영혼을 갈아서 편곡한 노래기는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대박이 나 있었다.

미튜브에도 ‘덕순아 4시간 버전 (노동요)’라고 되어 있는 리믹스가 올라오기도 하고.

“…….”

달력에 표시된 행사 스케줄을 확인하다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덕순아를 안 찾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아, 하나 있긴 하구…”

지이잉.

“여보세요. 아, 네. 김 팀장님.”

-주최 측에서 레퍼토리에 덕순아를 꼭! 추가해 달라고 부탁을…….

“아, 예.”

그 하나마저 사라졌다.

윤석환은 헛웃음을 지었다.

뉴블랙이 만약 트로트 그룹이었다면 이 노래 하나로 전국 투어를 할 수 있을 정도.

차트에서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순위권에 머무른 덕순아는 특히 50대 이상에서 1위였다.

‘대박이 났네.’

‘바람꽃’이 뉴블랙이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첫 번째 곡이라면, ‘덕순아’는 예상치 못하게 빵 터진 역대급 행사곡이었다.

*   *   *

-옘병.

“할머니… 내가 미안해.”

화면 속에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덕순 여사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찌릿.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빛을 피하며 말했다.

“아니, 나도 이 정도로 잘 될 줄은 몰랐지. 그냥 열심히 좀 부른 건데…….”

-내가 시방 너 때문에 살 수가 없다! 어딜 가든 덕순아, 덕순아. 내가 뉘집 개새끼도 아니구.

“할머니. 개새끼라니, 애들이 듣잖아.”

-들으면 어떠냐! 흥. 하여간 지들 생각만 하지 노인네 생각은 안 해 주고. 니네도 다 죄가 있는겨! 그러게 누가 노래를 그렇게 기깔나게 잘하래!

분노를 기관총처럼 따다다다 쏟아내는 할머니에게 죄인처럼 고개를 웅숭그린 동생들을 핸드폰으로 비춰 주었다.

“노래 잘해서 죄송합니당…….”

내가 화면에서 빠져나가자 불호령이 터져 나왔다.

-야! 너 어디 화면 밖으로 빠지려고 그러냐. 언능 튀어 와!!

“예. 죄송함다…….”

-내가 환장해 가지고. 입만 효도효도 그러지. 호도과자 같은 눔이. 마트에 가도 덕순아 옘병하고, 폰 파는데 가도 덕순아! 하고. 백반집에서도 손님들이 벨소리로 덕순아! 하는데 내가 듣기 싫어 죽겄어.

“어, 그…….”

-나도 니들 이름 가지고 노래 만들 테니까 그런 줄 알아라!

“만들 줄은 알고?”

-야!!!!

고막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다. 지호가 두 손으로 귓불을 말아 귀를 막을 때, 리혁이가 중얼거렸다.

“5분 혼날 걸 10분으로 만드네…….”

극대노한 김덕순 여사를 달래느라 한참을 애써야 했다.

“모피 사 줄까?”

-필요 없으니까 내려오지 마! 나 환경보호잔가 뭔가 지금부터 할 테니까 모피고 뭐고 꼴도 뵈기 싫어!

“차 사 줄까?”

-…….

“절에 다니는 라이벌 할머니가 최근에 아들이 차 뽑아 줬다며. 우리 할머니는 더 좋은 거 타야지.”

-…….

“할머니도 그런 거 해 보고 싶지 않아? 허름한 백반집 같았는데 장사 끝나고 나면 선글라스 끼고 퇴근하는 사장님들 있잖아.”

김덕순 여사의 분노가 사르르 풀어졌다.

빙하가 녹아 푸르른 초원이 되는 느낌이라고 좋아하니 태클이 들어왔다.

“그거 좋은 거 아닌데. 지구온난화예요.”

“…….”

수화기를 잠시 떨어뜨려 놓고, 중현이에게 목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끌고 가라.’

‘네. 형.’

‘느아아!’ 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할머니의 화를 풀어주었다.

‘덕순아’로 번 돈이 다 우리 덕순이에게 가는 거다 하니 ‘그르냐’ 하면서 헛기침을 흠흠 했다.

캡처 버튼을 몰래 눌렀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깜찍하고, 예쁘고 멋지고 좋고 아무튼 그랬다.

“후…….”

그렇게 한참을 달래고 나서 겨우 끊었다.

“잘 넘겨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니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할머님이 빨리 풀어지셔서 다행이에요.”

“원래 상처 받은 마음은 돈으로 어루만져 주는 거야.”

지호가 맞는 말이라며 공감해 줬다.

‘덕순아’가 실시간 차트 1위에 올라가고, TV에 나왔을 때만 해도 할머니는 ‘또 옘병하냐’ 하는 평범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며칠 동안 질리도록 나오니 분노가 폭발한 모양이다.

하긴 나 같아도 손녀딸이 ‘젠민아아아! 왜 젠민이냐아아!’하는 노래가 하루 종일 나오면 참을성이 바닥날걸.

“오, 저 방금 좋은 아이디어 떠올랐어요! 다 같이 나중에 아들딸 생기면 아이돌 그룹으로 만드는 거 어때요?”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누군가 때문에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렸다.

평생 숙소생활 가자! 할 것 같은 분위기라서 잽싸게 차에서 내렸다.

-와아아아!

오늘은 수요일.

음악방송을 일찍 마무리하고 나서 충청도에 있는 어느 대학교 행사장을 방문하는 중이었다.

우리가 하는 대학 행사 중에서는 첫 번째.

멀찍이 환한 조명이 빛나고, 걸스온탑의 노래에 환호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반짝이 의상의 걸그룹과 담담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후.

-4월, 그리고 5월 가요계에서 가장 핫한 분들입니다. 이분들 노래 모르는 사람이 없죠! 봄노래 물씬 풍기는 썸 노래의 원조, 그리고 바람꽃과 덕순아까지!

사회자의 목청 좋은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뉴블랙입니다!

그 순간 튀어나온 환호성에 우리는 올라가는 것도 잠시 멈추고 놀랐다.

방금 전보다 최소 서너 배 되는 함성.

멀찍이 걷고 있던 걸스온탑 멤버들이 흠칫 놀라 어깨를 움찔하고는 우리를 바라볼 정도였다.

당사자인 우리도 깜짝 놀랐다.

“…….”

잠시 멍 때리다가 행사 스탭의 손짓에 정신을 차렸다.

-와아아아아!

사람들의 입김이 마치 뜨거운 파도가 되어 덮치는 거 같다.

진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열기가 우리를 압도한다고 해야 하나.

빼곡히 늘어선 관중들.

수백 쌍의 눈동자가 우리에게 향했다. 기대감 어린 표정과 핸드폰을 머리 위로 든 사람들.

마이크를 잡고 인사했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다시 한 번 또 커다란 함성에 움찔했다.

물론, 이런 함성을 처음 겪어보는 건 아니었다.

Something으로 확 떴을 때 장소원 선배와 행사를 다니면 이런 분위기였으니까.

하지만 우리에 대한 함성은 아니었다.

대부분 장소원 선배가 인사를 하면 와아악! 하는 식이었고, 우리는 거기에 낀 들러리 느낌.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우리를 알고 있고, 함성도 그때보다 훨씬 더 컸다.

소름이 쭈뼛 돋았다.

“…….”

겉으로는 여유롭게 웃으며, 멤버들과 간단하게 토크로 분위기를 띄웠다.

바람꽃을 부를 때는 흥얼거리는 사람이 많아서 잠시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지만.

행사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도록 뼈를 깎는 무대를 하고 있으니 주최 측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자, 지금부터 ‘덕순아’를…

-꺄아아아아!

명곡단에서 불렀던 ‘덕순아’는 거의 떼창에 가까운 수준의 반응이 돌아왔다.

“자, 다 같이!”

-덕순아아아……!

“한 번 더!”

-덕순아아아아…!

수백 명이 ‘덕순아’를 열광적으로 외쳐대는 건 정말 보기 드문 진귀한 광경이었다.

동생들과 같이 무대 위에서 방방 뛰면서 느꼈다.

-덕순아아아…!

이건 역대급 행사곡이었다.

*   *   *

송보형 송배님 [나도 덕순아 불러도 돼요?]

송보형 송배님 [덕순아가 행사 대세래!]

송보형 송배님 [우리 회사에서 문의하기 전에 한 번 물어보려고]

송보형 씨가 행사 레퍼토리로 ‘덕순아’를 써먹어도 되냐고 물어왔다.

잘나가는 트로트 가수가 자기 노래 대신 ‘덕순아’를 부르겠다고 할 정도니 그 인기가 체감이 됐다.

사실 우리가 제일 잘 느꼈다.

낮에는 바람꽃으로 음방 1위를 하고, 밤에는 덕순아로 행사장의 주인처럼 등장했다.

신화에 나오는 해와 달의 신 같았다.

낮에는 바람꽃이 지배하고, 밤에는 덕순아가 지배하고.

낮 시간대에 기자와 인터뷰를 하러 카페에 들어가면 바람꽃이 흘러나오고, 밤늦게 휴게소에서 먹을거리를 사러 돌아다니면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덕순아가 들렸다.

“이거 혹시 평생 쓸 운을 여기다 쓴 거 아닐까여…….”

“가능하지.”

막내의 우려 섞인 드립에 우리 모두 공감할 정도였다.

인생 최고의 전성기라고 해도 무방했다.

목요일, 금요일 음방에서 2주 연속으로 1위를 거둔 우리는 지금 숙소에 가득한 트로피를 보며 감탄하는 중이었다.

오늘은 휴일.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지칠 것을 우려한 회사가 오늘 하루는 푹 쉬라고 했기 때문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석환 형이 회사 작업실이랑 연습실 문을 잠가 버려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금요일 밤인 지금, 숙소에서 야식을 시켜놓고 쉬는 중이었다.

“드디어 오늘 나오네여.”

숙소 TV에 틀어져 있는 건 GTV 채널.

오른편 상단에 ‘슬립’이라는 은색 글씨가 반짝이고 있었다.

10부작 금요 드라마 슬립의 7회. 바로 우리가 오래 작업했던 OST가 등장하는 회차였다.

“근데 너희 여태까지 내용 전개된 건 알아?”

“아녀.”

“우리가 드라마 볼 시간이 어디 있었어요.”

스케줄이 너무 바쁜 탓에 슬립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볼 시간이 있어야지.

포털 연예면에서 스포 가득한 기사 제목을 본 게 다라고 할까.

나름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시청하는 중이었다.

바람꽃 전이었다면 초조하게 ‘제발, 잘 되라’ 하고 소원을 빌었겠지만 지금은 마음이 넉넉하다.

바람꽃과 덕순아로 거의 평생 쓸 운을 다 쓴 느낌이라 왠지 이것까지 바라면 염치없는 느낌이기도 했고.

“어, 시작한다. 시작한다!”

다 같이 사이좋게 족발보쌈을 흡입하는 동안 광고가 끝났다.

검은 화면에 ‘본 드라마는 허구니까 시비 걸지 마셈’ 하는 류의 문구가 흘러나온 후.

마침내 드라마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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