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3화
“그래서, 저희 콘서트는 어디서 열려요?”
회사 라운지.
테이블 맞은편에서 커피를 홀짝이던 석환 형과 홍 대리님에게 재촉하듯 물었다.
매니저가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여기야.”
홈페이지 상단에 표시된 ‘올림픽 공원’이라는 키워드에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올림픽? 올림픽홀인가?
위에서 아래로 향하던 우리의 눈동자가 공연장 이름에서 멈췄다.
“흐어…….”
“핸드볼?”
“핸드볼 경기장? 여기 엄청 큰 데 아니에요?”
올림픽 공원 핸드볼 경기장.
원래 펜싱 경기장으로 쓰이던 곳을 대기업이 수백억을 들여 핸드볼 경기장으로 바꾼 곳이다.
관객이 몇 명이나 들어가는지는 모르지만, 규모 있는 팬덤이 아니고서는 쉽게 채우지 못하는 곳이다.
‘수용인원 : 약 5,000명’이라는 소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비주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얼굴로 날 바라보았고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왕눈이들이 동시에 입모양으로 ‘오오’ 하자, 맞은편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저…….”
내가 물었다.
“제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대리님.”
“응. 물어 봐.”
“저희 보려고 정말 5천 명이나 올까요?”
동생들도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5천 명.
상상도 안 간다.
중학교 전체 학년 인원수를 800명으로 잡아도 5천 명이면 중학교가 6개다.
그럼 아침조회 곱하기 6 아닌가?
6개 학교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의 숫자와 공연장에 모일 인원이 같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이상하다.
물론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최근에 했던 쇼케이스만 해도 2천 명에 가까운 수플레들이 운집했으니까.
하지만 콘서트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티켓 가격이 최소 10만원부터 시작하니까.
그래서 흔히들 콘서트를 가수가 팬덤을 얼마나 동원할 수 있을지 파악할 수 있는 진정한 지표라고 하기도 한다.
1명이 100장을 살 수 있는 앨범과 달리 콘서트는 내 가수 보겠다고 십 몇 만 원을 턱턱 낼 사람을 최소 수천 명을 모아야 하는 거니까.
“아무리 계산해도 상상이 안 가는데요.”
리혁이가 암산을 하다가 말했다.
“우리 보겠다고 5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무슨 소리야?”
홍 대리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5천 명이 아니지.”
“아하.”
원래 공연장보다 좀 줄여서 받는다는 거구나 하며 납득하려는데.
“만오천 명으로 생각해야지. 3일 동안 할 건데.”
“……네?”
“오천 명이 3일 하면 만오천 명이잖아.”
“그, 그렇긴 하죠.”
중현이가 오천 곱하기 삼 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우리가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는 동안 설명이 이어졌다.
3개월 후 여름에 열릴 콘서트는 핸드볼 경기장에서 3일 정도 공연을 하고, 반응이 좋은 해외 몇몇 곳에서도 작은 공연장을 섭외해서 공연할 예정이라고.
“진짜 해외에서 공연을 해요?”
“응. 해외.”
“……?”
“물론 국내와는 달리 규모가 큰 편은 아니야. 쇼케이스 때보다 조금 큰 정도. 우리가 분석을 해 봤는데 너희 앨범 판매량을 감안하면 당연히…….”
“판매량이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설명하는 홍 대리님과 계속해서 못 알아듣는 우리의 모습이 반복됐다.
상대가 눈을 반개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실장님.”
“예.”
“애들이 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거 같은데. 혹시 초동 판매량 얘기 아직 안 해 주셨어요?”
“아… 예. 안 해 줬죠. 아직.”
석환 형의 어색한 미소에 상대가 멈칫하더니 ‘아…’ 하며 이해했다.
지호가 말했다.
“맞다. 그러구 보니 그때 초동 판매량 얘기해 준다고 예고하셔 놓고, 안 해 주셨잖아여.”
“그래. 아직 얘기를 안 해 줬지.”
“저희 초동이 어떻게 됐는데 그러세요?”
초동 판매량은 발매 일주일 동안 앨범이 얼마나 팔렸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대개 전체 판매량은 집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현실적으로 파악이 쉬운 첫 일주일간의 판매량을 비교 수치로 삼곤 한다.
콘서트와는 조금 다른 의미지만 가요계에서 팬덤이 얼마나 강한 화력을 지니는지 보여 주는 성적표라고 할까.
그런 까닭에 1위부터 20위까지 절반 이상을 TNT, 틴스피릿, 그리고 지금은 해체된 식스티 세컨즈가 나눠먹고 있다. 그리고 1위부터 7위까지는 모두 TNT의 기록이었다.
“신기하다.”
홍 대리님이 말했다.
“우리가 말을 안 해 줬다고 해도, 너희가 검색을 해서 미리 알고 있을 줄 알았거든.”
“저희가 인터넷을 끊어서요.”
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만 해여. 게임만.”
“저도 메신저 정도…….”
“요새는 이북 리더기만 좀 써요. 볼 시간도 없지만.”
두 직원이 이유를 알겠다는 듯 쓴웃음을 머금었다.
잠도 쪼개서 자야 할 만큼 스케줄이 바쁘기 때문이었지만 악플을 피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악플이 확 늘었다.
빛이 환할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이, 인기에 비례해서 악플이 늘어난다고 할까.
연습생 때는 악플을 보며 ‘훗’ 하며 쿨하게 넘기는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했는데, 요즘 들어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입에 담지 못할 악플들을 접하다 보다 보면 정신이 너덜너덜해진다고 할까.
무슨 갤러리인가. 내 이야기가 많다고 해서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우주 부모님 사진’이라는 제목에 궁금해서 클릭한 적이 있었다.
……비행기 잔해 사진이 나왔지.
하루 종일 입맛이 떨어졌던 것 같다. 옆에서 우연히 봤던 비주가 울먹거릴 정도였지.
그날 잠을 못 잤다.
괜히 연예계 선배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
그런 까닭에 장소원 선배나 탑 아이돌 한모 씨의 조언대로 ‘그냥 인터넷 자체를 끊기’를 실천하는 중이었다.
호로록-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스 초콜릿을 들이킬 때, 석환 형이 웃으며 말했다.
“너희 초동이 이번에 대박이 났거든.”
“오오.”
지호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진짜 많이 팔렸나 보네여. 얼마에여? 3만 장? 4만 장…? 설마 5만…….”
“7만 장이야.”
“푸흡-!”
단체로 마시고 있던 음료를 뿜었다.
“커흑! 어후…….”
“콜록! 나, 나 휴지 좀 주세요…!”
“으어, 코에 커히 들어갔허여…….”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채 음료를 모두 빨아들여버린 중현이를 제외하면 모두가 사레가 들려서 난리도 아니었다.
얼굴이 벌게져서 켁켁거리는 리혁이에게 휴지를 건네주고 나도 가슴을 두드렸다.
다음에는 초콜릿 칩 빼달라고 해야지. 목구멍이 까슬까슬하다.
“콜록…!”
하지만 놀라움이 더 컸다. 다들 켁켁대면서도 석환 형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비주가 기침을 하며 손을 들었다.
“실장님, 저 질문 있… 콜록… 7만 장이요?”
“정확히 말하자면 6만 9천 장 정도인데 반올림하면 7만 장 정도.”
“…….”
“안 믿기지?”
리혁이가 멍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데이라잇 선배님들 최고 기록이 6만 장 아니에요?”
“그, 그렇지.”
SNH 엔터 소속으로 2세대 원탑 걸그룹으로 불리는 ‘데이라잇’의 최고 기록이 6만 장쯤이었나.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은 있던 기억도 혼선이 올 만큼 당황해 있어서.
물론 같은 급이면 보이그룹이 걸그룹보다 최소 몇 배쯤 더 판다고는 하지만 이건…….
상대가 웃었다.
“축하해. 5월 기준으로 너희 초동 판매량이 올해 2위야.”
올해 초에 컴백한 틴스피릿의 16만 장 바로 아래 2위를 차지했다는 모양이었다.
“TNT나 틴스피릿이 앨범을 낼 때마다 떨어지긴 하겠지만, 이 추세대로면 연간 판매량 10위 안에는 무조건 들어갈 거야.”
“너희 위로 치고 올 만한 그룹이 별로 없거든.”
“…….”
홍 대리님이 작년 초동 판매량을 보여 주었다.
데이드림. 와일드. 다른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한 2세대 선배 아이돌.
그중에 내가 연습생 때 데뷔했던 TJ 선배 그룹의 이름이 끼어 있는 걸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저희가 진짜로 이 분들보다… 더 팔았다고요?”
“그래.”
“…….”
TNT와 틴스피릿 바로 다음에 있는 저 쟁쟁한 선배 그룹들의 무리에 우리가 들어갔다고?
머릿속이 멈췄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시상식에서 TOP 10으로 뽑혔던 선배들을 보며 ‘우와’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거기에 꼈단다.
눈을 감았다 떴더니 국가대표가 되어있는 유소년 유망주의 심정이었다.
꿀꺽.
다섯 명이 동시에 침 넘기는 소리만이 라운지에 울렸다.
중현이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왜 안 알려 주신 거예요. 실장님? 엄청 좋은 소식인데.”
“이래저래 사정이 있었어.”
석환 형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집계 끝나고 사재기 시비가 엄청나게 붙었거든.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전화도 오고, 의혹 제기니 증거 내놓으라니 하는 글도 우후죽순으로 올라오고.”
인터넷 안 하기를 잘했네.
그런데 우리 팬들이 그런 이야기에 힘들어했을 걸 생각하면 또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여하튼 일이 복잡해서 얘기해 주기가 좀 그랬어.”
하기사 마스커레이드 때와 비교하면 말도 안 될 만큼 뻥튀기가 되긴 했다.
누가 지금 이 상황에 대한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생각하라고 한다면, 아랍 부호가 ‘오우, 뉴블랙’ 하면서 수만 장을 집에 진열하는 장면밖에 안 떠오른다.
“말도 아니었다. 진짜. 인터넷에서 매일 난리를 치는데… 집계량이 말이 되냐. 데뷔한 지 1년 정도밖에 안 된 애들이 어떻게 7만 장을 기록하냐. 2세대의 저 그룹들보다 뉴블랙이 높은 게 말이 되냐 등등.”
어찌나 시달렸는지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는 우리 매니저였다.
홍 대리님도 ‘으으’ 하며 넌더리를 냈다.
“장난 아니었죠. 해명하라고 팩스 날아오고…….”
“…진짜 고생하셨네요.”
두 사람을 보며 고마움을 느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거든.
혹시 우리 활동에 지장이라도 갈까 봐, 다들 표정까지 관리하며 쉬쉬했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좋은 선물이라도 좀 준비해 둬야지.
“그럼 지금은 괜찮은 거예요?”
“초반보다는 잠잠해졌지. 주간차트 3주 연속 1위에… 워낙 음원 성적이 대박이기도 하고. 뭐. 여전히 댓글로 난리치는 애들은 어쩔 수 없지만.”
홍 대리님이 옆에서 덧붙였다.
“인터넷 안 보기로 한 거 진짜 잘한 거야. 지금부터 온갖 이상한 애들이 달라붙을 텐데…….”
“기왕이면 너희가 좋은 것만 봤으면 좋겠어. 나쁜 건 또 나쁜 대로 수도 없이 접할 테니까.”
우리 실장님의 말에 그럴게요, 하며 답했다.
잠시 음료를 홀짝이는 동안, 이야기는 본론으로 돌아갔다.
“콘서트 장소는 그런 판매량을 분석해서 잡은 거야. 이론상으로는 체조 경기장도 노려는 볼 수 있겠다만…….”
“체조는 워낙 위험부담이 커서.”
보통 콘서트 예상 인원은 보수적으로 계산한다는 홍 대리님의 말에 공감했다.
콘서트는 한두 푼 들어가는 프로젝트가 아니니까.
괜히 크게 잡았다가 텅텅 빈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낭패였다.
국내 일정과 더불어 해외 일정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제반 사항에 대해서 진지하게 의논을 했다.
“……그럼 일단 여기까지 논의하기로 하고. 다음에 또 모여서 한 번 더 회의를 하자.”
“네. 고생하셨어요.”
“단독 콘서트 축하해. 너희가 잘 돼서 우리도 정말 좋다.”
일거리는 늘어났지만, 하는 너스레와 함께 홍 대리님이 서류철을 챙겨 일어났다.
회식 때 만나자는 이야기를 하며 석환 형도 라운지를 벗어났다.
“이따 봐요!”
우리가 인사를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그러길 3초.
근엄하고 여유로운 얼굴로 앉아 있던 우리가 재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갔나?”
“간 거 같은데요. 중현이 형. 좀 들어 봐요.”
“흐음… 두 분 다 엘리베이터 탄 거 같아.”
“가셨구나.”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가 심호흡을 했다.
그러곤 벌떡 일어났다.
“얘들아아아!”
“형!”
“후흐하하하하! 야 우리 단콘이다! 단콘!”
“단콘!”
모닥불을 둘러싸고 춤추는 개코 원숭이들처럼 ‘콩그레출레이션’ 하면서 어깨춤을 췄다.
“형, 저 어떡해요. 눈물 날 거 같아요.”
“울어. 오늘 같은 날은 울어도 돼.”
“그러니까 안 나는 거 같아요.”
비주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기분 좋다.
리혁이도 싱글벙글 웃을 정도면 말 다한 거지.
앞으로 준비해야 할 일이 태산이기도 하고, 여름이면 한참 남았다 싶지만 그래도 좋다.
아이돌을 꿈꿨을 때부터 단독 콘서트 해보는 게 평생 소원이었는데.
“이제 여한이 없구나…….”
내가 아련한 얼굴로 눈을 감자, 동생들이 ‘죽지 마!’ 하며 짤짤 흔들었다.
역시 나를 생각해 주는….
지호가 어림도 없다는 얼굴로 답했다.
“형, 없으면 우리 동선 새로 짜야 된단 말이에여.”
“맞아. 노래 파트도 늘고.”
“에라이…….”
혀를 끌끌 차는 내 모습에 우리 애들이 웃었다.
콘서트 일정이 완벽하게 확정되고 나면 가족들에게 알리자고 이야기를 한 후, 우리는 다시 원래의 일정으로 돌아갔다.
콘서트 일정에 맞춰 나올 응원봉 시안도 고민하고.
이번 주의 중요한 스케줄에 대해서도 어떻게 할지 미리 계획도 잡고.
달력을 바라보던 리혁이가 물었다.
“참. 다들 시험 공부는 다 했어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번 주 토요일에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 * *
토요일.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을 보러 학교에 입실한 수험생들은 눈을 멀뚱멀뚱 떴다.
‘뭐지.’
서로 다른 고사장에 입실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비슷했다.
“……?”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아이돌 멤버.
조용히 젤리를 먹거나, 깔끔한 필기가 된 노트를 읽거나, 혹은 아침 사과를 먹거나.
아니면 핸드폰으로 사극을 보고 있는 멤버까지.
‘쟤네 뉴블랙 아닌가…?’
‘명곡단에서 본 애들 같은데.’
‘오. 역사 탐험대 거란족이다.’
대부분 얼굴을 알아보았다.
한국사 관련해서 온갖 짤을 탄생시키고 있는 대세 아이돌 그룹.
알아보고 나니 더 의아했다.
‘쟤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한국사 시험을 보러 왔는데 요즘 대세로 불리는 가수가 수험생으로 앉아 있다.
사람들이 핸드폰 자판을 톡톡거렸다.
[지금 한국사 시험 보러왓는데 뭐지.. 아이돌 있다]
뉴블랙임
얼떨결에 인증샷도 같이 찍음
덧. 형들 상대로 인성질하던 진골귀족 걔 맞음
-ㅋㅋㅋㅋㅋㅋㅋ왤케 소심하게 찍었누
-손에 저건 뭐야?
-[작성자] 컴싸 안 들고 왓다고 내 거 하나 줌..
-왜 온 거래?
-[작성자] 시험 보러 왔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연한건데 뭔가 이상하다
-역사탐험대 그거 콘텐츠 찍나 본대???
-시험 앞두고 글 쓰는 니가 레전드다
-미튜브 그거 찍으러 왔나 보네
-근데 좀 별로인 듯.. 얼굴만 비춘 다음에 개념돌하면서 언플 주구장창할 거 같은데
-점수는 뭐..ㅋㅋㅋㅋ 쟤네가 공부할 시간이 있었겠냐
오프라인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돌이 미튜브 컨텐츠 찍으러 시험을 보러 왔구나 하고 생각할 뿐.
수험생들은 처음에는 신기해 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요약집을 펼쳤다.
‘그냥 왔나 보네.’
하지만 자신들이 들고 있는 요약집의 가장자리에는 적힌 ‘made by SLH’의 뜻을 아는 사람은 적었다.
그저 인터넷 유저명이라고 생각할 뿐.
그들이 진실을 알게 된 건 시험이 끝난 후였다.
그리고…….
‘뭐지.’
비주가 입실한 고사장에서 숨죽이며 정체를 숨기고 있는 수플레는 침을 삼키고 있었다.
한국사 시험을 보러 왔는데 내 아이돌이 있는 상황.
시험 끝나면 다른 팬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그녀는 웃음을 참았다.
혹시 사람들에게 방해라도 될까 봐, 비주가 눈치를 살피며 사과를 열심히 녹여먹고 있었다.
* * *
한국사 능력시험은 전부터 준비되어 있던 기획이었다.
역사 탐험대를 마무리할 즈음에는 우리가 직접 한국사 시험을 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 같아서.
홍보팀에서도 이미지 메이킹에 좋다고 적극 찬성했다.
물론 그렇다고 대충 보고 나왔다간 면이 살지 않았기에 틈틈이 공부를 했다.
‘다들 외워요. 고려 왕. 태혜정광 경성목……. 못 외우면 저 아저씨랑 작곡하는 거야.’
‘태혜정광 경성모오오옥……!’
누군가의 세뇌가 가장 큰 역할을 하긴 했다.
“흐아, 넘 힘들당.”
“고생했어. 다들.”
시험이 끝나고 상암동 TBC 사옥으로 다시 돌아왔다.
리혁이가 물었다.
“시험은 잘 본 거 같아요? 난 좀 애매한 거 한두 개 있었는데.”
“나두… 생각보다 너무 어렵더라.”
비주의 말에 중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모르는 거 진짜 많아서 엄청 찍고 왔는데.”
“이러다 괜히 욕만 먹는 거 아니에요. 우리?”
다들 불안해 하고 있을 때, 지호 혼자 희희낙락했다.
“전 그래도 공부한 거 다 나왔어여. 잘하면 1급 나올 듯.”
“오오.”
우리 막내님이 희망이시다, 하며 다들 흐뭇해할 때.
오후 두 시.
마침내 시험의 정답이 공개됐다. 다들 긴장한 얼굴로 빨간펜을 들었다.
채점이 진행되는 동안 민기 형이 핸디캠으로 찍었다.
그리고 최초의 합격자가 등장했다.
“오… 오! 형! 형! 저 71점 나왔어요!”
“대박. 그럼 1급이야?”
“네!”
“허어… 우리 비주 장하다!”
비주와 내가 손뼉을 마주치며 ‘우리 둘째 최고!’ 하고 있을 때, 다른 녀석들의 채점도 속속 끝났다.
“아. 3점짜리 3개 틀려서 91점이에요.”
리혁이가 투덜거렸다.
학계에서도 아직 논란이 있는 걸 선택지로 줬다며 불평하는 녀석이었다.
난이도가 너무 쉬웠다는 말에 검색을 해 보니, 정말 다들 역대급으로 쉬운 시험이었다며 기뻐하는 중이었다.
합격률이 엄청 높을 거 같다나.
“형, 형은 몇 점이예요?”
“나 87점. 공부했던 거 다 까먹었나 봐.”
그래도 왕년에 수능 공부하던 가락이 남아 있었던지 좋은 점수가 나왔다.
“중현이, 너는?”
“저는 70점이요. 푼 건 틀리고, 찍은 게 맞았어요.”
과연 중현이다운 점수라며 다들 웃었다.
지금까지 전원 1급.
‘이제 한국사 1급 아이돌이다’하면서 자축하고 있는데 막내가 유독 조용히 눈치만 살폈다.
우리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넌 왜 그래?”
“아, 아니에여. 아무것도…….”
“몇 점인데 그래?”
“아니, 못 본 건 아닌데. 이게, 그…….”
내가 중현이에게 눈짓했다. 녀석이 막내를 찹! 붙드는 동안 리혁이가 잽싸게 시험지를 빼냈다.
이윽고 우리의 얼굴이 시험지 앞으로 모였다.
“…….”
막내가 ‘하…’ 하고 있을 때.
“흐하핫!”
“야! 이게 푸흡… 뭐야!”
막내의 시험지 위에는 소심하게 ‘69’라고 적혀 있었다.
1급 기준은 70점.
얘 혼자 2급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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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 그만해여, 진짜!”
“깔깔깔!”
“아니, 1점 차이잖아여! 중현이 형은 70점이고 전 1점 모자랄 뿐이라구여!”
“무슨 소리야. 올림픽은 0.1초 차이어도 은메달이야. 지호야.”
“억울하면 1급 해~”
“깔깔!”
“아으, 진짜 다 미워여!”
괴로워하며 도망치는 막내와 ‘69점’이 적힌 전광판 앱을 킨 멤버들이 악랄한 표정으로 추격하는 방송국 복도.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신인 아이돌들이 있었으니.
“…….”
아이리스 멤버들이 눈을 깜빡거리며 혼란스러워하자, 드림티켓이 봤냐는 듯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