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61)화 (26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61화

당황한 리혁이에게 싱긋 웃어 줄 때였다.

「에…?」

진행카드를 보던 MC가 고개를 들었다.

「우주 씨 발음이 굉장한데요? 진짜 일본인 같아요.」

「감사합니다.」

「원래 리혁 씨가 가장 잘한다고 들었는데, 예상 외의 실력자가 있었네요!」

수플레들이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째 나를 전설의 포켓몬처럼 바라보는 것 같은데.

「묘하게 이 지역 사람 같네요. 눈 감고 들으면 한국 사람인지 모를 것 같아요.」

그 말에 중현이가 지그시 눈을 감자, MC와 수플레들이 웃었다.

잠시 일본어 실력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후, K팝 콘서트에 대한 Q&A를 진행했다.

선배들과 함께하는 소감은 어떤지, 내일 콘서트가 기대되는지, 일본이란 나라의 인상은 어땠는지.

예상했던 질문이 대부분이라 막힘없이 대답했다.

내 일본어 실력에 대한 질문은 별로 나오지 않았는데, 그 정도로 신기해하진 않은 것 같다.

놀라기에는 조금 부족했으니까.

TJ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원어민 수준까지 공부했던 중국어에 비해, 일본어는 말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 어휘를 떠올려야 하는 수준이었다.

「미리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주 씨는 ‘언어의 귀재’라고 불린다는데요. 대만에서도 일반인으로 오해를 받았죠?」

「맞아요.」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을 궁금해 하는 게 있는데요. 비결이 뭔가요?」

멤버들의 귀가 동시에 쫑긋거렸다.

나를 토익 강사처럼 바라보는 수플레들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비결보다는 그냥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도쿄대 입학생 인터뷰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네요.」

어쩔 수 없었다.

여러분. 제가 리어카를 끌던 할아버지를 구해줬는데, 그 뒤로 입술 모양이나 성대 근육이 움직이는 걸 보면 따라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짜잔! 하하!

…라고 하면 다음 날 어디 연구소에서 눈을 뜨게 될 걸. 우리 할머니가 면회도 못 오는 곳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계속해서 내게 시선이 쏠리자,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사실, 저는 발음만 좋을 뿐이지. 진짜 언어의 능력자는 리혁 군이거든요. 대단한 친구예요.」

「그러네요. 리혁 씨도 엄청 잘하는 거 같아요.」

모두가 리혁이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위기감은 어디로 갔는지 우리 애의 뺨이 금세 씰룩거렸다.

「으흠흠…….」

새하얀 얼굴 위로 옅은 홍조가 몽실몽실 떠올랐다.

마이크를 잡은 리혁이가 용솟음치려는 뺨을 꾹 눌렀다.

「칭찬 감사합니다. 여러분이랑 얘기하고 싶어서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했는데, 보람이 있네요.」

같이 토론해요, 하는 멘트에 수플레들이 ‘우아아’ 하며 손을 흔들자 녀석의 콧대가 더욱 높아졌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띄웠다.

「어때요. 여러분! 리혁 군 일본어 엄청 잘하죠?」

「우와……!」

…는 내가 원하던 반응이 아닌데.

리혁이에게 향하던 팬들의 시선이 단숨에 내게 몰렸다.

엇. 이게 아닌데.

당황한 내가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다가, 리혁이를 보라며 손짓하는 모습에 좌중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

그 속에서 리혁이가 원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서리혁은 한스러움을 느꼈다.

‘내가 어쩌다 이 사람이랑 같은 팀이 돼서…….’

그 동안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해외 나가서 쓸 외국어를 암송하곤 했다.

비주 형이 떡을 썰 때, 일본어 문장을 공책에 썼고. 왕지호가 인터넷 쇼핑을 할 때, 거울 앞에서 발음 연습을 했다.

중현이 형이 TV 속 사바나에서 달리는 사자를 보며 입맛을 다실 때도 일본어 단어를 외웠다.

그 덕분일까.

원어민 선생님이 만날 때마다 칭찬을 해 주었다.

-리혁 군! 이번 쪽지 시험도 100점이야. 정말 우수해. 어쩜 이렇게 한 번을 안 틀릴까?

-한 번 있어여. 99점.

-와. 지호보다 30점이나 많네.

-…아! 우주 형 진짜! 쌤은 왜 같이 웃어여?

기분 좋은 기억이었다.

원어민 선생이 말하길, 그의 수준이면 현지인과 토론을 해도 안 밀릴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누구랑 같은 팀인지 까먹었네.’

팀에 외계인이 하나 있다는 걸 깜빡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현지인들이 흠칫할 만큼 완벽한 발음을 구사하는 선우주였다.

「…하하하. 네. 맞아요.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다고나 할까요.」

옆자리에 앉아 능청맞게 토크를 하는 모습이 얄미웠다.

칭찬을 받을 때마다 ‘호에에, 전 어휘가 짧은 것이에요~’ 하는데 속이 부글부글거린다고 할까.

말로는 어휘가 짧다는데 도대체 뭐가 짧은지도 모르겠다.

마음 같아선 옷깃을 짤짤 흔들어 주고 싶었다.

그게 짧아? 그게 짧은 거야? 이 사람아? 그게 짧은 거면 2미터짜리 줄자도 치실이겠다.

‘……근데 어떻게 한 거지? 진짜?’

매일 거울을 보면서 연습해도 원어민까지는 안 되던데. 저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시간은 또 어디서 났고?’

발음이야 백 번 양보해서 재능으로 커버했다고 쳐도.

지금처럼 통역 없이 일본인과 자유로운 회화가 가능한 수준이 되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절대적인 공부량이 필요했을 텐데, 지금 스케줄에서 그걸 어떻게 해냈는지 의문이다.

뉴블랙의 국내 스케줄은 분 단위로 짜여 있었다.

게다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줄을 끝내고 나면, 밤 12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야 보컬 레슨과 안무 연습이 시작됐다. 거기에 선우주에게는 4집 준비가 더 있었고.

그리고 남는 건 수면 시간뿐.

결론은 간단했다.

상대가 잠 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면서 일본어를 공부해두었다는 것.

‘……미쳤어.’

매일 잠을 쪼개서 공부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한숨이 나오기도 했고.

‘이러면 내가 일본어를 공부한 의미가 없는데.’

하도 혼자 부담하는 일이 많아서 해외 나가면 역할 하나 분담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공부였다.

너무 힘들어 보여서, 적어도 외국 활동에 대한 부담은 덜 수 있도록.

헌데 이렇게 되어 버리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데뷔 전에는 숙소에서라도 게을렀는데.’

옷 가져가라고 하면 발가락으로 꼼지락거리고, 밥 먹으라고 하면 거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오고.

그런데 데뷔를 한 다음부터는 눈이 돌아가더니 ‘성공! 덕순! 성공!’하면서 숙소에서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밤에 화장실을 갈 때마다 늘 거실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근데 저러다 명 주는 거 아냐? 오래 살아야 되는데…….’

그의 최애인 세종대왕님도 저렇게 과로하다가 고생하지 않았던가.

해외 팬들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는 리더를 보고 있자니 건강에 대한 염려가 무럭무럭 솟아났다.

저러다 어디 탈이라도 나면 안 되는데.

자유시간에 소원 비는 돌 같은 게 있다면 선우주의 무병장수를 기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얄미울 때가 95프로지만, 그래도 그룹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리더에게 고마…….

「귀여운 일화요? 아! 있어요. 리혁 군이 자기 힘을 증명하겠다고 정수기 생수통을 갈다가 휘청거렸던 적이 있거든요! 번쩍, 들었는데 온몸이 파들파들 떨렸어요.」

「흐하하! 맞아! 맞아!」

“…흠? 지금 웃어야 되는 상황이야?”

“맞아! 그때 진짜 귀여웠어요! 응, 웃어 중현아.”

“하하하!”

“하하하!”

……정말 고마워할 틈을 안 주는구나. 이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는 팬들 때문에 그의 귀와 뺨이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박수를 치며 ‘흐하핫!’ 웃어대는 멤버들을 바라보던 서리혁이 마이크를 잡았다.

「저도 재미있는 일화를 알고 있어요.」

「오. 뭔가요?」

「우주 씨가 꽃무늬 옷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진짜, 너무 좋아해서 방에 들어가면 꽃밖에 안 보여요.」

왕지호가 신이 나서 할머니 같다며 ‘오바상, 오바상’ 하며 동참하자, 수플레들이 더 크게 웃었다.

선우주도 같이 유쾌하게 웃을 때였다.

「근데 꼭 본인에게 안 어울리는 꽃무늬만 좋아해서 저희가 지난번에 대규모 압수를 했어요. 비주 씨의 가족이 선물해 준 꽃무늬까지만 입기로 하고, 나머지는 모두 봉인을 했거든요.」

「아니었나요?」

「얼마 전,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가 우연히 저분이 중현 씨의 방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어요.」

「……엇.」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신 선우주가 다급하게 말했다.

「리혁 씨, 거기까지 합시다. 우리 매너해요.」

「괜찮아요. 모두가 재미있어할 거예요.」

입으로는 웃지만 눈으로 대충 험한 말을 시전하는 선우주의 모습에 서리혁은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저분이 중현 씨 방으로 들어가더니 옷장 서랍을 열고 꽃무늬 옷을 조심스럽게 꺼내더라고요.」

「안 돼…….」

“…지금 무슨 상황이야? 우주 형이 내 방에 들어왔대? 왜?”

“그걸 들어보려는 거야. 중현아.”

“오케이. 흥미진진.”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알고 보니, 여태까지 저희가 비주 씨 가족이 보내 줬다고 생각한 옷들 중 일부가 저 숨겨 둔 옷이었더라고요.」

「허어…! 어쩐지!」

비주가 손뼉을 치며 ‘우리 누나가 그런 옷을 골랐을 리가!’ 하는 반응을 보였다.

MC가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밤에 몰래 꺼내온 거네요.」

「네. 그런 거였어요.」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군거렸다.

“어쩐지 이상했어여. 입어도 입어도 새 옷이 나오고.”

“……그럼 여태까지 그 옷들이 다 중현이 옷장에 숨겨져 있던 거였어요. 형?”

“와. 내 옷장에 그런 게 있었구나.”

멤버들의 대화를 통역사들이 발랄하게 통역해 주고, 팬들이 웃기 시작할 때 MC가 물었다.

「중현 씨는 이 사실을 몰랐나요?」

「네!」

김중현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제 옷장에 뭐가 있는지 몰라요.」

「……뭔가 묘한 매력이 있네요. 중현 씨.」

MC가 재미있다는 듯 웃을 때, 모두의 시선이 선우주에게 향했다.

‘망했다’ 하며 허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곤 흉흉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멤버들을 발견하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

시선을 회피하면서 눈동자만 슥 굴리다가, 이내 죄인처럼 움츠러드는 리더였다.

“여러분.”

초라한 목소리가 컨벤션장에 울렸다.

“내가 미안합니다.”

멤버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건수를 잡았다는 듯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 앞에서, 선우주가 ‘죄송함다, 죄송함다’를 연발했다.

결국 그는 팬들 앞에서 김비주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팬분들 앞에서 약속하는 거니까, 이제부터 안 입는 거예요.」

「오늘부터……?」

「네.」

시들어 버린 꽃처럼 침울한 표정.

서리혁이 꼬시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자, 선우주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맞다! 저도 그날 기억이 나요! 리혁 씨가 왜 화장실에 갔는지 지금 기억이 났어요.」

「…자, 잠깐만요.」

「그날 새벽에 화장실 청소했죠?」

「엇. 그.」

「핸드폰 플래시 키고 바닥 솔질하고 있었잖아요. 막 웃고.」

「스트레스가 좀 쌓여서…….」

서리혁이 다급하게 나섰다.

「우주 씨, 진정해요. 이러면 같이 죽는 거예요.」

「전 이미 죽었어요.」

「……저! 저 귀여운 일화 더 있어요!」

「저부터 말할게요!」

곧이어 폭로전이 시작되었다.

「너무 귀여웠어요! 리혁 군 참 귀엽죠?」

「우주 씨가 더 귀여워요!」

「아니야! 네가 더 귀여워!」

「당신이 더 귀엽다고! 최고야!」

서로에게 귀여워를 외치는 모습에 멤버들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자기들 딴에는 험악한 폭로 같은데 어째 유치원생들이 투닥거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목숨을 건 한판승부보다는 레서판다들이 뒹굴거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MC가 흥을 돋우고 팬들이 동영상으로 그 모습을 담고 있는 동안, 조용히 눈만 멀뚱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뭐지.’

구경 중이던 한국 팬들이 눈을 깜빡였다.

‘왜 우리 애들이 일본어로 투닥거리고 있지.’

‘자막이 절실하다.’

‘대충 자기들이 귀엽다는 내용 같은데.’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일본어로 말싸움을 하고 있는 진귀한 풍경에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그리고.

‘……난 왜 불려온 걸까.’

일본어로 투다다다 하는 두 아이돌 멤버의 모습을 보며 통역사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저 고급 일본어를 초등학생 말싸움에 사용하다니…….’

*   *   *

폭로전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긴 채 무승부로 끝났다.

‘제법 하네.’

‘님도요.’

우리가 악수를 나누는 동안, 지호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일화에 대한 질문이 끝난 후. 잠시 OX 코너도 진행했다.

「나는 나 자신이 귀엽다고 생각한다.」

다 같이 X를 드는 가운데 막내 혼자 O를 들면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고.

비주가 진행하는 뉴블랙 안무 배우기 코너도 있었다.

웨이브를 타면서 참 쉽죠? 하는데 팬들의 눈에서 빗방울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우리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팬들에게 소정의 선물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있었는데, 나의 경우는 이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무의식적으로 이겨 버리는 경우가 있어서.

「이분이 가위바위보의 신이거든요.」

동생들이 나를 자랑하고, 무대 위로 올라온 초등학생 팬과 악수를 하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전 상대가 누구든 최선을 다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질 계획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이겨 버리…….

어.

「졌어?」

「졌네.」

「졌어요.」

분명 이긴 줄 알았는데, 수줍게 바위를 낸 초등학생 수플레가 방방 뛰며 좋아했다.

“…….”

진짜 초등학생들한테 뭐가 있나.

늘 느끼지만 우리의 vs 초등학생 전적은 좋지 않았다.

내가 직접 쓴 사인에 한국어로 또박또박 이름을 적어 주고는 수플레에게 건넸다.

「가위바위보 대회 있으면 꼭 나가 보세요.」

「네?」

「순발력이라든가. 그쪽으로 재능이 많으신 것 같아요.」

‘나에게 재능이…?’ 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는 가위바위보 유망주에게 미소를 지었다.

살포시 악수를 하고는 스테이지를 내려가는 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연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토크 콘서트를 마무리한 후, 우리의 최신곡 Flower Dance의 무대를 선보이면서 끝을 맺었다.

“선우주 김비주 김중현…!”

중간중간 응원법도 외쳐 주는데, 해외 팬들이 이것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그 덕에 평소보다 더 업 돼서 무대를 한 것 같다.

이윽고 무대의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는 동안, 무대를 내려가 현장에 참석한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감사합니다! 오늘 재미있었어요?」

「네, 좋았어요.」

「저희도 진짜 좋았어요. 정말… 어어, 벌써 가야 돼요?」

팬분들이 하도 많아서 얘기를 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한 분 한 분 올 때마다 빠르게 말을 했다.

눈을 바라보면서 손바닥을 맞대는데 긴장한 수플레들의 모습들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차분하게 웃으며 팬들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물론, 중간에 갑자기 깍지를 끼고 잘 안 놔준다거나, 손을 자꾸 만지작거리려는 분들 때문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우리에게 몹시 기쁜 시간이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또 만나요!」

부스 탐방으로 시작한 그날의 스케줄이 모두 끝나는 순간이었다.

간단한 저녁 식사 후.

미리 빌려놓은 연습실에서 콘서트 연습을 마무리하고 나니 하늘이 컴컴해져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숙소.

“호텔이다아!”

“방이다아!”

“우와아악-! 여기서 수영장도 내려다 보여여!”

체크인한 호텔은 지금까지 방문했던 숙소 중에 제일 좋았다.

잔뜩 들뜬 우리가 왁자지껄하게 떠들다가 갑자기 멈추자, 민기 형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들 뭐해? 냄새라도 나?”

“성공의 냄새를 맡는 중이에요.”

매니저들이 피식 웃었다.

방 배치는 사다리 타기로 정했는데 2인실 세 곳이 각각 비주와 중현이, 나와 리혁이, 그리고 독방을 차지한 막내로 나뉘었다.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벌렁 드러누우니 피로가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어둑어둑한 밤.

씻고 나오니 옆 침대에 앉은 리혁이가 태블릿 PC를 훑어보고 있었다.

“뭐해?”

“후기 읽는 중이에요.”

“후기?”

“팬분들이 인터넷에 써 준 후기요. 볼래요?”

“네가 읽어줘.”

“…그리고 우주는 엄청났습니다! 새하얗고 키가 크고 눈이 부셔. 손이 따뜻따뜻! 뒤에 이모티콘이 있어요.”

배달 어플의 별 다섯 개 같은 후기들을 듣는 동안, 침대에 걸터앉아 노트북을 켰다.

“또 작업하게요?”

“응.”

“어떻게 하루를 안 쉬네요.”

“가끔 쉬고 싶긴 한데, 보통 오늘 안 하면 내일도 안 하게 되더라고.”

조금 하고 잘 거야, 하고 대답하는 말에 상대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마우스를 딸깍이며 화면에 늘어선 라인에 집중할 때.

“그, 있잖아요.”

“왜. 마우스 소리가 시끄러워?”

“날 뭘로 보는 거… 아니, 그게 아니고. 그…….”

“그…?”

“쉬엄쉬엄하라고요.”

갑자기 무슨 소리래.

고개를 돌리자,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서 고구마 말랭이를 뒤적이는 리혁이가 보였다.

“아까 든 생각인데. 예전에는 그래도 숙소에서는 뒹굴거리고 다녔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요즘 하루종일 일만 하는 것 같아요. 좀 쉬엄쉬엄 해야지. 이러다가 진짜 쓰러… 뭐해요?”

“말 나온 김에 홍삼 좀 먹게.”

캐리어에서 홍삼을 하나 꺼내 쭉쭉 빨아먹었다.

크. 이 맛이지.

두 개를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해치우고는 웃었다.

“자, 이제 회복…!”

“회복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게 무슨 물약이에요?”

녀석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시간 쪼개서 일본어 공부하고 그러지 말고. 남는 시간에는 조금 쉬어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요. 남들은 초심을 잃어서 문제인데, 여긴 데뷔하고 초심이 생겼어.”

“초심이라…….”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숙소에서도 뒹굴거리던 걸 멈췄지.

내가 조금 심한 케이스긴 했지만,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사람들은 대개 연습생들이 더 열심히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프로 가수의 연습량이 더 많다.

아무리 게으른 사람도 막상 데뷔를 하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드니까.

아, 내가 여기서 조금이라도 못하면 바로 밀려나겠구나 하고.

그런 이유로 나 역시 쉬지 않고 계속 달리는 중이었다.

지금까지야 큰 탈이 없긴 했지만, 확실히 최근의 스케줄을 감안하면 과할 수도 있었다.

지금도 눈꺼풀이 무겁고, 내 몸은 좀 쉬자고 외치는 중이었으니까.

“일리가 있는 얘기네. 초심이라.”

“그래요. 초심.”

“그때의 마음으로…….”

노트북을 덮는 내 모습에 리혁이가 바로 그거라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때의 초심…….

“리혁아.”

“네.”

“나 목마른데 물 좀 떠 와라.”

“…….”

“초심 되찾으라며.”

물병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웃는 내 모습에 상대가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   *   *

똑똑.

호텔방 안쪽에서 사뿐사뿐한 걸음걸이가 느껴졌다.

-누구세요?

“나야.”

-엇, 형이구나. 제가 열어…….

“잠깐.”

-네?

“비주야. 이게 만약 내 목소리를 녹음한 사생이면 어떡해? 암구호를 외쳐야지.”

-아, 네! …한국사?

“69점.”

웃음소리와 함께 덜컹- 문이 열렸다.

문틈으로 웃는 얼굴을 쏙 내밀던 비주가 내 뒤의 짐을 보고는 갸웃했다.

“음? 왜 캐리어까지 챙겨 왔어요, 형?”

“리혁이가 쫓아냈어.”

“…….”

“조금 부려먹었더니 나가래. 고얀 것 같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니 비주가 빵 터져서 끅끅거렸다. 그러곤 내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우주 형 왔어.”

비주가 텅 빈 방에다 말할 때였다.

꿈틀!

오른쪽 침대에서 애벌레처럼 이불에 둘둘 말려 있던 것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흐어, 깜짝아!”

“안녕하세요. 형.”

“……그, 그래. 중현아.”

“형. 김비주가 저 보고 가오나시 같다고 놀리는데, 진짜 그래요?”

“그보다는 풍뎅이 유충 느낌.”

“다행이네요.”

만족하던 애벌레가 다시 꾸물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제야 깜빡하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내가 무턱대고 찾아왔네. 지호 방으로 갔어야 되는데, 너희 둘이 쓰고 있는 방에…….”

“어, 아니에요. 나가지 마요, 형.”

비주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저한테 좋은 생각이 하나 있어요.”

*   *   *

“한국사?”

-69점.

서리혁이 문을 열자, 캐리어 손잡이를 쥔 누군가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하이.”

“……혀, 형이 여기를 왜 와요?”

“우주 형이랑 방 바꿈쓰.”

“…….”

“난 저기 왼쪽 쓰면 되겠다.”

“아니, 그…….”

이미 침대에 누워서 몸을 돌돌 마는 김중현의 모습에 서리혁은 눈앞이 아득하게 변했다.

아니나 다를까.

1시간 후.

드르러어어어엉!

우아아앙!

드러러러러렁!

기상천외한 코골이에 서리혁이 핸드폰을 다급하게 눌렀다.

나 [돌아와요 당장]

나 [나 이대론 못 자]

답장이 돌아왔다.

선우주 [지호 방으로 가]

나 [내가 나가면 중현이 형이 뭐가 돼요]

선우주 [김중현]

잠시 험한 말을 빠르게 보냈지만 상대는 깔깔 웃을 뿐이었다.

선우주 [초심 되찾자며 리혁아]

선우주 [한방에서 같이 자던 그때 기억나니..?]

선우주 [this is 초심]

어둠 속에서 얄밉게 울리는 메시지에 서리혁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또, 또 당했어.’

종이접기 인형처럼 팔락거리는 손을 내리며 귀를 막았다.

“느아아…….”

드르렁.

“느아아아…….”

드르러어엉!

그가 괴로워하는 소리와 김중현의 코골이가 한 편의 이중주가 되어 방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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