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9)화 (25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9화

설마 했는데 비행기 안까지 따라왔다.

심지어 어떻게 알았는지 좌석도 우리 주변이었다. 천연덕스럽게 앉는 사생들의 모습에 잠깐 멍했다.

뭐지.

우리가 타는 비행기를 알아낸 것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우리가 앉는 자리는 또 어떻게 알았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거기서 멈췄다.

생각을 이어 나가기엔 요즘 잠이 너무 부족했다.

욱신.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편두통에 눈살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비행기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몸에 날이 서 있는데, 전혀 생각지 못한 문제까지 더해지니…….

관자놀이를 주무르고 싶었지만 근처에서 관찰하는 사생에게 자극이 될까봐, 말없이 머리만 쓸어 넘겼다.

“우주야.”

“얘들아. 여기야.”

우리 이름을 부르거나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을 무시하며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매니저들이 제지해도 별다른 소용이 없다.

들을 리가 있나.

가끔 우리에게 무례하게 구는 행인들, 예컨대 TV에서 봤다면서 대뜸 ‘야, 웃겨 봐’ 하는 사람들은 대개 원석이 형이 어깨를 쭉 피면서 한 번 바라보면 물러나곤 했다.

하지만 애초에 같은 비행기까지 따라붙을 정도의 인간들에게는 험상궂은 인상도 별로 효과가 없을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창가에 앉아 있고, 멤버들과 스탭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는 점이었다.

메스꺼운 속을 달래면서 동생들을 흘깃거렸다.

얘네는 괜찮으려나.

옆자리에 앉은 비주에게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

‘비주야. 괜찮아?’

‘네, 전 괜찮아요.’

상대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다른 녀석들도 비슷했다.

오히려 걱정을 한 게 무색할 만큼 차분했다. 처음에는 얘네가 왜 이러지, 하고 의아했는데, 곧 이유를 깨달았다.

“우주야, 물 좀 마실래?”

앞자리에서 내게 물병을 건네주는 민기 형.

“형, 이거 봐여. 꽃무늬 중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거 하나 찾았어여.”

인터넷 쇼핑몰에 있는 꽃무늬 신상을 보여주면서 내 시선을 돌리는 막내.

…는 사생의 문자 메시지가 화면에 떠올랐다.

“…….”

“…….”

지호가 조용히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꿨다.

질겁하거나 그런 표정을 지을 법도 한데, 표정 변화 하나 없는 걸 보니 우리 막둥이도 많이 컸다 싶었다.

스으윽.

나와 비주 옆에 앉아있는 중현이는 큰 체구를 이용해서 가림막처럼 막아 주고 있었고.

리혁이도 동참하고 있지만 별다른 보탬은 안 됐다. 종이인형이 열심히 팔락거리는 느낌.

말없이 배려해 주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꼈다.

얘네라고 안 놀랐을까.

사생이 비행기까지 같이 따라붙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런데 비행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으니 자기들이라도 차분하게 있자고 결심한 듯했다.

위기 상황에서 어른이 패닉에 빠지면 아이들이 ‘우리가 엄마를 지켜야 해’ 하는 것처럼.

다른 때였다면 뭘 이렇게까지 하냐며 됐다고 손사래를 쳤을 텐데, 오늘은 기꺼이 그 도움을 받아들였다.

“후우우…….”

심호흡을 하며 김포공항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내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로부터 작은 아늑함이 느껴졌다.

어릴 때 무서운 일이 생기면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곤 했는데, 그와 비슷한 안정감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반응을 얻어 보겠다고 자꾸 말을 거는 사생들을 무시하며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엄청 스트레스 받네. 이거.

내가 인내심 하나는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는데, 이렇게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들어오니 순간적으로 과부하가 걸리는 거 같다.

물론 그중에 8할은 비행기 때문이었다.

부르르.

시동이 걸린 기체가 진동하면서 화들짝 놀랄 뻔했다.

천천히 움직이면서 활주로로 진입하는 비행기의 진동에 편두통이 더 심하게 욱신거렸다.

속도를 높여가는 비행기의 질주에 손잡이를 붙잡았다.

카페인을 먹은 것도 아닌데 쿵쾅쿵쾅 뛰는 심장 소리가 고막을 두드려 대기 시작했다.

몇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질 때, 이어서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다.

………끝났다.

비주가 몸을 기울이고 속삭였다.

‘형, 괜찮아요?’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비주에게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는데 땀이 맺혀 있었다.

지금에야 눈치챘지만 등받이가 벌써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진짜 걱정 안 해도 돼. 이륙도 끝났잖아.’

확실히 이륙을 하고 나니 스트레스가 덜하다. 이따 착륙 때 또 한 번 고비가 오긴 하겠지만.

멤버들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눈을 감았다.

긴장이 풀렸는지 졸음이 솔솔 쏟아진다.

비행기 탄다고 어제 밤을 새웠는데, 확실히 효과가 있긴 하네.

한잠 자고 나면 괜찮겠지.

바싹 굳었던 몸을 부드럽게 풀고, 나머지는 잠에게 맡겼다.

*   *   *

“극복했다…!”

“뭔 극복이에요. 이 사람아.”

“잠 자고 나니까 훨 낫다. 야.”

기지개를 쭉쭉 켜는 내 모습에 리혁이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맨날 괜찮대.”

“고럼.”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형을 걱정하는 그 마음이 참으로 가상하구나. 그 마음 잊지 말고 앞으로 잘하도록 하렴.”

“괜찮아졌네, 진짜 괜찮아졌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리혁이를 보며 웃었다.

한편, 내 말은 진짜였다.

비행기에서 내리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2시간 가까이 꿀잠을 잔 덕에 컨디션이 좋아졌다.

나는 스트레스가 쌓여도 조금 자면 바로 풀리는 스타일이라서.

물론 아까처럼 사생은 여전했다.

같은 비행기, 같은 공항.

동생들과 함께 걷는 동안에도 따라붙으며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으니까.

“그냥 뛰어서 도망칠까요. 형?”

중현이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비주는 어떡하고? 쟤가 리혁이보다 체력이 좋긴 해도, 게이지 하나 차이야. 금방 방전될걸.”

“제가 들고 뛰면 돼요.”

“호오. 그런 방법이…….”

친구를 덤벨처럼 취급하는 우정에 감탄했지만, 여기서 뛰다가 넘어지면 큰일이기에 포기했다.

공항에서 뛰다가 옥수수 털린 아이돌, 이런 식으로 알려질 순 없잖아.

따라붙는 사생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이건 아이돌로서 성공을 할수록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페널티 중 하나라서.

택시까지 타고 따라붙는다거나 혹은 명백한 스토킹으로 인식될 만한 부분은 어떻게든 처리를 시도할 수 있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는 처리가 불가능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와 비슷한 인기를 지녔던 과거의 TNT나 틴스피릿 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이라는 점이다. TNT가 처음 숙소를 옮긴 이유가 아마 중국 사생이 옆집을 구매해서였을 거다.

틴스피릿은 말할 것도 없지.

거긴 사생들에게 평소처럼 ‘존나’ 하다가, 오히려 사생들이 그거에 자극을 받아 더 늘어난 케이스라고 들었다.

어쨌거나, 무엇이든 좋은 것만 누릴 수는 없는 법이다.

“아.”

마침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스탭들이 수화물을 챙기고 매니저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동안 멤버들에게 말했다.

“좋은 해결책이 하나 떠올랐어.”

“뭔데여?”

“성공해서 우리 비행기를 따로 사는 거야.”

“…….”

마스크를 써서 표정은 안 보였지만, 동생들의 눈동자에 멍함이 감돌았다.

이내 자기들끼리 바라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솔직히 솔깃한데요.”

“줄이면 솔솔이네.”

“잠시만요. 비행기 가격 좀 검색해 볼게요.”

핸드폰을 드는 비주에게 지호가 핀잔을 줬다.

“형,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비행기를 검색하면 어떡해여.”

“엇… 어쩐지 장난감만 나오더라.”

“저한테 맡겨여.”

형들이 느릿느릿 검색하는 모습이 답답했던지, 신세대인 막내가 손가락을 투두두두 움직였다.

“저렴한 모델 하나 찾았어여. 중국의 유명한 스타가 보유한 건데 300억이라서 나름 싼 편이래여.”

“…….”

“이건 할리우드 스타들이 타는 걸프스트림이라는 건데. 800억 정도래여. 옵션 빼고 할인 들어가면 750억 정도…?”

“…….”

내가 진지하게 물었다.

“이거 공동구매 안 되려나. 스트릿 보이즈나 다른 아이돌들이랑 N분의 1로 해서.”

“아하.”

리혁이가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모두가 전 재산을 바쳐서요?”

“…….”

“현실적으로 생각해요. 방금 왕지호가 말한 건 운영비는 뺀 기체 가격일 걸요. 정비랑 기름 값 생각하면 매년 몇 억은 들 거예요.”

“몇 억 아니래여.”

“그래?”

생각보다 싸구나! 하면서 소시민들이 기뻐할 때, 막내가 해맑게 웃었다.

“50억 정도 든대여.”

“…….”

전용기는 바로 포기했다.

그래서 나중에 성공하면 비행기를 빌리는, 전세기를 이용해 보자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TJ 엔터도 자기네 콘서트 할 때 전세기 타고 가고 그러니까.

하지만 전세기도 얘기할수록 현실성이 없는 건 마찬가지여서 다들 시무룩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혹시 모르잖아요.”

중현이가 말했다.

“우리가 나중에 진짜 대박이 나서 전용기 타고 다니고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러게. 한 빌보드 1위쯤 하면 되겠다.”

“저는 아카데미 탈게여.”

우리가 키득거렸다.

전용 비행기에 앉아서 초코 우유를 홀짝이고 있을 우리 모습을 상상하니, 거리감이 너무 아득해서 웃음만 나온다고 할까.

중현이만 ‘나 진지하게 얘기한 건데’ 하는 표정을 지을 뿐.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엄청 대박 나서 전용기 사자. 지금 추세로 쭉 잘 된다고 가정하면…….”

리혁이에게 계산을 부탁했다.

위로 치켜뜬 눈이 마법 주문을 읊듯이 중얼중얼하더니, 손가락을 다섯 개 폈다.

“5년?”

“50년이요.”

우리 모두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칠순잔치 하러 갈 때 타러 가면 되겠네.”

“우와. 데뷔 50주년 기념 월드 투어 하면 되겠네요. 우리 손자들이랑 손녀들도 데려가요.”

“부제 : 청춘을 찾아서.”

“푸하하!’

무대 위에서 주름이 자글자글한 우리와 팔목에 파스를 붙인 채 응원봉을 느릿느릿 흔드는 수플레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오빠, 여전히 살아있네요…!’, ‘너희도 많이 늙었구나…!’ 하며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콘서트장.

불현듯 예전 팬미팅 때, 전 세계 수플레가 모이는 대전 엑스포 드립을 쳤던 게 떠올랐다. 전세기 같은 것도 세계적으로 대박을 치면 가능하겠지.

지구촌 스케일을 상상하면서 우리끼리 웃었다.

그런 이야기 덕분인지 사생에 대한 생각이 옅어지는 듯했다.

“얘들아, 가자.”

짐을 다 챙긴 스탭들을 따라 우리가 발걸음을 옮겼다.

외부에 있을 현지 코디네이터와 통화를 끝낸 석환 형이 말했다.

“너희 기다리는 일본 팬들이 꽤 많다고, 주의하라고 하더라.”

“그래?”

“생각보다 많은가봐.”

우리끼리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대만이나 상하이를 갔을 때처럼 여기에도 우리를 기다리는 팬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마스크를 벗자, 리혁이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마스크는 왜 갑자기 벗어요?”

“일본 수플레들은 우리 얼굴 처음 보는 거 아냐. 맨 얼굴 보여 줘야지.”

“…….”

어딘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우리 애들.

내 대답이 그렇게 근사했나 하며 속으로 희희낙락할 때, 리혁이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말했다.

“저기.”

“왜, 멋있었어?”

“입에 침 자국부터 좀 닦아요. 티 나.”

“아앗….”

내가 핸드폰을 거울삼아 얼굴을 사람답게 바꾸는 동안, 동생들이 설레는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특히 리혁이는 발에서 사뿐사뿐 소리가 나는 거 같다.

홍조가 살짝 도는 하얀 얼굴로 중얼중얼 하는데, 일본어 인사말을 준비하는 듯했다.

“일본어로 인사하게?”

“맞아요.”

리혁이가 후후 웃었다.

“내가 이 날만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드디어 실전에서 써먹을 날이 온 거예요.”

“……그거 안 들릴 텐데.”

대개 해외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수플레들이 지르는 소리 때문에 우리 목소리가 거의 다 묻히거든.

아니나 다를까.

“꺄아아악!”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팬들의 소리에 흠칫 놀랐다.

이윽고 손을 흔들며 일본의 수플레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동안, 리혁이가 숨을 후흡 들이켰다.

그러곤 인사를…….

“미나상……!”

“와아아아악!”

“미나…….”

“아아아아아!”

어떻게든 일본어를 써먹어보겠다고 애타게 외치는 리혁이를 보면서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다.

*   *   *

같은 날.

일본의 연예 정보 프로그램.

[다음은 오늘의 쇼 비즈니스 소식.]

익살맞은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리는 K팝 콘서트. 오늘 오전, 한국 인기 아이돌들이 입국하는 현장입니다.]

‘K-Pop Concert’라는 배경 화면이 사라지고, 아이돌들이 입국하는 현장이 잠시 흘러나왔다.

우측 하단에 동그라미로 일본인 패널들의 얼굴이 나온다.

공항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돌들의 얼굴이 흘러나오고.

[현재 한국 음원차트의 1위에 빛나는 뉴블랙의 입국. 소녀들을 열광케 하는 왕자님 같은 미모의 5인조 소년단!]

뉴블랙을 기다리던 팬들이 우르르 모이는 장면에 현장 패널들이 눈을 휘둥그레 뜬다.

누군데 저런 열광이 나오느냐는 듯한 반응.

손을 흔드는 선우주의 그림 같은 미모에 화면을 보던 대머리 남자 패널이 잇몸이 만개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미나상! 곤니찌와!]

하얀색 굵은 자막으로 표시되는 일본어.

새하얀 얼굴의 멤버가 열심히 ‘곤니찌와!’를 외치는 풍경에 모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떻게든 일본어를 써 보겠다는 듯 열심히 외치지만, 팬들의 함성에 묻히고 있는 중이었다.

음을 높여 보지만 꾸준히 묻힌다.

구슬프게 곤니찌와를 외치는 서리혁의 모습.

눈을 크게 뜬 여성 패널이 ‘카와이…’ 하며 중얼거리는 모습과 함께 본격적인 K팝 콘서트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   *   *

일본 입성은 성공적이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팬들이 이만큼 있다니…….

엄청난 인파까지는 아니었지만, 별도 프로모션을 진행해서 밑바닥부터 성장해야 하는 일본 연예계 특성을 감안하면 이 정도 인파는 굉장히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우리 매니저들에게서 소식을 전달 받은 홍보팀이 들떠서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마구 뿌릴 정도였다.

현지 코디네이터가 운전하는 차량에 올라탄 후에도 차창 밖에서 팬들이 ‘우젠민!’이나 ‘제임스’하는 플래카드를 흔드는 게 보였다.

…어쩜 국적은 다른데 이런 건 다 똑같을까.

안 똑같아도 되는데.

하네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동안 석환 형이 설명을 해 주었다.

“너희 리얼리티 있잖아. ‘잇츠 더 뉴블랙.’ HBS MTV에서 진행했던 거. 그게 일본 MTV에서 방영을 했대.”

“아아…….”

이따가 리얼리티 피디님이 계신 방향으로 절을 해야겠다.

대만에서도 우리 리얼리티 덕분에 반응이 많이 왔었는데, 일본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팬분들이 생기나?”

“뭐, 유입 경로가 꽤 있는 거 같더라고. 일단 한국 예능을 챙겨보면 너희를 모를 수가 없으니까.”

“우리가 엄청 나오긴 했져…….”

아이돌 팬들이 농담 삼아 ‘또블랙’이라고 부른다던데.

TV를 틀거나, 음원 차트를 보거나, SNS나 미튜브를 봐도 뉴블랙을 피할 수 없다고.

어느 아이돌 팬이 템플 스테이를 갔는데, 절에서 뉴블랙 사진이 박힌 홍삼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된 드립이라고 들었다.

‘어딜 가든 걔네가 보여요…’ 하는 느낌이었다.

“일한 보람이 있네.”

“그러니까요. 형. 저희가 구른 보람이 있나 봐요.”

비주가 흐뭇하게 웃으며 ‘저희 더 굴러요’ 하는 말을 했다.

오는 스케줄 안 막고 잠이란 잠은 다 쪼개서 활동했던 게 좋은 결과로 돌아오고 있었다.

석환 형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정확하게 팬들이 생긴 이유는 파악이 힘들지. 회사에서 너희 해외 팬들에게 설문을 돌려서, 팬이 된 이유라든가 그런 걸 파악한 적이 있긴 하다만.”

“오, 이유가 뭐래여?”

“잘생겨서.”

“…….”

“잘생겨서 좋대.”

“…….”

내가 웃으며 물었다.

“무대 잘한다거나, 아니면 재미있다거나 하는 이유는?”

“…어, 그것도 이유에 있어. 무대 잘한다는 게 2위고. 재미있다가 3위.”

“오오. 역시.”

“13프로 정도.”

“…….”

“1위가 80프로였거든. 얼굴 보는 재미가 있다까지 포함하면 84프로 정도.”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예이!’ 하면서 신나하기로 결정했다.

창밖을 둘러보며 한국이랑 다른 점을 찾기도 하고.

운전석이 우측에 있는 걸 보며 신기해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하며 시간을 때웠는데, 그중에서 시간 때우기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이 있었으니.

“지호야, 지호야. 그거 해봐. 그거.”

“잠시만여.”

거룩한 표정을 지으며 ‘미나상~ 서리혁데스~’ 하는 모습에 우리가 손뼉을 치면서 깔깔거렸다.

리혁이가 지호의 등을 팡팡 쳤다.

“이게 죽을라고. 내가 언제 그렇게 했는데?”

“야. 그게 왜. 완전 똑같은데.”

“나 안 이랬거든요?”

“그래?”

내가 아까 리혁이의 표정을 고스란히 따라하며 한 손을 들고 외쳤다.

“미나상…!”

팬들의 함성에 인사가 묻혀 아련하고 슬픈 표정으로.

“곤니찌와……!”

“흐하하핫!”

“와. 대박. 역시 원조 맛집은 다르다더니, 대박이에여. 형. 어떻게 리혁이 형의 하찮음을 표정 하나로 표현할 수 있지?”

다들 나가 주세요, 하면서 벌건 얼굴로 한숨을 쉬는 누군가를 제외하면 모든 고객들이 물개박수로 대만족을 표했다.

리혁이의 수치심을 제물로 바친 우리가 행복함을 느낄 때.

일정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호텔에 체크인 하고, 따로 부스가 마련된 행사장으로 가게 될 거야. 거기서 이벤트도 진행할 거고.”

A4 용지에 적힌 빼곡한 일정을 바라보던 석환 형이 리혁이에게 싱긋 웃었다.

“토크하는 코너도 몇 개 있으니까. 아까처럼 일본어 잘 부탁할게, 리혁아.”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실장님.”

“재미있어서.”

석환 형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일 K팝 콘서트에서 리혁이가 스페셜 MC 맡았지?”

“네…….”

“그것도 잘 부탁할게. 아까처럼.”

“…….”

우리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콘서트 끝난 뒤에는 도쿄에서 별도 프로모션 진행할 거고. 아마 자유시간은 마지막 날 있을 거야.”

“잠시만요. 실장님.”

스타일리스트 실장님이 말을 끊고 들어왔다.

“우주는 자유 시간에도 꽃무늬 사복 절대 금지야!”

“절대 금지! 야쿠자 옷 같아.”

“사 오는 것도 안 돼! 꽃무늬 잠옷도 안 돼.”

스타일리스트들이 이구동성으로 ‘사복으로 꽃무늬 금지!’를 외치고, 동생들도 ‘금지!’하고 외쳤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세 벌이나 가져왔는데…….

이어서 화보 촬영과 잡지 인터뷰 스케줄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을 때, 석환 형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약간 찜찜한 게 있는 표정이었다.

“참, 우주야.”

“네?”

“너한테 개인적으로 들어온 스케줄이 하나 있는데… 이거에 대해서 의향을 물어봐야 할 거 같아서.”

“개인 스케줄?”

“응. 일본 지상파 TV 예능에서 들어온 섭외 요청이야.”

“……나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였다.

오늘 처음 땅 밟아보는 나라에서 지상파 TV 프로그램 섭외 요청이 들어온다고?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매니저의 설명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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