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67화
카메라 코앞까지 걸어온 뉴블랙 멤버들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지금까지 이런 응원봉은 없었다.
-봉봉.
-푸흡, 야. 김중현. 너 때문에 까먹었잖아.
비주가 웃으며 타박했다. 이내 다섯 모두가 키득거렸다.
-불 켜 주세요. 형.
회의실 조명이 켜지면서 수플레들이 심신의 안정을 되찾았다.
-하.. 드디어 ㅠㅠㅠㅠㅠ
-얘들아 방금 그 조명은 진짜 아니었어ㅠㅠㅠ
-방금 전 요괴는 기억에서 바이바이
-후..
화사한 꽃미모에 그제야 안도하는 팬들이었다.
멤버들이 댓글창을 읽겠답시고 고개를 더 가까이 들이밀면서, 오밀조밀한 눈코입이 화면을 채웠다.
잠시 팬들과 웃으며 소통하는 시간을 가진 후.
우주가 싱글벙글 웃었다.
-네. 지금부터 응원봉을 소개해 볼 텐데요. 어떠세요? 다들 기대 되시나요?
-네!
-아니, 너희 말고 팬분들…….
-와아아아!
당사자들이 더 신나서 ‘예이!’ 하는 모습에 수플레들이 웃었다.
멤버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두구두구 하는 동안, 매니저의 손이 응원봉 상자를 건넸다.
-자, 그럼 오늘의 상품! 소개 들어가 볼까요?
어딘가 쇼호스트 같은 느낌을 풍기는 우주가 박스를 들어 보였다.
-이게 바로 저희 뉴블랙이 오늘 소개해 드릴 공식~!
-응원봉!
-네. 여러분. 음악방송에서 응원을 할 때나 콘서트에서 흥이 날 때 꼭 필요한 물건이죠?
-맞습니다. 내 가수를 응원할 때 꼭 필요한 잇 아이템이에요.
비주와 우주의 호흡이 척척이었다.
쇼 호스트들이 합을 맞추듯 하나가 멘트를 하면, 다른 하나가 센스 있게 쏙쏙 받아치는 식이었다.
다른 멤버들도 응원봉 소개에 동참했다.
박스부터 응원봉 실물까지.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전화기를 들고 ‘아직 다 안 팔렸나요?’ 해야 할 듯한 느낌이었다.
-흥미진진ㅋㅋㅋㅋㅋ
-우리 애들 얼굴보려고 켯다가 지금 홀리는중
-왜 재미잇는뎈ㅋㅋㅋㅋㅋㅋ
-울 애들 홈쇼핑 나가면 완판각이다
-지금 우리 엄마 옆에서 귤 까먹으면서 같이 보는중ㅋㅋㅋㅋㅋㅋ 엄마도 하나 산대
-ㄹㅇ 홈쇼핑 보는거 같음;
-그래서 지금 어디로 걸면 되나요????
이내 수플레들도 ‘사은품은 뭘 주나요?’ 하면서 컨셉을 맞춰 주었다.
-사은품이요?
-아, 사은품 정말 중요하죠. 시장에서도 물건을 사면 덤을 주지 않습니까? 샐러드를 사도 드레싱이 없으면 섭섭하죠. 그래서 저희 레몬 홈쇼핑이 준비했습니다.
-짜잔!
뉴블랙 멤버들이 품에서 포토 카드를 꺼냈다.
멤버들이 제각각 다른 포즈로 응원봉을 든 사진에 구매욕구가 활활 불타올랐다.
-규호가 일을 한다..
-규호쟝ㅠㅠㅠㅠ 믿고있었다구
-응원봉 너무 예뻐.. ㄹㅇ루
-와.. 밤하늘 디자인 미쳣다ㅠㅠ
-디자이너님 뭘 배우신분 진짜ㅠㅠ
-덕심을 아신다 ㄹㅇ
-그분 수플레신가요
특히 6월 19일, 데뷔일의 밤하늘에 대한 설명이 나오면서 수플레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게 완벽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 말씀을 못 드린 사항이 하나 있는데요. 저희 응원봉에 최초로 적용되는 시스템이 하나 있어요.
우주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Fireworks’라고 되어 있는 고급스러운 검은색 어플리케이션.
-이 어플로 응원봉 밝기 조절과 색 조절을 할 수 있어요. 블루투스 기능인데 직원 분들 말로는 이런 IoT? 리혁아 맞지? 네. 사물인터넷을 적용한 건 저희가 처음일 거래요.
-이렇게 조정하시면 돼요.
수플레들도 댓글을 멈추고 ‘우와아…’ 하면서 감탄했다.
벌써부터 앱 스토어에서 Fireworks라는 어플을 검색해서 다운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Fireworks는 한국어로 불꽃놀이인데요. 저희가 데뷔 싱글 타이틀로 이름을 정하면 어떠냐고 건의를 했어요.
이윽고 팬들의 질문이 폭주했다.
-아. 이름이요? 그건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저희끼리 부르는 이름도 아직 통일이 안 돼서.
-전 달봉이!
비주가 활짝 웃었다.
-수플레가 밤하늘의 달모양으로 있잖아요. 그래서 달봉이라고 불러요. 형은 원봉이라고 했죠?
-응. 원봉이.
-저는 깔끔하게 수플레봉이요.
저마다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이윽고 압도적인 찬성 여론으로 ‘달봉’이 우세해졌다.
귀엽다는 이유였다.
-그럼 임시로 달봉이로 갈까요?
자리에 없는 팬들의 의견도 중요하니, 공식 투표로 정하자는 우주의 이야기에 모두 동의했다.
비주가 양손을 뺨에 올린 채 좋아하는 동안 막내가 제안했다.
-하는 김에 그럼 성씨도 붙여여. 성씨.
몇 분 지나지 않아 멤버들과 수플레들의 환상적인 팀워크 하에 ‘응원 김씨 32대손 김달봉’이 탄생했다.
다 같이 박장대소하며 깔깔거릴 때.
누군가의 질문에 우주가 눈을 깜빡거렸다.
-발광력이 너무 강한 것 같다고요? 아, 다른 분들도 동의하시네요.
다 좋은데 너무 밝은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헌데 뉴블랙 멤버들은 뭐가 재미있는지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왜 그러지?’
그들이 입을 열었다.
-사실 이게 엄청 낮춘 거거든요. 원래 밝기가 이거의 두 배 정도 되는데 많이 낮춘 거예요.
-이게 낮춘 거냐고 놀라시네여. 네. 진짜 낮춘 거예여.
-아! 왕봉이 보여드리면 되겠다.
왕봉이?
우주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면 밖으로 사라지더니 무언가를 들고 왔다.
‘……?’
그 순간.
모든 수플레들의 머릿속이 일시에 멈췄다.
‘저건 또 뭐야…?’
1미터짜리 횃불을 들고 오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아까 우주가 품에 뭘 안고 들고 왔는데, 그게 바로 저 거대 응원봉인 듯했다.
제작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들도 황당해서 마구 웃을 때.
우주가 기존 발광력이 어땠는지 보여 주겠다며 나섰다.
-최대 단계로 보여 드릴게요. 노약자 분들은 미리 눈 조심해 주세요.
뉴블랙의 리더가 응원봉을 양손으로 붙잡고는, 기도하듯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주님. 오늘도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
90년대생들이 보던 마법소녀 만화의 대사에 온오프 모두에서 웃음이 터져 나올 때.
화면에서도 빛이 터져 나왔다.
화아아아아악!
온 세상을 이롭게 할 기세로 뿜어져 나온 빛에 화면이 환해지더니 아예 백색으로 변했다.
-으악!
카메라를 든 매니저의 손이 덜덜 떨리며 흔들렸다.
-뭐뭐야..;;;
-이거 뭐야 흰색으로 칠한거 아니고 진짜에요?
-얘들아? 괜찮아?
-소리는 들리는데 어웄ㅣ 눈뽕
-ㅋㅋㅋㅋㅋ아닠ㅋㅋㅋㅋㅋㅇㄴㅋㄴㄹ이게 뭐얔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돈다돌아 내가 진짜
-도랏냐고ㅋㅋㅋㅋㅋㅋ
-발광력 미쳤따리
-이거 뭐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 해치웠나?
이윽고 딸깍, 하며 불이 꺼지더니 가운데 서 있는 우주가 눈을 살포시 뜨며 물었다.
-아직도 응원봉의 발광력이 높다고 생각하시는 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 *
[오늘 응원봉 리뷰영상에서 미모 레전드 찍은 아이돌.gif]
(우주가 대왕봉을 키면서 화면이 순식간에 하얘지는 움짤)
우리 애 미모 ㄹㅈㄷ 찍었다
왜냐면 빛밖에 안 보이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개터졋네
-ㅋㅋㅋㅋㅋㅋㅋㅋ도랏
-저거 무슨 상황이야??ㅋㅋㅋㅋㅋㅋ? 진짜 짐작도 안 감
-ㅋㅋㅋㅋ미쳐따 나 최근에 이렇게 웃은 적 없는데
-원본 보고 싶다 숯불아 나 링크좀
-ㅋㅋㅋㅋㅋㅋ저 밝아질때 으악하듯이 화면 흔들리는거 킬포ㅋㅋㅋㅋ
-저거 대사가 더 웃김 꼭 들어
-ㅋㅋㅋㅋㅋ저거 움짤로 보면 표정 진지해 보이는데 대사 개웃김
뉴블랙의 응원봉 리뷰가 아이돌 커뮤니티의 베스트 게시글에 우후죽순으로 올라왔다.
동시에 응원봉의 비주얼과 기능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대박.. 어플도 있어????
-해외 보니까 콘 객석 막 색깔바꾸던데 그거 가능?
-ㄴㄴ 기본기능만 있대 그거까진 아직 기술이 뭐 어떻다고
-미쳤다 레몬 왜 일해
-왜이래가 아니고 왜일해 ㅋㅋㅋㅋㅋㅋ
-시력 멀것같네ㅋㅋㅋㅋㅋ
-뉴블랙 담당자들은 월급 대박 많이 받아라 꼭
-디자인 개이쁘다ㅠㅠㅠㅠㅠ
-밤하늘 뭔데 타덕인데 심장저격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슈가 된 것은 바로 전설의 대왕봉이었다.
-만화같다 진짜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왜 진실인가요;
-합성같음ㅋㅋㅋㅋㅋ
-오늘 라방에서 애들이 앞으로 중요 행사 때마다 들고 나오겠다고 선언함ㅋㅋㅋㅋ
-실물 진짜 궁금하닼ㅋㅋㅋㅋㅋ
-근데 저거 있으면 ㄹㅇ 분위기 살듯
-얘네 미팬하면 멀리서 구경가야지ㅋㅋㅋㅋ
-님들아 울 애들이 응원봉 자가발전하는 짤 꼭 봐라. 내 월요병 치료약임
-근데 저거 비매품인데 판다고 해도 꽤 살 거 같은데???
-ㄴㄴ 성능이 개좋아서 제작비용이 비싸대; 어지간한 가격으론 마진이 안 나온다더라
아이돌 커뮤니티에서 뉴블랙의 응원봉이 화제가 되고 있는 동안.
대왕봉 짤과 요괴같은 등장씬은 여러 커뮤니티로 수출되고 있었다.
SNS의 ‘오늘의 웃음 페이지’ 등에도 올라오고.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도 뉴블랙을 알아보고는 이내 ‘또블랙’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한편.
“어……?”
앱 스토어 실시간 인기 순위에 등장한 ‘Fireworks’란 앱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원봉 어플…?’
어느 보이그룹과 관련된 어플리케이션이 실시간 인기 순위에 올라와 있었다.
수플레들이 미리 다운을 한 까닭이었다.
‘팬이 얼마나 많길래 응원봉 어플이 순위권에 올라와?’
수플레 2기 모집을 앞둔 시점.
지금까지 정확한 규모가 파악이 안 됐던 뉴블랙의 팬덤이 서서히 그 덩치를 드러내는 중이었다.
“예상 밖인데요. 이거.”
“……애들 콘서트 그냥 체조로 해야 됐던 거 아닐까요?”
레몬 엔터의 홍보팀은 통계 자료를 보며 당황했다.
테이블 위에 흐트러진 종이들에는 아직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데이터가 가득했다.
“그리고, 이것도 좀 이상한데요.”
“뭐?”
“해외 쪽 데이터 말이에요. 응원봉 수요가 해외에 이 정도나 있다고요? 이 정도면…….”
“우리가 추정한 예측치의 열 배는 되지.”
해외에서도 반응이 조금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실수요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것도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국가에서.
“보도자료 좀 뿌려 볼까요?”
“아냐. 괜히 언플한다고 욕만 먹을 거야. 해외 인기 한 줌인데, 그걸로 자랑하냐고.”
“일단 이 수치는 재검토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애들이 언제부터 반응이 왔는지부터 또 조사하고.”
“그래야지.”
어딘가 범상치 않은 느낌에 홍보팀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 속에서 홍서영 대리가 볼펜으로 종이를 톡톡 두드렸다.
‘뭔가 있어.’
예전에 뉴블랙의 첫 라이브 방송을 기획할 때.
미튜브에 외국어 자막을 추가할 때부터 느꼈던 무언가가 다시 한 번 찌르르 느껴졌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간식거리에 손을 뻗던 그녀가 멈칫했다.
그러곤 손에 든 간식을 바라보았다.
‘열심히 해야지.’
뉴블랙 멤버들이 선물로 준 과자를 입에 쏙 넣으며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 * *
국내 스케줄은 여전히 바빴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행사에 다녀왔다가 광고 촬영장에 갔다오기를 반복했다.
특히, 그간 요청만 들어왔던 광고 촬영이 밀려 있었기에 해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뉴블랙이 요새 광고계에서 인기가 굉장해요.”
TJ 뉴미디어.
작년 여름에 우리와 마법학교 CF를 진행했던 두 직원이 너스레를 떨었다.
“광고주 분들과 미팅하면 열에 여섯 번은 뉴블랙 이름이 나오더라고요. 요즘 SNS하는 2030에게 호감인 연예인 아니냐고. 어제도 관련 문의 전화를 받았고요.”
“와…. 진짜 격세지감이네요.”
우리도 모르는 새에 광고계에서 핫한 블루칩이 됐다니.
전기장판 광고가 들어와서 그걸 할지 말지 고심했던 때로부터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한편, 광고대행사 직원들의 태도도 달라져 있었다.
우리에게 불편한 점은 없냐며 조심스럽게 묻는데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예전에 대했던 친근함은 사라지고 이제는 인기 스타로 대우를 해 준다고 해야 하나.
우리는 그대로인데 관계자들이 달라져 있었다.
현장 스탭들도 왕자님처럼 대우를 해 줬다. 뭐가 필요하다 싶으면 알아서 먼저 가져다주고.
없던 연예인 병도 걸릴 판이었다.
리혁이가 소곤거렸다.
“우리가 그룹 활동이어서 참 다행이에요.”
“왜?”
“연예인 병 걸릴 일이 없잖아요. 서로를 너무 하찮게 취급해서.”
참으로 명언이었다.
부담스럽긴 했지만, 편안한 분위기에서 일한다는 점에 행복을 느끼기로 했다.
물론 모든 광고 촬영이 다 좋았던 건 아니었다.
“아이구, 우리 뉴블랙 분들. 다들 신수가 훤하시네. 하하!”
광고주로 나온 어느 기업 부장님이었나.
칭찬을 한참 하더니 슬쩍 물었다.
“끝나고 술… 아, 미성년자도 있구나. 다들 배도 출출할 것 같은데 저녁에 식사라도 함께 할까요? 감독님도 오실 거고, 저희 이사님도 오시기로 하셨는데.”
“어떡하죠. 정말 죄송합니다만… 다음 스케줄이 바로 있어서요.”
“에이, 바쁘지 않으면 식사들 하고 가시지.”
“죄송합니다. 하하.”
석환 형이 계속해서 거절하자 상대가 미간을 찌푸렸다.
“거 되게 뻣뻣하게 구네. 쯧.”
몸을 홱 돌려서 사라지는 이를 우리 실장님이 공손하게 배웅했다.
“무슨 상황이야?”
“광고주가 말하는 이사님이 저기 회장님 손녀야.”
“아…….”
“밥 한 끼 먹자고 하지만, 뭐… 좋을 건 없으니까.”
“형이 잘 거절했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그룹인 스칼렛에게는 이런 요청이 훨씬 더 많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내저었다.
늘상 느끼지만, 이 바닥에는 어른인데 어른 같지 않은 사람들이 참 많다.
좋은 사람은 가까이, 안 좋은 사람은 멀리.
평소 동생들과 다짐한 결심을 되새기며 스케줄을 하나하나 소화해 나갔다.
그중에는 첫 TV 광고 촬영도 있었다.
“우와……!”
지상파 3사에 송출되는 렌즈 광고를 찍기 위해 실제 대학교에 방문하기도 했다.
“흐어… 이게 다 사람들…….”
“계속 우리 찍는 거 같은데요?”
“이러다 못 나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한낮임에도 구경 나온 대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늘에 숨어 미니 선풍기로 바람을 쐬면서 눈만 휘둥그레 떴다.
스마트폰 카메라만 몇 개야.
대학 캠퍼스를 두리번거리는 동안, 감독님이 콘티를 들고 찾아왔다.
“컨셉은 전에 말씀 드렸던 대로 대학 새내기고요.”
“네!”
“다 같이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느낌으로 가 주시면 돼요. 무엇보다 편안한 느낌! 편안한 느낌이 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끼고 있어도 편안한 렌즈가 캐치 프레이즈니까요.”
“친한 감독들이 뉴블랙을 칭찬하던데, 다 이유가 있었네요.”
감독님이 웃으며 물었다.
“준비는 잘 됐어요? 다들 대학 생활이라든가, 고교 외에 단체 생활 경험은 없다고 들었는데.”
“군대 경험은 있어요.”
“네. 군대 경험이… 예? 군대요?”
‘네가?’ 라는 표정에 ‘그래요’ 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우리가 감독님께 안심하라는 듯 웃었다.
“걱정 마세요. 저희 준비 많이 했거든요.”
대학생이 나오는 영화, 드라마, 미국의 하이틴 무비들을 보면서 표정과 포즈를 열심히 준비한 터였다.
그리고 우리의 준비는 실전에서 톡톡히 제 진가를 발휘했다.
“오케이! 그거예요! 그거!”
캠퍼스룩을 입은 우리가 청량한 표정으로 걸어가자 감독님이 대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촬영본을 확인한 어느 스탭이 모두의 첫사랑 모음집 같다는 드립을 치면서 현장에 웃음이 감돌았다.
단체샷 이후에는 엔딩을 장식할 내 개인샷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빗금처럼 새어나오는 가운데 벤치에 앉은 내가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장면이었다.
기분 좋게도 세 번째 시도 만에 OK 사인을 얻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예정보다 빠르게 촬영을 끝낸 덕에 현장 스탭들의 표정이 밝았다.
하나하나 꾸벅꾸벅 인사를 다닌 후.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계속 구경하고 있었던 대학생들에게 다가가 팬서비스의 시간을 가졌다.
“역사 탐험대! 그거 존잼으로 보고 있어요? 2도 나와요?”
“재미있으셨어요? 다행이다.”
“사진!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돼요?”
“네. 그럼요. 무슨 포즈로 할까요? 브이? 아, 양손이요? 그럼 쁘이.”
‘명곡단의 노블랙!’ 하는 어르신들과 반대로 대학생들에겐 역사 탐험대의 임팩트가 큰 듯했다.
병맛스러운 컨셉이 20대에게 제대로 취향저격을 한 것 같다고 할까.
하지만 인지도 중의 갑은 예능이 아니라 드라마였다.
“허 의경!”
“와, 저 슬립 진짜 광팬이에요. 진짜. 매니아.”
“시즌 2 얘기 막 나오던데 진짜로 시즌 2하면 조연이나 주연으로 나와요?”
우리 막내 개인 팬미팅 같다.
여기저기서 허 의경, 허 의경 하는 소리에 막둥이의 입이 귀에 걸렸다.
사람들과 간식으로 가득한 천국에 도착한 강아지처럼 보인다고 할까.
슬립 10화에서 허 의경이 ‘허억!’ 하면서 갈대숲에서 일어난 쿠키 영상은 여전히 화제였다.
방영 후 지금까지도 ‘시즌 2’에 대한 떡밥이 따끈따끈할 만큼.
실제로는 배우들의 바쁜 스케줄과 후속작으로 쓸 만한 소재의 부족으로 성사될 가능성이 낮지만, 시청자들을 향한 제작진의 노림수가 제대로 먹힌 듯했다.
“……너네가 진짜 뜨긴 떴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우리를 구출해 준 민기 형이 땀을 훔치며 말했다.
누군가 ‘어? 그 명곡! 리사매니아!’ 하는 목소리에 민기 형의 발걸음이 다급해지면서 우리가 웃었다.
상대가 말했다.
“일단 얼른 이동하자. 다음 스케줄 가야지.”
“천천히 가면 안 될까요. 형.”
내가 대학교 구경도 하자며 애원했지만, 동생들이 어림도 없다는 듯 내 양팔을 붙잡아 끌어갔다.
“느아아아…….”
“내 소리 따라하지 마요.”
“나아아아…….”
동생들과 매니저들에게 붙들려 차량에 탑승했다.
희희낙락한 표정을 짓는 동생들과 달리 내 마음에는 비가 내렸다.
바로 내 개인 스케줄 때문이었다.
반짝-
핸드폰 화면에 톡방의 새로운 메시지 알림이 도착했다.
[친구로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입니다.]
도준기 [우주 씨]
도준기 [기다리고 있어요. 천천히 와요 ^^*]
오늘의 스케줄은 바로 ‘사나이가 간다’ 제작진과의 사전 미팅이었다.
도준기 [도준기 님이 기프티콘을 보냈습니다.]
도준기 [날씨도 더운데 멤버 분들과 커피 한 잔 해요]
난 커피 못 마시는데, 하고 생각할 때.
도준기 [우주 씨는 초코파인 거 rgrg]
도준기 [이건 아이스 초코 기프티콘 ㅎ.ㅎ]
“…….”
그래. 뭐, 주시는 거라도 맛있게 받아먹어야지.
“원석이 형.”
“응?”
“가는 김에 커피 좀 사 먹어도 돼요? 피디님에게 기프티콘도 받았는데, 제가 매니저 형들 것도 쏠게요.”
“좋지.”
운전대를 잡은 매니저가 미소를 지었다.
“너희가 들어가면 사람들 몰릴 수도 있으니까. 내가 받아올게.”
“네. 그럼 주문할게요.”
* * *
“사이렌 오더로 주문하신 ‘김덕순의 남자’ 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
“‘김덕순의 남자’ 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
카페 손님들이 수군거리며 ‘김덕순의 남자’를 찾기 시작하는 동안, 도원석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