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7화
월요일 아침.
패밀리 레스토랑의 카운터에 앉아 있던 직원은 예약 장부를 훑어보았다.
‘어디 보자. 점심에 세 팀. 저녁에 다섯 팀. 그리고…….’
아침에 한 팀이 있다.
‘선우주 외 15인’이라고 되어 있는 단체 손님은 그녀가 직접 예약을 받았던 이들이었다.
어른들과 함께 어린이 넷을 데리고 온다고 했지.
예약 시간을 앞두고 바깥을 주시하던 직원은 매장을 향해 다가오는 두 남자를 발견했다.
‘저 사람들인가?’
유심히 바라보던 그 순간, 그녀는 시각적인 충격을 느꼈다.
“수박?”
초록과 빨강이 너무나 강렬해서 처음에 수박으로 오해한 패션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 장미와 초록 장미가 얽힌 하와이안 셔츠와 새하얀 바지.
마스크와 선글라스까지.
어디 항구에서 페리 한 척을 끌고 다니는 사업가라고 하면 딱 어울릴 만한 의상이었다.
그런데 비율은…….
의상은 중년인데 몸은 모델 같은 부조화의 극치에 그녀는 잠시 경이로움을 느꼈다.
딸랑.
두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웃으며 인사를 했다.
“예약을 했는데요. 이름은 선우주라고…….”
“아, 네… 제가 예약을 받아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고객님. 일행분들은 오고 계시나요?”
“네, 다들 오고 있어요.”
그녀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이들은 아직 오고 있는 중인가 봐요.”
“네, 지금 오고 있어요. 여기 한 명은 왔는데.”
“……?”
그 순간 직원은 흠칫했다.
하와이안 셔츠에 시선을 강탈당한 덕분에 그 뒤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이를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군청색 셔츠에 검은 바지.
선글라스까지 쓰고 과묵하게 서 있으니 경호원 같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거기다 부동자세로 껌 같은 걸 우물거리기까지.
“혹시 전에 저희 애들이라고 하셨…….”
“네. 여기 저희 애요.”
하와이안 셔츠가 그에게 팔을 두르더니 ‘짜잔’ 하듯이 보여 줬다.
상대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젤리 드실래요?’하는 말과 함께 봉지를 내밀었다.
저도 모르게 홀린 듯이 받아먹고 말았다.
뭔가 머릿속이 엉켜가고 있을 때, 다행스럽게도 상대방이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의문이 풀렸다.
“아… 덥다. 중현아.”
“그러게요. 형. 우리 그냥 안에 들어가 있을까요?”
“아니, 애들 기다렸다가 같이 가자. 근데 얘네 왜 이렇게 안 오냐. 비주 또 길 잃었대?”
“아뇨. 오는 길에 지호가 인형 뽑기를 발견했대요.”
“다른 사람들은?”
“……같이 하고 있대요.”
“몇 살이야. 다들. 중현아, 나 젤리 다른 색으로 바꿔 주라.”
직원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박!’
연예인이다.
지난 주 신토끼에서 아낌없이 흑역사를 방출한 아이돌 리더의 얼굴이 눈에 박히듯 들어왔다.
이름이 뭐였지. 근데…….
“네.”
놀란 그녀의 표정에 상대가 훗 하며 웃었다.
“뉴블랙 우주에요.”
“전 중현.”
정신을 차려 보니 같이 인증샷을 찍고 있었고, 곧 나머지 손님들이 몰려 들어왔다.
“저희 왔어여!”
“날씨도 안 더운데 마스크는 왜 벗고 있었어요? 아… 또 연예인 행세하고 있었구만.”
“길 진짜 복잡해요. 여기.”
수다스럽게 떠드는 아이돌 멤버들과 함께 우르르 들어오는 매니저와 스탭들.
차분한 얼굴로 그들을 자리에 안내한 그녀는 몸을 돌리자마자 재빨리 주방으로 달려갔다.
“대박! 지금 연예인 온 거 알아요?”
“연예인? 누구?”
“뉴블랙이요. 아이돌.”
“오! 걔네?”
“대박이다. 이따가 사인 좀 받아도 되나…?”
처음에는 희희낙락하며 웃던 주방 직원들이었다.
하지만 3초 만에 그 웃음은 뚝 끊겼다.
“잠깐만.”
“어린이가 아니었어…?”
모두의 시선이 공들여 데코레이션을 하고 있던 케이크로 넘어갔다.
“저거 지울 수 있냐?”
“지우면 먹칠한 것처럼 보일 걸요.”
“…….”
“…….”
거기에는 초콜릿으로 큼지막하게 ‘김비주 어린이! 해피 버스데이야!’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 * *
“…….”
“…….”
예약된 자리로 다가간 우리는 당황하고 말았다.
색색의 풍선.
알록달록한 네 개의 어린이 의자.
“…….”
테이블에서 우리가 가만히 서서 벙 쪄 있을 때, 핸디캠으로 찍고 있던 민기 형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스탭들도 거의 데굴데굴 구르듯이 자지러졌다.
리혁이가 뺨을 파르르 떨더니 고개를 획 돌렸다.
“대체 예약을 어떻게 한 거예요?”
“아니, 난 분명히 제대로 했는데…….”
“제대로 했는데 이런 의자가 나온다고요?”
“그래도 유아용은 아니잖아.”
“…….”
리혁이가 불퉁한 표정을 짓고, 중현이가 ‘흥미롭군’하고, 지호가 풍선 실을 손가락에 감으며 좋아할 때.
“흐하핫!”
웃음 장벽이 1cm인 오늘 생일 파티의 주인공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비주야.”
“아니에요. 형.”
비주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진짜 기억에 남을 생일이 될 거 같아요.”
원석이 형이 부른 직원이 다급하게 달려와 죄송하다며 의자를 바꿔 주겠다고 말했다.
내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앉아도 되긴 하는데 저희 애들이 상체가 짧아서요.”
“그런 건 보통 다리가 길다고 하는 거예요. 이 사람아.”
직원이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더니 입술을 꾹 말았다.
작은 편은 아니지만, 그냥 앉았다간 다리가 엄청 남을 것 같은 구조였다.
지호가 말했다.
“이건 아무도 못 앉아여. 중현이 형은 의자 두 개 있어야 될 걸여.”
“두 개면 인정이지.”
하긴. 비주도 겨우 앉을 거 같긴 하네.
“애초에 어른들이 어린이 의자에 앉아 보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 아닐까요.”
…라는 목소리가 들렸을 때, 우리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그때,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네 명의 머릿속에 뭔가 번쩍 하고 들어왔다.
“헛…….”
“허…….”
“이거다.”
의자를 치워주는 직원에게 우리가 양해를 구했다.
“자, 잠시만요.”
“잠시만요. 마지막 하나는 저희가 치울게요.”
우리의 시선이 향하자 리혁이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 나 진짜 안 앉을 거예요. 어림도 없어. 진짜 하지 마요!”
“리혁아.”
내가 진지하게 말했다.
“한 번 앉아 봐. 형 소원이야.”
“제발, 이런 거에 소원 같은 거 쓰지 말라고요.”
“리혁아. 표정 관리 해야지. 지금 다른 분들도 근처에 계시는데 이미지 신경 안 쓸 거야?”
“리혁이 형이 아직 연예인 목격 후기의 쓴맛을 못 봐서 그래여.”
“너도 못 봤잖아. 쓴맛.”
리혁이가 ‘아무튼 난 못 앉아’로 초지일관 자세를 굳히려고 할 때, 비주의 시선이 향했다.
초롱초롱.
“…….”
“형, 소원이야. 리혁아.”
“…….”
“맞아여. 저거 앉으면 다음 앨범 대박 날 수도?”
“아, 그런 것 좀 하지 마!”
결국 다음 앨범 대박이라는 말에 항복을 했다.
눈을 질끈 감은 리혁이가 파란색 어린이 의자를 보며 한숨을 푹 쉬더니 심호흡을 했다.
그러곤 슬로우 모션처럼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쏘옥!
효과음이 있다면 정말 그런 소리가 나올 만큼, 마치 테트리스의 조각처럼 리혁이와 딱 맞았다.
“푸하하하!”
스탭들과 우리 모두 물개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 진짜!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주변에서 파스타를 먹던 손님 하나가 사레가 들려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당사자는 벌건 얼굴로 우리를 힐난하고 있었다.
“……진짜 나중에 내가 자서전 쓸 때 각오해요. 다들 마지막 주석에 가서야 4포인트 글씨체로 이름만 남겨 줄 거야.”
소심한 복수를 획책하는 모습이 몹시나 하찮아서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아, 오늘 벌써부터 재미있다.”
상석에 앉은 비주가 작게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오늘 이렇게 다 같이 외출을 했다는 게 엄청 기쁜 듯 눈을 반짝이는 비주에게 모자를 건넸다.
“비주야, 고깔모자.”
“우와…… 이거 너무 예뻐요. 쓰면 안 될 거 같아.”
알록달록한 고깔모자를 쓴 비주와 생일 기념 인증샷도 찍고, 다 같이 메뉴를 주문했다.
“오… 맛있다.”
“마히허여. 흣흣.”
패밀리 레스토랑은 처음 와 보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진작 와 볼걸.
초등학교 때 누가 이런 데는 보통 부모님이랑 가는 거라고 해서 여태까지 잘 안 왔는데.
스테이크를 한 조각씩 썰어서 입에 넣을 때마다 고소한 맛이 퍼졌다.
고개를 돌려서 스파게티를 슈루룹 먹는 비주를 바라봤다.
“맛있어?”
“네, 너무 맛있어요.”
“하고 싶은 거나 소원 있으면 오늘 다 말해 봐. 꽃무늬 입지 말라는 거 빼고 다 해 줄게.”
“어… 어! 저 이따가 그것도 해보고 싶어요.”
평소에 해보고 싶었다는 스티커 사진이라든가, 오락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해보고 싶은 거 엄청 많았나 보네.
이거 다 하려면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할 것 같다.
비주뿐만 아니라 다른 동생들도 그 제안에 눈을 반짝이며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음방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서 그런지, 다들 놀고 싶은 욕구가 쌓여있었던 모양이었다.
뭐. 오늘 하루쯤은 괜찮겠지.
요즘 들어 자꾸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차후 활동 계획은 접어 두고, 나도 오늘 하루는 쉬기로 결정할 때였다.
타앗-
우리가 앉아있던 곳의 조명이 암전됐다.
갑자기 꺼진 조명에 비주가 스파게티 먹던 걸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눈을 멀뚱멀뚱 뜨던 녀석의 입에서 면발이 똑 끊어져 떨어지는 동안 내가 동생들에게 눈짓했다.
‘시작하자.’
중현이가 운을 뗐다.
“어, 뭐지…?”
“이. 이 상황은 뭐지.”
김씨랑 서씨. 너넨 절대 연기하지 마라…….
텅-
지호가 손에서 포크를 떨어뜨리며 숨넘어갈 듯한 소리를 냈다.
“이, 이거 뭐예요. 왜 갑자기 불이 꺼지는 거지?”
……넌 너무 잘하지 말라고.
재난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불길한 표정을 짓는 막내를 보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촛불이 하나 꽂힌 케이크를 든 패밀리 레스토랑의 직원들이 다가왔다.
“우와…….”
비주가 뺨에 손을 올리고 익룡 소리를 내는 동안 우리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기 위함이었다.
“하나 둘, 핫둘 셋넷!”
기타를 맨 직원 분과 탬버린을 든 직원. 그리고 다른 직원들까지 합세해서 축하 노래를 불렀다.
“해피해피 해피 데이! 기쁜 날, 좋은 날…….”
미리 가사를 기억하고 온 터라 같이 부르기가 쉬웠다.
그런데 우리가 부를 때마다 직원들이 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열심히 부르는 게 엄청 신이 난 모양이었다.
“축하합니다……!”
우리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같이 목소리를 높여 주시는 게 흥이 나 보인다고 할까.
우리도 더욱 흥을 높였다.
지호가 양손에 든 냅킨을 들고 춤을 추고, 중현이가 중간중간 애드립으로 랩까지 섞을 때.
노래를 부르며 땀을 흘리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 신이 나신 모양이다.
그렇게 누가 더 흥이 나는지 경주를 하는 시합처럼 한쪽이 흥을 올릴 때마다 한쪽이 흥을 더 올리는 식으로 합주를 했다.
“비주야, 생일 축하해!”
노래가 끝나고 초를 후 부는 시간.
‘소원!’ 하는 어느 스탭의 말에 비주가 고민하다가 미소를 지었다.
“지금처럼 모두가 제 곁에 있으면 좋겠어요.”
촛불이 부드럽게 꺼졌다.
“축하해!”
다 같이 준비한 선물을 꺼내서 비주에게 건네주는 동안, 나는 땀을 닦는 직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저희 애가 많이 좋아하네요.”
“하하… 네.”
그런데 내 감사 인사에 다들 어색하게 하하 웃을 뿐이었다.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거 같기도 하고.
왜들 그러지?
의문이 생겼지만, 이내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비주에게 다가갔다.
* * *
「 알바하는데 연예인 온 썰 푼다.. 」
올리브하우스 알바다
오전 시간대에 단체 손님으로 뉴블랙 옴
역사탐험대에서 나오는 미친 텐션이 설마 평소 모습이겠냐고 생각했는데 찐이더라.. 찐이야..
멤버 생일이라는데 거기 리더가 예약을 잘못해서 우리가 어린이 이벤트로 준비를 함
어쨌든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고.. 그 케이크 들고 딱 갔거든
아 참 근데 우리 매장이 그거임
전체 매장 중에서 생일 축하 경연대회도 1등한 매장.
다들 인싸라서 노는 거랑 이런 이벤트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벽을 느꼈다..
자기들도 같이 부르겠다고 해서 매니저님이 하하 그러세요! 하고 그랬는데 잘못된 선택이었음
화음 넣고 자기들끼리 흥얼거리는데 우리 목소리가 다 묻힘
춤추고 노래하는데 기가 빨리더라
래퍼가 중간에 랩 넣는데 기가 막혀서 박수칠뻔
자기가 젤 못한다고 하던 막내가 우리 목소리 다 합친 거보다 성량이 더 커.. 미쳤어
근데 그런거 있잖아 하다보면 오기 생기는거
우리도 안지겠다고 열심히 불렀는데 걔네는 막 재밌어 하면서 더 시동을 걸더라.
그 이야기 떠올랐음
곰이랑 무술인이 있는데 평생을 수련한 무술인이 진심펀치 날렸는데 곰이 놀아주는 줄 알고 좋아했다고
오늘은 우리 지점의 자존심에 금이 간 날로 기억될 것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발렸누
-ㅋㅋㅋㅋㅋㅋㅋㅋ 얼굴 가렷는데 인증샷에서 직원들 왤케 지쳐보이냐
-땀 봐; 크로스핏 하고 왔냐
-근데 노래를 글케 잘함?
-[글쓴이] 얘네가 왜 떴는지 들으면서 바로 납득함. 다시는 가수들을 무시하지 않을 거임
-착함?
-[글쓴이] 착한데 뭔가 거리감 느껴짐. 연예인이라서 다가가기 어려운 아우라 같은 느낌이 있음. 너네들도 실물 보면 얼어붙는다
-잉 친근한 느낌이던데
-[글쓴이] 이미지는 친근한데 실물은 또 다름
-어린이 이벤트는 또 뭐임?
-그건 우리 회사 sns가서 봐. 우리 매니저가 부탁해서 따로 영상 업로드 했음
인터넷에 뉴블랙의 패밀리 레스토랑 방문 후기가 알음알음 퍼질 무렵, 올리브 하우스의 공식 SNS에도 영상이 올라왔다.
@Olive_House_Korea
(뉴블랙 멤버들이 어린이 풍선이 세팅된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는 영상)
올리브 하우스에 찾아온 특별한 손님은 누구?
#대세_아이돌도_찾는_가족식당 #The_New_Black
보기만 해도 신이 나는 아이돌의 생일 파티 영상이 소리 없이 퍼져나갈 때.
몇 시간 후.
올리브 하우스의 미국 본사 SNS 계정이 리트윗을 하며 밈처럼 만든 사진을 올렸다.
@Olive_House_official
(왼쪽에는 차분한 어린이 우주 사진과 함께 ‘Before’가 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흥겹게 춤을 추는 어른이 우주 사진에 적힌 ‘After’ 글자. )
번역하기: 이 한국 아이 자라서 올리브 하우스에서 춤 노래 한다. 손님 즐겁게 하는 우리 식당. 좋은 반응. 감사하다. 뉴블랙 좋아. K팝 좋아.
한편, 그날의 영상과 함께 SNS 소식은 아이돌 커뮤니티로도 흘러가는 중이었다.
라이브 영상에서 우주가 슬픈 표정으로 수플레들에게 ‘제가 예약 실수를 했어요…’ 하는 자막 캡처본과 함께.
[오늘 생일파티해서 화제된 아이돌.youknowho]
-생일파티 지금 화제… 에서 지금 화제만 보고 들어왔다
-그래 오늘 뉴블랙은 어떤 소식이 있니?
-또블랙;
-이 작은 숯불들아 얼른 정보를 다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제는 그냥 과학처럼 인식하는 거임?
-침대는 과학급이지
-꽃무늬 시강이다 쟤 우주지?
-저래서 쟤 홈마가 얼빡샷 자주 올리는구나..
-ㅋㅋㅋㅋ 근데 생일 이벤트 되게 재미있게 해준다
-원래 올하우스가 이벤 잘해주기로 유명ㅇㅇ ㅋㅋㅋㅋ근데 저 정도로 텐션 높게 해주는 줄은 몰랐음
-지점 매니저 승진하겠넼ㅋㅋ 홍보 한건 제대로 한듯
* * *
비주의 생일은 즐겁게 마무리가 됐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스티커 사진도 찍고, 오락실도 들리고. 평소 먹고 싶다고 하던 빙수도 먹고.
거의 열흘치 놀 걸 하루에 놀았다.
중간에 사생들이 난입해서 난처해질 뻔했는데, 다행히 원석이 형이 잘 처리해 주었다.
마무리로 우리 수플레들이 걸어준 비주의 지하철 광고에 가서 인증샷도 찍었다.
“우와…….”
역사 탐험대에 나왔던 한 장면을 어떤 금손 수플레가 그림 같은 광고로 만들어줬다.
고운 금색 머리카락에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비주.
장원급제한 소년 선비 같은 모습으로 나온 광고에 우리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했다.
그곳을 시작으로 여러 곳을 투어처럼 다녔다.
다녀간 곳마다 포스트잇을 붙이고 다녔는데…….
한 개에 한 글자씩 다 합치면 감사의 의미를 담은 문장이 되도록 해놨는데, 중간에 누가 떼어갔는지 합쳤을 때 ‘제물을 바쳐라 수플레’ 같은 이상한 문장이 되는 바람에 당황했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저 오늘 너무 좋았어요…….”
당사자가 노곤노곤한 얼굴로 고마움을 전하는 모습에 우리 모두 뿌듯함을 느꼈다.
뭐. 그때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생일을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우주야…….
며칠 후, 영상통화 속에서 석환 형이 벙찐 얼굴로 물었다.
-너희 생일파티 하러 다녀온다며.
“응.”
-근데 왜 TV 광고가 들어온 거야…?
“그, 그러게…….”
-너희 혹시 생일 파티한다고 한 다음에 거기 본사 가서 영업하고 온 건 아니지?
“아냐. 그런 거.”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에게 우리가 열심히 해명했다.
인터넷에서 홍보가 톡톡히 됐는지, 우리에게 패밀리 레스토랑 ‘올리브 하우스’의 TV 광고 모델 요청이 들어왔다.
중현이가 말했다.
“신기하네요. 우리 노래 부르고 왔는데 광고가 들어왔어요.”
“저 좋은 생각 떠올랐어여. 형들.”
지호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우리 다음 생일 때는 휴대폰 대리점 가서 놀고 오는 거 어때여? 통신사 광고 들어오게.”
“그래. 가서 풍선 춤 추고 오자.”
희희낙락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주고받는 동안 매니저가 그저 웃음만 흘렸다.
잠시 동안 이 황당하면서도 좋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후.
스케줄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다음 주면 너희가 음방이 끝나잖아. 그간 들어왔던 광고 요청들을 정리해서, 일단 그것부터 찍으면 될 거야.
음방 활동 때문에 미뤄뒀던 광고를 드디어 찍을 예정이었다.
이번 올리브 하우스를 포함해서 대략 대여섯 곳 정도 된다고 들었다. TV 광고도 두어 개 있고.
메이저한 브랜드 명을 들으며 감탄하는 동안 다른 당부사항도 들었다.
-다음 주 K넷 해외 콘서트 있잖아. 우리 일본 가는 거 기억하고 있지? 다들 미리 짐 좀 챙겨놔. 지난번 싱가포르 때처럼 밤새 밀린 빨래 하면서 짐 싸지 말고.
“네에…….”
-밤새 세탁기 돌리면서 짐 챙기는 사람이 어디 있냐.
다음 주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릴 K-Net의 해외 콘서트에 퍼포머로서 초청을 받은 우리였다.
이번에는 짐을 미리 챙겨야지.
우리가 결연하게 다짐을 할 때, 내 개인 스케줄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왔다.
-참 우주, 너는 얼마 뒤에 ‘사나이가 간다’ 팀이랑 사전 미팅 잡았으니까. 가서 잘하고 오고.
“예에…….”
-촬영 일정은 대략 6월 말에서 7월 정도로 잡힌 거 같아. 그것보다 앞당길 수도 있고.
“…….”
광고까지는 딱 듣기 좋았는데. 그 뒤의 소식에 내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올해는 예비군도 가고 군대 예능도 가는구나.
렌즈 회사의 TV 광고가 들어왔다고 해서 잔뜩 흥에 겨웠던 기분이 쏙 들어가 버렸다.
울적한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동생들이 위로해 주었다.
그래봐야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 명은 데려갈 거라고 하니 다들 쳇 하며 고개를 돌렸지만.
“얘들아, 리허설 가자!”
매니저의 부름에 석환 형과의 통화를 종료했다.
홀가분한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리춤에 찬 마이크팩을 확인하고, 헤드 마이크 각도도 입술에 맞게 조정하고.
목을 풀면서 걷는데 마침 근처에 있었던지 신인 보이그룹 아이리스의 멤버들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네, 안녕하세요.”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이 애매했다.
나름 선배미를 뿜뿜한 거 같은데 왜 잘 안 먹히는 거 같지. 그간 이미지 관리도 엄청 열심히 했는데.
어딘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리스 멤버들에게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
“오늘 스트릿 보이즈도 컴백한다고 했지?”
“네. 맞아요. 이따 대기실에 놀러온다고 했어요. 자기들도 방 구경 한 번 해본다고.”
플라워 댄스 활동의 2주차이자 우리의 음방 7주차를 시작하는 목요일.
스트릿 보이즈가 새로운 앨범으로 컴백을 했다.
어제 차트인도 했고, 추이가 좋다고 하는데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컨셉 포토랑 뮤비 보니까 다들 근육 엄청 붙었던데, 실물로 보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오늘 데뷔하는, 별로 안 마주치고 싶은 상대도 하나 있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1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탈 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복도가 꺾어지는 곳에서 걸어 나오는 5인조 아이돌의 시선이 엘리베이터에 타는 우리에게 향했다.
“…….”
그리고 누가 먼저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쪽에서 가장 키가 큰 이가 나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어……!”
광기에 일렁인 상대의 눈이 번들거리는 모습에 내가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이상하게 부르지 마라. 이상하게 부르지 마.
“병장님!”
“…….”
“저예요, 병장님!”
발랄하게 달려오는 누군가를 보며 동생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고, 난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눌렀다.
“누구예요?”
“있어. 안 마주치고 싶은 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밑에서 쿵! 하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아악! 하는 비명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