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4화
뉴블랙 멤버들의 한국사 1급 취득 소식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아이돌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였다.
「 오늘 한국사 1급 땄다는 아이돌.jpg 」
(뉴블랙 멤버들이 시험지를 들고 다 같이 모여 있는 사진)
주어는 뉴블랙임
오늘 한국사 시험에서 1급 땄다고 함
-뭐야; 저기 음방 대기실 아냐?
-ㅇㅇ 사녹 끝나고 시험 보고 왔다고 함
-???
-ㅋㅋㅋㅋㅋㅋ아니 음방 뛰는 도중에 시험을 보고 왔다고??
-얘네 라이징 아냐? 공부시간이 있긴 해..?
-대단하네
-와.. 반성해야겠다. 난 왜 음방도 안 뛰는데 2급이지
-그 와중에 91점 뭐야ㅋㅋㅋㅋ 87점. 나도 전에 70점 간당간당하게 넘었는데
-대길이 친구가 의외네 70점
-근데 왜 네 명밖에 없어???
이윽고 사진이 하나 더 첨부됐다.
막내가 소파에서 등을 돌린 채 외면하고, 네 명이 역동적으로 웃는 사진.
몸을 어찌나 크게 들썩이는지 잔상이 가득했다.
-무슨 상황이야?
-막내 혼자 69점이래 (70점이 1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파일명 뭐냐고 2급아이돌 ㅋㅋㅋㅋ
-얘 혼자 2급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
-69점이면 놀릴수밖에 없지
-등돌린거 개귀엽다ㅋㅋㅋ
강아지들이 화가 났을 때 눈을 피하듯 등을 돌린 지호의 모습에 귀엽다는 댓글이 달렸다.
하지만 초반 댓글이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응 주작돌’, ‘사재기나 해명해’ 같은 댓글이 줄줄 달리면서 댓글창이 순식간에 싸움판으로 변하고, 수플레들이 ‘아. 댓글 망했네…’ 하며 글 삭제 버튼을 누를 때.
뉴블랙의 한국사 1급 취득 소식은 다른 곳에도 퍼져나갔다.
[ 뉴블랙 멤버 전원 ‘한국사 1급’ 합격 … “막내 지호는 2급” ]
-요즘 볼수록 호감 ^^*
-일반인도 공부 시간 내서 자격증 따는게 어려운데.. 본받고 싶네요
-볼 때마다 똑소리 나는 아이들ㅎㅎ
-자주 봐서 그런지 우리 조카들 같고 그러네요ㅋㅋㅋ 좋은 소식이라 보기 좋습니다. 화이팅!
-나이마흔 먹고 요즘 뉴블랙 노래들어요
현재 활동 중인 신인 중에서 대중적 친밀도가 높은 보이그룹답게 호의적인 댓글이 넘쳤다.
한편, 연예란 메인에 뜬 소식은 오늘 한국사 시험의 응시자들이 모인 커뮤니티로도 퍼져 나갔다.
-오늘 한국사 응시한 애들 중에 아이돌이 있다네요. 뉴블랙이 한국사 1급 땄다고 함 (한명은 69점)
-69점 ㅋㅋㅋㅋㅋㅋㅋ 누군진 몰라도 진짜 억울하겠네
-나 같으면 잠 안 옴ㅋㅋㅋㅋㅋ엌ㅋㅋㅋ
-아까 아이돌 봤다는 후기 엄청 봤는데 얘네구나
-점수 나와야 얼마나 나오겠냐고 비웃었는데.. 결과는 나보다 높았고
-잉???
한편 SNS 캡처 화면을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잠깐만. 저기 글 내용 중에서 잠깐만.. 이거 요약본 인터넷에서 떠도는거 뉴블랙 쟤가 만든 거였슴..?????
-ㅇㅇ
-역사탐험대에서 그 선비가 만든 건데
-선비 중 누구? 진지충선비 아니면 금발선비?
-부채도사 걔 아냐?
-부채도사는 거란족 대길이고
-ㅅㅂ 아니 부캐가 뭐가 이렇게 많냐ㅋㅋㅋㅋㅋ 그걸 알아듣는 내가 더 신기하지만..
-진지충선비가 만듬
-뭐야;; 지금까지 나만 몰랏어?
-너만 모름 ㅅㄱ
-나도 지금 알았다 충격이네
-여기 애들 그럼 아까 쟤네가 만든 자료 보면서 쟤네를 비웃고 있던 거였어..??
-비웃음당한 건 내 점수였고
-레전드는 내 인생이었다
-팩트) 쟤네 한국사 공부한지 석달 정도 밖에 안 됏따
역사탐험대가 미튜브에 올라오기 시작한지 어느덧 두 달.
사람들의 뇌리 속에 ‘역사 + 아이돌 = 뉴블랙’ 이란 무의식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호 혼자 69점 받았나 보네. 비주도 잘 봤고. 우주랑 리혁이는 점수 엄청 높네? 오. 중현이가 의외…… 음?’
기사에 첨부된 SNS 사진을 보던 사람들은 저마다 멈칫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내가 언제부터 얘네 이름을 다 알고 있었지?’
그간 역사탐험대에 출연할 때마다 의상에 대문짝만한 글씨로 ‘우주’, ‘비주’ 같은 멤버 이름을 박아 넣은 덕분일까.
역사 탐험대를 꾸준히 시청한 수십만 구독자들과, SNS에서 짤을 보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멤버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었다.
‘뭐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분명 미튜브에서 선비처럼 차려 입은 아이돌들이 디스 시조를 읊는 걸 보며 웃고 있었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그들의 이름까지 친근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이웃집 동생이나 조카 같은 느낌.
뉴블랙의 기사를 읽고 있던 대중들이 눈을 깜빡였다.
‘신기하네.’
어느 시점부터일까.
전에는 TV에 나오는 아이돌 이름을 다 꿰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소위 ‘3세대 아이돌이 등장했다’고 한 때부터일까.
대중성을 중시하는 걸그룹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지만 보이그룹은 깜깜무소식이었다.
TNT나 틴스피릿 같은 탑급 아이돌도 ‘아. 얘네가 요즘 아이돌 세계에서 최고로 잘나가는 애들이구나’하며 유명함을 실감할 뿐.
그런데 지금은…….
이름도 잘 몰랐던 신인 아이돌이 미튜브와 SNS에 혜성처럼 등장하더니, 이제는 멤버 이름조차 기억시키고 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사람들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톡톡톡.
각지에 흩어진 사람들이 저마다 핸드폰에 ‘뉴블랙’을 입력하고 있었다.
친근함이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호기심이 뉴블랙의 공연 영상과 예능으로 이어지는 상황.
아직은 그리 크지 않고, 눈치채고 있는 사람도 적지만.
수면 아래에서 벌어지는 조용한 변화였다.
* * *
‘바람꽃’으로 컴백한지 어느덧 한 달.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다.
한국사 시험에서 1급(지호 2급)을 거둔 우리는 5주차로 바람꽃 활동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네! 과연 이번 주 1위는?
-축하 드립니다, 뉴블랙의 ‘바람꽃!’
‘뉴블랙 vs 뉴블랙’의 상황은 바람꽃의 완승으로 끝났다.
바람꽃은 말도 안 되는 성적을 내는 중이었다.
5주 연속 망고 주간차트 1위.
벌써부터 올해 시상식에서 베스트송이나 음원 부문은 ‘바람꽃’이 아니겠냐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추이대로면 연간 5위 안에는 무조건 들 거라나.
여러모로 역대급이었다.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봐야 돼. 객관적으로 봐도 이 정도 대박이 또 터지긴 어려워서…….”
조규환 이사님의 이야기에 모두가 공감했다.
음반 판매량이야 얼마든 더 늘어날 수 있겠지만, 음원만으로 순수하게 이 정도 성적을 거두는 건 어려울 거라고.
그래도 긍정적인 점이라면 이번에 음원 대박을 터뜨린 덕에 다음 앨범은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할까.
A&R팀 통해서 작곡 관계자들 이야기를 들었는데, 적어도 곡 공모를 했을 때 곡이 부족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다들 너랑 작업하고 싶어 해. 우주야.”
A&R팀 서필근 대리님이 나와 만날 때마다 음흉한 얼굴로 말했다.
“꼭 작업해. 우주야. 꼭.”
“왠지 모르게 엄청 기대하시는 거 같은데요.”
“아니, 다들 너랑 작업을 하고 싶다고 그래서.”
“진짜요?”
상대가 작곡계의 상황을 들려주었다.
“만날 때마다 너랑 다리 좀 놔 달라고, 메일 주소 물어봐도 되냐 그러고. 내가 이번 앨범에 편곡으로 발 좀 걸쳤다니까 행운아처럼 보고 그러는데…….”
“아니었어요?”
“어……?”
“저랑 작업하는 게 혹시 별로였…….”
“아, 아니이이!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나는 너랑 작업할 때가 제일 좋지!”
“그래요? 그럼 지금 하러 가요.”
“…….”
“이제 4집도 준비해야죠.”
아직 이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부터 준비를 하지 않으면 시간이 부족했다.
단독 콘서트 이후 리패키지 앨범으로 컴백하기로 계획을 잡아서.
또 다른 미니 앨범을 만들기에는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소위 뭘 해도 반응이 핫하게 오는 ‘라이징’ 시기가 제일 바쁠 거라고 태현이로부터 들었는데, 정말 그랬다.
정말 가리지 않고 다 나갔다.
요리 프로 나가서 열심히 박수를 치기도 하고, 라디오에 출연해서 역사 탐험대 비하인드나 지호 69점 스토리도 열심히 풀고.
음방 중간중간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도 했다.
“……너희 괜찮은 거 맞아?”
눈밑에 다크 써클이 시커멓게 깔린 우리를 보며 연예IN의 오소희 기자님도 당황할 정도였다.
“괜찮아요…….”
“저희 할 만해↗…요.”
“흐하하. 리혁이 형 삑사리 났대여어…….”
“야. 메인 보컬이 삑사리를 내냐앗↘”
“우주 형…….”
“앗, 아아….”
3주차와 4주차까지는 괜찮았는데, 후속곡 활동을 할 때쯤 되니 다들 슬슬 맛이 가고 있었다.
우리 수플레들은 ‘규호 양심 = 모근’ 하면서 대표님을 부르짖고 있었지만 조금 애매한 부분이었다.
회사에서 말리는데도 우리가 감수하는 스케줄도 있긴 해서.
대개 라이징이라 함은 어느 아이돌이 완전히 대세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뭘 해도 반응이 오는 시기.
그러기에 대부분의 아이돌이 이런 시기가 되면 오는 스케줄을 모두 다 붙잡는다.
연예계는 정말 부침이 심한 곳이고, 다음 앨범이 지금만큼 잘 될 거란 보장도 없으니까.
“……얘들아. 일어나. 도착했어.”
원석이 형이 우리를 조심스럽게 깨웠다. 차창 밖으로 들리는 시끌시끌한 소리.
여기는 신촌에 있는 대학교 축제 현장.
5월은 축제의 달이기 때문에 행사가 진짜 많았다.
“난 우리나라에 행사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
“저도요.”
“아으으, 형들. 오늘 끝나고 꼭 떡볶이 먹어여. 떡볶이.”
“그래. 그러자.”
내가 흐뭇하게 웃으며 물었다.
“6인분 먹을까, 9인분 먹을까?”
“69인분은 어때요? 흐하핫!”
“…….”
“지호야. 지호야. 이거 봐봐.”
내가 큰 하트를 만들 듯이 팔을 들어 굽히자, 지호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윽고 내가 팔을 머리 위로 들어 6, 중현이가 다리를 꼬아서 9를 만들어 보이자 지호가 부들부들 떨었다.
비주가 재미있어 보인다며 끼어들었다.
“야. 김중현. 나랑도 하자.”
“님 키 작아서 안 됨.”
“…….”
누군가 옆구리를 꼬집혀 괴로워하는 소리를 흥겹게 들으며 행사장을 거닐었다.
우리가 등장하는 순서는 행사의 하이라이트.
-와아아아!
환호 속에 등장하여 ‘바람꽃’의 무대를 끝냈다.
중현이가 능숙하게 대학 이름을 외치며 마이크를 내밀자, 답례하듯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 뒤는 내가 넘겨받았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우와아아’ 해도 차분히 웃을 만큼 적응이 됐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썸씽 때부터 단련이 되다 보니 행사 멘트도 술술 흘러나온다.
“저희가 정말 오고 싶었던 행사 중 하나였어요. 아이돌 선배님들 얘기 들어보면 이곳만큼 반응 잘 해주는 현장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진짜 열기가… 직접 겪으니 다르네요.”
그에 답하듯 함성이 돌아왔다.
옆에서 흘깃거리는 동생들 표정을 보아하니 끝나고 나서 ‘열기가 직즙 격그니 다르느여~’ 하며 놀릴 모습이 선했다.
동생들과 드립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날씨가 덥네요. 벌써.”
“이럴 때면 시원한 곡이 필요하겠죠?”
틈틈이 ‘불꽃놀이’도 홍보한 후, 모든 행사의 끝이 그러하듯 ‘덕순아’로 매듭을 지었다.
변수가 많은 야외 행사답게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꺄아아아…… 아아?
뚝.
마지막 무대에서 MR이 나오다가 뚝 끊겼다.
데뷔 초에는 이런 거 하나 있으면 진짜 긴장해서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는데.
비주가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마저 이어 부르자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소리가 텅 비지 않도록 우리가 마이크를 들고, 음을 덧입혀 주는 동안 중현이가 나섰다.
머리 위로 손뼉을 치면서 박수 호응을 유도하고, 지호가 사뿐 걸어나와 비주의 파트를 이어 받았다.
“자, 다 같이!”
그리고 내가 웃으며 마이크를 내밀었다.
노래의 후렴구에 관객들이 동참하면서 텅 비었던 소리가 박수와 노랫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다섯 명이서 그렇게 분업을 하니 행사 분위기가 놀랍도록 빠르게 되살아났다.
그러기를 10초.
다시 음향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동안 우리가 흥겹게 춤을 추며 행사의 흥을 돋웠다.
그날 미튜브에는 음향사고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이 직캠으로 올라갔다.
* * *
후속곡 ‘Flower Dance’ 준비를 앞두고 있는 동안, 원하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나이가 간다’ 뉴블랙 우주 출연 확정 … “나머지 멤버는 미정”
-‘예비군 아이돌’ 뉴블랙 리더 우주, ‘사나이가 간다’ 합류
정확히 언제 녹화가 될지 일정이 잡힌 건 아니지만, 도준기 PD는 내 출연이 확정되자마자 냉큼 기사를 내버렸다.
“……형, 괜찮아요? 지금 우는 거예요?”
“아냐.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래…….”
그냥 2박 3일 가서 하고 오는 건데 왜 이렇게 재입대하는 기분이 나는 걸까.
가서 유격 훈련 그런 건 아니겠지.
음방 활동이 영원히 안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월말평가 댄스 시간 때, 내 앞 순서 연습생이 춤을 추고 있을 때 느꼈던 기분이라고 할까.
우리 수플레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왜 가ㅠㅠㅠㅠㅠㅠ
-아니 규호 정신 안차려? 애들 다치면 어쩔 거냐구ㅠ
-사간 지난번에 부상 당하지 않았음?
-응.. 부상은 안 당함.. 저 프로 희한하게 힘든데 부상은 안 당한데자너..
-아하
-아니 그게 아니고 우주야ㅠㅠㅠㅠㅠㅠㅠ
우리 수플레들은 알 수가 없다.
‘깔깔, 사나이가 간다 나가니~?’ 라면서 얼마 전까지 놀리고 있었는데, 막상 나간다고 하니 왜 나가냐며, 다치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팬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 모양이다.
한편, 신토끼의 1부 방영도 다가오면서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미지 관리 열심히 해서 대중들은 나를 성실하고 멋짐 뿜뿜한 아이돌로 기억할 텐데.
갑자기 이상한 애처럼 바라보는 거 아냐?
“이미 이상한데요.”
“중현아.”
“끌고 갈게요. 형.”
‘느아아아!’ 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A4 용지에 그림을 그렸다.
회사 라운지.
스케줄과 연습을 마친 늦은 밤. 저마다 음료를 든 채 응원봉의 시안을 끄적거리고 있었다.
“우주 형. 우주 형.”
비주가 짠 하더니 내게 A4 용지를 들어보였다.
신이 난 얼굴이 물었다.
“어때요. 별 모양 예쁘죠?”
“비주야.”
“마음에 들어요. 형?”
“그거 잘못 휘두르면 앞사람 머리가 사라질 거 같은데.”
“아앗…….”
아까 사과 모양보다는 낫다만.
엄청 뽀샤시하고 예쁘게 그려진 걸 빼면, 비주가 그린 별봉은 사극에 나오는 철퇴 같았다.
“지호야.”
“넹?”
“너 떡볶이 먹고 싶지.”
“대박. 어떻게 알았어여?”
“……그거야 네가 떡볶이를 그려서?”
색깔만 없지, 누가 봐도 떡볶이봉이었다. 빨간색만 들어가면 야광떡볶이처럼 보일 거 같다.
중현이가 물었다.
“밀떡이야, 쌀떡이야?”
“쌀떡이여.”
“오. 그렇구나.”
……오, 그렇구나 같은 소리하고 있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얘네한테 뉴블랙을 맡겼다가는 이 그룹이 풍비박산이 날 게 뻔했다.
그나마 리혁이가 그린 디자인이 괜찮기는 했지만.
“스펙이 너무 과한 거 아냐?”
“과해요?”
“네가 원하는 대로 기능 넣으려면 적어도 원자로가 안에 하나는 들어가야 할 걸.”
“……엇.”
그런 식으로 코멘트를 하면서 저마다 시안을 그릴 때, 지호가 입을 비죽거리며 말했다.
“그러는 형은 얼마나 잘 만들었는데여? 어디 봐여.”
“여기.”
지호에게 내밀자, 다른 녀석들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내가 기대감을 품은 얼굴로 물었다.
“어때…?”
“…….”
“…….”
왜 대답이 없지.
비주가 내 응원봉 시안의 가운데를 가리켰다.
“형, 이 꽃잎 가운데 있는 건 뭐예요?”
“수플레야. 빵.”
멈칫.
리혁이가 내게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가운데 암술 부분에 수플레가 있고, 바깥이 꽃잎 다섯 개가 둘러싼 구조인 거죠?”
“정확해.”
“꽃잎 다섯 개 위에 글씨는 뭐예요?”
“색깔 지시사항이야. 빨노초파보.”
“…….”
내가 열심히 설명했다.
“봐봐. 수플레가 가운데 있고, 우리 멤버 다섯이 꽃잎이 되어 지켜주는 구조인 거지.”
“……서로 색이 다른 다섯 꽃잎이요?”
“응. 그리고 거기 ‘Air’ 버튼 누르면 그 꽃잎이 선풍기처럼 돌아가.”
“…….”
“여름에 더울 때 버튼 누르면 꽃잎이 위이잉 시원한 바람을 뿜는 거지. 탈착도 가능해서 교체도 할 수 있어.”
내가 말을 할수록 동생들의 표정이 사라졌다.
지호는 방금 전까지 돋았던 식욕이 사라졌다는 얼굴이었다.
리혁이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침을 삼키고 있고, 비주는 ‘어……’ 하는 상태로 정지되어 있었다.
중현이가 ‘나도 이건 좀’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들 그래? 그렇게 별로야?”
“그렇게 별로냐고요?”
리혁이가 헛웃음을 지을 때, 지호가 내 팔을 붙잡고 간곡하게 말했다.
“형.”
“응?”
“형은 노래만 만들어여…….”
모두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게 그렇게 별로야?
몇 번이고 되물었지만 그때마다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 * *
레몬 엔터.
직원들이 모인 회의실에 뉴블랙 멤버들이 보낸 응원봉 시안 수십 개가 올라왔다.
“오.”
하나하나 지나갈 때마다 ‘오’ 하는 것도 있고, ‘어…’ 하는 것도 나오고.
그야말로 인간의 상상력을 이렇게도 발휘할 수 있구나 하며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이윽고 우주의 도안이 등장했다.
“…….”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해진 오색 꽃잎 선풍기에 간담이 서늘하다.
“……누구야? 이거?”
“경쟁사에서 보낸 스파이 아냐?”
“우주… 라고 써 있는데요.”
“…….”
윤석환 실장이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홍보팀 직원들이 ‘누르면 돌아가요’라는 친절한 설명에 충격을 느낄 때.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엎어요. 엎어.”
“그거 대표님이 보시면 바로 간택이야.”
“어우, 아찔했다…….”
만장일치로 치워두기로 결정했다.
옆으로 빠진 꽃잎 선풍기 도안.
한편, 뉴블랙의 리더가 그린 그림에서 직원들은 누군가의 익숙한 향기를 느끼고 있었다.
‘대표님……?’
설마 대표님이 몰래 집어넣은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잠시 모두의 머릿속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