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71)화 (27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71화

2박 3일간의 동원훈련이 끝나고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같은 분대였던 사람들과 단체 인증샷을 찍으며 작별한 후, 나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찾았다.

“모두 오랜만이에요!”

어째 돌아오는 반응이 이상했다.

카메라를 든 제작진과 ‘젠민이 찾아요’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던 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주가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켰다.

“형, 얼굴이…….”

“내 얼굴? 얼굴이 어디 이상해졌어?”

“아뇨. 얼굴이…….”

비주가 깜짝 놀랐다는 얼굴로 말했다.

“3일 만에 엄청 좋아졌어요. 피부도 보송보송해 보이고 막 윤기도 나고.”

“와. 피부과 쌤들도 못 해낸 걸 예비군이 해냈네여.”

“잠깐 당황했잖아요. 너무 달라져서.”

동생들의 말에 유쾌하게 웃었다.

관종답게 칭찬을 받아서 그랬기도 했지만, 3일간 삼시세끼 잘 챙겨먹고 꼬박꼬박 잘 잔 덕이었다.

온몸에 활력이 돈다.

“부러우면 너희도 군대 올래? 피디님, 아직 자리 더 비어 있죠?”

“그럼요.”

조연출의 대답에 ‘어때?’ 하며 돌아보자 셋이 동시에 질겁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그러곤 다 같이 웃었다.

내 기분이 좋으니 동생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마침 하늘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사나이가 간다’ 제작진이 필요한 장면을 찍어 간 후, 핸드폰을 들어 주간 스케줄을 살폈다.

“기분 진짜 좋다. 이제 뭐하면 되지. 일단 A&R팀이랑 작곡가 분들 찾아서 작업 상태 확인하고…….”

“A&R팀 분들은 못 만날 걸요? 다들 오늘부터 연차 썼어요.”

“왜 하필 오늘 쓰셨지? 아쉽다.”

그럼 작곡가들만 만나지. 뭐.

그들에게 작업실을 내주고, 내가 가 있는 동안 보강 작업을 해 달라고 부탁한 터였다.

결과를 확인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즐겁구나! 핫핫!”

“…괜찮은 거 맞아요? 어디 안에서 머리 부딪히고 그런 건 아니고?”

“제가 좀 살펴볼게여.”

내 머리를 요리조리 살피던 녀석들이 결론을 내렸다.

“근데 두상 진짜 예쁘네여.”

“우주 형 뒤통수는 언제 봐도 동글동글해…….”

“두상이라고 할 게 있어요? 머리가 완두콩만한데.”

리혁이의 삐딱한 칭찬에도 흐뭇하게 웃을 뿐이었다.

동생들도 3일간 충분히 잠을 잤는지 얼굴 상태가 좋아 보였다.

모두가 상쾌한 표정이었다.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이게… 중현이가 없으니까 좀 그렇네.”

“맞아요. 걔가 없으니까 좀 허전한 느낌?”

“뭐. 이제 곧 만나러 갈 거잖아요.”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빽빽한 스케줄표.

그중에서 첫 번째 스케줄은 바로 중현이를 마중 나가는 일이었다.

*   *   *

경기도의 어느 부대.

‘사나이가 간다’ 제작진과 함께 우리가 양손을 가슴에 올린 채 서 있었다.

“나올 때가 됐는데, 얘는 왜 안 나오냐.”

“별 일 없겠져?”

“근데 훈련은 잘 받았을까요? 저 좀 걱정돼요.”

왠지 수능 시험장 앞에서 자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하는 건 중현이가 아니었다.

“한조 씨가 은근히 체력 약하다고 스보 멤버들이 그러던데.”

“맞아요. 벼룩 같은 체력이라고.”

“남일 같지가 않네요.”

“걱정 돼여. 나무 형이 한조 형 근육은 풍선근육이라고 그랬거든여. 물 적게 마시면 쪼그라든다고.”

제작진을 의식하며 우리끼리 소곤거렸다.

“얘네는 언제 온대?”

“좀 늦을 것 같다고 했어여. 새로 온 매니저님이 네비를 잘못 찍었다고.”

지호가 폰을 보며 소곤거릴 때였다.

초조해 하는 우리 모습에 작가님이 웃었다.

“중현이가 많이 걱정되는구나?”

“아, 지금은 한조 씨를 걱정하는 중이었어요.”

그 말에 작가님은 ‘어머, 다른 그룹도 챙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중현이 형을 아직 몰라서 저러시는 거겠져?’

‘전봇대에 부딪혀도 전봇대를 넘어뜨릴 사람인데…….’

우리끼리 눈빛만 교환할 뿐이었다.

이윽고 위병소 너머 부대 안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귀가 예민한 우리 메인 보컬이 목소리를 짚어 냈다.

“동굴에서 곰이 말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요.”

“중현이구나!”

우리가 ‘중현&한조, 고생했어’ 하는 플래카드를 흔들 준비를 할 때.

카메라를 든 제작진이 둘러싼 두 훈련병과 교관이 나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중현아아아아-!”

“한조 씨!”

둘이 고개를 돌렸다.

손을 흔들어주는 우리에게 같이 흔들어줄 줄 알았는데 눈인사로만 답했다.

마치 갓 훈련소를 나온 신병처럼 뻣뻣한 모습.

물론 둘 사이에 차이점은 있었다.

바짝 기합이 든 한조와 달리 중현이는 어딘가 여유로워 보였다. 신병보다는 갓 임관한 장교나 부사관 같은 느낌.

교관이 뭐라고 말할 때마다 느긋하게 웃는 게 보였다.

마침내 정문을 빠져나온 그들에게 우리가 달려갔다.

“중현아아!”

“한조 씨!”

멤버들이 없어서 허전할 한조를 위해 둘을 동시에 둘러싸고 ‘야야~ 야야야야!’ 하며 강강술래를 췄다.

지켜보던 교관이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고생들 많았어요.”

“예!”

“정말 잘해 줬고. 어… 앞으로 ‘사나이가 간다’에서도 좋은 모습 보여주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중현 씨.”

“네.”

교관이 엄지를 들었다.

“내가 본 최고의 군인감이야. 연예인만 아니었으면 우리 부대에 눌러 앉으라고 말할 뻔했어.”

“감사합니다.”

“이렇게 완벽한 군인은 처음이라니까. 뭐 할 때마다 각도 완벽하고. 군인 정신도 충만하고. 아유. 아까워라…….”

잔뜩 탐이 난다는 표정으로 중현이에게 ‘님 군인 적성’하는 교관이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야 그나마 동원 훈련 때 미리 언질을 들어서 덜 당황했지만, 우리 애들은 실시간으로 ‘뭐… 뭐가 어떻다고?’ 하는 표정을 짓는 중이었다.

각은 그렇다 치고. 군인 정신으로 무장했다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 무장보다는 점심 무료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우리 애였으니까.

다 같이 당황하고 있을 때, 중현이가 ‘이 사람이 우주 형’이라면서 날 소개했다.

“우주?”

교관이 중얼거렸다.

홰애액!

90도로 움직이는 탱크 포대처럼 돌아가는 고개에 화들짝 놀랐다. 상대가 바짝 다가오더니 눈을 번뜩였다.

“우주?”

“예, 제가 우주인데요…….”

“말로만 듣던 우주 씨구나!”

그러더니 날 붙잡고 대단하다며, 현역 때 자기 부대에서 생활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한참을 얘기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멍하니 서 있을 때, 내게서 고개를 돌린 교관이 두 훈련병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럼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보고. 며칠간 수고했어요.”

“충성!”

한조와 중현이가 경례를 하자, 교관이 가볍게 받아주고는 휘적휘적 돌아갔다.

그제야 한조가 편하게 ‘하아…’ 하며 숨을 쉬었고 우리가 격하게 반겨 주었다.

“고생했어요!”

“고생 많았어요. 많이들 힘들었죠?”

“어때여, 군대. 군대 썰 풀어 줘여.”

우리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호기심에 한조가 먼저 입술을 뗐다.

어딘가 해탈한 듯한 미소.

숨을 쉴 때마다 한조의 영혼이 빠져나갔다가 들어오는 듯했다.

“우주 씨…….”

어금니를 꽉 깨문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이크.

잽싸게 피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동생들이 나를 어서 잡아먹으라는 듯 내 등을 밀었다.

얼떨결에 얼굴을 마주했다.

“하, 한조 씨…….”

“우주 씨.”

“이, 일단 진정하시고요. 우리 말로 해요.”

“멱살 좀 잡아도 돼요?”

차분한 부탁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조가 내 어깨를 붙잡더니 가볍게 흔들었다.

“으아아아. 진짜, 가만 안 둘 거예요.”

“죄송합니다…….”

복수마저 젠틀한 모습에 우리 동생들이 김이 빠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조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처음에는 수련회 생각하고 들어갔거든요. 그런 기합 생각하고 왔는데…….”

“아니죠?”

“전혀 아니네요. 이거…….”

제작진을 의식한 듯 말은 안 했지만 눈빛이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혼자 외로울 한조를 위해 우리가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동안, 마침내 기다리던 차량 두 대도 도착했다.

드르륵.

동시에 열리는 차량 문.

개구쟁이 같은 얼굴이 머리를 쏙 내밀었다.

“나님 등장……!”

동시에 뒤따라 나오던 거친 얼굴들이 아우성을 쳤다.

“아우 쪽팔려! 다시 들어가, 감나무!”

“나무는 들어가.”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는 모르는 사람이에요!”

누군가 다시 안으로 밀려난 후 근육몬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현조!”

“현조야! 괜찮아?”

“어뜩해! 어뜩해! 우리 이현조 얼굴 다 삭았다!”

한조가 해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것들은 이제 형이라고도 안 불러 주네.”

8명이 우와아악! 하고 달려들어 한조를 반겼다.

카메라가 그들의 해후를 다루는 동안 우리는 눈인사를 하고는 중현이를 데리고 빠져나왔다.

“중현아, 이거 젤리 먹어.”

“오. 고마워요.”

우리가 종류별로 건넨 젤리 봉지를 받아드는 중현이의 얼굴에 푸근한 미소가 감돌았다.

손동작 한 번으로 봉지를 동시에 까는 진기를 보여준 곰이 젤리를 우물거렸다.

“어때? 괜찮았어?”

“음…….”

중현이가 과거를 회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보다 맛있던데요.”

“……맛있어?”

“방송 촬영한다고 일부러 소시지도 준 거래요. 먹는 리액션 할 때마다 제작진 분들이 좋아했어요.”

“아니, 밥 말고. 훈련…….”

“아하.”

중현이가 골똘히 뭔가를 생각했다.

“할 만하던데요. 뭐 할 때마다 교관님이 눈 반짝반짝하면서 칭찬을 해 주셨어요. 같이 말뚝박기하고 싶다고.”

“말뚝 박자고 한 거겠지.”

“그게 말뚝박기 아니에요?”

“……그, 아니다. 나중에 내가 집에 가서 설명해 줄게.”

“아니죠.”

이번에는 두루미가 퍼덕거리며 끼어들었다.

“집이 아니라 숙소죠.”

“리혁이는 저기 나무 씨랑 같이 차에 들어가 있어.”

리혁이가 입을 불만스럽게 비죽였다.

젤리를 우물거리는 누군가를 데리고 차량으로 돌아가는데, 깜빡 잊고 있었던 게 떠올랐다.

“야, 잠깐만. 중현아.”

“네?”

“아까 그분 반응이 이상해서 말인데, 너 저기서 뭐라고 말을 한 거야?”

“별 얘기는 안 했어요. 훈련할 때 형 얘기 한두 번 정도.”

그래서 나오는 반응이 아닌 것 같은데.

워낙 설명 못하기로 소문난 우리 애라서 더 캐묻기를 포기했다.

태연하게 ‘젤리 이즈 굿’ 하는 중현이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뜰 뿐.

“내 이미지 이상하게 만들 만한 얘기는 안 했지?”

“당연하죠.”

중현이가 믿어달라는 듯 눈을 동글게 만들었다.

“저 좋은 얘기 엄청 많이 하고 왔어요.”

*   *   *

▶ [사나이가 간다 - 중현, 한조 기초훈련 Tape #1]

#1.

[요구 되는 PT 동작을 완벽하게 해낸 중현이 교관 앞에서 늠름하게 서 있다.]

교관 : 잘했습니다, 훈련병.

중현 : 감사합니다.

교관 : 동작이 완벽하던데, 평소 자주 접하던 동작입니까?

중현 : 예, 같은 그룹에 있는 우주 형으로부터 배웠습니다!

교관 : 우주……?

#2.

[사격술 예비훈련(PRI)을 하는 중,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한 중현을 보고 교관이 멈칫한다.]

교관 : 이 동작, 미리 배웠습니까?

중현 : 예, 우주 형이 경품 사격할 때 보고 배웠습니다.

교관 : …인형 하나 얻으려고 엎드려 쏴까지 했습니까?

중현 : 예! 제가 수평으로 들어줬습니다!

교관 : …….

#3.

[훈련을 끝낸 후, 넋이 나가 있는 한조에게 군인정신을 설파하던 교관이 부동자세로 선 중현을 바라본다.]

교관 : 훈련병. 아까 무슨 생각했습니까?

중현 :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교관 : 아무 생각 안 했습니까?

중현 : 예! 교관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관 : …훌륭합니다. 어디서 그런 정신을 배웠습니까? 이것도 우주 형입니까?

중현 : 예. 맞습니다.

교관 : (흡족)

그런 장면들이 하나둘 모니터 위를 스쳐 지나가는 동안, 편집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조연출이 눈을 깜빡거렸다.

‘대체 뉴블랙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왠지 모르게 멤버들을 채찍질하며 ‘하하! 내 명령을 들어라!’ 하는 우주의 모습이 그려졌다.

당연히 그건 사실이 아니었지만, 완벽하게 틀린 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   *   *

“흐어어어어…….”

“힘드세요?”

“흐어이, 아뇨오호호호호…….”

넋이 나간 웃음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홍삼 드세요. 홍삼.”

내가 건넨 홍삼에 나상윤 작곡가님이 눈물을 글썽이셨다.

동원 훈련을 끝내고 만났을 때만 해도 얼굴이 좋아 보였는데. 나랑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볼이 홀쭉해졌다.

시간이 더 흐른 지금은 아예 햇볕에 말라붙은 지렁이 같았다.

“혹시 저랑 작업하는 게 힘드신가요?”

“으음, 아뇨? 그건 아니에요. 우주 씨랑 작업을 함께 하게 돼서 정말 좋아요.”

홍삼을 조금씩 흡입하던 작곡가님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저 같이 업계에서 인맥도 없고 수완이 안 좋은 사람은, 이렇게 사람대접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거든요. 그 부분이 정말 좋아요. 우주 씨랑 일하면 진짜 음악 하는 느낌도 나고.”

“다행이다. 조금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안 힘드시다니 다행이네요.”

“……예?”

“좋네요.”

손바닥을 비비고는 하이파이브를 하기 위해 내밀었다.

“자, 그럼 스퍼트를 올려 볼까요~?”

“…….”

“화이팅?”

“예에…….”

중간중간 맛난 음료와 커피로 충전을 시켜 주면서 앨범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확실히 외부 인력을 써서 그런지 속도가 빨랐다.

이대로 중현이까지 같이 갈… 일하면 다음 달 중순에는 다 끝날 것 같다.

중간중간 회사에 들르며 앨범 진척상황을 체크하는 동안 스케줄도 하나씩 해치워 나갔다.

지역 명산품 행사에 가서 어르신들과 트로트도 부르고.

비주 동생 민준이가 입원했던 소아 병동에 방문해 거기서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도 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최 교수님 덕이었다.

-혹시 시간이 되거나, 가능하다면 어린이들을 위한 짧은 공연을 부탁해도 될까요?

마침 병원 측에서 제안한 좋은 캠페인의 홍보대사도 할 겸 승낙했다.

공연 형식은 즉흥 연극.

중현이가 양철 나무꾼, 지호가 도로시. 리혁이가 계모. 비주가 도깨비고 나는 말하는 도깨비 방망이었다.

“안녕, 난 말하는 도깨비 방망이야.”

“방망이가 말을 어떻게 해?”

“계모님의 말에 제 가슴이 너무 아파요. 저도 인권이 있는걸요.”

주제는 인권이었다.

큰 줄기만 잡고 나머지는 즉흥 연기로 갔는데, 아이들이 깔깔 웃고 부모님들도 같이 웃는 걸 보니 재미는 확실히 잡은 듯했다.

공연이 끝나고 어린이들에게 팬서비스를 해 주는 시간도 가졌다.

“오빠들은 누구예요?”

“역사 탐험대 아니?”

“몰라요!”

“……몰라?”

어린이들 보라고 만든 교양 프로인데 어째 어른이들이 더 잘 아는 눈치였다.

어차피 말해 줘도 잘 모를 것 같아서 그냥 유명 캐릭터들 성대모사를 하며 놀아 주었다.

그 때문에 행사 끝날 때쯤 되니 모든 어린이가 나를 병아리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여러모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거 받아 가세요. 아버지가 꼭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셔서.”

최용재 교수님이 건네준 선물도 받았다.

내가 구해드린 최익현 할아버지가 우리 멤버들에게 먹으라며 보내 주신 고기였다.

그러면서 요즘 노인정에서 뉴블랙 영업을 열심히 하신다는 얘기에 우리가 미소를 지었다.

한우 세트를 받아들고 나서는 내 발걸음은 몹시도 가벼웠다.

“역시 세상사 돌고 도는 거야.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로, 나쁜 일은 나쁜 일로.”

“큰일났네여.”

“왜?”

“A&R팀 분들한테 나쁜 짓 많이 했잖아여.”

“지호는 여기서 국거리나 장조림만 먹어.”

“그럼 형도 울 아빠가 보내준 닭갈비 먹지 마여.”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며 굵직한 스케줄들을 리스트에서 하나씩 지워 나갔다.

그중 마지막은 바로 PBS의 ‘뮤직On - 2015 상반기 결산.’

상반기에 1위를 한 가수들을 불러 무대를 보여 주는 시간이었는데, 근사한 무대 장치가 달린 별도 스테이지에서 사전녹화를 진행했다.

“와아아……!”

어둠 속에서 물결치는 응원봉이 어찌나 영롱하고 예쁘고 또 밝은지.

“형들, 형들 저 눈물 나여.”

“나도.”

“너무 밝아…….”

달봉이가 너무 밝았다.

가수도 울고, 팬들도 울고, 근처에 있던 스텝들도 울었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10단계 중에서 3단계가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한편, 상반기 결산은 여러모로 수플레와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깊은 시간이었다.

타 팬덤에게 달라진 우리의 위치를 보여 줬다고 할까.

가수가 바뀔 때마다 곡 제목 위에 ‘2월 1주 1위’ 혹은 ‘3월 2주, 3주 1위’ 같은 타이틀이 떠올랐는데, 우리의 바람꽃은 다른 가수들과 팬덤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 4월4주 1위 &5월1주, 2주, 3주, 4주, 5주 1위 】

▷ 뉴블랙 - 바람꽃

남들이 한 줄일 때 우리는 세 줄이었다.

마치 ‘왕국의 존엄한 왕이자, 무슨무슨 땅의 수호자이자 적법한 어쩌구’ 하는 왕의 타이틀 같다고 할까.

어디 가서 끝판왕처럼 등장해 보는 건 처음이라 속으로 몹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성공의 맛이 이런 거구나 느끼면서.

하지만 상반기 결산에서 가장 좋았던 건 그런 성공이 아니라 미니 팬미팅에서 수플레들과 보낸 시간이었다.

가수와 팬이 눈을 마주치며 서로가 통한다는 느낌이 들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세상에 없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해 보는 거예요!”

“네!”

“갑니다. 하나 둘 셋!”

가수와 팬이 함께 외쳤다.

“수플레!”

“뉴블랙!”

우리끼리 ‘크로스!’ 하듯이 응원봉을 들었다.

“얍!”

“얍!”

번쩍-

우리가 눈을 감고 왕봉이를 흔들고, 수플레들도 눈을 감은 채 김봉달을 열광적으로 흔들었다.

아, 달봉이. 참.

길을 걷던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중간에 동영상 찍는 분도 있던데, 아마 미튜브에 ‘광란의 아이돌 플래시몹’ 같은 제목이 보이면 우리일 거다.

그러고 나니 어찌나 웃기던지.

수백여 명의 팬들과 한참 동안 배를 잡고 웃고, 떠들면서 상반기의 마무리를 장식했다.

굵직한 스케줄도 전부 지나가고 봄을 노래하던 바람꽃의 열기도 서서히 식어 갈 무렵.

날이 점점 습하고 더워졌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뉴스에서 올 여름 무더위와 장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

마침내 ‘사나이가 간다’의 본방 녹화가 다가왔다.

그런데…….

“응? 어디라고?”

“어디라고요. 실장님?”

제작진이 석환 형을 통해 전달한 집결 장소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이었다.

“……공항?”

이어지는 얘기에 중현이도 눈을 깜빡거렸다.

“저희 여권도 챙겨 오라고요?

“여권? 왜?”

“너희가 한 번 봐봐.”

석환 형이 보여 준 제작진의 메시지를 보고 나와 중현이가 눈을 깜빡거렸다.

공항.

녹화의 오프닝을 찍을 장소는 바로 인천공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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