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69)화 (26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69화

레몬 엔터 사옥.

낡은 캐리어를 끌고 오던 한 남자가 멈춰 서서 땀을 훔쳤다.

‘여기가 바로 레몬 엔터.’

검은 바탕에 레몬이 그려진 간판을 보는 눈동자에 긴장과 설렘이 가득했다.

‘정말, 내가 여기서 일을…….’

어젯밤 컵라면을 먹고 있을 때 통보가 왔다.

뉴블랙의 네 번째 앨범 작업에 참여해 달라고.

덤덤하게 ‘네’하며 대답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침대 위에서 방방 뛸 만큼 기뻤다.

‘드디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회야!’

8년 차 작곡가 나상윤의 눈앞에 지금껏 겪었던 고생이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굳게 결심했다.

‘최선을 다해야지.’

도착했다고 A&R팀에 전화를 걸자 서필근 대리가 내려왔다.

친절하게 웃으며 말을 거는 이에게 나상윤은 어색한 미소로 답했다.

그간의 경험 때문에 누가 친절하게 다가오면 일단 경계부터 하고 보는 습관이 남아 있는 탓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그가 캐리어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저…….”

“네?”

“혹시 그 이야기가 진짜인가요?”

“어떤 이야기요?”

그는 작곡가 커뮤니티에서 돌던 소문의 진위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우주 씨가 하루에 거의 한 곡씩 뽑아낸다고 들었거든요. 눈 감으면서 소리의 색을 막 조합한다고.”

“아니에요.”

“역시…….”

“컨디션 좋을 때는 두 곡씩도 뽑거든요.”

“……네?”

나상윤이 눈을 깜빡거리자, 상대가 하하 웃었다.

“이번에 일본 갔을 때도 영감이 떠올랐다면서 메일로 하루에 세 곡씩 보낸 애예요.”

“…….”

“저희끼리 농담으로 일본 호텔 와이파이 마비시키는 법 찾고 그랬죠. 하하.”

서 대리가 잡다한 에피소드를 말해 주었다.

그가 여태까지 들어왔던 소문과 일맥상통한 이야기도 있고, 전혀 몰랐던 이야기도 있었다.

듣다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우주의 음악 재능만큼은 진짜인 듯했다.

‘좋은 기회야. 꼭 비결을 배워 가야지.’

그런 생각을 눈치챘는지, 상대가 씩 웃었다.

“금전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 우주와 작업하면서 여러 가지를 눈여겨보시려고 지원하셨을 거예요. 맞죠?”

“네, 하하….”

“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저도 우주가 작업하는 걸 보고 깨달은 게 참 많거든요. 예를 들어서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거나…….”

“예?”

“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필근 대리가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에 어딘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 때.

민들레 그림과 함께 ‘뉴블랙 영토’라는 아담한 글씨가 써진 팻말이 그들을 맞이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이윽고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선 나상윤은 깜짝 놀랐다.

그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태까지 꽤 많은 연예인을 봐 왔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얼굴에서 무슨 빛이…….

“중현아. 왕봉이 좀 꺼라.”

“네. 형.”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사라졌다.

돌아보니 소파에 훤칠한 인상의 미남이 앉아 있었다.

품에 1미터짜리 요술공주 봉을 들고.

푸근한 곰 같은 미소에 그가 눈을 깜빡거렸다.

“…….”

서필근 대리가 그를 소개했다.

“여기는 작업 도와주실 나상윤 작곡가님. 인사드려.”

자리에서 일어난 우주가 다가와 공손히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작곡가님, 우주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중현이에요. 이하동…? 이하동…….”

이하동문이 기억이 안 나는지 한참 헤매는 이를 보며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서 대리가 나간 후, 우주가 자리를 권했다.

“일단 저희 앨범 작업에 참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 아뇨! 제가 더 감사하죠.”

“작곡가님을 뵙는 건 처음이지만 제가 전부터 몰래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저를요?”

“네, 걸스온탑 앨범 수록곡에 참여하신 적 있으시죠?”

“어? 그걸 어떻게…….”

“노래 분석이 취미여서 새로 나오는 노래는 다 듣거든요. 특히 아이돌 노래는 전부 다.”

우주가 밝게 웃었다.

“걸스온탑이 힙합 컨셉으로 낸 앨범에서 유독 수록곡 하나가 귀에 맴돌았어요. ‘All or Nothing’이라는 곡.”

“맞아요. 제가 편곡에 참여했어요.”

“편곡이 정말 좋더라고요. 진짜 멋들어지게 해 주셔서 그때부터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참여하신 작업물들이 정말 다 제 취향이었어요.”

우주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지원을 안 하셨으면 오히려 제가 찾아가서 함께 하고 싶다고 여쭤보려고 했을 만큼요.”

소파에 앉은 중현이 흠칫했지만, 나상윤은 행복했다.

‘내가 노래로 인정도 다 받아 보네.’

상대측에서 저런 칭찬을 할 때면 대개 돈 대신 때우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진심 어린 칭찬에 마음 한구석이 따스해졌다.

“이번에 같이 작업을 하게 되어서 너무 좋아요. 두 달 동안 잘 부탁드릴게요.”

“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요.”

이윽고 우주가 작업실 소개를 해 주겠다며 기기들을 보여 주었다.

“우와아……!”

쭈뼛쭈뼛한 태도는 삽시간에 사라지고 그의 얼굴에 동심이 깃들었다.

신세계였다.

비싸고 성능 좋기로 유명한 기기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 이거….”

“저희 대표님이 곡 작업 열심히 하라고 사 주신 거예요.”

“대, 대표님이 좋으신 분이네요.”

넋을 잃고 바라보는 그에게 우주가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건반 눌러 보실래요?”

“네. 네!”

어릴 때 놀러 가던 친척집이 떠올랐다.

사촌형이 너도 이 오락기로 게임 해 볼래, 물을 때 느꼈던 바로 그 기쁨.

기기를 하나씩 눌러 볼 때마다 나상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긴 천국이야.’

나상윤이 고개를 돌리자 천사 같은 미소가 보였다.

“그럼 본격적으로 일 얘기를 해 볼까요?”

“네, 네!”

“4집 앨범에 수록곡을 좀 많이 실으려고 하거든요. 여기 있는 건 중현이와 제가 최근에 작업한 결과물인데… 한 번 들어 보실래요?”

이윽고 음질 좋은 고급 스피커에서 인스트루멘탈이 흘러나왔다.

드럼 비트가 인상적인 힙합 분위기의 곡들이었다.

“어떠세요? 가감 없이 말씀해 주세요.”

“음, 도입부가 조금 세게 치고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있네요. 가사 들어갈 공간도 좀 빽빽하고…….”

“그럼 이렇게 해 볼까요?”

그가 피드백을 할 때마다 우주가 마우스를 딸깍였다.

어찌나 피드백을 잘 수용하는지, 처음에는 소심하게 말하던 그는 이내 수다쟁이처럼 변했다.

무엇을 말하든 상대가 맞장구를 치면서 바로 알아들었다.

때로는 그보다 더 좋은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음악적인 이야기가 잘 통했다.

‘즐거워.’

이렇게 일을 하면서 신난 적이 최근에 언제 있었을까.

행복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3시간쯤 지났을 때.

‘살짝 좀 피곤하네.’

눈이 뻑뻑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오늘 치 할 일은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할 때였다.

“몸은 좀 풀리셨어요?”

“……네?”

잘못 들은 건가?

“슬슬 몸도 좀 풀리셨을 텐데, 이제 진지하게 작업해 볼까요?”

“…바, 방금까지 하지 않았나요?”

“네, 가볍게 몸 푸는 정도로 했잖아요. 이제 제대로 일해 봐야죠. 파이팅 할까요?”

우주가 내미는 손에 얼떨결에 하이파이브를 하긴 했지만 머리가 멍했다.

그제야 슬슬 미스터리가 하나씩 풀리는 듯했다.

문자로 여벌의 옷을 챙겨 오면 좋을 거라고 해준 A&R팀의 메시지, 그를 보며 웃던 직원의 모습.

어딘가 초췌한 중현의 얼굴까지.

“…….”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같은 시각.

A&R팀 사무실에서는 근심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새로 오신 작곡가분 되게 허약해 보이던데, 괜찮을까요?”

“그러게. 몸이 버틸 수 있으시려나.”

“젊은 사람이 어쩌다 사지로 들어와서…….”

“너무 걱정된다. 어떡하죠.”

“그러니까, 어휴, 큰일이네.”

말로는 ‘어떡해…’하며 걱정하고 있지만, 찻잔을 들고 있는 직원들의 뺨은 연신 씰룩이고 있었다.

“푸흐흐…….”

누군가의 웃음을 시작으로 꺄르륵 하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하하!”

“핫핫! 하하핫!”

“으하하하하!”

오랜만에 한낮의 티타임을 가지게 된 사무실은 드워프 마을처럼 유쾌하고 즐거웠다.

*   *   *

모두가 즐겁게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마침내 우리가 기다리던 날이 찾아왔다.

“뉴블랙의 데뷔 1주년을 축하합니다!”

“우와아아아!”

우리끼리 물개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데뷔 1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팬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진행 중이었다.

셀프 레터링 케이크를 만드는 곳에서 라이브 방송으로 수플레들과 수다를 떨었다.

“우와, 여러분! 보세여. 우리 비주 형 손이 정말 금손이에여. 형, 금손이 뭔지 알아여?”

“응. 작년 대전 팬싸에서 어느 분이 말해 주셨어.”

“그걸 기억해여?”

“팬분들이 말을 해 주면 여기 이렇게 쏙 들어와서 안 나가거든.”

비주가 자기 귀를 가리키며 웃었다.

‘저 잘했죠?’ 하는 비주에게 우리가 우와아 하며 박수를 쳐 주자 상대가 행복하게 웃었다.

댓글창에서는 수플레들이 ‘비주가 신조어를 알아!’ 하며 감동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진짜 예쁘다. 어떻게 저걸 그리지?”

“저 잘하죠, 형?”

“응. 진짜 대박이다.”

파티코에 출연해서 제빵했을 때였나.

그때도 데코레이션을 하는 솜씨 보고 느끼긴 했지만 진짜 대박이었다.

우리 애가 케이크를 장식할 때마다 화선지에 그려지는 예쁜 꽃을 보는 듯했다.

“어쩜 비주는 다 잘할까.”

“여러분. 방금 보셨어요? 비주 형만 편애하는 거.”

“어쩜 우리 리혁이는 이렇게 귀여울까.”

“…….”

지호가 히죽 웃으며 리혁이의 등을 두드렸다.

“오구구. 울 리혁이, 애기다. 애기. 질투했어여?”

“…….”

“어디 가여? 같이 놀아야지!”

벌게져서 카메라 앵글 밖으로 도망치는 리혁이를 지호와 중현이가 붙잡아 끌고 오자 웃음이 터졌다.

옆에서 코치를 해 주던 선생님이 비주의 장식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는 내게 물었다.

“우주 씨도 한 번 해 볼래요? 미술 같은 거 되게 잘하실 것 같은데.”

“네. 그럼 마다하지 않고…….”

비주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안 돼요! 하면서 결국 못 했다.

“내가 뭐 어때서…….”

“그럼, 여기 그릇에다가 지금 비주 형이 그리는 꽃 하나 그려 봐요.”

“좋아.”

호기롭게 초콜릿으로 꽃을 그렸지만.

“엇, 이, 이게 아닌데…….”

“거 봐요.”

“그거 꽃 맞아요. 형?”

중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비주에게 조언을 하던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서 웃었다.

“어머, 잘 그렸다. 파리에요?”

“…….”

“아니구나. 그럼… 곤충 종류? 잠자리?”

“…….”

동생들이 깔깔 웃었다.

비주가 케이크를 장식하고, 우리가 마카롱을 여기저기 꽂아 넣으면서 중간중간 팬들과 이벤트를 진행했다.

“드디어 저희 공식 응원봉의 이름이 정해졌다는 소식인데요. 우리 왕지호 리포터.”

“네, 정해졌습니당.”

“우리 달봉이~”

비주가 애칭을 부르며 환히 웃을 때였다.

“총 득표수에서 1위를 차지한 ‘김달봉’입니다!”

“우와… 아? 어?”

환호하던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김달봉? 그게 참말이냐?”

“아, 안 돼…!”

“지호야. 달봉이는 어디 갔어, 달봉이?”

“2위가 달봉이에여. 형.”

“아니, 진짜로 김달봉이 1위에요? 투표 집계 잘못된 거 아니에요?”

우리의 물음에 카메라 옆에 서 있던 매니저들이 고개를 저었다.

응원봉을 소개할 때, 농담으로 성씨도 붙여 보자 했는데 그게 공식 이름이 되어 버릴 줄은 몰랐다.

“아니, 귀엽긴 한데…….”

“일단 김달봉은 좀 헷갈리지 않아요? 봉이 김선달 같고.”

“흠, 나도 헷갈리네.”

귀엽기는 한데 부를 때마다 혼선이 오는 이름이었다.

수플레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댓글이 화면 위에서 주르륵 떠올랐다.

-헷갈린다.. 헷갈려..

-김봉달 같기도 하고 김선달 같기도 하고

-봉다다다봉달

-달봉이로 해야 됏엇나;

-ㅋㅋㅋㅋㅋ왤케 헷갈리지 김방돌 금방돌

-봉봉달

-지금 슈카르트 붕괴옴

-ㅋㅋㅋㅋㅋ게슈탈트 아닌가요

-모든 게 무너진다 봉보로봉

수플레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달봉이 얘기를 할 때마다 자꾸 멈칫멈칫했다.

“우리 김방, 김돌, 김… 김달봉!”

“진짜 이게 헷갈려요? 봉선……. 어, 헷갈리네.”

“그러면 일단 성씨 빼고 달봉이라고 부를까요?”

내 제안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달봉이 곧 출시하니까, 기대해 주세요~!”

중현이가 ‘와아’ 하면서 반짝반짝이는 왕봉이를 흔들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말 나온 김에 왕봉이도 이름 지어 보자고 했다가 곧 포기했다.

-[유니크] 규호의 마음 (+7)

-횃불

-귓방망이..?

-자이언트 베이비

-대봉

-봉 세개 사이즈니까 삼봉 해서 정도전

마지막 드립에 리혁이가 눈물까지 쏟을 만큼 웃었다.

좋아하면 서로 닮는다더니, 수플레들의 뛰어난 작명 센스에 우리의 가슴이 훈훈해졌다.

옆에 서 있던 케이크 선생님만 동공이 흔들릴 뿐.

“완성됐어요!”

초를 꽂고 불을 붙인 후 우리는 케이크 앞에 모였다.

멘트는 대표로 내가 하기로 했다.

“네, 뉴블랙이 드디어 한 살이 되었는데요.”

손뼉을 짝- 치면서 웃었다.

“지금 이 시간을 함께 해 주시는 여러분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아마 저희와 함께한 시간은 저마다 다르시겠지만, 그 시간 하나하나 저희가 소중히 간직할게요.”

“형.”

“여러분의 시간을 하나하나 합쳐 보…… 응?”

비주가 다급하게 말했다.

“초… 초가 타고 있어요. 형.”

“허억!”

“에어컨 좀 꺼 주세여! 초가 미친 듯이 타고 있어여!”

폭탄 심지처럼 초가 빠르게 줄어드는 중이었다. 우린 환장하고 댓글창에선 웃고 난리가 났다.

“몇 초 남았지?”

“10초 정도요!”

내가 다급하게 양팔로 하트를 그렸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여기 초 100개 꽂을 때까지 저희랑 함께해요!”

“100세 시대 화이팅!”

“우리 무병장수해여!”

케이크 선생님이 사레가 들렸다가 울기 시작했다.

‘새 초를 꽂으면 되는 거 아냐?’ 하는 중얼거림을 무시하며 우리는 급하게 초를 후후 불었다.

“이야, 잘 껐다.”

“모두 고생하셨어요! 앞으로도 100주년 갑시다!”

“…사, 사랑해요. 수플레.”

“방금 리혁이 형이다! 리혁이 형이래여! 깔깔!”

“야!”

“어두운 데서 목소리 낮춰서 말하면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여?”

어둠 속에서 우당탕탕 하는 가운데 내가 땀을 훔쳤다.

“어우, 정신없어. 중현아, 불 좀 켜 봐라.”

“네.”

그리고 난 그 말을 한 걸 후회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온 세상이 불타올랐으니까.

화아아아악!

“아아아악!”

“내 눈!”

“야! 누가 왕봉이 켜래!”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만한 1주년이었다.

*   *   *

데뷔 1주년은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저녁에 수플레들이 걸어 준 1주년 기념 광고에 가서 인증샷도 찍고.

공식 팬카페에 차례대로 글을 쓰면서 1주년을 끝냈다.

중간에 내 팬카페 방문수가 다른 사이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다들 내가 1년간 매일 찾았다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게 많이 신기한 건가……?

한편, 우리 데뷔 1주년 날에 드디어 K팝 콘서트 본방도 방영됐다.

방송 이후 해외 팬들에게 반응이 오는 것 같다고 회사에서 그러던데.

홍보팀에서 미튜브 클립에 올라온 영어 댓글을 보여 주는데 하나같이 다 기분 좋은 것들이었다.

퍼포먼스를 너무 잘해서 이 그룹엔 편애할 최애(biased)가 없다는 댓글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할까.

동시에 일본에서의 짧았던 활동도 성과가 보이고 있었다.

“이것도 볼래, 우주야? 반응이 좋아.”

“뭔데요?”

[몸으로 말해요 레전드.swf]라는 제목의 미튜브 영상이었다.

내가 50만 엔을 얻기 위해 별 동작을 다 했던 게, 일본 온라인 TV에 방영된 후 우리나라로 수입된 모양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의 인기영상 보려고 왔는데 또블랙; ㅋㅋㅋㅋㅋㅋ

-또블랙이구나

-또블랙이 뭐예요? 혹시 또라..?

└ㄴㄴ 그거 아니에요ㅋㅋㅋㅋㅋㅋ

└뭐 웃긴거 잇으면 얘네라고 또블랙이에요

-안에서도 웃기는 바가지 나가서도 웃기다더니.. 장하다 뉴블랙

-몸으로 말해요 여태까지 온갖 영상을 다 봣지만 이거 이길 건 진짜 아무것도 없다

-저걸 어떻게 했지???

-저 정도면 50만엔에 세금도 안 떼고 줘야할 거 같은데

-피라루쿠? 저거랑 마지막 군대 빼곤 나도 다 맞춤ㅋㅋㅋㅋㅋㅋ

홍 대리님이 흐뭇한 미소로 말했다.

“이게 오늘의 인기 동영상이래.”

“…….”

“해외 트윗에도 올라와서 구경들 많이 나왔더라. 밑에 영어 댓글들 보이지? LOL. 이게 Laugh Out-Loud라는 뜻이래. 개웃김.”

“근데 저 이미지 이래도 괜찮을까요. 나중에 외국 갔는데 코리아에서 온 코미디언, 이러면 어떡하죠…….”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내 말에 상대가 웃었다.

한편 몸으로 말해요 영상이 국내에 퍼지면서, 몇몇 예능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그중에 기인열전 같은 곳도 있다고 해서 잠시 벙쪘다.

“몸으로 말해요, 국내 대회 우승팀과 대결이래.”

“고민해 볼게요.”

“그치? 우리 생각에도 네가 이길 것 같아서. 그럼 달인이 민망하잖아.”

이미지 때문에 고민한 거였는데, 오히려 다른 부분을 생각하고 있는 홍보팀 직원들이었다.

그렇게 앨범 준비, 행사, 방송으로 바쁘게 뛰는 가운데 드디어 나에게도 쉴 날이 왔다.

“우주 형의 예비군을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예비군을 축하합니다~!”

“예비군 삼행시 가 볼까여, 중현이 형? 이번엔 진지하게.”

“오키.”

중현이가 고심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나 지금이나.”

“비!”

“비가 오는 날엔.”

“군.”

“군만두에 튀김우동.”

“대박, 조선시대 태어났음 형 장원급제였을 거예여.”

장원급제는 무슨.

내가 왕이면 유배 보낼 거다.

부슬부슬 내리는 여름비가 차창에 맺혔다. 차량은 회사 근처에 있는 예비군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사나이가 간다’ 제작진이 우리를 반겼다.

조연출과 카메라를 든 VJ, 작가가 따라붙어서 내 입소 장면을 찍는 중이었다.

이런저런 질문에 가볍게 답하며 군복 매무새를 점검하며 가고 있었다.

“형, 잘 다녀와여.”

“우리 형, 진짜 고생하면 안 되는데…….”

“혀어엉, 가지 마여! 이제 가면… 며칠 뒤에 오져?”

“3일.”

“3일인데에에-!”

“…….”

차 안에서 놀릴 때는 언제고, 카메라 돈다고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이미지 관리를 하는 동생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눈빛으로는 열심히 놀리고 있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동생들이 예비군 훈련장 정문 근처로 다가올 때마다 속에서 기쁨이 용솟음쳤다.

슬슬 시간이 됐을 텐데.

건빵 주머니에 넣어 놨던 베레모를 꺼내 빗방울을 톡톡 털어 내는 동안, 마침내 기다리던 이가 등장했다.

“어……?”

우리 애들이 우산을 든 채 벙찐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예비군 훈련장 근처 골목에서 훤칠한 미남이 우산을 들고 등장하고 있었다.

로맨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등장 신처럼 또박또박 걸어오는데 동생들이 그 정체를 깨닫고 당황했다.

“한조 형……?”

“저분이 왜 여기서…….”

“어어, 옆에는 피디님 아니에요?”

동생들의 시선이 반갑게 손을 흔드는 한조의 옆에 닿았다.

사나이가 간다 피디님이 간신배처럼 웃으며 커다란 룰렛 판을 들고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동생들의 동공에서 지진이 나기 시작했고 나는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

국방부 마스코트가 따봉을 들고 있는 룰렛 판.

빼곡하게 나눠진 눈금 하나하나마다 우리 애들의 이름이 귀엽게 적혀 있었다.

피디님과 내가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이었다.

“얘들아.”

멍하니 돌아보는 동생들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형이랑 같이 군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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