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2)화 (25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2화

아이리스 멤버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와.’

진짜 잘생겼다.

출근길에서 우주의 얼굴에 정신이 뺏겨 몰랐지만, 눈앞에 있는 선배 가수도 정말 현실감 없이 생겼다.

오뚝한 코.

부드러운 입매.

누군지 모른다면 ‘배우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법한 미모였다.

“괜찮아요?”

지호가 손을 뻗어서 쓰러진 멤버를 붙잡아 일으켜 주었다.

“어떡해. 옷에 먼지도 잔뜩 묻고.”

“가, 감사합니다.”

이미 멀어진 스탭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지호가 그들에게 쾌활한 미소를 지었다.

“못 보던 분들인데, 오늘 데뷔했어요?”

“네, 저희… 아 맞다! 인사! 야. 인사!”

일곱 명이 우르르 일렬로 서고는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아이리스입니다!”

“으아, 인사하지 마세요. 부끄러워.”

민망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는 지호. 왠지 모르게 그 모습까지 근사해 보이는 아이리스였다.

“민망하게 왜들 그래여…요.”

여요?

“흠흠, 너무 각 잡고 인사하고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도 활동한 지 1년 조금 넘겨서…….”

“아니에요. 선배님이시잖아요.”

정식으로 데뷔한 지는 11개월 정도 된 뉴블랙이었다.

썸씽 때부터를 실제 활동기간으로 잡아도 1년 3개월 남짓. 그리 길다고 할 만한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중학교에 막 입학한 1학년의 눈에는 3학년이 대선배처럼 보이듯, 막 데뷔한 신인 보이그룹의 입장에서는 복도에 붙은 전단지 하나하나도 대단해 보였다.

그러니 뉴블랙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인기가 전부인 연예계.

2015년 5월 현재, 뉴블랙은 가장 잘나가고 있는 보이그룹 중 하나였다.

일간 차트 100개 중에서 무려 5곡이 뉴블랙의 노래.

차트 안에 들어보는 게 소원인 그들에게는 까마득하게 멀어 보였다.

-오늘 1위 후보 두 곡이 다 뉴블랙 거라더라.

매니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노래의 인기가 너무 좋아서 1위 후보에 올랐다고.

그들도 ‘어제시’를 들으며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와. 노래 진짜 좋다. 이거 어떻게 만든 거지?’

작곡 능력이 있는 멤버가 노래를 분석하겠다더니 이내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기 시작할 정도.

실력파라는 호칭이 붙은 그룹답게 뉴블랙의 멤버들은 개개인의 실력도 뛰어났다.

‘야. 우리 월말평가 때 이거 해 볼래?’

그들이 뉴블랙을 처음 접한 건 한창 해외 팬들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지던 ‘마스커레이드’ 때.

칼군무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곡이었다.

‘나보고 이걸 하라고?’

유연한 몸으로 공중에서 회전하다시피 춤을 추는 비주의 모습에 메인댄서 포지션을 맡은 연습생은 헛웃음을 지었다.

결과물은 허리에 덕지덕지 붙은 파스와 코어 근육을 단련하라는 트레이너의 가르침이었다.

보고 있다 보면 엄두도 안 날 만큼 고운 춤선.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안무를 하면서 고음을 이렇게 내라고?’

마스커레이드에서도 격한 안무를 추면서도 고음을 내는 리혁.

메인 보컬을 맡은 연습생은 ‘하나만 시켜! 하나만! 춤이든 노래든!’ 하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이상하다. 이거 랩 그렇게 안 어려워 보였는데……. 발음 뭉개지 말라고? 아니! 저 사람이 잘하는 거라고!’

중현의 랩 파트 또한 그리 녹록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브릿지 파트에서 표정 휙휙 바뀌는 연기해볼 사람?’

‘…….’

‘없어?’

‘…….’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의 파트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표정 연기라는 게 말이 쉽지, 보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하는 건 보통의 경지가 아니었다.

눈앞에서 머리를 쓸어 넘기는 미남을 보며 그들이 떠올린 생각은 똑같았다.

‘진짜 연예인 보는 거 같다…….’

마스커레이드를 연습할 때만 해도 ‘성공적으로 데뷔한 선배 신인그룹’ 정도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거리감이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대중매체의 영향이 컸다.

예전엔 미튜브 등에 따로 검색을 해야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TV를 틀거나 SNS를 할 때마다 보였으니까.

명곡발굴단, 역사탐험대, 각종 예능…….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들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음? 근데 왜 말투가 다른 거 같지?’

분명 예능에서 접했던 지호의 말투는 ‘여’와 ‘요’의 중간쯤이었다.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그래여? 진짜루?’ 이런 느낌이었는데.

‘아!’

그들이 환하게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그게 방송 컨셉인 거구나!’

어쩐지, 이렇게 착한 사람이 그렇게까지 막 형들한테 ‘흐갸갸! 저놈들을 모조리 하옥해라!’ 하며 악랄하게 괴롭힐 리가 없지.

사또처럼 차려 입은 지호와 그 옆에서 ‘예이!’ 하던 이방 우주의 장면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처량하게 밧줄에 묶인 채 끌려가는 죄인들과 포졸 중현도.

지호가 웃으며 물었다.

“방금 있었던 일은 마음에 담아 두지 마요. 방송국 분들이 너무 바쁘셔서 그런 거기도 하고…….”

생각에 잠긴 얼굴로 상대가 속삭였다.

“데뷔 초에는 저런 일이 엄청 많거든요. 일일이 신경 쓰다 보면 너무 힘들 거예요.”

“네…….”

“저희도 1집 때 그런 일 많았거든요. 어깨빵이나 욕이라든가….”

힘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그들은 잠시 위안을 느꼈다.

그때 방송국 스탭 중 하나가 지나가자 지호가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 지호 안녕.”

같이 인사한 아이리스 멤버들에겐 시선도 안 주고 지호에게만 싱긋 웃어주고 가는 스탭이었다.

머쓱하게 웃던 지호가 시선을 돌렸다.

“이제 곧 드라이 리허설 시작이네요. 아이리스라고 했죠?”

“네!”

“데뷔 정말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오래 봐요.”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지만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 지호였다.

선배미를 뿜뿜하는 가수에게 그들이 ‘감사합니다!’ 하며 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볼 때.

“야!”

선명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지호가 ‘이크’ 하는 표정을 짓는 동안, 서늘함의 끝을 보여주는 인물이 걸어왔다.

“너 여기서 뭐 해. 비ㅈ…….”

“찾고 있다가, 이분들을 마주쳐서요.”

“요?”

리혁의 물음에 지호가 재빠르게 고개를 세 번 끄덕였다.

“요.”

“아… 요.”

무슨 암호처럼 대사를 주고받을 때마다 아이리스 멤버들의 시선이 왔다갔다했다.

“안녕하십니까!”

다시 한 번 우렁찬 인사.

이윽고 사정을 들은 리혁이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데뷔 축하해요.”

그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송에서 굉장히 차가운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따스한 느낌이었다.

‘역시 방송은 컨셉이구나!’

그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음흠흠.

어디선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그건데. 덕순아.’

레슬러의 등장 브금처럼 노래가 가까워졌을 때, 키가 큰 두 인영이 나타났다.

우주와 중현.

멤버 전원이 다시 한번 감탄했다.

“조…….”

저도 모르게 ‘존나 잘생겼다.’ 하는 말이 나올 뻔했다.

초상화를 그리면 얼굴 대신 빛을 그려 넣어도 될 것처럼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얼굴.

그들의 감탄에 뉴블랙 멤버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 여기서 뭐…… 음?”

우주의 시선이 신인 보이그룹에게 향했다. 그러더니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어, 아이리스 분들이다. 맞죠?”

“예?”

그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 그걸 어떻게…….”

“아이돌 노래는 나오면 무조건 다 들어보거든요. 타이틀 ‘I Rise’ 좋던데요. 레드 씨가 작곡에 참여했다고 했죠? 실험적인데 좋았어요. 아직 뭄바톤이란 장르가 한국에서 대중적이지 않지만…….”

‘노래 좋던데요, 화이팅’ 하는 덕담이었지만 아이리스 멤버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우와. 우리 노래를 알아…….’

뮤비도 잘 봤다며 인사하는데 그들로서는 놀랄 지경이었다.

아니. 하루가 막 25시간도 아니고. 시간을 따로 내서 후배 아이돌의 노래까지 들어본다니…….

그들이 감동의 물결에 젖어들 때, 우주가 ‘아’ 했다.

“내 정신 좀 봐. 야. 비주는……?”

“거기 없어요?”

“없던데.”

“아니, 형들이 찾아본 데 없었어요?”

우주가 요상한 표정을 짓는다.

“요?”

“요.”

“아… 요.”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동안 중현이 그들에게 젤리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머리색에 맞춘 무지개색 곰돌이가 손바닥에 올려졌다.

묵묵히 나눠 주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 때, 중현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더 먹을래?”

이 사람도 엄청 착하구나!

그들이 화기애애하게 웃을 때였다.

뉴블랙의 네 멤버들이 다급한 얼굴로 속닥일 때, 화장실에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어?”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밝은 갈색 머리카락의 미소년이 있었다.

“비주야!”

“비주 형.”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걱정했다면서, 뭔가 잃어버렸을까 걱정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어디 간다고 말하고 가는 거 깜빡했구나. 저 오늘 길 잘 찾았어요. 그거 알아요? 우리 대기실에서 계속 오른쪽 벽 짚고 걸어가면 화장실 나오는 거?”

다행스럽게도 아이리스 멤버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속삭임이었다.

“형, 저 진짜 걱정했어요.”

“요?”

“요.”

“아하. ‘요’ 상황이구나.”

그러더니 해맑게 웃던 비주가 그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잠시 대화가 오간 후 뉴블랙 멤버들이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따 드라이에서 봐요.”

“네!”

사이좋게 웃으며 걸어가는 뉴블랙 멤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박…….’

그리고 뉴블랙에 대한 인상은 더욱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거기 우리 자린데.”

“엇, 네…….”

드라이 리허설을 앞두고 공개홀 좌석에 앉는데 자기들 자리라며 비키라는 보이그룹도 있고.

인사를 하니 귀만 후비며 고개를 까딱이는 솔로가수도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뉴블랙 멤버들이 더욱 더 선녀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드라이 리허설이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갈 때.

칸막이만 달랑 설치된 대기실로 돌아가려던 아이리스가 몇 주 전 데뷔한 드림티켓에게 인사했다.

연습생 시절 친분이 있던 몇몇 멤버들 덕에 그들은 곧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윽고 그들의 화제가 오늘 1위 후보에 이름을 올린 뉴블랙으로 옮겨갔다.

“뉴블랙 선배님들 너무 차분하고! 막 너무 착하고! 대박이에요!”

“엄청 좋죠. 그분들.”

동감하던 드림티켓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차분하다고요?”

“네?”

드림티켓 멤버들이 ‘차분함과는 백만 광년이던데…’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기실에 인사하러 가니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있…….”

“지호 선배님 엄청 차분하게 웃어주…….”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두 신인그룹이 말하는 ‘뉴블랙’의 간극은 커져만 갔다.

“……?”

“……?”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던 때, 드림티켓의 한 멤버가 중얼거렸다.

“뭐지. 어제는 안 그랬는데……. 저기, 우리 지금 같은 사람을 만난 건 맞아요?”

*   *   *

내가 누군가를 따라하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 지호에요.”

“푸하하하!”

“아, 형들 놀리지 마여! 전 최선을 다했다구여. 그리고 그, 그 뭐냐! 느끼한 표정을 언제 했다구.”

지호가 내게 눈을 부라렸지만 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흐음, 우리 어린 양… 이 선배님이 도와줄까요?”

“네. 제 손을 붙잡아주세요.”

“그럼 이 선배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 볼까요?”

옆에서 비주가 손을 내밀며 상황극을 받아주었다. 우리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진짜! 짜증 나!”

지호가 소파에서 머리를 흔들며 짜증을 내다가 벽에 뒤통수를 박고 ‘악!’ 소리를 냈다.

우리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푸하하하!”

“흐하핫!”

“아, 진짜 짜증 나. 다들 진짜 두고 봐여. 제가…….”

“그래. 우리 막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지호네 첫째 누나의 표정을 카피해서 웃어 보이자 상대가 흠칫하며 말을 멈췄다.

“…….”

그러곤 제 생각에도 복수할 방법이 궁색했던지 ‘흥’ 하며 투덜대는 막내였다.

옆에서 비주가 차분히 다독이는 동안 리혁이가 피식 웃었다.

“난 아까 무슨 다섯 명의 선우주인 줄 알았어요. 다들 똑같이 웃고 있고.”

“나는 흉내 낼 자신 없어서 아무 말 안 했어.”

중현이가 뿌듯하게 말했다.

내가 피식 웃었다.

어쩐지 이것들이 누구를 따라한다 했더니 나였구만.

내가 저렇게 느끼하게 웃냐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음, 원판은 아무래도 좀 다르져. 그 따라할 수 없는 포스가 있어여. 느끼함보다는 뭔가 해롭고 선정적인 느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호야, 지호야.”

“넹?”

“형이 할 말이 있어~”

“아아아!”

대기실을 쌩하고 뛰쳐나가는 막내를 보며 키득거렸다.

그 동안 아침에 만났던 신인 보이그룹을 떠올리며 으으으, 몸을 움츠렸다.

우리가 선배라니.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우리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봐서 당황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하나 끼어 있던데.

남한테 선배님, 선배님 할 때는 괜찮았는데 내가 들으니 이상하다. 나만 그런가? 리혁이한테 해 볼까.

“선배님.”

“흐아악!”

“왜 이렇게 놀라?”

“어우, 깜짝이야. 대체 왜 그래요?”

“너도 선배님 소리 들으면 거북한 건 마찬가지구나.”

“이게 안 거북한 사람이 있어요?”

중현이가 ‘네 말 거북, 거북, 거북해. 거북하면 거북선’ 하며 노트에 랩 가사를 적기 시작했다.

그것 때문에 하고 있던 생각이 잠시 끊겼다.

내가 뭐 생각하고 있었지.

TV 속에서 무지개색 머리 아이돌의 첫 무대를 바라보다가 문득 하나가 떠올랐다.

나 [맞다]

나 [은성아 넌 데뷔 언제 하냐?]

5분 있다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이모티콘과 함께 답장이 왔다.

꼬봉 [행님]

꼬봉 [그건]

꼬봉 [알]

꼬봉 [려]

나 [한 글자만 더하면 너 차단]

꼬봉 [드릴 수 없습니다. 선우주 병장님.]

얘는 뭐가 비밀이 이리도 많지.

어느 회사로 갔는지는 알고 있다. 시기만 모를 뿐.

숨 엔터라고.

영세한 규모의 중소기획사인데 업계에서는 숨겨진 꿀 회사로 유명하다.

연습생 복지 좋고, 회사 사람들 좋고. 기획력도 좋아서 성공한 솔로가수가 둘이나 있다.

군대에 있을 때 ‘자, 네가 회사를 들어간다면 이런이런 곳이 있어’ 하며 세뇌교육을 시켰는데, 다행히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얘 언제 데뷔하지.

‘사나이가 간다’에 데려가진 못하더라도 위기감은 조성해 줘야 되는데.

“아니다. 일단 우리 애들 중에서도…….”

내 시선이 향하자 다들 흠칫하며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피디님이 데려갈 사람 있으면 말하라고 했는데 누구를 고르면 좋을까.

누구를 고를까요 척척박사님을 하려고 할 때, 동생들의 구세주가 등장했다.

“뉴블랙! 준비할게요!”

“네에!”

바람처럼 마이크팩을 차고 도망치는 동생들에게 내가 외쳤다.

“얘들아! 어디 가! 형이랑 군대 가야지.”

우리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으면서 내 마이크팩을 체크해 주는 민기 형에게 물었다.

“형도 일반인 출연자로 나가 볼래요?”

“너는 농담도 참…….”

“피디님이 일반인도 추천 받는다고 하던데. 예능감만 있으면 된대요.”

“…….”

상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   *   *

금요일 저녁.

PBS의 음악방송 ‘뮤직 On’의 생방송이 끝날 시간이 되자, 방송을 키는 사람이 늘어났다.

-ㅋㅋㅋㅋㅋㅋ궁금하다

-이건 생방으로 봐야지

-뉴블랙 대 뉴블랙인 거지??? ㅋㅋㅋㅋ

-얘네 팬들 좋겠다.. 존부

심심할 만큼 조용하던 최근 아이돌판에서 뉴블랙이 1위 후보 양쪽에 이름을 올린 건 굉장한 화젯거리였다.

[네, 뉴블랙 앞으로 나와 주시고요.]

MC 전유빈과 일일 MC를 맡은 걸그룹 멤버들이 뉴블랙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살짝 긴장한 기색의 뉴블랙 멤버들.

시청 중인 수플레들이 빵 부스러기를 흩날리듯 수다를 떨었다.

-울 애긔들 엉망졸망하긔

-어떻게 서야할지 우물ㅈ무루 하는거 간만에 본다

-하앍.. 내 나이 여덟.. 우리애들 미모에 취한다

-애들 이상하게 만들지 말라고요ㅋㅋㅋㅋㅋ

-할미는 너희 얼굴만 봐도 운다 울어ㅠㅠㅠ

-오늘 진짜 미모 레전드 갱신..

-움짤 포카로 만드는 기술 개발좀

화면 속에서 입술을 살짝 깨물거나,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르는 뉴블랙 멤버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윽고 점수가 하나씩 공개되고.

뉴블랙의 ‘바람꽃’과 ‘어제에 관한 시’의 썸네일이 양쪽에 떠올라 있을 때.

[오늘의 1위는?]

[네! 축하드립니다! 뉴블랙!]

팡! 하며 반짝이가 쏟아져 내렸다.

평소 습관처럼 그룹명을 외쳤지만 멤버들은 여전히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이윽고 실수를 깨달은 MC가 다시 외쳤다.

[네! 바람꽃!]

[우와아아!]

뉴블랙 멤버들이 자기들끼리 얼싸안고 ‘우와아아!’를 하다가 이내 멈칫하고는 ‘……?’ 했다.

‘이게 이기긴 했는데, 이긴 건가…?’ 싶어 하는 묘한 표정이었다.

‘아니, 내가 이기긴 했는데 이긴 건 아닌?’ 하는 얼굴로 어색하게 기뻐하는 모습에 오프라인과 온라인 양쪽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ㅋㅋㅋㅋㅋ저거 뭔지 알 거 같아서 더 웃김

-공감ㅋㅋㅋ 내가 이겼는데 졌어

-이겼는데 짐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거 근데 그럼 이긴 거임? 진 거임? 무승부임?

-아 머리아파

-이긴 거지 앨범곡이.. 아닌가?

-무승부??

-금메달 은메달처럼 봐야하지 않을까?

-논리가 이상한데.. 올림픽에서 금메달은메달 둘다 딸 수 잇나? 그림자 분신술이라도 씀?

인터넷에서 저게 이긴 거냐, 진 거냐, 무승부냐를 두고 한참 동안 토론이 이어지고 있을 때.

TV 속에서는 뉴블랙의 멤버들이 1위 기념으로 수플레들을 위한 빵춤을 선보이고 있었다.

*   *   *

“우와, 1위!”

“1위!”

“2위?”

“2위!”

한참 동안 이긴 건지 진 건지 우리도 고민을 했지만, 그냥 주어진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1위 후보에 두 곡이나 이름을 올린 기념으로 한 시간 동안 수플레들과 라이브 방송을 했다.

정말 웃고 떠들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수플레들도 1, 2위 소식에 정말 들떴고, 우리도 그 몇 배 이상으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그렇게 회사에 도착하고 나니 친한 직원분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얘들아! 축하해!”

대표님도 램프의 요정처럼 나타나 카드를 슥 주면서 ‘먹고 싶은 거 다 먹거라…’ 하며 반짝이셨다.

문자나 메시지가 하도 많이 와서 나중에 답하기로 하고, 저녁 메뉴를 결정하려고 할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또 다른 소식을 접했다.

“네? 저희 콘서트 장소요?”

바로 우리의 첫 단독 콘서트 장소가 섭외되었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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