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62)화 (26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62화

간만에 꿈을 꿨다.

학교에 다니는 꿈이었는데 대표님이랑 같은 반이었다.

‘규호는 뀨’하는 특이한 말버릇 때문에 대표님이 또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

담임 쌤 비주가 그래도 네가 반장이니 챙겨 줘라 하는 말에 내가 열심히 챙겨 주고 있었다.

특히나 ‘태정태세 문단세 해봐’ 하면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리혁이 무리로부터.

-뀨, 뀨……!

대표님이 지호에게 멱살을 붙잡힐 때, 내가 등장했다.

-거기까지 해.

대표님이 내 등장에 ‘뀨!’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쉽게 이겼던 지호와의 싸움과 달리 중간보스인 중현이에게 고전을 금치 못했다.

둘이서 데굴데굴 시합을 하던 중에…….

“형.”

교실 바닥에서 입술이 생기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형, 일어나여.”

“흐억……!”

눈앞에서 얼굴을 큼지막하게 들이대는 막내의 얼굴에 식겁했다.

“으악!”

정신을 차려 보니 내게 주짓수 기술로 붙잡힌 막내가 보였다.

켁켁거리며 항복하듯 침대를 팡팡 치는 지호.

“이, 이거 놔여!”

“……엇, 미안! 미안해!”

손발을 풀어주니 입술을 비죽이는 막내.

귀여운 나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냐며 한참을 핀잔주는 녀석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어우. 깜짝 놀랐네.

리혁이 말대로 휴식을 취하긴 해야 하는 모양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꾼 꿈 같다고 할까.

서늘한 에어컨 바람과 차가운 이불의 감촉에 현실감을 되찾을 때.

양치를 마치고 나오던 비주가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그게…….”

꿈 내용까지 같이 설명해 주니 둘이 미친 듯이 웃었다.

노파심에 대표님한테 비밀이라고 말했는데 헬륨처럼 가벼운 지호의 입이 가만히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아마 회사 직원 중 절반이 내 꿈을 알게 될걸.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내 침대에 드러누워 빈둥거리는 녀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우리 막내가 아침부터 웬 일이래. 일찍 일어나고?”

“뭐, 심심해서 일찍 일어나 봤어여. 일찍 일어난 새가 노래도 잘 부른다잖아여. 그리고 영상도 좀 찍을 겸.”

“영상?”

“홍 대리님이 카메라 주면서 그러셨거든여. 일본에서 일상 캠 좀 많이 찍어오라고. 저희 미튜브에 올릴 컨텐츠용으로.”

“아하.”

지호의 손에 작은 카메라가 하나 들려 있었다.

“원래 부지런한 막내가 게으름뱅이 형들을 깨우는 컨셉으로 가려고 했는데. 벌써 실패한 거 같아여. 비주 형은 일어나 있고 형은…….”

“…….”

“방금 진짜 이상하게 나왔을 거 같은데.”

핸디캠에 찍힌 영상을 확인해 보니, 새근새근 자고 있던 내가 눈을 번쩍 뜨더니 카메라가 막 흔들렸다.

마치 맹수에 습격당한 사고 장면 같다.

“…….”

“다시 찍자. 지호야.”

비주와 내가 누워서 잠자는 포즈를 취하고 막내가 다가와서 우리를 깨웠다.

둘 다 미소를 지으며 깨는 모습을 연출했는데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그만 다 같이 웃고는 포기했다.

결국 계획을 변경해서 옷을 입고 방을 나섰다.

“자, 그럼 중현이와 리혁이를 깨우러 가 보실까요?”

“고고고!”

푹신한 호텔 카펫을 밟으며 근처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희희낙락하며 문 앞에 섰을 때.

“…….”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야, 근데 어떻게 들어가냐.”

“……엇, 이런 허점이.”

“지호야. 너 우리 방엔 어떻게 들어왔어?”

“비주 형이 열어 줬어여.”

“…….”

눈을 깜빡거리며 서로를 바라보던 우리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똑똑.

-한국사?

“69점.”

지호가 부들부들하는 가운데, 문이 열리고 양치를 하고 있던 곰이 우리를 반겼다.

“오, 어서 와요.”

“일어나 있었구나.”

“네, 리혁이는 아직 자는데…….”

“그래?”

우리가 살금살금 걸어서 호텔방 안으로 들어갈 때였다. 침대로 가서 이불을 확 걷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뭐 그런 건가.

비주가 조심스럽게 빈 침대를 더듬으며 리혁이의 존재를 확인할 때, 중현이가 손가락을 들었다.

“저기 있어요.”

“저기?”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 리혁이가 있었다.

그런데 위치가 좀 미묘하다.

“……쟤는 왜 저기서 자고 있냐?”

“저거 학교에서 봤는데. 지진 대피 요령 그런 거 있잖아여.”

구석진 테이블 밑에서 리혁이가 이불을 돌돌 만 채 쪼그려서 잠들어 있었다.

어떤 드라마에서 나온, 복권 때문에 패가망신한 주인공이 검댕을 묻히고 처량하게 앉아 있는 짤 같았다.

코골이가 어지간히 시끄러웠던 모양인지 에스키모처럼 이불을 모자모양으로 만들어서 쓰고 있었다.

“살아있긴 한 거겠지?”

“체력만 약하지. 은근히 질긴 형이어서 괜찮을 거예여.”

비주가 몸을 굽히더니 리혁이를 톡톡 두드렸다.

“리혁아.”

“…….”

“리혁아. 형이야.”

“……음?”

동면에서 깨어난 생선처럼 몸을 부르르 떨던 리혁이가 초췌한 얼굴로 눈을 떴다.

비주가 물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잠을 자 보려고 했는데, 코골이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나마 여기가 소리가 작았어요.”

“그런…….”

“괜히 여기서 잤나 봐요. 저 너무 추워요…….”

비주가 안 됐다는 듯 토닥여 줄 때, 리혁이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잠이 확 깬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너……!”

“좋은 아침.”

“너… 내가 복수할 거야……!”

“홍삼 줄까?”

주머니에서 내가 홍삼을 꺼내서 내밀자, 리혁이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뻗었다.

“줘, 줘요.”

“복수는?”

“먹고 할 거니까 조용히 해요.”

살기 위해 홍삼을 쭙쭙 하는 녀석을 보며 웃으니 도끼눈이 되돌아왔다.

리혁이는 홍삼을 다 먹고는 토닥토닥하는 비주에게 꺼이꺼이 하면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비주가 빙긋 웃으며 그 말을 차분하게 들어주었다.

바보 같은 리혁이.

방 바꾸자고 한 아이디어는 쟤가 제공한 건데.

*   *   *

원래 조식은 호텔 뷔페로 해결할 예정이었는데.

호텔 측에서 죄송하지만 아침 식사를 룸서비스로 제공해도 되냐는 말을 해서 못 갔다.

팬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우리가 들어오면 다른 손님들이 식사하는데 방해될 것 같다는 이유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 조금 당혹스럽긴 했지만 여러모로 더 좋은 일이었다.

호텔 측에서 미안하다며 제공한 룸서비스의 질이 좋았으니까.

“우와아……!”

오므라이스와 빵, 생선구이와 밥 등.

여러 가지가 뒤섞인 반찬이 올라온 덕에 아침부터 포식을 했다.

밥도 맛있게 먹고,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아침이 환해질 때까지 잠을 잔 덕분일까.

콘서트 장소로 향하는 우리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목적지는 도쿄 북쪽.

사이타마 현에 있는 슈퍼 아레나라는 공연장이었다.

리혁이가 태블릿 PC로 검색한 내용을 말해주었다.

“수용인원은 최대 4만 명까지도 가능한데, 이번 K팝 콘 같은 경우는 1만5천에서 2만 명 사이래요.”

“우와…….”

“작년에 갔던 체조경기장이랑 비슷한 규모인가 봐요.”

우리가 신인상을 탔던 망고 차트 어워드 때와 비슷한 규모였다.

만오천이라는 숫자에 가슴이 콩닥거린다.

기분 좋은 설렘이 반, 실수 없이 무대를 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반이다.

팬서비스나 팬들을 대하는 자세는 어느 정도 쌓인 경험 덕에 여유로워졌지만, 무대에 대한 긴장감은 데뷔 초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매번 새롭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는 입이 바싹 마르고 현기증이 나던 긴장감이 이제는 가슴이 세차게 뛰는 정도로 바뀌었을 뿐. 무대를 앞둔 긴장감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1만5천 명이면 우리 콘서트 세 배네여.”

“그렇지.”

“으어, 떨린다. 진짜 작년에는 체조에서 어떻게 무대 했지? 그때보다 더 떨려여.”

막내의 말에 우리 모두 공감했다.

큰 데서 몇 번 정도 공연을 해 봐서 나아진 줄 알았는데 도로 리셋 되어 있었다.

다 같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오늘 잘해야 하는데…’ 하며 중얼거렸다.

정작 콘서트는 한나절은 지나야 시작되는데 아침부터 왜 이렇게 긴장되고 떨리는지 모르겠다.

리혁이가 스페셜 MC용으로 주어진 대본을 읽는 동안 저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긴장을 풀었다.

중현이랑 지호는 간식을 먹고, 나랑 비주는 이어폰을 나눠 끼고 미튜브의 ‘마음이 진정되는 음악 모음’을 들었다.

-떨려? 많이 떨려 보이는데?

눈을 감고 들으려는데, 익숙한 누군가가 깐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중간에 나오는 미튜브 광고였다.

TNT의 한모 씨가 능글맞게 웃으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광고인가 했더니 핸드폰 광고였다.

카메라 떨림 방지 기능을 홍보하는 듯한데 깜짝 놀랐다.

당연하게도 바로 스킵을 눌렀다.

“TNT 선배님들은 안 나오는 광고가 없는 거 같아요.”

“그니까. 진짜 예고 없이 불쑥 튀어나온다니까.”

비주랑 그런 이야기를 할 때, 광고가 두 개였는지 새로운 광고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우리가 나왔다.

“……?”

바람꽃을 부르는 뉴블랙을 포함해 다른 보이그룹, 걸그룹들의 공연 장면이 나오더니 내레이션이 깔렸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K팝. 그 시장 가치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내놓은 공익광고였다.

웹툰, K팝 등 소위 한류의 경제 가치를 설명하는 광고. ‘이 친구들이 달러 벌어옵니다! 핫하!’ 하는 광고의 스킵을 누르자 본래의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흘러나왔다.

다시 나오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음악.

하지만 ‘떨리냐? 엌ㅋㅋ 떨림?’ 하는 광고와 ‘얘들아! 너희가 K팝 국가대표야!’ 하는 광고까지 보고 나니 전혀 진정되지 않았다.

“광고 차단 기능 생기면 나 진짜 유료 구매할까 봐.”

“저도요.”

다시 노래를 들으며 초조한 가슴을 달래는 동안, 큼지막한 빌딩 두어 개가 나타나더니.

공연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생각보다 큰 규모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공연장 벽면에 커다랗게 걸린 ‘2015 K-Pop Concert in Japan’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해외에서 진행한 공연 중에 가장 큰 규모.

침을 꿀꺽 삼키는 멤버들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오늘 진짜 잘하자.”

중현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잘해야죠.”

“잘해서, 팬들이 뉴블랙 왜 좋아하냐 하면 무대 잘한다가 90프로 나오게 만들어여. 우리.”

“그 정도로 잘하면 콘서트 끝나고 사람들이 다 우리 얘기만 할 걸.”

리혁이의 말에 우리가 웃었다.

그렇게 되면 일본 K팝 팬들한테 얼굴 도장 한 번 제대로 찍겠다며 우리끼리 이런저런 농담을 했다.

*   *   *

우리가 대기실에 도착하고 난 뒤 다른 가수들도 속속 도착했다.

어제 컨벤션 행사장에서 얼굴을 마주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오늘 입국한 사람들도 많았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응, 안녕.”

예전에 불꽃놀이 때 같이 음방 1위 후보였고, 주세한에서도 만났던 솔로 가수 조애나도 있고.

“어, 뉴블랙이다! 반가워요! 돌림픽 끝나고 오랜만에 보네.”

“잘 지내셨어요?”

일본에서 인기 좋기로 유명한 2세대 선배 그룹 에이스와도 인사를 나눴다.

리허설은 본무대 순서대로 진행됐는데, 가장 마지막인 에이스와 조애나 바로 앞이 우리였다.

큐시트 상으로도 거의 마지막이었기에 리허설 기다리는 데만 수 시간이었다.

대기, 대기, 그리고 또 대기.

대기실에서 동선을 맞추거나, 다른 대기실을 돌면서 오늘 퍼포머들과 인사를 아무리 해도 시간이 안 갔다.

“심심하네여.”

“그러게. 스트릿 보이즈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번 일본 K팝 콘서트는 음방 활동기와 겹친 아이돌들이 많이 출연했다.

스트릿 보이즈도 오면 좋았을 텐데.

듣기로는 원래 올 계획이었는데, DNS 미디어에서 음방에서 우리 피하겠다고 컴백 일자를 미루다가 스케줄이 꼬여서 그렇게 됐다고 들었다.

그러면서 다행히 이번 앨범 활동은 순항 중이어서 조만간 1위 한 번 할 것 같다고 하던데.

폰 받으면 바로 톡 주겠다고 해서 기대하는 중이었다.

사나이가 간다 피디님한테 한조 톡 아이디 줘야지.

“뉴블랙 리허설 진행할게요!”

“네!”

텅 빈 공연장에서 리허설을 진행했다.

동시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체크했다.

첫째는 무대 바닥 재질과 동선.

“바닥 재질은 다행히 음방이랑 비슷한데… 얘들아. 여기 조금 덜컹거리니까 조심하자.”

“네.”

우리 메인댄서가 돌출된 무대를 돌아다니며 안무에 관한 부분을 체크했다.

“간격 조금 조정할게요.”

“넵.”

“다들 원래 하던 안무보다 조금 촘촘하게 들어와야 해요. 원래대로 하면 저 조명에 발이 걸릴 수 있어서.”

몇 번 정도 합을 맞추고 나니 바로 완성이 됐다.

눈으로 대강의 중요 지점을 기억하는 동안, 사운드 체크는 나와 리혁이의 몫이었다.

“마이크 소리… 이거 살짝 묻힐 거 같지?”

“아무래도요.”

“이따 조정해달라고 부탁드리자.”

바닥 재질이나 크기가 다르듯 공연장마다 음향 상태가 천차만별이다.

몇 가지 요구사항을 매니저들 통해서 조심스럽게 전달하니, 현장 감독님이 흔쾌히 들어주었다.

한편, 굉장히 설레는 일도 하나 있었다.

“리프트다!”

“리프트……!”

“어떡해. 저 너무 떨려여. 우리가 드디어 리프트를……!”

무대에 등장할 때 쓰기로 한 리프트는 우리가 이번에 처음 타 보는 장치였다.

신기하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듯이 계속 타고 싶다고 해야 하나.

‘대박.’

‘올라간다. 올라가.’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리프트 판 위에 선 우리가 무대용으로 연습한 표정을 지었다.

TV에서 선배 아이돌들이 아래부터 스르륵 멋지게 등장하는 걸 보고, 진짜 해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소원을 성취했다.

“나도 타고 싶다…….”

무대 연출상 리프트를 탈 일이 없는 비주가 부럽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중현이가 ‘자, 리프트’ 하면서 비주를 붙잡아서 번쩍 들었다가 등짝 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중현아. 비주한테 그렇게 하면…….”

“아. 형도 해 줄까요?”

“야! 야…! 야아아!”

핸디캠을 든 원석이 형이 막 웃는 가운데 나도 ‘자, 리프트’의 두 번째 희생자가 됐다.

꼭 편집해 달라고 해야지.

품위 없이 대롱대롱 허공에서 다리를 흔드는 모습은 절대 수플레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그렇게 리허설을 마치고 나서는 또 대기의 연속이었다.

오후 5시.

콘서트 전 레드카펫 행사를 앞두고 메이크업을 고치고 의상을 입었다.

“우주 씨! 여기 봐요! 여기!”

“지호 씨! 여기!”

“리혁 씨, 리혁 씨!”

포토월에서 기자들 앞에서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포즈도 취하고.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두 MC가 진행하는 레드카펫 행사에서 오늘의 소감에 대해 짧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를 바라보는 팬들에게 인사를 하며 예고했다.

「오늘 특별한 무대들을 준비했으니까요. 많은 기대 부탁드릴게요. 그러면 지금까지…….」

「뉴블랙이었습니다!」

실시간 중계 카메라와 수플레들을 향해 손을 흔든 후, 긴장감 어린 얼굴로 대기실로 돌아갔다.

남은 것은 본무대.

텅 비었던 객석이 1만5천 명이 넘는 관객들이 들어서고, 에어컨이 쉴 새 없이 돌아가며 그 인원이 내뿜는 열기를 식힐 때.

“와아아아-!”

오프닝 VCR이 끝나고 모든 출연진이 관객 앞에 나타나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생각보다 인원이 더 많아 보여서 무척 떨렸다.

인원에 압도된다고 해야 하나.

스페셜 MC로 발탁된 리혁이가 다른 MC들과 능숙하게 진행하는 장면을 백스테이지에서 지켜보는 동안에도 시간은 쭉쭉 흘러갔다.

그리고 열 팀 가까운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 끝나고, 마침내 우리의 순서가 되었을 때.

백스테이지에서 인이어를 키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현장에서 사람들이 지르는 함성 소리가 또렷하게 전달되어 왔다.

-와아아아아!

“…….”

마이크가 켜졌기 때문에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리프트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올라갈 시간이었다.

*   *   *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18,000명 가까운 관객들이 객석에서 함성을 질렀다.

방금 전 있었던 라비앙로즈의 공연이 남긴 열기가 공연장을 후끈후끈 달구고 있었다.

‘진짜 재미있어…!’

보이그룹 에이스의 팬인 친구를 따라서 K팝 콘서트에 놀러온 한 관객이 응원봉을 흔들었다.

‘나오는 노래들도 다 좋아.’

몇몇을 빼면 모르는 가수가 대부분이라서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공연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재미있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멀뚱멀뚱 구경하다가, 점점 의자에 파묻고 있었던 허리를 뗐고, 얼마 안 가서는 같이 방방 뛰며 후렴구를 흥얼대고 있었다.

평소 공연을 잘 안 와서 그런지 모든 게 신세계였다.

조명. 음악. 환호성.

거기다 뒷 순서로 올수록 어딘가 들어본 듯한 한국 노래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친구에게 물었다.

“다음은 누구야?”

“뭐?”

공연장에서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다음은 누구냐고!”

“뉴블랙이래!”

잘 모르는 이름이었다.

한국에서는 유명한 그룹인가 하고 생각을 할 때, 마침내 공연장의 조명이 다시 암전되기 시작했다.

완벽한 암흑.

이윽고 금빛 조명이 반시계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드럼 소리가 강한 BGM이 흘러나왔다.

바닥에 구름처럼 깔리는 포그가 조명에 젖어들 때.

무대 뒤편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등장했다.

‘……솔로? 이름이 뉴블랙인가?’

헤드셋 마이크 뒤로 고운 갈색 머리카락과 부드러운 선을 자랑하는 미소년이 보였다.

전광판에 꽉 들어찬 가수의 얼굴에 함성이 더 커졌다.

고개를 살짝 숙인 그가 계단을 걸어 내려오자 시선이 집중됐다.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한 느낌을 주어서, 동영상이었다면 계속해서 10초 전 버튼을 눌렀을 만한 몸짓이었다.

“우와…….”

아직 뭔가를 한 것도 아닌데도 자꾸만 시선이 갔다.

무대에 깔린 포그와 역광 같은 조명 때문인지, 상대의 머리카락과 얼굴, 옷의 테두리가 금색 빛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였다.

그가 무대 중앙에 도착할 때.

음악이 바뀌면서, 가수가 고개를 들고 정면을 응시했다.

“와아아아아-!”

부드러우면서도 거친 춤이었다.

쓰러질 듯 몸을 기울이면서도 유연하게 다시 올라오기도 하고.

손짓을 하거나 웨이브를 탈 때마다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같이 흔들리며 춤을 췄다.

잠시간의 독무가 끝나고 주인공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을 때.

배경음악이 자연스럽게 고조되면서 조명이 쉼 없이 번쩍이고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춤을 추던 가수가 옷자락을 털면서 뒤돌아 걸었다.

뒷배경에서는 리프트를 탄 네 인물이 서서히 상승하는 중이었다.

그 면면이 하나씩 전광판에 잡힐 때마다 관중의 함성이 끝없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여유롭게 리프트를 향해 걷던 가수와 올라오는 리프트의 속도가 그림처럼 맞아떨어졌다.

수직과 수평이 퍼즐처럼 딱 맞춰져 다섯이 하나가 될 때, 뉴블랙의 댄서가 우아하게 몸을 틀었다.

‘우와…….’

이윽고 눈을 휘둥그레 뜨는 그녀의 앞에서 뉴블랙의 멤버들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Flower Dance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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