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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8)화 (25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8화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마주친다고 하더니.

사전녹화를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한 신인 보이그룹이 인사를 하러 대기실에 들어왔다.

쭈뼛쭈뼛 들어오는 5인조 보이그룹.

“…….”

자기들끼리 어색하게 눈치를 살피기도 하고, 서로 열을 맞추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이등병이 떠올랐다.

……중간에 나사 풀려서 헤헤 거리는 애 하나 빼고.

내게 입모양으로 ‘병장님!’ 하는 모습에 우리 동생들이 키득거리자, 저쪽 리더가 은성이에게 눈을 부라렸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에이플비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신인 그룹의 인사에 우리도 같이 인사를 했다.

쭈뼛거리며 ‘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하는 상대 리더의 모습에 내가 운을 뗐다.

“이름이 특이하네요. 에이플비.”

“네, 저희 에이플비는 연습생 때 A팀, B팀으로 나눠서 경쟁을 했는데요. 이제는 하나가 되어 활동한다는 뜻에서, 에이플러스비 해서 에이플비가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 흐읍…립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준비한 멘트를 하다가 목이 갈라져서 켁켁거리는 소리를 냈다.

중현이가 물병을 건네자 상대가 황송하게 받았다.

“가, 감사합니다.”

“많이 마셔요.”

푸근한 미소를 짓는 중현이에게 내가 시선을 돌렸다.

“중현아.”

“네, 형.”

“목 말라보인다고 2리터를 주는 사람이 어디 있니.”

큼지막한 페트병을 든 채 이걸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에 웃음을 흘렸다.

비주가 종이컵을 하나씩 건네주자 다섯 명의 손에 컵이 들렸다.

졸졸졸.

중현이가 물을 따라 주는데 이거 아무리 봐도 뭔가 그림이 이상하다.

조직의 입단식도 아니고. 신인 보이그룹 멤버들이 종이컵을 들고 있고, 중현이가 대장처럼 술… 물을 따라 주는.

이쯤에서 ‘위하여!’가 나와야 할 거 같다고 할까.

지호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참, 우주 형 후임분 있다고 하셨죠?”

“여기요!”

은성이가 흐뭇하게 손을 들었다.

우리 애들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리혁이가 설레는 표정을 최대한 숨기며 질문했다.

“제가 묻고 싶은 게 참 많아요.”

“아, 뭐든 다 물어보세요. 제가 날을 새서라도 다 이야기해드릴 수 있거든요.”

이것들이 쌍으로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앉아 있다.

내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잡담은 이따가 하고. 이름 못 들어본 거 같은데, 서로 통성명 좀 할까요?”

“아, 넵! 저는 리더인 하루고요.”

활동명을 하나씩 말해주는데 은성이 차례에 와서 그만 뿜고 말았다.

“저는 케빈이에요.”

“크흡.”

웃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말자 상대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호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오, 나홀로집에 주인공 이름 같아요.”

“어?”

은성이가 도리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박. 어떻게 아셨어요? 그거에서 따온 거 맞는데.”

“……?”

“와, 이거 맞추시는 분 처음 봐요.”

지호가 도리어 ‘?’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내게 고개를 돌렸는데, 마치 처음 보는 생명체를 발견한 고양이 같은 표정이었다.

‘이거 뭐야? 뭐야?’ 하는 눈으로 보기에 내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보겠지.

저렇게 대충 숨 쉬고 사는 생명체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름을 소개하고는 훈훈한 덕담을 나누었다.

“저희 CD예요. 선배님.”

“고마워요. 저희는 7주차라 CD가 없어서…….”

“이건 제 포토카드~”

“…….”

데뷔한 군대 후임에게서 아이돌 앨범의 포토 카드를 선물 받는 진귀한 경험을 해본 사람이 또 있을까.

싱글벙글 웃으며 포토카드를 내미는 모습에 내가 살짝 벙 찌자, 리더인 하루가 눈을 부라렸다.

쭈글쭈글해진 케빈이 구석으로 갔다.

그러면서 자꾸 ‘얘기해요 우리’를 어필하고 있었다.

신인 보이그룹 에이플비와 인사를 끝내고, 대기실 밖으로 나가 녀석을 따로 불렀다.

“은성아.”

“병장니이이임…!”

“선배늠으르그 블르…….”

“선배니이이임!”

어금니를 꽉 깨무는 내 모습이 웃긴지 깔깔 웃는 녀석이었다.

얘기를 이어 가려고 할 때, 내가 기대 있던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네 얼굴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저희도 같이 얘기해도 돼요?”

비주가 들뜬 얼굴로 물었다.

보석광산을 발견한 사람 같은 표정을 짓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안 돼.”

“저 아직 생일 소원권 안 썼…….”

친절하게 문을 닫았다.

그러곤 싱글벙글 웃고 있는 녀석을 데리고 자판기에 가서 음료수를 하나 뽑아 주었다.

“데뷔하니까 어때. 할 만해?”

“기분은 좋았는데 3초 좋았어요. 딱 3초. 벌써부터 힘들어요.”

가식 하나 없는 솔직한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막상 보니 반갑다.

전역하고 나서 만나자 만나자 이야기만 했지, 이렇게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라서.

“아, 맞다.”

상대가 눈을 크게 뜨더니 내게 고개를 획 돌렸다.

“저 엘리베이터 아까 겁나 아팠던 거 알아요? 이거 봐. 이거, 의상에 단추 대롱대롱된 거.”

“그게 왜 내 탓이야.”

“실망이에요.”

“은성아.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너의 실망은 내 관심사가 아냐.”

상대가 혀를 내둘렀다.

“와. 인성 봐. 두고 봐요.”

“두고 보면 어쩔 건데.”

“제가….”

“제가…?”

“다른 선배 아이돌들이랑 친해져서 맞먹을 거예요.”

숨이 턱 막혔다.

“은성아.”

“네.”

“뜰 생각부터 해, 제발…….”

성공할 생각은 안 하고 윗대가리들이랑 친해져서 맞먹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황당함만 느꼈다.

“너도 진짜, 너네 리더가 엄청 고생하겠다.”

“하루요? 아니… 걔가 무슨 고생을 해요. 엄석대가 따로 없는데.”

“너보다 동생이야?”

“막내에요.”

흥미로운 관계도네.

“막내가 리더야?”

“대표님이 데뷔조 라인업을 후루룩 보시더니 ‘글러먹었구나’ 하면서 쟤한테 리더 자리 줬어요. 제일 똑 부러진다는데 맨날 형들을 부러뜨리고 다니는 애에요.”

“넌 좀 부러져도 돼.”

“……아우, 난 왜 아이돌에도 후배로 들어와서! 선배로 갑질 한 번 해 봐야 되는데!”

“억울하면 군대 먼저 들어오든가.”

깔깔 웃자 상대가 배알이 꼬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뭔가 떠올랐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맞다, 대표님이 오늘 새벽에 오셔서 이거 주시고 갔는데. 형한테 주라고 했어요.”

“뭔데?”

“기프트 카드? 그런 거 같던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열어 보니 기프트 카드와 함께 메모가 적혀 있다.

숨 엔터 조동완 대표이사의 메시지였다.

네가 잘 돼서 기쁘다는 말과 함께 가끔 마주치는 우리 아이들도 어여쁘게 봐달라 하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대표님이랑 아는 사이에요?”

“응. 잠깐 인연이 있었어.”

내가 이 녀석에게 숨 엔터를 추천한 이유는 업계에서 평이 좋은 것도 있지만, 개인적인 인연 때문이기도 했다.

연습생 처음 들어왔을 때, 이분이 TJ에서 이사님으로 있었으니까.

첫 면담 때 이야기를 나누더니 작곡을 해보라며 추천을 해 주셨지.

연습생 하나하나 이름까지 기억해서 연습생들 사이에서 인망도 높았는데, 얼마 안 가 독립해서 차린 회사가 숨 엔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개 자기 사업을 시작하기 직전에 보이는 특유의 친절함이었던 것 같지만…….

“감사히 받았다고 말씀 전해 줘.”

“넵.”

녀석이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표님이 맨날 뉴블랙 영상 틀어주면서 잔소리해요. 봐라. 저게 춤이다. 봐라. 저게 노래다. 회의 시간 때도 영상 보면서 분석하고 그러고.”

“그래?”

“중소기획사의 기적이라고, 벤치마킹할 수 있는 부분은 연구해 봐야 된대요.”

아까 들어왔던 멤버들도 대기실에 나오고 나서 ‘와, 대박…’ 이러고 있었다나.

중소기획사의 기적이라니.

뭔가 낯부끄러운 호칭이라 머쓱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싱글벙글 웃고 있는 녀석에게 시선이 갔다.

“너무 웃고 다니지도 말고. 여기도 군대랑 비슷해서 신인이 웃고 다니면 안 좋아하는 사람들 있어.”

불꽃놀이 때였나.

지호랑 복도에서 막 웃고 있었는데, 보이그룹 멤버 중 하나가 굳이 우리 쪽으로 와서 ‘저기. 비. 켜. 줄. 래?’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서 생생하다.

지금이야 ‘뉴블랙!’ 하면서 우리에게 친한 척하지만.

상대가 고개를 저었다.

“저 눈치 빨라서 괜찮아요.”

“알지. 눈치 엄청 빠른 거. 근데 신경을 안 쓰잖아.”

“맞아요.”

“…….”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세상 눈치 없는 애 같겠지만, 사실 얘 눈치 엄청 빠르다.

근데 신경을 안 써.

“…….”

잠시 군대에서 속 터졌던 기억이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뭐. 본인이 알아서 잘하겠지.

이제는 내 후임도 아니고 다른 그룹이기도 하고. 우리 애들 챙기느라 바쁜데 여기까지 신경을 쏟을 시간이 어디 있나.

그냥 마주칠 때마다 잘 챙겨 줘야지, 하는 생각을 품을 때였다.

“어!”

“왜 그러세요?”

“너를 챙겨 줄 좋을 방법이 하나 떠올라서.”

“오?”

“야. 너 사나이가 간다라고 혹시 알…….”

도망가네. 저거.

오. 심지어 빨라.

*   *   *

아쉽다.

은성이가 군대 프로 데려가기에는 딱인데.

문제는 중소기획사에, 그것도 지금 막 데뷔한 신인이라 데려갈 수 없는 신분이었다.

사나이가 간다는 포맷 특성상 기본적으로 인지도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되는 프로그램이다.

내가 아는 연예인이 구르는 걸 보면서 웃는 프로그램이지, 갓 데뷔한 아이돌이 인지도를 쌓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히이이익!”

내가 무슨 악당도 아닌데. 어쩌다 마주칠 때마다 악마가 따로 없다는 듯 군 후임이 줄행랑을 쳤다.

잔뜩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오해를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쟤가 도망치는 게 재미있어서.

“뭐 재미있는 게 있어요?”

“네. 그런 게 있어요.”

슬그머니 웃음을 삼키고는 근처에 앉아 있는 한조를 바라보았다.

“깔깔깔!”

“꺄악꺄악!”

“끼끼!”

“…….”

지금 원숭이들이 영화관람을 하면서 지르는 고함 같은 소리를 내는 건 바로 양쪽의 동생들이었다.

간만에 만나서 신이 났는지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는 중이다.

전에는 칸막이 대기실이라 목소리를 좀만 높여도 다른 그룹 매니저가 ‘아이씨’ 하면서 눈치를 줬는데. 이제는 우리 방이니 그럴 필요가 없어서 좋다.

“방 너무 좋다아….”

“이게 바로 성공의 맛인가?”

“다들 기억해라. 나 오늘부터 장래 희망 뉴블랙으로 바꾼다.”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이 방을 둘러보며 내뱉는 드립에 우리 동생들이 물개박수를 치며 대만족했다.

새 앨범으로 컴백한 스트릿 보이즈는 이전과 확 달라진 모습이었다.

아이돌이기에 벌크업의 한계가 있어서 여전히 슬림하지만, 전반적으로 근육이 굉장히 선명해졌다.

피부도 살짝 그을려서 마치 여름방학 때 할머니 댁에 놀러가서 열심히 놀다온 초등학교 친구들 같다.

“저희는 이번에 1위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이에요.”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며 내게 소원을 빌었다. 왜 나를 불상처럼 취급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처럼은 아니더라도 1위를 딱 한 번이라도 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눈이 활활 타오르는 게, 성공에 목말…….

“그래야 핸드폰을 받는데!”

“작년 신인상 후보 중에 우리만 핸드폰이 없어!”

……핸드폰에 목이 마른 멤버들이었다.

그러면서 내게 자기네 이번 노래가 어떠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객관적인 평을 원한다고 해서 좋다고 했더니 축제 분위기가 되어서 좋아했다. 내 말이 무슨 보증수표라도 되는 것처럼.

‘선우주 오오 음악의 할머니’하는 노래를 양쪽 동생들이 부르는 동안, 귀 한쪽을 막으며 한조와 대화를 했다.

“스트릿 보이즈는 활동을 언제까지 해요?”

“저희 아마 4주나 5주?”

“아… 그럼 애매한데.”

“왜요?”

“그래야 같이 군대를 갈 수 있거든요.”

“…….”

초코파이를 먹던 한조가 그 상태로 굳어 버렸다. 내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물을 건네주었다.

“한조 씨.”

“…….”

“같이 가요. 우리.”

“…….”

“저 절대 혼자 죽지 않을 거예요.”

켁켁거리는 소리를 내는 상대의 등을 두드려주며 흐뭇하게 웃었다.

한편 촬영일자가 언제냐는 물음에 대답을 해주니, 상대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오, 그러면 저 안 가겠네요. 활동기랑 겹쳐서.”

“왜 안 가요. 같이 안 가도 나중에 따로 갈 텐데.”

“인지도 차이가 있잖아요. 저는 신토끼 때 투플러스원에서 원이어서, 저 혼자 아마 불러 주진 않을 거예요.”

“아, 그럼 안 되는데…….”

내가 어색하게 웃었다.

난 너보다 안 유명하니 혼자는 안 불러 줄 거라고 장담하는 상대의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한 가지.

“한조 씨.”

“네?”

“꼭 성공해서 이번 앨범 대박 나요.”

“아, 감사합…….”

“그래야 군대에 같이 갈 거 아니에요.”

상대의 얼굴에 ‘뭐 이런 사탄이 다 있지’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   *   *

6주 연속 음악방송 1위.

2015년 상반기 최고의 음원이라는 호칭을 얻은 ‘바람꽃’이 세운 기록이었다.

2세대 아이돌이 세운 기록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Flower Dance’로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1위는 계속해서 바람꽃이 차지하는 상황이라고 할까.

-뉴블랙, 7주간의 믿을 수 없는 기록, 명실상부 ‘3세대 대표 그룹’

-[뉴블랙 탐구생활1] 우주 “작곡돌이라는 호칭 감사, 저 혼자 힘으로 된 것 아냐” … A&R팀 “아니다. 우주 혼자 해도 충분”

-바람꽃으로 시작해서 바람꽃으로 끝났다, 7주 연속 주간 차트 “1위”

7주간의 음악방송이 끝나고 우리에게 붙은 호칭은 3세대 대표 아이돌 그룹이었다.

2.5세대 그룹인 TNT가 최정상에 있고, 다른 2세대 선배 가수들이 음반시장을 장악한 현재 상황에서 3세대 아이돌들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우리 뉴블랙이 유일하게 3세대 아이돌 그룹 중에서 2세대와 맞먹는 규모로 성장했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특히 이번 3집의 경우에는 총 판매량이 20만 장을 상회할 것으로 예측되어서 연간 10위 안에는 무조건 들 거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이 모든 일이 데뷔 1주년을 맞이하기 전에 벌어졌으니, 은성이 말대로 다른 기획사들이 주목하는 게 당연하긴… 할 텐데, 여전히 머쓱하고 부끄럽긴 하다.

그리고, 바람꽃은 주간차트 정상에 머물러 있었다.

경영지원팀에서 뽑아준 음원 예상 수익을 들었는데, 우리 할머니 차를 좋은 걸로 뽑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모든 게 순항이었다.

바람꽃, 어제시, 썸씽, 덕순아…….

봄의 끝자락에서 봄 노래인 썸씽은 이제 서서히 차트 바깥으로 밀려 나가는 추세였고, 슬슬 여름을 노린 청량한 노래들이 하나둘 차트 안으로 비집고 올라오는 상황.

점점 더워지는 날씨와 함께 여름이 찾아오는 시기였다.

“와, 사람 봐.”

김포공항.

아이돌팬과 기자들이 섞여 북적거리고 있는 바깥 풍경을 바라본 우리 애들이 혀를 내둘렀다.

지호가 차량 창문에 딱 붙어서 눈을 크게 떴다.

“사람 엄청 많아여. 어, 뭐야. 저기 봐. 누구 넘어졌나 봐여.”

“괜찮나?”

“사람 진짜 많아요. 몇 명이지. 저게. 하나, 둘…….”

중현이가 손가락으로 머릿수를 세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김포공항에서 출국을 앞두고 있다.

바로 K-Net의 K팝 콘에서 퍼포머로서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K팝 콘서트.

K-Net의 모기업인 대기업이 매년 한국의 아이돌들을 해외 K팝 팬들에게 소개하는 공연이다.

우리 회사랑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초청을 받을 거라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돈과 나쁜 사이 중에서 돈이 이겼다.

서로에게 윈윈이었다.

회사에서도 마침 일본에서 며칠 정도 프로모션을 할 계획을 짜고 있었기에 적극 찬성했고, 리혁이도 드디어 일본어를 써볼 기회가 왔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문제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조금만 기다려. 얘들아.”

민기 형이 말했다.

“지금 경호업체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하니까, 다 준비되고 나면 그때 가서 내리자.”

“네.”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안 내 핸드폰 화면이 잠시 반짝였다가 꺼졌는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마 사생이겠지.

우리는 이번 3집 앨범 활동을 끝내면서 엄청난 성과를 얻었지만, 그에 비례해서 안 좋은 점도 늘었다.

대표적으로 사생이었다.

흔히 ‘사생은 사생을 부른다’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팬에게 조금 반응을 해 줬을 뿐인데, 그게 소문이 쫙 퍼져서 삽시간에 늘어난다거나.

가수 입장에서는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회사 앞에서 모여 있기에 말을 걸었는데 결국에는 그런 식으로 안 좋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자칫 잘못하면 특정 팬들과 가수의 친목이 되어서 팬덤이 무너지는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우리는 비공식 스케줄에서는 어떤 대응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터였다.

그 때문에 여태까지 비슷한 남자 아이돌 중에서도 사생이 유독 적은 편이기도 하고.

하지만 규모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지니, 어쩔 수 없이 사생이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나 우리 동생들은 불과 4개월 전에 누군가 숙소에 침입하려고 했던 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 일본 가서 뭐 먹을까?”

살짝 불안해하고 있는 동생들에게 내가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이번에 일정이 조금 여유롭던데, 맛난 거 잔뜩 먹고 와야지.”

“전 그거 먹고 싶어여. 피자.”

“누가 일본 가서 피자를 먹냐.”

“그게 핵심인 거져. 저는 누구도 안 먹어본 걸 먹어보고 싶어여.”

“여든아홉, 아흔…….”

중현이는 계속 숫자를 세는 중이었다.

비주가 내 팔을 톡톡 두드렸다.

“형, 속은 괜찮아요?”

“응. 괜찮지.”

“오늘 날씨가 좀 흐리고 바람도 불어서 그런지… 조금 걱정이 돼서.”

비행기 때문에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비주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주었다.

“얘들아, 내리자.”

“네.”

차가 움직이고 나서 공항 앞에 내렸다.

우리가 내리자마자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삽시간에 우리 앞으로 모이는 사람들.

“잠시만요! 잠시만요!”

경호업체 직원들이 우리를 둘러싼 동안 주변에서 사람들이 우리에게 착 달라붙었다.

기자들은 플래시를 터뜨리고.

여기저기서 말을 거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고개를 꾸벅꾸벅 하면서 지나가는데, 출국 게이트를 통과해서 비행기로 다가갈 때도 붙어 다니는 사람들은 여전했다.

“어…….”

이건 예상 밖인데.

마지막으로 싱가포르로 떠났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어서, 동생들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중이었다.

어디까지 따라오는 건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설마 비행기 안까지 따라오는 건 아니겠죠?”

리혁이의 속삭임을 들으며 티켓을 보여주고 비행기에 올라타는 동안, 탑승구 유리에 비친 것을 보고 침을 삼켰다.

……사생들이 비행기 안까지 따라붙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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