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75)화 (27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75화

레몬 엔터테인먼트.

지하 연습실에서 세 아이돌이 올망졸망 앉아 있었다.

“언제 올까여?”

“그러게. 이제 슬슬 걸려 올 때가 됐는데.”

비주가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곧 우주와 중현으로부터 영상 통화가 걸려 올 시간이었다. 제작진이 통화 시간을 준다고 들었다.

“오긴 오겠지? 와야 되는데…….”

5분. 10분.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다. ‘뭐, 오겠지’ 하던 리혁이 마른침을 삼켰다.

“무슨 일 난 거 아니에요? 왜 약속 시간에서 10분이나 지났는데 전화가 안 와?”

“그러게… 무슨 일 있나?”

“공항에 뭔 일 없는지 체크해 봐야겠어요.”

곧바로 태블릿 PC를 들어 열심히 검색을 해 보았지만, 나오는 건 피서객 관련 뉴스뿐이었다.

‘촬영 중에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걱정되는데.’

‘우주 형…….’

머릿속에 온갖 상상이 스쳐 갔다.

남극 세종 과학 기지에 도착해서 추위 속에서 몸을 웅크리는 우주.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의료진과 열심히 뛰어다니다가 풀썩 쓰러진 우주.

외국의 강력한 초등학생들과 싸우다 패배한 우주.

하지만 그런 불길한 상상은 얼마 안 가 부서졌다.

‘우후후훗!’

…하며 그들의 상상 속에 난입한 김중현 때문이었다.

무슨 상상을 하든, 무슨 위기를 그리든 김중현이 나와서 모조리 분쇄해 버렸다.

선우주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깨달은 비주가 밝게 웃었다.

“나 갑자기 걱정 안 되는 거 같아. 얘들아.”

“나도요.”

“저도 그래여. 갑자기 안심. 말 나온 김에 저녁에 안심 스테이크 먹을까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촬영이 지연되는 거겠거니’ 하고 웃고 있을 때.

지이이잉-

핸드폰이 진동하면서 ‘우주 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아아아!”

“왔다! 왔다! 얼른 받아여.”

“자, 잠깐만요! 우리 플래카드 가져와야 돼.”

주섬주섬 플래카드를 챙긴 그들이 핸드폰을 거치대에 세워 두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짜잔!”

‘와아아아’ 하며 플래카드를 흔드는 그들의 모습.

-…….

하지만 화면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열심히 춤까지 췄는데 미미한 반응이 돌아오자 그들이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옴마……?”

지호가 손을 들어서 입을 가렸다.

“우주 형? 우주 형이에여?”

-…안녀어어엉.

어딘가 살짝 쉰 듯한 목소리.

화면 속에 굉장히 늙어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하루 새에 노화가 진행된 듯한 모습이다.

비주가 핸드폰을 잽싸게 들어 얼굴을 가까이 댔다.

“형!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나도! 나도 볼래요! 괜찮아요? 누구야? 누가 그랬어요?”

-그. 얘들아.

우주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웃었다.

-너희 목소리가 너무 울려어…….

“헛.”

그들이 속삭였다.

“됐어요?”

-그냥 평소처럼 말해.

“중현이는 어디 갔어요. 형?”

-중현이 여기.

핸드폰 화면이 돌아가더니 내무반 평상에 널브러진 우주의 다리를 중현이 주물러 주고 있었다.

중현이 푸근한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하이.

몹시 건강해 보였다.

그럼 그렇지, 하던 그들이 다시 화면을 가득 채운 선우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형 지금 어디에요?”

-경찰 특공대.

“…….”

-군대가 아니긴 하더라. 여러모로.

이어서 특공대에 전입 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대강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주의 설명이 이어졌다.

“저런…….”

“그러게. 내가 눈에 띄지 말라고 했잖아요. 적당히 하면 중현이 형이 눈에 띄어서 저쪽이 더 괴로워질 거라고.”

“잔소리 좀 그만해여. 형. 저기 이마 주름 생긴 거 안 보여여? 하루 사이에 더 늙었잖아여!”

-넌 편들어 주는 거니. 때리는 거니. 지호야…….

“전 언제나 형 편이에여.”

-글쎄다. 형편없는 동생에 더 가깝긴 한데.

“아. 형!”

상대가 키득거렸다.

잔뜩 고생한 얼굴을 보고 걱정했는데 웃는 모습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상대가 진짜 힘들 때 아닌 척하는 거랑, 그래도 해 볼 만할 때 짓는 표정은 엄연히 다르니까.

동생들이 반가웠는지 굳어 있던 우주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그들이 신나서 수다를 떨었다.

“응응, 한조 씨가 밧줄 타는데 주르륵 내려왔다니까. 스트릿 보이즈한테 이따가 꼭 전해. 흉봐달라고.”

“저만 믿어여.”

“그리고 중현아. 너 아까 그거 근육 얘기해 봐.”

밧줄 타기 때 벌어졌던 ‘정밀 검진 받아 봐’ 드립에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분량을 많이 땄구나.’

예상대로 1일 차부터 분량을 많이 딴 모양이었다.

그리고 막내의 눈을 휘둥그레진 일이 있었으니.

“……뭐라구여? 옷? 그 특수부대 옷도 입어여?”

-응, 이따 나눠 준다더라. 부럽지?

“우와아아!”

-부럽냐?

“우와아아아! 당연하져! 그거 진짜 입으면 개간지인데… 그 까만 옷 말하는 거잖아여.”

숙소 돌아오면 한 번 입게 해 달라고 애걸하는 막내에게 우주가 거기 있는 형들 말 잘 들으라는 말을 했다.

“꼭 잘 들을게여.”

-어차피 안 들을 거 알지만, 그래도 듣기는 좋네.

-그러게요.

막내를 보며 우주와 중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들도 같이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고, 중현이 우주의 뒤에서 뚱땅땅땅 안마를 해 줄 때였다.

-참. 얘들아. 형이 오늘 중요한 걸 깨달았어.

“중요한 거요?”

-내가 미안하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요? 그중에서 어떤 거?”

-중현아. 쟤 좀 끌… 아, 끌고 갈 수가 없구나. 담당하는 애가 여기 있네.

우주가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오늘 중요한 걸 깨달았거든. 그동안 너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헤아려 주지 못했다고 할까. A&R 팀도 그렇고. 나상윤 작곡가님도 그렇고. 우리 고 이사님도 그렇고…….

고 이사님은 또 누굴까.

-정말 이번에 큰 깨달음을 얻었어. 나만 즐거울 게 아니라 모두가 즐거워야 했음을.

무슨 말인지는 대강 이해했는데, 갑자기 왜 저런 말이 나오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간의 잘못을 참.

띠롱.

“……?”

통화가 종료됐다.

“잘못을 참?”

“참? 참회?”

“참참참?”

다시 걸어 보았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알림만 들릴 뿐이었다.

약속된 통화 시간이 다 끝나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들이 아쉬움을 가득 머금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근데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여.”

“이상하긴 해. 안 하던 사과를 하고.”

“우주 형 사과 잘하잖아여.”

“늘 영혼 없는 사과잖아. 방금은 진심이었어.”

“아… 그러네여. 올. 우리 리혁이 예리해~”

투닥투닥대는 동생들을 바라보며 비주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뭐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막 슬픈 얼굴로 횡설수설한 것만 기억난다.

둘리 어쩌고 했는데.

고민을 해 봤지만 결론이 나지 않자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얘들아. 연습하자.”

“흐어어…….”

소심하게 반항하는 동생들을 붙잡고 끙끙 일으키면서 속으로 결심했다.

‘우주 형이랑 김중현이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여기서 편하게 쉬고 그럴 순 없지.’

힘들 거라면 공평하게 다 같이 힘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비주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주가 들었다면 군대 마인드라고 감탄할 발상이었다.

*   *   *

아쉬움 속에 통화를 끝냈다.

마무리라도 하고 싶었지만 녹화 시간이 지연된 관계로 일정이 빠듯한 탓이었다.

레펠 훈련이 끝난 후.

특공대 소속 의경들이 생활하는 내무반에 들어와서 짐을 풀었다.

“흐어어…….”

이어서 샤워장에서 따뜻한 물을 맞으며 씻으니 꿀맛도 이런 꿀맛이 없을 수 없었다.

격한 운동을 하고 난 후 특유의 개운함이라고 할까.

머리를 말리고 나오는 표정들이 다들 비슷했다.

“씻고 나니까 살 것 같네.”

“어유, 아까까지만 해도 흙먼지 괴물 같았는데 이제는 다들 사람 같네.”

“목욕탕 식혜 마시고 싶다.”

군대 내무반처럼 양쪽으로 나뉜 평상에 앉아서 서로 마주 보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오늘의 훈련이 끝난 덕에 화기애애하고 편한 분위기.

메인 카메라 두어 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관찰 카메라인 터라 부담도 적었다.

경찰 마크가 달린 반팔 티와 활동복 바지를 입은 채 앉아 있을 때.

“안녕하십니까.”

굵직한 목소리와 함께 흑복을 입은 두 남자가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까무잡잡하고 앳된 얼굴. 특공대 소속 의경이었다.

“오오……!”

“여기 의경 선임들이시구나. 어유, 안녕하십니까.”

군대 예능에서 부대 선임병을 보면 그러하듯 모두가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데, 저쪽에서 민망해했다.

하긴 3, 40대 아저씨들이 ‘안냐십니까’ 하는데 안 부담스러울 20대가 있을까.

보통 사간에서 이런 장면 나오면 선임병들이 ‘선임이 들어왔는데 제대로 인사 안 합니까?’ 이런 한마디하고, 다들 얼어붙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 나오고 그러던데.

경찰이라 그런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너무 각 잡고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 그렇게 군기 잡고 그러는 분위기 아닙니다.”

“아. 그렇습니까?”

올해 49세인 맏형 이필승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두 분 말고 다른 분들은…?”

“아, 여기 저희 둘만 씁니다.”

“……?”

“특공대에선 딱히 의경이 할 일이 없어서. 저희 둘만 이 내무반을 쓰고 있습니다.”

오. 신기하네.

우리가 경청하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질문을 시작했다.

“여기서 하는 일이라고 하면…?”

“아, 저희 둘은 핸들러 일하고 있슴다.”

“핸들러?”

“견사에 폭발물 탐지견들이 있는데, 그런 견들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수 보직이었네!”

다들 추임새를 넣으며 경청했다.

처음에는 카메라 앞이라고 쭈뼛쭈뼛하던 의경들이 베테랑 방송인들의 호응으로 금세 편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둘 다 개와 관련된 학과 출신으로 자격증이 있다나.

어쩐지 옷에도 개털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핸들러, 신기하네.”

“호오. 군견 교육대 간 적 있었는데, 거기랑 똑같은 일을 하는 거군요?”

“……가만 있어 봐. 우리도 모레 핸들러 관련 훈련 있지 않나?”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와 같이 하게 될 겁니다.”

“오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아저씨들이 기대하는 눈빛에 의경들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 박호범이 물었다.

“혹시 이중에서 아는 연예인 있습니까?”

“어, 저희가 사간은 잘 안 봐서…….”

두 의경 중 선임이 나를 흘깃거렸다. 그 시선을 따라 모두의 고개가 나와 중현이에게로 돌아왔다.

“우리 우주를 압니까?”

“제 동생이 좋아하는 그룹이 뉴블랙입니다.”

“사이좋은 남매네. 취미생활도 알고.”

누군가의 말에 다들 웃을 때 내가 나섰다.

“감사합니다. 동생분에게 어떻게 나중에 제가 영상 통화라도…….”

“그건 걔 하는 거 보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 남매 비즈니스 사입니다’ 하며 드립을 치는 의경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민태원이 물었다.

“그럼 우리 상병….”

“상경입니다.”

“우리 상경님도 뉴블랙 좋아하십니까?”

“전 걸 그룹 좋아합니다.”

당연하지 않냐는 듯 단호한 대답에 우리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어느 그룹 좋아하냐는 말에 ‘다 좋습니다’ 하고 수줍게 웃는 군인이었다.

그렇게 특공대 소속 의경과 친목을 다지며 방송 분량을 만들 때.

달칵.

문이 열리더니 전술 1팀 대원들이 들어오면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오래들 기다리셨네.”

고광순 경사가 큼지막한 박스를 품에 안고 왔다.

내용물이 공개되자 모두 눈을 크게 떴다.

“흑복……!”

“흑복이다!”

각자의 이름이 적힌 흑복 상하의가 두 벌씩 비닐에 싸여 있었다.

“우와…….”

‘선우주’ 밑에 ‘Sun’이라고 성씨까지 쓰여 있다.

새 옷에 모두가 설레는 동안 고 경사가 말했다.

“이제 그 옷을 입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특공대의 일원이 되는 겁니다.”

“예!”

“옷이 엄청 예쁘죠?”

우리가 ‘예!’ 하고 대답했다. 다들 신이 나서 그런지 ‘예이!’ 처럼 들렸다.

내용물을 꺼내 몸에 대보라는 말에 비닐포장을 뜯을 때.

“어……?”

우리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검은색.

분명 살짝 물 빠진, 왠지 모르게 입기만 해도 전투력이 +100 정도 되어 보이는 천옷이다.

그런데 색이 미묘하게 달랐다.

의경들과 특공대원들이 입고 있는 흑복은 조금 더 검은 물이 빠진 느낌이라고 할까. 물론 세탁할 때마다 점점 흐려지는 거야 당연하지만 뭔가 느낌이 달랐다.

한조가 손을 들었다.

“저, 그런데 색깔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죠?”

고 경사가 미소를 지었다.

“걱정들 안 하셔도 됩니다. 며칠 데굴데굴 구르면 금세 우리 것처럼 예쁘게 될 테니까.”

“…….”

“백조가 아름다운 것은 밑에서 다리를 파닥파닥해서 그러하듯, 흑복이 아름다운 건 구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명언이라 할 말을 잃었다.

옆에 선 두 의경이 정말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

모두 눈물을 머금고는 옷을 입어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고 경사가 내게 다가왔다.

“아이고, 8번. 우리 우주는 마지막 날에나 보겠네.”

“마지막 날 말입니까?”

“우리가 로테이션으로 교육을 하거든. 오늘은 1팀, 내일은 2팀. 그런 식으로 3팀까지 하면…….”

그렇게 3박 4일의 마지막 날이 되어야 다시 자신들과 만나게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지옥 같았던 1팀과의 시간이 끝났다는 소리에 모두가 환해질 때.

특공대원들이 중얼거렸다.

“큰일이네.”

“2팀 사람들 진짜 독한데. 거기 별명이 ‘독사’인 친구가 있습니다.”

“독사……?”

모두가 흠칫했다.

“야유회 때 독사한테 물려 가지고.”

“그때부터 애가 좀 이상해졌어.”

거침없는 드립에 다들 사레가 들렸다.

웃기는 말을 전혀 안 웃기는 표정으로 하니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어쨌거나 내일 2팀이 훈련을 맡는데, 내가 잘 말해 두었으니 너무 걱정들은 마시고.”

“마지막 날에 다 같이 봅시다.”

고생하셨다며 다 같이 서로를 향해 박수를 쳤다.

다시 시끌시끌해질 때, 고 경사님이 다가왔다.

“아이고. 우리 8번 더 가르쳐야 되는데…….”

“아닙니다. 전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8번은 정말 내가 본 최고의 신입 중 하나야.”

신입이요? 제가 언제요?

“볼 때마다 조카 같고 그러네. 포옹이나 한 번 할까?”

“예…….”

조카를 그렇게 굴리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래도 미운정이 들었나 보다. 포옹하는 교관님의 품이 따뜻한 걸 보면.

그때 내 호주머니에 뭔가가 부스럭 들어왔다. 느낌상 비닐에 싸인 초콜릿 같았다.

“혼자 먹어~”

느끼한 미소로 윙크를 하는 고 경사님에게 내가 경례를 했다.

감사합니다. 삼촌.

이따 중현이랑 한조랑 몰래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 특공대원들이 내무반을 나섰다.

“자자! 이제 옷 갈아입어 봅시다!”

“와아아!”

다들 신이 나서 흑복으로 갈아입었다.

특공대원처럼 변신한 아저씨들과 다 같이 패션쇼 런웨이도 해 보고, 카메라 앞에서 자세도 취해 보고.

취침 시간 전까지 즐겁게 분량을 만들 때 한조가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뭐가요?”

“1팀 분들 바뀌고 나면 그래도 오늘보단 낫지 않을까요?”

“그러겠네요.”

한조의 말에 내가 하하 웃었다.

정말로 해방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즐거운 1팀과는 다르게 까칠하고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독사’ 교관이 연병장에 집합한 출연진을 바라보았다.

“지금 숨소리 큰 거 누굽니까아아악……!”

삑사리.

“……크흡.”

“이빨 보이지 않습니다아아악!”

웃지 말자. 웃지 마.

“1팀은 여러분을 즐겁게 해 줬을지 모르지만 저는 어림도 없습니다. 저 독사! 여러분을… 지금 웃음소리 누굽니까? 당장 저 봉 찍고 옵니다아아악!”

본인은 겁을 주고 있지만 전날 ‘독사’의 유래를 들어서 그런지 다들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금세 웃음기를 거둘 수 있었다.

“참.”

선글라스를 낀 교관이 두리번거렸다.

“이중에 8번이 누굽니까?”

“…….”

“8번이 PT 맛집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1팀이 말하던 그 교육생, 누굽니까?”

“…8번 교육생 선우주!”

허공으로 뻗은 내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이따 시범할 때 부르겠습니다.”

“…….”

허공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해방인 줄 알았는데 옘병이었다.

*   *   *

둘째 날의 아침은 역시나 구보와 PT로 포문을 열었다.

“군가한다! 군가는 전우!”

“전우!”

“1절만!”

“겨레의 늠름한… 허억! 허억!”

아침밥이 넘어올 만큼 힘든 달리기.

하지만 PT라든가, 전반적으로 훈련 강도는 1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았다.

오늘은 정말 할 만했다.

확실히 대부분의 훈련이 그러하듯 첫날이 제일 힘들고 괴롭고 짜증나고 눈물나고 화가 나지, 둘째 날부터는 사람이 할 만한 수준이었다.

훈련 내용도 흥미로웠고.

“자, 여러분들. 지금부터 한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테러 가능성과 그 위협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입담 좋은 폭발물 처리반 사람들의 강의도 열심히 듣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실제 특공대원들의 훈련도 참관했다.

“우와아아…….”

지상파 방송국에서 촬영을 한다는 이유 때문인지, 제대로 홍보를 하겠다는 듯해 보였다.

특공대장까지 와서 참관한 가운데 실제 EOD(폭발물처리반) 훈련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방호복을 입은 특공대원들이 조심스럽게 폭발물을 해체하고.

커다란 기계가 인형 뽑기처럼 폭발물을 조심스럽게 들어서 둥그런 통에 집어넣었다.

폭발물을 안전하게 폭발시키는 컨테이너였다.

파아아앙-!

스파크와 연기가 튀며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실제 같은 풍경에 우리가 넋을 놓고 손뼉을 쳤다.

“우와아아…….”

독사 교관이 우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방금 소리 들었습니까?”

“예!”

“소리 듣고 무슨 생각이 들었습니까? 거기 9번.”

테러에 대한 경각심이라거나 그런 걸 물은 것 같은데, 역시 우리 애는 남들과 달랐다.

“시청률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푸흡-!”

“지금 웃음소리 누구야아아아악! 봉 찍고 옵니다아아악!”

다 같이 숨을 헉헉대며 달리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시청률이 올라갈 것 같다.

정말로 그랬다.

둘째 날밖에 안 됐긴 했지만 방송 분량이라든가. 나오는 떡밥의 양이 심상치가 않았다.

다들 겉으로는 말 안 해도 ‘이거 된다.’ 하고 느낀다고 할까.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하루 만에 환해진 제작진의 얼굴이라든가.

이렇게 기합을 받으면서도 행복해 하는 사간 멤버들의 반응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방송인에게 있어서 지상 최대의 행복은 시청률 상승이니까.

“자, 이번 훈련은 CQB. 근접 격투 훈련입니다.”

특공대원들이 사용하는 체육관.

독사 교관이 힘줄 가득한 팔 근육을 자랑하며 말했다.

“실제 테러리스트나 인질범 등을 조우했을 때, 여건상 무기를 쓰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럼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당연히 육탄전으로 제압해야 합니다.”

“오오……!”

휙휙, 허공의 상대를 향해 동작을 취해 보이는 독사 교관의 모습에 모두가 눈을 빛낼 때.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겠습니까? 실습을 하기 전에 시범부터 보여 주겠습니다. 8번!”

“예!”

“나와서 본 교관이랑 시범 보입니다.”

내가 긴장한 얼굴로 앞에 서자, 독사 교관이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교육생. 본 교관은 절대 교육생을 다치게 하지 않습니다.”

“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

“지금부터 교육생은 본인을 범인이라고 가정합니다. 지금처럼 눈앞에 경찰이 보이면 어떻게 합니까?”

“일단 도망치고 훗날을 기약합니다!”

“그래. 도망… 아니!”

납득하던 독사 교관이 소리를 빽 질렀고, 다들 웃음을 참았다.

분위기상 또 봉 찍고 오라고 할 삘인데 실내라서 철봉밖에 없었다.

중현이가 ‘역시 넌 나의 형제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조도 ‘둘은 형제구나’ 하듯 바라보았다.

독사 교관이 자세를 굽히더니 허벅지를 탁탁 치며 말했다.

“자, 본 교관을 제압하겠다. 그런 범인의 각오로 달려듭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절대 안 다치게 해 주겠습니다.”

“……예.”

제압 기술을 보여 주겠다는 이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이러다 내가 제압해 버리는 건 아니겠지?

아니다.

저쪽은 베테랑 특공대원.

미튜브 같은 걸 보던 나와는 차원이 다른 레벨이다. 나를 제압했으면 제압하겠지.

“뭐합니까?! 겁이라도 난 겁니까?”

“아닙니다!”

“당장 뛰어옵니다. 당장 와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상대를 향해 뛰어들었다.

상대가 ‘그래! 바로 그거야!’ 하는 희열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기억하는 독사 교관의 마지막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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