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1)화 (25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1화

‘지난 이야기’와 함께 주요 장면이 빠르게 지나갔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금요 드라마의 특성상 전편을 기억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는 못 알아들었지만.

“저게 무슨 내용이지…….”

“흐으음. 대충 어찌어찌 해서 타임 슬립을 한다, 그런 거 아닐까요.”

“지호야. 인터넷에 세 줄 요약 그런 거 없을까?”

“없어여.”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구석기인이 허 의경을 습격하는 장면이었다.

‘지난 이야기’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는 이강진을 보며 우리는 눈을 멀뚱멀뚱 떴다.

중현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대충 심각한 상황이네요.”

“그래. 족발이나 먹자.”

“보쌈두여.”

사이 좋게 하하 웃으며 족발을 열심히 먹었다.

그 동안 TV에서는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과거로 여행할 수 있는 정체불명의 터널들.

그리고 그곳을 발견해서 이용하던 사이비 종교를 추적하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오성구의 국회의원까지 포섭할 만큼 교세가 엄청난 사이비 종교에 맞서는 주인공.

마침내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인 타임 터널에 주인공이 진입하게 된다.

싸아아-

갈대가 바람에 흔들거린다.

터널에 진입하기 전, 주인공이 덤덤한 눈으로 갈대밭을 되돌아본다.

그중에 무언가에 눌린 듯 풀이 죽어 있는 곳.

과거 회상 장면이 없었지만 우리는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어! 어! 저기, 제가 죽었던 곳이에여!”

“…….”

“대박이다. 제가 주인공한테 중요한 인물이 됐나 봐여.”

와장창하며 몰입이 깨졌다.

들떠서 떠드는 지호와 성실하고 예의 바른 허 의경의 얼굴이 겹치려다가 흩어졌다.

비주가 쌈장이 가득 묻은 녀석의 입가를 휴지로 툭툭 털어 주면서 입을 조용히 막았다.

“읍읍! 제가……!”

다시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터널을 빠져나온 주인공에게 똑같은 풍경이 나타난다.

갈대밭.

다른 점이라면 시간이 한낮이라는 것과 쑥쑥 자라 있는 갈대라든가.

근처에 있던 포장도로가 없다는 것 정도.

마치 1960년대나 70년대의 한국 사진에 나올 듯한 누런 색감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침내 주인공이 7화 만에 드디어 과거로 이동한 것이다.

아마 정체 모를 괴물이 넘어왔을 것으로 예상된 구석기 시대겠지.

“근데 구석기면 공룡 나올까요? 공룡.”

“…….”

설렌 표정을 짓는 중현이의 입에 비주가 상추 두 장을 팍 넣었다.

누군가 황소가 여물을 씹는 것처럼 상추를 우물거리는 동안 다시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싸아아-

갈대 소리.

극의 진지한 분위기에 우리가 숨죽이며 족발을 먹자, 리혁이가 고개를 저으며 볼륨을 키웠다.

싸아아-

주인공이 주변을 둘러본다. 뙤약볕에 손을 들어 그늘을 만든 주인공.

막상 과거로 왔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 같은 얼굴이 삭막한 남자의 얼굴 위로 떠오른다.

“연기 진짜 잘하신다.”

“그러게. 눈빛이…….”

‘감독님~’ 하며 감독님에게 아부를 하던 배우 이강진이 형사 박철진으로 살아 있었다.

지호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진짜 저렇게 연기랑 현실 차이가 엄청 큰 분은 처음 봐여. 시청자들이 알면 진짜 몰입 깨질 텐데.”

“…….”

“왜들 그래여?”

“…….”

배경음악 없이 바람과 갈대가 흔들리는 소리뿐.

한편, 정처 없이 떠도는 형사의 눈에 이상한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여기가 말야, 전에는 다 언덕이었어! 근데 나랏님이 도로 뚫는다고 다 밀어 버렸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분명 과거라면 언덕이 있어야 할 곳이 지금과 같은 평지고.

‘갈대도 나중에 생긴 거지.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갈대밭이 존재해 있다.

주인공에게 불길한 단서가 암시되고, 시청자들도 점차 진실에 근접하고 있는 상황.

박철진이 걷다가 휘청였다.

-…….

정처 없이 걷다가 발에 채인 돌부리.

넘어질 뻔한 주인공이 풀린 신발끈을 고쳐 매려고 할 때였다.

딱딱한 것이 드러나 있다.

철골 구조물 같은 느낌을 주는 쇠기둥이었다.

주인공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손으로 그 위에 쌓인 흙들을 털어낸다. 뭔가를 부정하듯이.

‘원래는 우리도 사이비가 아니고 멀쩡했어. 근데 어느 순간부터 교주 그 양반이 미쳐 버린 거지.’

‘왜 미쳤는지는 몰라. ‘바꿀 수가 없어’ 하면서 혼이 나갔더라고.’

‘하기사 딸내미를 되살리겠다고 그 난리였으니…….’

초록색 철판이 나타난다.

주인공이 흙을 다 털어 내자 모든 소리가 잠시 멈춘다.

잔뜩 녹이 슨 철판 위로 문구가 드러난다. 익숙한 화살표와 함께 ‘오성구청’이라는 단어.

여태까지 있었던 그 모든 구석기인, 조선시대 화살 등이 어디서 온 것인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과거로 가는 터널들이 아니고 미래로 가는 것이었다.

구석기와 조선 시대가 아니었다.

조선 시대의 화살로 보였던 것은 멸망 이후 시간이 흘러 다시 미래의 인류가 이룩한 문명임을.

‘슬립’은 바로 과거가 아니라 석기 시대로 회귀한 멸망 이후의 인류가 ‘타임 슬립’을 해서 온 것이었다.

거기다 표지판의 녹이 슨 정도로 보아 멸망의 순간은 현재로부터 그리 먼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과학자의 목소리가 오버랩 된다.

-이론상으로 미래로 가는 건 가능하지만, 과거라… 과거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털썩 주저앉는 주인공의 모습에 우리도 족발을 떨어뜨렸다.

이윽고 박철진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주인공이 극중에서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씬이었다.

회상씬이 없었지만 지호가 인터넷으로 검색한 이야기를 알려 주었다.

시간여행이란 단서에 주인공이 과거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었다는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 화재로 사망한 부모님,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보육원 친구들, 병원비를 감당 못하고 사망한 어린 아들과 이후 생을 마감한 부인. 그리고 이름도 잘 몰랐던 어느 의경까지.

주인공에게 드라마가 말하고 있었다.

과거로 갈 수 없다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던 남자에게 죄책감이 더욱 목을 옥죄어 온다.

“…….”

왠지 모르게 묘한 기분이다.

어릴 적에 나도 저런 생각을 자주 했어서.

“근데 우리 노래 안 나오는데요?”

“진짜로 이게 끝이에여? 뭐지?”

동생들의 말에 정신을 차리니 평소처럼 ‘S L I P’ 하는 단어가 역순으로 뜨고 있었다.

“…뭐지?”

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감독님이 오늘 나올 테니 꼭 보라고 하셨…… 어?”

“뭐야. 우리 노래 나오네요?”

7화 내내 한 번도 얼굴을 비춘 적 없던 우리의 노래가 정작 드라마가 끝난 후에야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여기서 스탭롤이 주르륵 나오면서 끝났을 텐데.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 리프가 들렸다.

“……?”

그리고 암전되었던 화면이 되감기를 한 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방금 전 끝났던 타이틀이 다시 ‘S L I P’ 하면서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진짜 되감기네?

전주가 흘러나오는 동안 터널을 향해 돌아가던 박철진이 서서히 뒷걸음질 치듯이 움직인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더니 7화의 내용이 몇 초 만에 스킵이 되고 시간이 과거로, 더 과거로 흘러간다.

그 동안 우리의 노래 <어제에 관한 시(詩)>가 배경음악으로 나왔다.

조금 천천히 떠나도 될까요

오늘이 노을로서 스러지기 전에

리혁이의 목소리가 귓가를 부드럽게 적셨다.

시간은 미래를 향하지만 나는 과거에 머물고 싶다는 노랫말이 과거 회상 장면과 결합됐다.

7화 내내 목석처럼 무표정이던 박철진이 미소를 짓고 살았던 시기가 쭉쭉 흘러나온다.

“와…….”

자연스럽게 과거로 넘어가는 연출과 그때마다 미묘하게 변하는 색감.

거기에 우리가 쓴 가사와 과거 장면이 퍼즐처럼 딱 들어맞고 있었다.

‘너희 노래에 총감독이 삘 받은 거 같더라고’ 하던 강 감독님의 목소리가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사진사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 주인공과 부모님의 사진을 끝으로 슬립의 7화가 막을 내렸다.

“…….”

우리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로 임팩트 있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중요한 장면에 나올 거라는 얘기만 들었던 터라 당황스러워 할 때였다.

“혀, 형…….”

지호가 스마트폰을 보더니 우리에게 놀란 얼굴로 말했다.

“우리 노래 난리 났어여.”

*   *   *

13.3퍼센트로 자체 시청률 최고 갱신.

장르물로서 ‘초대박’을 터뜨렸다는 평가에, 매니아까지 대거 양성한 슬립의 7화는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었다.

-[엊그제TV] 스케일 더 커진 ‘슬립’, 시청률 고공행진

-‘슬립’, 구석기인 알고 보니 ‘멸망 이후 인류였다’ 충격 반전

-‘슬립’ 깜짝 놀랄 반전으로 시청자들 흥미진진

7화는 끝났지만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포털 댓글창과 각종 커뮤니티는 방영 후 3시간이 넘도록 슬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반전 대박이네 전혀 생각도 못함 ㄷㄷ

-표지판 나올 때 소름ㅋㅋㅋㅋ 진짜 뒤통수 후드려맞은듯 얼얼하다;;

-소름;

-근데 뭐 특별한 반전은 아니지ㅋㅋ 미드나 혹성탈출 같은 영화에 자주 나오는 반전이라 놀랍지 않음

-미국 가서 살아 그러면

-소름이기만 하구만 무슨

-슬빠들 벌써부터 입막음 난리ㅋㅋㅋ 이렇게 극성팬 많은 드라마 첨봄

-드라마가 은근 진부함. 허의경 도구캐로 써먹은 것도 그렇고

드라마가 대성공을 거둔 만큼 팬과 안티가 매 화마다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공통된 의견은 있었다.

바로 마지막 엔딩.

-마지막 연출 대박

-클립 얼른 올라오면 좋겠다

-연기처럼 하나씩 사라지는 연출 대박

-보면서 오열했다ㅠㅠㅠㅠㅠ 철진니뮤ㅠㅠㅠㅠ

-그냥저냥 유행 따라가려고 보고 있었는데 요번 엔딩 대박이더라 ㅋㅋㅋ

-근데 노래 개좋던데 누구 노래야?? 익숙하던데

-나도 궁금ㅋㅋㅋ

-딱 첫 소절부터 대박날 거 같더라

7화의 전설적인 엔딩이 회자되면서 노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벌써부터 음원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슬립 OST라는 키워드가 뜨기 시작했고, 연예부 기자들도 앞다투어 기사를 썼다.

아이돌 커뮤니티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어 기사 찾았다! 찾았따!!! 뉴블랙의 ‘어제에 관한 시’래.

-뉴블랙?

-또 뉴블랙이야?

-또블랙;;

-ㅋㅋㅋㅋ듣자마자 딱 얘네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대박

-다 해먹네.. 이러다 차트 점령할듯

-음원계의 황소개구리 아니냐

아직 ‘덕순아’의 열기가 남아 있는 음원 차트.

거기에 시청률 13퍼센트를 기록한 대박 드라마의 OST가 추가되는 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가장 잘나가는 드라마 여우구슬의 OST도 차트 10위 내에 머물러 있었으니까.

하지만 장르물의 OST가 차트에 진입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스토리와 연기, 연출로 승부하는 장르물은 대중에게 어필하는 포인트가 엄연히 다르니까.

여러모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며칠 지나면 떨어지겠지.’

대부분은 그런 생각을 했다.

장르물에서 잠시 핫했던 드라마 OST는 금방 떨어질 것이라고.

그러나 ‘어제에 관한 시’의 순위는 하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진입한 순위에서 날이 갈수록 상승하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드라마 팬들의 스트리밍과 다운이 주효했지만, 점점 노래를 접한 대중에게도 먹히고 있다는 증거였다.

-노래 너무 좋다

-묘하게 슬픈 느낌인데 발라드처럼 중독성 있음ㅋㅋㅋ

-근데 차트 10위권 내에 뉴블랙 노래만 3개야ㅋㅋㅋㅋㅋ 역대급이네

-그 뒤로 가면 썸씽이랑 플라워 머시기 수록곡 하나 더 있음ㅇㅇ

몇 달 전만 해도 ‘신인 아이돌’로 불렸던 보이그룹이 차트 100위 안에 이름을 다섯 곡이나 올리고 있었다.

이례적인 상황에 관계자들도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야, 너 요새 그 어제 뭐시기 하는 노래 들어봤냐?”

“어제에 관한 시? 그걸 어떻게 몰라.”

“노래 진짜 잘 만들었던데…….”

작곡가들이 모인 술자리.

“요즘에 뉴블랙, 뉴블랙 난리도 아니더라. 차트에 걔네 노래만 몇 곡이야? 다섯 개는 되던데.”

“탑급 애들 스밍으로 줄세우기하는 건 봤는데, 대중픽으로 차트 채우는 건…….”

“작곡가 생활 10년 만에 이런 건 처음 본다. 정말.”

“나 이번에 신인 보이그룹 애들 프로듀싱 들어가는데 뉴블랙 스케줄 피해서 컴백 일정 잡아야겠다고 그러더라.”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음에 뉴블랙 곡 공모할 때 보내나 볼까? 친분이라도 쌓아두게.”

“지금 친해져서 뭐하게. 이젠 유명한 사람들이랑만 작업할 텐데.”

“근데 전반적으로 우주 걔 때문에 기획사들 다 헛바람 들긴 했어. 연습생들 작곡 수업 해달라는 요청이 너무 많아.”

다른 이들도 비슷한 경험담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키워 낸다고 될 일이냐.”

“걔가 특이한 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듣더라.”

“그러게. 나도 이 바닥 생활을 10년 했는데 저런 애는 처음 봤다. 남들 몇 년에 한 번 터뜨릴까 말까한 걸 연타석으로 내냐.”

“한 번 만나보고 싶긴 하다. 어떤 애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나도. 어떻게 작업하는지 궁금하다니까. 옆에서 보고 참고라도 하게.”

다음에 뉴블랙이 곡 공모를 하면 무조건 참여할 거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 말없이 술을 홀짝이는 이를 불렀다.

“맞다. 필근이 너 레몬으로 갔잖아. 뉴블랙 우주랑 친하지?”

“어…….”

왠지 모르게 슬픈 얼굴을 한 A&R팀 서필근 대리에게 다들 기대하는 얼굴로 물었다.

“어때, 걔 평소에 작업하는 거?”

“대단하지.”

허공을 보며 슬픈 표정을 한 서필근.

“막 같이 작업하다 보면 우와 하다가도, 막 미치고 팔짝 뛸 거 같기도 하고, 나가고 싶고, 배고프고…….”

혼자 중얼중얼 술주정하듯이 흐헝헝 하는 이의 모습에 다른 작곡가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쟤 괜찮은 거 맞냐?”

“상태가 안 좋은데.”

“회사에서 누가 스트레스를 많이 주나 본데? 그래도 부럽다. 나도 그런 애랑 작업 한 번 해야 하는데…….”

누군가의 터져가는 속도 모른 채 뉴블랙의 리더에게 환상을 품는 작곡가들이었다.

서필근 대리가 말없이 자작만 할 때.

휴대폰을 보고 있던 누군가 다른 작곡가들에게 물었다.

“야. 근데 이거 ‘어제에 관한 시’ 말이야. 어째 추이가 좀 심상치가 않은데?”

*   *   *

“뮤직온 1위 후보 경쟁자가 너희야.”

“…….”

어째 심상치 않다 했더니 기어코 일이 벌어졌다.

매니지먼트 팀 사무실을 방문하자마자 들은 이야기였다.

“…….”

정적.

한참 동안 눈을 멀뚱멀뚱 뜨던 중에 비주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실장님, 저희 경쟁자가 저희라고요?”

“응.”

당황해서 내가 물었다.

“형, 혹시 인생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뭐 그런 말 하려고 한 건 아니지?”

“내가 넌 줄 아냐.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하게.”

“…….”

정곡을 찔린 내가 헛기침을 하자, 우리 동생들이 역시 실장님이다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석환 형이 설명했다.

“너희 OST ‘어제에 관한 시’가 다음 주 1위 후보야. 바람꽃이랑 같이.”

“……!”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들으니 놀랍다. 약칭 ‘어제시’는 지금 차트 2위에 머물러 있었으니까.

1위와 격차가 그리 크지도 않다.

바람꽃이 느아아아! 하며 도망치는 리혁이라면 어제시는 그걸 따라잡으려는 중현이라고 할까.

아, 이러니까 백퍼센트 따라잡힐 거 같은데.

그 반대로 생각해야겠다.

청소기 고장 내고 도망치는 중현이와 빗자루 들고 뒤쫓는 리혁이로.

“별일이 다 있네여. 우리 경쟁자가 우리인 거라니… 진짜 나 자신과의 싸움이네여.”

지호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비주가 물었다.

“형, 저희 소감 어떡해요?”

“일단 이것부터 정해요, 우리. 1위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되는 건지.”

“설 때도 나눠서 서야 되나?”

“그럼 우주 형이 작곡했으니 중앙에 서고, 양 옆으로 둘씩 나눠 서는 건 어때여?”

석환 형이 피식 웃으며 우리를 보는 동안, 동생들이 들뜬 얼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당혹스러우면서도 기쁘다.

음방에서 1위 후보인데 누가 이기든 우리가 1위인 상황이라니.

거기다 두 곡 모두 내가 작곡한 노래.

기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 어째 당황스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동생들의 말처럼 복잡했다.

1위 했을 때 기뻐해야 되는 거야, 아니면 안타까워해야 되는 거야?

서 있을 때는 또 어떻게 서 있어야 되지.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가 고민을 이어갈 때, 지호가 가장 중요한 질문을 꺼냈다.

“일단, 방송국에서 어떻게 할지부터 정해여.”

*   *   *

여의도. PBS 방송국.

“우와!”

금요일인 오늘, ‘뮤직온’으로 첫 데뷔를 하는 보이그룹 ‘아이리스’는 출근길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레드카펫처럼 길다란 펜스 너머 가득한 카메라.

사방에 가득한 팬들.

“안녕하세요! 아이리스입니다!”

여기저기 우렁차게 인사하는 그들을 보며 ‘누구지?’ 하는 표정과 함께 찰칵거리던 카메라가 멈춘다.

‘우와!’

모든 게 신기한 신인 아이돌.

‘대박이다!’

우리가 뮤온 출근길을 서다니! 자기들끼리 감탄하면서 포토존에서 어색하게 포즈를 취할 때였다.

“꺄아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웅성거림이 커졌다. 갑자기 분주해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기자들이 고개를 돌린다.

매니저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호들갑을 떨었다.

“허, 뉴블랙이다. 뉴블랙.”

“대박, 뉴블랙 선배님들인가 봐.”

요즘 대세 아이돌로 소문난 선배 그룹이었다.

그림 같은 미모를 지닌 다섯 남자가 걸어오자, 여기저기서 비명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설픈 그들과 다르게 능숙하게 손을 흔드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어쩜 사복 패션도 저리 멋져 보일까.

“우주 선배님 실물 존잘인데…?”

“대박이다.”

“저 꽃무늬 셔츠 되게 예쁘다…. 나도 하나 살까?”

우주의 하와이안 셔츠마저 그럴싸하게 보이는 신인 아이돌이었다.

붉은색 꽃이 그려진 하와이안 셔츠는 색이 강해서 쉽사리 엄두를 못 낼 아이템인데, 그걸 얼굴이 이기고 있었다.

“얘들아, 가자.”

잠시 넋을 놓고 뉴블랙을 바라보다가 매니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형, 저 화장실 좀.”

“어딘지 알아?”

“네. 방금 봤어요.”

“혼자 다니지 말고 애들이랑 같이 다녀와.”

드라이 리허설을 앞두고 긴장한 누군가가 화장실을 간다고 하자, 일곱 멤버 모두가 따라나섰다.

무지개의 일곱 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아이돌이 소심하게 걸었다.

‘무서워…….’

복도에서 마주친 방송국 스탭들은 어찌나 신경이 곤두서 보이는지, 표정만 봐도 무서웠다.

“안녕하십니까!”

우렁차게 인사를 했지만 미간만 찌푸릴 뿐 반응조차 없었다.

그들이 무안함을 삼키며 화장실로 향할 때였다.

“야야! 비켜!”

박스를 가득 든 남자 스탭이 걸어오면서 그들을 밀쳤다.

퍽!

엎어지는 한 멤버.

“에이씨. 앞에 안 보고 다녀?”

그대로 짜증을 내며 걸어가는 스탭에게 오히려 그들이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했다.

넘어진 멤버가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이내 울상을 지을 때였다.

“……괜찮아요?”

하얀 손이 내밀어졌다.

자상한 목소리와 함께 손을 내미는 누군가의 모습에 아이리스 멤버들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허억!”

그들의 눈앞에 뉴블랙의 지호가 차분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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