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68)화 (26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68화

커피를 받아 오겠다던 매니저가 넋이 나간 얼굴로 돌아왔다.

“형. 왜 그러세요?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우주야.”

“네.”

“네 닉네임이 김덕순의 남자야……?”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깨달았다.

동생들과 민기 형이 박장대소를 하는 동안, 북극곰이 처량한 얼굴로 음료를 나눠 주었다.

“죄송해요. 형.”

내가 웃으며 사과했다.

“제가 작년에 만든 거라 깜빡하고 있었어요. 할머니랑 커플 닉네임으로 만들었거든요.”

“커플?”

“할머니는 ‘나는야 우주 할매’에요.”

원석이 형이 웃었다.

이윽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려주는 이야기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다 쳐다보고. 쭈뼛쭈뼛 가서 받는데 알바생이 ‘혹시 김덕순의 남자 님이신가요?’하며 소곤거렸다고.

반쯤 울면서 뛰쳐나왔다는 하소연에 한참이나 웃었다.

다 같이 음료를 들이키며 수다를 떨 때, 손목시계를 확인한 민기 형이 말했다.

“약속시간도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이제 가 볼까?”

“……네.”

다 마신 음료 얼음에서 나는 빨대 소리가 휑- 하는 바람 소리 같다.

슬픈 얼굴로 일어나는 나에게 동생들이 화사한 미소를 보냈다.

“형.”

지호가 해맑게 웃었다.

“사나이가 간다 피디님이랑 재미있고, 알콩달콩한 시간 보내고 와여~!”

“꿀잼.”

“아, 나도 둘이 만나는 거 구경하고 싶다.”

두 눈을 빛내는 비주에게 물었다.

“비주야. 같이 갈래?”

“아뇨. 그럼 저도 군대 가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놀려대는 녀석들을 일별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유일하게 가만히 있는 리혁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역시 너밖에 없다, 리혁아. 형 갈… 뭐 봐?”

“기상예보요. 언제 군대 가면 좋을지 보고 있었어요.”

“…….”

“나밖에 없다고요? 푸흡.”

동생들이 깔깔 웃으며 ‘리혁이밖에 없대여~’ 하며 노래를 불렀다.

“두고 봐. 내가 너희 중에 한 명은 꼭 데려간다. 정말.”

“엇…….”

“민기 형. 우리 가요.”

동생들이 다급하게 ‘혀엉!’ 하고 붙잡았지만 쿨하게 떠났다. 민기 형도 조수석에서 따라 내렸다.

비주가 다급하게 날 불렀다.

“형!”

“왜.”

“핸드폰 두고 갔어요!”

“…….”

옆에서 입술을 꾹 말아 쥐는 민기 형에게 눈을 흘기고는 쪼르르 뒤돌아 가서 핸드폰을 받아 왔다.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상암 TBC 방송국.

“어서 와요!”

목에 사원증을 건 훤칠한 남자, 도준기 피디가 우리를 맞이했다.

“우주 씨는 여전히 얼굴에서 빛이 나네.”

“하하.”

“우리 프로그램 찍을 생각하니까 막 설레고 그러죠? 하하!”

“…….”

표정관리 하자. 표정관리.

이건 사회생활이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작가님들이 우릴 반겼다.

“안녕!”

“허… 어머, 잘생겼다. 자료조사 한다고 계속 영상만 보고 있었는데, 확실히 카메라가 다 못 담는구나.”

“태현이가 뻥 친 줄 알았는데.”

뜬금없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태현 선배님이요?”

“사전미팅 때부터 계속 그랬거든. 자기가 아는 군필 형이 있는데 꼭 나와야 한다고. 비주얼로 시청자를 끌어모을 거라고 했어. 얼굴이 클럽 조명처럼 번쩍번쩍한다고.”

“맞아. 너 나와야 한다고 계속 추천하더라. 우리도 그때부터 주목했고.”

“……가, 감사한 일이네요.”

겉보기로는 무명 아이돌을 위해 영업을 뛴 업계 탑 친구라는 감동 실화 같지만 글쎄.

걔는 그냥 내가 구르는 걸 보고 싶어서 그랬을걸.

작가님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태현 선배님의 재출연은 어떠세요? 정말 양파 같은 분이어서, 까도 까도 매력이 나오거든요. 저번에 육군에 갔다고 들었는데. 그 분이 수영을 또 잘해요.”

“해군?”

“네. 해군이죠.”

“공군은?”

“아. 그 선배님 비행기도 잘 타시죠.”

작가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만난 지 5분도 안 지났지만 친해지는데 성공한 것 같다.

민기 형과 내가 자리에 앉아 물을 마시는 동안, 삼각대에 카메라가 세팅됐다.

“자료화면으로 내보낼 거 대비해서 촬영 좀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핸드폰을 거울 삼아 이를 드러냈다.

“허… 웃는 것도 엄청 예쁘다.”

“엇, 네….”

초코칩 꼈는지 확인한 거였는데.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고, 카메라 각도를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사전미팅이 시작됐다.

도 피디가 물었다.

“일단, 우리 프로그램 본 적 있어요?”

“네. 이번에 출연 확정되고 쭉 정주행 했어요.”

어떤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는지,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하고 가면 좋을지에 대해 간략히 요약해서 전달했다.

제작진이 잇몸이 만개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듣던 대로 준비성이 철저하네. 이야기가 훨씬 편해지겠어요.”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 프로는 고정 게스트와 1회성 게스트로 나뉘는 거 알죠?”

“네.”

‘사나이가 간다’는 6명의 고정 출연진에 1~3명의 게스트를 더해서 촬영하는 형식이었다.

“게스트는 일반적으로 육군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오는 것도 알겠네요.”

“네…….”

사나이가 간다에 출연하는 연예인 게스트는 대부분 전역한지 시간이 꽤 흘렀거나 아니면 미필인 사람들이었다.

이미 군생활에 적응한 고정 게스트와 달리 곧바로 투입하면 어버버, 하고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까닭에 게스트들은 짧게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오곤 했다.

전역한 지 아직 2년도 안 지났는데, 다시 큰 소리 들어가며 제식 훈련을 받아야 한다니.

암담한 미래를 그릴 때였다.

“우주 씨는 그 부분을 스킵하려고.”

“네?”

“아무래도 전역한 지 얼마 안 지나기도 했고. 곧 예비군 있다면서.”

“네, 맞아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그걸로 때우려고. 예비군 입소하고 퇴소하는 장면만 짧게 따 가고.”

“우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제작진이 웃음을 흘렸다.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사람한테 또 가라고 할 만큼 야박한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가.”

“와아…….”

“혹시 본인이 원한다면 보내 줄 수는 있는….”

“아뇨! 괜찮아요! 전부 다 기억나요! 제 몸의 일부는 군대예요!”

내가 오늘부터 군대 미튜브 영상 섭렵한다. 진짜.

상대의 눈이 가늘어지며 웃었다.

“그럼 우주 씨는 그렇게 하고. 다른 게스트는 어떻게 해야 되려나.”

예상했던 화제가 흘러나왔다.

“멤버들은 어때요? 추천할 만한 친구 있어요? 얘는 한 번 데려가 보고 싶다 하는 사람.”

“음…….”

앞에서는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결론을 내려 둔 터였다.

“딱히 추천할 만하거나 데려가고 싶은 멤버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요?”

“네. 피디님.”

동생들에게 매번 ‘너네 꼭 데려간다, 꼭 데려갈 거야’ 하고 경고했지만 정말 데려갈 생각은 없다.

가게 돼도 나만 가야지.

아무리 예능의 영역으로 나왔다고 한들 군대는 군대다.

사회에서 당연한 상식이라고 받아들인 일들이 거꾸로 벌어지고,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상황으로 빈번한 곳.

언젠가 우리 애들도 겪어야 할 일이겠지만 굳이 체험시켜 주고 싶지 않았다.

좋은 경험도 아닌걸.

하지만 국방부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의 제작진 앞에서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었다.

“일단 두 명은 미성년자고요.”

“아, 그렇지.”

“비주는 무릎이 안 좋아서요. 지난번에 의사 선생님이 연골이 조금씩 닳는 중이라고 연습을 줄이라고 했어요. 그러니 아무래도 행군 같은 걸 가면…….”

“부상 위험이 있으면 피하는 게 맞지.”

그 정도까지 심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이해해 주니 고마웠다.

“중현이는 다 완벽한데. 마이웨이 성향이 있어서 눈치 빠르게 챙겨 줄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군대는 그게 어렵지.”

“네. 사나이가 간다 시청자 분들은 빠릿빠릿한 걸 좋아하시잖아요.”

“하긴 마이웨이라면 우리도 겹치는 캐릭터가 있어서. 그러면 다른 사람을 구해 봐야 하나…….”

제작진이 고심할 때, 내가 지금까지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

“근데 이번에는 어디를 가는 건가요?”

“보통 게스트에 맞춰 특집을 짜거든. 우주 씨를 어떤 그림에 넣을지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군대가 아닌 곳으로 정했어요.”

“아, 그렇… 네?”

눈을 깜빡거렸다.

“군대 예능인데… 군대에 안 간다고요?”

“새로운 도전을 좀 해 보려고.”

도 피디님이 의자에 몸을 묻으며 말했다.

“예능도 수명이 있거든요. 오늘은 모두가 열광하는 프로그램도 내일은 시청자들이 질려서 떠날 수 있고. 사나이가 간다도 그런 진리는 피할 수가 없어요.”

그건 그랬다.

매 회차마다 화제를 몰고 다녔던 작년도와 다르게 사간의 시청률은 조금씩 하락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사나이가 간다를 경찰, 소방 같은 분야로 확대해 볼까 생각 중이에요. 프로그램 수명 연장도 할 겸. 그쪽도 국민을 지키는 사람들이니까.”

시청자들이 슬슬 병영 예능에 질리기 시작할 때쯤 살짝 간을 보려고 하는데 이번이 바로 그때라는 듯했다.

“허… 그, 그런 깊은 뜻이!”

설명을 듣는 내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느껴진다.

마음 속 가득한 환희가 넘치다 못해 내 몸 바깥으로 발산되는 것이.

“그럼 저 군대 안 가요?”

다급한 질문에 작가님들이 빵 터졌다.

난 진지하게 물은 건데.

“아니, 뭐…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하지만.”

“저 진짜 더 열심히 할게요!”

군대에 안 간다니!

바람꽃이 성공한 이후로 이렇게 또 기뻤던 날은 오랜만이다.

“그럼 어디로 가는 건가요? 경찰서? 소방서?”

“그건 비밀이에요.”

“비밀이요?”

“아무튼, 기초적인 군사 훈련이 좀 필요한 분야라고 알려둘게요.”

“네! 네!”

내가 환하게 웃는데 도 피디님이 슬쩍 고개를 돌리고 웃었다.

작가님들도.

왜들 그러지?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했지만 일단 좋은 일이니 넘어가기로 했다.

다시금 게스트를 두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 머리도 바쁘게 돌아갔다.

군대가 아니면 상황이 다르지.

어떻게 하면 우리 애들 바짓가랑이를 잡고 같이 물에 빠질 수 있을지, 1초도 지나지 않아 계획이 완성됐다.

“피디님.”

“응?”

“이건 어떤가요.”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설명하자, 제작진도 눈을 반짝이면서 좋은 생각이라고 박수를 쳤다.

“후후후.”

“후흐흐흐.”

서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기 형만 옆에서 ‘뭐 이런 사탄이…’ 하는 표정을 지을 뿐.

그렇게 ‘사나이가 간다’ 제작진과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사전미팅을 마쳤다.

“그래요. 그럼 그때 만나기로 해요.”

“네, 고생하셨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작별 인사를 나눴다.

반짝-

작가님들의 연락처를 저장하려고 하는데, 내 핸드폰 화면이 반짝였다.

이현조 [우주씨 ٩(ˊᗜˋ*)و]

이현조 [저 한조예요!]

이현조 [드디어 폰 받았어요!]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내 화면을 같이 바라보고 있던 피디님과 눈이 마주쳤다.

“…….”

이러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뺨과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   *   *

회사 작업실.

노트북 옆에 놓아둔 핸드폰이 쉴 새 없이 반짝였다.

한조 [아니]

한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나 [어쩔 수 없었어요]

나 [피디님이 보고 계시는데 어떻게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요]

나를 비난하는 장문의 톡을 잠시 외면했다.

나 [그래도 폰 받은거 축하해요]

나 [우와아! 신난다!]

한조 [ㅗ]

한조 [손이 미끄러졌어요]

나 [한번더 미끄러지면 우리 절교에요]

나 [가릿?]

한조 [가릿..]

한조 [저도 그럼 가야 되는 거네요..]

시무룩한 이모티콘을 보내는 한조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필이면 사간 피디님이 보고 있을 때 톡이 와서. 하필이면.

참으로 상황이 얄궂었다.

“허허허.”

내가 흐뭇하게 웃자 근처에서 스피커폰 목소리가 시끄러워졌다.

리더끼리 톡을 하는 동안 통화를 하던 동생들이었다.

-방금 그 웃음소리 누구예요? 망태 할아버지인 줄.

“우주 형이에여!”

-역시 단장님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연로한 웃음소리가 단장님 말고 누가 있어요!

“꺄르륵!”

-께륵! 꺅꺅!

눈을 흘겼지만 동생들은 신이 났다.

오늘은 스트릿 보이즈가 음방에서 1위를 거머쥔 역사적인 날이었다.

“1위 축하해요!”

내 인사말에 반대편에서 ‘예이!’ 하며 외쳤다.

-마! 호랑이 없는 굴에는 여우가 왕 아닙니까!

-뉴블랙 없으면 우리가 왕이지!

-넘버원 보이그룹 스트릿 보이즈입니다. 핫하!

-나무 분위기 파악 못해? 누가 거기까지 가래.

오늘도 어김없이 장작이 되어가는 나무 씨였다.

수다를 떠는 양쪽 동생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중간중간 끼어서 함께 사나이가 간다에 출연할 한조도 놀려 주고.

“우와! 단톡방!”

통화가 끝나고 민초들의 모임이라는 단톡방도 하나 생겼다.

내가 ‘방가방가’ 하는 뉴블랙 이모티콘으로 반겨 주니, 세상에 그런 것도 있냐며 난리가 났다.

주섬주섬 구매하더니 ‘저희의 돈이 뉴블랙의 통장에 흘러들어갈 거예요!’ 하는 말에 미소를 지었다.

수다 떠는 김에 군 후임에 대한 안부도 슬쩍 물었다.

나 [은성이는 잘 지내요?]

성적이 좋은 스트릿 보이즈와 달리 작은 기획사의 신인인 에이플비는 조용히 묻히는 중이었다.

혹시 기대와 달라서 녀석이 시무룩해하면 어쩌…….

렉스 [은성이 형이요? 저희 짱친먹었어요!]

LB [은성이 형 대박 웃겨요ㅋㅋㅋ]

LB [사진]

기원 [형은 그분이랑 안 친하잖아]

렉스 [기원아 살살 때려라 나무 뼈 녹는다]

그놈이 시무룩할 리가 없지.

사진 속에서도 역동적으로 웃고 난리 났네.

벌써부터 선배 그룹과 말까지 텄다는 이야기에 그럼 그렇지, 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카피바라 같은 녀석이다.

가요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반적인 분위기를 전해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잘 되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그 동안 노트북으로 진행 중이던 내 작업도 거의 끝이 났다.

“형, 준비는 다 돼 가요?”

“응.”

“A&R팀 분들도 조금 있으면 회의실로 온다고 하셨어요.”

비주의 말에 노트북에서 커서가 깜빡이고 있는 문서를 바라보았다.

[4집 앨범 기획안]

주변 사람들도 잘 돼 가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다시 한번 또 달려야 할 시기가 왔다.

*   *   *

“후우…….”

A&R팀 서필근 대리는 심호흡을 하고 회의실에 들어섰다.

상석에 앉아 있는 우주와 근처의 멤버들이 인사했다.

“대리님! 어서 오세요!”

“안녕.”

“들어오실 때, 프린트랑 사은, 아니 선물 가져가세요.”

PPT 유인물과 선물 꾸러미를 받아 가면서 웃음을 삼켰다. 일본에서 사 왔다는 선물인 듯했다.

오늘은 A&R팀과 멤버들이 모이는 앨범 제작 예비회의였다.

‘이제 갈릴 시간이구나’ 하는 슬픈 얼굴로 직원들이 들어온 후.

“그럼 시작해 볼까요?”

멤버들이 차례로 일어나 4집 앨범에 대한 방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컨셉, 안무, 디자인 등등.

주제는 힙합이었다.

볼펜을 굴리거나, 팔짱을 낀 A&R팀 직원들은 조용히 경청하면서 동시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애들이 시야가 넓어졌어.’

발전 속도가 경이롭다.

첫 회의 때만 해도 엄청 헤맸는데 이제는 그들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예리해졌다고 할까.

깔끔하게 대강의 예산까지 정리해 놓은 리혁이의 솜씨에 헛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원래도 잘하던 우주는 이제 정말 프로듀서처럼 보였다.

“저희가 원하는 방향은 8월 중순이나 말에 앨범을 발매하는 거예요.”

“콘서트에서 선공개하고, 그 다음에 음방 활동을 하겠다?”

“네.”

“너희 체력은…? 가능하겠어?”

“하면 돼요.”

그렇게 말하던 우주가 직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괜찮으시겠어요?”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우리 프로듀서님 말씀인데.”

“항상 감사해요.”

A&R팀장의 너스레에 우주가 웃었다. 직원들도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또 갈려야 할 시간이구나.’

‘작업 지옥이네.’

‘귀신 보면 붙잡고 요즘 저승에서 뭐가 트렌드냐고 물어볼 애야.’

그들이 구슬픈 웃음소리를 낼 때, 우주의 입에서 희소식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외부 인력을 좀 섭외할까 해요.”

“외부 인력?”

“네, 아무래도 그 동안 회사 내부 사람들끼리만 작업을 했잖아요. 분석해 본 결과 이대로 가면, 4집 색깔이 앞선 앨범들과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 그럼…….”

“이번 주제가 힙합인 만큼 외부 프로듀서 분들을 컨택해서…….”

화색이 돈 그들은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가 안 갈려?’

‘해방인가? 우리 해방이야?’

‘신이시여. 살았다.’

다가올 에밀레종을 예상했던 A&R팀 직원들에게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그래! 좋은 생각이야. 이번엔 새로운 느낌으로 가야지.”

“고럼. 고럼.”

“아유, 일이 바쁘겠네! 곡 공모에 앞서서 일단 함께 할 인력부터 섭외를 해야겠죠?”

“그렇지. 후보부터 추려 보자고.”

“벌써부터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도! 나도! 진짜 이 사람은 꼭 데려와서 갈… 같이 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작곡가 커뮤니티 통해서 얼른 소식을 퍼뜨려 봐요.”

기관총처럼 따다다다 말을 쏟아내는 직원들이었다.

열정적인 모습에 뉴블랙 멤버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우주가 ‘저…’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기, 너무 급하게 하실 필…….”

“오늘 중으로 띄워! 오늘 중으로!”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천천히 진행하라는 우주의 말에 A&R팀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천천히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우주야? 네 일이 내 일이야.”

“일을 미루면 안 되지!”

“암, 그렇고말고.”

“일정이 얼마나 빠듯한데 당장! 당장 해야죠!”

A&R팀 직원들이 바쁘게 노트북을 두드리는 동안, 상석에 앉은 우주가 조용히 바나나 우유를 홀짝였다.

고개를 살짝 숙인 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감돌았다.

*   *   *

“얘기 들었어? 이번에 뉴블랙이 새 앨범 같이 할 인력 뽑는다더라.”

“뭐? 진짜?”

“대박이다.”

“공모 뭐 나온 거 있어? 그게 진짜라면 나도 지원해야겠는데.”

“이거 통과되면, 정말 걔, 뉴블랙 우주랑 작업할 수 있는 건가? 예전부터 진짜 해 보고 싶었는데.”

“와… 잘하면 저작권 부자 되겠네.”

서울의 어느 술집.

작곡가들의 화제는 단연 뉴블랙의 새 앨범이었다.

들어가기만 해도 성공이 보장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에 떠들썩한 말이 오가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의 시선이 말없이 술을 홀짝이는 인물에게 향했다.

“야, 필근아. 너희 회사에서 띄운 이거 진짜야? 뉴블랙에 걔, 우주랑 같이 작업하는 거야?”

“네가 말해 준 게 다 진짜인 거지? 이번에 경력 다 상관없다고.”

“그럼.”

서필근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많이들 지원해 줘. 우리 회사는 경력 상관없이 공평하거든.”

팀장님도 갈려 나가. 하하.

하지만 그 뒷말을 듣지 못한 작곡가들은 들뜬 얼굴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꿈과 낙원을 그리는 업계 동료들의 모습에 서필근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와라. 노비들아.’

그러곤 ‘치얼스’ 하듯이 그들의 미래를 향해 잔을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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