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70화
32장. 사나이가 간다
부슬비가 내리는 훈련장 입구.
휘적휘적 걸어가던 예비군들이 카메라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뭐 찍나?’
연예인들이 서 있었다.
대부분은 귀찮다는 듯 걸음을 옮겼지만, 몇몇은 그 얼굴을 알아보고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뉴블랙이다.’
친구나 지인들에게 ‘야, 지금 동원 왔는데 뉴블랙 봤다’ 하는 톡과 함께 사진을 보냈다.
가서 말이라도 걸어 보라는 답장에 한 번 다가가 볼까 하던 이들이 멈칫했다.
‘분위기가 영 아니네.’
뉴블랙 멤버들이 나라 잃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머리 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가상의 먹구름이 보이는 것만 같다.
오직 우주만이 군복을 입은 채 환하게 웃고 있을 뿐.
‘군복? 쟤도 예비군 온 건가?’
신토끼에서 군 후임을 신인 아이돌로 키워냈다는 역대급 스토리를 봤던 기억이 났다.
그런 까닭에 우주가 군필이라는 건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저 상황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동원 훈련 들어가는 애가 제일 기분이 좋지?’
누군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동안 구경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색색의 우산이 모여 버섯 군락을 이룰 때쯤, 모르는 사람들끼리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저거 뭐 하는 거래요?”
“글쎄요. 방송 촬영하나 봐요. TBC 같은데…….”
“어? 저 사람 그 사람인데, 사나이가 간다 피디.”
“사간?”
“어. 진짜다. 사나이가 간다 그, 또라이 피디잖아요.”
그러고 보니 눈에 익은 얼굴이 하나 보였다.
사나이가 간다 출연진이 매번 ‘도 피디!’ 하며 역정을 내던 인물.
누군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신토끼에서 쟤 우주랑 뭐 딴 애랑 군대 간다 그러지 않았어요?”
“아. 맞아! 그러네.”
“오, 저기 봐요. 룰렛판도 있어.”
환희에 젖은 우주. 잔뜩 먹구름이 낀 표정의 멤버들. 거기에 이름이 써진 룰렛판까지 합쳐지니 자연스럽게 추리가 완성됐다.
예비군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예비군 와서 뭔 남자 구경을 하겠다고…’ 하며 귀찮다는 듯 가려던 이들마저도 멈췄다.
‘이건 봐야지.’
예비군 동원 훈련 입소 날 아침.
꿀잼 컨텐츠가 등장했다.
* * *
‘또 당했다…….’
뉴블랙의 멤버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어디 가니? 얘들아.”
“비 맞고 있어요? 우산 하나 더 씌워 줄게.”
우주가 길을 막고, 한조가 그들의 머리 위로 큰 우산을 들어 주었다.
겉만 보면 듬직한 맏형들이지만, 왠지 모르게 물귀신처럼 보이는 표정.
그들이 뒷걸음질을 치는 동안 사나이가 간다 PD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
“좋은 아침이죠?”
지금 내리는 비는 어쩌면 그들의 마음에서 내리는 비가 아닐까.
“사나이가 간다 특집에 출연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희가요?”
“네.”
도준기 피디가 흐뭇하게 웃었다.
“이번에 우주 씨와 한조 씨가 출연하게 된 건 아시죠? 여기에 뉴블랙 멤버 중 한 분을 더 모시게 됐습니다!”
“와아아아…!”
두 리더가 우산을 들지 않은 손을 맞대어 합동 박수를 쳤다.
“보시다시피 랜덤으로 추첨을 하게 될 거고요. 여기서 당첨되신 분은 내일 한조 씨와 함께 기초 군사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 후에 본방송 녹화에 함께 참여하게 될 거고요.”
“와아아아아!”
우주와 한조가 환호하듯 우산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얼굴에 빗방울을 촤아악 맞은 리혁이 눈을 지그시 감고 심호흡을 할 때.
지호가 손을 들었다.
“추, 추첨은 어떻게 하는 건가여? 룰렛? 아니면 제비뽑기? 뭔진 모르겠지만 저 형들 잘 팔 자신 있어여.”
“지호야. 형들을 판다니….”
상처 받은 표정을 짓던 비주가 피디에게 말했다.
“피디님, 지호 부모님이 예전에 지호 청학동에 보내려고 했대요. 군대도 어쩌면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
“김비주 얘 요리 잘해요. 취사병으로 데려가는 건 어떠신가요.”
“몸 쓰는 건 중현이 형이죠.”
“리혁이 형이 전쟁사 그런 거 되게 잘 알아여. 참군인의 자질이 아닐까여?”
“……무, 무슨 소리. 난 역사 안 좋아해.”
우애라고는 1도 없이 서로를 열심히 팔아넘기는 모습에 도 피디가 미소를 지었다.
“멋진 우애네요. 하지만 추첨은 순전히 운으로만 진행됩니다. 바로 이 룰렛판을 통해서요.”
“그럼 룰렛인가요?”
“원래는 그럴 예정이었는데 설치가 복잡하더라고요. 비가 오는데 거치대도 세워야 하고.”
멤버들이 집중한 얼굴로 들을 때, 조연출이 우주에게 뭔가를 건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우주가 그들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여러분~”
네 명의 눈이 가늘어졌다.
‘꿀밤 한 대만 때려주고 싶다.’
‘완전 얄미워.’
‘우주 형을 못 믿으면 이제 누굴 믿어야 되지…….’
그러거나 말거나 우주의 얼굴에서는 아예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러분들의 운명은 제게 달려 있습니다.”
“…….”
“바로 제 다트에 말이죠.”
우주가 짠- 하며 손에 쥔 다트 세 개를 보여주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리혁이 물었다.
“잠깐만요. 이 중요한 걸 다트 던지기에 맡긴다고요?”
“혹시 불만이 있으신가요?”
“…어, 없어요! 아, 그런 탁월한 선택이……!”
다급하게 수습하는 리혁의 모습에 우주가 싱긋 웃었다.
“룰은 간단해요. 다트 세 개를 저 원판에 던질 텐데요. 그중 두 개 이상이 적중한 멤버를 보내겠습니다.”
그러더니 순진무구한 얼굴로 물었다.
“이거 봐요. 완전 랜덤이죠?”
“…….”
“정말 운에 달린 거거든요~”
상대가 얄밉게 다트 세 개를 요리조리 흔드는 동안 주변에서 구경하던 예비군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랜덤이네.”
“저기서 두 방 맞은 애는 바로 아웃인가 보네요.”
“다 애기들이네. 애기들. 어휴, 가서 고생 좀 하겠는데.”
“재수 좋기를 바라야겠네. 저거는. 진짜 걸리면…….”
말로는 걱정한다는데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뉴블랙 멤버들이 진정으로 얄밉고 속 터지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
‘이건 운이 아니라고!’
이게 운빨이라는 건 선우주를 모르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어디 ‘오늘의 달인’ 같은 코너에 나가도 어울릴 사람이 바로 그들의 리더였다.
몸으로 하는 것 중에 못하는 게 없다.
양궁이면 양궁, 농구면 농구. 주짓수나 무술 같은 기술까지. 심지어 주사위까지 조종한다.
불현듯 얼마 전 우주가 ‘다트 대회 월드 챔피언십’라는 미튜브 영상을 보던 게 기억났다.
“자, 그럼 추첨을 진행해 볼까요?”
우주가 오른쪽 어깨를 빙빙 돌리며 몸을 풀고, 제작진이 룰렛판을 든 채 거리를 벌렸다.
다트에 입김을 호호 불어넣던 그가 멤버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들 저한테 할 말 없나요?”
지호가 다급하게 나섰다.
“늘 존경하던 우주 형.”
“얼마나가 빠졌네요. 지호 씨. 저를 얼마나 존경하나요?”
“하, 하늘만큼 땅만큼…….”
“땡, 틀렸어요. 제가 우주인데 하늘과 땅 같은 수식어는 부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지호가 파들파들 떠는 동안, 리혁이 잔뜩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제가 평소에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만, 늘…….”
“그럼 평소에 표현을 잘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
“하하하!”
지호가 리혁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같은 우산 아래 모인 막내 라인이 동시에 부들부들 떨었다.
“비주 씨?”
“우, 우주 형! 저를 안 데려가면 매일 고기 반찬을 더 줄게요!”
“헛. 이건 좀 센데…….”
동생들을 짓궂게 놀리며 방송 분량을 뽑아내던 우주의 얼굴에 진심 어린 고민이 스쳐 갔다.
비주의 입가에 행복한 표정이 떠올랐다.
흠흠, 헛기침을 하던 우주의 눈이 중현에게 향했다.
“중현이는?”
찡긋.
“……지금 저한테 윙크한 거예요?”
“이상해요?”
“마그네슘이 부족해 보여요.”
찡긋찡긋.
왼쪽 오른쪽 번갈아 윙크하는 곰의 모습에 작가가 그만 대본으로 입을 가린 채 웃기 시작했다.
중현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제 마음 알죠. 형?”
“알고 싶지 않지만, 일단 들어볼게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지금 아무 생각이 없죠, 그대는?”
“네.”
누군가의 느긋한 페이스에 말려든 우주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마지막 한 마디는 잘 들었고요. 이제 던지겠습니다!”
자세를 잡은 우주의 얼굴에 남아있던 장난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흡사 다트 대회에 나온 선수 같은 표정.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오우 다트 좀 던져 봤나’ 할 법한 자세였다.
휘이익.
첫 번째 다트가 약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탁!
“엇!”
다트가 ‘왕지호’에 적중하면서 막내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애애애! 엄마, 누나!”
“아직 한 발이야. 지호야. 걱정하지 말고. 두 발 되면 그때 울자.”
비주가 웃으며 다독이는 동안, 우주가 두 번째 다트를 던졌다.
이번에는 리혁.
“……하.”
다행히 세 번째 다트가 중현에 적중하면서 군입대는 무산이 됐다.
구경꾼들이 흥미진진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 동안 우주가 피디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이거 은근히 어렵네요. 피디님.”
“거리를 좁힐까요?”
“아뇨. 이대로 해 볼게요.”
넉살을 떨던 우주가 그들에게 방긋 웃었다.
한조는 맞추기가 어려운가 보다, 하고 있었지만 멤버들은 우주가 지금 즐기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방송 분량도 겸사겸사 따고.
“그럼 이번에 더 잘 던져 보겠습니다! 화이팅!”
“…….”
홀로 화이팅! 하던 우주가 고개를 돌리자 멤버들이 필사적으로 ‘화이팅’을 외쳤다.
다시 던져진 첫 번째 다트.
“오, 댓츠 미.”
중현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어서 두 번째 다트가 쉬익 날아갔다.
“으아아,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예요.”
“진정해여, 피라루쿠.”
리혁이 울부짖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다트가 우주의 손을 떠나 빠르게 날아갔다.
쉬이익!
구경하던 예비군들, 멤버들, 제작진과 한조의 고개가 동시에 날아가는 다트를 따라갔다.
탁!
“안 돼애애……!”
‘서리혁’에 적중한 다트에 누군가 오열하며 무너졌다.
하루아침에 유배를 가게 된 신하처럼 하늘을 보며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예비군들이 깔깔거릴 때.
“어, 근데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데요.”
“중현이야? 아니면 리혁이야?”
“리혁이 형 같기도 한데, 저거 되게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데여.”
처음에는 ‘서리혁’에 꽂힌 것 같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니 ‘김중현’과 ‘서리혁’의 경계선이었다.
도준기 피디가 다가가서 판정을 했다.
“으음…….”
이윽고 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네, 이로서 결정 되었네요! 사나이가 간다 특집에 참여하게 될 뉴블랙의 멤버는 바로…….”
그가 외쳤다.
“중현 씨네요!”
“와아아!”
우주와 한조가 웰컴 투 아미하며 노래를 부르는 동안, 중현이 푸근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흠, 내가 걸렸네.”
느긋한 반응에 도 피디가 살짝 당황했다.
예비군들도 같이.
보통 막 으아아 하고 그래야 정상인 반응인데, 오늘 점심 메뉴를 들은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저 언제 가면 돼요?”
“엇, 그… 그, 조금 이따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오히려 피디가 당황했다.
‘이러면 그림이…….’
필요한 그림이 안 나온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 걱정은 사그라들었다.
다른 누군가 분량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아이고오……!”
“리혁이 형. 리혁이 형.”
“내가 어쩌다 군대 예능에… 군대에……!”
판정을 하는 동안에도 혼자 좌절해서 못 들었는지, 쪼그려 앉은 리혁이 대성통곡하는 중이었다.
지호가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리혁이 형, 리혁이 형.”
“왜애……!”
‘내가 지금 군대를 가게 생겼는데!’ 하며 째려보던 리혁에게 지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아니래요.”
“……에? 어? 오…?”
늘 날카롭고 서늘했던 얼굴 위로 둥글둥글한 바보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내가 아냐?”
“네.”
“우와아아……!”
이내 혼자 주먹을 꼭 쥔 채 좋아하던 리혁.
하지만 이내 조용해진 주변을 눈치 채고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들을 눈치 챈 듯했다.
입술을 꾹 말아 쥔 예비군들, 한조의 어깨를 붙잡고 폭소하는 우주, 키득거리는 멤버들.
“……!”
리혁이 쪼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등껍질 안에 숨어든 거북이 같은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사나이가 간다’ 제작진을 배웅한 후.
막내가 샐쭉한 얼굴로 말했다.
“처음부터 중현이 형 데려가려고 한 거져?”
“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제가 다 알아여. 서당개 삼년이면 풍악을 안다는데 제가 1년간 형의 노비 해봐서 알아여.”
지호의 말에 미소만 지었다.
처음부터 중현이를 데려가려고 짠 계획인 건 맞았다.
일단 리혁이와 비주는 피지컬에서 탈락이다.
몸무게가 종이비행기 급으로 가벼운 우리 애들은 훈련을 할 만한 체력이 안 됐다.
지호는 피지컬에서 합격이지만 내가 싫었다.
우리 막둥이는 계속 귀염둥이 막내로 있으면 했다.
지금까지 지호네 어머니와 누나들이 그렇게 키워 왔듯이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니 남는 건 중현이었다.
체력 튼튼하고, 멘탈 튼튼한 우리 애.
“오, 제가 군대를 또 가 보네요. 저희 형이 맨날 군대 얘기해서 한 번 가 보고 싶긴 했거든요.”
“형님이 군인이라고 했지?”
“네. 직업 군인이에요. 지금.”
새로운 경험을 한다며 기대하는 중현이에게 미소를 지었다.
“형이랑 이번에 잘해 보자. 대길이 시즌 투 고고?”
“고고.”
그나마 부족한 거라면 눈치인데.
그 부분이 걱정돼서 훈련장에 들어가기 전에 따로 한조에게 부탁했다.
“한조 씨.”
“네?”
“중현이 좀 부탁드릴게요. 얘가 다 잘하는데 가끔 분위기를 놓칠 때가 있어서…….”
“걱정 마요. 동생들 챙기는 건 누구보다 잘하니까.”
“아. 맞다. 그러네요.”
굼벵이 앞에서 주름을 잡았네.
밑에만 8명의 동생이 있는 그룹의 리더에게 미소를 지으며, 한 번 더 부탁했다.
“그럼 믿고 맡길게요.”
* * *
훈련장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정신과 시간의 방처럼 느꼈던 작년과는 경우가 달랐다.
합법적인 휴식이라고 할까.
회사에서 빈둥거리면 괜히 죄 짓는 기분이 들곤 했는데, 예비군이란 명분이 생기니 쉴 때도 심리적으로 편했다.
나라에서 쉬라고 하니 쉬어야지. 뭐.
무엇보다 분 단위로 쫓기던 스케줄과 쪽잠에서 벗어나 3일 연속으로 7시간 가까이 잠을 자니 행복했다.
“행복해…….”
헤실헤실 웃고 다니니 처음에 사람들은 날 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늘 느끼지만 인간의 행복은 탄수화물과 잠에서 나오는 게 분명했다.
식당에서 행복한 얼굴로 소시지를 콕 찍어먹는 내 모습에 누군가 물었다.
“그럼 사나이가 간다 출연은 확정된 거예요?”
“네.”
“존나 싫겠다. 진짜.”
“어우. 난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쳐.”
친해진 다른 예비군들과 수다를 떨었다.
나름 연예인이라고 거리 두고 그럴 줄 알았는데 편하게 대해 줬다.
그런 까닭에 이번 예비군은 편안함의 극치였다.
한편, 그 동안 버킷 리스트에 써 뒀던 것 중에 하나를 소원 성취하기도 했다.
“저기요.”
며칠 동안 친해진 현역 조교에게 말을 걸자, 상대가 웃으며 반겼다.
“네, 선배님.”
“제가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예, 말씀하십쇼.”
“조교야, 라고 불러 봐도 돼요?”
“그, 그러십쇼.”
“조교야~”
“……그게 해 보고 싶으셨습니까?”
잠시 눈을 깜빡이는 상대에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해 보고 싶었다.
작년에 다른 아저씨들이 군복을 삐딱하게 입은 채 ‘조교야~’ 하는 걸 보고 은근 해 보고 싶었다.
잘 모르는 사람한테 ‘야야’ 못하는 성격이라 이런 기회를 통해 소원 성취를 했다.
그 보답으로 PX에서 먹을거리를 사 주며 잠시 대화를 나눴다.
주로 요즘 군 생활이 어떤지에 대해서.
“요즘 트렌드… 아니, 뭐라고 해야 되지. 요즘 군 생활에서 좀 달라진 건 없어요?”
“군 생활이야 뭐, 늘 똑같은 거 같습니다.”
다행이었다.
중현이에게 참고하라고 훈련 시 유의사항에 대한 메모를 건네줬는데. 나 때와 달라졌으면 곤란하니까.
이런 걸 왜 묻냐는 상대의 시선에 내가 설명해 주었다.
“아, 저희 애가 군대에 갔거든요.”
“애… 말씀이십니까?”
내 얼굴을 슥 보던 조교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눈이 깜빡깜빡거린다.
입모양으로 혼자 중얼중얼하며 뭘 계산하더니 내게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가능합니까?”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남 앞에서 우리 애, 우리 애 하는 말버릇 이거 고쳐야겠다.
“오해 살 말을 했네요. 애가 아니고 동생이에요.”
“아하. 친동생이 군대 가셨습니까?”
이것도 고쳐야지.
“멤버요. 멤버.”
“아, 이제 이해 됐습니다.”
사나이가 간다 출연에 대한 비하인드를 말해주자 상대가 바로 알아들었다.
그러더니 우리 그룹 이름이 ‘뉴블랙’이라는 걸 듣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
“왜 그래요?”
“선배님 그룹 이름이 뉴블랙이십니까?”
뭐지.
“신교대 조교인 친구가 있는데, 얼마 전에 페메로 연예인 들어왔다고. 뉴블랙 멤버가 훈련 받으러 왔다고 그랬습니다.”
“정말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떻대요? 잘하고 있대요? 어디 막 누가 부딪혀서 다치고 그러지는 않고?”
“예?”
“좀 많이 걱정이 되는 애라서 그래요.”
상대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말했다.
“친구가 완전 S급 훈련병이라고, 그런 사람 처음 본다고 했습니다.”
“네?”
“완전 FM이라고. 완벽하다고…….”
내가 눈을 깜빡거렸다.
“우리 애가요?”
* * *
경기도의 어느 부대.
“훈련병, 힘들어도 소리 내지 않습니다.”
“으으…….”
“혼자만 힘든 게 아닙니다. 훈련병. 알겠습니까?”
“예!”
전투복을 입은 한조가 데굴데굴 구르는 중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눈이 이글거렸다.
‘선우주, 내가 없애 버릴 거야…….’
한 바퀴 더 구른 그가 생각을 고쳤다.
‘아냐. 이런 나쁜 생각하면 안 돼.’
그때 철조망 아래를 기어가다가 흙이 입에 들어갔다. 한조가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선우주, 내가 부숴 버릴 거야…….’
움직일 때마다 이성의 끈이 왔다 갔다 하고 있는 한조였다.
겨우 철조망을 통과해서 나왔을 때, 선글라스를 낀 교관이 목소리를 깔았다.
“훈련병. 제대로 안 합니까? 전쟁터에서 그렇게 기어가면 동료들은 다 죽고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저기 서서 다른 훈련병 보고 배웁니다.”
그것밖에 못하냐는 시선에 억울했다.
‘최선을 다한 건데……!’
하지만 상대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
군인 모집광고 모델처럼 떡 벌어진 어깨에 근사한 전투복 핏.
서늘한 표정으로 방탄모 턱끈을 매만지던 김중현이 지시 구령에 몸을 삭 엎드렸다.
그러곤 방금 한조가 했듯이 철조망 아래를 기어가기 시작했다.
삭삭삭삭삭삭!
전생에 로봇 청소기였을까.
기가 막힌 속도로 포복 자세로 기어가는 풍경에 한조는 넋을 잃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엄숙한 표정을 짓던 교관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인재다. 참으로 인재로다.’
이윽고 포복을 마친 중현이 늠름하고 빠르게 일어설 때, 저도 모르게 박수가 나올 뻔했다.
군 생활을 한지 어언 15년.
지금까지 그가 본 사람 중 가장 완벽한 훈련병이 늠름한 장수풍뎅이처럼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