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72)화 (27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72화

오프닝 촬영지에 대한 소식을 전하니 동생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형, 이번에 해외 가서 녹화해여? 우와아…….”

“공항이요?”

“나만 수상해요? 갑자기 공항이라니.”

부러워하는 막내와 달리 다른 두 녀석은 석연치 않다는 표정이었다.

비주가 물었다.

“여권도 가져오라고 했어요?”

“응.”

“어디 간다고 말은 안 해 주고요?”

“전혀 없더라고. 그냥 준비물에 ‘여권 꼭 챙겨오기’ 이렇게만 되어 있었어.”

“어, 뭐지……?”

태블릿 PC로 열심히 검색하던 리혁이가 안경을 벗었다.

“해외 파병 아니에요? 작년에 ‘사나이가 간다’에서 인도네시아 수해 복구 현장에 갔다던데.”

“아, 맞다. 그런 특집 있었지.”

“무슨 특집이요?”

궁금해 하는 중현이에게 리혁이가 화면을 보여주었다.

‘사나이가 간다’의 해외 파병 특집.

쓰나미에 폐허가 된 인도네시아의 어느 섬에서 현지 사람들과 함께 집 짓던 에피소드였다.

비주가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러다 위험한 곳에 가게 되면 어떡하죠?”

“저두여. 형들이 위험한 데 가는 건 별루.”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우리가 고개를 돌리자 리혁이가 자신 있게 말했다.

“지금 파병 나간 국가들 명단을 살피는데, 위험한 데는 대부분 미리 예방 접종을 해야 되거든요. 항체 생기려면 보통 한 달은 필요한데, 그런 얘기 없었죠?”

“응. 전혀.”

“그럼 위험한 데는 아닐 거예요.”

그 말에 다른 동생들이 ‘오오오’ 하며 우리 피라루쿠를 찬양했다.

곧이어 다들 해외에서 군인과 관련된 일이 뭐가 있을지 추측할 때,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다들 시선을 돌렸다.

“왜 그래여. 형?”

“그걸 깜빡하고 있었네.”

“……?”

“우리 이번에 군대 안 가거든. 피디님이 군대 말고 새로운 도전을 해 볼 거라고 했어.”

여권 챙겨오라는 말에 몰두한 나머지 사전미팅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까맣게 잊었던 터였다.

리혁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걸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데요?”

“사전 미팅 때부터…?”

“사전 미팅이라면 그 다트 던지기 전에요?”

“응. 당연히 그 전이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내가 ‘군대가 아니면 뭐지?’ 하고 추리를 하고 있는 동안 점점 주변이 조용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표정들이 심상치 않았다.

“왜들 그래?”

“아니…….”

리혁이가 파들파들 떨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군대에 안 가는 거 다 알면서 우리를 놀려 먹은 거였어요?”

“엇…….”

미처 그거까지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에 멘붕 중이어서.

지호가 눈을 흘겼다.

“와. 진짜 그러네여. 너희 군대 가고 싶어? 이러면서 우리를 핍박했잖아여. 군대 안 가는 것도 숨기고…….”

“저도 실망이에요. 형.”

진실을 알게 된 동생들이 공격을 퍼부었다.

파렴치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우리 그간 떨 때 넌 웃었냐 등등. 한참 동안 혼이 났다.

아니. 이게 이 정도까지 혼날 일인가?

“저기, 얘들아.”

“뭐요?”

“왜여.”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는 동생들에게 사죄의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사과면 다인 줄 알아요?”

“오늘 고기 사 줄게. 요 앞에 소고기집 갈까?”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후.

서로를 바라보던 녀석들이 내게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여. 그런 마음이면 된 거예여.”

“…뭐, 여전히 기분은 좀 그렇지만 받아 줄게요.”

“형의 말에 제 마음이 치유된 것 같아요.”

빠른 사과와 고기 약속으로 다행히 민초들을 회유할 수 있었다.

중현이만 ‘저 군대 안 가요…?’ 하며 살짝 시무룩해졌을 뿐, 다행히 다른 녀석들은 금세 표정이 환해졌다.

“근데 진짜 잘 됐어요!”

비주가 눈을 크게 뜨고 좋아했다.

“제가 요새 잠을 못 잤거든요. 형 군대 또 간다고 해서 심란해서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저두여. 형이 다녀와서 또 군대 얘기할 생각하니까.”

“나도 마찬가지에요. 아무리 얄미워도 가서 데굴데굴 구를 생각하니 좀… 그래서.”

말은 안 해도 ‘사나이가 간다’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수플레들도 이 사실을 알면 좋을 텐데.

나 이번에 군대 안 간다고.

‘사간’ 출연이 확정된 이후 가장 속상해 한 사람들이 바로 수플레들이었다.

가기 전만 해도 화환 문구를 보면서 깔깔 웃어서 몰랐는데, 출연이 확정되니 다들 180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치면 어떡하냐부터 시작해서 사간 피디와 대표님의 밤길 안부를 묻는 댓글들도 있고.

돌림픽처럼 혹시나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댓글들도 많았다.

꼭 안전하게 다녀와야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다시 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이번에 군대가 아니면 어디로 가는 걸까?”

내 물음에 다들 생각에 잠겼다.

“국경 없는 의사회? 그런 곳 보면 좋은 일 많이 하던데요.”

“해외 봉사 단체 아닐까여? 아님 환경보호? 학교에서 얼마 전에 다큐 봤는데 막 배 기둥에 몸을 묶어여.”

“남극 세종과학기지는 어때요? 거기도 과학 연구로 나라에 공헌하는 분들이잖아요.”

대체 얘네는 날 어디로 보내려는 걸까.

하나같이 위험하거나 극한 상황으로 유명한 곳들이라 잠시 눈을 멀뚱멀뚱 떴다.

동생들과 한참 동안 밥을 먹으며 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생각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진짜 모르겠네.

이번에 대체 뭘 하려는 걸까?

“그래도 뭐, 어디든 군대는 아니니까.”

아무렴 어떤가 생각하며 다 같이 웃었다.

*   *   *

숙소 아파트 1층.

화단에 멈춰선 차량 앞에서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나 갈게…….”

“님들 저 다녀오겠음.”

군복을 입은 나와 중현이가 손을 흔들자, 다들 슬픈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얘들아……!”

“형……!”

차에 타려다가 다시 돌아가 다 같이 얼싸안고 엉엉 하는 모습에 매니저 형들이 웃었다.

“정말 보고 싶을 거야.”

“저희도요.”

“그럼 갈게…!”

“잘 다녀와여……!”

아파트 주민들의 시선에 리혁이가 고개를 푹 숙이는 동안, 비주가 구형 mp3 플레이어를 내밀었다.

“이건 뭐야?”

“공항까지 가는 동안 들으라고 마음이 안정되는 노래들을 넣었어요.”

“고마워.”

내가 비행기를 탄다는 게 어지간히 걱정되는 모양이다. 다른 둘도 살짝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걸 보면.

“누가 보면 진짜 군대 가는 줄 알겠다, 야.”

“…….”

“재미있게 녹화하고 올게.”

미어캣처럼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웃었다.

차량에 탑승한 후 창문을 열고 중현이와 함께 고개를 내밀고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차가 출발하면서 빠른 속도로 서로가 멀어질 때.

“얘들아!”

“님들, 저 다녀올… 오오?”

휘이잉.

중현이가 쓴 베레모가 훌러덩 날아가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

서로의 시선이 얽혀들었고, 지호가 웃기 시작했다.

“원석이 형.”

“응?”

“잠깐 차 좀 세워 주세요…….”

원석이 형이 차를 세웠다.

한숨을 푹 쉬던 리혁이가 베레모를 줍더니 차량까지 팔락팔락 달려와 건네주었다.

그러곤 서로가 점이 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작별인사를 마치고 잠시 차량 시트에 몸을 뉘인 후, 준비물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건 뭐예요. 형?”

“부적이야.”

내가 손에 든 부적을 보며 중현이가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덕순 여사 말로는 스님이 써 준 영험한 부적이라던데. 과연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뭐.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비주가 준 mp3 플레이어의 이어폰도 귀에 꽂았다.

낡은 mp3 화면이 반짝이더니 자동으로 ‘우주 형 군대’라는 폴더로 넘어갔다.

눈을 감고 노래를 감상하려고 할 때.

♪ 집 떠나와 열차 타고~

바로 껐다.

“아으으……!”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노래에 식겁해서 이어폰을 뺐다.

고개를 돌아보는 매니저들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이내 두 군필자도 웃음을 터뜨렸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비주가 블로그에 올라온 ‘군필자들 좋아하는 노래’ 같은 가짜 정보에 속은 게 분명했다.

한참을 웃던 민기 형이 아침 라디오를 틀어 주었다.

비주의 mp3 플레이어를 고이 넣어 두고는 스마트폰을 들어 검색을 시작했다.

-TBC 사나이가 간다, “이번 게스트는 아이돌”

-사간 PD “전에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특집, 깜짝 놀라실 것”

-위기의 ‘사나이가 간다’, 과연 ‘시청률 하락’ 막을 수 있을까?

전반적으로 시청률 하락 추세인 ‘사나이가 간다’가 이번 특집으로 반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얘기가 많았다.

확실히 제작진에게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번 특집으로 상황을 반전시켜 보이겠다는 듯한 느낌.

사전 미팅이나 중간 촬영을 할 때도 이번 특집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가 느껴졌다.

그런 까닭에 나도 철저히 준비했다.

출연진의 얼굴과 주의사항을 매치시키면서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황을 그릴 때였다.

“늘 느끼는 건데.”

중현이가 간식거리를 뒤적이며 말했다.

“형은 보면 뭐든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그래?”

“네, 밥 먹을 때도 뭐 공부하고. 안 먹을 때도 뭐 공부하고.”

라임이 느껴지는 대사에 웃었다.

“잘해야지. 다른 사람 일도 아니고 우리 일인데.”

“맞아요.”

그러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이번에는 저도 엄청 열심히 해야겠어요. 뼈가 미끌미끌해질 각오로.”

“웬일이래. 우리 김중현이.”

“오늘은 형이랑 저만 있잖아요. 제가 별로 웃긴 편이 아니어서.”

무슨 소리야. 네가 제일 웃겨.

“다른 애들 모가지까지 하려면.”

“몫, 중현아. 몫.”

“네, 그러려면 평소보다 더 잘해야 될 것 같아서요. 아침 먹을 때 그런 결심이 섰어요.”

“너무 걱정 마. 평소처럼만 해도 충분하니까.”

기초 훈련을 받을 때도 S급 훈련병이라는 소리가 나왔다는데,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잘할 것 같다.

계속 ‘잘해야 되는데’ 하는 녀석에게 말했다.

“그럼 나랑 이거 같이 보자. 오늘 나오는 출연진 분들에 대한 주의사항이거든.”

“네, 좋아요.”

“일단 이 분은 내기 골프로 논란이 된 적 있어서, 이 분 앞에서 골프 얘기는…….”

내가 설명하고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영종도의 전경이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   *   *

인천공항 3층 출국장.

약속장소인 승강장에 내리자 미리 대기하던 제작진이 따라 붙었다.

“아침이라 쌀쌀한데, 고생 많으세요. 감독님.”

미소를 짓는 카메라맨에게 물었다.

“해외 간다니까 떨리는 것 같아요. 준비할 것도 많고. 참, 스탭 분들은 여권 걷으셨어요?”

“……?”

잠깐 멈칫하던 카메라맨이 뒤늦게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 반응에 슬그머니 웃었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면서 매니저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했다. 잘 다녀오라는 듯 두 매니저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약속장소인 10번 게이트 안쪽에는 군복을 입은 일곱 남자가 서 있었다.

“아이고! 왔네! 왔어!”

“뉴블랙이 왔네!”

나와 중현이가 웃으며 꾸벅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뉴블랙 우주입니다!”

“중현입니다!”

먼저 도착한 한조에게도 눈인사를 하자 상대가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혼자서 게스트 역할을 하던 게 고역이었던 모양이다.

“여기, 여기 같이 서요.”

“네.”

격한 반가움의 눈빛에 웃음이 나왔다.

사나이가 간다의 출연진이 양쪽으로 셋씩 나눠서 가운데 서 있는 우리를 둘러쌌다.

그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공항에는 시끌벅적한 인파가 가득했다.

여행객, 출장을 떠나는 회사원, 학생들, 운동부, 외국인 등등. 온갖 다양한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갔다.

중간에 멈춰 서는 사람들도 있고.

“어, 뭐야? 촬영?”

“방송 찍는다! 오! 그거네, 사나이가 간다.”

“사나이가 간다야?”

그중에는 나와 중현이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어, 어! 쟤네 뉴블랙, 뉴블랙.”

“와, 셋 다 잘생겼네…….”

“저기 서 있는 애도 멤버야? 되게 차분하게 생겼다.”

그룹을 잃어버린 한조가 슬프게 웃었다.

고정 출연진들도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연예인들 처음 보시죠?”

출연진들이 넉살을 떨며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걸자 곧바로 누군가 태클을 걸었다.

“아우, 쪽팔려. 그만 해요. 우리 보는 게 아니라 여기 아이돌들 보는 거잖아.”

박호범이 창피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날카로운 인상에 마른 근육질, 사간 멤버 중에서 A급 병사 캐릭터를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운동 잘하는 리혁이라고 할까.

사간 멤버들이 곧바로 못 들은 척하는 모습에서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졌다.

“우리 친구들도 그럼 같이 손 흔들까?”

“네, 좋아요!”

“호범이처럼 깐깐하게 살면 안 돼. 우리도 좀 인기에 얹혀 가야지!”

한 편의 꽁트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오랜 시간 합을 맞춘 예능인들답게 저마다 포지션이 나뉘어져 있었다.

여기는 공격, 여기는 수비, 여기는 개드립.

현장 분위기를 빠르게 파악하면서 우리도 같이 상황을 만들어 나갔다.

“감사합니다. 저희 멤버들도 사나이가 간다를 애청하고 있거든요. 지난번에 돌고래 나온 해군 특집 되게 인기 많았어요.”

출연진들에 대한 리액션은 한조가.

“안 그래도 저희가 시청자 분들에게 보여드리기 위해 몇 가지를 짧게 준비하고 나왔거든요.”

뉴블랙과 스트릿 보이즈의 앨범 홍보는 내가.

“비트 주세요.”

개인기나 특이한 건 중현이가 담당했다.

미리 분담을 한 건 아니지만 대강 눈치를 주고받으며 구경꾼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마쳤다.

통통한 얼굴에 안경을 쓴 남자, 이필승이 웃으며 마무리 멘트를 던졌다.

“이 친구들, 매력이 정말 철철 넘치네.”

“감사합니다.”

“오늘 그럼 게스트로서 매력 발산, 기대해 봐도 될까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온화한 맏형 이미지를 맡은 이필승이 웃으면서 제작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 도 피디.”

“예.”

“이번엔 우리 어디로 갑니까? 군대도 아니라고 하고. 그런데 여권은 챙겨오라고 해서 단디 준비하고 왔는데.”

카메라 사이에 서 있던 도준기 피디가 미소를 지었다.

“가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출연진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대체 어디인데 말을 안 해 주는 거야? 이상한 해외 파병 그런 데는 아니지?”

“그러니까. 우리 어디로 가는 건데?”

“해외 가는 게 맞기는 해?”

출연진들이 불신의 눈빛을 보내자 도 피디가 말없이 웃었다.

한 번 맞춰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일단 해외에 가는지 안 가는지부터 다들 설왕설래하고 있을 때, 이필승이 나를 챙겨 줬다.

“우주는 오늘 어디 갈 거 같아?”

“어디 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해외! 저희 해외 한 번 가 보고 싶습니다!”

내가 화이팅하듯 주먹을 들면서 말하자, 한조와 중현이도 가세했다.

“해외 가고 싶습니다! 감독님!”

“가고 싶어yo.”

우리가 분위기를 밝게 띄우자 출연진들도 맞다고 호응해줬다.

“이거 봐. 얘네도 해외 가고 싶어 하잖아! 도 피디, 우리 게스트를 위해서라도 좋은 데 가자.”

“주세한에서도 이번에 하와이 간다며. 우리가 지면 되겠어?”

“뭐, 그래도 시청률상 양심은 있으니까, 발리. 발리나 세부 정도로 타협을 봅시다.”

그 속에서 열심히 리액션을 했다.

하지만 해외에 가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보통 해외 촬영을 가면 스탭들 여권을 일괄적으로 걷는데, 아까 카메라 감독님에게 물었을 때 3초 동안 고민했지.

안 걷었다는 증거였다.

고정 출연진도 눈치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아마 제작진 분위기에서 낌새를 읽었을 것이다.

예능 분량을 위해 다 같이 분위기를 고조시킬 때, 도준기 피디가 입술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해외는 아닙니다.”

“아아아……!”

절규하는 이들에게 피디가 말했다.

“힌트를 드리자면 공항에서 이루어지는 보안 업무와 관련된 곳이에요.”

“보안과 관련된 일?”

“여권은 중간에 필요한 일이 생길 수도 있어서 가져 오라고 한 거고요.”

공항에서 보안과 관련된 일이 뭐가 있을까?

다들 ‘?’ 하는 표정을 지으며 머릿속에 여러 가지 단어를 떠올리는 가운데, 피디가 손뼉을 쳤다.

“자, 그럼 일단 이동부터 하실까요?”

“이동……?”

“예, 가려고 하는 장소가 이 근처에 있어서요. 지금 밖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타시면 됩니다.”

모두가 고개를 돌리니 바깥 승강장 쪽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가 들어왔다.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대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   *   *

버스 안에 긴장이 감돌았다.

공항에서 출발한 차량이 점차 섬 안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골프장을 지나고, 바다가 드러나 보이는 해안가 도로를 지나고, 점점 영종도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한조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저희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러게.”

“우리도 전혀 모르겠는데…….”

차에 탑승하기 전 핸드폰을 반납한 터라 정보를 찾을 길이 없었다.

“영종도에 뭐가 있지?”

“공항 말고 또 뭐가 있나. 소형아, 너 인천 사람 아니냐.”

“인천 사람이라고 영종도 지리까지 아는 건 아니죠.”

“이러다 배 타는 거 아니야? 해외까지 나가야 돼서 여권 챙기라고 한 걸 수도 있잖아.”

“아까 들었잖아요. 공항이랑 관련되어 있다고. 그리고 여기서 배 타고 해외 가려면 녹화 시간도 부족해.”

해외 도착하고 나면 바로 비행기 타고 돌아와야 한다는 누군가의 드립에 웃음이 흘렀다.

중현이가 물었다.

“근데 의외로 안 힘든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말에 모두가 ‘어허’ 하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사간에서 불안과 근심을 담당하는 소심한 인상의 남자, 윤종우가 웅얼거리듯 말했다.

“그건 우리 제작진을 몰라서 그러는 소리야…….”

“여태까지 한 번도 쉽게 간 적이 없지. 도 피디 쟤는 지름길이 보이면 일단 피하고 보거든.”

“근데 공항 보안이랑 관련된 게 뭐가 있지? 마약탐지견이라도 다루고 그러나?”

“군견 교육대 생각나네. 그때 힘들었지.”

“일단 편하게 마음먹읍시다. 우리.”

민머리에 부처 같은 인상의 남자, 민태원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어딜 가든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모든 건 마음먹기 달린 거예요.”

“저 또 시작됐네. 저거.”

“네가 제일 문제예요. 네가.”

“허허, 그건 두고 봐야죠.”

마이 페이스에 성격이 느긋해서 늘 짐덩어리 취급을 받는 예능 캐릭터였다.

그런 이야기가 오갈 때.

박호범의 날카로운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우주는 오늘 어디 갈 것 같아?”

내가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오프닝씬을 공항에서 찍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나중에 여기로 다시 돌아와서 뭘 해야 한다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지.”

“딴 곳으로 간다는 건 거기서 별도 훈련을 받은 후에 공항으로 와서 실습을 하게 된다는 건데…….”

선택지를 슥슥 지워 나갔다.

“일단 군부대를 제외하고, 공항 보안이랑 관련된 일이면 대부분 그 안에 있잖아요. 세관이라든가. 경찰이라든가.”

“맞아. 나 예전에 분실물 찾으러 공항 안에 경찰서 간 적 있었는데.”

“그나저나 거의 다 온 모양인데?”

목적지 근처까지 왔는지 빠르게 달리던 버스가 점점 속도를 줄여 가고 있었다.

그 동안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들과 카메라 앞에서 말을 이어 갔다.

“아무래도 시민들에게 직접 다가가야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가까운 거리에서 어떤 특수한 상황에 필요할 만한 일이…… 엇.”

그리고 그때 내 머릿속에 뭔가 스쳐 지나갔다.

다들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 나 뭔지 알 것 같다.”

“설마?”

“아니겠지…….”

다들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럴 리 없지.”

“맞아요. 거기일 리가 없어요.”

“하하하. 설마 거기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리의 눈앞에 헬기 격납고와 함께 ‘해양경찰’이라는 간판이 지나갔다.

“…….”

“…….”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지나가자 건물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

“아, 제발.”

“도 피디 어디 있어? 저 앞차야? 지금이라도 저걸 들이받아야……!”

실시간으로 모두의 멘탈이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차량이 어딘가의 입구 앞에서 멈췄다.

널찍한 운동장.

그걸 둘러싼 건물들.

여러 가지 훈련장처럼 보이는 모형과 가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

“…….”

모두가 할 말을 잃고 그중에서 가장 큰 건물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벽돌 건물.

그 위에 ‘인천 경찰특공대’라는 글씨가 ‘반가워요’ 하듯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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