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5)화 (25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5화

31장. 봄의 끝에서

결과적으로 말해서 우리의 응원봉 시안은 내부 심사에서 모두 탈락했다.

“……진짜요?”

“응.”

홍보팀 과장님이 전하는 소식에 우리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내가 울적하게 중얼거렸다.

“어째서 이런 일이…….”

“그건 우리가 해야 할 말이죠. 꽃풍기 제출한 사람이 아니라.”

리혁이가 혀를 끌끌 찼다.

괘씸한 것.

귀찮아서 손을 휘휘 저으니 중현이가 알아서 불순분자를 제거해 주었다.

비주가 물었다.

“그럼 저희가 낸 아이디어는 다 폐기되는 건가요…….”

“아냐, 그건 아냐.”

시무룩한 우리 애들의 모습에 당황했는지 홍보팀 과장님이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너희가 낸 아이디어를 몽땅 다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부분씩 취합할 거야. 비주가 낸 아이디어에서 하나 따오고, 리혁이가 낸 아이디어에서 하나 따오는 식으로.”

“저희는요. 과장님?”

“저는여?”

“물론, 중현이랑 지호 아이디어도 반영하지.”

이윽고 미소를 짓는 나와 상대의 눈이 마주쳤다.

흠칫.

……흠칫?

침을 삼키는 이에게 내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 아냐…. 아무것도.”

“제 아이디어도 반영되는 거죠?”

“어, 어디 보자. 일단 응원봉 시안을 다 취합해서…….”

급하게 말을 돌리는 모습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꽃 선풍기가 그렇게 별로였나.

색이 너무 알록달록하다는 동생들의 혹평에 색도 바꾼 제2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꽃잎은 뉴블랙의 검정, 가운데는 수플레의 갈색. 이렇게 바꿨는데 다들 감탄은커녕 기겁을 했다.

-방사능에 걸린 해바라기 같은데요.

-오. 지옥에서 돌아온 꽃.

-게임에서 저렇게 생긴 꽃 몬스터 있는데. 저렙 사냥터에서 많이 나와여.

하여간 못된 것들이었다.

동생들을 바라보던 내가 직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꽃 선풍기가 별로였나요…?”

“어, 그… 디자인은 어… 관점에 따라서 엄청 예쁠… 예쁘지.”

“감사합니다. 과장님. 하지만 저의 마음은 이미 상처 받았어요.”

“하하.”

내가 시무룩한 척 너스레를 떨자 상대가 웃음을 흘렸다.

분위기가 가볍게 환기되었다.

아쉽지만 별수 없지.

괜히 이상한 디자인으로 출시했다가 흑역사봉 이런 이름 붙으면 어떡해.

우리 팬들 공방 올 때도 가방 깊숙이 숨겨뒀다가 무대 직전에 조심스럽게 꺼내고. 다른 팬들은 ‘엌ㅋㅋㅋ 뉴블랙 팬이다’ 하면서 비웃는 상황보다는 예쁜 게 좋지.

“그럼 저희 응원봉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외부 디자이너를 쓰기로 했어. 너희가 낸 응원봉 아이디어를 그분이 취합해서 잘 만들어 주실 거야.”

“오오…….”

“예쁘게 뽑아올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일 때 홍보팀 과장님이 말했다.

“참, 예산이 크게 잡혀서 응원봉 수량을 넉넉하게 뽑을 거야. 스펙도 리혁이가 요구한 대로 하이 스펙으로.”

“허어…….”

눈을 잠시 크게 뜨던 리혁이가 헛기침을 하며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양 주먹을 꼭 쥐고 있어서 하나도 안 차분해 보였지만.

“그, 그럼 태양광 발전도 들어가요?”

“그건 빼고.”

“손잡이로 돌리는 자가 발전은요? 위급 상황에서도 쓸 수 있게.”

“어… 그것도.”

“아, 네…….”

리혁이가 시무룩해 하는 동안 웃음을 참았다.

머릿속에 그런 광경이 그려져서.

공연이 있을 때마다 수플레들이 응원봉을 켜기 위해 손잡이를 열심히 돌리는 노동의 현장.

‘위이이잉’하는 기계 손잡이 소리와 함께 방송국 스탭들이 입을 멍하니 벌릴 모습이 상상됐다.

내가 웃으며 타박했다.

“리혁아. 위급 상황에 왜 응원봉을 왜 쓰니. 차라리 꽃 선풍기가 낫지.”

“…….”

“아무도 동의 안 해 줄 거야?”

“…….”

넷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내가 군대에 데려갈 녀석을 고민하는 동안, 과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우리가 잘 뽑아올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수고하고.”

상대가 빙긋 웃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도 회사 복도를 다시 걸어가려고 할 때, 걸음을 우뚝 멈춘 과장님이 물었다.

“참, 우주야.”

“네?”

“너 혹시 학교 다닐 때 미술 과목 잘했니?”

“어, 아뇨…?”

과거의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늘 꼴찌였어요.”

“아하.”

“제가 음미체 중에서 음만 잘해서…….”

초등학교 때도 미술 체육은 늘 ‘가’만 나와서 할머니가 보고는 가가 웃었는데.

“그건 왜 여쭤보세요?”

“아니야. 그냥 궁금했어.”

상대가 그제야 미스터리가 풀렸다는 듯 밝은 표정을 짓더니, 몸을 돌려 멀어졌다.

왜 물어보신 거지.

동생들도 ‘아’ 하면서 드디어 그간의 비밀이 풀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되게 납득했다는 얼굴인데.

내가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려고 할 때, 네 명이 멈칫하더니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지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이 체육을 못했다구여?”

“납득이 안 가는데요.”

리혁이도 눈을 가늘게 뜨고 중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비주도 의문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형이… 체육을요? 여태까지 드립이 아니라 진짜로 못했다는 거였어요?”

“응.”

“그, 그럼 혹시 체육 선생님이 혹시 형을 미워했다거나…….”

“아냐. 나 좋아하셨어. 그런 거 아냐.”

내가 웃었다.

“그냥 그때는 많이 못했어.”

너희는 상상도 못할걸.

내가 축구하다가 공에 안 맞아본 부위가 없다.

어떻게든 애들 노는데 껴 보겠다고 열심히 했는데 잘 될 리가 있나.

축구 하고 돌아올 때마다 할머니가 ‘오늘도 피구했냐’하고 고개를 끄덕였지.

혼자 연습을 하겠다고 슈팅을 하다가, 내 오른다리로 왼다리를 걷어찬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천지개벽 수준이지.

예전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왜들 그래?”

“형이 체육을 못했다는 게 안 믿겨서요.”

“왜.”

내가 웃으며 물었다.

“내 평소 이미지랑 많이 달라?”

“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가 돌림픽에서 좀 잘하긴 했지. 이제 운동신경 좋은 애라고 불릴 정도가 됐기도 하고.

두근거리는 기분으로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내 평소 이미지가 어땠는데?”

“형이여?”

지호가 해맑게 웃었다.

“게임에 나오는 최종보스 같아여.”

“…….”

“그중에서 막 이상한 옷 입고 다니는데 겁나 센 보스…아아악!”

“…….”

내게 붙들린 막내가 ‘으아아, 꽃무늬 괴물이다!’ 하면서 비명을 지르자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GTV 드라마 ‘슬립’의 촬영 현장.

“자, 리허설 갑니다. 자아… 리허설 큐!”

한적한 길거리.

감독님의 사인에 의경 제복을 입은 지호가 차분하게 걸음을 옮겼다.

옆에는 전에 같이 출연했던 후임 역할의 배우가.

맞은편에는 방금 전까지 우리에게 ‘뉴블랙! 오늘도 빛이 난다!’ 하는 멘트를 하던 배우 이강진이 형사 박철진이 되어 있다.

“오오…….”

우리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뭐라고 말하는지는 안 들리지만 대충 진지한 분위기 같았다.

오늘은 슬립 10회를 앞두고 지호의 카메오 촬영씬 일부를 재촬영하는 중이었다.

리혁이가 대본을 들추며 물었다.

“그러니까, 이게 바뀐 현재라는 거죠?”

“그렇지.”

지호가 적은 삐뚤빼뚤한 메모가 빼곡한 대본.

슬립의 최종화에서 허 의경이 재등장하는 시퀀스였다.

주인공 이강진은 7회의 충격적인 반전 이후 주어진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멸망 이후의 미래 시대에서 몇 년간 살면서 1980년대로 연결된 최초의 터널을 찾는다나.

그런 이야기였다.

여차저차해서 결국 과거로 가는데 성공하지만, 모든 일을 막을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번.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지금까지 수사를 하는데 도움이 됐던 메모를 과거의 자신이 썼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이 일종의 루프임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안 되는 것.

그러하기에 과거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의 죽음을 막는 것과 모두를 위한 길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후자를 택한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이 사망할 때도 그저 바라볼 뿐.

80년대부터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노인이 되어 버린 주인공.

그런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마음의 짐으로 남았던 허 의경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였다.

허 의경이 2010년대의 이강진과 마주치고 난 이후 시점.

특수 분장을 한 이강진이 지호에게 다가가고, 지호는 친절하게 이름 모를 노인의 대화에 응한다.

후회 가득한 얼굴로 허 의경을 바라보는 늙은 박철진과, 그 상황을 모르며 밝게 웃는 허 의경이 포인트였다.

“타임 패러독스가 좀 있는 거 같은데요. 전편에는 과거로 갈 수 없다고 해놓고, 지금은 같은 시점에…….”

리혁이의 말에 감동이 끊겼다.

“리혁아, 사과 먹어. 사과.”

“읍읍.”

적당히 처리해 준 비주에게 고마움의 눈빛을 보냈다.

중현이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근데 결국 허 의경은 못 사나 보네요.”

“그렇지. 진짜 안 됐…….”

…라고 말하고 있는 찰나.

“형드으으을…!”

리허설을 끝낸 지호가 ‘우아아’ 하면서 우다다 달려왔다.

…내 허 의경 돌려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성숙해 보였던 허 의경이 지금은 우리 막내로 돌아와 있었다.

“흐어, 땀 봐. 저 더워 죽는 줄 알았어여!”

우리와 매니저들이 부채와 미니 선풍기로 땀을 식혀 주었다.

허 의경 씬을 처음 찍을 때만 해도 쌀쌀했는데, 이제는 봄이 저무는 시기였다.

여름이 다가오는 5월 말의 날씨.

두꺼운 잠바를 입어서 그런지 안에 땀이 가득하다. 수증기를 모락모락 내뿜는 막내가 히히 웃었다.

“그거 알아여? 저 오늘도 칭찬 들었어여. 감독님이랑 이강진 선배님이 저보고 타고난 연기자라고. 시즌 2 하면 그때도 꼭 나오래여.”

“시즌 2도 나온대?”

“아. 저 살아나거든여.”

“살아나?”

“마지막에 제가 ‘흐억!’ 하면서 살아나는 장면이 들어갈 거래여. 방금 할아버지가 건넨 물건을 잠바 가슴팍에 넣어서 뭐… 그런 설정이라는데여. 이미 찍어놓은 게 있거든여.”

원래 허 의경이 살아날 것을 가정하고 찍은 장면인데, 지호가 ‘저 죽여 주세여’ 해서 삭제된 장면이라고 했다.

“보면 꼭 시즌 2 암시할 때 나오는 장면 있잖아여.”

“오오.”

“이강진 선배님 올드 버전이랑 서노을 선배님이 찻집에서 재회하는 장면 끝나고 마지막에 나온대여.”

그건 또 몰랐네.

시즌 2라니…….

불현듯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이 스쳐 가는데, 똑같은 말이 지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근데 이런 씬을 넣는 거 보면 시즌 2가 나올 확률이 희박한가 봐여.”

“왜?”

“제가 출연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클리프행어로 이런 장면을 넣는 거잖아여.”

내가 말없이 웃었다.

예리하네.

시청자들에게 ‘뭐야, 뭐야’ 하면서 시즌 2 나오나 하는 기대감만 주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실제로는 시즌 2가 성사될 확률이 낮다는 거겠지.

내가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지. 몇 년 후에 시즌 2 나올 수도 있고.”

“그러게여. 그때도 출연할 수 있음 좋겠다.”

지호가 신이 나서 ‘예이!’ 하고 웃었다.

드라마 촬영장에 와서 그런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업 되어 보이는 우리 애였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메이크업을 수정할 때마다 방정을 떨어서 비주가 차분하게 모이를 하나씩 줘야 할 정도였다.

근데 연기가 그렇게 재미있나?

마법학교 CF 찍을 때를 떠올렸다.

잘한다, 잘한다 하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연기 자체가 엄청 재미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데뷔하고 두 달밖에 안 된 시점이라 과하게 긴장했어서 그런 건가.

본 촬영을 앞두고 중현이가 지호의 대사를 받아주며 연기를 해 주었다.

“……재미있어 보이긴 하네.”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슛 준비할게요!”

“엇, 저 갈게요! 형들!”

허 의경과 본인의 말투가 섞여 나온다. 손을 열심히 흔들던 지호가 잠바 지퍼를 꼭 올리고 걸어갔다.

총총총 걷던 걸음걸이가 차분하게 바뀌고.

자세도 살짝 바뀐다.

본 촬영을 앞두고 완벽하게 변신에 성공한 막내를 보며 감탄했다.

“네, 갑니다. 하나 둘 셋…! 허 의경 걸어오고!”

감독님의 호쾌한 외침에 맞춰서 배우들의 연기합이 펼쳐진다.

다채롭고 섬세한 표정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는 동안, 카메오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탭들에게 인사를 했다.

우리는 끝났지만 제작진 측은 일정이 빡빡해서 바로 다음 씬에 들어가야 한다는 모양이었다.

잠시 배웅을 나온 감독님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 작곡가도 고생했어.”

“아니에요.”

“어제에 관한 시 없었으면 그 연출이 나올 수나 있었겠어. 고생했지.”

감독님이 흐뭇한 얼굴로 내 팔을 붙잡았다.

“다음에 어디 OST를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꼭 나랑 일하는 거야. 알았지?”

“네, 그럴게요.”

“웃지 말고. 나 진심이야.”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는데, 자기는 진심이라며 계속 보채듯 말씀하셨다.

“노래가 너무 좋았다니까. 내가 장르물 위주로 찍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OST 중에서 이렇게 좋은 노래는 처음이야.”

5분 가까이 ‘님 내가 찜, 님 내가 찜’ 하는 통에 결국 네, 알겠습니다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떠나려는데 감독님이 ‘아’ 하면서 본래 용건이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참, 우주 너는 연기에 관심 있니?”

“저요?”

“내가 칭찬을 할 때마다 지호가 ‘우주 형은 저보다 더 잘해요’ 하면서 엄청 칭찬하더라고. 연기 잘한다면서.”

어쩐지 잡범들 때도 제일 잘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아니에요. 지호가 과장한 거예요. 그 정도는…….”

“혹시 기회 생기면 할 생각 있어? 내가 보기에 썩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마스크라서…….”

“음…….”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렸다.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은 없지만,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한 번 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룹이 지금보다 더 자리를 잡는다는 가정 하에는 그렇다.

지호가 전에 말했던 것과 같은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생각 없는데요’하는 것도 좀 웃길 거고. 일단은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만약에 기회가 주어지면요.”

“흐음, 그래. 알았어.”

그러더니 내게 확인하듯 물었다.

“지호가 그러는데 너 몸 잘 쓴다면서?”

“…….”

“몸 쓰는 연기 시키면 정말 좋을 거 같다고 맨날 노래를 부르더라고.”

어째 불길해지기 시작했다.

*   *   *

기다리고 기다리던 5월 21일.

우리는 ‘Flower Dance’로 후속곡 활동을 시작했다.

바람꽃이 보컬이 중점이 되는 곡이라면, 플라워 댄스는 댄스라는 제목대로 춤에 집중한 곡이었다.

“3집은 보컬 중심이라며……. 3집은 보컬…….”

대기실에 돌아올 때마다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리혁이었다.

그만큼 안무가 빡셌다.

바람꽃이 살랑살랑 꽃잎이라면, 플라워 댄스는 살!랑!살!랑! 이라고 할까.

멜로디도 바람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마스커레이드의 연장선에 있을 만한 곡이었다.

물론, 대중의 반응은 바람꽃에서 터지고 있었지만 수플레들에게는 플라워 댄스가 더 취향저격인 듯했다.

-바람꽃도 좋지만 난 플댄이 더 취저ㅠㅠㅠㅠㅠ

-비주야아아아아악

-비주 센터 설때 미쳤다ㅠㅠ

-미쳐따 미쳐따 우리 애들 돌잡이때 그거 잡았자나요

-멱살..?

-심장이요 심장

-중현이는 왜 멱살이 더 어울리지

-센곡 좋아.. 센곡..

-올해 해외 커버 댄스대회에서 마스커레이드 엄청 나왔다던데; 내년엔 이거 엄청 나올듯요

쉬는 시간마다 짬짬이 팬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돌면서 ‘플라워 댄스’의 반응을 살폈다.

무대에서 수플레들이 보여 준 호응을 보고 이미 예상했지만 다들 진짜로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특히 후렴구.

센터에 선 비주가 파워풀하게 몸을 터는 안무가 폭발적인 평을 얻고 있었다.

팬카페에서 움짤만 수백 개는 본 거 같다.

몇 개는 나도 홀리듯이 보다가 저장을 할 정도라고 할까.

볼 때마다 ‘우리 애가 이만큼 잘났다!’ 하면서 지인들한테 자랑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정말 지인들한테 이런 자랑을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게 뻔하기에 다들 프사를 비주의 무대 사진으로 통일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비주 없는 비주방’에 네 명의 비주 프사가 모였다.

【 공지 】 생일 회의

나 [야 이번에 뭐하냐]

중현 [뭐 해요?]

나 [..]

나 [중현아..]

나 [공지 봐. 공지. 비주 생일]

중현 [오]

중현 [벌써 1년이 됐어요?]

나 [그래. 신기하지..]

5월 25일.

다음 주 월요일에 돌아오는 비주의 생일을 앞두고 우리는 열심히 회의 중이었다.

지호 [몰카해요 몰카!!]

나 [좋다]

나 [계획이 있어?]

지호 [리혁이 형이 알려줄 거예요]

지호 [리혁이 형?]

지호 [안오네]

지호 [소환술 써야지]

지호 [ (속보) 美 NASA, 목성 탐사선 ‘Piraruku’ 발사 … 이르면 내달 초 ]

귀신 같이 메시지 앞에 떠 있던 1이 사라졌다.

잔뜩 설레서 달려온 우리 메인 보컬이 한참 동안 저주를 내뱉는 걸 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써먹어야지. 저거.

그때, 내 옆에 앉아 있던 비주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요?”

“아무것도 아냐. 인터넷에 웃긴 게 있어서.”

“재미있는 거면 저도 나중에 보여 줘요. 형.”

당사자가 영문 모르는 얼굴로 화사하게 웃고 있는 동안, 우리는 톡으로 생일 때 무엇을 할지 회의를 이어 나갔다.

뭘 하든 오 좋아 하는 녀석과, 계획 없이 이거 해여 하는 녀석과, 수십 가지 플랜을 장문으로 쓰는 녀석들 사이에서 중재를 해 가며 대강의 계획을 확정지었다.

선물이야 미리 준비해 놨고.

한편, 회의를 진지하게 이어 가고 있는 동안 도저히 원치 않았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신토끼 1부.

우리가 거실에 앉아 핸드폰을 톡톡 두드리는 가운데 TV 속 로고가 사라지고 있었다.

잠시 암전된 화면 위로 동생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뭔가 잔뜩 기대하는 눈치기에 내가 한숨을 쉬었다.

“얘들아. 너무 기대하지는 마. 다섯 명이나 나왔는데, 상식적으로 내 분량이 그 정도로 많을…….”

그 순간, ‘여태껏 이런 아이돌은 없었다!’ 하는 병맛스러운 모양의 자막과 함께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이런 아이돌은 없었다! 떠오르고 있는 대세 흑역사돌!]

내 모습이 흘러나왔다.

도장처럼 쾅쾅 박히는 이름 ‘뉴블랙 우주.’

“…….”

동생들이 눈을 깜빡이다가 나를 돌아본다.

TV에서는 내가 눈을 질끈 감고 괴로워하는 모습이나 머리를 쓸어 넘기며 경악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음성변조된 목소리들.

-병장니이임!

-제가 초등학교 동창이거든요. 하핫!

병맛을 표방한 프로답게 내레이션도 박력 넘치는 병맛이었다.

[사상 최초 예비군 아이돌의 약점 공개!]

내가 벌떡 일어나는 장면이 들어가고.

[촬영장에 찾아온 의문의 인물은 누구?!]

사나이가 간다 PD님의 얼굴이 스마일 이모티콘으로 가려진 채, 나와 한조가 질겁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다른 아이돌 게스트도 오늘 회차 예고에 나오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절반이 나였다.

“…….”

내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리혁이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내가 이럴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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