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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81)화 (28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81화

당황한 것도 잠시, A&R팀 직원들은 재빠르게 차분함을 되찾았다.

“어우, 커피가 쓰네……?”

“뜬금포라서 나도 모르게 뿜었네.”

“먹다가 갑자기 둘리 얘기를 하면 어떡해. 우주야, 나 웃음 나와서 커피 뱉었잖아.”

이럴 때는 발뺌하는 게 최고였다.

직장인 수년 차의 짬에서 나오는 즉흥 연기에 그들 스스로가 ‘나 좀 연기하나?’ 하며 감탄할 때.

슥 스캔하던 막내가 간신배 같은 표정으로 뉴블랙의 리더에게 속삭였다.

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가 그러는데 지금 다들 연기하신다고.”

“…….”

“시선 처리랑 발성이 어색하대요.”

“…….”

직장인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펼친 연기는 연기파 막내에게 곧바로 간파 당하고 말았다.

그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저희 어떻게 해요. 조 이사님?’

‘왜 나를 봐? 딴 데 봐.’

자신에게 향하는 후배 작곡가들의 시선에 모른 척 커피를 홀짝이는 조규환 이사였다.

그 동안 우주가 눈을 더 가늘게 떴다.

이미 상황 파악이 다 끝난 모습에 직원들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이게 바로 범죄자가 경찰 수사 받을 때의 마음인가.’

‘둘리 유출한 놈 누구야. 나와.’

‘아니, 애들 앞에선 말한 적도 없는데…….’

미스터리였다.

농담처럼 ‘우주 둘리설’을 언급했던 게 전부인데.

서로에게 의심의 시선을 던지며 도대체 누가 우리 애가 이런 데 마음 쓰게 만들었냐 할 때.

“중현이가 예전에 지나가다 들었대요.”

우주가 진지하게 말했다.

“낮말은 리혁이가 잘 듣고, 밤말은 중현이가 잘 듣거든요.”

“맞아요.”

중현이 흐뭇하게 대답하고, 리혁이 창피하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런 상황 설명에 직원들이 납득했다.

중현이라면 그럴 수 있지.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중현이라면 3층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지하에서 벽에다 귀를 대고 도청했다고 해도 자연스러웠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그들이 머쓱하게 웃었다.

농담 삼아 ‘작곡 덕후 우리 애~’ 하고 드립을 쳤는데 꼭 뒷말을 한 듯한 느낌이라.

열심히 변명거리를 찾아내던 누군가 애써 웃었다.

“그, 그건 우주, 네가 귀여워서 그런 별명이 붙은 거야.”

“…….”

비주만 왠지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 나머지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중현이 귀를 열심히 후비적거릴 때.

우주가 웃으며 말했다.

“설명하시지 않아도 돼요.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고 한 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여쭌 거거든요.”

“하고 싶은 말?”

“네. 제가 특공대에서 여러 가지로 느낀 게 있어서…….”

그러더니 우주가 슬픈 표정으로 ‘사나이가 간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전술 1팀이 지옥 끝까지 붙을 기세로 따라다닌 일.

세수를 하러 거울을 봤더니 그 안에 A&R팀 직원들과 조 이사의 얼굴이 보였다는 이야기까지.

“푸하하하!”

당사자는 진지한데 듣는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호가 리혁에게 뭔가를 묻더니 우주를 가리키며 ‘인과응보! 인과응보!’ 하면서 꺄르륵거렸다.

우주가 스산한 눈빛을 보내자 중현이 그 둘을 처리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직원 분들이 고생하셨던 걸 잘 몰랐던 것 같아서요.”

“어쩐지. 평소 같았으면 돌아오자마자 곡 확인하러 왔을 텐데, 웬일로 안 오나 했어.”

“네. 좀 민망해서…….”

우주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제가 소홀했던 부분이 있다면 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그들이 손사래를 쳤다.

“야, 너한테 야식 얻어먹은 게 얼마인데…….”

“지금까지 받아먹은 거 생각하면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미안해 할 거 전혀 없어.”

“너희 앨범 준비기간만 되면 내가 10키로가 찐다니까.”

농담 삼아 매번 ‘우주가 온다! 도망쳐!’ 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하는 말이었다.

상대의 마음 씀씀이에 늘 고마워하고 있었으니까.

‘배고프시죠? 오늘 야식은 뭐 먹을까요~ 닭발 고고?’

‘이번에 대만에서 선물 사왔어요! 예은이 초등학교 들어갔다고 했죠? 우주 삼촌이 주는 선물이라고 해 주세요.’

‘팀장님. 이거 요즘 대박 유행하는 꽃무늬 셔츠래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들을 일일이 챙겨 주는 우주였다.

처음에는 ‘월급 나오는 것도 아닌데…’ 하며 회의적이던 직원들도 점차 ‘이런 애가 있구나’ 하며 시선이 바뀌곤 했다.

게다가 앨범의 성공 덕에 편곡이나 작곡에 참여한 직원들은 저작권료로 부수입을 올리기도 했고.

“우리도 싫은데 억지로 도와주고 그러는 거 아니니까. 그런 생각하지 말고. 우주야.”

“그래. 뭘 미안해하고 그러냐.”

“……감사합니다.”

다독여 주는 직원들의 말에 우주가 민망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제가 너무 죄송해서 이번에 정산 받고 여러분 드리려고 선물을 좀 사 왔거든요.”

“아니, 무슨 선물이야. 됐….”

우주가 선물을 쏙 꺼내자 그들의 말이 바뀌었다.

“우주야아아……!”

“제가 고르기도 했지만, 정산 받은 기념으로 저희가 다 같이 합쳐서 산 것들이에요.”

“얘들아아아!”

우주가 준비한 선물을 확인한 이들이 감동의 물결에 젖어들었다.

“편지 협찬은 리혁이에요.”

“리혁아아아!”

“……저는 여기 없는 사람인 것처럼 대해 주세요.”

리혁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웅얼거렸다.

뉴블랙 멤버들과 A&R팀 직원들이 ‘크으!’ 하며 형님 최고, 아우님 최고 하며 의좋은 형제를 찍고 있는 동안.

“…….”

상석에 앉아 있는 조규환 이사가 눈을 깜빡거렸다.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그 동안 고생했어요, 아니야 무슨 고생이야 하며 서로에게 덕담을 주고받는 훈훈한 모습인데.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알고 보면 무서운 그림’ 같은 류의 인터넷 괴담처럼 화기애애한 그림에 뭔가 빠진 느낌이라고 할까.

조규환 이사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노트북 화면 하단에 메신저 알림이 떠올라 있었다.

나상윤 [안녕하세요.. 이사님..]

나상윤 [작업이 끝낫습ㅁ:다]

나상윤 [곡 보내드]

“……드?”

조 이사가 눈을 깜빡였다.

하얗게 모든 것을 불태운 사람처럼 말하던 이의 답장이 30분 넘게 끊겨져 있었다.

타이핑을 하다가 꾸벅꾸벅 존 듯한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A&R팀 직원들의 때깔이 몹시 고왔다.

외부 인력이 투입된 뒤로는 땟국물이 줄줄 흐르던 얼굴이 보송보송해졌다고 할까.

그제야 뭐가 빠졌는지 이해가 됐다.

지금 이 시각에도 ‘흐어어…’ 하며 입에서 영혼이 빠져나가고 있을 외부 작곡가들이었다.

‘뭐, 그래도 거긴 저작권료를 챙겨 가니까.’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잘 챙겨 주는 우주니 어련히 잘해줄까 싶었다.

물론 조금, 아주 조금 힘들기야 하겠지만.

앨범이 잘 되고 나면 그만큼 그들에게도 보상이 돌아갈 터였다.

‘그래도 뭔가 불쌍하긴 한데…….’

직원들 사이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던 조 이사가 그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렇게 3초 동안 진심으로 안타까워한 후.

“허엇…….”

선물 상자에 담긴 예쁜 찻잔 세트를 보는 조규환 이사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어, 이거 딱 내 취향…….’

찻잔 세트를 쓰다듬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조 이사였다.

*   *   *

앨범 작업은 착착 진행됐다.

프로듀싱 회의에서 이번 앨범에 대한 주요 사항을 체크한 후, 수록곡 확인에 돌입했다.

곡은 대부분 완성이 되어 있었다.

A&R팀 직원들은 나와 작곡가들이 합작해서 만들어낸 곡을 들을 때마다 연신 OK 사인을 그렸다.

“잘 만들었는데?”

곡을 하나하나 검토하던 팀장님이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우주랑 중현이, 너희가 힙합 색깔을 넣고 싶다고 할 때 걱정을 좀 했거든. 어설프게 건드리면 이도 저도 아닌 장르잖아. 꼬꼬마들이 요! 요! 하는 것처럼 웃기고.”

그가 곡에 대해 호평을 했다.

“그런데 진짜 잘 뽑았다. 힙합 색이 들어가긴 했는데, 완전히 힙합이 아니라는 점이 일단 좋고.”

“그 부분을 일부러 좀 주의했어요. 괜히 시비 걸릴 수도 있어서.”

“하긴. 래퍼들이 좀 까다롭긴 하지.”

다른 음악 장르와 다르게 힙합은 ‘이건 진짜 힙합이다, 아니다’ 하며 명확하게 구분 짓는 정서가 강해서.

완전히 힙합을 시도하기보다는 우리 음악에 힙합의 요소를 차용하는 방향으로 갔다.

일단 나부터가 여러 장르에 대해 두루두루 아는 편이지, 세부 장르에 대해선 모르는 것 투성이라서.

힙합이란 장르에서 모르는 부분은 래퍼인 중현이나 헤이션 같은 업계 선배의 도움을 받아 채워 넣었다.

다른 직원들도 수록곡에 대해 호평을 내렸다.

“중간에 전자음 들어가는 거 진짜 좋은데? 누구 아이디어야?”

“요거 좋다. 가이드부터 확 삘이 오네. 가사는 썼어? 가사 잘 쓰면 너희 팬들이 좋아할 거 같은 느낌인데”

“트렌드보다 빠르긴 한데… 근데 낯설지 않고 좋네.”

‘좋다’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우리와 함께 밤을 새워 사운드에 대해 고민했던 작곡가들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웃었다.

“수록곡만 따지면 백 점 만점에 구십 점 정도? 앨범 나오면 팬들이 진짜 좋아하겠는데.”

“저희도 그런 얘기 많이 하긴 했어요.”

“이전이랑은 완전 다른 컨셉 같아.”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앨범은 이전과 다른 컨셉이라 아마 머리색부터 지금까지와 다르게 갈 것 같다.

옷도 스트릿 보이즈만큼은 아니더라도 스트릿 패션 비슷한 느낌으로 갈 것 같고.

여러모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는 터라 고민이 크다.

불꽃놀이처럼 딥하우스의 청량함이나 마스커레이드처럼 관능적인 느낌이라든가. 혹은 바람꽃처럼 따스한 팝 느낌과는 또 다른 재질이라서.

수플레들과 대중이 과연 좋아할지 매일매일이 고민이었다.

한편, 그런 걱정과 별개로 회의 도중에 또 다른 문제가 튀어 나왔다.

“문제는 타이틀곡인데…….”

A&R팀과 작곡가들, 그리고 우리가 얼굴을 맞댄 채 노트북 화면을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수록곡들 중에 타이틀로 할 만한 건 솔직히…….”

“저희가 생각해도 없는 것 같긴 합니다. 안타깝긴 하지만.”

회사 직원들이 말끝을 흐린 말을 작곡가들이 확답해 주었다.

문제는 타이틀이었다.

이번 앨범의 간판이 될 만한 노래가 없었다.

원래는 수록곡 중에 하나를 선택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살펴도 각이 안 나왔다.

대개 타이틀이라 함은 수록곡 사이에서 혼자 반짝반짝이는 곡이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리혁이 마을에 살고 있는 지호 같은 애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지금 수록곡 상태를 보면 십수 명의 리혁이가 으쌰으쌰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조화롭긴 한데 한 방이 없다.

예상치 못한 복병에 머리를 긁적이던 A&R 팀장님이 물었다.

“너희가 타이틀곡으로 원하는 느낌이 뭐라고 했지?”

“흥이 폭발하는 느낌이요.”

중현이가 대답했다.

“마스커레이드도 중독성이 있긴 했지만 듣기만 해도 몸이 들썩들썩 하는 건 아니었잖아요. 저는 노래는 무조건 신나야 한다는 주의라서… 듣기만 해도 들썩들썩하는 노래였으면 좋겠어요.”

“의외의 취향이구나. 중현이.”

“중현이 형은 언제나 의외에여.”

막내의 말에 다들 웃었다.

하지만 타이틀곡에 대한 생각 때문인지 다들 금세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여러 대안이 나오긴 했지만 마땅한 게 없어서,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저희끼리 한 번 새로 만들어 볼게요.”

“시간 내에 되겠어?”

“네, 적절하게 떠오르기만 하면 쓰는 건 빨라서요.”

세부 조정하는데 늘 시간을 쏟아서 그렇지, 타이틀곡을 작성하는 건 언제나 빠른 시간에 끝났다.

그렇게 회의가 이어지면서 합의를 했다.

A&R팀은 외부에서 들어온 곡을 뒤적여 보고, 작곡가들도 타이틀곡 도전을 하기로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가는 식으로 세 가지 루트를 다 해 보기로 했다.

“일단은 각자 신나는 노래를 준비해 오도록 합시다.”

회의를 끝낼 때쯤 팀장님이 말했다.

“중현이가 말했던 대로, 누가 들어도 흥이 폭발할 만한 걸로.”

“넵.”

“참, 우주야.”

“네?”

“그런다고 막 트로트 같은 거 준비해 오고 그러면 안 돼. 색소폰 소리 나오고 그런 거.”

“팀장님.”

‘덕순아’를 흥겹게 부르던 모습 때문인지 날 트로트 팬으로 여기는 상대에게 웃으며 말했다.

“저 스물세 살이에요.”

*   *   *

짠짠짠.

태블릿 PC에 떠오른 피아노 어플 건반을 두드리다가 멈추고는 동생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때?”

“어…….”

비주가 양손을 꼼지락거렸다.

“으음, 형, 어…….”

“그냥 말해요. 형. 올드하다고.”

“아앗, 그 말은 아닌데. 올드한 건 아니구요. 형. 좀 나이대가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할아버지들이 좋아하는 옛날 노래 같아여. 형.”

후진 따위는 없는 우리 막내였다.

“한강에서 자전거 타면, 막 찌진진진~ 하며 오디오 틀면서 페달 밟는 할아버지들 있거든여. 그런데서 나오는 옛날 노래들 같아여. 막 한강연가 같은 제목으로.”

“잠시만. 그럼 이건 어때?”

“어우, 어우, 어우!”

삼단 고음으로 거부감을 표하는 우리 막내의 모습에 눈물을 삼켰다.

우리 덕순 여사는 엄청 신나고 좋다고 그러던데.

“형 취향 빼고 일반 대중분들이 좋아할 만한 걸 생각해 봐여.”

“이런 식으로?”

내가 손가락을 부드럽게 놀렸다.

“대박. 형. 훨씬 좋아졌어요!”

“이건 저도 괜찮은데여?”

곧바로 확 나아진 반응에 살짝 시무룩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역시 내 취향은 아닌 건가.

몰래 내 취향을 섞어서 들려주긴 했지만, 프로답게 귀신처럼 소리를 잡아내는 녀석들이었다.

“어허, 어디서 밑장을……!”

“뻥치면 닭모가지에여. 형. 치킨 먹을 때 목뼈만 먹어야 됨.”

안 속네.

아쉬움을 삼키며 태블릿 PC의 피아노 어플을 종료했다.

그러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7월 초.

아직 장마가 시작되지 않은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긴 하지만, 햇볕이 맨살에 닿을 때마다 뜨끈뜨끈함이 느껴지는 그런 날.

지금 우리는 합정역 인근에 있는 올리브 하우스 지점으로 가는 중이었다.

비주의 생일 파티 덕에 따낸 지상파 TV 광고를 찍기 위해서였다.

“나눌수록 커지는 즐거움~!”

“올리브 하우스로 오세요!”

틈틈이 광고 콘티를 살피며 연습을 하는 한편, 4집 타이틀에 대한 이야기도 쉴 새 없이 주고 받았다.

흥이 폭발할 만큼 신나는 노래.

어찌 보면 진짜 쉬운 얘기인데, 문제는 우리 애들이 쉬운 애들이 아니고 어려운 애들이었다.

각자 신나는 거 말해보라고 했더니.

“EDM 가여. EDM.”

“나만 그런가? 발라드 부르면 되게 신나지 않아요? 고음 올릴 때 빵 터지는 느낌인데.”

“흥하면 속사포 랩이지.”

“저는 안무가 신나면 흥이 폭발하는 거 같아요.”

무슨 엑스포처럼 온갖 취향의 전시회가 열렸다.

회의 서기 역할을 맡아 노트에 꼼꼼하게 필기하던 리혁이가 정리를 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를 만족시키려면 복고풍의 EDM에 후렴구는 발라드고, 랩 파트는 속사포인데 동시에 안무는 숨을 헉헉댈 만큼 흥폭발이어야 한다는 거죠?”

“…….”

“뭔가 김치에다 설탕 뿌리는 느낌이네여.”

결국 흥 폭발에 대한 1차 회의는 견해 차이로 인해 결렬됐다.

훈훈한 미소로 ‘글러먹었구나’하며 납득하던 우리는 도착했다는 매니저의 말에 차에서 내렸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올리브 하우스 매장에 들어서면서 광고 촬영 스탭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했다.

우리가 맞춰 입은 올리브 하우스 티셔츠를 봤는지 그들의 입가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텅 빈 매장에는 고가의 촬영장비와 음식이 세팅되어 있었다.

“우와…….”

테이블에 스테이크나 스프 같은 음식이 일렬로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갓 조리된 듯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는데, 촬영을 위해 종류별로 서너 개씩 준비되어 있었다.

동생들과 함께 침을 꼴깍이는 동안 지나가는 스탭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희가 이걸 먹는 건가요?”

“어……. 네.”

상대의 반응이 어째 조심스러웠다.

“혹시 그릇 같은 거 필요하신가요?”

“그릇이요?”

“씹다가 뱉을 그릇이요.”

“뱉어야 하나요…?”

“가끔 아이돌이나 배우 분들 체중 관리하신다고 씹고 바로 뱉으실 때가 있어서…….”

“아, 저희 지금 휴식기라 괜찮아요.”

‘엄청 잘 먹습니다’ 하며 고개를 끄덕이니 다행이라는 얼굴로 웃었다.

현장에 온 우리가 ‘다이어트 중이라 짜증나는데 이걸 먹어야 돼?!’ 하며 히스테리라도 부릴까 봐 걱정한 모양이었다.

지난번 광고 촬영에서도 그러긴 했지만 스탭들이 점점 더 왕자님처럼 대해 주는 느낌이다.

‘절대 얘네 기분이 상하면 안 돼!’ 하는 것 같다고 할까.

연예인병을 경계하자는 의미로 서로에게 막 대하자고 약속한 게 다행이었다.

“가자, 애송이들아.”

“예, 두목.”

대기실에서 의상으로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받았다.

오늘의 컨셉은 캐주얼한 느낌으로 레스토랑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컨셉이었다.

스태프용 탈의실에서 나오니 감독님이 환히 웃으며 맞이했다.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해야지. 매번 광고 촬영 때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 온다고 해서 걱정을 덜었어.”

칭찬을 하면서 기분을 업 시켜주는 감독님이었다.

“오늘 컨셉은 기본적으로 흥 폭발! 그런 느낌으로 갈 거예요. 노래도 신나는 걸로 틀어 줄 테니까. 흥겹게 놀고 그러면 돼요. 진짜 생일 파티 하는 느낌으로.”

“맡겨 주세여. 저희가 그런 거 잘하거든여.”

“하하, 그래요?”

“네. 그리고 저희가 먹는 것도 엄청 복스럽게 먹습니다.”

“먹는 거?”

감독님의 질문에 내가 답했다.

“네, 콘티에 저희가 식사하는 씬이 있어서.”

“아. 그거 조금 바뀌었는데.”

“네?”

“다 같이 먹는 씬을 구상했는데, 리허설 해보니까 너무 씬이 지저분하게 나오더라구요.”

“…….”

모두가 억장이 무너지는 표정을 드러내는 가운데 비주가 물었다.

“그럼 저 음식들은 누가 먹는 건가요?”

“아역들이 먹는 걸로 바꿨어요.”

때마침 대기실에 있던 꼬꼬마 다섯 명이 나왔다.

유치원생쯤 될까.

올망졸망한 눈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꼬마들이 우리 다섯과 똑같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이구, 귀여워’ 했을 텐데. ‘아이고, 부러워’ 하는 눈으로 보는 우리의 시선에 아이들이 쭈뼛쭈뼛했다.

“그럼…….”

중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물었다.

“저희는 못 먹는 건가요?”

“아뇨. 한 명만 먹는 걸로 바뀌었어요. 여기서 제일 맛있게 먹는 사람 한 명으로 단독샷 잡으려고.”

“…….”

“혹시 먹는 거나 표정 연기에 자신 있는 사람 있어요?”

“…….”

그 순간 나와 중현이, 지호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러곤 동시에 손을 들었다.

‘장유유서.’

‘가는 데는 순서가 없어여. 형.’

‘먹방은 나님.’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치열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를 보며 혀를 끌끌 차던 리혁이가 비주와 함께 새침하게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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