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82)화 (28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82화

감독님에게 잠시 상의할 시간을 요청한 후 모였다.

리혁이가 콘티를 보여 주며 말했다.

“일단 광고 컨셉부터 되짚어 보자고요.”

“그래.”

“생일 파티를 위해 모였는데, 여기서 스테이크의 향을 맡으며 옛날 생각을 하는 거잖아요.”

광고 내용은 간단했다.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이 올리브 하우스에 모여 생일 파티를 한다.

고깔 모자를 끼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다가 누군가 스테이크의 향을 맡는 거다.

‘아니. 이 추억의 향기는……!’

하는 느낌으로 ‘우리 어렸을 때 올리브 하우스에 온 적이 있었지. 그때 참 좋았는데’ 하며 추억하는 내용이었다.

어렸을 때의 즐거움을 되찾은 우리가 춤을 추며 ‘올리브 하우스 짱짱맨’ 하는 거였다.

리혁이가 설명을 했다.

“여기 콘티에 보면 광고 맨 처음에 문구가 나오잖아요. 향기는 기억을 되살린다. 하는 시적인 문구요.”

“그렇지.”

“이 문구를 보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이 떠오르거든요. 거기서 주인공이 마들렌 냄새로 기억을 되새…….”

“형.”

지호가 손으로 커트했다.

“매너로 세 줄 요약해여. 형.”

“인정.”

“리혁아. 지금 다들 배고파 죽겠는데 혼자 문학 강의 하냐.”

우리의 반발에 리혁이가 얼굴을 붉히며 투덜거렸다.

“아무튼 이 광고의 의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말이에요.”

“그러니 네가 시식을 하겠다?”

뒷말은 생략되었지만 그러고 싶다는 듯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내가 동생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얘 빼자.”

“동의.”

“찬성이에여.”

‘아니’ 하면서 반발하려던 리혁이가 우리 등쌀에 바깥으로 밀려났다.

다시 비집고 ‘끼워 줘요! 제발!’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는 단호하게 스크럼을 짜고 막았다.

“리혁아. 이런 건 먹는 걸로 승부를 봐야지.”

“맞아여. 광고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찍는 건데. 그렇게 날로 먹으려 들면?”

“안 된다~”

우리 넷이 동시에 ‘안 된다~’ 하며 손가락을 까딱이자 두루미가 분노의 날갯짓을 했다.

“와. 이 치사한 사람들. 내가 이거 기억했다가 10년 뒤에 복수할 거예요.”

“리혁아. 달콤한 거 먹자. 달콤한 거.”

원석이 형이 입에 프로틴 바 하나를 물려 주며 녀석을 진정시킬 때.

남은 사람들끼리 진지하게 토론했다.

“공평하게 운에 맡기자. 가위바위보로.”

“에헤이.”

도끼눈을 뜨는 동생들에게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가위바위보는 랜덤이라니까. 나 지난번에 일본에서 초등생 수플레한테 진 거 못 봤어?”

“그건 초등학생이라 그런 거잖아요. 형.”

“맞아.”

안 넘어오네.

내가 사간에 데려갈 사람을 추첨하려고 다트를 던진 이후로 아무도 랜덤이란 말을 믿지 않았다.

지호가 제안했다.

“그럼 이건 어때여? 각자 먹는 연기를 한 다음에 가장 잘하는 사람이 고기를 가지는 거예여.”

“좋아.”

“음, 일단 그럼 저도 도전해 볼게요…….”

감독님에게 가장 먹는 연기를 잘하는 사람을 골라 달라고 하니 흔쾌히 OK를 하셨다.

그때 광고주인 올리브 하우스 코리아의 사장님이 끼어들었다.

“그럼 아예 콘테스트처럼 해 보는 건 어때요?”

“콘테스트요?”

“촬영 시간도 넉넉한데 콘테스트 형식으로 뽑아 보면 어떨까 싶은데. 비하인드 필름도 찍을 겸.”

과연 사업하는 사람다웠다.

지상파 TV 광고뿐만 아니라 광고 비하인드 영상으로 올릴 것까지 홍보를 염두에 두는 듯했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찬성했다.

광고주가 유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자리 최고의 갑이 기분 좋게 나오니 다들 분위기가 편해졌다.

“자, 그럼 해 볼까요?”

저마다 한 명씩 테이블에 앉아서 빈 접시로 먹는 시늉을 하기로 했다.

조연출이 비하인드 캠을 찍는 동안 스탭들도 모여들었다.

주방에서 음식을 제조하던 올리브 하우스 본사 직원들도 나와서 앞치마를 맨 채 구경했다.

‘제1회 먹방 경진대회’ 같은 현수막을 걸어야 할 듯하다고 할까.

“기호 1번, 김중현입니다.”

중현이가 양손을 허공에 뻗으며 말했다.

“자, 다 같이 clap, clap.”

무대처럼 박수를 유도하자 올리브 하우스 광고주와 직원들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이내 카메라 앞에 앉은 중현이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는 실감 나는 먹방을 시작했다.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오…… 맛있겠다.”

“안 보이는데 뭐가 맛있어?”

“느낌이?”

중현이가 가상의 스테이크를 흡입하는 동안 스탭들이 ‘오오’ 하며 감탄했다.

진지한 먹방 연기에 광고주가 흡족하게 턱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채택이 되지는 못했다.

“으음…….”

“맛있게 잘 먹기는 하는데…….”

“뭔가 국밥 먹는 거 같아.”

어딘가 구수한 느낌 때문이었다.

먹는 건 스테이크인데 왠지 모르게 뜨뜻한 뼈해장국을 먹는 듯한 표정이라 패밀리 레스토랑에는 부적합했다.

연기를 마친 중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왔다.

“저 슬퍼 보이죠. 형.”

“응.”

“이 표정으로 서 있으면 동정심이 자극될까요?”

“그냥 내가 나중에 스테이크 사 줄게.”

“정말요?”

“응.”

금세 풀려서 푸근한 곰으로 돌아온 녀석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케이. 경쟁자 제거 완료.

그동안 우리 둘째가 사뿐사뿐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동작구에서 온 21살 김비주입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웃음이 터졌다.

얘는 또 왜 오디션을 보고 있어.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 오디션 참가자처럼 긴장한 기색의 비주가 먹방 연기를 펼쳤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따스한 미소가 호평을 받았지만.

“우와아아…….”

안타깝게도 다음 차례로 나온 막내 때문에 묻혀 버렸다.

“세빈아. 저거 봐. 저 형아가 먹는 연기하는 거.”

“우와…….”

“저 형 하는 거 보고 너도 나중에 따라 해 봐.”

아역 배우들의 뒤에서 팔을 두르고 있던 어머니들이 우리 막내의 먹방 연기를 가리키며 소곤거렸다.

그럴 만했다.

역시 표정 연기에 대해선 따라올 자가 없는 지호였다.

광고 컨셉을 찰떡같이 살렸다고 해야 하나. 거의 인간 올리브 하우스 수준으로 메소드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중간에 옆 사람이랑 장난치고 웃으며 스테이크를 써는 연기에 다들 ‘오…….’ 하고 감탄했다.

“감독님, 기억해 주세요. 저를…… 악!”

감독님에게 열심히 어필을 하며 윙크를 하던 막내가 걸어오다가 중현이의 등짝에 얼굴을 박았다.

그러더니 다음 차례인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후우…….”

“지호야.”

“네.”

“귀에다 바람 좀 분다고 형의 멘탈을 흔들 수 있을 거 같아?”

“에이.”

반칙 플레이가 실패한 막내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 순서인 내가 기지개를 쭉 켜고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러곤 날 바라보는 감독님에게 말했다.

“저 어제 저녁부터 굶었습니다. 감독님.”

“엇…….”

“아침에도 물 두 잔 마시고 왔어요.”

다른 동생들이 ‘내가 저걸 했어야 하는데’ 하고 땅을 치고 아쉬워했다.

“후우…….”

감정을 잡고 연기했다.

10년 지기 친구들과 만난다고 생각하고, 추억을 되살리는 느낌으로 스테이크를 열심히 썰었다.

머릿속으로 대강 어울릴 만한 브금을 즉흥으로 만들어서 재생했다.

부리부리 돼지가 리코더로 ‘올드 랭 사인’ 풍의 노래를 아련하게 부르는 동안 내가 가상의 스테이크를 썰었다.

“오…….”

“잘한다. 여기는 연기 잘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네.”

“진짜 추억 여행 같아.”

짧은 즉흥 연기를 마치고 나서는 감독님에게 다시 한번 ‘어제 저녁부터 굶었어요’ 하고 상기시켰다.

중현이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 리혁이가 ‘다 망해라’ 하며 저주를 중얼거리는 동안.

‘스테이크가 뭐라고…….’ 하며 헛웃음을 짓는 매니저 형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는 감독님 앞에 섰다.

지호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떠세요. 감독님? 제가 더 낫죠?” 

“아니지. 추억 여행을 하려면 아무래도 맏형인 제가 어울리지 않을까요? 지호는 지금 실시간으로 추억 쌓는 나이거든요. 만 17세예요.”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하면 어린 사람이 낫지 않을까요오?”

“어…… 그 막상막하라서…….”

감독님이 난처한 얼굴로 ‘흐음’ 하고, 옆에 있던 광고주도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며 고민할 때.

최후의 승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왔다.

“감독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고개를 돌리니 비주가 콘티를 들고 있었다.

“광고 컨셉이 생일 파티인데, 생일 주인공이 아닌 다른 사람이 먹으면 이상하지 않을까요?”

“어……?”

“어, 그러네……!”

“오.”

다들 납득하는 가운데 광고주와 감독님도 ‘그러네!’ 하며 비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비주 씨로 갑시다! 하하하!”

삽시간에 다들 ‘정해졌구나!’ 하며 웃는 가운데, 나와 지호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닭 쫓던 개 두 마리가 된 기분이다.

“…….”

멍하니 털썩 주저앉을 때, 닭이 우리에게 사뿐사뿐 다가왔다. 축 처진 우리에게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 제가 광고주 분에게 여쭤봤는데, 이따 점심시간 때 식사로 스테이크 주시겠대요.”

“허어…….”

“정말?”

지호와 내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지호야!”

“형!”

“스테이크……!”

우리가 ‘크으’ 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그러곤 말을 대신해 준 비주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뭘요. 다 같이 먹어야죠.”

비주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   *   *

▶ ‘올리브 하우스’ TV 광고 : ‘기억에 관하여’

검은 화면 위로 시적인 문구가 나온다.

[향은 기억을 되살린다.]

정적인 흐름에 채널을 돌리던 사람들이 잠시 ‘뭐지?’ 하고 멈출 만한 시점에 화면이 바뀐다.

올리브 하우스 내부.

캐주얼한 차림새의 미남들이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다.

힐링 예능에서 산책할 때 나오는 BGM과 함께 멤버들이 대화를 나눈다.

입모양으로 뭐라고 하는데 분위기가 몹시 행복해 보인다.

생일 파티의 주인공, 스트라이프 셔츠에 고깔모자를 쓴 미소년이 스테이크를 한 점 집어들 때.

음식의 향에 비주가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뜨자 그들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옷차림이 똑같은 어린 꼬마들이 앉아 있다.

-우와아아!

동심으로 돌아간 것을 표현하듯 방방 뛰는 어린이 버전의 뉴블랙과 어른 뉴블랙이 꺄르륵 날뛴다.

올리브 하우스에서 내세우는 ‘언제나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그 맛’이라는 모토를 살린 광고였다.

마지막에는 뉴블랙 멤버들이 올리브 하우스 알바생의 복장으로 환하게 웃었다.

-나눌수록 커지는 그 맛!

-올리브 하우스에서 함께 해요. 우리!

마치 가게에 오면 이런 알바생들이 있다는 듯한 느낌의 광고였다.

그동안 화면 하단에는 미세한 글씨로 ‘상기 이미지는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하는 자막이 흘러나왔다.

*   *   *

점심 때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 덕분인지, 광고 촬영을 하는 내내 한껏 업된 분위기를 유지했다.

“흐하핫! 스테이크!”

“스테이크는 영어로 steak!”

“스테이크가 죽으면 스테이큭!”

“와~ 우주 형. 하하하! 흐즈므여.”

“푸하하하하! 나 이런 거 너무 재미있어요!”

어차피 소리는 안 나가니 아무 대화나 하라는 말에 우리끼리 흥겹게 떠들며 촬영을 했다.

방식은 간단했다.

우리가 필요한 씬을 찍고 나면 바로 아역들이 뽈뽈뽈 들어와 비슷하게 찍고 나오는 식이었다.

그렇게 오전 촬영을 마친 후, 빈 식탁에 둘러앉아 스테이크를 즐겼다.

고소한 향과 육즙 가득한 고기에 눈물이 아른거렸다.

“와, 저 눈물 날 거 같아여. 너무 맛있어.”

“좋다아…….”

“이제 4집 준비 들어가면 제대로 된 고기도 이게 마지막일 텐데, 우리 이 맛을 기억하자.”

“기억할게~!”

비하인드 캠을 향해 포크로 찍은 고기를 들고 ‘올리브 하우스야, 우리 영원하자’ 하고 외쳤다.

멀찍이 지켜보던 광고주가 잇몸이 만개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1년짜리 광고 모델로 계약했는데 어째 내년에 연장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기…….”

고개를 돌리니 어머님들이 아역들을 데리고 다가왔다.

“저희 아이들도 합석해도 될까요? 장비 때문에 앉을 자리가 저쪽엔 마땅치 않아서.”

“네. 그럼요.”

“감사합니다.”

어머님들의 손길에 끌려온 아이들이 쭈뼛쭈뼛 우리를 바라보며 눈치를 보고 있을 때였다.

내가 손짓을 하며 내 옆 의자를 톡톡 두드렸다.

“꼬마 우주야. 이리 와. 형 옆에 앉자.”

“우리 지호, 컴온.”

“중현 주니어. 이리 와.”

외모도 비슷하게 섭외된 데다가 옷까지 똑같아서 그런지 뭔가 우리 미니미들 같아서 귀여웠다.

아역들이 우리 옆에서 스테이크를 와구와구 먹는 동안 말을 걸었다.

“이름이 어떻게 돼?”

“이 중에 누가 제일 잘생겼어? 참고로 정답 있음!”

“아. 거 먹다가 체하겠네. 다들 자제 좀 해요. 혹시 고기 좋아하니?”

우리한테는 뚱한 표정을 짓다가 아이들에게 급방긋하는 리혁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자리가 협소한 탓에 어머님들은 다른 테이블에서 대화를 하는 동안 우리가 아이들과 놀아 주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려나.

다행히 정신 연령이 비슷해서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가 어리다보기다는 상대가 성숙했다.

“연기 경력이 3년이라고?”

“네.”

“대박이다. 지호야. 준혁이가 너보다 선배님이야.”

내 말에 지호가 배꼽 인사를 꾸벅했다.

“안녕하세여. 선배님.”

“안녕하세요.”

“심지어 말투도 지호보다 의젓해.”

“인정.”

중현이가 동의하고 다들 키득거리자, 지호가 도끼눈으로 못된 형들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금세 인기에 취해 헤헤 웃었다.

“저 슬립 봤어요!”

“저두!”

“그래? 그거 어린아이들이 봐도 되는 거니?”

“네. 연기 공부하려고 봤어요.”

연기 잘한다는 아역 배우들의 칭찬에 지호가 ‘우와아아’ 하면서 눈을 쉴 새 없이 반짝였다.

서로 하이파이브까지 하고 셀카 찍는 모습이 벌써 베프 먹은 것 같다.

한편 나는 나대로 내 관심사를 표현했다.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 초코를 홀짝이면서 아역들에게 물었다.

“요즘에는 무슨 노래가 인기가 있니?”

“와. 말투 국어책.”

지호에게 눈을 흘길 때, 아이들이 대답했다.

“저희들은 그거 들어요.”

“어떤 거?”

“망고 차트 100이요.”

동요라든가, 아니면 만화 주제가 같은 게 나올 줄 알았는데. 하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 그렇구나.”

“눌러놓으면 유행하는 노래 나와서 좋아요.”

살짝 당황스러웠다.

나는 저 나이 때 ‘나는 우주몬~!’ 하면서 만화 노래 부르고 헬렐레 팔렐레 하고 다녔던 거 같은데. 요새는 미튜브라든가 스마트폰이 있다보니 나 때와는 다른 듯했다.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노래도 알겠네?”

“네! 완전!”

“엄청 잘 알아요. 차트 누르면 형, 아니 선배님들 노래 맨날 나와요.”

“바람꽃 좋아요.”

우리가 눈빛을 교환하며 웃었다.

‘초등학생이 우리를 안다!’

‘뉴블랙, 성공적.’

의도치 않은 곳에서 리스너를 만나서 그런지 묘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알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우리 노래 중에서 무슨 노래가 좋았냐고 물으면서 시장 조사를 할 때였다.

“어……?”

머릿속으로 이어 가던 생각이 의도치 않은 곳에서 뚝 멈췄다. 커피를 홀짝이던 리혁이가 물었다.

“왜 그래요?”

“우리 신나는 거 하기로 한 거 말이야. 이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으려나?”

“웬일로 멀쩡한 생각을 다 했대요?”

리혁이가 건넨 최상의 칭찬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동생들도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했다.

“괜찮은데여?”

“진짜. 오히려 우리보다 대중성 알아보는 건 더 감이 좋을 수도 있어요.”

“아이디어 좋다. 진짜 한 번 물어봐요.”

스탭들이 다음 씬을 준비하는 막간의 시간 동안 아이들을 우리 근처로 끌어모았다.

과자를 하나씩 쥐어 주고는 태블릿 PC의 피아노 어플을 켰다.

“우리가 노래의 전반적인 느낌을 좀 잡고 싶어서. 어떤 게 신나는 노래인지 형들끼리 의견이 분분하거든.”

“아아…….”

“너희가 들으면서 좋은 느낌이다 싶으면 말해 줄래?”

손가락을 부드럽게 놀렸다.

“우와!”

아역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흠흠…….”

왜 이렇게 뿌듯하지.

조카들이 별것도 아닌 일로 ‘삼촌 대단해!’ 하는 느낌이었다.

가상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변주를 할 때마다 마술사를 바라보는 관객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우와아…….”

“…….”

“또 해 줘요. 형. 또.”

왜 너희들까지 감탄하는 건데.

올망졸망한 얼굴들 위에서 작은 얼굴들이 초등학생들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런 식으로 대강의 느낌을 잡기 위해 흔한 형식의 멜로디들을 변주해서 들려주었다.

“오…….”

반응을 살피면서 조금씩 반응이 좋은 쪽으로 움직였다.

어두운 동굴에서 걷는 사람처럼 좋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방향을 하나둘씩 틀면서 이동했다.

출구에서 흘러 들어오는 빛을 찾듯이.

“오!”

“오오!”

“오오오오!”

그런 식으로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내가 조합한 음에 꼬꼬마들이 고개를 까딱였다.

큰 꼬마들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이거다.’

‘이거예여. 형!’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우리가 설레는 눈빛을 교환했다.

원하던 것을 마침내 찾았다고 할까.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느낌만 잡은 것이니 멜로디는 따로 만들어야 할 테지만, 일단 그 느낌을 잡았다는 게 중요했다.

이걸 잡으면 지금부터 일사천리인 거니까.

“얘들아.”

“네?”

“끝나고 형들이 뭐 사 줄까?”

행복한 얼굴로 ‘뭐 사 줄까?’ 하는 우리에게 아역들이 눈을 깜빡이다가 ‘네!’ 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웃으며 궁금했던 걸 물었다.

“참, 너희 혹시 몇 살이니?”

*   *   *

“나인?”

레몬 엔터 회의실.

A&R 팀장이 눈앞에 앉아 있는 우주와 멤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목이 특이하네. 그나저나 벌써 완성했다고?”

“완성은 아니고 테스트 버전이에요. 일단 어떤지 팀장님의 의견을 여쭙고 싶어서요.”

“오…….”

팀장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런데 제목은 왜 나인이야?”

“영어로 9가 나인(Nine)이잖아요.”

“아하. 그 나인.”

우주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9라는 게 1부터 9까지 중에서 마지막이잖아요. 사람 나이로도 열아홉. 스물아홉. 이렇게 새로운 나이대로 접어들기 전의 마지막 숫자고요. 이제 새로운 해, 새로운 날로 넘어가기 전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즐겁게 놀아 보자는 게 주제예요.”

“오오…….”

그냥 테스트 곡이라고 가볍게 가져온 줄 알았는데 뭔가 있어 보였다.

“아이디어 좋은데?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야?”

“그건 비밀이에요.”

우주와 멤버들이 어딘가 신비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A&R 팀장과 직원들이 ‘호오’ 하며 턱을 쓰다듬으며 감탄사를 보내는 동안, 멤버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절대 말 못해.’

‘초딩이 점지해 준 노래인데.’

‘이 비밀은 우리 무덤까지 가져가는 거예요.’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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