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6화
방송 시작 5분 전.
목요일의 인기 예능답게 인터넷에서 불판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 뭐야 오늘 아이돌이네;
-아이돌 게스트면 노잼 예상ㅎ 지난번에 아이돌 특집했을때 개노잼이었는디..
-전반적으로 아이돌 나오면 묘하게 사리는거 잇음
-ㅋㅋㅋㅋ근데 뭐 당연하죠. 신토끼에서 호감된 케이스만 기억하는거지 비호감 케이스도 많은데
-왜 또 아이돌.. 청률 떨어졌나 요새
전반적으로 기대를 안 하는 분위기였다.
그럴 만도 했다.
마지막으로 했던 아이돌 특집이 MC들의 무리수와 게스트들의 뻣뻣한 리액션으로 점철된 역대급 망 특집이었으니까.
방영 이후 ‘신토끼, 요즘 왜 이러나’하는 비판 기사가 연달아 나올 정도였다.
그때를 기억하는 애청자들 입장에서는 못마땅할 따름이었다.
-오늘 게스트는 누구?
-아이돌 리더 특집.
-긁어옴 “이날 신토끼(약칭)에는 TNT 선웅, 틴스피릿 휘연, 와일드 우산, 스트릿 보이즈 한조, 뉴블랙 우주’ 등이 출연한다.”
-오.. 은근 메이저 라인업이네?
-그룹 이름 다 한번쯤 들어본듯 ㅇㅇ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신토끼의 애청자들도 알 법한 라인업이었다.
TNT나 틴스피릿이야 주변에 학교 다니는 지인이 있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고.
와일드도 종종 체육 예능에 나와 활약하는 체육돌로 알려져 있었다.
뉴블랙은…….
-뉴블랙ㅋㅋㅋㅋㅋ 얘네 그 웃긴 애들 맞지
-뭔가 반갑ㅋㅋㅋㅋㅋㅋ 아까 미튜브에서 뭐 보고 왔는데
-오늘 나오는애가 척준경 코스프레한 애인가? 걔가 제일 웃기던데
-걔 리더 아님
-걘 중현이고 얘는 우주. 잠만.. 근데 남자아이돌 이름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지..?
-어제 회식 때 노래방에서 덕순아 불렀는데 반갑네용ㅎㅎ
처음에는 아이돌이라는 키워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애청자들이 ‘뉴블랙’이란 단어에 관심을 보일 때.
마침내 방송이 시작됐다.
한편 약을 거하게 빤 듯한 오늘의 예고가 흘러나오면서 부정적인 예측이 일거에 휩쓸려 나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오늘 존잼각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통 예고 이렇게 뽑았을때 노잼이었던 적이 없었음ㅋㅋㅋㅋ
MC들의 멘트로 시작되는 신토끼의 오프닝.
게스트들이 등장하면서 자기소개를 하고, MC들이 코멘트를 덧붙였다.
화사한 미소와 함께 등장하는 뉴블랙 우주.
-존나 잘생겻네..
-하느님이 커스터마이징할때 현질했나봄
-쟤 나오는데 자꾸 모니터에 내 얼굴 비치니까 개짜증난다
-작가들 반응 보소;
카메라 뒤편에서 자기들끼리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작가들의 모습과 웃고 있는 우주의 모습이 교차되어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뉴블랙 우주입니다.]
무난한 자기소개에 이어 MC들의 멘트가 덧입혀졌다.
동시에 화사한 배경 속 꽃 CG가 하나씩 시들어 가며 반전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1분 가까이 흘러나오는 자료화면들.
영화 오프닝에서 전 세계 뉴스 장면들이 흘러나오듯 흑역사들이 연달아 나왔다.
팬클럽명이 수플레가 된 문제의 소감.
첫 1위 때 ‘어, 진짜네’를 외친 소감.
무알콜인데 본인은 취한 줄 알았던 P본부 음악예능의 한 장면.
고양이에게 ‘덕순 이즈 마인’을 외친 아이돌 예능. 마지막으로 대만 뉴스에 나온 전설의 우젠민까지.
우주의 얼굴 아래에 휴먼 다큐처럼 궁서체 자막이 생겼다.
「 선우주 (23세, 흑역사 장인) 」
TV 속 게스트들이 입을 떡하니 벌리고 당사자가 천장을 바라보는 동안,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너 합격
-ㅋㅋㅋㅋㅋㅋㅋ합격
-신토끼를 위해 태어난 아이돌ㅋㅋㅋㅋㅋㅋㅋ
-이집 흑역사 맛집이네
-1인분 시켯는데 5인분이 나옴 ㄷㄷ
-피디는 뭐하냐 가서 방석 몇 장 더 안깔아주고
-이 정도면 모셔와야지ㅋㅋㅋㅋ
-저게 다 1년 안에 벌어졌다는게 제일 웃김ㅋㅋㅋㅋㅋ
방송 활동을 시작하고 1년 만에 이룩한 업적에 신토끼의 애청자들이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이어서 거짓말 탐지기와 함께 하는 간단한 토크 코너.
신토끼의 애청자가 많은 남초 커뮤니티가 잠잠한 반응을 보이는 동안, 아이돌 커뮤니티는 핫한 반응을 보였다.
-휘연이 귀여워ㅋㅋㅋㅋㅋㅋ
-하아.. 세상의 보배요 진리다 진짜 저 웃음
-휘연이는 욕도 한번써본적 없겠지??
-우산 약간 학창시절에 모두가 짝사랑했던 운동부애처럼 생김
-선웅이 물마시는거 곰같아
게스트들의 얼굴이 비칠 때마다 각 그룹의 팬들이 흐뭇해하며 코멘트를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뉴블랙 주작 해명함?’, ‘주작돌 대세 코스프레하네’ 하는 글이 올라왔지만, ‘사랑아 우주해’, ‘빗질하는 규호 짤.jpg’ 하는 수플레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쭉쭉 밀려나고 있었다.
그렇게 자기 아이돌의 약점이 공개될 때마다 웃으면서 즐거워하는 분위기 속.
아이돌 팬들의 관심을 끄는 장면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제가 한 번 맞혀볼게요.]
뉴블랙의 우주가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과 TNT 멤버들의 목소리를 맞히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어설픈 셜록 홈즈 의상 그림이 우주에게 덧입혀지고 탐정 영화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저걸 맞춘다고??
-내가 혈육보다 더 많이 듣는게 울애들 목소리인데;;
-음성변조 개빡시게했는데 저걸 어케 맞춰ㅋㅋㅋ
-지금 같은 그룹 멤버도 갸웃하고 있자너 ㅋㅋ
모두가 부정적인 예측을 하고 있을 때, 우주가 각 그룹 멤버들의 목소리를 척척 맞히기 시작했다.
그냥 맞히는 게 아니라 그것도 목소리마다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설명을 하면서.
[시청자 분들도 함께 해 보세요!] 하는 자막과 함께 제작진 측에서도 도전해 보라며 판을 깔았다.
하지만 정답을 맞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전혀 모르겠는데
-나 콘크인데 우리 스보 애들 목소리 한둘만 알겟다
-투게더임.. 태현이인줄 알았는데 지훈이였다 ㅅㅂ
-다 틀리는 중ㅋㅋㅋㅋㅋㅋㅋ
-듣다보면 그 목소리가 그 목소리 같고..
-나새기 반성하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쟤는 근데 진짜 어떻게.. 아니 어떻게 맞추는거야?
-뭐야 이거
-지금 타돌 멤이 자기 돌 맞추기에서 덕후들을 이기는 거임?ㅋㅋㅋㅋㅋㅋㅋ
스트릿 보이즈 때만 해도 잠잠하던 반응이 TNT가 등장하면서 게시판이 들끓기 시작했다.
‘내가 이 바닥의 찐팬이다!’ 하면서 나섰던 팬들마저 전부 다 맞히는 데는 실패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미스터리가 쌓여갔다.
‘대체 어떻게 알아채는 거지?’
TNT의 팬들은 벌써 SNS에 퍼진 동영상을 반복 재생했지만, 그때마다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구분하기 쉬운 몇몇 멤버들의 목소리는 바로 맞혔지만 난이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바로 틀렸다.
이 멤버라고 생각했는데 저 멤버고.
저 멤버라 생각했는데 이 멤버고.
어떤 멤버는 음성변조가 강하게 돼서 들어도 ‘전혀 모르겠는데’ 하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10번을 시도한 뒤에야 겨우 ‘아…’ 하며 갈피를 잡을 때.
TNT와 스트릿 보이즈의 팬들이 멍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TV 속에 앉아 있는 우주가 은은하게 웃을 때마다 ‘니들은 이거 못하지?’ 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박이다…….’
지금까지 눈길을 주지 않았던 화면 속 타 아이돌에게 팬들의 시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TNT의 팬들이 신기함을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희 친해요!]
뉴블랙의 우주와 친하다고 먼저 언급하는 TNT의 동생라인 때문이었다.
인맥 넓고 마당발로 불리는 TNT의 형라인과 달리 동생라인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으로 유명했다.
친해지면 격의 없지만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엄청 걸린다는 인터뷰 답변도 있고.
그런 이들이 먼저 ‘으아아, 선배님 하지 마!’ 하면서 친하다고 하니 신기할 수밖에.
-우리 애들이 먼저 친하다고 그러는 애들이 아닌데
-진짜 친했나 보네? 싱기방기
-언플할려고 나 텐티 누구랑 친하다고 하는건 봣어도 먼저 우리애들이 누구랑 친하다고 하는건 첨봄ㅋㅋㅋ
-ㅇㅇ 약간 호감
-내가 tnt랑 친했으면 예능나갈 때마다 친분 울궈먹엇을듯
-입이 근질근질
연습생 때부터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멘트와 함께 TNT 멤버들의 증언이 짧게 편집되어 흘러나왔다.
[신인이라고 저희 아는 척 안 해줘요!]
[맞아!]
[공식석상에서 친한 척 좀 해요! 너무 공적이야!]
그들에게 혹여 피해라도 갈까 봐 우주가 일부러 친분을 잘 말하지 않고 다녔다는 TNT 멤버들의 증언이 흘러나오는 동안 화면 속 우주가 머쓱하게 웃었다.
TNT의 팬들이 뉴블랙의 멤버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아ㅋㅋㅋㅋ 그래서 쟤가 명곡단에서 슨배님 할때마다 애들이 흠칫흠칫했던 거구나
-미스터리 해결
-쟤 이름이 뭐야? 우주?
-근데 tj면 연생덬 많앗을텐데 쟤 이름을 왜 모르고 잇었지?
아이돌 커뮤니티 등지에서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SNS 등지에서 ‘보이스 챌린지’라며 멤버별 목소리 맞히기 게임이 흘러나오고 있을 때.
드디어 우주의 초등학교 동창이 등장했다.
왕자병에 걸렸던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화면 안팎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귀엽다..
-ㅋㅋㅋㅋ나 아이돌 잘 모르는데 쟤는 기억할거 같음
-작년 시상식때 게시판 폭발했던 애가 쟤 아녔어? 코찡긋남
-ㅇㅇ 맞아
-ㅋㅋㅋㅋㅋㅋㅋㅋ왕자병
-왜 내 공감성 수치가 도지냐ㅋㅋㅋㅋㅋㅋ
-근데 웃기긴 한데.. 뭔가 재수없다 ㅋ.ㅋ
과거 행적과 사인회 에피소드가 등장하면서 웃음도 있지만 ‘좀 재수 없는데…’ 하는 반응이 흘러나올 때.
[어렸을 때 대체 어떻게 생겼었길래 그래요?]
한 MC의 질문이 이어지자, 제작진 측에서 미리 준비한 자료 사진을 띄웠다.
[……와.]
MC들이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꽃밭 사이에 앉아서 활짝 웃고 있는 어린 우주의 모습.
마치 아역 배우의 화보 같았다.
외국 어린이 모델보다 더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 새하얀 피부. 어릴 때부터 또렷하게 솟아난 코.
-이것이 어린이다 희망편 같다
-난 절망편이었는데
모바일로 시청하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손을 꾹 눌러 이미지 저장을 눌러 보려고 시도했고, 캡처 화면을 누른 사람들은 방지 기능에 따른 검은 스샷을 보며 슬퍼했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글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1초만에 납-득
-그.. 저 정도면 왕자병 걸려야지
-저러니까 애기때 뭘 해도 애들이 박수를 쳣겠지
-애기들이 잘생기고 예쁜거 제일 좋아함
-방금 재수없다고 한 애들 다 나와서 사죄해
-사죄해
-저.. 멋 모르고 글을 썼읍니다. 죄송합니다..
-짝!짝! 노비시죄! 노비시죄..!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존예다 대존예..
-천년돌이 아니라 천년아기 아니냐
-너 오늘부터 내 배경화면 되라
-소속사는 눈치잇으면 얘 애기때 사진 풀어
삽시간에 온 사방으로 어린이 우주의 사진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반응을 모니터링 중이던 신토끼의 제작진은 눈을 깜빡거렸다.
“피디님. 지금 반응이 엉뚱한 데서 오는데요.”
“…….”
“다들 사진 얘기만 하고 있어요…….”
10시간 넘게 공 들여서 편집한 부분들보다 엉뚱한 곳에서 반응이 터지고 있는 중이었다.
커뮤니티에서 다른 커뮤니티로.
한국 커뮤니티에서 K팝 커뮤니티로.
K팝 커뮤니티에서 다른 해외 인터넷 사이트로.
이름 모를 어린이의 사진 하나가 곳곳에 퍼지기 시작했다.
* * *
한태현 [어이 코리안 베이비]
한태현 [엌ㅋㅋㅋㅋㅋ 코리안 베이빜ㅋㅋㅋ]
나 [차일드라고]
나 [너 오늘 하루 차단]
한태현 [아니 저]
차단을 꾹 누르고 나니 메시지가 뚝 끊겼다.
얘가 몇 번째지.
지금까지 차단을 누른 사람만 다섯 명은 되는 거 같다.
“후우…….”
어제 신토끼에 내가 출연했던 부분은 굉장한 화제를 끌었다.
“우주야, 우주야. 화제성 대박이야!”
홍보팀에 방문하자마자 ‘어화둥둥, 우리 요정’ 하면서 반겨 주었다.
신토끼의 주요 시청자 층인 2030 남녀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나.
남자들에게는 나와 한조가 사나이가 간다 PD님에게 붙들려 질색하는 표정이 반응이 좋았…….
아니. 왜 그런 걸 좋아하는 거냐고.
‘우주, 한조 사간 출연 확정’ 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난 울화통이 터지고 막 복장도 같이 터지고 그러는데.
“댓글 볼래? 반응 좋은데.”
“안 볼래요.”
작년에 예비군 다녀왔다는 아이돌이 또 군대를 가야 하는 상황.
군필자들이 공감을 해 주고 있다고는 하는데, 내가 봤을 때는 다들 입을 가리고 웃는 것 같았다.
은성이 놈이 나와서 깽판을 쳤던 부분은 다음 주 2부로 넘어가서 다행이긴 한데.
가장 핫하게 반응이 오고 있는 지점이 정말 의외였다.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어린이……?”
왜 남미의 어느 사이트에 내 사진이 돌아다니는 걸까.
해외 K팝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뉴블랙 우주 어린 시절’이라는 사진이 곳곳에 퍼져 있었다.
“이건 어디에요?”
“영국.”
“이건요?”
“개인 SNS인데, 남아공이라는데?”
해외 뉴스 사이트에서도 ‘이 아이의 정체는 누구?’ 하는 가십성 기사들이 몇몇 올라오고 있었다.
“잠깐만요. 여기 이름…….”
“왜? 푸하하!”
대만 방송의 자료 화면을 인용하며 ‘Zen-min Woo’으로 내 이름을 표기한 외국 언론사가 하나 있었다.
“하…….”
헛웃음을 지으며 각지에서 펼쳐지는 가짜 뉴스를 보는 중이었다.
한국 연예인 누구 사진이냐는 질문 글에 배우 이견우의 사진을 딱 갖다 놓은 것도 있고.
홍 대리님의 노트북 옆에 마우스를 딸깍이던 내가 물었다.
“이거, 피부색은 또 무슨 얘기에요?”
“너무 하얗다고…….”
한국인들은 피부가 저 정도로 하얗지 않다며, 사진을 과하게 보정한 게 아니냐는 댓글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러브 유얼셀프 같은 소리하네…….
“그리고 이건…?”
“아, 일본 사람들이 일본 아기라고 퍼뜨리고 다닌다고 해서…….”
나 국적이 몇 개야.
중국 사람들은 중국 아기라고 하고, 일본 사람들은 일본 아기라고 퍼뜨리고 다니고.
스케일이 커지니 가짜 정보의 스케일도 커지고 있었다.
미국 커뮤니티에서는 지금 퍼지고 있는 코리안 차일드의 사진에 바이러스가 숨겨져 있다는 괴담식의 음모론이 나오질 않나.
사진에 대한 반응들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진짜 여기저기 퍼졌구만.
지구촌 시대라고 말만 들었지 이렇게 체험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러다가 내 어린이 때 사진이 나보다 더 유명해지는 거 아냐…?
세계 각지의 인터넷 사이트에 퍼져 있는 사진을 보며 내가 한숨을 푹 쉬었다.
“왜 그래, 마음에 안 들어?”
“아뇨. 이럴 줄 알았으면 애기 때 데뷔할 걸 그랬나 봐요.”
내 말에 홍보팀 직원들이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시간여행이라도 해서 초딩 시절의 우리 멤버들을 모아 ‘키즈 블랙’으로 데뷔해야겠다는 드립을 주고받았다.
“맞아, 우주야. 너 어제 실검에도 여러 번 올랐더라.”
“오. 진짜요?”
이윽고 보여준 화면에는 ‘뉴블랙 우주 군대’, ‘우주 사나이가 간다’ 같은 검색어가 떠올라 있었다.
“다음에는 커피 안 사 올 거예요.”
자기들끼리 깔깔 웃는 홍보팀 직원들이었다.
한동안 이번 신토끼 덕분에 새로 들어온 광고들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누군가 물었다.
“참, 우주야.”
“네?”
“누가 네 초등학교 동창이라면서 루머글을 쓰는 거 같은데. 회사 차원에서 조치를 취할까?”
“루머요?”
직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네가 초등학교 때 엄청 몸치였다면서 말도 안 되는 루머글을 퍼뜨리는 거야.”
“…….”
“너희 팬들이 스샷을 찍어서 제보해주긴 했는데, 일단 사실 여부를 확인해 봐야 할 거 같아서.”
“그, 그 아니에요. 제가 진짜 초등학교 때는 몸치여서.”
“……그래?”
“네. 진짜로 그랬어요.”
몇 번이고 다시 묻는 사람들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라고 해명을 하면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핸드폰 화면이 반짝거렸다.
하은성 [행님]
하은성 [혹시..]
하은성 [페이머스 코리안 베이비십니까??ㅋㅋㅋㅋㅋ]
“…….”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나 [너 지퍼 열림]
하은성 [진짜요?]
하은성 [어디서 저 보고 있어요?]
하은성 [아닌데? 아님]
나 [ㅇㅇ]
나 [인사 잘한다]
곧바로 답장이 폭주했지만 웃으며 차단할 뿐이었다.
이걸로 여섯 번째.
“후우…….”
하지만 슬프게도 내가 가장 차단하고 싶은 대상들은 절대 차단할 수 없었다.
2층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이에나 떼가 나를 반겼다.
“베이비 젠민!”
“깔깔깔!”
“우리 천년아가 왔어여? 꺄꺄꺄!”
핸디캠을 들고 있던 중현이가 ‘오늘 우주의 기분은 좋지 않다’ 하는 내레이션을 깔면서 동생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꿋꿋이 무시하며 노트북을 펼쳐 곡 작업을 할 뿐.
헤드폰까지 끼고 곡을 손 보고 있는데, 비주가 내 등을 콕콕 찔렀다.
“아, 맞다. 형.”
“응?”
“스트릿 보이즈한테서 메시지 왔는데, 이거 형한테 꼭 전달해 주라고 했어요.”
비주가 뭔가 인쇄된 A4 용지를 건네 주었다.
처음에 무슨 상장인 것 같았는데, 보다가 그만 웃고 말았다.
[콘크리트 명예 회원 : 선우주] 하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어제 형이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 목소리 맞히는 게 되게 인상 깊었나 봐요. 거기 팬분들이 만들어줬대요.”
‘민초단의 우정을 응원합니다’ 같은 문구도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서 웃었다.
내가 임명장을 보며 물었다.
“혜택은 없대?”
“방송할 때 입장할 수 있대요. 이거 회사에서 올라왔다는데.”
이윽고 중현이가 보여준 화면을 보며 웃었다.
DNS 미디어에서 스트릿 보이즈의 컴백 쇼케이스를 앞두고 ‘명예 콘크리트 회원, 뉴블랙의 우주 씨도 입장이 가능합니다’ 하는 문구를 써 놓고 있었다.
저쪽 홍보팀 분들도 영업 잘하시는구나.
웃으면서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리는 동안 그간 물어봐야지 했던 게 문득 떠올랐다.
“참, 비주야.”
“네?”
“너 혹시 다음 주 월요일에 하고 싶은 거 있어?”
우리가 별도로 이벤트를 준비하겠지만, 당사자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도 하는 게 맞을 거 같아서.
비주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술을 뗐다.
“저 거기 가 보고 싶어요.”
“어디?”
“패밀리 레스토랑이요.”
“패밀리 레스토랑?”
“어렸을 때 생일이 되면 부모님이 데려다줬거든요.”
민준이가 아픈 뒤로는 가보지 못했다는 듯했다.
연습생이 된 뒤에도 중현이가 같이 가자고 해도, 동생 생각에 내가 나 혼자 즐거워도 되나 싶었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말하는 비주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월요일이면 음방도 없고.
회사에서도 그날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며 하루를 텅 비워둔 터라 시간이 여유로웠다.
“그럼 미리 예약을 해야겠네.”
* * *
패밀리 레스토랑.
매장 카운터에 있는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귀에 착 감기는 듣기 좋은 목소리가 예약을 원한다고 하고 있었다.
“아, 예약이요. 월요일이요?”
-네.
“성함이…?”
-선우주에요.
그러더니 상대가 물었다.
-혹시 근데 거기 어린 친구들도 먹을 만한 메뉴가 있나요? 달착지근하고 그런 거. 제가 패밀리 레스토랑은 안 가 봐서…….
“네. 있죠. 어린이 메뉴도 따로 있어요.”
-아, 어린이 말고 일반 메뉴 중에서요. 저희 애들이 어린이 메뉴는 그 장난감 굿즈 얻으려고 할 때만 사 먹어서…….
직원이 눈치를 챘다.
‘저희 애들?’
머릿속에 ‘저 어린애 아니에요!’ 하는 초등학생들이 그려졌다.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이런저런 메뉴가 있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조카나 동생들을 데리고 오는 건가?’
듣기 좋은 목소리의 남자에게 그녀가 설명했다.
“의자도 따로 준비해 드릴까요?”
-의자요?
“네, 아무래도 앉기 편하도록…….”
-아, 그런 의자도 따로 있나 보네요.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상대가 긍정했다.
-편한가요? 그럼 준비해 주세요.
직원이 메모에 ‘어린이 의자’ 하며 v자로 체크를 그렸다.
-그리고 뭐가 있다고? 어… 어, 아… 그 패밀리 레스토랑에는 생일 축하 이벤트도 있다면서요.
“네네, 있죠.”
직원이 따로 양식을 꺼내 ‘어린이명 : ㅇㅇㅇ’으로 적힌 부분에 펜을 올렸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김비주요.
“네에, 김… 비주.”
-풍선도 혹시 주시나요? 뭐? 너도 하나 가지고 싶다고…? 잠시만요. 저희 애가 그러는데 혹시…….
“네, 돼요.”
옆에서 누군가 막 보채는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게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그들은 웃으며 전화를 끝냈다.
하지만 서로가 완벽하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