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79화
‘사나이가 간다’ 출연진이 공항에서 순찰을 돌고 있을 때.
출국장 동편은 LA로 출국하는 아이돌들로 인해 시끌벅적했다.
“나현 씨! 나현 씨!”
“여기 봐 주세요. 여기! 예! 여기요!”
“손 내려 주세요!”
횡단보도부터 시작된 포토 타임은 아이돌이 항공사 수속을 밟으러 갈 때쯤 끝났다.
“안녕하세요!”
예의 바르게 인사하던 가을소녀의 멤버들이 팬들을 몰고 항공사 카운터 대기 줄에 서자, 사진 기자들이 구석진 곳에 모여 숨을 골랐다.
“어우,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사진은 잘들 건졌어요? 나 아까 찍을 때 어떤 애가 밀쳐서 흔들린 것 같은데.”
“으음, 애매한데…….”
기사로 낼 만한 사진을 추려 내던 기자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출국 길도 이제 끝물이죠? 가을소녀 팬들 빠지고 나면 꽤 한산해질 텐데.”
“아직 하나 더 있어요. NYX.”
“아. 걔네도 찍어야죠.”
NYX.
뉴블랙의 후임으로 명곡단에 들어간 TJ 엔터의 걸그룹은 최근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다행히 곧 NYX까지 도착하면서 기자들은 마침내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다들 카메라 가방을 주섬주섬 챙길 때.
“아…….”
누군가의 탄성에 기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요?”
“잘못 찍은 사진이 무더기로 나와서요.”
“어디 봐요.”
원래는 K팝 콘서트 MC를 맡은 데이드림의 앤드루가 찍혀야 할 사진이었다.
그러나 정작 앤드루는 가장자리에 있고, 오히려 제3의 인물이 가운데 찍혀 있었다.
붉은 베레모 아래 얼굴을 가린 특공대원.
사진을 본 모두가 웃으며 납득했다.
“실수할 만했네.”
“저도 아까 이 사람 지나가는데 눈이 확 가더라고요.”
“나도, 나도. 아까 들고 있던 카메라 렌즈가 나도 모르게 이렇게 스윽 움직였어요. 워킹하는 거 따라서.”
단순히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게이트 앞에 서 있던 아이돌 팬들도 덩달아 고개를 돌릴 만큼 임팩트가 강했으니까.
‘카메라도 있던데. 무슨 다큐 촬영 중인가?’
창사 몇 주년 특집 ‘경찰 특공대 편’ 같은 걸 떠올리던 기자들은 이내 울상이 된 인물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아이고. 사진 그거 다 못 쓰겠네.”
“그러니까요…….”
“그래도 뭐 혹시 모르잖아요. 아까 그게 진짜 연예인일 수도 있고. 경찰 특공대 체험 프로 이렇게 해서.”
해당 기자가 ‘그랬으면 좋겠네요’ 하며 힘없이 웃었고, 다들 가방을 메고 떠날 때였다.
“어……?”
누군가 핸드폰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뭐, 특종이라도 터졌어요?”
“방금 SNS에 올라온 제보 글 봤어요? 사나이가 간다 출연진들이 게스트랑 같이 공항 돌고 있대요.”
“어, 언제요? 아니, 어디요?”
카메라 가방의 지퍼를 다급하게 열던 기자들이 이어진 말에 행동을 멈췄다.
“이미 철수했나 봐요. 아까 가을소녀 출국할 때쯤.”
“아…….”
“그런데 찍힌 사진들 보니까 복장이…….”
“복장이?”
“직접 확인해 보세요.”
SNS 앱을 들여다본 기자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특공대 옷을 입고 순찰을 돌고 있는 사간 출연진의 모습이 보였다.
중간에 정체가 밝혀졌는지 민태원과 스트릿 보이즈의 한조가 마스크를 내린 채 손을 흔드는 사진도 있다.
“얘 스트릿 보이즈 걔 맞죠? 잠깐만, 그럼 이번에 출연진이…….”
“게스트! 그! 걔네!”
“뉴블랙! 아이고! 바로 앞에서 놓쳤네! 걔네는 놓치면 안 되는 애들인데!”
허공을 보며 탄식하던 기자들은 불현듯 무언가 머릿속에 스쳐 가는 걸 느꼈다.
‘잠깐만…….’
모두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그 시선이 향한 곳에는 방금 전까지 울적한 표정을 짓던 기자가 ‘어!’ 하고 있었다.
“아까 지나간 사람 뉴블랙 우주 맞죠?”
“자, 잠깐만. 그럼 나도.”
“저도 확인해 봐야겠어요.”
기자들의 소란을 들었는지 자리를 뜨던 아이돌 팬들도 하나둘 멈춰 섰다.
“뉴블랙 우주?”
“우주? 아까 우주 지나갔대?”
“헐, 코난 범인처럼 가리고 있던 애가 걔였어?”
기자들과 아이돌 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숨은 우주 찾기를 진행하고 있을 때.
“어, 찾았다……!”
인터넷에 올릴 거리를 찾았다고 기뻐하던 기자들과 팬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
“…….”
누군가의 말이 모두의 심경을 대변했다.
“근데 이거 뭐라고 올려야 돼요?”
* * *
30분 후.
LA로 출국하는 아이돌에 대한 기사와 함께 ‘사나이가 간다’에 관한 기사가 올라왔다.
그들이 경찰 특공대와 함께 공항 순찰을 돌았다는 소식과 함께 올라온 포토 뉴스.
-[포토] ‘숨은 우주 찾기’ … 사진 속 우주를 찾아보세요
-[포토K] ‘오늘은 특공대원’, 뉴블랙 우주 공항에서 미모 감췄네
-본 기자는 적절한 제목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feat. 뉴블랙 우주)
-[포토뉴스] 공항 속 특공대, ‘간절히 바라보면 우주가 보인다’
-“암행어사 지나가셨네” 뉴블랙 우주, 미모 과시 안 함
-[동영상] ‘빨간 동그라미’가 우주입니다
드립력이 폭주하는 제목들에 아이돌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출국하는 아이돌의 사진마다 검은 괴인이 심령사진처럼 뒷배경에 출몰해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진ㅋㅋㅋㅅㅂ
-블러 처리된 거 어떻게든 살려본거같은데 뭔가 더 웃겨ㅋㅋ 아이돌의 정령인 줄
-왤케 아련해
-우주 : 그래.. 잘 성장했구나.. (소멸)
-진짜 아침부터 개터졋넼ㅋㅋㅋ
-아이돌이 얼굴을 숨김ㅋㅋㅋㅋㅋㅋㅋ이거 기자 누구냐
-무슨 범죄자처럼 만들어놨냐구ㅠㅠㅠㅌㅋㅋㅋ
-동영상이 더 웃김ㅋㅋㅋ 사건사고영상인줄ㅋㅋㅋ
뉴스 사건 사고 영상처럼 이동하는 우주에게 빨간 동그라미를 친 동영상도 있었다.
이어서 올라온 홈마들의 사진에도 다들 웃음이 터졌다.
숨은그림찾기처럼 활짝 웃는 아이돌들의 뒤에서 카메라를 아련하게 응시하는 선글라스 괴인이었다.
-지나가면서도 카메라란 카메라는 다 보고 갔구나..
-프로 아이돌ㅋㅋㅋㅋㅋㅋ
-근데 난 봐도봐도 저게 우주인지 모르겠음;
-인정. 어린왕자에서 상자 그려주고 옛다 양 세 마리 하는 느낌ㅋㅋㅋ
-근데 보다보면 보여
-누구나 마음속에 우주 하나씩은 품고 있는 거자나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함
-야 매직아이로 보면 우주 얼굴 나온다고 한 애 누구야 나와
-숯불들아 이번 떡밥에 대한 소감은 어떠하니
당연하게도 수플레들은 화들짝 놀라는 중이었다.
-돌덕질 10년차. 단언코 말할 수 있어요. 우리 애들은 정말 뭐가 나올지 모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222 맞말
-333333333
-좋은 게 계속 나오는데 전혀 예측이 안 되네;
-‘우리 애들 덕질은 랜덤박스와 같다 명언.jpg’
-타팬들 : 숯불들아 니네 애 공항에서 순찰돈다 / 나 :
-과거의 나한테 말하면 미친줄 알겠지.. 니 최애가 1년뒤 공항에서 암행어사 하고 있다고
-친구 스보 팬인데 한조 짤 보고 ‘이게 바로 너희가 느끼는 기분이구나’ 해서 개터짐
-근데 특공대 핏 넘 사기다..
-중현아ㅠㅠㅠㅠㅠ 중현이 핏 미쳤다 ㄹㅇ 특공대원같아
-우리 셋째 피지컬은 봐도봐도 경이롭고 짜릿하고 행복하고
-중현아 너 발견해서 사진찍은 사람 누구니 얼른 상줘라
-치명상
-ㅋㅋㅋㅋㅋㅋ혼절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주는 왜 발견한 사람 없냐구ㅠㅠㅠㅠ 너무 예뻐.. 해주고 싶은데 검은색 밖에 안 보인다구ㅠㅠㅠ
-사진이 떴는데 눈코입이 없네
-정말 뉴블랙이네ㅎㅎ 여태까지 없었던 블랙이야
새로운 떡밥을 받아든 수플레들이 ‘이거 먹는 건가’ 하고 있을 때.
레몬 엔터 홍보 팀은 당황스러워 하는 중이었다.
“우주가 공항에서 순찰을 돌고 있다고요?”
“특공대랑 같이요? 어… 저희에게도 새로운 사실이네요.”
“예능 관련해서는 제작진 측에 문의해 주세요. 저희 측은 비밀 엄수를 부탁받아서.”
기자들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마다 직원들은 눈을 깜빡거렸다.
특공대에 갔다는 것까지는 매니저 통해 전달받아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돌들의 출국 사진에 찍혀서 화제가 될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얘는 뭘 하고 다니는 거지.’
‘우주야. 너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니.’
‘역시 홍보 요정이다. 우리 애.’
한편 ‘우주를 찾아라’ 같은 사진들이 대거 업로드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나이가 간다’에도 시선이 집중됐다.
도대체 다음 특집에서 뭘 하기에 이런 사진들이 나오나 하는 반응.
당연히 방송국 입장에선 기쁠 따름이었다.
“시청률이다! 시청률!”
“하하하하!”
사나이가 간다의 도준기 PD와 제작진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언플 성공이다! 언플!’ 하며 좋아할 때.
“…….”
“…….”
연습실에 모인 뉴블랙의 멤버들은 우주와 중현의 사진을 보며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우주 형?”
형이 왜 거기 있어요?
* * *
출연진들이 모인 버스가 시끌시끌했다.
“이거 봐요! 뉴스 엄청 떴어!”
“오, 진짜. 진짜.”
“푸하하! 우주 뉴스 제목 봐! 대박이야!”
순찰을 끝내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피디님이 건네준 태블릿 PC로 바깥소식을 접하는 중이었다.
“사진 진짜 많은데?”
“이야. 그중에 90프로가 우주 사진이야.”
“우주야. 잘했다.”
묘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듯한 괴인의 사진에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나도 내가 이렇게 많이 찍혔을 줄은 몰랐다.
카메라 렌즈만 보이면 웃으며 쳐다보는 직업병 때문에 그런 것 같긴 한데 이 정도일 줄이야.
한편 다른 출연진들이 찍힌 사진도 꽤 많았다.
“뭐야. 나 왜 이렇게 배 나오게 찍혔어?”
“배가 나와서?”
“야! 조소형! 푸흡……!”
출연진들끼리 티격태격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홍보 제대로 했네. 진짜.”
“그치? 이러면 사람들이 궁금해서 방송을 볼 수밖에 없다니까.”
“잘됐어. 정말. 그동안 홍보해야 한다고 얼마나 마음 졸였냐. 우리.”
다들 정체를 숨기긴 했지만 내심 사람들이 알아보길 바라던 터였다.
혼잡한 시간대에 ‘우리 연예인이요’ 하며 돌아다닐 경우 잘못하면 욕을 먹을 수도 있었다.
실제 특공대의 업무 중 하나인 위력 순찰을 체험하는 게 취지인데, 다른 쪽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랬기에 다들 숨기면서도 알아봐 줬으면 하던 눈치였다.
나와 중현이, 한조는 못 알아봤지만, 대중성 좋은 프로그램답게 사나이가 간다 출연진을 알아본 사람들이 많은 듯했다.
그 덕에 사간 출연진들의 어깨가 솟구치고 있었다.
“에헴. 보았느냐. 아이들아.”
“이게 바로 우리야.”
“어딜 가든 연예인은 드러나기 마련이라니까. 꽁꽁 싸맸는데도 어쩜 다들 알아보는지…….”
우리가 키득거리자 저쪽도 흐핫핫 웃었다.
자기가 나온 사진들을 하나둘 품평하는 이들을 둘러보며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리 애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으려나?
지호는 보나 마나 ‘저 옷 어디서 사지’ 하고 검색 중일 거고, 리혁이는 사진 확대해서 총기 안전장치가 제대로 걸려 있는지 확인하고 있을 테고.
비주는…….
“왜 그래요. 형?”
“비주가 우리 사진을 저장하고 있을까. 안 하고 있을까.”
“동영상 움짤까지 만들지 않을까요.”
“뭐야. 걔 이제 움짤도 만들 줄 알아?”
“제 상상 속에선 가능한데, 아마 못 할 것 같긴 해요.”
“……?”
무슨 말인지 해석이 안 돼서 포기했다.
“부럽네요.”
옆에 앉은 한조가 말했다.
“……지금쯤 우리 멤버들은 어떻게든 절 까려고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을 텐데.”
“다들 그만큼 아끼니까 그런 거죠.”
“역시 그런 거겠죠?”
“거기다 놀려 먹는 재미도 쏠쏠…….”
나를 째려보는 표정에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버스에서 땀을 식힌 뒤 녹화를 이어 갔다.
특공대와는 저녁때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고, 우리는 제작진과 함께 공항을 투어했다.
시청자들에게 평소 공항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사람들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공항에서 일어나는 각종 형사 사건을 전담하는 공항 경찰대.
공항공사의 항공보안처 직원들.
평시 순찰을 도는 외부 인력들과 EOD.
마약이나 위험한 물품의 밀반입을 감시하는 세관.
마지막으로는 응급 환자가 발생 시 출동하는 119 구급 팀까지.
곳곳을 방문하며 그곳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분량을 만들 때마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우와아…….”
“공항에 숨겨진 데가 이렇게 많았네.”
“나는 오늘 처음 들어 본 데가 대부분이야. 경찰서 정도만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해외 활동 때문에 출입국만 할 때는 몰랐던 공항의 비밀이 하나둘 카메라 앞에 밝혀지고 있었다.
국정원과 검찰 같은 몇몇 기관은 보안 때문에 촬영을 못 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웠다.
중현이와 나도 뒤에서 속닥거렸다.
“신기하다.”
“되게 비밀 장소 탐방하는 거 같아요.”
“그치? 우리 돌아가면 애들한테 자랑하자. 공항에서 아무나 못 가는 데 보고 왔다고.”
“저 김비주한테 엄청 자랑할 거예요.”
우리가 의기투합하며 히히 하는 동안, 도준기 피디가 출연진에게 말했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장소인데요. 여기서 거리가 먼 곳이라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뭐야. 우리 또 버스 타?”
“네.”
“아이… 또 어딜 데려가려고.”
도 피디가 싱긋 웃었다.
“여권 챙겨 오라고 한 거 기억하시죠?”
“그, 그랬지.”
“이제부터 갈 곳에는 여권이 필요하거든요.”
“뭐야. 어딘데?”
웅성거리던 출연진이 어디냐며 재촉했지만 상대는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또 어디 이상한 데 가는 건 아니겠지?”
“아, 불안하게 왜 그래.”
“이번엔 해경 특공대인가? 배 타고?”
조소형의 농담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
“죄송합니다.”
“…….”
다들 끄덕끄덕했다.
하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상한 곳에 가는 건 아닌 듯했다.
우리가 탑승한 버스가 곧바로 공항 주변을 돌더니 어떤 입구로 들어갔으니까.
검문소에서 여권을 확인하더니 통과시켜 준 그곳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였다.
“오……!”
바로 계류장.
터미널 바깥에 비행기들이 주르르 늘어선 그 공간이었다.
평소 비행기 탈 일이 많았다는 출연진들도 점점 공항 터미널과 거리를 벌리자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히어로 영화에 나올 법한 지하 터널도 이동하고. 견인차들이 일렬로 모인 곳까지 지나갈 때 이필승이 말했다.
“방금 도 피디한테 얘기 들었는데, 여기 들어오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된대.”
“아, 그래서 여권을 들고 오라고 했구나…….”
“그냥 신분증 들고 오라고 하지.”
“그럼 낚시를 못하잖아.”
“그건 또 그러네. 준기의 큰 뜻이었나.”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는 거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버스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공항에서 늘 유리 너머 멀찍이 바라보던 거대한 탑이 눈앞에 우뚝 솟아 있었다.
바로 관제탑이었다.
어지간한 아파트는 찜 쪄 먹을 만한 높이에 다들 입을 떡하니 벌렸다.
“엄청 크네…….”
“이거 작을 줄 알았는데 엄청 크구나.”
차량에서 내리자 도 피디가 우리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곳은 정말 중요한 보안 시설이라 촬영도 제한적으로 진행될 거예요. 저분들 업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밖에서만 멀찍이 지켜볼 거고요.”
“예!”
“그럼 가 볼까요?”
다시 한번 신원확인을 마치고 관제탑 투어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관제탑 상황실 유리문 너머에는 복잡한 기기와 그걸 조정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카메라는 반대편에서 우리의 반응을 찍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촬영을 마친 후 외부 방문객을 위해 마련된 전망대를 찾았다.
“우와아아…….”
파란 하늘 아래 공항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아파트 35층 높이라던데.
공항이 모델 하우스 모형처럼 보이고 비행기들은 장난감 같았다.
늘 비행기를 보면 흠칫하곤 했는데, 여기서 보니 뭐라고 할까. 좀 괜찮은 느낌이다.
여태까지 비행기를 타려고 할 때마다 거대한 덩치에 주눅이 들거나 올려다보며 침을 꼴깍였는데.
위에서 내려다본 비행기는 몹시 작았다.
그간 겁냈던 게 우스울 만큼.
유치원 때 무서워하던 커다란 강아지가 크고 보니 작게 보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동안 무서워하던 게 이만큼 작았구나 하는 생각에 흐릿한 웃음을 흘렸다.
창가에 코를 맞댈 만큼 얼굴을 가까이 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등 뒤에서 땀을 식혀 주고, 얼굴을 가까이 댄 유리에서 바깥의 더위가 전해졌다.
신기하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비행기들의 풍경이 평화롭다.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
누군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니, 곁눈질을 하던 중현이가 그 상태로 눈동자만 돌렸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웃었다.
“여기서 보니까 비행기도 되게 작다. 그치?”
“그러네요. 작아요.”
“가까이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멀리서 보니까 은근히 귀엽게 생긴 거 같아.”
비행기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같다고 할까.
작고 통통한 비행기도 있고. 심술궂게 생긴 비행기도 있고. 엄청 큰 여객기도 있고.
개성 있는 비행기들을 관찰하며 중현이와 두런두런 대화할 때.
“어때요. 여러분?”
도준기 피디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특공대 특집 기획했을 때부터 오려고 했던 곳이거든요. 여러분한테 이걸 꼭 보여 주고 싶었어요. 공항 공사 측에다 열심히 촬영 허가해 달라고 부탁한 보람이 있죠?”
미소를 짓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광경이었다.
동시에 녹화 시작 후 처음으로 사나이가 간다 PD님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 * *
저녁에 예정된 합동 대테러 훈련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클리어!”
“클리어!”
“상황실, 여기 거점 제압 완료.”
3일간의 하드 트레이닝 덕인지 훈련이 몹시 수월했다.
공항을 위협하는 폭탄 테러를 가정한 상황.
테러범을 제압하는 역할은 특공대가 맡고, 우리는 방폭 가방을 나르거나 특공대원을 지원 사격해 주는 역할이었다.
추격 끝에 테러범을 검거하고, 폭발물까지 EOD가 성공적으로 해체하면서 훈련은 막을 내렸다.
-아아, 상황실에서 전파합니다. 금일 훈련에 참가한 여러분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상황실의 무전이 길게 이어졌다.
-아울러 금일 훈련에 참가한 ‘사나이가 간다’ 출연진 여러분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무전기에 귀를 기울였던 특공대 사람들과 우리가 숨을 헐떡이며 미소를 지었다.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어깨를 두드리며 서로에게 고생했다고 말했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던 고광순 경사와 특공대원들이 웃으며 출연진들과 포옹을 했다.
전술 1팀 대원들과 일렬로 죽 선 가운데.
어둑어둑한 저녁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오프닝과 똑같은 대열로 카메라 앞에 섰다.
이필승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예, 드디어 사나이가 간다, 경찰 특공대 특집의 녹화가 끝이-”
“났습니다!”
“와아아아……!”
다들 얼싸안고 기뻐하는 광경에 고 경사가 헛헛 하며 웃었다.
MC를 맡은 이필승의 멘트와 함께 저마다 이번 훈련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땀에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면서 제작진이 건넨 마이크를 받았다.
“우주는 어땠어?”
“여러모로 많은 걸 느낀 것 같아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에는 ‘특공대’ 팻말을 보고 아, 진짜 큰일 났구나 하고 생각했거든요.”
“막상 와 보니 재미있었죠?”
고광순 경사의 말에 못 들은 척했다.
“훈련도 생각 이상으로 힘들고, 여러모로 제 자신의 한계를 느낀 것 같아요. 하지만 다행히 경찰 특공대분들의 도움 덕에 제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우주야…….”
“저, 죄송한데 경사님이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어요.”
내게 다가오려는 고광순 경사를 1팀 대원들이 끌고 갔다.
다들 웃는 동안 내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사간 출연진들이 ‘에이!’ 하며 감동 분위기를 깼다.
“진심이 아닌 것 같은데.”
“진심일 수가 없지.”
“확인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지. 우주야! 이거 다른 사람한테도 추천해 줄 수 있어?”
그 말에 내가 환하게 웃었다.
“그럼요.”
“오, 누구? 누구 있으면 말해 봐.”
내 표정을 보자마자 알아서 분량을 만들어 주는 출연진이었다. 얼른 말해 보라는 짓궂은 표정에 내가 환하게 웃었다.
미리 피디님과 합의한 얘기가 하나 있지.
“제 군대 후임 중에서 아이돌로 데뷔한 친구가 하나 있거든요.”
“오, 그래?”
“에이플비의 케빈이라는 친구인데요. 워낙 도전정신도 충만한 친구여서 이런 경험을 꼭 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네요.”
우주는 절대 혼자 죽지 않긔.
“이야, 물귀신도 이런 물귀신이…….”
“웃으면서 저 말을 하네.”
출연진이 추임새를 덧붙이는 동안 내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미래의 은성이에게 영상 편지를 찍었다.
“케빈, 아니 은성아. 이 편지 보게 되면 꼭 나오는 거야. 형이랑 약속하기.”
“약속하기~!”
“군대는 두 번 가는 거야! Army again!”
“아미 어게인!”
다 같이 깔깔 웃으며 ‘컴온!’ 하는 모습에 나도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서 한조도 ‘저희 팀에 나무, 나무라는 훌륭한 친구가 있어요’ 하는 모습에 다들 웃었다.
중현이까지 짧은 소감을 마친 후 게스트들이 엔딩의 슬레이트를 치기로 했다.
우리 셋이 사이좋게 양손을 가위처럼 딱 치자 도 피디가 외쳤다.
“3박 4일 동안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고생했어요!”
“근처에서 삼겹살 회식 있는 거 알죠? 불참하면 다음에는 해병대 가는 거예요!”
“하하하하! …잠깐만. 해병대? 야, 준기야.”
녹화가 끝나서 그런지 훈훈한 공기가 흘렀다.
저마다 기다리던 매니저를 향해 걸어가 칭얼대고, 우리도 민기 형과 원석이 형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민기 형! 원석이 형!”
“저희 왔어yo.”
둘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고생했다. 어이구.”
“둘 다 얼굴이 반쪽이 됐네.”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나와 중현이를 토닥여 주며 간식거리를 쥐어 주는 매니저들이었다.
아. 왜 눈물 나지.
꼴랑 3박 4일밖에 안 나와 있었는데 시간이 너무 길었다.
눈앞에 김덕순 여사와 동생들이 아른거리고, 막 보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애들, 우리 애들은 잘 있어요?”
“어, 그…….”
원석이 형이 얼버무릴 때, 커다란 등 뒤에 숨은 세 얼굴이 차례대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뽁뽁뽁 하며 등장하는 것 같다.
“짜잔!”
“우리가 마중.”
“나왔지롱!”
나와 중현이가 잠시 ‘허어……!’ 하며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동생들에게 달려갔다.
“얘들아아아아!”
“형드으으을!”
“보고 싶었다!”
“저두여어어어!”
십수 년 만에 만난 사람들처럼 껴안고 꺼이꺼이 우는 모습에 주변 스탭들이 웃었다.
다 같이 펭귄처럼 둥글게 모여서 대성통곡했다.
꿈틀.
“어우, 땀 냄새…….”
“어딜 가!”
중간에 탈주하려고 한 리혁이를 붙들고 데려와 다시 방방 뛰었다.
“한조 씨! 이리 와요!”
“저도 끼어도 돼요?”
픽업하러 올 매니저를 기다리던 한조가 종종종 걸어오더니 우리 대열에 함께 합류했다.
그렇게 1분간 기뻐한 후.
PD님이 멤버들도 고깃집에 같이 와도 좋다는 말을 하자 동생들이 기뻐서 뛰었다.
“다 같이 와요. 이번에 우주가 분량 벌어다 준 것만 따지면 소고기를 사 줘도 모자라서.”
사간 출연진이 환호했다.
“준기야. 그래! 소고기 먹자.”
“소고기 먹고 해병대 갈래요? 돼지고기 먹고 육군 갈래요?”
“……안 먹으면 될 거 아냐. 안 먹으면.”
비주는 이런 단합되는 분위기가 너무 부럽다며 좋아했다.
사간 출연진이 먼저 자리를 뜨자, 우리도 영종도의 고깃집으로 가기 위해 움직였다.
아. 드디어 3박 4일간의 긴 녹화가 끝났구나.
마침내 해방이었다.
온몸에 쌓인 피로에 어깨를 주무르면서 동생들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눌 때였다.
딩동-
반짝이는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던졌다.
[고광순 님이 선우주 님을 ‘전술 1팀 단톡방’에 초대하셨습니다]
【 공지 】 오늘은 우주 초대하는 날 // 주말 암벽 등반 모임 있음
“…….”
고개를 돌리자 전술 1팀 대원들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특공대원들이 유쾌한 미소와 함께 단체로 엄지척을 날렸다.
“…….”
뭐지.
끝났는데 안 끝난 것 같은 이 기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